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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작성자 세례자요한
작성일 2002-04-15 (월) 13:45
ㆍ조회: 1856      
IP:
귀신 이야기

귀신 이야기

내 스스로 어려움을 만들어 놓고
그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니...



한 젊은이가 해병대에 입대했다. 어려운 훈련과정을 마치고 부대에 배치된 첫날, 부대장은 그에게 물었다.
"자네는 왜 해병대에 입대했나?"
"예! 저는 어릴 적부터 귀신이 제일 무서웠습니다. 그런데 귀신 잡는 해병대라는 말을 듣고 귀신을 잡기 위해서 해병대에 자원입대 하였습니다."
......
우스운 이야기 같지만 어릴 적에는 나도 화장실도 혼자 못 갈 정도로 겁이 많았다. 할머니께로부터 듣는 귀신 이야기는 재미는 있었지만 밤만 되며 이야기에서 들은 귀신들이 어두운 곳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할머니! 나 오줌마려워!"
"할머니! 나 오줌마려워 죽겠어!"
나는 주무시고 계신 할머니를 흔들어 깨웠다. 주무시다가 밖에 나가기 싫은 할머니는 이런 핑계를 대시곤 했다.
"종수야! 닭장에다가 세 번 절하면 귀신 안 나타나니 얼른 갔다 오너라!"
"할머니! 그래도 무서워! 같이 가."
할머니는 내 성화에 못 이겨서 주무시다가 말고도 나를 데리고 화장실에 가셨다. 그런데 어느 날 친척 아저씨 한 분이 냇가를 건너시다가 귀신을 만난 것이다. 아저씨는 담배 한 갑을 입에 불 붙여서 물고서 집에 들어 오셨다. 정신을 차린 아저씨는 처녀 귀신에게 홀려서 그렇게 되었다고 설명하셨다.
가끔은 귀신이 보고 싶은 때가 있다. 신앙생활하면서 신자들이 어려움에 빠질 때가 바로 "하느님의 부재"하심을 느낄 때이다. 자신의 상황은 어려운데 아무리 기도해도 들어 주시지도 않고, 느낄 수도 없는 어둔 밤에 빠졌을 때 신앙인들은 어려워한다. 그럴 때 사람들은 귀신이라도 봤으면 한다. 왜냐하면 귀신을 봤다면 천사들도 내 눈에는 안 보일 뿐이지 분명 실존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귀신이 보고 싶은 때가 있었다. 신학생 시절, 방학이라는 것이 그리 유쾌한 것만은 아니었다. 즐겁고 기다려지는 방학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만나면서 많은 실망과 상처를 받았다. '내가 과연 사제가 되어야 하는가? 하느님께서 계시다면 사람들은 왜 저렇게 밖에 살 수 없는 것일까? 왜 하느님께서는 옮고 그름을 판단해 주시지 않는 것일까?' 이런 저런 고민으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저녁 미사에 참례한 후 집으로 향하다가 문득 귀신이 보고 싶어졌다. 귀신한테라도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많이 있었다. 나는 귀신이 나타난다는 바위 위에 걸터앉았다. '이곳에 나타나는 귀신이 처녀귀신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내가 총각이니 그래도 묻는 말에는 잘 대답해 주겠지'
주변을 살펴보아도 귀신이 당장이라도 나올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물론 긴장이 전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대견스럽기도 했다. 어릴 적에는 그렇게 귀신을 무서워하던 내가 이제는 귀신을 만나려고 귀신을 찾아 나섰다는 것이 말이다. 공수부대에 갔다와서는 겁이 좀 없어졌다. 시간은 어느덧 열두시를 가리켰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저쪽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누르면서 그쪽을 바라보았다. 발자국 소리는 가까이 다가왔다. 발소리의 주인공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쪽에서도 나를 본 것 같았다. 발소리의 주인공은 나를 향해서 다가왔다. 서로가 형체를 알아볼 수 있는 거리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발소리의 주인공은 소리를 질렀다.
"귀~귀~신이다."
그리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달음질하여 도망하는 것이었다. 그 사람도 놀랬겠지만 내가 더 놀랜 것 같다. 갑자기 소리를 지르니. 졸지에 귀신으로 오해를 받게 되었다. 아마 그 사람은 처녀귀신바위에서 총각귀신이 나왔다고 소문을 낼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문득 두려움은 오해에서 발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나를 보고 귀신이라고 생각한 것처럼 나는 귀신이 아니지만 그는 나를 보고 귀신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에 대한 실망이나 하느님께 대한 불신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그렇지 않은데 내가 그들의 잘못된 한 면만을 바라보고 그들을 모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느님께서도 언제나 나와 함께 계시지만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드러나시지 않으니까 답답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결국 내가 스스로 실망감을 만들어 내고, 불신을 창조한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살든 어떻게 살든 그들 안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찾지 못했다고 실망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내가 내 삶으로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 실망해야 한다. 하느님께도 마찬가지이다. 하느님께서 내게 다가오시지 않는다고 실망할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느님께로 올바로 가고 있지 못한 것에 대해서 실망하고 그분께로 더욱 다가서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내 스스로 어려움을 만들어 놓고 그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니...

 
이름아이콘 작은꽃
2016-04-09 07:45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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