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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자료실
작성자 성체공경, 역사
작성일 2002-07-22 18:01
ㆍ추천: 0  ㆍ조회: 785      
성체공경의 역사
 

(1)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신 식사

예수 그리스도는 공생활동안 죄인들과 어울려 식사함으로써 이미 도래한 하느님 구원의 실상을 표징적으로 드러냈으며,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과 함께 만찬을 나눔으로써 죄인들을 위한 헌신적 죽음의 자세를 드러냈고, 부활한 뒤에 제자들에게 나타나 함께 식사함으로써 실현된 구원공동체를 체험토록 하였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죄인들과의 식사, 제자들과의 최후만찬 그리고 부활발현의 식사 등은 예수의 제자들로 하여금 이를 ‘주의 식사’로서 부르도록 하고 인류의 구원을 가능케한 사건으로서 기념토록 하는 자극이 되었다.1)


(2) 초대 교회의 주의 식사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에 초대교회 신자들은 아직 성전에서 유다교적 경신행위에 참여할 때에도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어 먹고 본래의 식사와 연결시켜서 ‘주의 식사’를 기념하였다. 주의 식사인 성체성사가 교회의 중심성사가 되고 일체의 경신행위의 중심이 된 것은 성체성사 안에서의 그리스도의 사실현존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그들은 성체성사 안에서 바로 이 그리스도와 일치하게 된다고 믿음으로써, 매일 완성된 구원에 이르기 위하여 선사된 구원에 대한 감사의 식사로서의 성체성사를 거행하여 온 것이다.2)


(3) 성체배령(聖體拜領)에서 성체흠숭(聖體欽崇)으로

초대교회는 4세기 초엽까지만 해도 신도들이 성찬식에 참여하고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영하지 않는 것은 상상도 못했었다. 그러나 4세기에 박해가 끝나고 무수한 사람들이 입교하면서부터 영성체를 드물게 하는 습속이 생겨났다. 그래서 390년경 동방교회의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우리가 제단에 올라도 헛 일이다. 영성체를 아무도 않는다”고 탄식할 지경이었다(In Ephes. hom. III, 4). 결국 9세기부터 서방교회 신자들은 부활절에 한 번 영성체하는 것으로 자족하였으며 이 관습은 제 4차 라떼란 공의회(1215)에서 법규가 되었다. 영성체를 자주 않는 습속이 무지와 무관심의 탓도 있지만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대한 지나친 공경에서도 기인한 것이다. 아리우스 이단에 대한 반발이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력히 고양하였으며, 그 결과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몸과 피를 감히 모시려는 사람은 줄어만 들었다.3)


(4) 별실의 마련

초세기에도 성체는 미사 밖에서도 그것을 영하거나 병자에게 모셔갈 때 등 언제나 깊은 존경과 공경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성체를 항상 경배할 수 있도록 적당한 장소에 모셔놓을 생각을 하지 못하였다. 미사 때 남은 영성체는 미사드리는 성역(sanctua-

rium) 옆에 설치된 별실(παστοφοριον, sacrarium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움)에 모셔두고 주로 부제들이 관리하였으며, 신자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채로 모셔 있었다. 그 당시의 신자들은 기도를 할 때 주의 현존을 상징하는 제대를 쳐다보고 있었다.4)


(5) 제대 위에 모심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남겨둔 성체에 대하여 새로운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따라서 미사 때 병자들을 위하여 남겨놓은 성체가 들어 있는 함(capsa)을 제의실에 그대로 놔두는 것을 허락할 수 없었다. 어떤 지역에서는 -벌써 9세기부터- 그 함을 제대 위에 올려놓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래서 그 함을 신자들의 눈에 보이도록 모시는 데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5)


(6) 감실의 등장

12세기말 이전부터 끌뤼니(Cluny)수도원에서는 성체를 함에 모셔두고 그 곳에 성체등을 켜는 관습이 있었다. 모든 주일에 그리스도의 성체를 갈아넣었는데, 미사가 시작될 때 부제는 제대 위쪽에 매달아 놓은 ‘비둘기’형의 함에서 성체가 들어있는 도금된 성합(pyxis)을  꺼내어 옮겼다가 미사가 끝나면 다시 갖다 모셨다. 이 새로운 관습은 성체가 모셔져 있는 함을 자물쇠로 잠가놓을 수 있어서, 거기에 들어있는 성체를 안전하게 보존할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성체가 예배의 대상이 되면서부터는 그것에 대한 독성을 방지하는데 마음을 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서는 벽감실을 많이 사용하였는데, 로마의 성 클레멘스 성당(12세기)과 스폴레또(Spoleto)의 성당(15세기)에 설치된 벽감실은 현재까지도 남아있다. 독일에서는 성체의 형상을 직접 바라보고 싶은 마음에서 제대 옆 성가대석에다 첨탑 형태의 장중한 감실을 설치하게 되었는데, 성체는 유리로 된 성체권(性體圈; lunula, 성광에 끼워넣는 달모양의 성체대)에 넣어 모셨으며 철창을 통하여 볼 수 있게 하였다.6) 

(7) 신영성체

12세기부터는 온갖 형태로 성체를 현시하고 흠숭하는 예식들이 생겨났다. 그 무렵에 ‘신영성체(神領聖體)’라는 관습도 출현했다. 이 관습은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모시겠다는 간절한 소망과 뜻을 나타냄으로써, 주님이 영혼에 오실 만반의 준비를 갖춤으로써 실제의 영성체에서 오는 온갖 ‘영적’ 열매를 다 받아 누릴 수 있다고 믿었고 그러길 바랬던 것이다.7)


(8) 제대 중앙에 모심

16세기 중엽부터 즉 트리덴트 공의회 이후에는 남겨둔 성체를 제대 중앙에 모시는 것이 관습화되었다. 1614년 발행된 예식서가 그렇게 실천하도록 장려하였기 때문에 그것은 급속도로 보급되었다. 작은 규모의 성당을 제외하고는 주로 제대가 성당의 뒷부분이나 옆부분에 설치된 경당에 있었다. 바로크 시대의 성체신심은 중앙 제대의 가운데에 감실을 설치하여 그 당시의 특징이었던 장시간의 조배를 용이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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