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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자료실
 
작성자 교회사, 한국교회사
작성일 2002-06-04 17:05
ㆍ추천: 0  ㆍ조회: 750      
병인박해 순교자 삐에르 오매뜨르 (Pierre Aumaitre. 1837-1866)
 

삐에르 오매뜨르 (Pierre Aumaitre. 1837-1866)

  ‘오(吳) 신부’라고 불리던 오매뜨르 신부는 1837년 4월 8일에 앙굴램 교구에 속하는 뤼펙 지방의 에젝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집안이 경제적으로 어려워 본당 신부와 어느 평신도 선생 밑에서 개인적으로 라틴어를 배웠다. 1852년 10월에 리쉬몽 ‘성모 신학교’에 입학하였고 5년 후에 앙굴램 교구 대신학교에 진학하였다. 1859년 8월 18일에 교구장의 허락을 받고 ‘파리 외방 전교회’의 신학교로 전학하였다. 1862년 6월 14일에 그는 사제 서품을 받은 후에 조선의 선교사로 임명되어 같은 해 8월 18일에 부임지를 향해 프랑스를 떠났다.

  1863년 3월에 오매뜨르 신부는 피낭 신학교에서 학업을 일부 마친 조선인 신학생 두 명을 데리고 중국배를 타고 약속 장소인 모인도에 닿았으나 중국 선원들이 악의로 충항을 늦추었기 때문에 마중 나온 조선배가 15일 동안 기다리다가 돌아간 뒤였다. 그의 일행은 중국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조선 교회와 연락하고 약속 장소에 와서 조선배를 만나 한양에 들어올 수 있었다.

  한양에 도착한 후에, 오매뜨르 신부는 베르뇌 주교댁에서 잠시 머물고 주교의 주선으로 경기도 수원 지방으로 내려가 몇 달 동안 선교지방의 풍습을 익히고 조선어로 사목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후에 그는 수원 지방의 ‘새암골’이라는 마을에 정주하면서 성무를 수행하였다. 1866년에 이르러 박해의 소문이 그의 관할 지역에 전파되었을 때에 오매뜨르 신부는 신자들이 동요를 일으켜 사목 활동을 중단하고 문제 해결을 모색하기 위해서 다블뤼 주교를 찾아갔다. 주교는 위앵 신부를 불러 함께 하루를 보내면서 의논하였다. 세 선교사들은 과거의 박해(병오박해, 경신박해)와는 달리 이번에는 중앙 정부가 지시한 전국적인 박해이고 성직자들의 존재가 널리 알려져 있을 뿐 아니라, 내포 지방과 같은 평야 지대에서는 피신할 수도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오매뜨르 신부는 한때에 다블뤼 주교와 해로를 통해서 출국을 시도하였으나 위험이 많아 포기하고 그의 관할 지방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곧이어 오매뜨르 신부는 주교가 체포되었다는 소식과 포졸들이 근처 마을을 수색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자수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다블뤼 주교가 자수를 지시한 편지를 갖고 오는 신자들을 만나지 못한 채 주교댁에 도착하였다. 오매뜨르 신부는 주교와 위앵 신부 선교사들과 황 석두(루까)와 함께 한양 포도청에 압송되었다. 그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심문을 받고 사형 선고를 받은 후에 ‘갈매못’에서 순교하였다. 당시에 왕궁에서 국혼(國婚)이 있어서 사람의 피를 흘리는 것이 불길한 징조가 되지 않을까 염려하여 처형 장소를 한양이 아닌 다른 곳으로 옮겼다.

  오매뜨르 신부의 시신은 다른 순교자들의 시체와 함께 근처에 매장되었다가 2개월 후에 신자들이 홍산 지방으로 이장하였다. 1882년 3월에 순교자들의 유해는 발굴되어 11월에 일본으로 옮겨졌다가 10년 후에 조선으로 돌아와 명동대성당(1900년 이후)에서 1967년 절두산 순교자 기념관의 지하 성당에 안치되었다. 오매뜨르 신부는 1968년에 복자로 선언되었고 1984년에 성인으로 선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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