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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그리스도교 학파의 기원
작성일 2003-08-28 01:40
ㆍ추천: 0  ㆍ조회: 1994      
알렉산드리아의 필로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그리스도교 학파의 기원

고대의 학파를 구분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비그리스도교 영역에서와 같이 그리스도교에서 운영하는 교육 기관으로서의 학파와, 공통되는 특정교의를 주장하는 학파를 근본적으로 구분해야 한다. 세 단계로 이루어진 헬레니즘․로마 교육은 예닐곱 살에 가정교사에게서 또는 교사가 가르치는 초등학교에서 읽기, 쓰기, 계산을 배우는 기본 교육부터 시작한다. 그 다음 문법학자가 일곱 “학예‘의 첫번째 과목인 뭄법을 가르친다. 이 과정에서는 고대의 가장 중요한 문학 작품들, 특히 호메로스와 베르길리우스의 작품으로 언어의 기초를 가르친다. 나머지 여섯 부문은 수사학자에게서 배운다. 고대의 모든 교양인은 위와 같은 기초 교육 과정을 마쳤다. 많은 교부가 그리스도를 믿는 어린이들이 학교에서 불필요하고 해로운 이교인의 신화를 배운다고 한탄하였다. 그렇지만 고대에는 그리스도교 특유의 일반 교양을 가르치는 학교가 없었다. 이와 같은 문학 교육은 뛰어난 언어 구사를 필요로 하는 모든 직업, 수사학자, 변호사, 정치가의 기초 과정이었다. 마지막으로 사고와 세상의 이해, 곧 철학을 위한 ”고등학교“가 있었다. 이 경우는 학교의 개념과 구별된다. 사람들은 철학자의 강의를 들을 수 있었는데 학교에 다니지 않고도 철학적 교의를 접할 수 있었다.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철학학교는 기원전 387년부터 기원후 529년까지 세계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유지된 아테네에 있는 플라톤의 아카데미였다. 대 바실리우스, 나지안즈의 그레고리우스와 같은 뛰어난 교부들도 이곳에서 공부하였다.

3세기에 그리스도교 영역에서 세례지원자들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에 관한 기초교육을 시키기 위해서 주교가 관할하는 학교가 발전하였다. 오리게네스는 217년부터 알렉산드리아에서 이런 종류 가운데 첫번째이자 유명한 교육기관을 운영하였다. 이러한 제도적 학교 이전에 또는 같은 시기에, 예를 들어 그리스도교에서 독자적으로 활동한 유스티누스와 같은 선생과 철학자가 있었다. 이들은 세속의 철학학교 의미에서 한편으로는 개종시키려고, 다른 한편으로는 신앙을 더 깊게 이해시키고 세상과 삶의 의미와 실천에 대하여 깊이 깨닫게 하려고 비그리스도교 학생들과 그리스도교 학생들을 모았다. 그리스도교와 같은 합리적 종교는 고대의 사람에게는 “철학”이었으며, 세상의 의미와 생활방식에 관한 체계였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문화의 중심지에서 일반적으로 주교의 위탁 없이 설립된 그리스도교의 “철학학교”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교양 있는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곳에 왔으며, 거대한 도서관이 그들의 연구를 뒷받침하였다. 180년경 판테누스라는 시칠리아 사람처럼, 같은 시대에 산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와 그 뒤에 오리게네스도 알렉산드리아에서 학생들을 모았다. 오리게네스는 230년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와 사이가 나빠진 뒤, 팔레스티나의 체사레아로 가서 그곳 주교의 인가를 받고 새로운 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는 4세기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약 260년부터 시작된 “안티오키아 학파”의 첫 국면은 제도적 학교가 아니라 안티오키아의 루치아누스에게서 유래하는 신학이었다. 이 학파의 신학은 이미 3세기 초에 에데사에서 생겨난 학파에 영향을 주었다. 안티오키아 학파는 타르수스의 디오도루스에 이르러 학설체계가 잡혔으며 그와 그의 뛰어난 제자들의 활동에 힘입어 4세기에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안티오키아 학파”는 성서해석 방법 및 4세기부터 시작된 삼위일체론과 그리스도론에 관한 교의논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안티오키아 학파는 성서해석에서 역사적 의미와 문자적 의미를 중시하였다. 이와 달리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성서의 알레고리적․도덕적․신비적 의미에 몰두하였으며, 따라서 성서의 깊고 감추어진 의미를 찾고자 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밀교의 비밀서가 아니라, 교회에서 전승되고 인정된 작품들 안에서 신비를 찾는 “참된 인식”인 그리스도교에 대한 이 학파의 평가와 관계가 있다. 교의의 관점에서 안티오키아 학파는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구분하려는 경향이 강한 반면,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하느님의 세 위격과 그리스도 안에서 두 본성의 일치를 더 강조하였다. 두 학파의 이러한 대략적이고 전형적인 특성은 확실히 근본적인 경향만을 나타내기 때문에 경솔히 도식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 곧, “두 학파” 각각의 신학 내용은 개별적으로 주의깊게 검토되고 평가되어야 한다.



6.1. 알렉산드리아의 필로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성서해석 방법은 이미 그리스도교 이전에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다인 필로가 기초를 놓았다. 보이는 세상은 단지 이데아의 실제 세상의 모상이라는 플라톤과 스토아 학파의 세계관에 따라, 필로는 성서의 말씀 뒤에 숨어 있는 더 깊은 영적 의미를 발견하였다. 그는 영적 의미에 호메로스나 다른 시인들의 작품과 신화에 대해 학교에서 가르치는 세속적 해석 방법을 사용하였다. 이 작품들도 계몽된 철학의 빛 안에서 더 이상 문자적으로 이해될 수 없었기에 알레고리적 설명은 더 깊은 철학적․도덕적 의미를 한층 돋보이게 하였다. 필로는 유다인의 해석 방법과 철학에다 헬레니즘 철학과 교육을 접목하였다. 이러한 접목 과정은 알렉산드리아가 헬레니즘 세계의 중심지이며 로마제국 가운데 가장 큰 유다인 디아스포라 공동체의 고향이자 세계적 도시였기 때문에 쉽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이미 기원전 2세기에 히브리어로 씌어진 구약성서가 그리스어로 번역되었다.

필로는 대략 60권의 작품, 주로 모세 오경에 관한 주석서와 철학 작품을 저술하였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오리게네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암브로시우스, 히에로니무스는 필로의 작품들을 원본으로 가지고 있었으며 이를 활용하였다. 그의 작품들은 그밖의 많은 교부에게 영향을 주었다. 에우세비우스와 히에로니무스는 그리스도교를 위한 필로의 가치를 매우 높이 평가하여 그를 그리스도인처럼 생각하였다. 유다교와 그리스도교가 둘 다 셈족에서 유래하였다는 사실보다는 헬레니즘 문화를 공통적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필로는 유다교의 신학을 그리스도교에 넘겨주는 데 뛰어난 본보기가 되었다. “유다계 그리스도교”의 연구는 최근에 이르러서야 활발해졌다.



6.2.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클레멘스는 140-150년경 아테네 또는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으며, 당시 떠돌이 철학자들의 방식에 따라 그리스, 남부 이탈리아. 시리아, 팔레스티나, 알렉산드리아에서 여러 선생에게 철학교육을 받았다. 그는 180-190년경 알렉산드리아에 머무르는 동안 판테누스의 강의를 들었으며 자신도 철학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는 주교의 위탁으로 판테누스가 설립한 세례지원자를 위한 학교였으며, 탄테누스 다음으로 클레멘스가, 그 뒤에 오리게네스가 학교를 운영하였다는 견해가 오랫동안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 학교는, 예를 들어 유스티누스가 로마에 세운 경우처럼 철학적 방법으로 신앙을 고찰하는 그리스도교의 독립적인 철학학교이고, 세례지원자들을 교육하지는 않았으며, 교회의 특별한 위탁을 받지도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클레멘스는 성인이 되어서 그리스도교와 관계를 맺었으며 그가 사제품을 받았는지는 불확실하다. 202-203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시대에 일어난 박해 초기에 클레멘스는 알렉산드리아를 떠나야 했는데, 팔레스티나에 있는 친구이며 나중에 예루살렘의 주교가 된 알렉산더에게 갔다. 알렉산더가 오리게네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알 수 있듯이 클레멘스는 215-216년 이전에 팔레스티나에서 사망하였다.

클레멘스는 알렉산드리의 부유하고 매우 교양 있는 지도층에게 진취적이고 고등종교인 그리스도교를 선포하는 일에 헌신하였으며, 이를 실천하고 정식화하는 데 플라톤과 스토아 학파의 철학을 활용하였다. 그는 교양 있는 이교인에게는 삶의 의미를 찾도록 하였으며, 그리스도인에게는 경건한 신앙생활의 실천은 물론 신앙을 이성적으로 숙고하게 하였다. 세 편의 주요 작품인 「이교인들에 대한 권고」, 「교육자」, 「양탄자」는 이들을 대상으로 하였다. 이 저서들이 언제 씌었는지는 불확실하다. 에우세비우스의 「연대기」에 따르면 클레멘스는 이 작품들을 203년에 저술했다고 하나, 그의 전성기는 이미 193년에 시작되었다. 이 연도는 콤모두스 황제의 사망까지의 역사 개요를 싣고 있는 「양탄자」의 제1권과 일치한다.



6.2.1. 「이교인들에 대한 권고」

「이교인들에 대한 권고」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잘 알려진 철학적 권고라는 문학 유형에 속한다. 이 작품은 참된 로고스에 주의를 돌리도록 이교인들을 설득하며 작품의 의도와 구성은 호교론가들의 작품과 일치한다. 곧, 클레멘스는 한편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긍정적이고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 따라서 제1장에서는 인간을 위한 로고스의 의미에 대한 최초의 외침으로 그리스도, 구원계획, 구원에  대한 폭넓은 상을 제시한다. 그밖에 참된 하느님에 대해 이미 언급한 그리스 철학자와 시인들을 대상으로 오래됨과 진리에 관한 논증을 전개한다. 다른 한편으로 2-7장에서는 이교인의 종교와 제의를 비판한다. 마지막으로 8-12장에서는 인간들 가운데 인간으로 나타나고 모든 영혼의 지도자인 로고스와 함께 인간의 신격화를 위하여, 플라톤의 방식대로 로고스에 완전히 귀의할 것을 호소한다.

클레멘스의 교육과 논증적 기량은 교양 있는 독자들을 염두에 둔 문체에서 드러난다. 그의 문체는 세련되며 수사학적으로 잘 다듬어지고 때때로 시적으로 표현된다. 아우구스티누스도 처음에 거칠게 씌어진 성서의 문체에 매우 반감을 가졌듯이 고대세계에서 수사학과 문학적 정교함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를 지녔는지를 생각해 보면, 클레멘스의 문체가 그리스도교를 선포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6.2.2. 「교육자」

클레멘스는 「교육자」의 서두에서 말을 분류하고 말의 역할을 정의한다. “인간에게는 세 가지 요소, 곧 신념, 행위, 정서가 있다. 권고는 하느님을 경외하도록 이끄는 안내자로 인간의 신념을 유지시킨다. …조언은 모든 행위를 이끌며, 위로는 정서를 순화한다”. 세 권으로 이루어진 「교육자」의 주제는 인간 행위, 곧 윤리와 도덕이다. 노예인 교육자가 일상생활에서 주인의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가고, 집에서도 보충교사로서 올바른 태도를 가르치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자」는 이미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삼으며 그리스도교의 올바른 생활방식은 두번째 단계로 완전한 학교에서 이들에게 전해져야 한다. 제1권에서는 교육자와 교육의 원칙(교육의 목표, 인간에 대한 교육자의 사랑, 교육의 보편성, 상과 벌)울 소개한다. 제2권과 3권에서는 도덕적으로 설교하는 문체로 개별적인 규정(식사, 마시기, 살기, 잠, 교제, 성생활, 육체를 돌봄, 소유 등)을 다룬다.



6.2.3. 「양탄자」

피에르 비토리가 클레멘스의 작품들을 최초로 간행한 이후, 「권고」, 「교육자」, 「양탄자」는 사람들을 신앙으로 이끌기 위한 3부작이라는 견해가 늘 주장되었다. 「권고」는 아직 신앙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을 신앙으로 이끌고, 「교육자」는 그리스도교적 올바른 삶을 가르치는 초등교사이고, 「양탄자」에서는 디다스칼로스, 곧 완전한 교사가 말한다. 그러나 「양탄자」의 내용과 구성은 이와 다르다. 오히려 작품 제목 στρωμάτεις(=잡동사니)는 매우 다양한 단락을 모은 회고록 또는 잡문의 문학 유형을 암시한다. 이와같이 「양탄자」는 참된 인식에 대한 체계적 학설 대신에 다양하고 혼합적인 호교적․윤리적․실천적 주제를 다룬다. 참된 영지주의자의 삶에 대한 묘사는 대체로 이 영역에 한정된다.

제1권, 제2권과 제6권의 일부 및 제7권의 끝부분은 교회 안팎의 호교론적 주제를 다룬다. 이교인의 언어, 철학, 문화는 본디 더 오래된 구약성서를 베끼면서 그리스도교를 준비하였다. 철학에 관한 지식은, 한편으로 철학에서 신앙에 관한 씨앗을 캐내고, 다른 한편으로 무엇을 거부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데 유익하다. 클레멘스는 영지주의자 발렌티누스와 바실리데스를 거슬러 참된 영지주의자의 덕 및 신앙과 지식의 올바른 관계를 밝힌다. 제7권의 끝부분에서는 교회에서 유서들이 발생한 이유를 설명하고 그들의 오류를 서술한다.

제3권에서는 전반적으로 윤리문제를 다룬다. 특히 결혼을 하지 않거나 난잡한 행동을 하는 극단적인 예를 들면서 결혼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내린다. 그밖에 대부분은 윤리문제와 관련하여 영지주의자를 다룬다. 참된 영지주의자의 근본적인 덕은 삶의 모든 시련, 고통, 병, 순교에서도 그를 이끄는 의로움과 사랑이다. 금욕, 덕을 향한 삶, 무감동에 관한 이상은 남녀 사이에 차이가 없다. 이러한 이상을 위하여 남자와 여자는 똑같이 부름을 받았으며 능력이 주어졌다. 참된 영지주의자는 진리를 인식하기 위하여 선포에 관한 표상과 알레고리를 통하여 신앙의 인식에 이른다. 그는 죄외 정욕에 대해 투쟁하며, 신앙과 도덕적 삶을 통하여 차츰 완전함으로 올라간다. 그는 인식에서 완전함에 이르게 되고, 이 완전함은 일상생활에서 아가페, 무감동, 기도, 순교, 곧 하느님을 닮음에서 실증된다. 참된 영지주의자에 관한 클레멘스의 이론과 주석 방법은 많은 점에서 알렉산드리아의 필로의 영향을 받았다. 필로는 이러한 이상을 상세히 다루지 않지만 비슷하게 제시했다.

「양탄자」의 차례가 우연히 또는 임의적으로 이와같이 배열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메하는 「양탄자」Ⅰ 15,2와 Ⅵ 103,1의 기록에 따라 ακολουθία physique, 곧 진리를 찾는 자연적이고 적절한 배열을 식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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