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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전례
작성자 말씀과 전례
작성일 2008년 1월 12일 (토) 10:33
분 류 연중2-7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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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해 연중 제 3주일 주일강론 모음 ”
 

연중 제 3 주일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다가왔다.



오늘의 제1독서와 복음에서는 동일한 주제가 되풀이되어 나타나고 있다. 즉 오늘 복음에서 마태오 복음사가는 이사야의 예언(제1독서의 내용)이 그가 예언했던 바로 그 지방에서 그리스도의 구원활동에 의해 실현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즈불룬과 납달리, 호수로 가는 길, 요르단강 건너편, 이방인의 갈릴래아, 어둠 속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겠고, 죽음의 그늘진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치리라”(마태 4,15-16; 이사8,23-9,1 참조)

두 독서간의 일치점은 비단 해방과 구원의 결정적 사실이 전개되고 있는 지형적 동일성에서뿐만 아니라 ‘빛’이라고 하는 그 상징적 개념에 의해서도 나타난다. 우리는 그 ‘빛’이라는 개념을 예수 공쳔 때까지 성탄시기 동안 내내 접했고, 또 지난 주일에도 그에 대해 깊이 다루었다. “나는 너를 만국의 빛으로 세운다. 너는 땅 끝까지 나의 구원이 이르게 하여라”라고 이사야 예언자는 우리에게 말했다.(49,6) 오늘의 응송도 같은 주제를 되풀이하고 있다. “주께서 나의 빛 내 구원이시거늘 내 누구를 두려워하랴?”(시편26,1)

시편은 그 빛이라는 상징적 개념의 의미를 우리 각자가 무수히 접할 수 있는 생활한 체험에 비추어 생명, 복락, 행복, 구원, 기쁨 등등과 같은 뜻을 지닌 말로 제시하고 있다. 빛이 없는 곳에는 생명도, 안전도 또 어떤 움직임이나 성장의 가능성도 없다. 따라서 ‘어둠’은 죽음과 같은 말로 이해된다. 그래서 마태오 복음사가는 이사야서에 나오는 ‘캄캄한 땅’이라는 대목을 “죽음의 그늘진 땅”(마태4,16)이라는 말로 어려움 없이 바꾸어놓고 있다. 하느님은 모든 생명과 구원의 원천이시기 때문에 어째서 그분이 ‘빛에 싸여 계신 분’ 또는 ‘빛 가운데 계신 분’(1디모 6,16참조)이시며 또한 ‘빛’ 자체이신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느님은 빛이시고 하느님께서는 어둠이 전혀 없습니다.”(1요한 1,5) 그리스도 마찬가지이시다. 그래서 요한 복음사가는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들 비추는 참 빛”(요한1,9)이라고 한다.



“즈불룬과 납탈리는 큰 빛을 볼 것이다.”

마태오에 의한 복음 내용으로부터 살펴보자. 우리는 그것과 더불어 이사야서의 내용(8,23ㄴ-9,3)도 보게 될 것이다. 오늘 복음은 세 부분으로 쉽게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 가파르나움으로 가심(4,12-17). 첫 번째 제자들을 부르심(4,18-22). 예수의 활동에 대한 간략한 요약(4,23). 단 마지막 두 구절(4,24-25)은 빼고 있다.

“요한이 잡혔다는 말을 들으시고 예수께서는 다시 갈릴래아로 가셨다. 그러나 나자렛에 머물지 않으시고 즈불룬과 납탈리 지방 호숫가에 있는 가파르나움으로 가서 사셨다. 이리하여 예언자 이사야를 시켜 ‘즈불룬과 납탈리, 호수로 가는 길, 요르단강 건너편, 이방인들의 갈릴래아 ...  큰 빛을 보겠고, 죽음의 그늘진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치리라’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마태4,12-16)

여기서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께서 겐네사렛 호숫가(‘바다’)에 있는 가파르나움에 가신다는 사실을 다른 공관복음사가들(마르1,21; 루카4,13)이나 요한 복음사가(2,12)와는 달리 앞서 예견하고 있다. 어째서 그랬을까? 특별한 동기가 무엇일까?

그의 복음의 전체적 구조에 비추어 볼 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근본적 동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동기는 가파르나움이 옛적에 즈불룬과 납탈리 두 종족이 쫒겨나 있던 지역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마태오는 아시리아의 왕 디글랏빌레셀 3세의 군대에 의해 침략을 당해 박해를 받고 있던(기원전732년경) 그 민족들에게 곧 해방이 찾아오리라고 선포했던 이사야 예언자의 예언(8,23-9,1)이 가파르나움에서 실현됨을 보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한다. 이 모든 사실이 ‘빛’이라는 상징적 개념을 통해 표현되고 있다. 마태오 복음사가가 볼 때 그 당시 그 지역에 찬연히 빛난던 그 ‘큰 빛’은 분명 이사야가 선포했던 그 정치적 해방보다도 더 의미깊은 해방을 모든 인간들에게 가져다주시는 그리스도이시다.

둘째 동기는 마태오 복음사가가 할례받지 않은 사람들이 그 국경지방에 많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에도 관심을 두고 있는 점에서 비롯한다. 사실 이사야 예언자는 ‘이방인들의 갈릴래아’ 또는 더 정확히 말해 ‘이방인들의 지역’에 대해 말하고 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이러한 특별한 상황을 감안하여 비록 유다계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을 위해 복음을 기술하고 있기는 하지만 예수가 이스라엘 백성만을 위한 메시아가 아니라 온 세상의 구원자이시기도 하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한다. 그래서 실제로 그의 복음은 이러한 보편적 관점에서 시작될 뿐만 아니라 또한 끝맺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가르쳐라 ...”(마태 28,19) 아마도 바울로 사도의 마음속에 그토록 열렬히 타올랐던 그러한 ‘선교’열의에 여전히 마음의 문을 닫고 있던 그리스도교인들이 있었던 것 같다.



‘회개’와 ‘하느님 나라’

그때 그 민족들을 위해 찬연히 빛났던 그 ‘큰 빛’은 그리스도였다는 사실을 앞서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또한 마태오 복음사가는 그리스도의 가르침도 하나의 ‘큰 빛’이었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 주고자한다. 그래서 그는 즉시 그리스도의 선교활동을 아주 간략히 요약하여 제시하고 있다. “이때부터 예수께서는 전도를 시작하시며,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다가왔다.’하고 말씀하셨다”(17절)

이 마지막 표현 (‘다가왔다’)은 ‘하늘나라’(보다 일반적인 표현인 ‘하느님의 나라’와 같은 의미를 지닌 마태오 복음사가의 표현)가 이미 그리스도의 선교활동을 통하여 실현되고 있고, 또 그분을 통하여 모든 사람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하느님의 왕권을 뜻하기 때문에 현재혀으로 해석되든 또는 현재완료형으로 해석되든 그 근본적 의미는 변하지 않는다.(역자주 : ‘다가왔다’는 희랍어 본문의 ήrrνkεν(engiken)의 번역인데 어떤 사람들은 그 의미를 현재의미로 해석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현재완료의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는 이미 이 세상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또한 동시에 오직 종말의 상황에서만 끝이 나게 될 끊임없는 ‘생성’의 과정에 놓여 있는 실체이다. 이런 까닭에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나라가 임하게 하소서”(마태 6,10참조)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

바로 이처럼 이 세상을 치달아 오고 있으며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서 완성되기를 필요로 하는 ‘하느님 나라’의 절박한 요구 때문에 예수께서는 우리 각자의 마음과 정신과 생활습관의 깊은 변화를 촉구하신다. ‘회개하라’ 이 말의 의미는 함축적이며 대단히 깊다. ‘정신(nous)을 바꾸어라’라는 뜻의 희랍어 metanoeite로부터 시작해서 아마도 그 개념의 전신이라고 볼 수 있는 히브리어 즉 ‘뒤로 돌다, 길을 바꾸다. 생활을 바꾸다’의 뜻을 가지고 있는 Shubh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의미를 총망라해서 볼 때 인간의 내면으로부터의 완전한 ‘전도’를 뜻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메시지 중심은 ‘하느님나라’의 선포이며, ‘회개’는 그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아니 ‘회개’ 자체가 이미 하느님 나라의 결실이며 그 나라의 현존의 표지라고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존재 자체를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즉 ‘회개하지 않는다면’ ‘하느님 나라’는 아직 멀리 있게 될 것이다.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그리스도라고 하는 이 큰 빛이 번뜩이며 이미 사람들의 마음속에 ‘회개’의 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구체적인 예로 계속 이어지고 있는 첫 번째 네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을 통해 볼 수 있다. “예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걸어가시다가 베드로라는 시몬과 안드레아 형제가 그물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내거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하시자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예수께서는 거기서 조금 더 가시다가 이번에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형제를 보셨는데 그들은 자기 아버지 제베대오화 함께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예수께서 그들을 부르시자 그들은 곧 배를 버리고 아버지를 떠나 예수를 따라갔다.”(4,18-22)

라삐들도 율법 해석을 습득하기 위해 그들을 ‘따르던’ 제자들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따름’은 완전히 다른 일디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선택하여 부르시는 것이지 제자들이 그분을 선택하여 따르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따름은 제자들에 대한 그분의 특별한 사랑과 계획을 전제로 한다. 둘째로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그분의 교설을 추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분의 인격을 추종하는 것이다. 사실, 그분은 제자들과 ‘공동생활’을 하시며 그들을 ‘벗’(요한15,15참조)이라고 부르실 정도로 그들과 더불어 감정과 생각을 온전히 나누신다. 셋째로 ‘그분을 따른다는 것’은 십자가에 이르기까지의 그분의 여정을 다시 밟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마태 16,24)

그 첫 번째 제자들이 그리스도를 따름의 역설적 의미를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이 선뜻 용기 있게 하는 대답 그 자체가 이미 그들의 마음 상태를 입증해 주고 있다.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랐다.... 그들은 곧 배를 버리고 아버지를 떠나 예수를 따라갔다.”(20절, 22절)고 마태오 복음사가는 두 번씩이나 말하고 있다.

장차 사도들이 될 그들이 예수께 자신들을 온전히 의탁하기까지에는 점진적 과정 같은 것이 있다. 맨 먼저 그물을 버리고 그 다음에는 배를 그리고 마지막에는 아버지까지도 떠난다. 즉 그리스도를 따름은 이세상 모든 것 - 가정까지도 - 으로부터의 결별이며 더 나아가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결별이기도 하다. ‘자기를 버리고’이 모든 것은 우리의 존재 전체가 ‘회개’를 통하여 완전히 바꾸어져 다른 존재가 되지 못한다면 이루어질 수 없다.

마태오 복음사가가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그저 과거의 역사일 뿐인가? 그렇지 않으면 그의 복음을 읽는 모든 이에게 제시하는 삶에 대한 주장인가? 분명, 마태오 복음사가는 그리스도께서 처음으로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의 기술을 통해서 그분이 사람들에게 던지고 계시는 근본적인 신앙의 요청과 다른 무수한 요청에 대한 응답의 모델도 제시하고자 한다. 이렇게 볼 때 첫 번째 네 제자들은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이 어떻게 자신들을 그리스도의 빛이 내맡겨 그분을 따르기로 방향전환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모범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가 갈라졌다는 말입니까?”

우리는 오늘 제2독서도 ‘회개’를 중심 주제로 하여 이해할 수 있다. 사도 바울로는 오늘 고린토의 신자들에게 보내는 첫째 편지를 통해 위신이나 공명심 또는 논쟁이나 격한 감정 같은 순전히 개인적인 일 때문에 교회의 일치를 깨뜨리려 하는 그들의 어리석음을 노한 어조로 비난한다.

“형제 여러분,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의견을 통일시켜 갈라지지 말고 같은 생각과 같은 뜻으로 굳게 단합하십시오. 내형제 여러분, 나는 클로에의 집안 사람들한테 들어서 여러분이 서로 다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여러분은 저마다 ‘나는 바울로파다. 나는 아폴로파다’ ‘나는 베드로파다. 나는 그리스도파다.’하며 떠들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가 갈라졌다는 말입니까? 여러분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린 것이 바울로였습니까? 또 여러분이 바울로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단 말입니까?”(1고린1,10-13)

교회 안에서 서로 갈라지거나 대립된다는 것은 교회의 개념 자체를 파괴시키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마치 초기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기 위해 단일한 ‘하느님의 집’(1디모3,15참조)을 이루었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분의 권능하에 모여진 이들로 이루어지는 하나의 실체이다. 바울로나 베드로와 같은 사도가 됐든, 또는 어떤 뛰어난 개혁가가 됐든 어떤 한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교회란 생길 수도 이루어질 수도 없다. ‘불러모으시는 분’이 오직 한 분 그리스도이신 것처럼 교회의 유일한 기초는 그리스도이실 뿐이다.(1고린3,11)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사실은 단일한 그리스도의 교회가 역사를 통해 수없이 갈라져 왔으며 오늘날에도 처참하게 분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연 그리스도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갈라 놓았으며(1고린1,13참조) 또한 바울로나 아폴로나 또는 루터나 칼빈, 더나아가 칼 마르크스가 그들을 구원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닌가! 만일 그리스도 신자들이 교회를 구원한다기보다(교회를 구원하시는 분은 그리스도이시다.) 자신들만이라도 구원하고자 한다면 분열과 자멸을 초래하는 그러한 어리석은 행동으로부터 ‘돌아서야’한다. 그러므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참된 일치운동은 내적 회심 없이는 있을 수 없다”(일치운동에 관한 교령 7)고 단언하는 것은 전혀 무근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간에 ‘서로 갈라지는’ 악한 표양을 거듭 체현하고 있는 그리스도 신자들의 일치를 위한 기도가 전개되고 있는 이 시기에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기억하는 것은 참으로 적절한 일이다. 우리 그리스도 신자들이 서로 갈라져 있다는 것은 우리 서로가 충분히 사랑하고 있지 않으며 또한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성부와 ‘하나가’ 되신 것처럼 당신 제자들도 ‘하나가’ 되기를 기도하셨다.(요한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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