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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세례성사
작성일 2003-03-25 10:44
ㆍ추천: 0  ㆍ조회: 2481    
세례성사, 인호, 대세, 대부, 대모, 필요성
 

세례성사


1. 세례성사의 정의


        세례성사는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기초이며, 성령 안에 사는 삶으로 들어가는 문이며, 다른 성사들로 들어가는 길을 여는 문이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서 죄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며,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교회와 한 몸을 이루어 그 사명에 참여하게 된다. 세례는 물로써 말씀 안에 다시 태어나는 성사인 것이다.

        “세례를 준다”는 말은 “물에 담그다”, “물에 잠기게 하다”라는 의미이다. 물에 “담금”은 예비자를 그리스도의 죽음 속에 묻음을 상징하는데, 그는 그곳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새사람”(2고린 5, 17)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 성사는 또한 “성령에 의한 쇄신과 재생의 목욕”이라고도 불린다. 이 성사는 물과 성령으로 태어남을 의미하고 실현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이 목욕은 조명이라고 불리는데, 이 교육을 받는 사람들은 마음이 빛을 받기 때문이다. 세례로써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신 말씀을 받은 사람은 빛을 받은 후 “빛의 자녀”가 되고, 그 자신이 “빛”이 된다.



2. 구원경륜 안에서 본 세례


1) 구약의 세례 예표


                교회는 부활성야의 전례 중에 세례수를 축복하면서, 세례의 신비를 예시한 구원역사의 위대한 사건들을 장엄하게 기념한다. 이 보잘것없으면서도 기묘한 피조물인 물은 태초부터 생명과 풍요의 원천이었다. 성서는 하느님의 영이 물위에 “휘돌고” 있었다고 한다.


        교회는 노아의 방주를 세례를 통한 구원의 예표라고 보았다. 과연 방주 덕분에 “몇몇 사람만이 물을 통과해서 구원을 받았는데 그 수효는 여덟 사람”(1베드 3, 20)뿐이었다. 샘물이 생명을 상징하는 반면 바닷물은 죽음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바닷물은 십자가의 신비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징 체계에 따라 세례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일치함을 의미한다. 특히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 에집트의 종살이에서 참으로 해방된 것은 세례로 이루어지는 해방을 예고한다.


        끝으로 요르단 강을 건너는 일에서 세례가 예표되었다. 요르단 강을 건넘으로써 하느님의 백성은 영원한 생명의 상징이 되며,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약속된 땅을 선물로 받는다. 이 복된 상속의 약속은 신약 안에서 성취된다.


2) 그리스도의 세례


        구약의 모든 예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완성된다. 예수께서는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은 후 공생활을 시작하신다. 부활하신 후에는 사도들에게 다음과 같은 사명을 주신다.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마태 28, 19-20).


        우리 주께서는 “모든 의로움을 이루시기 위해”(마태 3, 15) 죄인들을 위한 세례자 요한의 세례를 자청하여 받으셨다. 예수님의 이 행위는 당신을 ‘비우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때 갓 창조된 물 위에 휘돌던 성령께서 새로운 창조의 전조로 그리스도 위에 내려오시고, 성부께서는 예수님을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마태 3, 16-17)이라고 선포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파스카를 통해서 모든 사람을 위해 세례의 샘을 열어주셨다. 사실 그리스도께서는 예루살렘에서 당신이 받으시게 될 수난을 “받아야 할 세례”(마르 10, 38)라고 이미 말씀하신 일이 있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창에 찔린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은 새로운 생명의 성사들인 세례와 성체성사의 전형(典刑)이다. 그때부터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날”(요한 3, 5) 수 있게 된 것이다.


3) 교회 안의 세례


        성령강림일 바로 그날부터 교회는 거룩한 세례를 거행하고 베풀어왔다. 이를테면 성 베드로는 자신의 설교에 감동 받은 군중에게 이렇게 선포한다. “회개하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시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될 것입니다”(사도 2, 38). 사도들과 그들의 협력자들은 유다인이든,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든, 이방인이든,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세례를 권한다. 세례는 항상 신앙을 전제한 것으로 드러난다. 성 바오로는 “주 예수를 믿으시오. 그러면 당신과 당신네 집안이 다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하고 필립비의 간수에게 분명히 말한다. “그 자리에서 그와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다”(사도 16, 31-33).


        사도 성 바오로에 따르면, 믿는 이는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죽음에 일치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다가 함께 부활한다.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입었다”(갈라 3, 27). 성령을 통하여, 세례는 깨끗하게 해주고, 거룩하게 해주고, 의롭게 해주는 목욕이다. 그러므로 세례는 물로 씻는 목욕으로서, 이를 통해 “불멸의 시앗”인 하느님의 말씀은 생명을 주는 효과를 낳는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세례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 “말씀이 물질적 요소와 결합되어 성사가 된다.”


3. 세례예식


        세례성사는 부활축일에만 집행되는 것이 아니고, 사실 일년 중 어느 때나 집행된다. 그러나 파스카 신비의 정신은 언제나 세례식에 침투해야 한다. 세례는 지망자를 성세수에 세 번 침수시키든지, 아니면 그의 이마에 물을 세 번 부으면서 집행된다. 물을 사용하면서 주례자는 다음과 같은 세례경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누구)에게 세례를 줍니다.”를 말한다. 물과 세례경은 영세자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면서 영위하도록 불린 삼위일체의 새 생명을 상징한다.


        통상 주교, 사제, 부제가 세례를 집행한다. 세례는 누구든지 심지어는 비가톨릭 그리스도인이라도 교회의 정신에 따라 신중한 의도를 갖고 예식을 이행하면 성사를 유효하게 집행할 수 있다. 모든 가톨릭 신자는 위기가 닥쳐왔을 때 세례성사를 줄 줄 알아야 한다. 이런 위급한 경우를 위해서 교회는 적당한 짧은 예식을 준비하였다. 그것도 사용할 수 없으면 사도신경을(이것도 필요하면 삭제할 수도 있다) 염하고 위에 말한 세례경을 외우면서 세례받을 사람 위에 물을 부으면 충분하다. 교회 공동체는 위급할 때에 세례 받은 어린이들이 성당에 올 수 있을 때를 위하여 마련된 특별 예식으로써 환영을 한다.


        각 세례 지망자는 적어도 대모나 대부를 정해야 한다. 대부모는 성숙한 사람으로서 신앙 생활을 하며, 영세자를 영성적으로 보살피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혼종혼인의 자녀들과 같은 특수한 사정에서는 분리된 교파에서 세례를 받고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이 둘째 대부모가 될 수 있다.


        세례 때에는 보통 어느 성인의 이름을 세례명으로 지어 준다. 세례명은 영세자에게 보호자요 친구가 될 만큼 영세자에게 잘 알려진 성인의 이름을 선택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4. 세례의 효과


1)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


        구약성서에 나타난 세례의 표징을 고찰할 때, 물은 파괴적인 동시에 생명을 준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세례에도 파괴하는 과정이 있다. “세례를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본받아 함께 묻히는 것이다”(어린이 세례 예식서 6). 성바오로는 “우리의 묵은 인간은 십자가에 이미 (그분과) 함께 처형되어 죄의 몸이 무너져 버렸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다시는 죄에 대해 종노릇하지 않기 위함입니다.”(로마 6, 6)라고 설명한다.


        어떻게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본받는가? 어떻게 우리는 그분과 함께 묻히어 죽음에서 생명으로 통과하는가? 어떻게 이전의 우리를 벗어버리는가? 성세수는 우리의 죄를 씻어 버리고, 우리를 새 생명의 길에 올려놓는다. 어른의 세례는 은총의 새 생명을 받을 때에 그의 죄가 사해진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의 힘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은총은 용서하고 치유하는 효과를 낸다. 따라서 세례는 원죄를 사해주며, 유아기가 지나서 영세하는 사람들의 개인적인 죄도 모두 사해진다. “여러분은 회개하고 각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성령의 선물을 받게 될 것입니다.”(사도 2, 38)그리스도에게로 개종하는 사람은 고해권자에게 죄를 고백할 필요가 없다. 세례 때에는 하느님의 특사로써 죄의 용서를 받는다.


        모든 인류에게 원죄는 다 있다. 이 점에서 어린이든 어른이든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은총의 새 생명에 도착해야 한다. 세례 예식의 구마기도가 이 점을 밝혀 준다. “성자를 이 세상에 보내신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천주여, 악신의 세력을 우리에게서 몰아내시고…엎드리어 간구하오니, 이 어린이를 원죄에서 해방시키시고 주의 성전으로 삼으시어, 성령이 이 안에 거처하시게 하소서”(어린이 세례 예식서 49).


        원죄가 사해져도 원죄의 결과는 다소 남아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교회는 다음과 같이 기도한다. “이 어린이들을 위하여 주께 간구하나이다. 이 어린이들이 장차 세속의 유혹을 겪으며 악마의 흉계와 싸워야 할 것을 주께서 이미 알고 계시니”(어린이 세례 예식서 221). 성바오로는 뜨거운 욕망 혹은 정욕 같은 원죄의 결과에 관하여 말하고, 정욕을 어떤 때는 ‘죄’라고 불렀다.


        세례로서 재생한 사람에게도 죄악에 대한 경향은 남아 있다. 죄에 대한 경향이 남아 있어 우리는 그것과 투쟁해야 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에 힘입어 그 경향에 세차게 저항하는 사람을 해칠 수는 없다. 이 투쟁, 즉 우리 욕망과의 고통스러운 투쟁은 예수님의 죽음에 평생을 두고 참여하는 것이다. 하느님이 우리가 이 투쟁을 하도록 허락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우리의 구속 사업에 더욱 충분히 참여하게 하시는 것이다. 때때로 이 투쟁이 우리에게는 너무 과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승리를 원하는 사람에게 승리를 보장해 주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은총은 활력을 주고 꾸준할 수 있게 한다.


2)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남


        영세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나고, 그분의 생명에 참여하기 위해서 그분과 함께 죽는다. “세례를 받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본받아 함께 묻히는 것이며,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함께 살게 되는 것이다. 세례로서 파스카의 신비를 기념하고 재현하는 것이니, 세례를 받는 사람은 죄의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아가기 때문이다”(어린이 세례 예식서 6). 우리는 부활한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다. 성 바오로가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처형되었습니다. 나는 사랑 있지만 이미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고 계십니다”라고 말한 것은 부활한 생명에 관하여 기록한 것으로 “내가 지금 육신 안에 살고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 아드님께 대한 신앙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갈라 2, 19-20)라고 첨가하였다. 그리스도의 부활한 생명에 참여함으로써 우리의 내적 쇄신은 이루어진다.


        세례는 우리를 교회의 성원이 되게 한다. 교회의 성원이 되는 것은 근본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즉 그것은 포도나무에 접목되어 그리스도의 몸에 깊이 결합되는 것이다. 깊이 파고드는 생명의 유대를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과 계약을 맺은 백성의 성원이 된다. 이 모든 것은 파스카 신비로써 이루어진다.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 여러분을 위하여 쏟는 것입니다”(루가 22, 20).


3) 하느님의 자녀가 됨


        “생명의 말씀과 함께 물로 씻는 세례는 사람들을 하느님 본성에 참여케 하며,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해준다”(어린이 세례 예식서 5). 세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남이며, 동시에 새로운 출생이다. 성 베드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찬양 받으소서. 그분은 당신의 크신 자비로 우리를 새로 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죽은 이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우리에게 생생한 희망을 갖게 하려는 것입니다”(1베드 1, 3)라고 했다. 우리가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고 예수님도 말씀하셨다. “진실히 진실히 당신에게 이릅니다. 누구든지 물과 영으로부터 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요한 3, 5).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외아들”(요한 3, 18)이기 때문에, 우리는 양자 결연으로서 자녀의 지위를 받는다. 그러나 자녀들이 법적으로 양자 입적될 때처럼, 이 양자 결연은 법적인 조작이 아니라고 성 요한은 보장한다. “아버지께서 얼마나 큰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셨는지 보시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으니, 과연 우리는 그분의 자녀들입니다”(1요한 3, 1). 자녀는 부모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된 하느님의 자녀라면, 우리가 어떤 양식이든 간에 하느님의 본성과 생명에 참여하는 것은 틀림없다. 성서도 우리가 하느님의 본성과 생명에 참여한다고 확언한다. “이 영광과 능력으로 가장 값지고 위대한 약속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졌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욕정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빚어진 부패를 멀리한 다음 이 약속된 것들을 통해서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하려는 것입니다”(2베들 1, 4).


4) 왕적 사제직


        베드로 전성의 대부분은 세례와 세례의 효과와 실천적 숨은 뜻에 관한 묵상이다. 베드로 전서는 위에서 말한 주제들을 한꺼번에 제시하며, 그 외에 다른 말도 한다. “여러분도 산 돌로서 거룩한 제관이 되기 위해 영적인 집으로 세워지도록 하시오. 이는 영적인 희생,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희생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치기 위함입니다”(1베드 2, 5). 여기서 성 베드로는 모든 사람을 정신과 진리에 있어 하느님의 예배자가 되게 하는 세례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분은 선택된 민족, 왕다운 제관들, 거룩한 겨레, 그분이 차지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어두움에서 당신의 놀라운 빛으로 여러분을 부르신 분의 업적을 여러분이 선포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전에는 여러분이 백성 아닌 백성이 되었습니다”(1베드 2, 9-10). 여기서 베드로 사도는 이집트 탈출을 회상하고 있으며, 그때에 레위 지파만 하느님 봉사를 하도록 특별히 지정되었다. 그렇지만 유대인 백성도 왕적인 제관이라고 불리었다(출애 19, 6).


        그리스도의 제사를 계속 재현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대사제직에 비슷하게 참여하는 사제의 새 제도가 제정되었으면서도, 모든 영세자들은 하느님 예배에 완전하고 의식적으로 또한 적극적으로 합세한다고 한다. 문맥이 보여주듯이 성 베드로는 여기서 백성들의 예배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전례의 의미뿐 아니라 생활의 모든 의무를 포용하고 성화하는 넓은 뜻으로 말하고 있다. 어린이 세례 예식서가 “세례는 또한 사람들을 교회에 결합시키고, 성령 안에서 하느님의 궁전을 함께 건설하게 하고, 사제들의 왕국과 거룩한 백성을 형성하게 하는 성사이며”(어린이 세례 예식서 4)라고 할 때에 이상의 사상을 종합한다.




5. 세례의 필요성


        교회는 복음의 말씀을 따라(요한 3, 3) 어느 누구도 세례 받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가르친다.


        구원을 위한 세례의 필요성에 관한 이같은 주장은 많은 사람을 당황케 할 것이다. 그리스도나 세례에 관하여 한 번도 듣지 못한 사람은 구원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결코 새로운 질문이나 새로운 대답이 아니다. 세례에는 물의 세례(水洗)만 있는 것이 아니라, ‘피의 세례(血洗)’와 ‘열망의 세례(火洗)’도 있다.

        피의 세례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음으로써 받는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순교한 초대 예비자들이 그랬듯이 무죄한 어린이들도 피의 세례를 받았다.


        열망의 세례의 범위는 넓다. 세례 받기를 명료하게 원하였으나 그 의도가 이행되기 전에 죽은 사람은 열망의 세례를 반드시 받게 된다. 또한 세례에 대한 열망이 반드시 명료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의 은총에 따라 하느님에 대한 신앙과 사랑을 가졌던 사람도 열망의 세례를 받을 수 있다. 명료하게나 묵시적으로 세례를 열망하였으나, 어떤 사정으로 세례성사를 받지 못한 사람도 분명히 열망의 세례를 받게 된다. 자신의 과오 없이 그리스도와 교회를 모르고 산 사람들이 만인에게 충분히 주어지는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반응으로 선한 생활을 하려는 노력을 했다면 그들도 이름 없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


        이같은 무명의 신앙도 묵시적으로 교회를 향해 왔다.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분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그러므로 알지 못하면서도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은 묵시적으로 그분의 뜻을 행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들은 묵시적이지만 세례를 원하므로 그것을 열망의 세례라 한다.



6. 세례의 인호


        세례성사는 견진성사와 신품성사와 마찬가지로 영구적 인호(印號) 혹은 표징을 박아 준다고 교회는 가르친다. ‘인호’라는 말은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그리스도교 신학에 도입하였다. 그는 군인이 어느 특정 지휘관에게 속하며, 그에게 충성해야 하는 것을 나타내는 표적(表迹)에서 그 뜻을 따왔다. 성서에는 역시 표지라는 뜻으로 쓰인 ‘인장(印章)’이란 말이 있다. 하지만 성사에서 쓰이는 인호는 볼 수 있는 예식에서 주어진다는 의미로서만 가시적이다.


        ‘인호’라는 말마디가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영성적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상의 세 가지 성사와 다른 성사 사이에 있는 큰 차이에 주목해야 한다. 다른 성사는 한 번 이상 받을 수 있으나 세례, 견진, 신품성사는 한 번밖에 받지 못한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세레, 견진, 신품성사가 주는 은총은 범죄할 때에 상실되지만, 동시에 영구적 결과도 낸다. 성사를 받은 사람이 대죄를 범해도 이 결과는 존속되고 영구히 남아 있다. 사도 요한은 하늘에서 “하느님 종들의 이마에 인장을 찍을 때”(묵시 7, 3) 사용될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장”을 가지고 있는 천사를 보았다. 한편 성 바오로는 우리가 복음을 받아들일 때에 이미 도장이 찍혀 있었다고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도 진리의 말씀을, 곧 여러분을 위한 구원의 복음을 듣고 또한 그이를 믿어서 약 속의 성령으로 날인되었습니다”(에페 1, 13). 도장은 기름 바름과 성령과도 연결된다. “하느님은 우리를 여러분과 함께 그리스도 안으로 이끌어 굳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주셨습니다. 또한 그분은 우리에게 날인을 하셨고 우리 마음 안에 그 보증으로 영을 주셨습니다”(2고린 1, 21-22). 사도 요한과 마찬가지로 성 바오로도 이 도장이 영원히 존속한다고 보았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시오. 여러분은 바로 그분 안에서 속량의 날을 위해 날인되었습니다”(에페 4, 30).


        인호는 교회의 안정과 영구성을 의미한다. 인호는 하느님의 은총이 오래 존속하며, 하느님께서 당신이 선택하신 사람들을 통하여 자비의 사업을 계속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1고린 3, 23). 사제가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충분히 참여하고, 그분의 제사를 어디서나 재현하도록 서품을 받았듯이 모든 신자를 세례로써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기본적으로 참여하며,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도록 지정되고, 그리스도의 제사와 합치하여 자신들의 생활 전체를 봉헌할 수 있게 되었다. 실패해도 그들은 세례를 다시 받지 않고, 고해성사로써 교회와 화해한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선택하시어 당신의 사람으로 표시를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에게 속해 있다. 그리스도는 우리 모두를 지키기 위해서 기도하시고 죽으셨다. “아버지, 원하옵건대 제가 있는 곳에 아버지께서 제게 주신 그들 또한 저와 함께 있게 하시고…내게 주신 사람은 누구나 내가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리는 것, 이것이 나를 보내신 분의 뜻입니다”(요한 17, 24). 세례 인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그리스도인의 영구적 소명의 표징이고, 또한 하느님의 자발적이고 물리칠 수 없는 사랑의 표징이다.




7. 세례성사에 대한 특수한 것들


1) 유아세례


        교회는 유아세례의 유효성을 장엄하게 규정하였고, 실제로 교회법은 가톨릭 신자는 출생 후 되도록 빨리 자녀에게 세례를 받게 하라고 명한다. 어린이 세례는 초대교회 때부터 시행되었고, 그리스도교화된 민족이나 국가에서는 일찍부터 널리 일반화되어 왔다. 그리스도 신자인 부모나 자녀들을 신자로 기르는 것은 당연할 뿐더러 종교적 의무이기도 하다. 그 교육은 입문성사인 세례에서부터 시작된다. 물론 어린이들은 정신적 지능이 미숙하기 때문에 스스로 신앙에 귀의할 수는 업고, 그 생존 방식대로 부모에게 의지하여 또 부모를 통해 성사의 표징을 받아들인다.

        원래 세례는 인간 자신의 힘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이 자비로이 베풀어주시는 은총의 표징이다. 은총은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인 교회를 통해 구원활동을 하신다. 구원의 이런 공동체적 성격은 특히 어린이들의 세례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어린이들에게 세례를 주는 것은 그들이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신앙의 생활권인 교회공동체 안에 받아 들여서 부모와 대부․대모, 혹은 교리교사와 주위의 어른들을 통해 그 믿음을 길러 주기 위함이다.


        어린이들은 세례를 받을 때 그들 나름의 순진 무구함에서 은총과 성령으로 충만하여 그리스도와 결합하고 장래의 봉사적 삶과 속량적 죽음과 영원한 생명을 위해 축성된다. 물론 그 신앙은 어린이가 자라면서 교육을 통해 성숙하고 심화된다. 그래서 교회는 특히 부모와 대부․대모에게 그리스도교 교육의 보장을 요구한다. 이런 점에서 어린이들이 성장하였을 때에 행하는 성세 서원 갱신은 의식적 신앙 귀의의 표징으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진정한 갱신은 더 나이가 들면서 일상생활의 신앙체험을 통해 실천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2) 대세


        대세는 생명의 위험이 있는 사람에게 베푸는 비상 세례이다. 대세는 비신자도 집전할 수 있다. 대세를 줄 대는 첫째 영세를 주는 이가 교회의 가르침을 행할 지향이 있어야 하고, 둘째로 영세 받을 사람이 아직 의식이 아직 남아있는 경우에는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가르침을 믿겠다는 표시를 하여야 하며 그 표시를 받은 후에야 집전자는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누구)에게 세례를 베풉니다”라는 말과 함께 세례를 받는 이의 이마에 물을 부어야 한다. 만일 받는 이가 어린아이이거나 의식이 없고 숨만 쉬는 경우에는 조건부 대세로서, “(세례받는 이의 세례명), 당신이 세례를 받을 만하면,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누구)에게 세례를 베풉니다”라고 하면서 물을 부어야 한다. 이럴 경우에 성당에 급히 연락을 하고 세례를 베푼 사실을 알려 영세대장에 올려야 한다.


3) 대부모


        세례성사를 받을 때 대부모를 세우는 것이 원칙이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남자는 대부, 여자는 대모를 세우는데, 대부모는 가톨릭 세례를 받은 사람이어야 하고 세례자와 부모 형제 관계이면 안된다. 대부모는 교회의 후견인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즉 영세 받는데 도와주고, 영세자의 신앙교육과 신앙생활을 돌보아 주며, 영세자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모범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영신적인 부모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4) 다른 교회에서 받은 세례에 관해서


        가톨릭 교회에서는 원칙적으로 가톨릭이 아닌 다른 그리스도교에서 받은 세례도 인정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거행된 세례성사의 효력은 세례를 베푼 사람의 능력이 아닌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능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비가톨릭 교회에서 세례받은 개종자들에게 신중을 기하기 위해서 ‘조건부’로 세례를 주는 관습이 있었지만, 1983년의 새 교회법은 이를 폐지하였다. “비가톨릭 교회 공동체에서 세례 받은 이들은 조건부로 세례 받지 아니하여야 한다. 다만 그 세례 수여 때 사용한 재료와 말의 형식을 조사하고 또한 세례 받은 어른 본인과 세례준 교역자의 의향을 검토한 후 세례의 유효성에 대하여 의심할 만한 중대한 이유가 있으면 그러하지 아니한다.”(869조 2항).


        간단히 얘기하면 비가톨릭 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사람이 가톨릭 교회에 입교할 경우, 이전에 받은 세례에 중대한 결함이 발견되어 유효성에 의심이 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세례를 다시 받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성공회의 성직자가 집전한 세례만 유효하다고 인정한다. 기타 개신교 교파의 교역자가 집전한 세례는 유효성이 의심되기 때문에 일단 심사를 거쳐야 한다. 왜냐하면 일부 교파에서는 세례성사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거나,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교역자가 세례성사를 올바로 집전하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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