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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자료실
 
작성자
작성일 2003-03-25 10:49
ㆍ추천: -10  ㆍ조회: 3012    
성체성사, 영성체, 성찬례, 예수님의 몸과 피
 

성체성사


1. 성체성사의 정의


        거룩한 성체성사는 그리스도교 입문성사를 완결 짓는다. 세례성사로 왕다운 사제 품위에 올려지고, 견진성사로 그리스도를 더욱더 닮게 된 사람들은 성찬례를 통하여 온 공동체와 함께 주님의 희생 제사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구세주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 최후의 만찬 중에, 당신의 살과 피로써 감사의 제사를 제정하셨으니, 이는 당신이 재림하시는 날까지 십자가의 제사를 세세에 영속화하고, 또한 당신의 사랑하는 신부인 교회에 당신의 죽음과 부활의 기념제를 위탁하시기 위함이었다. 이 제사는 자비의 상사요, 일치의 표징이요, 사랑의 고리이며, 또한 그리스도를 받아모시게하여 마음을 은총으로 충만케 하고, 우리에게 장래 영광의 보증을 주는 파스카 잔치이다.


        성체성사의 무한한 풍요로움은 이 성사를 부르는 여러 가지의 이름들에서 나타난다. 이 이름들은 각기 성체성사의 어떤 측면들을 제시한다.

★ 감사례 - 성찬례는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 기도이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 ‘감사한다’(eucharistein)와 ‘축복한다’(eulogein)는 말은 창조와 구속과 성화의 하느님의 업적을 선포하는 유대인들의 감사기도를 상기시킨다. 이 기도는 특히 식사 중에 바치는 것이었다.


★ 주님의 만찬 - 만찬은 주께서 제자들과 함께 수난 전날 밤에 드신 최후의 만찬과 관계되며, 천상 예루살렘에서 벌어지게 될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미리 맛보는 것과도 관련되기 때문이다.


★ 빵을 나눔 - 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예수께서 만찬의 주재자로서 빵에 강복하여 나누어주실 때, 특히 최후의 만찬 때 유대인 고유의 이 예식을 행하셨기 때문이다. 예수 부활 후, 제자들은 이 행위 때문에 그분을 알아보게 되었고,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성찬모임을 이 명칭으로 불렀다. 이렇게 부름으로써, 이 나누어진 유일한 빵 곧 그리스도를 받아먹는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와 친교를 이루며 그리스도 안에서 오직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을 의미한다.


★ 거룩한 희생제사 - 성체성사가 구세주 그리스도의 유일한 제사를 재현하고 교회의 봉헌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또 미사성제, “찬미의 제사”(히브13, 15), 영적인 제사, 깨끗하고 거룩한 제사라고 부르는 것은, 이 제사가 모든 구약의 제사를 완성하고 초월하기 때문이다.


★ 성스럽고 신적인 전례 - 모든 교회전례의 중심과 가장 집약적인 표현이 이 성사 안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거룩한 신비들의 거행이라고도 부른다. 지극히 거룩한 성사라고 부르는 것은 이 성사가 성사들 중의 성사이기 때문이다. 이 이름은 특히 감실 안에 모셔 둔 성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 친교(영성체) - 우리는 이 성사를 통해서 그리스도와 일치하며, 그분은 우리를 당신의 몸과 피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하나의 몸을 이루게 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룩한 것(聖事), 천사들의 양식, 불사의 약, 노자(路資)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 미사성제 - 구원의 신비를 이루는 이 전례는 일상생활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수행하도록 신자들을 파견(missio)함으로써 끝나기 때문이다.

2. 구원경륜에서 본 성체성사


1) 빵과 포도주의 표징


        성찬례 거행의 중심인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청원기도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된다. 주님의 명을 충실히 따르는 교회는 주께서 영광스럽게 다시 오실 때까지 주님을 기념하면서, 주께서 수난 전날 밤에 행하신 의식을 계속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빵을 들어…”, “포도주가 담긴 잔을 들어….” 빵과 포도주의 표징은 신비롭게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되면서도 창조계의 탁월한 산물이라는 의미도 잃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봉헌 때에 빵과 포도주에 대하여 창조주께 감사드린다. 빵과 포도주는 땅을 가꾼 “인간 노동”의 결과일 뿐 아니라 창조주께서 주신 “땅”과 “포도나무”의 열매이기 때문이다.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온” 왕이며 사제인 멜기세덱의 행위를(창세 14, 18) 교회는 자신이 드리는 봉헌의 예표로 본다.


        구약시대에는 창조주께 대한 감사의 표시로서, 땅에서 나는 맏물들 중에서 빵과 포도주를 제물로 바쳤다. 그런데 이것들이 출애굽 사건에서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해마다 해방절에 먹는 누룩 없는 빵은 에집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서둘러 떠났음을 기념하는 것이며, 광야에서 먹은 만나에 대한 기억은 이스라엘이 하느님 말씀의 빵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늘 상기하게 한다. 끝으로 날마다 먹는 빵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약속에 충실하시다는 보증으로 주신 약속된 땅의 산물이다. 유대인들이 해방절 식사 끝에 마시는 “찬양의 잔”(1고린 10, 16)은 포도주가 지닌 축제의 기쁨에 종말론적 차원, 즉 예루살렘을 재건할 메시아에 대한 기다림이라는 소망을 더한다. 예수께서는 빵과 포도주의 축복에 새롭고 결정적인 의미를 부여하시면서 성체성사를 세우셨다.


        신약에서 주님께서 군중을 먹이시기 위해서 빵을 축복하시고 떼어서 제자들을 시켜 나누어주신 빵의 기적은 당신 성찬의 이 유일한 빵이 말할 수 없이 풍부함을 예시한다. 가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한 표징은 예수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때를 이미 예고하고 있으며,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피로 변한 새로운 포도주를 마시게 될 하느님 나라의 혼인잔치의 실현을 나타낸다.


        수난예고가 제자들을 혼란에 빠지게 하였듯이, 성체성사에 대한 첫번째 예고도 제자들을 분열시켰다. “이렇게 말씀이 어려워서야 누가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요한 6, 60). 성체와 십자가는 걸림돌이다. 그것은 동일한 신비이며 끊임없이 분열을 일으키는 계기가 된다. “너희도 떠나가겠느냐?”(요한 6, 67). 주님의 이 질문은 오랜 세월을 통해 울려 퍼지고 있다. 이 질문은 또한 당신만이 “영원한 생명의 말씀”(요한 6, 68)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고, 그분이 주시는 성찬의 선물을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곧 그분을 받아들이는 것임을 깨달으라는 사랑에 찬 권유이다.


2) 성체성사의 제정


        제자들을 사랑하신 주께서는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갈 때가 된 것을 아신 주께서는 식사를 하시던 중에 그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사랑의 계명을 주셨다. 이러한 사랑의 보증을 제자들에게 남겨 주기 위해, 그들을 떠나지 않기 위해, 그들이 당신의 파스카에 참여하게 하기 위해 당신의 죽음과 부활의 기념으로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셨으며, 사도들을 “신약의 사제들로 임명하시어” 당신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이를 거행할 것을 명하셨다.


        세 권의 공관복음서와 성 바오로는 우리에게 성체성사의 제정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리고 성 요한은 가파르나움의 회당에서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그 말씀은 성체성사를 제정하기 위한 준비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해방절 식사 중에 당신 사도들과 최후의 만찬을 거행하시면서 유대인들의 파스카에 결정적인 의미를 부여하셨다. 과연 예수께서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성부께 건너가신 새 파스카는 최후의 만찬에서 앞당겨 이루어졌고, 성찬례 안에서 거행되었다. 성찬례는 유대인들의 파스카를 완성하고 하느님 나라의 영광 중에 이루어질 교회의 궁극적 파스카를 예시한다.


3) 나를 기념하여 이를 행하여라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당신의 행위와 말씀을 계속하라고 하신 이 명령은 단순히 예수님과 예수께서 행하신 것을 기억하라는 요구만이 아니다. 이는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이 그리스도께 대한 기억, 그분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 그리고 성부께 드리신 간구에 대한 기념을 전례적으로 거행하라는 명령이다. 교회는 처음부터 주님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 그리스도인들은 특히 “주간 첫날”, 곧 예수께서 부활하신 주일에 “빵을 떼기 위해”(사도 20, 7) 한자리에 모였다. 그때부터 우리 시대까지 성찬례는 계속 거행되어, 오늘날 교회 어디에서나 근본적 구조가 동일한 성찬례가 거행되고 있다. 성찬례는 교회생활의 중심이다.


        이처럼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1고린 11, 26) 계속되는 성찬례의 거행으로 예수님의 파스카 신비를 전하면서, 순례길의 하느님 백성은 선택된 사람들이 하느님 나라의 식탁에 앉게 될 천상잔치를 향하여 십자가의 좁은 길을 걸어간다.




3. 성찬의 전례 예식


        성찬전례는 오랜 세월을 통하여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온 근본적인 구조에 따라 진행된다. 이 전례는 근본적으로는 하나를 이루는 두 가지의 주요 부분으로 진행된다. 이는 모임과 독서와 강론, 신자들의 기도로 이루어지는 말씀의 전례와, 빵과 포도주의 봉헌과 축성의 감사기도, 영성체로 이루어지는 성찬의 전례가 그것이다.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는 함께 오직 하나의 흠숭행위를 이룬다. 실제로 성찬례에서 우리를 위하여 차려진 상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식탁이며 동시에 주님의 몸을 받아먹는 식탁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로 부활하신 예수께서 당신의 제자들과 함께 하신 파스카 식사이다.


        성사의 거행은 이러하다. 우선 공동체의 집합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성찬례를 위해 한곳에 모인다. 성찬례의 주인공이신 그리스도께서 몸소 이 모임을 앞장서 이끄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신약의 대사제이시다. 모든 성찬거행을 보이지 않게 주재하시는 분은 그리스도이시다. 주교나 사제는 그분을 대신하여 모임을 주재하고, 독서 후에는 강론을 하며, 봉헌물을 받아들이고, 성찬기도를 드린다. 그리고 모든 이들은 각자 나름대로 전례 거행에 능동적으로 참여한다.


        다음으로 말씀의 전례는 예언자들의 문헌인 구약성서와, 사도들의 비망록인 서간문들과 복음서들을 포함한다. 이러한 말씀을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 실천하도록 권고하는 강론이 있은 후에,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사람을 위해서 간구와 기원과 간청과 감사의 기도를 드리라고 권하는 바입니다. 왕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시오.”(1디모 2, 1-2)라고 한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따라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청원기도를 드린다.


        다음으로 제물봉헌인데, 이때, 흔히 행렬을 지어, 빵과 포도주를 제단에 바친다. 사제는 이 빵과 포도주를 성찬의 제사 중에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바치는데, 여기에서 이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된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최후의 만찬 때에 “빵과 잔을 드신” 바로 그 행위이다. 오직 교회만이 창조주께 흠없는 제물을 바친다. 창조주께서 만들어 주신 것을 감사와 더불어 바치는 것이다. 제물을 제단에 바치는 것은 멜기세덱의 행위를 떠맡아 창조주께서 주신 선물을 그리스도의 손에 맡겨 드리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제물을 봉헌하는 인간의 모든 노력을 당신의 희생제사 안에서 완전하게 만드신다.

        초기부터 그리스도인들은 성찬을 위한 빵과 포도주뿐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선물도 가지고 모였다.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헌금 관습은 우리를 부요하게 하시려고 가난하게 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지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성찬기도, 즉 감사와 축성의 기도로 성찬례 거행이 그 핵심과 절정에 이르게 된다. 교회는 감사송으로 성부의 모든 업적, 창조, 구속, 성화에 대해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감사를 드린다. 이때 전체 공동체는 천사들과 모든 성인들의 천상교회와 더불어 하느님께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고 끊임없는 찬미를 드린다. 성령청원기도에서 교회는 성부께서 성령을 빵과 포도주 위에 보내시어, 그 능력으로 빵과 포도주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시고,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오직 한 마음 한 몸이 되게 해주시기를 간청한다. 즉, 성사제정의 말씀 안에서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위의 권능과 성령의 힘이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당신의 몸과 피, 즉 한 번 십자가 위에서 바쳐진 당신의 희생제물을 성사적으로 현존하게 하는 것이다. 그 뒤에 이어지는 기념에서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의 수난과 부활과 영광스러운 재림을 기념하며, 우리를 성부와 화해시키기 위해 자신을 봉헌하신 성자를 성부께 드린다. 전구에서 교회는 성찬례가 하늘과 땅, 산 이들과 죽은 이들이 전체 교회와 이루는 친교 안에서, 그리고 교회의 목자인 교황과 교구 주교와 사제단과 부제들, 온 세상의 모든 주교들이 그들의 교회와 이루는 친교 안에서 거행된다는 것을 표현한다.


        주의 기도와 빵을 나눈 뒤의 영성체에서 신자들은 “하늘의 빵”과 “구원의 잔”,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해”(요한 6, 51) 내어 주신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신다. 이 빵과 포도주는 옛 표현대로 축성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음식을 성체라고 부르는데, 우리가 가르치는 진리를 믿지 않고, 죄의 사함과 새로운 탄생을 위한 세례성사를 받지 않고, 그리스도의 계명에 따라 살지 않는 사람은 여기에 참여할 자격이 없다.



4. 성체성사와 교회


        초대 교회 생활을 기록하면서 당시의 교회 저자들은 성찬 예식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성찬이 공동체의 기본적 행사였고, 공동체 안에 그리스도의 현존을 가장 잘 표시하고 보존하였기 때문이다. 사도행전에서 성 루가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서로 친교를 맺고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던”(사도 2, 42) 예루살렘의 새로운 신자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빵을 나누어 먹음’이란 구절은 신약성서의 다른 곳(사도 2, 46)과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오래된 예식 지도서에도 나타나 있다. 이런 말로 교회의 활동을 묘사하면서 그 저자들은 이미 성찬이 갖는 기본적 교회의 본성에 관하여 증언하였다. 오늘날의 교회도 성체의 공동체로 남아 있다. 교회의 존재 이유가 파스카 신비의 거행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가 처음 전파되고 있을 때에는 신자들은 보통 이웃에 있는 유대인 회당의 성서 예식에 참석하고, 시간과 장소를 따로 정하여 서로의 집에 모여서 주의 만찬을 거행하였다. 그러나 이런 사정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복음과 새로운 생활이 그리스도교적 공동체 생활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많은 유대인들은 그것을 배척하며 그리스도인들을 괴롭히기 시작하였다(사도 8, 1-3).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의 성서독서의 계획표와 기도문을 작성하였고, 오래지 않아 그것들은 기념 제사 식사와 합류되었다. 이렇게 이루어진 말씀의 전례와 성찬 예식이 병합된 모습은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지내는 성찬 예식에도 계속 남아 있다.


        성찬 예배의 전례 형식은 여러 곳에서 동시에 발전함으로써 자연히 다양한 형식이 발생하였다. 또한 다양한 신앙 공동체의 문화와 그들의 상이한 신학적 시각과 신심적 편애를 반영하였다. 이와 같은 외부 예식의 다양성은 아직도 남아 있다. 예식의 각 형태를 ‘의식’이라 부른다.


        로마 제국의 서반부에서는 다양한 예식들이 결국 라틴 의식 안에서 통일을 이루었다. 동반부에서는 다양한 지역적 유산이 보존되었다. 그 두 가지 접근에서 전체 교회가 보호하고 소중히 하는 풍부한 전례가 자라났다.


1) 신앙의 일치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예식의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예식의 대상이 단일한 실재라는 신앙의 일치됨은 경탄스럽다.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은 둘 다 함께 우리의 구원을 이룩하였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가 우리를 하느님과의 의로운 관계에 놓아주시기 위하여 다시 살아나셨다. 구약의 반복되던 제사들과는 달리, 순종하는 죽음에 기초한 예수님의 단 한 번의 희생은 정말 충족스러운 것이었다. 히브리서가 강조하듯이 “그분은 대제관이 다른 피를 가지고 매년 성소에 들어가듯이 당신 자신을 여러 번 바치지 않으십니다. 여러 번 바쳐야 한다면 그분은 세상 시초부터 여러 번 고난을 받으셔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시대의 종말인 지금 자신의 희생을 통해 죄를 없애기 위하여 한 번 나타나셨습니다”(히브 9, 25-26).


2) 한 번의 제사


미사성제가 거행될 때마다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살아나시는 것은 아니지만, 미사가 거행될 때마다 그의 단 한 번의 제사가 재현된다. 하느님이며 동시에 사람인 분이 교회적 차원에서 교회 내에는 어디에서나 제헌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미사를 제정하였다. 그래서 십자가 위에서 한 번만 봉헌된 피흘린 제사가 재현되고, 세상이 끝날 때까지 그 기념은 보존되어, 거기에서 나오는 구원의 힘이 우리가 매일 범하는 죄악을 용서해 준다.


        십자가 위에서와 마찬가지로 미사에서도, 예수님이 하느님 아버지께 끝없고 무한한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주례 사제이며 제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미사에서는 교회가 예수님과 공동으로 제사를 지낸다. 교회는 자신을 예수님과 함께 합쳐서 봉헌하기 때문에 사제와 제물의 역할을 동시에 한다.


        그리스도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시오”(1고린 11, 24)라고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이 제사를 지내라고 명하셨다. 미사를 지내는 것은 성스러운 직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 행동하고, 그의 대리자가 되며, 살아 있는 그리스도를 현존케 하고, 파스카 신비를 재현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신품성사를 통하여 부르시고 날인한 당신의 대리자로서 행동하도록 권한을 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의도에 따라서만 할 수 있는 것이다. 주교와 사제들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축성의 말을 발음할 때에 신약의 제사가 재현되어 신자들이 참석할 수 있게 된다.


3) 모든 사람을 위한 미사


        사제는 산 이와 죽은 이를 위하여, 만인의 구원을 위하여, 하느님의 백성의 여러 가지 요구를 위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성령 안에서 성부께 미사성제를 봉헌해야 한다. 미사성제는 최상의 예배 행위이므로 하느님에게만 봉헌될 수 있다.


        성인의 축일을 맞아 미사를 지내면서 그 성인에게 존경을 드릴 수 있다. 그러나 하느님만이 이 완전한 숭배와 찬미를 받을 자격이 있으므로 그리스도의 제사는 하느님께만 봉헌된다. 죽었거나 살아 있는 개인의 필요에 따라 미사가 봉헌될 수는 있지만, 그런 제한된 의향만을 위해서 미사를 드려서는 안된다. 모든 미사 제헌의 주례자는 그리스도이시므로, 그의 대리자인 사제는 그리스도의 보편적인 구원 목표에 참여해야 한다. 미사는 하느님을 찬미하고, 만인을 구원하고, 그리스도의 무한한 은총을 나누어주기 위해 지내는 것이다.


        흔히 신자들은 자기들의 특별한 지향, 즉은 이의 영원한 안식, 어떤 영신적인, 또는 현세적 필요,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의 표시등을 위하여 미사를 드려 달라고 청한다. 이런 청을 할 때는 보통 금전적 기부를 한다. 특별 지향을 위해서 미사를 드려 달라고 미사예물을 바치는 것은 사실 미사의 결실 일부가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 받던 사람에게로 돌아가기를 청하는 것일 뿐이다. 미사예물은 그것을 바치는 사람이 미사성제에 좀더 깊이 참여하고자 한다는 원의의 표현으로 보아야 한다. 미사예물의 봉헌자는 미사성제에 자신의 제물을 첨부하면서 교회의 요구와 특히 사제들의 생활에 특별히 공헌하는 것이다.


4) 영성체


        미사의 주례자에게는 성체성사를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분배해 줄 특별한 책임이 있다. 그는 가능하면 다른 사제, 부제, 주교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필요하면 특별히 임명된 평신도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성체성사를 받는 것을 영성체라고 한다. 영성체는 하느님이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은혜에 참여하는 것이고, 그리스도 자신뿐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형제 자매들과도 친밀하게 일치되는 것이다. 영성체는 미사성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미사 참석자들이 받는 것이 가장 적당하다. 보통의 경우에는 하루 한 번만 영성체를 한다. 그러나 어떤 특정한 경우에는 신자들이 하루에 두 번 영성체를 할 수 있는 허락을 받는다. 라틴 의식에 속하는 신자들은 보통으로 빵의 형체로만 영성체를 하지만, 빵과 포도주의 양형 영성체를 하는 경우도 많다. 단형이는 양형이든 영성체를 한다는 것은 성체 안에 계신 그리스도 전체를 받는 것이다. 이것은 살아 계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빵의 외형 속과 포도주의 외형 속에 전체로 현존하시기 때문이다.


5) 능동적 참여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행동하는 집전 사제는 하느님께 모든 사람의 이름으로 미사성제를 바치는 것이다. 신자들도 자신들의 “왕다운 제관들”(1베드 2, 9)의 힘으로 봉헌에 참여하는 것이다. 신자들이 영성체를 함으로써, 또한 “사제의 손을 빌려서 제물을 봉헌할 뿐 아니라, 그 제물을 사제와 함께 봉헌하며 자기 자신도 제물로 봉헌하면서”(미사경본 총지침 3장) 신비체의 지체로서 직책을 완전히 이행함으로써 봉헌에 참여하는 것이다.


        “미사는 그리스도의 행위이며, 교계적 질서를 갖춘 하느님 백성의 행위다. 그러므로 집전자와 일반 신도는 주의 만찬인 미사에 각자의 신분대로 참여함으로써, 주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성체와 성혈로써 미사성제를 제정하시어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기념하도록 사랑하시는 당신 신부인 교회에 맡기실 때에 목적하신 그 효과를 충분히 받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집회의 특성과 환경을 고려해서, 교우들이 믿음, 희망, 사랑의 삼덕을 발하며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의식적으로 더욱 완전하게 참여하도록 인도해 주어야 하겠다. 이같은 효과적 참여를 교회가 바라고 있고, 미사 집전 자체가 요구하며, 신자들이 세례로써 그런 권리와 의무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미사경본 총지침 1장 1-3).



5. 영성체의 필요성


        우리가 영성체를 해야 한다고 예수님은 스스로 강조하셨다. “만일 여러분이 인자의 살을 먹지 않고 또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여러분 안에 생명을 얻지 못합니다”(요한 6, 53).


        하느님의 법에는 영성체를 얼마나 자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다. 교회는 신자들에게 적어도 일년에 한 번, 사순절 시작과 부활 시기의 끝 사이에 영성체를 하라고 명한다. 또한 교회는 사람이 죽을 위험에 처했을 때 영성체할 의무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연히 성체를 자주 받아 영하게 됨으로써 그리스도와의 우정을 깊게 나누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자주 혹은 매일이라도 미사에 참여하고 영성체를 하라고 신자들에게 권고한다.


        성체성사를 유효하게 받자면 영세한 가톨릭 신자로서 은총지위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성체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을 믿어야 한다. 자신이 대죄를 범했다는 것을 의식하는 사람은 영성체하기 전에 고백성사를 받아야 한다. 대죄를 범한 사람이 영성체를 해야 할 긴급한 사정에 놓였는데 고백할 기회가 없으면 영성체 전에 완전한 통회를 하면 된다. 그리고 그 후에 기회가 오면 고백성사를 받아야 한다.


        단순히 교회법에서 성세성사를 받는 사람은 은총 상태에 있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신약성서는 영성체를 합당하게 할 중대한 의무를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누구든지 합당하지 않게 이 빵을 먹거나 이 잔을 마시는 이는 주님의 몸과 피의 죄인이 될 것입니다…주님의 몸을 분별하지 않고 먹고 마시는 사람은 자신을 단죄하는 심판을 먹고 마시기 때문입니다”(1고린 11, 27. 29).


        교회는 우리에게 영성체하기 전에 한 시간 동안 음식과 술을 먹지 않는 공심재를 명한다. 이는 성체로써 우리가 받는 그분에 대한 외적인 존경의 공동 표시이고 참회하는 준비다. 환자와 노인은 15분의 공심재로 넉넉하다. 죽음 직전에 있는 사람에게는 공심재가 필요 없다. 물을 마시거나 약을 먹는 것은 공심재를 깨는 것이 아니다.


        교황 비오 12세는 이런 쉬운 공심재를 제정하면서 할 수 있는 신자는 옛날식 공심재, 즉 자정에서부터 모든 음식과 물도 포함한 음료수를 전연 먹지 않는 공심재를 지키라고 권하였다.


        세례성사도 교회의 회원 자격을 줌으로써 영성체 하기 위한 준비를 시킨다. 성찬 예식은 교회의 가장 특징적이고 중요한 활동이다. 그러므로 영성체는 성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현존에 대한 신앙뿐만 아니라, 교회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가르치는 모든 것에 대한 신앙의 표현이다. 미사성찬에 충분히 참석하는 것은 그 자체로 신앙 행위다. 신자들은 영성체를 통하여 자기들과 하느님을 결합시키고, 자기들 서로를 일치시키는 믿음을 확인하고 강화한다.


        영성체의 의미가 이렇기 때문에 비가톨릭 그리스도인들은 예외적인 경우에만 가톨릭 교회에서 영성체를 할 수 있다. 그 예외적 경우는 지역 주교가 판단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모시는 거룩한 영성체는 주님께 대한 일치를 증대시키며, 소죄를 사해 주고, 대죄에서 보호해 준다. 성체를 모시는 사람과 그리스도 사이에 있는 사랑의 유대가 굳건해지므로, 영성체는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의 일치도 강하게 해준다.



6. 상징과 실재


        성사는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외적인 표징으로 성사의 효과를 상징하며, 상징하는 것을 달성한다. 성체성사의 경우에도 그것이 사실이고 신자들이 주의 만찬 상에서 영성체할 때에 더욱 그렇다.


1) 성체는 음식이다.


        성체성사의 가장 자명한 표징은 음식의 모형이다. 파스카 잔치에서 사용되던 음식은 구약 시대의 팔레스티나 지방의 주식이었다. 빵은 누구나 먹는 가장 흔한 음식이었다. 포도주는 가난한 집에서도 마시던 보통 음료수였다.


        서방 교회에서 누룩 섞이지 않은 빵을 사용하는 이유는 그것이 최후만찬에서 쓰였기 때문이다. 성 바오로는 누룩 섞이지 않은 빵은 순수성과 새로움의 상징이라고 보았다(1고린 5, 6-8). 누룩이 섞인 빵보다 섞이지 않은 빵을 준비하는 것이 쉽기도 했지만 이 빵은 출애굽과 연관된 ‘순례의 민족’ 사상에 잘 부합하였다. 우리는 순례의 교회이므로 우리가 아직도 약속된 땅으로 가는 도중에 있음을 상기시키는 영적 빵을 받는다.


        포도주는 커다란 흥겨움을 연상시킨다는 것이 대중의 생각이었다. 부상당한 여행자의 상처에 포도주를 부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일화와(루가 10, 34), 위장병이나 재발되는 여러 종류의 병에도 포도주가 좋다고 디모테오에게 권유하던 바오로의 충고는(1디모 5, 23) 고대인들이 포도주에 약간의 약효가 있다고 보았던 증거다. 포도주가 사용되는 미사에는 음식의 상징이 아직도 보존되어 있다.


        최후 만찬에서 먹고 마시라고 하신 예수님의 명령은 음식을 상징하고 있는 것과 잘 맞는다. 예수님은 설교 중에 성체성사가 음식의 일면을 가질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내가 생명의 빵입니다. 내게로 오는 이는 결코 굶주리지 않을 것이고, 나를 믿는 이는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사실 내 살은 참된 음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입니다”(요한 6, 34. 55).


        성체성사는 그것이 상징하는 대로 자양분을 주는 효과를 낸다. 예수님 자신의 현존은 개인의 요구와 공동체의 요구대로 영성체 하는 사람에게 은총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죄악으로 상처를 입으면 그리스도와 그의 은총은 이를 치료해 준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성덕으로 나아가는 만큼 우리의 상징을 강화하고 촉진하신다.


        대개 친구는 친구의 요청에 호응하고, 음식은 육체가 원하는 바대로 변형되듯이, 성체성사의 효과는 다른 성사의 효과보다 더 다양하고 영성체자의 특수 상황과 사정에 쉽게 적응한다.


2) 일치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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