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사 홈 | 거룩한독서 & 성경 | 가톨릭자료실 | 미사웹진 | 사제관 | 갤러리&미디어 | 음악카페 | 사무실|신자광고 | 미사웹메일

회원등록 비번분실

  사제관  
전체보기
1분묵상
광야에서 외치는이의소리
신부님 말씀
신앙상담



personal consult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작성자 세례자 요한
작성일 2003-12-16 (화) 09:57
ㆍ조회: 2806      
IP:
사제생활의 첫 본당 대흥동
 

사제생활의 첫 본당 대흥동

사제 생활의 첫 단추! 대흥동. 26년의 사제 생활을 돌아보면 그래도 제일 생각나는 것이 첫 보좌 생활인 것 같다. 그 당시 주일학교 교사를 하던 청년들을 긴 시간이 지나 또 만나게 되면 새롭게 그때의 추억들이 떠오른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구나!” “그땐 그런 일이 있었지”

기쁨도 많았고, 슬픔도 많았던 대흥동 본당에서의 생활. 그 중에서 한 가지를 뽑아 보라면 한 성당 두 본당의 상황을 떠오른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은 신자 분들이 모르는 사제나, 자신의 본당 사제가 아닌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인사하기를 어려워한다는 것이다. 꼭 인사를 받아야 되서가 아니라 적어서 사제와 신자가 만나면 가벼운 인사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도 자신의 본당 신부가 아니면 인사를 하지 않고, 길을 가다가 마주쳐도 그냥 그렇게 지나쳐 버린다. 신자 편에서는 “잘 모르는데 인사하면 신부님이 당황하시지 않을까?”하고 사제를 배려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가만히 있으면 신자인줄 모르겠지!” 하는 생각이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제가 보기에 그의 손에 묵주 반지도 끼여 있고, 이마에는 세례 때 받은 인호가 보이는 것 같은데도 말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사제가 얼마나 신자들을 괴롭혔으면 신자들이 아는 체를 안 할까? 교회가 신자들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었기에 신자들이 그렇게 변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내가 대흥동에서 첫 보좌 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 마침 선화동 성당이 분가되어 대흥동 성당에서 장소를 달리하여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한 본당이었다가 졸지에 세 들어 살게 된 신설본당(선화동)의 형제․자매들의 입장이야 오죽하겠는가마는 나 또한 함께 살고 있는 선화동 형제․자매들에게 조금은 서운한 감정이 있었다.

신설본당인 선화동은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런 대책도 없이 분리되었던 것 같다. 그런 서운함이 신자들 마음 안에는 언제나 자리 잡고 있었고, 감정이 고조된 자매님 몇 분이 금요일에 미사를 오시는 주교님의 수단 자락을 잡고 항의하는 사태까지 발생하게 되었다. 신자들이 주교님에게까지 그랬다면야 할 말이 없지만 그런 계기를 통해서 본당이 분리될 때 신자들이 겪어야 하는 어려움을 생각해 주어야 될 것이다.

당시 분리된 선화동 본당은 평일 미사는 가정집에서 봉헌하고 주일미사는 성당 유치원에서 봉헌했다. 그리고 주일학교는 같이 운영하다가 결국 갈라지게 되었다.  선화동 본당 주일학교가 교리를 끝내야만 대흥동이 교리를 할 수 있었는데 시간을 안 맞춰 주면 다툼이 생길 수밖에 없었고, 어른들이 젊은 주일학교 교사들을 혼내면 내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또 서로의 행사가 다르니 조금씩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사용 장소가 좁아서, 운영방식이 달라서 생기는 문제인 것을 어떻게 해결한단 말인가? 서로가 조금씩 양보하고, 이해하고, 한 공동체라는 것을 생각했다면 별 문제가 없었을 텐데...,

내가 선화동 형제․자매들에게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성당에 오고 갈 때 인사 한마디 없이 차가운 등을 보일 때는 얼마나 서운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그분들에게 얼마나 서운하게 대하였기에 그분들이 그렇게 차가운 등을 보였을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나는 그분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그리고 본당이 분리되고 내가 대흥동 보좌로 부임했기에 선화동 신자들과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었다. 미사를 함께 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같은 공간 안에 있는 것뿐이니 굳이 나를 아는 체 할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제와 신자가 모르는 타인처럼 그렇게 지나쳐 가야만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불행인가? 더 나아가 사제와 신자가 그렇다면 신자와 신자 간에는 얼마나 큰 무관심의 강이 흐를까?

어느 날, 개신교 형제를 한명 만났는데 한때는 교회에 염증을 느끼고 성당에 다녔던 때도 있었다고 했다. 한 달 동안 성당에 다녔는데 너무도 편안했다고 한다. 그런데 한 달 동안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교회로 갔다고...,

요즘 우리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운동 중의 하나가 바로 “소공동체 운동”이다. 그런데 소공동체 운동을 예전부터 해 왔던 것 같다. “소가 닭 쳐다보듯이 형제․자매를 대하는 운동”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면 모르는 체 하는 운동” 얼마나 불행인가? 진정으로 내가 알지 못하는 형제와는 이야기 할 수 없는 것인가? 우리본당의 신부님이 아니면 마주쳐도 그냥 얼굴을 돌릴 수밖에 없는 것인가? 사제가 신자들을 소 닭 쳐다보듯이 바라보고, 신자들이 사제들을, 같은 신자들을 소 닭 쳐다보듯이 쳐다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본당이 분리될 때도 분리되는 곳 신자들의 마음도 헤아리고, 그곳의 사람들은 분리하는 사람의 마음도 헤아리고,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으로 다가갈 때 “모르는 체 하고 지나가는 일”은 없어지지 않을까?



211.179.143.156 이 헬레나: 신부님들께서 저희들이 인사를 드리지않는 것을 이렇게 섭섭하게 생각하시는 줄 몰랐습니다
저도 신부님들을 뵙게되면 쑥쓰럽기도 하고 신부님께 오히려 누가될까 조심하는 마음에
모르는척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리고 신부님들께 주변의식도 하지않고 도가 지나치게
행동하는 신자분들도 있어 신부님까지 욕되게 하기에 신부님들을 도와드린다는 생각으로
모르는척하는 때도 있습니다
마음으로는 신부님들께 사랑 [12/18-08:59]
211.179.143.156 이 헬레나: 하는마음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었는데 많이 섭섭하셨
나봅니다
모른척하는 신자들 대부분도 신부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안에 기쁘게 사제생활을 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저희 신자들은 신부님들을 많이 사랑한답니다
[12/18-09:06]
211.42.85.34 samuell: 출장을 다니다 보면 사제 수도자들과 마주칠때가 가끔있었는데 [05/27-18:28]
211.42.85.34 samuell: 인사를 건네야지 하고 다가서면 쑥스러워 그냥 지나치고 맙니다
신부님 너무 섭섭하셨지요? 이제라도 아는체 해야되겠습니다
특히 수녀님과 마주칠때면 더욱 망서려 지네요. 어떻게 생각하실까??
이런 우문은 이제 멀리 떨쳐버리야 겠습니다.
차시간을 기다릴땐 신부님이 보이면은 주저하지 말아야지
용기가 필요한 것 같네요 숫기가 없어서 말입니다
신부님 사랑합니다
[05/27-18:34]
 
이름아이콘 작은꽃
2016-04-09 07:40
미국에 와 산지 30년된 오마리아가 인사드립니다
반가운 지명이 나와 글을 읽다보니 옛날생각이 많이 납니다
대전 대흥동성당에 다닐때가 고2때쯤이네요 지금은 주교좌성당이 되었다는 얘긴 들었습니다 그땐 어려서 이런 저런일들은 생각이 나질 않네요. 하지만 신부님이나 수녀님을 뵙고 할땐 늘 존경하는 마음과 경외심으로 가득했던 기억은 나이든 지금도 변함이 없어요
신부님은 고마움자체이십니다 사제와 수도자들을 위해 늘 기도하는 마리아가 조심스레 글을 남깁니다 .사랑합니다
   
 
본인이 작성한 글만 추출하려면 검색옵션으로 본인의 아이디를 검색하십시오.
올바른 인터넷 문화를 위해 함께 노력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