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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작성자 세례자요한
작성일 2002-04-15 (월) 13:42
ㆍ조회: 1681      
IP:
내가 바둑을 두지 않는 이유

내가 바둑을 두지 않는 이유


돌아보면 내게가 성소가 있던 것인지,

아니면 운이 좋았던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내게 성소가 있었다고 보고 싶다.


숨막히는 소신학교를 뒤로 하고 대신학교에 올라오니 마치 천국에 온 기분이었다. 마치 새장안의 새가 자유를 얻은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기뻐했다. 소신학교 때는 대신학교의 감나무 동산이 선망의 대상이었다. 소신학생 시절, 몰래 대신학교 감나무 동산으로 감 따먹으러 갔다가 혼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는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술과 담배를 한다고 해서 뭐라 할 사람도 없다. 이제 자유를 얻는 것이다. 자유를.

피정 때였던 것 같다. 그때는 한창 바둑을 배우는 때였는데 피정 강의가 끝나고 휴게실에서 바둑을 두고 있었다. 거만하게 담배를 피우면서 말이다. 그런데 부학장 신부님께서 순찰을 돌다가 우리를 발견하셨다.
"자네들 지금 뭐하고 있는 겐가? 지금이 어떤 기간이지?"
"피-피정기간입니다."
"알긴 잘 아는구만. 그럼 피정 때 바둑을 둬도 되는가? 피정이라는 것은 내적 침묵을 지키면서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바둑을 두고 있으니 그게 말이 되는가? 이름?"
"저 신부님! 한 번만 봐주십시오."
"이름?"
"윤종수,"
부학장 신부님은 우리의 이름을 적었다.
"피정들 열심히 하게. 지금은 오락시간이 아닐세."
자그마한 키의 부학장 신부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셨다.
"야! 재수 엄청 없는 날이다."
"그래도 두던 것은 마저 둬야 하지 않겠냐?"
"이왕 걸린 것 하던 것 마저 하자."
우리는 또 그렇게 바둑을 두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참을 두고 있는데 갑자기 배가 아파 왔다.
"야! 나 화장실 좀 갔다 올게. 아까 니 부학장 신부님한테 먹은 욕이 소화가 안 되나 봐."
"그럼 내가 대신 두고 있을게."
옆에서 훈수 두던 친구가 내 대신 바둑을 두기로 하고 나는 화장실로 향했다. 정말이지 이상했다. 먹은 것도 없는데 갑자기 배가 아파 왔던 것이다. 그런데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나오는데 놀라운 광경이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부학장 신부님께서 또 오셔서 그들의 이름을 적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름을 적은 후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당장 보따리 싸서 나가게. 자네들은 퇴학이야. 자네들 같은 사람은 이 교회에 필요가 없어. 당장 나가!"
바둑을 두던 학생들은 신부님께 매달렸다.
"신부님! 한 번만 더 봐주십시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그러나 그 신부님은 친구들의 간절한 청을 외면하셨다. 결국 바둑을 두던 네 명의 친구는 그 날 부로 신학교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부학장 신부님께서 사라지자 나는 그들 앞에 나아갔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내 대신 바둑을 두던 친구가 입을 열었다.
"종수야! 우린 성소가 없나 봐. 네가 우리 몫까지 열심히 살아 줘. 멋진 신부님 돼서 우리를 이끌어 줬으면 좋겠다. 잘 있어라."
"야! 미안하다. 나도 같이 바둑을 뒀는데 나는 빠지고 너희들만 나가게 되어서. 사실 내가 쫓겨나야 되는 건데."

그 이후로 나는 바둑을 두지 않는다. 지금도 바둑판을 바라보면 그때의 일이 생각난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예수님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면서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놀이에 정신이 팔려서 부학장 신부님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간과해 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내가 쫓겨난 그들보다 잘난 것도 없고, 특별히 내세울 것도 없는데 예수님께서는 왜 나를 그렇게 보호해 주셨을까?' 하는 것이었다.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결코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 하심일까? 우리는 부학장 신부님의 말씀을 하찮은 소리로 가볍게 넘겨 버렸다. 마치 우리를 구속하려는 어른들의 옹졸한 마음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 그 신부님의 말씀이 틀린 것은 없다. 피정 기간에 피정을 하라는 지당하신 말씀은 결국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인 것이다.
그 날 저녁, 영적 독서 시간에 요한 복음의 말씀이 내 눈에 들어 왔다. "너희가 내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 너희는 참으로 나의 제자이다. 그러면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8,31-32)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어느새 나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함께 바둑을 두다가 쫓겨난 친구들의 모습이 생각났다. 사실 나도 쫓겨났어야 했는데 나는 남아 있다는 것이 그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예수님의 뜻이었는지 재수가 좋았는지 모르겠지만 나를 쫓아내지 않으신 예수님께 너무도 감사했다. 그런 마음들이 눈물이 되어 나의 뺨을 타고 흘렀던 것이다.
억압이라고만 생각했던 소신학교의 생활들이 나를 변화시키기 위한 예수님의 말씀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자유만을 추구했다. 그러나 내가 누리던 그 자유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었다.
예수님의 말씀을 내가 받아들이고 실천한다면 나는 진리를 알게 되는 것이며, 내 멋대로 하고자 하는 욕망과 교만과 아집에서 나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교수 신부님들이나 선배나 동료들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들이 하찮게 보인다 할지라도 내가 그것을 실천하게 된다면 나는 더욱 자유로운 사람이 될 것이다.
그 날 이후로 학교에서 되도록이면 규칙을 잘 지키려고 노력했다. 아니 나에게 들려오는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기에 예수님께서 주신 또 한 번의 기회를 다시는 놓치기가 싫었다.

 
이름아이콘 푸른호수
2012-03-29 21:54
회원캐릭터
정말이지 신부님은 5분의 몫을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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