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사 홈 | 거룩한독서 & 성경 | 가톨릭자료실 | 미사웹진 | 사제관 | 갤러리&미디어 | 음악카페 | 사무실|신자광고 | 미사웹메일

회원등록 비번분실

  사제관  
전체보기
1분묵상
광야에서 외치는이의소리
신부님 말씀
신앙상담



personal consult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작성자 세례자요한
작성일 2002-07-05 (금) 13:45
ㆍ조회: 1831      
IP: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신학생 때의 일이다. 시골 신학생이 서울에서 생활하면서 어려웠던 것 중의 하나가 버스를 타는 것이었다. 시골은 버스가 오면 무조건 타면 되지만 도시는 노선이 각각 다르기에 번호를 확인하고 타야 하기에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어느 날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갈 일이 생겼다. 그런데 여럿이 가면 따라가면 되는데 혼자 가려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야! 버스타고 청량리 성바오로 병원 가려면 몇 번 타야 되냐?”

“어휴. 촌놈!”

친구들은 버스 번호를 알려 주었다. 그리고 들어올 때 맛 있은 것 좀 사오라고 했다. 나는 손바닥에 번호를 적어서 버스를 타려고 혜화동 로타리로 내려왔다. 이제 수없이 지나가는 버스들 중에서 선택만 해서 타면 된다고 생각하니 신학교에서는 가끔 아플 필요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대의 버스를 보낸 뒤에 드디어 그 번호의 버스가 왔다. 버스에 올라 타보니 빈자리가 많이 있었다. 서울에서 앉아서 버스 타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비록 병원에 가고 있지만 외출이 아닌가?

그런데 한참을 가다보니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했다. 순간 눈에 들어오는 것이 탑골 공원이었다.

“이쪽이 아닌 것 같은데...”

나는 당황해서 버스 기사님께 물었다.

“이 버스 청량리 가는 버스 맞나요?”

그랬더니 버스 기사님은 젊은 나를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더니 내려서 길을 건너서 이 번호의 버스를 타라고 했다. 번호는 같았지만 행선지가 다른 버스였다. 버스를 탈적에 길을 건너서 탔어야 했는데 그 번호의 버스가 오기에 올라탔더니 결국 엉뚱한 방향으로 가게 된 것이다.

“......”

그런데 병원 가는 버스야 잘못 탔으면 내려서 다시 갈아타면 되지만 삶이라는 버스를 잘못 탔다면 어떻게 될까? 만일 내가 그 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계속 타고 갔다면 내가 가고자 하는 정 반대방향에서 내렸을 것이다. 각각의 버스의 종착역이 다른 것처럼 우리가 인생의 어떤 버스에 올라탔느냐에 의해서 우리의 지상에서의 끝이요 영원한 생명의 시작은 달라질 것이다. 복된 곳을 향하는 버스를 탄 사람은 복된 곳으로, 그리고 고통이 기다리고 있는 버스를 탄 사람은 끝없는 고통이 기다리는 곳으로... 

그렇다면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수많은 차들이 각자의 길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도 자신들의 길을 향해서 달려간다. 중간 중간 이정표를 확인하면서 신호등의 도움을 받으면서 목적지로 향한다. 그런데 왜 가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달려가는 사람이 있다. 남들이 가니까 따라가는 사람들도 있다.  마치 버스가 왔으니 타고보자는 사람처럼..., 하지만 우리는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사람인가를 알아야 한다.


  새벽 미사 끝나고 신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으면 운동복 차림으로 성물 방에 매일미사나 성물을 사러 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새벽미사 끝나고 집에 들어가기 전에 산책을 하다보면 아침 운동 나온 신자들을 만날 수 있다. 그분들이 보기에 새벽미사에 참례하는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분들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야! 신앙이 중요하냐? 건강이 중요하지. 그리고 성당은 주일미사나 안 빠지면 되지 뭐하러 그렇게 열심히 다녀!”

아마 그런 분들의 자녀들이 고등학생이라면 자녀가 미사에 참례하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그분들의 생각이 스스로는 옳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분들의 생각이 옳은 것은 아니다. 물론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다면 그분들의 생각도 옳다.

  삶의 끝은 죽음이 아니다. 삶의 끝이 죽음이라면 “이 한 몸 편하게 살고 죽으면 그만이다”라고 생각해도 되지만 우리는 결코 삶의 끝을 죽음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 우리의 삶의 시작도 하느님이요, 삶의 끝도 하느님이다. 우리는 하느님께로부터 나와 이 세상을 순례하다가 다시 하느님께로 가고 있는 순례자들이다. 언제나 주님을 그리워하며 주님께로 향하는 순례자이다. 그래서 우리 순례자들은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매 순간 순간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모습을 생각하면서 혹시 내가 다른 길로 들어서지 않았나, 주님 보시기에 좋은 모습 잃지는 않았나 생각하면서 주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순례자들이다. 그런데 순례자인 우리가 우리의 삶의 방향을 잃고서 방황하면서 세상과 나 자신에게 휩쓸리고 있는 것이다.


  문득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한 니느웨 사람들이 생각난다.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는 잿더미가 된다.”

그들은 요나의 작은 외침을 듣고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하느님께로 돌아왔다. 자신들의 삶의 정체성을 찾은 것이다. 세상에 어울려 살아가고 있지만 나는 다름아닌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임을,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께로 가야만 하는 사람임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누구의 설교를 필요로 하는 것인가? 누구의 말을 들어야만이 다시 하느님께로 돌아와 순례의 길에 임할 것인가?


221.160.225.134 김동환: 순례자~이런생각을 함 해봤네요, 맘씨이 넉넉한 우리형님 704번을 잘못보고 104번탄 영~엉뚱한 곳으로 가다 돌아오면서 갈린형제 생각 문득.... 그럴 수가있겠네.... [07/14-14:56]
 
이름아이콘 작은꽃
2016-04-09 07:57
감사합니다.
   
 
본인이 작성한 글만 추출하려면 검색옵션으로 본인의 아이디를 검색하십시오.
올바른 인터넷 문화를 위해 함께 노력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