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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성령 안에서의 삶
ㆍ작성자: 성령강림 대축일 ㆍ작성일: 2011/06/10 (금)  
 

성령 안에서의 삶

오늘은 성령강림대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골방에 숨어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을 파견하시면서 “성령을 받아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오늘 1독서의 사도행전에서는 모든 신도들에게 성령을 받고 그들의 마음은 성령으로 가득 차서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여러 가지 외국어로 말을 하였습니다. 오늘 2독서의 코린토 1서 말씀에서는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고 고백할 수 없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각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총의 선물을 주셨는데 그것은 공동 이익을 위한 것임을 분명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을 통하여 성령강림대축일에 ①성령을 받았다 함은 무엇인가?  ② 여러 가지 성령의 은사들은 왜 주어지는가? 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1. 성령을 받았다 함은 무엇을 말하는가?

먼저 성령을 받았다 함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골방에 숨어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성령을 받아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파견과 더불어 그 사명을 완수할 힘으로 성령을 부여하십니다.



오늘 코린토 1서의 말씀처럼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하고 고백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고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데 어떻게 주님이심을 고백하겠습니까? 기도하지 않는데, 어떻게 증거 할 수 있겠습니까? 성령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는데 어떻게 세상에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제자들의 경우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골방에 숨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성령을 받은 다음에 어떻게 변했습니까?

그들은 골방의 문을 박차고 나가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했습니다. 비록 그 결과로 수많은 고통과 모욕이 그들에게 주어지고 마침내는 그들에게 죽음이 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했습니다. 성령께서 이끌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았다는 증거는 내가 내 신앙을 “행동으로 증거 하느냐! 하지 못하느냐!”로 드러납니다. 내가 비록 성령의 은사를 받아서 이상한 언어로 기도하고 병자를 치유한다 할지라도, 내가 내 행동으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복음을 전할 힘으로 성령을 약속하시는 것처럼 내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증언한다면 그것이 바로 성령을 받은 증거라는 것입니다.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를 위해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령을 받은 사람은 누구나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그 행동으로 자신의 행동으로 그 믿음을 증거 합니다. 성령을 받았다고 말하면서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는 성령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성령을 거스르는 사람입니다.1)



또한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받아라.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로 남아 있을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힘은 죄의 용서를 위해서 주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죄의 용서라는 것은 삶의 완전한 정화, 새로운 출발, 그리고 과거가 말끔히 정산되어 더 이상 어떤 보상도 필요하지 않는 새로운 기점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위대한 쇄신 활동은 성령께서 어느 곳에 머무르시게 되든지 간에(인간의 마음속이든지, 우리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이든지, 그릇된 이념 가운데든지, 여러 가지 형태의 폭력행위 가운데든지) 죄에 대한 승리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2)



2. 여러 가지 성령의 은사들은 왜 주어지는가?

성령의 은사에는 다 아시는 바와 같이 방언의 은사, 해석의 은사, 치유의 은사, 예언의 은사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오늘 1독서에서 성령을 받은 신도들은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여러 가지 외국어로 말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이 말하는 것이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자기네 지방 말로 들리므로 모두 어리둥절해졌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비스러운 언어현상 자체가 아닙니다. 바로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하여 말이 통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성령께서는 각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총의 선물을 주셨는데 그것은 공동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교회의 신비적 전통에서는, 특별한 성령의 은총을 추구하려는 노력에 대해 그것이 자기기만(自己欺瞞)의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강력한 경고를 하고 있다. 은사들은 기도의 선물도, 개인 신심의 선물도 아닙니다. 오늘 2독서에서 말씀하고 계신 것처럼 성령의 은사들은 모두 공동체를 위한 선물이요, 봉사직능입니다.



그리고 이 봉사직능은 개인의 성화를 지향하는 내향적인 것이기 보다는 오히려 공동체의 선익을 지향하는 외향적인 것입니다. 이들 외향적 직능은 사도, 예언자, 교사, 설교가, 복음 전파자, 원조자, 관리자, 의연품 분배자 및 자선사업에 종사하는 사람 등의 역할을 다 포함합니다. 그러기에 은사를 유별난 영신적 은총으로 판단하거나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이상한 언어의 은사는 엄밀히 말해서 공동체의 건설을 직접 지향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은사 중에서 가장 낮은 단계의 것입니다. 초대교회 안에서 세례 후 안수를 통하여 성령께서 내려오실 때 가장 드러나는 표시는 “이상한 언어”였습니다. 그것을 주신 이유는 믿지 않는 이들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확신이 없는 이들에게 “확신”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믿고 있고, 확신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성령의 은사는 “공동체 안에서 사랑의 길로 이끌어 주심”을 통해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또한 필요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우리는 모두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같은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러기에 각자 받은 은사들은 자신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서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그렇게 하라고 각자에게 알맞은 은사들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3. 성령안에서의 삶

요즈음 교회 안팎에 예수님 신앙과는 아주 다른 잘못된 신앙에 현혹되고, 전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하느님의 교회가 제 역할을 못할수록 이 같은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역사의 교훈입니다.

① 언제 세상이 끝마칠 것이라고 떠들고 다니는 사람(예수님께서는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르니 깨어 준비하라고 말씀하셨다. 마태 24,36; 44,25; 마르 13,33 등)

② 입만 떼면 하느님, 성령, 성모를 들먹이고, 행동은 가족관계, 이웃관계를 해치는 사람, 가정을 외면하는 사람.

③ 개인체험(마음의 상처, 보상심리 등이 하느님 이름으로 투사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성당과 인연이 없으면 무당의 잡귀잡신의 이름으로 투사된다)을 덮어놓고 하느님 계시라고 믿고 퍼뜨리는 사람.

④ 병 치유에만 집착하며 성령, 성모님을 들먹이는 사람.

⑤ 우리 사회의 ‘세상의 죄’를 외면하고(불의, 부정, 인권탄압 등) 개인의 깊은 상처, 죄책감(예: 입시생 부모, 낙태를 경험한 여자, 부모와 화해하지 못하고 부모를 먼저 보낸 자 등)을 건드려 100일 미사예물, 헌금 등을 요구하는 사람

⑥ 복음정신인 ‘가난의 삶’을 싫어하고, 하느님, 성령, 성모의 이름으로 돈을 모아 거창한 사업(대개 하느님 계시로 이 사업을 한다고 함)을 하려는 사람

⑦ 예수님의 삶, 죽음, 부활엔 별 관심이 없고, 성령, 성모에 대한 개인주의적 신심만 강조하는 사람

⑧ 자유에로 부르시는 주님보다 연옥, 지옥, 형벌을 지나치게 강조하며 불안, 공포의 신앙을 조장하는 사람

⑨ 성령, 성모님을 들먹이며, 권력자, 부자와 유착된 행동을 하는 사람

⑩ 예수님의 십자가는 세상 모든 이들의 구원을 위한 희생제사인데, 개인의 고통을 덮어놓고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이라고 우기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가짜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사도들이 성령을 받아서 방언을 한다든지 예언활동을 했다는 것이 아니라, 골방에서 뛰어나가 담대하게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증언했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입으로 고백하고 행동으로 증거 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이것을 증거 했던 것처럼, 신앙인인 나도 세상의 많은 유혹 앞에서 그것들을 극복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과 함께 하는 삶인 것이고, 이것이 바로 성령의 은사인 것입니다.



“오소서, 성령님, 믿는 이들 마음을 충만케 하시어, 그들 안에 사랑의 불을 놓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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