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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통신앙 답변서
작성일 2003-08-28 01:34
ㆍ추천: 0  ㆍ조회: 1928      
리용의 이레네우스, 에피데익시스,로마의 히폴리투스
 

정통신앙 답변서

5.3.1. 리용의 이레네우스

이레네우스의 생애는 그의 작품들과 에우세비우스가 이레네우스의 작품들에서 인용한 몇몇 구절에만 나온다. 그는 소아시아 출신으로 젊었을 때 스미르나의 폴리카르푸스의 가르침을 들었으며, 리용 공동체의 많은 신자와 마찬가지로 상업적인 일로 갈리아에 갔다. 리용 공동체는 177년경 로마의 주교 엘레우테루스에게 몬타누스파와 교회의 공동체성을 지킬 것을 조언하기 위해, 리용의 고백자들이 쓴 편지와 함께 장로인 이레네우스를 로마로 보냈다. 그가 로마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포티누스 주교가 순교하자, 리용 공동체는 이레네우스를 주교로 선출하였다. 로마의 주교 빅토르가 재임하는 동안에 일어난 부활절 논쟁에 관하여 이레네우스가 두번째 화해의 편지를 쓴 사실은 최근에 밝혀졌다. 이레네우스는 포리카르푸스 주교와 로마의 주교 아니체투스가 부활절 날짜에 관해 서로 견해가 달랐음에도 화해하고 헤어진 경우를 떠올리면서, 14일파를 파문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교회 공동체성을 지키도록 변론하였다. 이레네우스는 200년경에 사망하였으며, 히에로니무스는 그가 순교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에우세비우스는 이레네우스의 모든 작품을 알고 있었지만 몇몇 단편만 전한다. 이레네우스의 작품 가운데 두 작품, 일반적으로 「이단 논박」으로 불리는 그의 주저(主著) 「이렇게 잘못 불리는 인식에 대한 논증과 논박」과 「에피데익시스」로 인용되는 「사도적 선포의 논증」만이 남아 있다.



5.3.1.1. 「이단 논박」

다섯 권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논문 「이렇게 잘못 불리는 인식에 대한 논증과 논박」은 180년경 그리스어로 저술되었으나, 3세기 또는 4세기에 씌어진 라틴어 번역, 그리스어, 아르메니아어, 시리아어 단편으로만 남아 있다. 논문의 제목은 작품의 정확한 의도와 구조를 나타낸다. 이 작품은 주로 발렌티누스적 인식과 이레네우스가 앞선 단계로 여긴 이전의 모든 이단을 논박한다. 이레네우스는 발렌티누스가 “인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권리가 없다고 말한다. 그리스도만 신앙에 대한 참되고 완전한 인식을 사도들에게 선포하였고, 사도들은 이 인식을 신약성서에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영지주의자들이 증거로 끌어다대는 비밀의 책들과 극히 개인적으로 도취된 인식은 영지주의자들을 근본적으로 길을 잘못 들게 하여 이단이 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이 “인식”으로 영지주의자들의 학설체계를 상세하게 비판함으로써 그들의 사상의 허위성을 폭로해야 한다. 이레네우스의 관점에서, 이 사상의 대표자들은 질문과 이의에 어떤 합리적인 답변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패배자임을 시인해야 한다. 이렇게 거짓으로 증명된 인식에 대한 필연적인 논박은 참된 인식, 곧 전통적이고 정통신앙적인 그리스도교 신앙의 긍정적인 설명과 논증으로 제시된다.

제1권에서는 이런 이유로 영지주의자 프톨레메우스의 학설체계를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다음 프톨레메우스에게 교회와 일치된 신앙과 진리의 규범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발렌티누스주의의 선구자와 발생을 상세히 설명한다. 제2권의 제1부에서는 창조자-신 위에 있는 플레로마 세계에 관한 발렌티누스의 근본 주제를 논박한다. 이러한 사상으로는 그리스도교의 유일신론뿐만 아니라 하느님 개념 자체도 포기히야 하기 때문이다. 한 분이신 하느님 밖의 사건들은 하느님과 논리적으로 구분된다. 제2부에서는 에온들, 씨앗에 관한 사상, 지혜의 고난을 다룬다. 제3부에서는 발렌티누스파의 숫자에 관한 사변을, 제4부에서는 그들의 종말론을 반박한다. 제5부에서는 마지막으로 영지주의의 비-발렌티누스 주제들을 논한다.

교회의 전통에 남아 있는 성서의 고유한 진리에 관한 긴 서론 다음, 제3권의 제1부에서는 창조주 하느님을 유일하게 존재하는 신으로, 제2부에서는 그리스도가 육화하였다는 사실에서 그가 하느님의 아들이고 피조물의 구원자임을 증명한다. 제3부에서는 서론에 나오는 요점을 되풀이하여 설명하고 교회의 선포에 대한 반박을 경고하면서 끝맺는다. 제4권에서는 가톨릭 신학에 관한 근본적인 설명을 계속한다. 이를 위해 이레네우스는 예수의 말을 바탕으로 구약과 신약의 상관성을 제시하며, 신약의 내용을 예언한 구약의 의미와 예수의 비유를 토대로 구약과 신약의 상관성을 증명한다. 제5권에서는 그리스도교의 신앙론에 관한 그밖의 세 가지 근본적인 주제로 방대한 작품을 끝낸다. 이러한 주제에는 바울로의 편지에 따른 육체의 부활, 장님의 치유와 예수의 십자가에 못박힘과 유혹에서 증명될 수 있는 창조주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와의 동일성, 성서의 종말론 서술을 토대로 창조주와 성부의 동일성에 관한 반복적 증명이 있다.

야쉬케는 이레네우스를 “교의학의 창시자”라고 부르나 이에 관하여 상세히 다루지는 않는다. 「이단 논박」은 앞으로 많은 영역에서 전형적이고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폭넓은 신학체계를 실제적인 동기에서 처음으로 제시한다. 이레네우스 당시 신약성서 경전은 아직도 공식적으로 승인되지 않았고 일반적으로 구속력을 지닌 경전으로 확정되지 않았다. 따라서 그가 개별적으로 성서의 어떤 작품을 경전에 포함시켰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다. 그의 논증을 토대로 하면 경전은 이미 확고한 토대를 마련하였으며 영지주의의 책들이 외경으로 경전에서 빠졌음을 알 수 있다. 사도들은 그리스도에게서 직접 들은 완전한 진리를 신약성서에 빠짐없이 기록하였기 때문에 신약성서는 참된 신앙의 유일한 토대였다. 이 본원적인 진리가 세월이 흘러도 순수하게 보존될 수 있는 것은 로마의 주교들이 사도들을 뒤이어 로마 교회의 지속적인 전통을 보증하기 때문이다. 이레네우스는 이러한 계승에 대한 증거로 베드로 이후의 로마 주교의 목록을 처음으로 기록하였다. 정통신앙적 교회의 척도는 영지주의자들에게는 없는 진리의 규범과 신앙의 규범이었다. 이러한 규범은 성서의 기쁜 소식, 세례신앙, 로마 교회와 일치된 신앙고백을 통해 규정되었다. “모든 교회, 곧 모든 신자는 그들이 어느 교회에 속하든 로마 교회의 고유한 근원 때문에 이 교회와 일치하여야 한다. 전 세계의 신자는 사도들로부터 내려오는 전승을 이 교회 안에 항상 보존한다”. 이로써 이레네우스는 오늘날까지 신학과 교회의 진리를 평가하는 기준, 교회론, 교황 수위권에 관한 신학의 기초를 놓았다.

그의 그리스도론적 개념 가운데 하나인 “하나이고 동일한” 그리스도 안에서 두 본성의 일치에 관한 표현도 수세기에 걸쳐 사용되었다. 이 개념은 아우구스티누스 이후 확고한 위치를 차지한 “하나의 위격인 그리스도”정식으로 대체되었다. 마찬가지로 수세기 동안 인간의 올라감을 위한 하느님의 내려감에 관한 그의 육화신학도 여러 새로운 정식에서 유지되었다. “우리가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자녀가 될 수 있도록 하느님의 사람이 사람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5.3.1.2. 「에피데익시스」

소책자인 「사도적 선포의 논증」은 575-580년경에 씌어진 아르메니아어 번역본에만 남아 있다. 에우세비우스의 「교회사」에 이 작품이 언급되는 데도 번역본은 1904년에 이르러서야 발견되었다. 이 작품에서는 당시의 모든 유설, 특히 마르치온에 대한 이레네오스의 신학을 요약한다. 짧은 인사말과 서언 다음 제1부에서는 구원사에 관한 신학, 곧 하느님과 창조, 인간의 죄와 하느님의 자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실현이 언급된다. 제2부에서는 성서의 계시에서 하느님 아들의 선재와 육화, 예수에 대한 예언의 성취, 메시아에 관한 예언의 성취인 그리스도교와 같은 구원사의 진리를 논증한다. 98-100장에서는 신앙 안의 삶과 이단에 대한 저항을 권고하면서 작품을 끝낸다.

따라서 「에피데익시스」에서는 「이단 논박」과 달리 그리스도교 신앙론의 기초를 요약한 진술이 중요하며, 영지주의 배영을 언급하지만 영지주의를 상세히 반박하지는 않는다. “이레네우스의 논문은 오늘날 기초신학에 해당하는 과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 이 작품은 반대자를 논박하는 의미뿐만 아니라 신앙을 이성적으로 증명하려는 의미에서도 호교적 특성을 지닌다”.



5.3.2. 로마의 히폴리투스

히폴리투스는 서방에서 그리스어로 저술활동을 한 마지막 교부였다. 더욱이 그리스어와 라틴어는 4세기 말까지 함께 쓰였지만, 히폴리투스 이후 서방에서는 라틴어만 사용하였다. 히폴리투스의 작품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그는 교황인 로마의 주교 빅토리우스 재임 때부터 폰티아누스의 재임까지 로마에 살았다. 그는 처음으로 장로였으며, 칼리스투스 주교가 죽은 뒤 자신이 주교라고 주장하였다. 이 보고가 옳다면, 그는 아마도 칼리스투스 주교와 벌인 논쟁 때문에 자기 추종자들이 추대한 대립주교였음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는 노에투스와 사벨리우스를 철저히 반대하여 칼리스투스를 단원론자라고 비난한 반면, 칼리스투스는 그를 이신론자라고 하였다. 그밖에 칼리스투스가 중죄를 범한 신자들에게 회개 예식을 관대하게 베풀어 성사에 그들을 다시 받아들인 반면, 히폴리투스는 엄격한 조건을 달아 그들을 받아들이기를 바랐다.

이러한 분열은 막시미누스 트락스 황제가 즉위한 뒤 로마의 두 주교, 폰티아누스와 히폴리투스를 사르디니아로 추방한 235년까지 계속되었다. 두 명의 주교는 안테루스 주교 재임시 로마의 종파처럼 서로 화해하였으며, 사르디니아의 유배지에서 죽었다. 파비아누스 주교는 두 구의 시신을 로마로 가져와서 같은 날 매장하였으며, 교회는 두 사람을 모두 성인으로 공경한다. 테스티니는 1973년 피우미치노 근방의 이솔라 사크라 바실리카 지하에서 히포리투스의 석관을 발견하였다. 그의 시신은 본디 비아 티부르티나에 매장되었으나 뒤에 이곳으로 이장되었다.

1551년 로마에서 머리가 파괴된 채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의 대리석상이 발견되었다. 그 상의 기둥에 히폴리투스 작품의 일부 목록과 그의 「부활절 규범규정」이 새겨져 있었다. 따라서 이 상은 히폴리투스의 초상으로 간주되어, 남자의 머리를 조각하여 올려놓았다. 그러나 구아르두치는 이 석상이, 예를 들어 람프사코스처럼 그리스의 여자 철학자가 앉아 있는 모습을 본떠 만든 110년경의 복제품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상은 1959년까지 라테란 박물관에 보존되었으나, 그 뒤부터 바티칸 도서관의 입구 회랑에 전시되어 있다.

히폴리투스는 많은 작품을 저술하였다. 그의 작품 가운데, 특히 아가서의 모든 구절을 설명한 주석서 「다니엘 주석」, 234-235년까지의 역사를 서술한 세계사 「연대기」가 남아 있다. 그러나 그가 교회사와 교부론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두 편의 주저 「모든 이단에 대한 논박」과 「사도 전승」 때문이다. 노텡은 히폴리투스의 유명한 작품들을 그뿐만이 아니라 요세푸스 또는 요시푸스라는 알려지지 않은 저자가 일부분 저술하였가고 추론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는 두 명이 저술하였다는 이 논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사도 전승」은 저자가 시간적으로 서로 다른 두 시기에 쓴 작품일 것이다.



5.3.2.1. 「모든 이단에 대한 논박」

히폴리투스는 이레네우스의 방대한 반영지주의 작품인 「이단 논박」과 그밖의 사료들을 이용하여 10권으로 이루어진 「모든 이단에 대한 논박」을 저술하였다. 이 작품은 무엇보다도 영지주의자들이 그리스 철학과 신화론의 표절자이며, 따라서 그들이 그리스도교의 신앙 자산과 아무 관계가 없음을 입증한다. 이때문에 1-4권에서는 소크라테스 이전의 학파로부터 4세기 히폴리투스 당시까지 그리스 철학 전체와 헬레니즘 철학을 폭넓게 구상한 전망을 제시한다. 그는 이로써 5-9권에서 영지주의의 이단들과 이들의 선구자들 및 유사한 견해를 지닌 사람들, 그리스 철학, 헬레니즘 철학을 독자 스스로 비교할 수 있게 하였다. 마지막으로 제10권에서는 전 작품을 간략히 요약한다.

히폴리투스가 요약하는 형식으로 저술한 작품은 매우 독특한 전승사를 지닌다. 제1권은 이미 초기에 Philosophumena라는 제목의 철학 총론서로 따로 전해졌으며, 1701년에 다시 발견되어 오리게네스의 작품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제2권, 3권과 제4권의 앞부분은 소실되었으나, 앞뒤 문맥에 따라 이 부분에서 그리스와 동방의 밀교 제의와 신화론을 다루었음을 대략적으로 추론할 수 있다. 제4-10권은 1842년 발견되어 처음에는 오리게네스의 작품으로 간주되었으나, 1851년부터 히폴리투스의 작품으로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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