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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지의 구름
작성일 2007-10-21 (일) 12:20
분 류 무지의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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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지의 구름: 1-4 ”

하느님 안에서 나의 벗에게



1.

나는, 비록 서투르지만 흔연한 자세로 내 나름의 길을 걸어오면서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네 가지 종류 또는 형태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평범한’ 삶과 ‘특수한’ 삶, ‘고독한 삶’, 그리고 ‘완전한’ 삶입니다. 이 중 세 가지는 현세에서 시작하여 현세에서 끝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네 번째 삶은 하느님 은총에 힘입어 이승에서 시작하지만 더없이 행복한 천상에서도 언제까지나 이어지게 됩니다! 그대도 이제 곧 알게 되겠지만 내가 이 네 가지 삶에 ‘평범한’, ‘특수한’, ‘고독한’, ‘완전한’이라는 일정한 순서를 매긴 까닭은 우리 주님께서 크신 자비로 그대를 불러 진심어린 열정으로 당신께 나아오도록 배려하실 때도 늘 동일한 순서와 방법을 따르셨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대도 익히 알고 있다시피 그대가 ‘평범한’ 형태의 그리스도인 생활을 해나가면서 속세에서 벗들과 어울려 지낼 때에도 하느님은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그대를 무<無>상태에서 빚어 만드시고, 아담과 더불어 타락한 그대를 당신의 고귀한 피로 속량해 내신 그 사랑)으로 그대가 당신과는 전혀 동떨어진 그런 삶을 살지 못하도록 막아주십니다. 그 분은 이처럼 지극히 자비로운 방법으로 그대 안에 당신을 향한 열정을 불붙이시고 더없이 간절한 열망의 사슬로 당신에게 붙들어 매심으로써 그대를 ‘특수한’ 으로 이끄셨고 당신의 특별한 종중의 종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이렇게 하신 것은 그대가 더욱 각별하게 그분 소유가 되고 평범한 형태의 삶 속에서 해온 것보다 한결 더 영적으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도록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분은 그대가 마냥 거기에 머물러 있는 것에 만족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고혹적이고도 자비로운 방식으로 그대를 고독한 삶이라는 세 번째 단계로 끌어올려 주셨습니다. 그분이 늘 그대를 염두에 두며 마음에 간직하고 계시는 사랑은 이 정도입니다. 그리고 그대는 바로 그 상태에서 방법을 터득하여 이윽고 최후의 단계인 ‘완덕’의 삶으로 첫걸음을 내딛게 되는 것입니다.







2. 그대 가련하고 나약한 자여, 잠시 멈추고 그대 자신을 되돌아보십시오. 그대는 누구이며, 대체 무슨 자격이 있기에 우리 주님께 이런 부르심을 받고 있는 겁니까? 그리고 영혼이 얼마나 게으르고 나태하면 ‘사랑’의 손짓과 초대에 응하지 않는 것입니까?

가련한 자여, 그대는 이 단계에서 그대의 적에게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합니다. 그대는 자신이 받은 부르심의 가치를 내세우는 것은 물론, 고독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해서 자신을 조금이라도 남보다 더 거룩하고 훌륭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은총과 지도로 도움을 받는 그대가 부르심에 온전히 응답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는다면 그대는 오히려 더 가련하고 가증스러운 자가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영적 남편 되시는 분, 곧 ‘전능하신 하느님’이시요 ‘왕 중의 왕’이시며 ‘군주 중의 군주’이시면서도 더없이 겸손하게 당신을 그대와 같은 수준으로 낮추시고, 한없는 자비로 당신의 양떼에서 그대를 선택하여 당신의 ‘특별한 이들’ 중의 하나로 세우셨으며, 기름진 풀밭으로 데려가 당신의 사랑이라는 감미로운 음식으로 키우시며 하늘나라에서 누릴 유산을 미리 맛보여 주신 분께 한층 더 겸손하고 한층 더 사랑스러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간절히 당부하거니와 전속력으로 매진하십시오. 앞만 보고 뒤는 돌아보지 마십시오. 그대가 이미 가진 것이 아니라 아직도 그대에게 부족한 것에 눈을 돌리십시오. 이유는 그것이 겸손을 얻고 간직하는 가장 빠른 길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대가 완덕에 도달하기로 되어 있다면 지금 그대가 사는 삶은 전적으로 열망에 가득 찬 삶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 열망은 그대의 의지 저 밑바닥, 하느님께서 그대의 동의를 얻어 불어넣어 주신 바로 그곳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한마디 경고하거니와 그분은 질투하시는 연인이기에 어떠한 경쟁자도 묵인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혼자 차지하시는 경우가 아니면 절대로 그대의 의지에 개입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그대의 도움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대를 원하십니다. 그분의 뜻은 그대가 오로지 그분만을 바라보면서 당신 뜻대로 행하시도록 응낙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대의 영적 창문과 출입구를 적의 침입에서 지켜야 하는 사람은 그대 자신입니다. 만일 그대가 이 일을 흔쾌하게 해낸다면, 그 다음에 필요한 것은 기도 중에 겸허하게 하느님께 매달리는 것뿐이며 그럴 때 그분은 즉시 도우십니다. 그러니 그분에게 매달리고서 어떻게 되어 가는지 보십시오. 그대가 준비될 때쯤 하느님은 이미 준비를 끝내고 그대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래도 그대는 묻곤 합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지, 어떻게 ‘매달려야’ 하는 거지? 하고 말입니다.





3. 

겸허한 사랑을 가지고 그대의 마음을 하느님께 들어 올리십시오. 그러니까 하느님께 무엇을 얻어내려고 하지 말고 하느님 그분을 바라십시오. 실제로 하느님이 아니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도록 해야만 그 무엇도 그대의 마음을 차지하지 못하고 오로지 하느님만이 차지하시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만드신 온갖 피조물은 물론이고 그들이 추구하는 목적도 망각함으로써 그대의 생각과 열망이 거꾸로 돌아선다든가, 보편적으로든 특수한 경우로든 피조물에게로 뻗어나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들은 스쳐가도록 놓아두고 전혀 신경을 쓰지 마십시오. 그것이 바로 하느님을 더없이 기쁘게 해드리는 영혼의 수련(修鍊)입니다. 그렇게만 하면 모든 성인과 천사들이 기뻐 용약할 것이요, 서둘러 자기네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도와줄 것입니다. 그러나 악마는 그대가 하는 일을 보고 분기탱천하여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그 일을 망치려고 들 것입니다. 그에 반해서 인류 전체는 그대가 하는 일로 말미암아 그대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갖가지 방법으로 놀라운 도움을 받습니다. 그렇습니다. 연옥에 있는 영혼들은 그대의 수련 덕분에 고통이 가벼워집니다. 뿐만 아니라 그대 자신을 깨끗하고 정결하게 가다듬으려면 이 일에 전념하는 것 이상으로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또한 영혼이 은총의 도움을 받고 또 의식적인 열망을 지닌다면 이것만큼 쉬운 일도 없습니다. 게다가 이 일은 아주 신속하게 실현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것은 그대의 능력에 부치는 힘든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그대에게 이 같은 열망이 존재하는 한 결코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수련에 정진하십시오. 그대는 처음 시작할 때 오로지 어둠밖에 발견하지 못하는데, 이것이 말하자면 무지(無知)의 구름입니다. 그대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고, 오직 그대의 의지를 통해서 하느님께로 뻗어나가려는 순수하고 단호한 의향만을 느낄 것입니다. 그대는 뜻하는 바를 행하되, 이 어둠과 이 구름은 그대와 하느님 사이를 가로막아 사리에 맞는 밝은 오성의 빛으로 그분을 바라보지도, 그분 사랑의 감미로움을 그대의 감성으로 체험하지도 못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필요할 때까지 이 어둠 속에서 참고 기다리면서 사랑하는 그분을 끊임없이 애타게 바라십시오. 왜냐하면 그대가 이승에서 그분을 감지하거나 뵙게 된다면 그 일은 언제고 바로 이 구름 속에서, 바로 이 어둠 속에서 이루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대가 내가 일러주는 대로 열심히 수련한다면 하느님의 자비로 이 일을 반드시 이루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4. 

그대가 이 일을 그르치거나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내가 여기에 관해 알고 있는 바를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할까 합니다.

이 수련은 완성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치 않습니다. 실상 이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짧은 수련입니다. 어떤 천문학자가 말하는바 최소한의 시간 구분 단위인 일 아톰(원자에서 전자가 양자 주위를 한 바퀴 도는 극히 짧은 시간 ― 역주)보다 더 길지도, 더 짧지도 않습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짧아서 쪼갤 수가 없거니와 우리의 감지능력을 거의 벗어나는 시간입니다. 그럼에도 이 시간은 “그대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은 그대가 어떻게 사용했는지 장차 추궁 받게 되리라.”는 말이 나올 만큼 충분히 긴 시간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그대가 여기에 대해 셈을 치러야 하는 것은 지극 당연한 일입니다. 이 시간은 그대 영혼의 주요 부분인 의지가 단 한 번 발동하는 순간보다 더 짧지도 더 길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어진 시간 속에 존재하는 아톰의 횟수만큼이나 수없이 그대의 의지가 발동하고 소망하는 일이 능히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대의 의지가 발동하고 소망하는 일이 능히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대의 영혼이 은총으로 아담이 타락하기 이전에 지녔던 영혼의 상태를 회복할 수 있었다면 그대는 온갖 충동을 통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무엇 하나 빗나가는 일 없이, 온갖 소망의 군주요 추구할 수 있는 모든 것의 최고봉이신 하느님께 도달할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분은 우리 수준에 맞게 내려오셔서 당신의 신성을 우리의 이해 능력에 맞추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모상에 따라 창조된 만큼, 우리네 영혼은 일정 정도 그분과 친화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네 영혼의 의지와 열망을 충족시키는 완전하고 절대적인 충분조건은 오직 그분 자신뿐이십니다. 이 역할은 그 밖의 어떤 것도 불가능합니다. 영혼이 은총으로 제 모습을 되찾을 때, 그 영혼은 사랑으로 온전히 그분을 이해할 수 있는 완전하고 충분한 상태가 됩니다. 그분은 우리 인간의 지성으로 이해될 수 있는 분이 아니십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천사의 지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나 그들이나 모두가 피조물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네 지성일 뿐 우리 사랑이 그렇다는 말은 아닙니다.

모든 이성적 존재, 곧 천사와 인간은 두 가지 기능을 지닌 바, 아는 능력과 사랑하는 능력이 그것입니다. 첫 번째 기능인 지성으로는 이를 만드신 하느님을 언제까지나 알지 못하지만 두 번째 기능인 사랑으로는 그분을 온전히, 그것도 개개인이 저마다 따로따로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러기에 사랑하는 영혼은 홀로 자신의 사랑을 통해서 존재하는 뭇 영혼들을 채우기에 충분하고도 한참 남을 그분을 직접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는 영원히 지속될 사랑의 기적이니, 하느님은 늘 이런 방식으로 역사하고 계시고 앞으로도 그러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대가 하느님의 은총 덕분에 그런 능력을 지녔다면 이 점을 명심하십시오. 이 같은 사랑의 기적을 스스로 안다는 것은 끝없는 축복이요, 그 반대는 끝없는 고통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새롭게 바뀌어서 자신의 의지에서 나오는 온갖 충동을 제어하게 된다면, 그 사람은 이승에서부터 영원한 아름다움을 어느 정도 감지하게 될 뿐 아니라 천상의 지복 속에서는 그 아름다움을 온전히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설령 내가 그대에게 강요한다고 하더라도 결코 놀라서는 안 됩니다. 만일 인간이 죄를 범하지 않았다면 지금 바로 그런 상태에 있을 것입니다. 이 점에 관해서는 뒤에 다시 듣게 될 것입니다. 인간은 바로 이 목적 때문에 창조되었으며 그 밖의 모든 것들은 이 목적 달성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 덕분에 인간은 원래 모습을 되찾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갈수록 죄에 깊이 빠지고, 그러면서 하느님으로부터 자꾸만 멀어지는 것도 이 사실을 유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하면 인간이 다른 무엇이 아닌 바로 이 일에 끊임없이 유의하고 노력을 쏟을 때 점점 죄에서 해방되고 하느님께 더욱 더 가까워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자신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꼼꼼히 살펴야 합니다. 시간보다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눈 깜박하는 사이에 하늘나라를 얻기도 하고 잃기도 합니다. 하느님은 시간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계시며, 그분이 시간의 두 순간을 나란히 병행시켜 배열하지 않고 언제나 한 줄로 이어 놓으시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면 하느님은 창조의 전 과정을 변경하셨을 지도 모릅니다. 시간이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인간이 시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자연에 질서를 부여하신 하느님은 시간을 인간의 본성에 맞추어 놓으셨습니다. 실제로 인간의 본능적인 충동은 한 번에 하나씩 일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심판 날 하느님 면전에서 자신이 받은 시간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셈을 치를 때 변명할 여지가 없습니다. 인간은 “주께서는 동시에 두 개의 시간을 주시는데, 저는 동일한 순간에 한 가지 충동밖에 일지 않으니 어떻게 합니까?” 라는 말은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당신은 불안하여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어째야 합니까? 당신이 하시는 말이 사실일진대 제가 어떻게 시간을 순간순간 모두 셈치를 수 있단 말입니까? 여기 있는 저는 스물네 살로서, 이제껏 시간을 무심코 넘겼을 뿐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바로잡겠지만 당신 손수 글을 쓰셔서 잘 아시겠지만, 자연 속에서나 은총 속에서나 시간의 순간순간은 지나가 버려 이미 잘못 써버린 과거를 변상 할 수 있는 길은 없질 않습니까? 저에게 남은 것은 앞으로 활용할 시간밖에 없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저는 제 지독한 약점과 우둔함 때문에 백 가지 충동 가운데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것은 겨우 하나뿐이라는 사실도 익히 알고 있습니다. 내 처지는 그야말로 비참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사랑을 보셔서 지금 당장 저를 도와주십시오!”

그대가 “예수님의 사랑을 보셔서”라고 한 말은 정말 잘한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대는 예수님의 사랑 덕분에 도움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본질은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그대가 예수를 사랑하면, 그분이 가지신 모든 것이 그대 것이 됩니다. 그분은 하느님이시기에 시간을 만들고 배분하십니다. 그분은 사람이시기에 진정으로 시간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그분은  하느님이자 동시에 사람이시기에 시간의 낭비를 누구보다 가장 정확하게 짚어내는 판관이십니다. 그러니 사랑과 믿음으로 그분과 합일하십시오. 그렇게 합일할 때 그대는 비단 그분뿐 아니라 그대처럼 사랑으로 그분과 합일하는 모든 이들, 그러니까 지나가는 순간들 모두를 더없이 소중하게 여기셨던 은총이 가득하신 성모 마리아와도, 결코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없는 천상의 모든 천사들과도, 하늘과 땅에서 예수님의 은총 덕분에 사랑으로 매순간을 온전히 책임지는 모든 성인들과도 결합하게 됩니다.

이는 실로 엄청난 위안입니다. 그러니 이를 온전히 이해하고 거기에서 유익을 얻으십시오. 하지만 이 점을 유의하십시오. 나는 사람이 은총의 도움을 받고서도 매순간마다 자기 힘에 닿는 모든 일을 전력투구하지 않으면서 예수님이나 그분의 의로우신 어머니, 천사들이나 성인들과 결속을 이룰 수 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같은 결속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힘을 쏟아야 합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리 작을지라도 그는, 모든 성인들이 저마다 해냈듯이, 나름대로 자기 몫을 해내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은총이 그대의 영혼 안에서 이루어 내고 있는 이 경이로운 역사(役事)에 세심한 주의를 쏟으십시오. 그것은 늘 갑작스런 충동으로 나타나고, 불꽃이 솟듯이 예고 없이 하느님께로 솟구쳐 오릅니다. 이 같은 은총의 역사를 소망하는 영혼에게서는 이런 충동들이 짤막한 시간에 놀랍도록 무수히 솟구치는 법입니다! 그리고 그런 번뜩임 속에서 영혼은 창조된 외부세계를 까마득히 잊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순식간에 되살아나면서 하거나 하지 못한 일들에 대한 생각과 기억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기 마련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네 타락한 본성 탓입니다. 그런가 하면 화염 역시 그에 못지않게 금방 다시 솟구칩니다.

그러니까 바로 이것이 간단하나마 은총이 역사하는 방식입니다. 이것은 결코 겉치레가 아니며, 그릇된 생각도 아니고, 환상적인 견해도 아닙니다. 이런 겉치레나 상상은 겸손하고 헌신적인 사랑의 산물이 아니라 교만의 결실이요 상상력의 고안물입니다. 만일 은총의 역사를 진실로 순수하게 이해하자면 이 같은 온갖 오만한 상상들은 가차 없이 없애버려야 합니다!

이상의 모든 이야기를 듣거나 읽으면서 그것이 기본적으로 정신의 활동이라고 생각하고 그 모든 것을 이 같은 노선에 입각해서 움직여 나가려고 하는 사람은 지극히 잘못된 궤도를 달리고 있는 셈입니다. 그는 영성적 체험도, 육체적 체험도 아닌 어떤 것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는 위험스럽게 오도되고 있고 심각한 위기에 몰려 있는 사람입니다. 그 정도는 너무나도 심각해서 지극히 선하신 하느님께서 자비의 기적으로 개입하여 그를 멈추어 세우시고 진실로 아는 이들의 충고를 따르도록 해주시지 않는 한 그는 미쳐버리거나 아니면 여타의 끔찍스런 영적 재해와 지독한 기만에 시달리고 말 것입니다. 그는 실상 말 그대로 거의 무심코 몸과 영혼을 영원히 잃어버리고 말 우려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사랑을 생각해서 아무쪼록 이런 체험을 머리로 체득하려고 덤비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내가 진정으로 말하거니와 이런 체험은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내가 이것을 ‘어둠’이나 ‘구름’이라 부른다고 해서 집에서 불이 나갔을 때 느끼는 어둠이나 하늘에 떠 있는 구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종류의 어둠이나 구름은 그대가 한겨울 깊은 밤에 밝고 선명한 빛을 떠올릴 수 있듯이 한여름 대낮에 마음의 눈으로 그려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것은 절대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말하는 어둠은 ‘앎의 결여’를 뜻합니다. 이는 그대가 모르거나 잊어버린 것을 두고, 내면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까닭에 ‘캄캄하다.’고 말하기도 하는 것이나 매한가지입니다. 같은 이유에서 그것을 ‘구름’이라 부르는 것도 물론 하늘의 구름이 아닌 ‘무지’의 구름이니, 곧 그대와 하느님 사이에 가로 놓인 무지의 구름을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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