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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자료실
작성자 성체조배
작성일 2003-04-07 16:55
ㆍ추천: 0  ㆍ조회: 949      
마르꼬 15, 21-37 과 함께 하는 성시간 강론
 

마르꼬 15, 21-37


삶과 죽음, 이것은 우리들이 살아가며 실제로 체험하는 것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삶은 인간이 자유로운 결단에 의해 자기 스스로를 개발하고 형성해 나가면서 성숙한 사람으로 창조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한편 죽음은 이러한 삶을 마감합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암흑이고 도둑이며 허무라 할 수 있습니다.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인 죽음은 삶을 송두리째 앗아갑니다. 우리가 세상과 맺고 있는 모든 관계를 끊어 버리고 우리의 가족, 친구를 빼앗아 갑니다. 죽음은 한 축제의 폐막이나 한 만남의 마지막 인사처럼 슬프고도 고통스런 일입니다. 그래서 죽음은 삶의 끝장, 상실, 단절, 파괴처럼 두려운 그 무엇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런데 이러한 죽음이 과연 모든 것의 끝일까요? 아닐 것입니다. 죽음은 새로운 삶의 시작으로, 영원한 삶의 시작으로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을 우리가 믿기 때문입니다.

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느님께 대한 순종과 인류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처절히 돌아가심을 보았습니다. 무죄하신 우리의 주님께서는 죄인의 죽음을 철저히 겪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 앞에서 고요하고 의연한 자세를 보이며 명예로운 죽음을 겪었던 철인 소크라테스와는 달리 공포와 동요 속에서 치욕적인 죽음을 겪으셨습니다. 군중들로부터 온갖 모욕과 배척을 당하시고 사랑하는 제자들로부터 배반을 당하셨습니다. 그분은 “괴로와 죽을 지경의 불안”(마태 26,38)을 느끼셨고, “고통과 싸우는 동안 핏방울과 같은 땀이 뚝뚝 흘러 땅에 떨어졌고”(루가 22,44), 하느님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당하셨습니다.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마르 15,34)라고 십자가 위에서 부르짖으셨습니다. 그분은 인간의 삶과 다른 삶을 사신게 아니라 죄악으로 가득찬, 바로 인간의 삶을 살다 가신 것입니다. 그분이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이 땅에 인간의 모습으로 내려오셨듯이 그분의 삶 또한 철저히 인간의 삶을 사셨기에 비참한 죽음을 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자기 삶에 대한 완전한 성실의 결과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께 “죽기까지” 순종하셨고, 인간들을 위해 전적인 봉사의 삶을 사셨습니다. 하느님 말씀에 대한 전적인 투신, 자기 삶에 대한 철저한 성실의 결과가 바로 십자가 죽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명과 삶에 대한 온전한 투신, 성실의 결과가 피할 수 없는 십자가 죽음이었다는 것은 너무나 역설적입니다. 한편으로 그것은 참으로 무기력하고 허약해 보입니다. 당신의 능력이 소모되어 보잘 것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내어주는 그러한 희생은 결코 무기력하거나 초라한 것이 아닙니다. 나를 위한, 인류를 위한 당신의 희생 속에서 바로 생명이 싹트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밀알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듯이 진정 죽어야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생명의 결정체인 부활의 싹인 것입니다. 이렇듯 예수님의 고통과 죽음 속에서 서서히 부활의 희망이 여명처럼 싹트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범을 본받아 매일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형제 여러분, 사제의 길이 때론 몹시 고달프고 힘겹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성실히 한다고 해도 늘 부족한 학업, 좁은 울타리 안에서 맺는 인간 관계, 선배들 눈치보는 부자유스러움이 그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고민과 갈등을 이해하려하고 내것으로 받아드리려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또한 내일에 대한 두려움과 하느님의 부르심을 위협하는 것들과 맞서 굳건히 서려고 애를 씁니다. 내적으로 성장하기 위하여 견디기 어려운 상황까지도 맞서 싸울 용기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헤쳐 나갈 수 있는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주신 우리 각자의 고귀한 생명 때문입니다. 그 생명은 바로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바쳐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자신을 바쳐 남을 살린다는 것, 이 얼마나 아름답고 고귀한 선물입니까!


우리 역시 예수님을 위해 자신을 내어놓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아니라면 아마 우리는 이웃을 위해 자기를 바치며 살아간다는 것은 의미 없는 그 무엇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기꺼이 그렇게 합니다. 때론 나의 고집과 이기심 때문에, 게으름과 욕심 때문에 힘겨울 때도 있습니다. 두렵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이겨낼  힘은 결국 예수님께서 주십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분은 아버지께 대한 온전한 순종과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우리를 위해, 그것도 너무나 비참하고 비열하고 보잘 것 없는 우리를 위해 처절히 죽으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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