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사 홈 | 거룩한독서 & 성경 | 가톨릭자료실 | 미사웹진 | 사제관 | 갤러리&미디어 | 음악카페 | 사무실|신자광고 | 미사웹메일

회원등록 비번분실

  사제관  
전체보기
1분묵상
광야에서 외치는이의소리
신부님 말씀
신앙상담



personal consult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작성자 세례자요한
작성일 2002-04-04 (목) 08:31
ㆍ조회: 1608      
IP:
화학실험실에서 밤에 술 먹다 쫓겨날 뻔했던 나

       화학실험실에서 밤에 술 먹다 쫓겨날 뻔했던 나.

                변명할 수 없는 상황이 바로 그분 앞에서의 심판이 아닐까?


신학교 생활을 하면서 우리에게는 고교시절의 낭만이라든가 재미 등이 없었다. 기도와 공부가 전부였으니 철부지 고등학생들에게는 좀이 쑤실 수밖에 없었다. 교실서 자습을 할 때에도 침묵을 지켜야 했는데 조금이라도 떠들고 있으면 언제 오셨는지 뒤에서 신부님이 불러낸다.

"너 이리와! 누가 자습시간에 떠들라고 했어. 어!

그 신부님은 곰방대로 사정없이 머리를 내리쳤다.
맞고, 벌서고...그것이 우리의 고교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새파랗게 젊은 신부님이 거만하게 곰방대를 들고 다니며 어린 신학생들을 무자비하게 다루었던 것 같다. 아이들은 떠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을 생각해서 지금도 어린이 미사를 할 기회가 생기면 아이들이 떠드는 것을 나무라지 않고 내가 아이들을 재미있게 미사 안으로 끌어들이려고 한다.
그런데 고3이 되면서 우리는 술과 담배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자유로운 외출은 없었지만 아픈 학생들에게는 병원외출이 허락되었다. 그런데 병원에 갔다오면서 우리는 소주, 담배, 라면 등을 사 가지고 와서 신부님들 몰래 한밤중의 축제를 벌리곤 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주동자는 나였다. 그런데 운명적인 날이 다가왔다. 그 날은 내가 몸이 아파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날이었다. 한 친구가 병원에 갔다 오면서 축제 준비를 해온 것이다.

"종수야! 일어나! 술 한잔 먹자."
"야! 오늘 나 너무 몸이 아파. 너희끼리 먹어라."
"너 없으면 무슨 재미로 먹냐. 한잔 먹으면 아픈 것도 나을 꺼야."
할 수 없이 나는 친구들이 모인 곳으로 갔다. 우리의 아지트는 화학실이었다. 그곳에는 버너대신 알코올램프가 있었고, 냄비대신 비이커가 있었다. 10명이 옹기종기 모여서 어둠 속에서 소주와 라면을 먹었다. 라면에 소주한잔을 먹으니까 아픈 것이 좀 가시는 것 같기도 했다.
"야 천천히 좀 먹어라. 목구멍에 철판 깔았냐? 어떻게 뜨거운 것을 그리 잘 먹냐!"
나는 뜨거운 것을 잘 못 먹는 편이다. 내가 몇 젓가락 뜨지도 않았을 때, 라면 건더기는 사라지고 국물만 남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고 있는 순간에도 라면 건더기는 사라지고 있었다.
"종수야! 뜨거운 것을 못 먹는 네가 잘못이지, 뜨거운 것을 잘먹는 우리의 잘못은 아니란다. 이런 말도 있잖냐. 속전속결. 국물은 식으면 너 많이 먹어라."
"하하하"

그런데 한참 재미있게 먹고 마시고 있는데 밖에서 뚜벅뚜벅 발자국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우리는 숨을 죽였다. 그러나 실험실의 문이 확 열리더니 불이 환하게 들어왔다.

"이놈들!"

아뿔싸. 교장 신부님이 들어오신 것이었다.
앞에는 라면과 소주가 펼쳐져 있었고, 천정에는 담배 연기가 자욱했으니 우리는 어떻게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마치 최후의 심판의 한 장면 같았다. 내 죄가 백일하에 드러나고 지옥으로 쫓겨나야만 하는 그런 운명이 바로 나에게 닥친 것이다.

"당장 보따리 싸! 너희 같은 놈들은 신부 될 자격이 없는 놈들이야. "
교장신부님은 노발대발하셨다. 우리는 교장 신부님한테 엄청 얻어 터졌다. 그리고 우리는 짐을 싸러 방으로 돌아갔다.

"절망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변명할 수 없는 완벽한 증거물, 그리고 재판관의 판결.
그 날 밤 우리들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제 내일이면 집에 가야 하는데 어떻게 집으로 들어갈 것인가? 무슨 면목으로 집에 갈 것인가? 부모님은 어떻게 나를 맞이하실까? 내가 신부가 되기를 아침저녁으로 기도하시는 할머니는 얼마나 슬퍼하실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어두운 창가에서 절망에 빠진 한 친구가 이렇게 노래를 불렀다.

"소주 한잔, 라면 한 그릇, 담배 한 개피에 나의 성소를 바꿨다오.
은전 서른 닢에 예수님을 팔아 넘긴 사람을 나는 어리석다고 탓을 했는데
나는 한 닢도 안 되는 가치에 나의 성소를 바꿔 버렸다오.
이 밤이 지나면 나는 정든 못자리에서 떠나가게 되지만
남아 있는 형제들이여! 그대 성소 소중히 생각하시오.
그 무엇과도 바꾸지 마시오.
바꾸고 싶은 것이 생각나거든
그대 위해 기도하고 있는 부모님의 손을 생각해 보시오.
그리고 나를 위해 기도해 주오
내가 살아가면서 더 이상 중요한 것들을 하찮은 것들과 바꾸지 않도록...


친구의 노래를 들으면서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내 눈에서도 어느덧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우리 문제로 회의가 열렸다. 10명이 한꺼번에 걸렸는데 모두 내보낼 수가 없다는 의견이 나왔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60명 입학해서 지금 20여명 남았는데 그중 10명을 내보내면 10여명밖에 안 남기 때문이었다. 결국 교장신부님은 주동자 4명만 쫓아내는 선에서 문제를 해결하셨다. 외출하면서 술 사온 친구와 친구들 부르러 다닌 친구들 4명만이 쫓겨났다. 그날 따라 몸이 아파서 주동을 하지 못한 나는 학교에 남아 있고 말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쫓겨나야 하는데 죄 없는 다른 친구들이 쫓겨났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정의로운 생각을 앞서는 것이 안도감이었다. 내가 쫓겨나지 않았다는 안도감.

우리 흑장미 클럽은 그 날 이후로 흙을 파면서 학교의 환경미화를 전담하는 학생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적어도 학교에서 쫓겨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교장신부님께서는 먼저 우리에게 이발소 옆의 연못을 깊게 파라고 하셨다. 연못이 얕으니 고기들이 살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그 연못 바닥이 얕았던 이유는 커다란 바위가 있어서 더 이상 깊이 팔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 얕은 연못을 깊은 연못으로 바꾸어 놓았다. 돌을 쪼아내어 깊은 연못으로 바꿔 놓은 것이다. 그리고 학교의 푸른 숲을 조성하기 위해 죽은 나무를 뽑아내고, 다시 나무 심었다. 심지어 남들이 소풍가는 날도 그렇게 일을 했다. 남들은 다 소풍을 가는데 우리는 소풍도 가지 못하고 학교에서 열심히 일을 했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안 쫓겨나고 신학교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본인이 작성한 글만 추출하려면 검색옵션으로 본인의 아이디를 검색하십시오.
올바른 인터넷 문화를 위해 함께 노력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