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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 십자가의 요한
작성일 2007-09-12 (수) 00:09
분 류 성십자가의 요한
ㆍ추천: 0  ㆍ조회: 1449      
IP: 211.xxx.74
http://missa.or.kr/cafe/?spirituality.28.
“ 6장. 신앙의 지혜 ”
 



6장. 신앙의 지혜

믿음의 지혜는 우리를 이끄는 뛰어난 목표이다. 그리고 인간의 감각과 정신을 부정하고 변용되는 마음의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것이 ‘어둔 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이다.



6.1.무지를 설명하는 스승

십자가의 요한은 이성의 작용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리고 감각이나 이성의 활동을 통해서 인간이 얻게되는 지식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산’으로 상징된 초월적 존재인 하느님을 진심으로 알기를 원했기 때문에 ‘무지’(無知) 또는 ‘무’를 체험하였다.

“언제나 하느님은 무엇보다도 위대하시다”(Deus semper major) 라는 가르침은 ‘하느님의 발자취’(Vestigia Dei)인 피조물을 통해 하느님의 존재를 알기 시작한 인간의 깨달음이다. 인간은 이 가르침에 따라 더욱 더 알고 싶은 길을 걸어간다. 그러나 이 하느님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힌 인간이 산 절정이라고 생각한 그 지점에 가 닿았을 때 뜻밖에도 그의 눈 앞에는 까마득한 절벽이 가로놓인다. 그리고 저 건너 편으로 아득히 많은 산 능선이 뿌옇게 보인다.

이처럼 인간은 알면 알수록 자신이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여기서 ‘신앙’이 요청된다.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심오한 현의가 인간에게 은총으로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바라는 태도이고 이것이 신앙의 지혜라고도 할 ‘無’의 길의 출발점이다. 이러한 길을 걸어갔고, 또 우리에게 걸어가도록 권장하기에 십자가의 요한은 ‘無의 스승’이라 불린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의 지혜를 얻으려면 무엇보다 이성으로 알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이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다. 이런 태도1)는 지식뿐만이 아니라 감각, 기억, 의지 등 온갖 인격적인 것을 총합한 자세라고 말할 수 있다. 또 이와 같은 통일에로의 작용은 ‘무지의 지’에 이르는 감추인 과정의 하나이기도 하다. 요한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것은 체험이 없는 한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을 체험하는 사람은 자신이 강하게 느끼는 그 무엇이 자기에게 있어서 역시 미지(未知)의 것으로 남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그래서 그것을 ‘내가 알 수 없는 그 무엇’이라고 표현한다. 왜냐하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느끼기는 하지만.”2)

십자가의 요한은 ‘마음’이라는 것을 감정적인 삶의 원천으로 생각할 뿐만 아니라 지적인 삶의 원천으로 생각한다. 인간은 이 마음으로 아는 것이다.3) 따라서 인간의 근본적인 토대라고 할 수 있는 기능은 상반된 것을 이성으로 파악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신 어둠’ 속에 있으면서도 상반된 것을 그대로 하나로 포괄해서 포착하려는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러한 신앙의 지혜를 요한의 말로 표현한다면 ‘사랑을 다해 아는 것’이다.



6.2. 신앙의 지혜의 프로그램-부정과 변모

6.2.1. 지식의 부정

십자가의 요한은 신앙이라는 산을 향해 부정의 길을 걸어 가게끔 우리를 부르고 있다. 그러나 이 부정이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아 들이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화의 길을 말하는 것이다. 그의 교설에 의하면 모든 것은 ‘가는’ 방법인 동시에 ‘돌아오는’ 방법이다4). 둘은 같은 것이지만 초점의 과녘이 다르다: ‘가는’ 방법은 인간이 이기주의와 욕망의 노예가 되어 하느님을 떠나서 피조물 쪽으로 마음이 끌려갈 때의 그 피조물을 가리킨다. 그런데 정신의 정화단계가 지나면 그런 것은 억지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게 되고 오히려 그런 것이 하느님께로 ‘돌아오는’ 방법이 된다.

요한은 첫 작품 ꡔ갈멜의 산길ꡕ과 두 번째 작품 ꡔ어둔 밤ꡕ에서 ‘가다’의 방법으로 온갖 피조물과 인간의 다양한 지식을 모두 부정하였다. 그런데 그 다음에 쓴 ꡔ영혼의 노래ꡕ와 ꡔ사랑의 산 불꽃ꡕ에서는 ‘돌아오다’를 위한 방법으로 모두를 긍정하였다.

요한이 직접 체험한 바에 의하면 인간은 자기의 의식을 비우고 구체적인 지식에 사로잡힘 없이 그것을 초월하여 본능적인 욕망이나 기호에서 이탈함으로써 훨씬 더 충만해지는데, 그것은 새로 나기 위해서 절대로 필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요한 자신도 정화되지 못한 여러 애착들과 감각적인 것에 대해 아직 연연해하는 것을 탄식하며 다음과 같이 신음하고 있다.

“주여 나는 아직도 당신을 알지 못했습니다. 여태껏 온갖 것이 알고 싶고 맛보고 싶으니 말입니다.”5)



6.2.2. ‘안다’는 것의 변모

이처럼 ‘산’으로 가는 길은 ‘가지다’라는 태도에서 ‘···이다’의 자세에 이르는 길이다. ‘메타노이아’즉 내적 회심의 길에 있어서 처음에는 ‘이성으로 안다’는 자세를 갖게 되는데 차차 하느님께로부터 신앙을 ‘받는’ 열린 태도로 변해간다.

신앙 안에서 얻는 이같은 초자연적 지혜를 지닌 요한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들어는 와도 어딘지 모르는 곳

   모르는 채 그냥 있었노라.

   온가지 앎을 훨씬 넘어서”6)

이렇게 초자연적인 지혜를 받고 하느님께 사로잡힌 사람은 자신이 온갖 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체험을 한다. 이것이 하느님의 기쁨이며 요한은 이것을 “창조된 것 안에서의 작은 지혜”라고 부른다.



6.2.3. 능동적인 부정-변모

6.2.3.1. 감각과 신앙

요한은 정화에 있어서 감각부터 시작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감각은 확실히 알게 되는 과정에 큰 역할을 한다. 즉 우리는 감각을 통해 밖의 세계의 여러 면을 알게 되고, 또 상상력, 기억에서 오는 이미지를 되생각하고 사건을 추억하기도 한다. 그리고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만지는 감각을 체험하면서 즐기거나 기뻐하는 따위의 욕망이 깃든 감정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떠나게 하는 죄를 범하는 인간은 이런 감각의 조화를 깨뜨려 버린다. 이런 사람은 주위의 사물에 대한 반응이나 감각이 무뎌지고 흩어진다. 그러므로 인간을 재교육하려면 외적인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요한은 ‘애정이 깃든 단절’을 권고한다. 이것을 사물에 사로잡히는 이기적인 정신에서 영적 가난을 자각하는 자세, 다시 말해 신앙의 자세로 옮겨지는 것을 첫째 밤이라고 한다.



6.2.3.2. 정신과 신앙

십자가의 요한은 능동적인 부정-변모의 길을 걸어 갈 때 영과 덕은 서로 깊은 관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영은 이성과 기억, 의지의 세 가지인데 신학에서 영과 연결되는 덕인 신앙과 희망과 애덕에 찬 자세를 지녀야 한다는 것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6.2.3.2.1. 이성

산이시며 초월자이신 분, 이성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가까이 갈 수도 없는 존재인 하느님 대전에서 이성은 ‘태양을 향할 때 완전히 캄캄해져 버리는 올빼미의 눈’처럼 어두워지고 감각의 길도 막혀 버린다. 그래서 요한은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께 닿으려면 알고 싶기 보다 차라리 알지 못하면서 가야하고, 하느님의 빛에 바짝 다가 서려면 눈을 뜨기보다 차라리 눈을 감고 어둠 속에 있으면서 나아가야 한다.”7)

그는 이런 체험에서 나오는 신앙의 태도야말로 인간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푸는 열쇠라고 말한다. 신앙은 감각의 눈을 멀게 하지만 동시에 빛을 준다. 즉 신앙이 이성의 자리를 점령해 버린다.



6.2.3.2.2. 기억

 먼저 요한은 기억이란 과거에 사로잡혔던 영상을 생생하게 되새기며 간직하고 상상력을 다해 새롭게 재생산해내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기억의 정화도 이성의 정화와 마찬가지로 기억 속에 차곡차곡 쌓아 두었던 감각적 이미지를 잊게하여 자신을 텅비게 하는 것8)을 목적으로 한다.

 기억은 신앙보다 희망이란 말을 쓰지만 이 경우의 희망이란 믿음과 깊은 유대를 갖는 신뢰하는 태도이다. 요한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느님께 가려면 하느님 아닌 모든 것에서 영혼을 비워야 한다. 따라서 영혼이 하느님과 망덕으로 합하기 위해서는 기억도 이런 형상과 지식을 없애야 한다. 무릇 소유함은 바램과 맞서는 것이니 성 바오로도 바램이란 소유하지 않는 것에 대한 것이라 하셨다.”9)


6.2.3.2.3. 의지력

십자가의 요한은 의지력의 정화를 위해서는 애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애덕 역시 의지에 있어 모든 것을 비우게 한다. 애덕은 우리에게 일체를 초월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라 하는데 하느님께 우리의 정을 고스란히 쏟으려면 모든 것에서 정을 떼지 않으면 불가능하다.”10)

의지력의 정화는 곧 “자연의 욕정인 즐거움, 소망, 두려움, 고통의 네 가지 감정을 억제하고 또 고요하게” 하는 것이다. 요한은 특별히 즐거움의 욕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즐거움의 욕을 정화하면 다른 세 가지의 욕에 좋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즐거움에는 지상적인 것, 자연적인 것, 감각적인 것, 윤리적인 것, 초자연적인 것, 그리고 영적인 것이 있다. 요한은 조성된 선11)은 어떤 것이든 즐기지 않기를 바란다.



6.2.4. 수동적인 부정-변모

십자가의 요한은 두 번째 작품인 「어둔 밤」부터는 하느님 친히 정화작업을 하시고 그 정화의 원동력이 되신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다.


6.2.4.1. 감각의 밤

인간의 감각을 정화하는 데는 하느님의 능력이 앞서 작용한다. 이것은 어린이가 커감에 따라 부드러운 사랑을 감추면서 응석을 받아주지 않고 달디 단 젖에 노회즙을 발라 아기를 품에서 내려놓고 제발로 걷게 하는 것과 같다.12)

 “어느 어두운 밤에

  사랑에 타 할딱이며

  좋을씨고 행운이여

  알 이 없이 나왔노라

  내 집은 이미 고요해지고”(詩 1)

 “내 집은 이미 고요해졌기에 집을 나왔다”는 것은 무질서한 감각적인 것에 의해 피상적인 삶에서 빠져나와 온갖 것을 버린 무의 세계인 믿음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 것으로써 감각적인 것으로 차 있는 마음 속의 집을 고요히 떠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두운 밤이기는 하지만 멀지않아 밤이 걷히고 새벽이 오리라는 것을 믿으며 어두운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6.2.4.2. 정신의 밤

 “변장한 몸, 캄캄한 속을

  비밀층대로 든든하이13)

  좋을씨고 행운이여

  캄캄한 속을 꼭꼭 숨어

  내 집은 이미 고요해지고“(詩 2)

하느님께서는 영혼이 첫 번째의 정화인 어렵고 메마른 곤란과 함께 감각의 밤을 탈출하게 되면 곧 이어 그 영혼을 영의 밤으로 이끄신다. 즉 하느님께서는 “묵은 사람의 마지막 때”14)를 벗기시려는 것이다. 이것은 정신적인 면에서의 지각과 맛이라는 인간이 좋아하는 경향과 욕망을 말하는데 이런 것들은 정신의 한 구석에 남아 있고 악에의 유혹도 남아 있다. 따라서 인간의 정신은 어둡고 순수한 신앙으로 걷지 않으면 안된다. 이와 같은 정신의 밤의 특징은 인간이 체험하는 내적 ‘아픔과 고통’에 있다. 십자가의 요한은 자신의 내적 허무의 체험, 온갖 것을 버린 적나라한 체험, 가난과 아무 것도 없는 텅빈 체험을 기록하면서 탄원가를 읊은 요나나 예례미야나 다윗과 같은 구약의 예언자들의 체험을 인용하고 있다.

십자가의 요한은 성서에 의한 “혼인의 신비” 중에서 세 가지의 신학적인 덕을 찾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은 ‘신앙과 희망과 사랑’인데 이 세 가지의 덕은 초자연적 지혜라는 은총을 받기에 필요한 혼례복과도 같다. 애인의 호감과 애인과의 일치를 얻기 위한 영혼에게는 온갖 다른 덕의 기초 의상이며 시작으로, 신앙이라는 새하얀 옷보다 더 좋은 것을 입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바오로 사도가 말한 것처럼 믿음 없이는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없기 때문이다.(히브 11, 6)


6.2.5. 믿음의 지혜

 “상서로운 야밤중에

  날 볼 이 없는 은밀한 속에

  빛도 없이 길잡이 없이

  나도 아무 것도 못 보았노라.

  마음 속 타는 불빛 밖엔”(ꡔ어둔 밤ꡕ 詩 3)

믿음과 사랑 외에는 빛나는 것에 인도자도 없다. 빛이란 아는 것이며 그 열(熱)이란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지혜는 인간의 노력으로 차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은총이다. 하느님과 인간을 교류하는 성령의 작용으로 인간에게 은총이 주어진다. 요한의 적절한 표현을 빌린다면 ‘조명된 신앙’의 중개에 의한 것이다. 사람이 믿음의 자세를 가질 때 성령께서는 그 믿음에 ‘빛을 주시어’ 비추신다.

우리 존재의 소망 즉 생명, 진리, 선,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는 모든 인간들이 공통적으로 품는 소망이다. 그러나 그런 것에 이르려면 ‘케노시스’(kenosis)라 칭하는 정화의 길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정화의 길을 통과하여 자신에게서 이탈, 내적 자유에 이르러야 한다. 또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께서 걸으신 길이며 그리스도의 제자가 걸어가야 할 길이다. 묵은 생명을 버리고 새 생명에로 다시 태어난다. 마찬가지로 부정을 통하여 새 지혜를 얻는다. 십자가의 요한이 걸은 믿음의 길은 갈바리아의 길 그 자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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