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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 십자가의 요한
작성일 2007-09-12 (수) 00:10
분 류 성십자가의 요한
ㆍ추천: 0  ㆍ조회: 2095      
IP: 211.xxx.74
http://missa.or.kr/cafe/?spirituality.30.
“ 8장. 믿음의 첫째 단계: ‘감각의 밤’/감각의 능동적 정화 ”
 

8장. 믿음의 첫째 단계: ‘감각의 밤’/감각의 능동적 정화

8.1. 십자가의 성 요한에 있어서 감각이해

십자가의 성 요한은 감각세계 그 자체를 나쁘다거나 유해한 것으로 보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는 「영혼의 노래」에서 피조물에게는 감탄스러운 자연의 아름다움 뿐 아니라 육화 이전 하느님께서 자연계에 그의 눈길을 주셨기에 그 존재는 초 자연성이 반영되어 후광마저 띠게 되었음을 일깨워 준다.1) 그러므로 세상은 성화와 구원에 있어서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장애물이 되고 안되고는 이 세상의 모든 사물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반응을 나타내며 또 그것들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탈이 요구되는 이유는 우리가 일치해야할 “존재”는 우리의 의지나 지성의 힘만으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분이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성 요한에게 있어서 영혼이 성취해야할 목표는 ‘감각적인 모든 맛과 모든 자기만족에 대한 거절’로서 영혼의 진보를 방해하고 해를 끼치는 것은 “이 세상의 사물들이 아니라, 오히려 피조물들에 대한 욕망과 그 맛”2)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영혼은 이런 과정을 체험하면서 지금까지 즐기던 것보다 더 고상한 감각적인 기쁨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며, 지상적인 만족을 찾느라고 보낸 시간들이 이제 그 영혼의 눈에는 낭비된 시간으로 보이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8.2. 정화의 구체적 규범

8.2.1. 기초적 단계(전제조건-자아이탈)

이 단계는 감각적 쾌락 안에서 누리던 모든 낙을 끊고 보다 영적이고 고상한 수준에로 끌어올리고 자신의 의무수행이나 애덕의 실천, 기도의 실천, 묵상, 영적 독서 또 관대함에 대한 자신의 갈망을 만족시킬 만한 고행의 실천에 전념해야 하는 단계이다.3) 또한 요한은 인간에게는 세 가지 큰 원수가 있는데 그것은 세속, 악마, 육신이며 그것은 인간에게 끊임없는 싸움을 걸어와 영적 여정을 어렵게 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는데 있어서 성 요한은 인간의 창의만으로는 어려우며 하느님의 도우심이 절대로 필요하다고 하였다.

8.2.2. 실천적 정화에 있어서의 규범에 관한 고찰

8.2.2.1. 기본 입장

성 요한은 감각의 정화를 “감각적인 것에서 떠남”이란 용어를 어둠밤의 詩에서 암시하고 있다. 우리는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성 요한은 감각세계의 역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이 아니고서는 인식할 수 없음을 표명한다.

우리의 모든 인식은 감각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성 요한은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예수께 대한 사랑의 원의에서 우리의 의지를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포기에로 향하게 해야 한다고 성 요한은 역설하고 있다. “하느님의 영예와 하느님의 영광에서 기인하지 않는 모든 감각적 즐거움은 영혼이 포기하는 일인데 이는 지상 생애동안 성부의 뜻을 실천하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즐거움도 갖지 않으셨고 갖기를 원하지도 않으셨던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으로 이루어져야 한다.”4)

이런 전제하에 성인은 여기서 구체적이고도 실천적인 두 가지 권고를 말하고 있다.

① 무엇을 보거나 혹은 하느님께 대한 봉사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중요하지 않고 또 우리가 하느님께로 나아가도록 봉사하지 않는 무엇을 소유함으로써 얻어지는 즐거움이 있거든, 가능한 그것들을 듣지도 말고 보지도 말고 소유하거나 행하지도 말고 피할 것이다.5)

② 만일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네가 피할 수 없는 그것들의 맛을 즐기지 않는 것만으로 족하다.



8.2.2.2. 실천적 방법

이 모든 것은 성 요한의 표현대로 감각적 집착에서 벗어나기 위한 실천적 방법이요,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성 요한이 강조하고 있는 감각적 집착이란 습성화된 집착을 말한다.6) 곧, 보고 느끼고 촉각으로 오는 모든 것에 대해서 “애착하고”, “마음에 품고”, “열중하고”, “애호하고”, “즐기는” 것이 바로 집착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 아닌 무엇에 정이 쏠려서 그 욕구가 영혼 안의 자리를 차지하면 할 수록 하느님을 위한 수용력은 그 만큼 줄어든다.”7) 그러므로 여기서 “알면서”, “고의로”라는 두 어휘는 집착의 성립 조건을 만족시킨다고 할 수 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하느님께서 틀림없이 희생을 요구하시는 것을 알면서도 고의로 또한 습관적으로 즐겨 맛보려고 하는 것은 집착하는 표징을 나타낸다.8) 즉 이것은 죄의 조건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피조물에 대한 이런 류(類)의 집착과 하느님께 대한 애착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8.2.2.3. 성 요한이 제시하는 참된 이탈9)

가. 예수 그리스도를 모방함

“우선 영혼이 그리스도를 모방하려는 항구한 원의를 가질 것이고 … 모든 행위를 함에 있어서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것처럼 하기 위해서 그분의 생애를 묵상할 것이다.”10)

그리스도인의 성화는 그리스도와 합체(合體)되고, 그리스도의 신비에 친근하게 참여하는 것이므로 만사는 점점 더 강하게 그리스도의 신비를 사는데 달려있다. 여기서 성 요한은 그리스도를 단지 스승이나 모범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해야할 스승”, “사랑해야할 모범”11)으로 제시한다. 성 요한이 첫 번째로 헤아리는 것은 마음 안에 그리스도의 위치를 뚜렷이 하는 것으로, 이것은 우리들이 자아포기의 길로 들어갈 원동력을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에서 찾으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자아포기의 길”,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요구되는 것은 현세적인 만족에로 세차게 끌어가는 감각적인 것을 억제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감성면에 죽으신 것만은 확실하다. 즉 살아 계시는 동안 영적으로 죽으셨고 자연적으로도 돌아가실 때 그러하셨다. 당신이 말씀대로 사실 때는 머리 누일 자리 마저 없으셨고 돌아가실 때는 더 더욱 그러하신 것이다.”12)는 것에서 볼 때, 성 요한의 가르침은 복음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영성적 생활에서는 단 한 분의 스승, 곧 그리스도 예수뿐이시며, 예수님의 그 가르침을 다른 영성가들은 시대라든가 사회적 신분과 소명들의 특수한 조건에 적응시켰을 뿐이고, 그 본질은 언제나 예수의 가르침에 근거를 두었기 때문이다. 또한 성 요한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의지가 무엇을 누리려 할 때 사랑과 정이 불타기 마련인데, 일체 의욕을 끊고 일체의 맛을 아니 여기기 위해서는 님의 사랑인 더욱 큰 사랑의 더 뜨거운 불꽃이 있어야 한다.이 사랑에서 맛과 힘을 얻으면 일체를 거뜬히 부정할 만한 끈덕진 용기가 솟아나니 말이다. 그리고 감각욕을 끊기 위해서 님께의 사랑을 가지는 것이 필요할 뿐 아니라 사랑에 타는 할딱임이 있어야 한다.”13) 그러므로 성 요한에게 있어서는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그리스도께 가르치신 것과 같이, 자아 포기의 길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예수께 대한 사랑, 예수께 대한 모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14)

나) 감각들에 대한 정화

감각의 정화에 대한 성 요한은 “하느님은 정녕 바른 이를 어여삐 여기시거늘 몸뚱이는 피둥피둥 살쪄 있도다. 하늘을 거슬러 입을 마구 놀리고 혀로는 땅을 휩쓸고 있도다(시편 72).”를 주해하면서 감각적인 것에 대한 집착에 파묻혀 사는 인간들의 죄와 죽음에까지 이르는 극적인 모습들을 질타하고 있다.15)

악도 선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연관성이 있어서 우리를 불완전에서 소죄로, 소죄에서 대죄로 넘어가 마침내는 깊은 늪으로 내딛게 한다고 말한다. “부당한 것”에 대한 욕구의 고삐를 늦추고 현세의 사물에 기쁨을 갖는 그 태도에는 별로 나쁜 것은 없으나 반면 그것만에 집착했을 때에는 그의 정신은 흐려져 이미 하느님 일에 대해서는 구름이 끼게 되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올바르게 판단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러는 중에 욕구를 조금도 억제하지 않으므로 모든 피조물 곧 감각적 사물에로 마음이 번져가면서 말하자면 문자대로 “살찌게” 된다는 것이다. 욕구는 마침내 영혼을 흐려놓을 뿐만 아니라 영적 게으름, 냉담, 이라고 할 싫증이 스며들어와 거기에는 이미 악이 보이기 시작해 마침내 이 길에서 비틀거리게 되고 드디어 크게 떨어지고 만다. 따라서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버리게 되고, 감각적 세계에서 이 세상의 것인 부귀에 둘러싸여서, 이제 하느님의 계명은 안중에도 없게 된다고 성 요한은 날카롭게 경고하고 있다. 이런 사람은 이 세상 사물에 대해서 놀랄 만큼 민첩하고 약삭빠르게 되다. 성 요한은 이점에 대해서 서슴없이 끝까지 분석하고 있다. 그는 현세 사물과 감각적 세계에 대한 집착이 우상숭배에까지 떨어지게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마치 돈밖에는 하느님이 안 계시는 듯 하느님 안에 결정적으로 자리잡아야 할 마음을 금전 안에 결정적으로 자리잡게 된다”고 마술사 시몬이 말한 것처럼 영성적 세계에 돈을 끌어들이는 것이며, 하느님의 일을 깔보는 마지막 단계라고 성 요한은 제시하고 있다.16)

이 모든 것에서 탈피하기 위하여 성인은 실천적인 두 가지 권고를 내린다. ① 무엇을 듣거나, 보거나, 혹은 하느님께 대한 봉사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중요하지 않는, 또 우리가 하느님께로 나아가도록 봉사하지 않는 무엇을 소유함으로써 얻어지는 즐거움이 있거든, 가능한 그것들을 듣지도 말고 보지도 말고 소유하거나 행하지도 말고 피하라.17) ② “만일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네가 피할 수 없는 그것들의 맛을 즐기지 않는 것으로 족하다”18)

그러나 감각의 정화에 있어서 이 모든 것에 대한 극기와 관리는 현명함의 덕과 평형을 지키는 것이 요청된다고 하겠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 감각에서 그 고유한 대상들을 박탈할 것까지는 없지만 그 대상들이 하느님에게서 일어나지 않고 감각들을 통해서 눈을 뜨게 되는 기쁨과 최후의 안식을 두는 행위들은 지양해야 되겠지만, 그들 안에서 하느님의 자취와 흔적을 볼 수 있다면 그것들은 더 이상 성화의 장애물이 아닐 뿐더러 영성생활이 성장하는데 필요한 수단과 도구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악이나 무질서는 하느님과 상관없이 별도로, 마치 인간의 궁극적 목적인양 피조물들 안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피조물의 아름다움이나 피조물이 주는 즐거움을 기뻐해야 하는데, 이는 우리가 하느님께로 인도될 때 피조물은 우리의 성화에 더없이 좋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19)

“맛을 즐기느라 마음을 매어 둠이 부질없는 짓이라고 말한 것은 내딴에는 까닭이 있어서였다. 그 까닭이란 듣고 보고 맞댐에서 기쁨을 느끼자마자 거기에 마음을 매어 둠이 없이 그 마음을 높여 하느님 안에서 기뻐하고, 그 기쁨이 하느님 안에서 기뻐할 동기와 힘이 된다면 그 이상 좋은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만 되면 경건한 생각과 기도를 자아내는 이 마음의 움직임을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렇듯 거룩한 수행을 위하여 이를 이용할 수 있고 이용해야 한다. 그 이유는 감각적인 애상을 통하여 하느님께 더욱 움직여지는 사람들이 있는 까닭이다.

그런 까닭으로 나는 저 감각의 맛이 언제 이롭고 언제 그렇지 않은가를 알아내는 하나의 기본을 여기다 적고 싶다. 무엇이냐 하면 음악이나 다른 소리를 듣거나 유쾌한 것을 보거나 좋은 향내를 맡거나 풍미 있는 것을 맛보거나 즐거운 촉감을 느낄 때, 그때마다 그 첫 움직임부터 생각과 마음의 정이 하느님께 향하고 감각적인 자극보다도 저 생각에 맛을 붙이고, 오직 이 생각 때문에 맛스러워진다는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이미 말한 감각적인 것에서 이득을 얻는 것, 그리고 이런 감성의 것이 영에게 도움을 주는 표인 것이다. 이와 같이 이용될 수 있을 때는 하느님께서 감각적인 것을 만들어 주신 그 목적대로 이를 쓰게 되는 것이고, 이로써 하느님을 더욱 더 알고 사랑하게되는 것이다.”20)



다) 욕망들에 대한 정화

감각의 정화에 있어서 영혼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본성이 가장 싫어하는 것을 향해서 자신의 의지를 정향시킴으로서 욕망들에 대한 정화를 실천해야 한다. 그 이유는 인간에게 있어 본성적인 즐거움이 하느님께서 원하신 까닭에 정당화될 수 있기는 하지만 이런 반역은 무엇보다도 향락의 형태, 이기적으로 추구되는 감각적인 쾌락에 대한 욕구로 현실화되며 구체화되기 때문이다.21) 그러므로 욕망들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감각이 즐거운 것에 집착하도록 자극하는 것이다. 이 욕들을 끊어버리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고 본성적인 욕망들에 반대되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원함으로써 욕들에 대한 반격을 행함에까지 이르러야만 한다고 성인은 지적하고 있다. 성인의 저서 「가르멜의 산길ꡕ의 1권 13장에 이 욕망들에 대한 정화의 원칙이 훌륭히 제시되고 있다.

“욕들을 끊어버리기 위해서는 영혼은 항상 다음과 같은 것에로 향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보다 쉬운 것보다 어려운 것을, 보다 즐거운 보다 차라리 덜 즐거운 것을, 쉬운 일보다도 고된 일을, 위로되는 일보다도 위로 없는 일을, 보다 높고 값진 것보다 보다 낮고 값없는 것을, 무엇을 바라기 보다 그 무엇도 바라지 않기를, 세상의 보다 나은 것을 찾기보다 보다 못한 것을 찾아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하여, 온전히 벗고, 비우고, 없는 몸되기를 바라라.”22)

그러므로 성 요한은 이 부분에 대해서 바른 길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또 하나의 훌륭한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일체의 욕구를 끊고 일체의 맛을 보지 않기 위해서는 님께 대한 사랑과 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일체의 욕구를 끊고 일체의 맛을 안 보기 위해서는 님의 사랑인 더욱 큰 사랑과 더욱 뜨거운 불꽃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욕구를 끊기 위해서는 님께 대한 사랑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 .”23) “감각욕을 끊기 위해서는 님께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사랑에 타서 할딱이게 되어야 한다.”24)



라) 자애심에 대한 정화

성인은 마침내 자애심을 끊어버릴 것을 단호히 요구한다. 교활한 자기만족, 영혼의 구석구석에 스며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미묘한 친절마저도 끊어버릴 것을 요구한다. 그 이유는 이 자애심이 제거되지 않는다면 인간과 하느님의 일치를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25)

그러므로 성 요한이 말하는 하느님과 영혼의 결합은 하느님이 영혼을 존재케 함으로써 단순히 영혼에 현존하는 일반적 결합이 아니라 초자연적 결합을 말하고 있다.이 신비생활의 초자연적 결합은 은총와 애덕에 의해 이루어지는 ‘유사의 결합’이다. 그러나 이 사랑의 결합에 가능한 한 완전하고 친밀한 결합이 되려면 영혼은 하느님을 전심 전력으로 사랑할 수 있도록 하느님이 아닌 모든 것과 하느님의 사랑에 장애거리가 되는 온갖 것을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26) 그러므로 이 자기 자신에 대한 애착을 포기하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사실 이 자아 포기는 항상 어떤 종교적 열정과 신비경에 이르는 과정이나 방법으로서 종교사에서 항상 사용되고 요구되어 왔음을 우리는 볼 수 있다.27) 물론 성 요한도 이것을 잘 알고 있었으며 이런 맥락에서도 십자가의 성 요한이 많은 영성인들을 밀어붙이는 곳은 최초의 포기인 자아포기이다. “우선 모든 것을 가볍게 보고 부인하면서 온갖 것에서 빠져 나오고 이어서 자신을 버림으로 자신에게서 떠날 수 있는데 이는 거룩한 미움으로 자신을 미워했기 때문이다.”28) 이 승리를 얻기 위해서 성인은 세 가지 규범을 제시한다. 첫째, 스스로 자기 자신을 없이 보도록 남이 자기를 업신여기도록 힘쓸 것. 둘째, 스스로 자기 자신을 낮추어 말하도록 남이 모두 낮추어 말해 주기를 바랄 것. 셋째, 본디 없는 몸-자기 자신을 낮추어 생각하고 남이 모두 낮추어 생각해 주기를 바랄 것.29)

이 성인의 자아포기는 언뜻 보아 절대부정에 이른 듯하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 긍정을 위한 것이며, 그리스도와 더불어 완전히 죽는 것만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완전히 부활한다는 맥락 안에서 이해되어야 하겠다. 그 이유는 일부분이라도 죽지 않으면 완전한 죽음이 아니기에 완전한 부활이 없으며 ‘전적 죽음’은 ‘전적 변화’를 위한 것이므로 이런 관점에서 성인의 영성은 대단히 긍정적이라 할 수 있겠다. 즉 내 영혼에 한치라도 부정하지 않은 공간이 있으면 그 만큼 성삼위께서 나를 점령하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완전한 부정을 애기하고 있다. 이러한 전제는 완전 긍정을 목표로 하는 것이 된다.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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