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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에 대해 알아 봅시다.
  
작성자 삼위일체론
작성일 2002-08-08 (목) 14:13
ㆍ추천: 0  ㆍ조회: 575      
서론-개방된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사귐과 일치(세인격과 하느님의 수난-삼위일체에서 본)
 

라. 삼위일체에서 본 하느님의 수난


    몰트만은 의문을 제기한다. 하느님은 과연 그 본질상 수난을 당할 수 있는가? 십자가에서 아들의 수난은 역사 안에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하느님의 수난은 자기 모순 속에서 자신을 향한 숙명적 복종인가? 몰트만은 이에 대하여 하느님의 수난이라는 모순을 삼위일체적으로 이해할 때 가능하다고 본다. 이것은 삼위일체의 능동적 자기 개방을 통한 사랑의 수난으로 이해될 수 있다. 삼위일체 되신 하느님의 수난이라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에 기인한 수난을 의미하며, 이 수난은 부활이라는 사건을 통하여 완성된다.1)

    ‘하느님이 과연 수난을 당하실 수 있는가’라는 의문은 여러 차례 제기되어 왔다. 몰트만에 의하면 그것은 십자가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한다.2) 몰트만은 그리스도교 신학이 하느님의 수난보다는 무감정을 고수한 것은 바로 하느님이 수난에 종속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다고 이해한다. 그러면서 하느님은 피조물과는 다른 방법으로 수난을 당하실 것이며, 이유는 수난의 능력이 없이는 사랑의 능력도 없음을 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3)

    몰트만은 성부이신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십자가에서 강하게 결합되어 있다고 한다. 아들은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며,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을 당한다. 죽음의 원인은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무한한 사랑에 근거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무한한 사랑은 무한한 고통이 된다. 이 수난은 서로의 버림받음이며 사랑의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들을 내어줌과 아들의 희생은 성령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성령은 십자가의 고통에서 하느님 안에 일어나는 분리와 결합을 이루어낸다. 즉, “아버지는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이다. 아들은 십자가에 달린 사람이다. 성령은 패배할 수 없는 십자가의 힘이다.”4) 이러한 삼위일체적 관점에서의 하느님의 수난은 세계로의 사랑의 개방을 이루고, 그 사랑 안에 결합되도록 부른다.

    몰트만은 하느님의 수난을 밖을 향한, 안을 향한 삼위일체의 동시적인 일로 본다. 그것은 세계를 향한 하느님의 수난이 삼위일체 안에 있는 사랑의 고난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이 일은 하느님의 자기 낮춤, 자기 소외에서 비롯된다. 왜냐하면 타자의 사랑에 대하여 또한 그의 자유를 위하여 하느님은 함께 고난을 당하며, 삼위일체를 개방하기 때문이다. 그 사랑 안으로 세계의 자유로운 사귐을 가지며, 응답을 원하신다. 이 응답을 완전히 성취하신 분이 성자 그리스도이시다. 아들의 십자가의 고난을 통하여 궁극적 구원을 위한 사랑을 실현하며, 고통 당하는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을 인식한다. 아들의 능동적 자유로 고난을 당하며 아버지의 사랑과 아픔이라는 모순에서 상응한다. 하느님 자신이 그리스도의 수난의 역사 안에 보관되어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죽음은 아무런 근원의 능력도 가지지 못할 것이다.5) 모순 안에 곧 상응이며 상응 안에 곧 모순이 된다. 창조적 세계는 하느님의 자유로운 결단이며, 사랑의 계시에 비롯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몰트만은 이 수난의 근거가 바로 삼위일체 되신 무한한 하느님의 넘치는 사랑에 있음을 말한다.

    몰트만은 이제 사랑의 수난에 이어지는 완성이 종말론적․구원사적․삼위일체적 부활에서 드러난다고 본다. 아버지는 당신의 영광으로 성령을 통하여 아들을 영광스럽게 부활시키셨다. 아버지는 성령을 통하여 아들을 계시하신다. 죽은 자들로부터의 부활은 구원의 성취를 뜻한다. 여기서 예수의 부활은 삼위일체 되신 하느님으로 이해된다. “예수는 장차 올 하느님의 나라로 부활하였다. 예수는 하느님의 내적인 존재로 부활하였다. 그는 성령의 신적인 근원으로 고양되었다. 이것은 삼위일체의 중심이다.”6) 이는 곧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아들임을 명확히 근거 지워 준다. 이로써 아들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주권을 가지고 일치된 사랑의 사귐을 이룬다. 그러므로 몰트만은 십자가에 드러난 사랑의 수난은 부활을 통하여 십자가의 비웃음을 무색하게 하였다고 한다.7)

    몰트만의 신학이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십자가에 달리신 하느님을 보며, 그분의 수난과 부활의 시점에서 현실의 해방을 추구한다. “십자가에 달린 하느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그것을 충분히 의식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가 십자가에 달린 정치적 사건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의 정치적 행위에 대한 출발점과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8) 몰트만은 십자가 사건에서 그리스도인들의 해방을 보고 있다. 이 해방은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죄의 압박으로부터, 권력의 우상으로부터, 하느님의 버림받은 상태로부터, 무신성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가난한 이들은 그리스도의 수난에서 자신의 수난을 보기 때문이며, 따라서 가난한 이들은 그들의 수난에서 그리스도와 동질성을 갖게 된다. 또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수난을 통하여 가난한 노예들은 부유해진다.9) 그것은 무죄한 그리스도가 폭력과 죽음을 넘어서 세계 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주인으로 영광스럽게 높여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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