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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자료실
 
작성자 교회사, 한국교회사
작성일 2002-06-04 16:29
ㆍ추천: 0  ㆍ조회: 576      
가 성직제도의 문제점 발견
 

조선 교회의 북경 밀사 파견

  1787년에 이르러 유항검은 신부로 임명을 받고 난 후에 여러 가지 교회 서적을 자세히 읽으면서 성직자에 대한 교리를 연구하다가 동료와 자기가 신부로서 행하고 있는 성무 활동이 커다란 잘못임을 깨닫는다. 그는 즉시 이승훈에게 편지를 보내어 이 문제를 북경 교회에 문의할 것을 요구하였다. 따라서 1789녀에 조선 교회의 가성직자단(假聖職者團)의 대표인 이 승훈과 권 일신이 북당(북천주당)의 선교사들에게 보낼 편지를 쓴다. 그리고 이 문의 편지가 비밀리에 확실하게 전달될 수 있는 방도를 모색하던 중에 중대한 사명을 완수하기에 적합한 밀사(密使)를 찾아내었다.

  경기도 양주 지방의 양반가문의 윤 유일(바오로). 그는 권일신의 제자로 성격이 온순하고 비밀을 잘 지키는 사람으로서 당시는 예비 신자였다. 윤 유일은 자기에게 맡겨진 사명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1789년 10월, 북경으로 향하는 조선사절단 속에는 상인으로 변장한 윤 유일이 끼어 있었다.

  윤 유일은 북경에 도착하자 즉시 이승훈에게 세례를 준 북당의 쟝 조셉 드 그라몽 신부를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하고 '나자로회'의 선교사인 로 신부를 만나게 되었다. 1790년 봄에 윤 유일은 이 신부에게 조건부 세례를 받고 북경 주교좌 성당인 남당에 가서 교구장 알렉산드르 드 구베아 주교를 만나 편지를 전달하고 조선 교회의 사정을 보고하였다. 북경 주교는 뜻밖에 탄생한 교회의 발전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하였고 편지에 대한 답장을 써서 윤유일에게 주었다. '사목교서'의 성격을 띤 이 편지는 옷 속에 쉽게 감출 수 있도록 명주 조각에 썼다.

  1790년에 주교의 교서는 무사히 조선 교회에 전달되었다. 여기서 구베아 주교는 조선의 복음화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리면서 신자들에게 항구하게 신앙심을 고취하도록 권면하였고 천주교의 교리와 윤리(계명)를 간단하게 설명하였다. 그리고 조선의 교계 체제의 교회 조직과 평신도의 성사 집전을 엄하게 꾸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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