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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자료실
 
작성자 7성사, 칠성사
작성일 2003-03-02 11:49
ㆍ추천: 0  ㆍ조회: 1048    
혼인성사
 

혼 인 성 사



1. 들어가는 말                                                                           1

2. 성서적 기초                                                                           1

  2.1. 성령을 전달하는 고유한 예식의 부재                                                 1

  2.2. 입교 예식이 세례와 성령세례로 나뉘었는가?                                         1

  2.3. 안수, 도유, 봉인의 상징적 의미                                                      2

3. 교의사적인 전개                                                                       3

  3.1. 하나의 입교 예식: 세례, 안수 그리고 도유                                           3

  3.2. 안수와 세례의 분리                                                                 3

  3.3. 견진의 성사성에 관한 논쟁                                                          4

  3.4. 입교 절차의 일부로써의 견진의 재발견                                               4

4. 조직신학적 고찰                                                                       4

  4.1. 견진의 의미                                                                        4

  4.2. 견진 교리의 내용에 미치는 영향                                                     5

  4.3. 견진성사와 견신례                                                                  5


1. 들어가는 말


역사적으로 고찰해 보면 견진성사는 원래 입교성사인 세례성사에서 분리되어 나왔다. 그러므로 견진은 세례와 밀접한 연관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견진 성사의 독특성을 일반적으로는 성령을 수여하는 점에서 보는데, 그러나 성령 수여는 실제적으로 세례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견진성사의 독특성에 대해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전통적으로 견진을 성인이 되는 성사, 혹은 불신앙에 대한 투쟁에 힘을 돋구어 주는 성사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근거를 성서와 전통에서 찾기는 어렵다.

우리의 과제는 견진성사가 형성된 과정을 살펴보고, 7성사 중의 하나로 그 고유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2. 성서적 기초


신약성서에서 그리스도교 입문을 위한 일반적인 경우로서 세례와 구분되어서 성령을 수여하는 고유한 예식은 나타나지 않는다. 단지 개개의 요소들을 찾아서 후대의 견진성사의 실천과 신학을 위한 연결점으로 제시할 수 있을 뿐이다.


2.1. 성령을 전달하는 고유한 예식의 부재


신약성서에 의하면 성령의 전달은 세례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사도행전에서 두 군데에서 세례에 속하는 성령 수여가 사도들의 안수와 연관되어 언급되고(사도 8,17 이하; 19,6), 히브리서에서는 “세례와 안수”가 당연하게 앞뒤로 연결되어 얘기된다(히브 6,2). 다른 한편으로 사도행전에서 안수가 없는 세례와 성령 수여에 대해 얘기한다(사도 2,38; 10,44-48). 바울로에게 세례는 항상 성령의 전달까지 의미하며, 요한은 “물과 영”을 통한 탄생을 얘기한다. 한마디로 신약성서에서는 세례 이외에 성령을 전달해 주는 고유한 예식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성령의 선사는 항상 그리스도교의 세례와 연관되어 있었다.


2.2. 입교 예식이 세례와 성령세례로 나뉘었는가?


사도행전은 단 한번 성령이 수여되지 않은 세례에 대해 언급한다. 필립보가 사마리아에서 성공적으로 선교하였지만,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에게도 아직 성령이 내리지 않았고 단지 그들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았던 것이다. 그 때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손을 얹자 그들은 성령을 받았다”(사도 8,16-17). 스콜라 신학에서는 이 텍스트를 세례와 구분되어서 사도들(그리고 그의 후계자들)에게 유보된 성령 수여의 고유한 행동이 존재한다는 증거로 보았다: 필립보는 세례를 주었으나 그러나 성령을 중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사도들은 새로 회개한 이들에게 안수를 하기 위해서 사마리아로 가야 했다.

그러나 사도행전이 의도하는 바를 살펴보면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는지 의문이 간다. 사도행전의 중심적인 주제는 예루살렘의 모교회에서 출발한 하느님의 말씀과 교회가 하느님 영에 의해 움직여져서 지금까지의 경계를 넘어서 널리 전파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정적으로 경계를 넘어서는 데에 성령에 대한 언급이 꼭 나온다(사도 10,44-48; 15,28). 바로 이런 맥락에서 처음으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으로 구성된 교회가 설립되는 사마리아에 관계해서 성령이 언급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도들도 여기에 관련될 수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성령에 의해 생성된 예루살렘 모교회 공동체의 보증인이기 때문이다. 이런 특별한 상황을 묘사한 대목에서 입교 예식은 신약성서에서 일반적으로 수세와 사도들의 안수로 구분되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사도 8,14-17이 필립보가 성령을 중개하기에 불충분한 능력을 지녔다는 것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아님은 사도 8,26-40을 참조해 보면 할 수 있다. 여기에서 필립보가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세례를 주었는데, 거기에 무엇을 추가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아나니아 역시 바울로에게 세례를 주고, 안수를 하고 성령을 약속할 수 있었다(사도 9,17-18). 루가에 의하면 사도들의 특별한 권한은 교회 공동체의 생사가 걸려 있는 곳에 자리한다. 이는 이방인의 세례에서(사도 10,44-48), 혹은 예루살렘 밖의 공동체에서의 안수에서(사도 8,14-17) 나타난다. 모든 세례와 성령 전달의 행동에 사도들의 권한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2.3. 안수, 도유, 봉인의 상징적 의미


안수는 성서에서 축복의 행동(창세 48,14 이하; 마르 10,13-16), 치유의 행동(마르 5,23; 6,5; 16,18; 사도 28,8), 직무 위탁의 표지(민수 27,15-23; 신명 34,9; 사도 6,1-6; 1디모 4,14; 5,22; 2디모 1,6)로 나타난다. 안수가 성령을 전달하는 행동이 된다고 할 때 바로 이런 내용을 생각하게 된다: 받아들임, 하느님의 삶의 영역 안에로의 진입, 소외를 낳는 죄에서의 치유, 파견.

도유는 고대에 특히 목욕한 다음에 좋은 향기를 내기 위해서 행하여졌다. 또 투기(鬪技)에 임하기 전에 몸을 유연하고 잡을 수 없이 매끄럽게 하기 위해서도 기름을 발랐다. 이스라엘에서는 사제와 왕들이 도유를 통해서 그들의 직무에 들어서게 되었다(출애 29,7; 레위 4,3; 1사무 16,1-13, 2사무 2,4 등). “기름부음 받은 자”는 왕의 칭호가 되었고(시편 2,2), 나중에는 종말에 오기로 기대되던 구원자의 칭호가 되었다(이사 61,1). 도유와 하느님의 영의 수여가 연결되기도 한다.1) 신약성서에는 성령을 전하는 것과 관련된 도유예식이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도유”는 세례에 따르는 성령의 수여를 상징하는 말이다: “하느님은...우리에게 기름을 부어 주셨습니다. 또한 그분은 우리에게 (인증의) 날인을 하셨고 우리 마음 안에 그 보증으로 영을 주셨습니다”(2고린 1, 21-22; 비교. 1요한 2,20.27).

여기서는 도유, 성령 전달이 봉인(封印)이라는 표현과 연결되는데, 이 말도 고대의 법과 종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봉인은 조약을 증명하고, 개인의 소유물을 표시하며, 도망간 노예를 낙인찍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유대의 묵시문학은 종말에 선택받을 사람들을 위한 봉인이라는 생각, 즉 볼 수 있는 표시를 그들 몸에 지님으로써 구원받도록 정해진 것을 드러낸다는 생각을 발전시켰다.”2) 유대교에서는 할례를 계약의 봉인으로 해석하였다.

성서시대가 지나면서(지역적으로 다양한) 안수와 도유가 입교 예식에서 본질적인 구성 요소로 확립되고, “봉인”은 입교 예식을 완료하여 종결하는 것을 가리키는 중요한 말마디가 되었다.


3. 교의사적인 전개


3.1. 하나의 입교 예식: 세례, 안수 그리고 도유


고대 교회의 발전된 입교 예식에서는 여러 번 안수와 도유가 있었다. 히뽈리뚜스(+ 235)는 로마에서는 세례를 수여한 다음에 주교가 안수하고 도유하였다고 증언하고, 아프리카 출신 떼루뚤리아노(+ 220 이후)와 치뿌리아노(+ 258)은 세례 이후에 도유 없이 안수만 한다고 전한다. 즉 서방교회에서는 안수가, 동방교회에서는 도유가 점점 더 중요시되었다. 이에 상응해서 성령론적으로 해석에 있어 서로 다른 강조점을 드러내었다: 서방의 신학자들은 주교의 안수를, 예루살렘의 전통은 도유를, 안티오키아의 요한 크리소스무스(+ 407)는 세례 도중에 행하여진 사제의 안수를 성령 수여의 표시로 보았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성령의 선사를 세례에서 분리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성령의 선사는 여러 부분으로 구성된 하나의 입교 예식의 결실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3.2. 안수와 세례의 분리


서방교회에서는 4세기 이래로 주교의 안수가 세례에서 분리되기 시작하였다. 이는 몇세기 동안 지속된 과정인데 여기에는 3가지 중요한 요인이 작용하였다: ⑴ 원죄론과 관련되어서 가능한 빨리 어린이에게 세례를 주었던 관습. ⑵ 세례받은 이단자들의 입교: 그들은 다시 세례를 받지 않고 주교의 안수만으로 받아들여졌다. ⑶ 교회의 확장과 그와 연계된 주교 직무의 구분: 사제는 세례를 주고, 안수는 나중에 주교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주교의 안수를 위한 고유의 예식을 표현하기 위해서 “confirmatio”(확증)란 용어가 사용되었다.

이와는 반대로 동방교회에서는 교회가 커지고 어린이 세례가 관습이 된 다음에도 입교 예식의 전체성을 유지하였다. 오늘날까지 유아에게도 세례, 도유, 성체성사가 함께 수여된다. 도유는 일반적으로 사제에 의해서 실시되는데, 주교의 현존은 주교가 축성한 기름이 사용되는 것으로써 표현된다.

서방교회의 신학에서는 세례와 구분된 견진성사가 실현됨에 따라서 견진의 특별한 기능을 명확하게 밝히려고 시도한다. 견진성사에 귀속된 효과를 여러 가지로 보았는데, 전면에 나타난 것은 그리스도 신자임을 충만케 한다, 복음선포에로의 파견된다, 신앙을 위한 싸움에 힘을 북돋운다는 것이다. 마지막 것은 스콜라 신학에서 주도적인 주제로 작용한다: 세례 때 수여된 성령은 죄의 사함을 위해서, 견진 때 수여된 성령은 “견고케 하기 위해서”3) 견진은 내적으로는 죄의 유혹에 대항하는 데에, 외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용하게 고백하는 데에 힘을 북돋운다. 스콜라 신학은 견진을 고유한 성사로 인정하고, 반복해서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영혼에 각인되는 견진성사의 인호로 밑받침한다. 이 성사의 제정에 대해서는 문제가 있다고 보았으나, 긍정적으로 답하였다: 보나벤투라(+ 1274)는 사도들을 통해 제정됐다고 얘기하고, 토마스 아퀴나스(+1274)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겠다는 하신 “약속”을 근거로 얘기한다. 동방교회에 비해서 서방 교회 교도권의 결정문은 주교를 “정규적인” 수여자라고 강조한다.


3.3. 견진의 성사성에 관한 논쟁


종교 개혁자들은 견진을 고유한 성사라고 가르치는 것은 세례를 평가절하하고 주교직을 과대평가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도유용 기름에 대한 미신적인 태도를 경계하였다. 견진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제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성사로 볼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신앙이 구원을 위해 갖는 중요성 때문에 그들은 유아 세례를 받은 이들을 위한 교리교육을 지지하였다. 그래서 슈트라쓰부륵(Stassburg)의 개혁자 마르틴 부케어(Martin Bucer, + 1551)는, 아마도 에라스무스(Erasmus von Rotterdam, + 1536)에게 영향을 받아서, 유아세례를 보충하고 확증하는 교리교육을 발전시켰는데, 이 교육은 공개적인 신앙고백과 안수로써 마무리되었다. 여기서부터 개신교의 “견신례”(Konfirmation)이 생겨났다. 트렌트 공의회는 종교 개혁자들의 주장에 반대해서 견진의 성사성과 주교의 수여권을 확인하고, 도유용 기름에 특별한 능력을 귀속시키는 것을 “성령을 거스르는 부당한 행위”라는 비난을 배척한다.4)


3.4. 입교 절차의 일부로써의 견진의 재발견


20세기에 들어서 전례 개혁이 진행되면서 가톨릭 신학에서는 입교를 전체적으로 보는 관점이 다시 강조되었다.5) 대부모는 견진자들의 신앙 도정에 동반자가 되고, 견진성사는 공동체 전체와 함께 거행되어야 하며, 성찬례로 이어져야 한다. 어른이 입교하는 경우는 세례와 견진이 함께 거행하도록 한다; 이런 이유에서 어른에게 세례를 줄 자격이 있는 모든 사제는 법 자체로 견진을 집전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6) 1971년 바오로 6세 교황은 견진 예식의 형상을 확정하였다: “견진성사는 크리스마 성유를 이마에 바르고, 안수를 하고, ‘하느님의 선물, 성령의 봉인을 받으시오’라는 말함으로써 수여된다7). 이 말은 이미 4세기에 증언된 동방교회의 정식을 수용한 것인데, 이는 견진을 입교 차의 “봉인”으로 이해한다는 것을 드러낸다.



4. 조직신학적 고찰


4.1. 견진의 의미


1971년에 개정된 견진 수여 양식에서 다시 등장하게 된 “봉인”이라는 표상은 오늘날 견진을 이해하는 데에 열쇠가 될 수 있는데, 이것이 역사적인 실태에 가장 부합한 접근일 것이다. 견진은 고대 교회의 세례 예식의 최종적 행동인 주교의 안수와 도유에서 발전되었다. 이 행동은 증명서의 봉인처럼 세례사건을 “봉인”하고 확인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측면에서 현대의 견진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견진은 세례를 봉인하고, 승인하며 완성한다. 세례에서 완성되어야 할 것은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다: 어른이 되어서 세례를 받은 사람에게 견진은 이들이 특별히 모든 권리와 의무를 갖추고 완전히 교회에 소속된 사람이라는 것과 신앙을 증거하도록 위탁하고 강화하는 측면을 강조한다; 유아 세례를 받은 사람에게 성인이 되어서 받는 견진은 추가적으로 개인적인 신앙 결단의 표시가 된다. 이런 모든 점에서 성령이 선사되는데, 성령의 선사는 세례사건의 중심적인 내용을 이룬다.

교회법에서 다른 교회 직무자들에게도 견진을 수여하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을 넓혀간다 하더라도, 주교가 “정규적인” 견진 수여자라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8) 이점은 견진을 통해서 교회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이 최고 공식적으로 인정됨을 드러낸다.


4.2. 견진 교리의 내용에 미치는 영향


이런 관점에서 견진 교리를 그리스도교 신앙에로의 입문과 훈련으로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적합하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견진 교리가 특별히 성령론이나 견진신학에 집중되지 않아도 크게 주제를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견진 교리는 흔히 보충적인 교리 교육의 기회로 삼는데, 이는 입문 과정으로서의 세례와 견진의 특성에 정확하게 부합한다.


4.3. 견진성사와 견신례


개신교에는 견신례라는 예절이 있는데, 그에 대한 근본적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의 일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개신교 신학에서는 이에 대한 다양한 주제가 병행해서 나타난다: 성만찬에 참여하는 것을 허가함, 신앙 교육, 개인적인 신앙의 결단, 성인 나이가 되는 경계점에서 힘을 북돋아 줌, 평신자 서품 등. 보통으로는 개신교에서 견신례는 성만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예식이고, 가톨릭에서 견진은 유아 세례를 받은 사람이 첫 영성체 이후에 받는 예식이다. 견진과 세례신학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가톨릭의 견진 이해와 개신교의 견신례 이해가 서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교회일치를 위한 연구서 “Lehrverurteilungen - kirchentrennend?”(1986)에서는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세례와 견진이 각기의 방식으로 하나를 이룬다는 것을 고려하면, 견진을 통해서 신도들은 더욱 완전히 교회에 결합되며 성령의 특별한 능력을 받는다는 가톨릭의 가르침9)과 견신례는 세례를 통해서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 완전히 속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교회의 행동으로써, 이 사람이 교리 교육을 통해서 교회의 구성원 신분을 온전히 사용하도록 인도하는 것이라는 개신교의 이해 사이에는 교회를 분리시킬 정도로 다른 점이 있는 것은 아니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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