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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성사
작성일 2003-03-25 10:51
ㆍ추천: 0  ㆍ조회: 3432    
고해성사, 고백성사, 성찰,통회,정개,고백,보속, 치유의 성사
 

고해성사


1. 고해성사의 정의


        인간은 교만으로 인해 스스로 자유의지를 남용하여 원조 때부터 범죄를 하여 왔다. 죄는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나쁜 줄 알면서도 자유의지로 하느님의 계명을 거스르고 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것이다. 즉 죄는 인간이 자유를 가지고 택한 목적을 위해 실행한 행위에서 생기며 인간의 지향에 따라 죄도 다양해진다. 인간 본성은 원죄로 말미암아 나약해져서 죄로 기울어지는 바, 죄의 성향을 이기지 못하여 의도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하느님을 거부하는 행위는 우리의 죄로 인해 하느님과 격리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에 그리스도는 하느님과 원죄에 물든 우리들을 위해 십자가상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고통을 받아, 우리 죄를 대신하여 보속하셨다. 그 공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에게 주신 천국의 열쇠 즉, 권한의 혜택을 받아 오늘도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즉 이것이 고해성사이다. 다시 말해 고해성사는 그리스도의 권능으로 교회가 사제의 권위 있는 선언을 통해, 영세한 후에 범한 죄를 참회할 때 그 죄를 사해 주는 성사라고 정의할 수 있다.

        고해성사는 다른 이름으로도 많이 불리운다. 이 성사는 회개하라는 예수님의 호소와 죄로 저버렸던 아버지께 돌아옴을 성사적으로 실현하기 때문에 회개의 성사라고 불린다. 또한 이 성사를 참회의 성사라고도 부르는데, 죄인인 그리스도인의 회개와 참회와 보속의 개인적이며 교회적인 행동 방식을 인정하고 완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성사를 용서의 성사라고 부르는 것은, 사제의 사죄 선언을 통해서, 참회하는 사람에게 하느님께서 “용서와 평화”를 주시기 때문이다.


        이 성사는 화해시키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죄인에게 주기 때문에 화해의 성사라고 부른다. “하느님과 화해하시오”(2고린 5, 20).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으로 사는 사람은 “먼저 너의 형제와 화해하라.”(마태 5, 24 참조)고 하신 예수님의 요구에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



2. 참회와 화해의 성사


        죄는 무엇보다도 하느님께 대한 모욕이고, 하느님과 이루는 친교의 단절이며 동시에 교회와 이루는 친교에도 해를 끼친다. 그러므로 회개는 하느님의 용서를 가져다주고 교회와 화해를 이루게 하며, 참회와 화해의 성사는 이를 전례적으로 표현하고 실현한다.


1) 하느님만이 죄를 용서하신다


        하느님만이 죄를 용서하신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자신에 대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사람의 아들이게 있다”(마르 2, 10)고 말씀하셨고,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마르 2, 5)고 하시면서 이 신적 원한을 행사하신다. 나아가 당신의 신적 권위로 이 권한을 제자들에게 주시며 당신의 이름으로 행사하게 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전체 교회가 기도와 생활과 실천으로써, 몸소 당신 피로 값을 치르고 얻어 주신 용서와 화해의 표지와 도구가 되기를 바라셨다. 그러나 죄를 사하는 권한의 행사를 사도직을 맡은 이들에게 위임하셨다. 사도들은 “화해의 봉사직”(2고린 5, 18 참조)을 맡았다.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파견되었으며, 그들을 통하여 “하느님과 화해하라”고 간곡히 권유하시는 분은 “바로 하느님 자신이시다”(2고린 5, 20 참조).


2) 교회에 대한 화해


        예수께서는 공생활 동안 죄를 용서하셨을 뿐 아니라, 이 용서의 결과도 나타내 보이셨다. 예수께서는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죄 때문에 멀어졌거나 추방되었던 그들을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 안으로 다시 받아들이셨다. 이 사실을 보여주는 명백한 표지는 예수께서 죄인들을 당신의 식탁에서 함께 식사하게 하시고, 더구나 그들의 식탁에 함께 앉으셨다는 사실이다. 이는 하느님의 용서와, 하느님 백성의 품으로 돌아오는 복귀를 동시에 표현하는 놀라운 행위이다.


        주님께서는 죄를 용서하는 당신의 고유 권한을 사도들에게 주시면서, 죄인들을 교회와 화해시키는 권한도 주신다. 이러한 사도들의 교회 차원의 임무는 주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하신 엄숙한 말씀에서 특히 잘 드러난다.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마태 16, 19). 베드로에게 맡겨진 매고 푸는 권한은 그 단장과 결합된 사도단에도 수여된 것이 확실하다.


        “맨다”, “푼다”는 말의 의미는, 우리가 일치에서 제외시키는 사람은 하느님께 대한 일치에서도 제외될 것이고, 우리가 일치 안에 다시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께서도 당신과 이루는 일치 안에 받아들이신다는 것이다. 교회에 대한 화해와 하느님께 대한 화해는 분리될 수 없다.


3) 용서의 성사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교회의 모든 지체들, 누구보다도 우선 세례 후에 대죄에 떨어져 세례로 받은 은총을 잃고 교회적 일치가 손상된 사람들을 위하여 고해성사를 세우셨다. 고해성사는 죄인들에게 회개하고 의화의 은총을 회복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한다. 교부들은 이 성사를 은총을 잃은 난파 후 구원의 두 번째 구명대라고 소개한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교회가 주님께로부터 받은 이 권한을 행사하는 구체적인 형태는 많이 변했다. 처음 수세기 동안은 세례를 받은 후에 특수한 대죄(예를 들어 우상숭배, 살인 또는 간음)를 지은 경우의 화해는 매우 엄중한 징계를 거쳐야 했다. 이에 따라, 회개하는 사람은 용서를 받기 전에, 흔히 여러 해 도안, 공적인 보속을 해야만 했다. 몇몇 대죄에만 해당되던 이러한 참회자 부류에 받아들여지는 일은 드물었고, 어떤 지방에서는 일생에 단 한 번만 이러한 일을 허용했다. 동방 수도회의 전통에서 영감을 얻은 아일랜드의 선교사들이 7세기 중에 교회와 화해를 하기 전에 오랫동안 공적인 속죄행위를 요구하지 않는 사적인 속죄의 절차를 유럽 대륙에 전하였다. 그로부터 이 성사는 참회하는 사람과 사제 사이에서 더욱 비밀리에 행해지게 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관행은 반복의 가능성을 허용하는 것이었으며, 이 성사를 정기적으로 자주 받을 수 있는 길을 터놓았다. 이는 한 번의 성사 거행으로 대죄와 소죄를 한꺼번에 용서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교회는 대체로 이러한 형태의 고해성사를 오늘날까지 행해 오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변화를 겪어온 이 성사의 규칙과 거행을 통틀어 볼 때, 불변하는 기본 구조를 발견할 수 있다. 이 구조는 한결같이 핵심적인 두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데, 그 하나는 성령의 감도로 회개하는 사람의 행위, 즉 통회와 고백과 보속이며, 다른 하나는 교회의 중개를 통한 하느님의 행위이다. 주교와 사제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해 주고, 보속의 방법을 정해 주는 교회는 죄인을 위해 기도하며, 그와 함께 보속한다. 이렇게 해서 죄인은 치유되고 교회와 이루는 친교를 회복하게 된다.



3. 구원경륜안에서 본 고해성사


        복음서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사하시는 사죄권한을 지니셨고(나태 9, 1-8) 이 권한을 교회의 지도자들인 12사도에게 주셨음(마태 18, 18)을 알려주고 있다. 이는 지상에서 ‘맺고 풀고’ 하는 권한 행사가 하늘에서도 적용되며, 공동체를 해치는 행위를 한 형제들에게 행사하는 권한인 것이다. 사실 성서에서는 고해성사로서만이 죄를 판결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와 신자가 있다는 그 자체가 죄에 대한 거부임을 알려주고 있다. 범람하는 죄는 개인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의미까지도 지니기에 교회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세상에 죄에 대한 윤리적․신앙적 판결을 해 주고 있다. 이는 하느님께서 주신 화해의 임무와 죄를 사하는 성령, 기도와 극기와 선행 등으로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음을 제시하고 그 권한이 제자들에게 주어졌음(마태 10, 1)을 알려 주는 것이다.


        구약성서는 전체가 하느님 백성들의 자비하심에 대한 부르짖음으로 가득 차 있다. 인류의 원조가 범죄한 후에도 사랑을 거두지 않으시고 구세주를 약속하셨으며, 요나서에서는 뉘우치는 니느웨 사람들에게서 재앙을 거두셨다. 죄를 뉘우치는 표시로서 재계와 고행을 하였고 공적 예배를 통해 참회와 함께 어린양을 속죄의 제물로 바쳐 하느님과의 친교를 회복하였다.


        신약에서 세례자 요한은 ‘회개하라’(마태 3, 2)고 가르쳤고, 예수께서 죄를 사해 주실 분임(요한 1, 29)을 증언했다. 과연 예수께서는 죄인들을 용서해 주셨고(루가 7, 48), 죄인들의 회개는 하느님 앞에 기쁨이 된다(루가 15, 3-10)고 하셨고, 스스로 참된 하느님임을 드러내시고 사죄권이 있음(마르 2, 1-12)을 알려 주셨다. 그리고 그 죄 사함의 조건은 참다운 통회와 함께 다시는 범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이라고 하셨다.

        사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다른 이를 용서하는 사람일 뿐 아니라 우선 자기 자신이 용서받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 일은 쇄신과 해방의 원천이 된다. 죄 사함을 받고, 새 출발을 하게 되며, 더 멀리 향하는 것은 각 사람이 소망하는 바에 부합하는 것이다.


        이러한 용서와 화해의 성사는 예수부활의 저녁사건에 그 기원을 갖는다. 사도 요한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공포에 떨고 있는 사도들 가운데 나타나 평화의 인사를 나눈 다음 이 중대한 사명을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 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 21-23). 이리하여 죄를 용서하거나 용서하지 않는 권한은 예수님이 그 권한을 성부께로부터 받았다는 사실과 제자들과 함께 그 권한을 나눈다는 사실을 명시하고 있다.



4. 고해성사의 구성요소


        고해성사를 보다 완전히 이루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순서를 갖추는 것이 이상적이다. 먼저 자기가 저지른 잘못이 무엇인가를 알아내되, 십계명이나 교회법, 그리고 복음에서 요구하는 계명, 양심이 바라는 바를 비교하여 죄를 살펴본다. 이를 성찰이라 한다. 그리고 알아낸 죄에 대해 다음 아파하는 통회의 단계가 있다. 사제 앞에 나아가 잘못을 고백하고, 사제가 제시하는 보속을 이행하는 절차를 밟는다. 성찰 - 통회 - 결심 - 고백 - 보속은 고해성사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이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잘못을 뉘우치는 마음으로 이것이 없다면 고해성사는 형식에 그쳐 버린다. 그러므로 고해성사는 고해자의 통회하는 마음과 적극적으로 하느님께 용서 받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1) 성찰


        죄는 감추려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악한 일을 일삼는 자는 누구나 자기 죄상이 드러날까봐 빛을 미워하고 멀리한다”(요한 3, 20). 물론 오늘에 와서는 많은 범죄가 공공연히, 당연한 듯이 저질러진다. 그러나 자기에게 악행을 저지르려는 악의가 있었다는 사실은 좀처럼 수긍하려 하지 않는다. 죄를 짓는 사람은 많은 경우, 자기 행실에 그럴 듯한 구실을 붙인다. 우리들 역시 자기의 잘못된 행동에는 편리한 구실을 붙이는 경향이 있다. 그리하여 죄는 마음의 눈에 뜨이지 않게 언제나 정체를 감추며 날이 갈수록 은밀하게 정체를 숨긴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자주 양심을 성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양심은 부단히 비추고 다시 비춰 볼수록 건전해진다. 그리스도를 뵈올적마다 그 만남은 하나의 은총이 되어 우리 양심이 성숙하는 계기를 만든다. 하느님의 빛에 비추어 자신을 깨닫는다. 그러나 양심성찰을 할 때에 우리 잘못의 회수와 종류부터 따져서는 안된다. 제일 먼저 할 일은 하느님의 현전에 사랑 깊고 자비로우신 목전에 양심을 열어 보이는 것이다. 죄를 지을 때는 하느님을 잊어버리려고, 그분을 멀리하려고, 자신을 속이려고 애쓰게 된다. 하느님의 현전에 서 있음을 분명하게 의식한다면 양심성찰 자체가 영혼이 나아지는 첫걸음이 된다. 주님을 착한 목자로, 신성한 의사로 여겨 우리 상처를 솔직히 말씀드리게 된다. 양심의 아픔이 우리의 오만을 무너뜨릴 때에 비로소 하느님께 대한 경건한 신뢰심이 되살아난다. 그때에 비로소 우리 죄의 천박함이며 그 중한 정도며 얽히고 뻗어 나간 그 양상을 똑바로 바라보게 된다.


2) 참회(통회)


        화해의 성사는 일종의 치료과정으로 볼 수가 있다. 의사에게 병세를 보이는 것만으로는 안되고 나아야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하듯이, 죄인도 자기 죄를 뉘우치고 그 죄의 뿌리가 되는 이기심과 교만, 피상적인 자세를 인정 않는다면 그 치유가 힘들다. 덧붙여 말하면, 죄의 뿌리는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만큼 뿌리를 뽑으려면 바로 마음속에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작업을 가리켜 참회 또는 통회라고 하는데, 우리가 상심시켜 드린 하느님께 우리의 죄송함을 보여 드리는 행동이라고 하겠다. 통회는 지난날에 대한 깊은 후회요, 다시는 죄짓지 않겠다는 결심이 따르게 마련이다. 통회는 결정적인 성사행위가 된다. 통회가 없다면 진실한 고백도, 사죄의 은총도 없다.


        참회는 사실 사랑의 다른 면에 불과하다. 참회는 사랑을 파괴하고 위협하는 모든 것을 배척하는 사랑이다. 그래서 사랑이 언제나 첫 자리를 차지하듯이 참회도 첫번째가 된다. 죄인은 회개하면서 하느님께로 와야 한다. 복음의 시초에서부터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와 조건으로서 회개가 선포되었다. 세례자 요한이 나타나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시오. 그러면 죄를 용서받을 것입니다”(마르 1, 4) 하고 선포하였다. 회개는 마음과 생각의 완전한 변화를 의미한다. 회개는 죄를 멀리 떠나고 하느님께로 향하는 전환이다. 회개를 통해서 우리는 다시 살기 위해 죽는 파스카 신비의 심장부에 들어간다.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언제나 예수를 위해서 죽음의 위험을 겪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죽을 몸에 예수의 생명이 살아 있음을 드러내려는 것입니다”(2고린 4, 11). 우리가 슬퍼하지 않으면, 다시 말해서 죄에 대하여 후회하지 않고 죄를 반복하지 않기로 결심하지 않고, 또한 하느님께로 돌아오지 않으면 죄를 용서받지 못한다. 그것은 입술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내적 통회이어야 한다. 통회는 신앙의 동기에서 나온 것이어야 하며, 인간 행동의 어떤 나쁜 결과에 대한 후회에 기초한 단순한 인간적 후회이어서는 안된다. 마치 우리 능력에서 벗어난 일이 되지 않고 저렇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식으로, 과거에 일어났던 그 일이 달리 되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바라는 막연한 애석함이어서는 안된다. 통회는 자기의 태도와 행동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겠다는 결심이며, 그래서 굳건한 의지가 수반되어야 한다.


        만일 하느님께 대한 참된 사랑이 통회의 동기가 되고, 모든 것 위에 사랑하기로 정한 하느님을 침해하였기 때문에 슬퍼한다면 그 참회는 ‘완전한 참회’라고 한다. 완전한 참회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행위이고, 사람을 인도하여 회개하도록 하는 하느님 은총의 결실이므로, 중죄에 떨어졌던 사람이라도 완전한 참회를 하면 즉시 하느님과의 친교를 다시 맺게 된다. 그러나 특수한 환경에서가 아니면 대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신앙의 가족과 결별하였던 사람은 성체를 영하기 전에 고해성사를 받을 중대한 의무를 가진다. 참회를 할 때에는 작은 죄까지도 자세히 반성해야 한다. 작은 것을 소홀히 할 때 큰 죄로 발전되기 때문이다. 통회의 근본 정신은 주님을 사랑하는 데서 나온다. 주님에 대한 사랑 없이 윤리적으로만 반성한다면 불완전한 통회가 되기 때문이다.


3) 결심(정개)


        죄에 대한 통회는 죄에 다시 떨어지지 않을 결심을 포함한다. 통회란 성령을 체험하고 이제부터는 선하고 올바르게 살며 하느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겠다는 영적 충동이다. 정개는 앞으로 다시는 죄를 짓지 않고 자기 쇄신에 힘쓰며 하느님의 은총을 열매맺게 하겠다는 굳은 결의로 승화되는 것을 말한다. 통회자는 자신의 나약성이 자신을 또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하지 못하지만, 현재의 결심은 솔직하고 실질적이어야 한다. 통회자는 변화를 원하고, 주님께 충실하며, 충실성을 실현하기 위해 실질적 방법을 취할 의도가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용서는 언제나 “어서 돌아가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말라”(요한 8, 11)라고 요청한다. 참으로 통회하는 사람은 하느님이 줄곧 자신의 숱한 죄를 용서해 오신 사실을 되새기며 이제까지 자기가 일상생활에서 그 하느님의 자비를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못한 것을 괴로워하므로, 단지 죄를 짓지 않는데 만족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따르겠다고 결심하는 것이다.


4) 고백


        우리는 죄가 나의 생활에 직접 관련이 있고,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면 나로서는 죄가 무엇인지 판단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자신이 죄인임을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조심스러운 양심성찰을 통해서 기억할 수 있는 모든 대죄뿐 아니라 죄를 과중하게 만드는 일도 하나도 숨김없이 사제에게 고백해야 한다는 것이 교회의 가르침이다.


        고백 전에 다음 질문에 맞추어 자기를 살펴본다면 유익할 것이다. 나의 신앙생활과 도덕생활이 향상과 성장, 부단한 회심을 보이고 있는가? 아니면 대체적으로 퇴보와 하락을 보이는가? 만일에라도 후자의 답변이 나온다면 고백시에 이것을 똑똑히 말씀드림이 좋다.


        그리스도인은 주님께 귀의할수록 철저하게 악을 끊어 버리게 되며, 은총의 인도를 받을수록 평소에는 고백할 죄목이 아니라고 생각되던 행동도 죄스러운 것임을 인정하게 된다. 내면생활이 깊어질수록 자기 행동을 헤아리고 죄의 회수를 헤아리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이 실천하고 있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도 계명에 비추어 재어 보고 반성하기에 이른다. 진실한 신앙인은 종교에서 율법을 보지 않고, 자기와 함께, 자기 안에 살아 계시는 그리스도를 뵙는다. 신앙인의 법은 곧 그리스도의 은총이요 사랑이다. 따라서 우리의 고백도 사랑이라는 보편법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화해의 성사도 다른 모든 성사와 같이 표지를 통한 그리스도와의 만남이다. 그것은 두 인격체가 우정의 복구를 위해, 표지를 통해 공동으로 일하는 것이다. 우리편에서는 죄를 고백하는 것이 만남을 이루는 정상적 표지이다. 성사는 외적인 표지이기 때문에 이렇게 외적인 고백으로 교회 공동체의 공적 대표인 사제와 화해함으로써 하느님과 화해를 이룬다. 통회하는 마음으로 하는 고백은 우리의 사랑이 하느님께 옮겨가는 본질적인 요소를 이룬다.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표지를 주시는가? 교회의 말씀으로 죄를 사해 주신다. 그 말씀이란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당신의 죄를 사합니다”라는 것이다.


        죄란 자아를 폐쇄시키는 것이다. 성사의 도움을 청한다는 것은 예수께서 나에게 주시는 대로의 그 구원 방식을 수락하는 것이다. 내 죄의 고백만큼 그 성사는 악까지 포함하여 내 생활을 구성하는 모든 것을 주님이 다시 관장하시도록 받아들이는 것이다.


5) 보속


        교회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하더라도 그 손상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므로 고해자는 사제가 요청하는 ‘보속’을 함으로써 자기 죄에 대한 약간의 보상을 하여서 고백행위를 완수해야 한다. 옛날에 요청된 보속은 엄한 것이 많았으나 요즈음은 자기 죄를 고백한 후에 사제가 지정하는 일정한 기도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 보속의 종류와 정도는 고해자의 개인적 상태에 적당하며, 고해자가 혼란된 질서를 회복할 수 있어야 하며, 적당한 치료로써 고해자가 가진 병이 치료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보속행위는 실제로 죄에 대한 치료약이고 생활개선을 위한 도움이 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죄악은 생각하기보다 더욱 중하고, 우리의 보속행위는 흔히 미약하다. 약점을 가진 우리를 돕기 위해서 교회는 신자들에게 은사를 제공하기도 한다. 은사는 이미 용서받은 죄에 해당하는 현세적 벌의 전부나(전대사․全大赦) 부분의(한대사․限大赦) 면제를 말한다.


        은사를 밑받침하는 원리는 교회의 역사만큼 오래되었다. 은사의 원리는 그리스도의 신비체 교리에 기초하고 있다. 이 신비체의 모든 지체는 병든 한 지체의 안녕을 위해 공헌해야 한다고 성 바오로는 기록하였다(1고린 12, 21-26). 그리스도의 죽음이 갖는 무한한 결정적인 가치를 잘 알면서도, 자신의 고통이 골로사이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혜택이 될 수 있다고 즐거워하며 이어서 “그리고 나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해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몸으로 채우고 있습니다”(골로 1, 24)라고 덧붙였다. 교회는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권한의 힘으로 죄의 용서를 이미 받은 사람에게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공로 일부를 나누어주어, 죄에 해당하는 현세적 벌의 양을 제거하거나 경감할 수 있다는 것이 교회의 가르침이다. 은사를 얻기 위해서는 기도를 하든지 아니면 교회가 은사에 부과하는 선행을 해야 한다. 은사는 개인이 하는 비교적 적은 신심행위라도 큰 은혜를 가져다준다.


        죄를 고백하자면 겸손이 요구된다. 그러나 죄의 고백으로 하느님의 진리에 되돌아올 수 있었다는 것은 결국 그분의 은총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고백실의 벽 속에서만 주님을 찬미하고, 사제가 지정해 주는 보속만을 실천하는데 그치지 말고 일상생활 가운데서 계속하여 우리의 고백이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우리 죄로 하느님 나라에 끼친 해악을 기워 갚기 위해 좋은 모범과 기도와 희생의 사도직으로 이웃에게 봉사하겠다는 겸손한 자세를 입증하는 것이어야 한다.



5. 고해성사의 효과


        고해의 효능 전체는 하느님의 은총을 회복시켜주고 지고한 우정으로 하느님과 결합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성사의 목적과 효과는 하느님과 이루는 화해이다. 통회하는 마음과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고해성사를 받는 사람들에게는 평화와 양심의 평안함이 따르고, 힘있는 영적 위로가 더해진다. 하느님과 화해하는 이 성사는 참된 영적 부활과 하느님 자녀로서 지니는 품위와 삶의 선익을 회복시켜 주기 때문인데, 그 중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하느님의 사랑이다.


        이 성사는 우리를 교회와 화해시켜 준다. 죄는 형제적 친교를 갈라놓거나 파괴한다. 고해성사는 그 친교를 바로잡고 회복시킨다. 이러한 의미에서 고해성사는 교회와 친교를 회복하는 그 사람만을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체가 지은 죄로 인해 손상을 입은 교회의 생명을 되살리는 효과도 있다. 성도들과 친교를 회복하고 견고하게 된 죄인은 아직 나그네길에 있거나 이미 천상 고향에 있거나 간에, 그리스도 신비체의 살아 있는 모든 지체들과 영적인 자신을 나눔으로써 굳건해진다.


        이 성사에서 죄인은 자신을 하느님의 자비로운 심판에 맡겨 드림으로써, 어떤 의미에서는 이 지상의 삶이 끝날 때 받게 될 심판을 앞당겨 받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것은 이 현세생활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선택권이 우리에게 주어지며, 대죄를 지은 채로는 들어갈 수 없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은 회개밖에 없기 때문이다. 죄인은 참회와 신앙을 통해서 그리스도께로 돌아섬으로써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 “심판을 받지 않는다”(요한 5, 24).



6. 공동고백


        개별적인 고해형식과는 좀다른 ‘공동참회예식’이라는 것이 최근에 점차로 행해지고 있다. 이것은 죄가 지닌 공동체적인 성격을 잘 표현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초대교회 안에서는 고해성사가 교회 공동체의 공적 예식이었다. 그러나 개별 고백이 교회 안으로 들어음으로 인해 개인의 비밀스런 행위로 그쳐 버릴 위험이 생겼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공동체의 공적인 예배행위 중에 고해성사를 실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죄에 대한 공동체 의식과 교회적인 차원의 의식이 있어야만 한다. 죄란 단순히 개인이 짓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이 사회적 산물이고, 환경에서 오는 죄도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대 교회는 그 순수성을 보호하기 위해 중죄인을 공동체에서 격리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교회 공동체가 참회와 용서를 청하는 기도도 드렸고, 그것의 확인으로서 공개보속도 실시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죄인의 보속이 끝나 성찬례에 참석할 때 하느님과 공동체와의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공개적인 고백은 이런 의미에서 실시할 수 있으나 현대의 개인주의의 발달로 실시하기는 어렵다. 다만 사목상의 필요에 의해 공동 참회는 많이 권장하고 있다. 공개보속도 공동체에 중대한 손해를 끼쳤을 때, 실시되고 있을 뿐이다.


        공동 참회 예식은 각기 교회의 사정에 따라서 여러 가지 형식으로 행해지고 있는데, 예컨대 주일 미사중에 말씀의 전례 부분에서 참회를 주제로 독서와 강론을 하고 함께 고해 준비를 한 다음 성당 안에 특별히 마련된 몇 곳의 고해소에 한 사람씩 가서 고해를 하고 다시 모여 함께 보속의 기도를 바친다. 그후에 미사를 계속하는 하나의 형식이다. 모두가 죄인이어서 하느님이 용서와 서로의 용서를 필요로 하고 서로가 용서하고 그 용서하는 가운데 하느님의 용서가 주어진다는 것을 한 사람 한 사람이 공동 참회 예식에 참여함으로써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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