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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사
작성일 2003-03-25 10:53
ㆍ추천: 0  ㆍ조회: 2998    
병자성사, 종부성사, 노자성체, 임종대세
 

병자성사


1. 병자성사의 정의


        그리스도인이란 어제의 그리스도를 기리며, 오늘의 그리스도를 섬기고 내일의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사는 사람, 신앙과 사랑과 희망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사람이다. 생명의 말씀인 성사, 하느님의 권능으로 병자들에게 주는 이 성사를 과거에는 종부성사라고 불렀다. 이는 죽는 자의 성사라는 그 일면만을 본 것이나, 전체적으로 보아 한 인간의 삶을 완성하는 단계에서 그 영육의 건강을 돌보는 성사이다. 그리스도께서 생전에 병고를 해방시켜 주셨듯이, 이 성사는 죽음을 초월하는 신앙을 굳세게 해주고, 병을 낫게 하거나 적어도 투병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이 성사는 병자들의 고통에 대한 그리스도의 관심을 연장시켜 주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사도들은 병의 치료를 영신적 치유의 표징으로 사용하였다. 이 성사는 병자에게 성령의 은총을 받게 해줌으로써 하나의 인간으로서 구원을 받도록 도와주며, 죽음의 세력과 악마의 유혹을 하느님께 대한 신뢰로써 이겨내도록 도와준다. 인간은 육체를 가지고 있고 또 언젠간 한 번은 죽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은 이 세상을 떠나는 그 죽음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에로 건너가는 나그네이다. 병자성사는 바로 영원한 생명을 향한 희망의 성사이다.


        병자성사는 죽을 위험이 임박한 이들만을 위한 성사가 아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육체가 쇠약해지거나 나이가 많아서 병이 들어 죽을 위험에 처하기 시작하면 이미 이 성사를 받기에 합당한 시기가 되었음이 틀림없다. 병자성사를 받은 병자가 건강을 회복했다가 다시 중병에 걸리게 되면 이 성사를 다시 받을 수 있으며, 같은 병으로 앓다가 병이 더 중해지는 경우에도 이 성사를 다시 받을 수 있다. 중한 수술을 받기 전에 병자성사를 받는 것은 합당한 일이다. 급격히 노쇠해지는 노인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 구원경륜 안에서 본 병자성사의 근거

1) 인생과 질병


        인생을 가장 괴롭혀온 문제들 중에는 늘 질병과 고통이 들어 있다. 질병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무능과 한계, 유한성을 체험한다. 모든 질병은 죽음을 예감하게 한다.  질병은 번뇌로 이끌기도 하고, 자신 안에 안주하는 사람으로 만들기도 하며, 때로는 하느님께 대한 실망과 반항으로까지 이끌 수도 있다. 반면에 질병은 사람을 더욱 성숙하게 할 수도 있고, 그의 삶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을 분별하여 핵심적인 것을 향해 나아가도록 도와줄 수도 있다. 많은 경우에, 질병은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께 돌아오게 한다.

2) 하느님 앞의 병자


        구약성서의 인간은 하느님 앞에서 병을 체험한다. 하느님께 자신의 병에 대해 하소연을 늘어놓고(시편 38 참조), 삶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하느님께 치유를 애원한다(시편 6, 3 참조). 질병은 회개의 길이 되고(시편 38, 5 참조), 하느님의 용서는 치유의 시발이 된다(시편 32, 5 참조). 이스라엘은, 병이 신비하게 죄와 악과 관련되어 있으며, 율법에 따라 하느님께 충실하면 생명을 돌려 받는다는 것을 체험한다. 하느님께서는 “주님, 너희를 치료하는 의사”(출애 15, 26)이시기 때문이다. 예언자는 고통이 타인의 죄를 구속하는 의미도 가질 수 있음을 희미하게 깨닫는다. 마침내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시온을 위해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병을 고쳐 주실 때가 오리라고 예고한다.


3) 의사이신 그리스도


        그리스도께서 병자들을 동정하시고, 여러 가지 병을 고쳐 주셨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고”(루가 7, 16)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명백한 표징이다. 예수께서는 치유의 능력뿐 아니라 죄를 용서하는 권한도 가지셨다. 예수께서는 인간의 영혼과 육신을 모두 고쳐 주기 위해 오셨다. 그분은 병자들에게 필요한 의사이다. 그분은 고통 당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연민으로 스스로를 그들과 동일시하기까지 하셨다. “내가 병들었을 때에 너희가 나를 찾아왔다”(마태 25, 36). 병약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특별한 사랑은 영혼과 육체의 고통을 겪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매우 각별한 관심을 오랜 세월 동안 불러일으켜 왔다. 이러한 특별한 관심은 고통받는 이들의 아픔을 덜어 주고자 하는 꾸준한 노력의 근원이다.


        예수께서는 자주 병자들에게 믿음을 요구하셨다. 예수께서는 침을 바르고 안수하시며, 진흙을 바르고 물로 씻는 등의 표징을 사용하여 병을 고치신다. 병자들은 “예수에게서 힘이 나와 누구든지 다 낫는 것”(루가 6, 19)을 보고 모두가 예수님을 만지려고 하였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성사 안에서 끊임없이 우리를 ‘만짐으로써’ 치유하신다.

이렇게 많은 고통 때문에 마음이 움직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병자들이 당신을 만지도록 허락하실 뿐 아니라, 그들의 불행을 당신의 불행으로 여기신다. “그분은 몸소 우리의 허약함을 맡아 주시고 우리의 병고를 짊어지셨다”(나태 8, 17). 예수께서 모든 병자들을 다 고쳐 주신 것은 아니다. 예수님의 치유 행위는 하느님 나라가 도래했다는 징표들이었고, 더 근본적인 치유, 곧 당신 파스카를 통한 죄와 죽음에 대한 승리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악의 모든 무거운 짐을 짊어지셨고, 세상의 죄를 치워 없애셨다. 병은 단지 그 죄의 결과일 뿐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수난과 십자가상 죽음으로 고통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고통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닮고, 구속을 위한 그분의 수난에 결합될 수 있다.


4) 병자들을 고쳐주어라……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라고 권고하신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름으로써 병과 병자를 새롭게 이해하게 된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당신의 가난하고 봉사하는 삶에 함께 하도록 하며, 연민과 치유의 직무에 참여시키신다. “열두 제자는 나가서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가르치며, 마귀들을 많이 쫓아내고 수많은 병자들에게 기름을 발라 병을 고쳐 주었다”(마르 6, 12-13).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파견을 갱신하신다. “내 이름으로 병자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마르 16, 17-18). 그리고 주님께서는 교회가 당신의 이름으로 행하는 표징들을 통하여 이 파견을 확인해 주신다. 그 표징들은 예수께서 참으로 “구원하시는 하느님”(마태 1, 21 참조)이시라는 것을 특별히 나타낸다.


        성령께서는 어떤 이들에게 특별한 치유의 은사를 주시어,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이 지닌 힘을 나타내신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기도해도 모든 병이 다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성 바오로는 주님께로부터 “너는 이미 내 은총을 충분히 받았다. 내 권능은 약한 자 안에서 완전히 드러난다”(2고린 12, 9)는 것을 배워야 했고, 또 고통을 견뎌 내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몸으로 채우고 있다”(골로 1, 24)는 의미가 있음을 배워야 했다.


        “병든 사람을 고쳐 주어라”(마태 10, 8). 주님께로부터 이러한 사명을 받은 교회는 병자들을 보살피고 아울러 그들을 위해 전구의 기도를 드림으로써 이 사명을 수행하고자 노력한다. 교회는 영혼과 육체의 의사이신 그리스도의 생명을 주는 현존을 믿는다. 이 현존은 특별히 성사들 안에서 작용하며, 영원한 생명을 주는 빵인 성체성사 안에서는 특별한 방식으로 효과를 낸다. 성 바오로는 성체와 육체적 건강의 관계를 암시하고 있다.

        사도시대의 교회에는 병자들을 위한 특별한 예식이 있었다. 성 야고보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여러분 가운데 앓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교회의 사제들을 청하십시오. 사제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고 그를 위하여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믿고 구하는 기도는 앓는 사람을 낫게 할 것이며, 주님께서 그를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또 그가 지은 죄가 있으면 그 죄도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야고 5, 14-15). 성전(聖傳)은 이 예식을 교회의 일곱 가지 성사 중의 하나로 인정하였다.



3. 병자성사의 예식


        다른 모든 성사들과 마찬가지로 병자성사도 가정에서 거행되든 병원이나 성당에서 거행되든, 한 사람의 병자를 위해 거행되든 여러 병자들을 위해 거행되든, 전례적이고 공동체적인 것이다. 이 성사는 주님의 파스카를 기념하는 미사 중에 거행되는 것이 매우 합당하다. 상황이 허락하면, 고해성사를 먼저 베풀고, 병자성사 뒤에 성체성사를 줄 수도 있다. 그리스도의 파스카 성사로서 성체는 언제나 지상 순례길의 마지막 성사, 영원한 생명으로 건너가기 위한 노자(路資)성사가 되어야 한다.


        말씀과 성사는 불가분의 전체를 이룬다. 통회의 기도에 이은 말씀의 전례로 성사 거행이 시작된다. 그리스도의 말씀과 사도들의 증언은 병자와 공동체의 신앙을 일깨워 주님께 성령의 권능을 청하게 한다. 성사의 거행에는 주로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포함된다. 교회의 사제들은 침묵 중에 병자에게 손을 얹는다. 그리고 교회의 신앙 안에서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이것이 이 성사의 고유한 성령청원기도이다. 이때 신부들은 가능하면 주교가 축복한 기름을 발라 준다. 이러한 전례적 행위들은 이 성사가 병자들에게 어떤 은총을 주는지를 가리킨다.




4. 병자성사의 효과


        첫째, 성령의 특별한 선물을 받는다. 병자성사의 근본적인 은총은 중병이나 노쇠 상태 특유의 어려움들을 이기기 위한 위로와 평화와 용기의 은총이다. 이 은총은 하느님께 대한 신뢰와 믿음을 새롭게 하고, 마귀와 좌절과 죽음에 대해 번민하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게 해주시는 성령의 선물이다. 성령의 힘을 통해 주시는 주님의 이러한 도우심은 병자들의 영혼을 치유하기 위한 것이지만, 하느님께서 원하신다면, 육체도 치유한다. 그뿐 아니라, 그가 죄를 지었다면 용서받는다.

         둘째, 그리스도의 수난에 결합한다. 이 성사의 은총으로 병자는 그리스도의 수난에 더욱 가까이 결합시키는 힘과 선물을 받는다. 병자는 구세주의 구속 수난을 닮음으로써 열매를 맺도록, 어떤 의미에서는, 축성되는 것이다. 원죄의 결과인 고통에 새로운 의미가 부여된다. 즉 고통은 예수님의 구원사업에 참여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셋째, 교회적인 은총을 받는다. 이 성사를 받은 “병자들도 스스로를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자유로이 결합하여, 하느님 백성의 선익에 기여”(교회헌장 11항)하기 위해 자기 몫을 한다. 교회는 이 성사를 거행함으로써 성도들의 통공 안에서 병자들의 선익을 위해 전구한다. 또 병자도 나름대로 이 성사의 은총을 통해서 교회의 성화와 모든 이들의 선익을 위하여 이바지한다. 교회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고통을 당하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을 하느님 아버지께 봉헌하는 것이다.


        넷째, 마지막 길의 준비를 한다. 병자성사가 병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과 중대한 발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모두를 위한 것이라면, 이는 특히 생명이 떠나려는 순간에 처한 이들에게 베풀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성사는 “떠나가는 이들의 성사”라고도 불렀다. 병자의 도유는 세례로 시작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우리간의 일치를 완성시킨다. 이 성사는 그리스도인의 일생 동안 이루어진 거룩한 도유들을 완결 짓는다. 세례 때의 도유는 우리에게 새 생명을 새겨 주었고, 견진의 도유는 인생의 싸움을 위하여 우리를 굳건하게 해주었다. 병자성사의 마지막 도유는 하느님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기 전에 있을 마지막 싸움에 대비하여 우리 지상생활의 마지막에 튼튼한 방패를 마련해 준다.



5. 죽는 자의 성사


        결국 온갖 육체의 치료는 실패한다. 생명의 주기법에 따라 생명은 인간의 지금 조건 아래서 시작하여 자라고 성숙하고 쇠퇴하며 죽음으로 끝난다. 병세가 위독해지거나 노쇠함으로 허약할 때에 병자성사를 주어야 한다. 그러나 병이 회복되었다가 재발하거나 위험이 더 커질 경우에도 교회는 병자성사의 재집행을 허락한다. 병세가 계속해서 심해지면 병자는 규칙적으로 영성체를 하는 것이 좋다.


        죽어 가는 환자가 하는 영성체를 노자성체라고 한다. ‘여행을 위한 음식’이고 마지막 여행을 위해서 받는 영신적 음식이다. “이 세상을 하직 할 때 신자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노자로써 힘을 얻어 가지고 부활의 보증으로 안전하게 된다. 그것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입니다’(요한 6, 54)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다. 노자성체는 될 수 있으면 미사 때에 받게 해주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함으로써 병자는 양형 영성체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따라서 노자의 형태로 모신 영성체는 미사성제에서 거행되는 신비, 즉 주님의 죽으심과 성부께로 옮겨가심에 참여하는 특별한 표시도 되는 것이다”(병자성사 예식서 26).


        죽을 때에 표지는 사라지고 실재가 나타난다. 실재를 포함하는 성체는 노자성체란 말이 의미하듯이 여행 중에 가장 필요한 준비다. 하지만 곧 표지의 굴레는 벗겨지고, 나타난 실재를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고”(1고린 13, 12) 보게 될 것이다. 죽음은 승리 안에 삼켜져 버리고, 죽음에서만 그리스도 신자는 과거의 모든 손해를 회복하고 백 배의 수확을 거두고 영생을 받을 것이다. 질병과 손실, 각종 시련을 통한 상실과 노쇠에서 오는 계속되는 감소의 곤혹들은 많은 작은 죽음들이다. 그것들은 어떤 저자들이 신비한 죽음이라 부르듯 죽음을 통해 오는 사랑하는 모든 것과의 결정적 이별을 예시하는 손실들이다. 그러나 이같은 결정적이고 완전한 손실을 겪은 뒤에야 모든 것이 회복된다. “복스럽게 뿌리는 이는 복스럽게 거두어들이는 법입니다”(2고린 9, 6). 그리스도 신자의 장례는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요한 12, 24)라는 씨앗에 관한 그리스도의 말씀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축제다. 성찬 예식에서 우리는 ‘복된 희망을 품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린다’고 말한다. 마지막이요 완벽한 치료는 부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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