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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전례
작성자 주일강론 모음
작성일 2008년 1월 8일 (화) 15:21
분 류 연중2-7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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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해 연중 제 2주일 주일 강론 모음 ”
 

연중 제 2 주일



        31. 배문한 신부(다)/ 49          32. 김정진 신부(다)/ 51

        33. 함세웅 신부(다)/ 53         34. 함세웅 신부(다)/ 54

        35. 조원길 신부(다)/ 56          36. 이계중 신부(다)/ 57

        37. 안충석 신부(다)/ 59          38. 김몽은 신부(다)/ 63

        39. 김몽은 신부(다)/ 65          40. 이창호 신부(다)/ 66

        41. 김경식 신부(다)/ 67          42. 조순창 신부(다)/ 68

        43. 정춘식 신부(다)/ 69          44. 홍금표 신부(다)/ 70

        45. 강영구 신부(다)/ 72          46. 이석우 신부(다)/ 76

        47. 신은근 신부(다)/ 77          48. 강길웅 신부(다)/ 78

        49. 교구주보(다)/ 80                     50. 인간의 곤경을(다)/ 82

        51. 가나의 혼인잔치(다)/ 83            52. 포도주의 기적/ 85

        53. 술이 없다(다)/ 86                    54. 가나잔치의 뜻(다)/ 87





31              연중 제 2주일   요한 2,1-12 (다) 가나안 혼인잔치

                                                           배문한 신부



물은 이미 포도주가 되어 있었습니다(요한 2,9).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예수께서 첫 번 기적을 행하셨다고 요한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하필이면 요한만이 가나의 기적을 기술하고 있을까요? 예수님은 기적을 없는 것에서부터 일으키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최소한의 성의를 요구하십니다. 이는 바로 우리의 신앙을 요구하신다는 말입니다.



사천 명을 먹인 빵의 기적에도 어린이의 빵 일곱 개와 물고기 몇 마리를 요구하셨습니다(마태오 15,34).

오늘은 빈 항아리에 물을 채운 뒤에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빵 일곱 개를 내어놓기를 거절했다면 예수님도 기적을 거절하셨을지도 모르며, 항아리에 물을 채워놓지 않았더라면 술의 기적을 일으키지 않으셨을는지 또한 모를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땅 위에 기적을 일으켜야 하겠습니다. 「신앙의 기적을!」 겨우 가톨릭 신자가 3%밖에 안 되는 이 땅 위에 하루 빨리 30% 아니 60% 90%의 신자가 되도록 해야겠습니다.

이러한 일은 물론 하느님의 은총의 힘으로써만 가능한 일이지만 하느님은 먼저 우리의 노력을 요구하십니다. 감나무 밑에 누워서 감이 입에 떨어지길 기다리는 자를 하느님은 좋아하시지 않으십니다.



동해 바다의 물이 포도주로 변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요즈음 같으면 포도주보다도 석유가 된다면 더욱 좋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러나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삼천만 동포가 하느님을 믿는 사람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사회도 국가도 제 골이 되고 진리와 정의와 사랑의 정신도 제대로 자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무엇을 무서워할까는 뻔한 노릇입니다.



한창 열을 띠고 있는 새마을 사업도 새마음 사업이 병행되지 않고서는 영혼없는 육신과 같이 될 것입니다. 새마을을 가지려면 먼저 새로운 사회관 새로운 인생관 한 마디로 새로운 철학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국민이 서로 돕고 협조하고 사랑하는 새마음 새철학은 어디서 구할 것입니까? 이러한 것을 우리는 그리스도 신비체의 사상에서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하느님의 기적을 일으키기 위하여 지금까지 과연 무엇을 하였습니까? 전교를 했습니까? 우리 모두는 가지고 있는 바 ‘빵과 물고기’를 송두리째 하느님께 바쳐 드립시다. 빈 항아리에 물을 길어 부읍시다. 그것이 바로 전교사업이요 교회를 위해 돕는 일입니다.

우리 모두가 땀흘려 기진할 때 주님은 기적을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기적을 일으키기 위하여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성모님을 바라봅시다! 그분은 예수님의 기적을 앞당기신 분이십니다(요한 2). 오늘도 성모님은 우리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부탁하십니다. 그것이 기적의 둘째 조건입니다.



예수님은 “당신들은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이 기쁜 소식을 선포하시오”(마르코 16,15)라고 유언하셨습니다. 먼저 우리 자신이 있는 힘을 다하여 전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데에 원시적인 방법을 쓰지는 맙시다! 발이 손 노릇을 하려고 해도 안되고, 손이 발노릇을 해도 또한 우스운 일입니다. 머리는 움직이고 몸은 요지부동이어도 안됩니다. 공무원은 공무원의 특성을 살리고 농부는 농부의 특성을 살리며, 성직자는 성직자의 구실을, 평신도는 평신도의 구실을 잘 함으로써 손발이 척척 맞아야 합니다.



지체가 아플 때 머리도 아프고 머리가 기쁠 때 지체도 기뻐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제 2독서의 정신입니다. 우리 모두 합심하여 서로 서로의 장점을 살려 주면서 또한 조직적으로 복음 전파를 해야겠습니다. 복음전파는 단순한 교세확장이 결코 아닙니다. 이는 바로 신앙의 자연적인 귀결이요, 또한 구국운동입니다.「무엇이든지 하자!」「부지런히 일하자!」그리하여 가나의 혼인잔치에서처럼 언젠가는 이 나라에 기적을 일으키자! 「물이 술이 되게 하자!」 어두움이 변하여 빛이 되고 죽음이 생명으로 변하게 합시다.











32           연중 제 2주일   요한 2,1-12 (다) 가나안 혼인잔치

                                                        김정진 신부



신자 여러분! 이제 성탄절도 끝나고 앞으로 사순절이 올 때가지 그동안을 우리는 연중 주일로 지내게 됩니다. 지난 주님의 세례 축일에는 예수님이 하늘의 천주 성부로부터 당신의 사명과 권한을 장엄하게 받으시더니 오늘은 이를 바탕으로 가나촌에서 첫 번째 기적을 행하심으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 보이시며 제자들로 하여금 당신을 믿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른지 얼마 안된 제자들이 가나촌의 기적을 보고서 예수님이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란 것을 똑바로 인식하고 잘 따르게 된 것입니다.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은 혼인 잔치에 참여하셔서 물을 술로 바꾸신 기적을 행하시며 신랑 신부의 혼례를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 장소가 도시의 화려한 예식장도 아니요, 거룩한 성전도 아닌 평범한 가나라는 촌부락의 한구석이었습니다. 당시의 풍습에 의하면 혼인잔치는 한 주간 동안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도중에 술은 떨어지고 손님들은 자꾸만 모여드는 판에 신랑 신부는 얼마나 당황하였겠습니까. 이 때였습니다. 이러한 딱한 사정을 눈치 챈 마리아께서는 예수님께 이 사실을 알리며 무슨 좋은 해결책을 바랬습니다. 몹시 난처하게 된 혼가의 가족들이 대단히 가엾게 보였을 것입니다.



아직 제가 기적을 행하며 영광을 받을 시간이 오지 않았다고 예수님은 언명하시면서도 어머님 마리아의 부탁인지라 거절하지 않으시고 물을 술로 변화시키시어 혼례식에 참석한 이들을 기쁘게 해 주셨습니다. 한동안 침울한 표정에 침묵이 흘렀던 혼인집은 예수님의 깊은 배려로 다시 흥청대기 시작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은 그 집의 혼인을 기적으로 축복하시어 신랑 신부의 앞날의 행복과 평안을 빌어 주신 것입니다.



신자 여러분! 예수님은 오늘도 내일도 우리 신자들의 혼례를 축복해 주시며 부부의 가정생활을 행복과 사랑으로 감싸 주시며 단란케 해 주십니다. 예수님이 교회를 배필처럼 사랑해 주시듯이 남편된 사람은 자기 아내를 극진히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그리스도를 공경하고 순종하듯이 아내된 사람은 남편을 위해 드리고 잘 따라야 합니다(에페소 5,21).



부부의 결합은 하느님의 특별한 섭리이며 안배입니다. 신자들의 혼인은 하느님께서 맺어 주시는 것이며 남남이었던 한 남자와 한 여자를 신앙과 사랑의 끈으로 단단히 묶으시어 그들로 하여금 사랑의 열매를 맺으며 건전한 가정을 이루도록 도와 주십니다. 이같이 하느님의 축복을 받으며 결합되는 남녀는 한쌍의 비둘기와 같이 귀엽고 한쌍의 원앙새와 같이 사랑스러운 한쌍의 신랑 신부로서 우리들 앞에 나타납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 안에서 부부간의 사랑과 봉사와 희생심을 배우며 화목하는 가정, 명랑한 가정, 기도하는 가정, 천상 가정을 이루어 나갑니다. 그들은 또한 아기자기한 애정으로 가장 행복되고 단란하고 모범다운 보금자리를 꾸며 나갑니다. 이러한 가정에는 늘 기쁨과 평화가 깃들며 웃음의 꽃이 활짝 피게 마련입니다. 일반인들은 이러한 가정의 행복과 신앙을 보고서 우리가 섬기고 공경해 드리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아 보게 됩니다.



하느님 앞에서 사랑과 축복을 받으며 혼인성사를 받는 신랑 신부는 하느님의 차원에서 혼인의 계약을 맺는 것이며 또한 하느님의 세계에서 새 살림으로 새 출발을 하는 것입니다. 태초에 하느님께서 아담과 에와를 창조하시고 나서 <남자는 부모를 떠나 제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루리라>고 하신 말씀을 예수님은 재삼 강조하시면서(마태오 19,5) 부부는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라고 못을 박아 놓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부부일신이란 말과 같이 몸이 하나이지만 무엇보다도 마음과 정신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 손을 맞잡고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험준한 인생의 여정을 무난히 헤쳐 나가며 고해와 같은 한많은 세상을 끄떡 없이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어른들과 선배들의 경험으로도 잘 알 수 있겠지만 부부생활에도 어느 날에는 권태기가 올 적이 있을 것이며 기쁨과 슬픔, 건강과 병고, 쾌락과 고통, 순경과 역경, 성공과 실패가 교착되는 대단히 복잡한 인생 항로를 걷게 되는 수가 많습니다. 그러기에 부부는 모든 불행과 고통과 시련을 같이 참아가는 동고동락하는 결심이 앞서야 합니다.



신자 여러분! 남남끼리 모여서 짝이 되었다 하더라도, 혹은 비록 혼인성사를 받았다 하더라도 백 년을 한집에서 같이 살고 돕고 지낸다는 것은 얼마나 고상한 일입니까. 부부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고 신의를 지키며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그야말로 부부일체가 되어 행복하고 이상적인 단란한 가정을 이룬다는 것, 세상에서 이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더구나 배우자의 행복은 곧 나의 행복, 상대방의 불행은 곧 나의 불행이라는 사고와 사상은 다른 데서는 찾아볼 수 없는 진․선․미라 하겠습니다.



여태까지는 혼자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에 옮겼지만 부부는 한몸인 만큼 이제부터는 둘이 같이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이 순간부터 두 분은 혼인성사의 정신을 따라 사랑과 희생의 정신으로 가정의 화목과 평화를 이룩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하느님의 축복받는 가정이 될 것이고 날이 갈수록 두 분의 사랑은 더욱 깊어지고 강하게 성장할 것입니다. 아멘.











33             연중 제 2주일   요한 2,1-12 (다) 가나안 혼인잔치

                                함세웅 신부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일어난 기적 이야기가 오늘의 복음 말씀(요한 2,1-12)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를 묵상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께서 첫 번째로 행하신 기적이 바로 다름 아닌 혼인 잔치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결혼의 신성성과 가정의 중요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기적은 바로 가정에 대한 하느님의 축복이기에 말입니다.



둘째로, 이 기적을 이루게 된 동기는 성모님의 간청과 배려에서 나왔다는 사실에서 성모님의 협력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인류의 첫 어머니인 에와의 실수로 밀려 났던 우리의 처지가 성모님의 한결같고 굳은 신뢰심으로 회복된다는, 구원사에서 ‘여인’의 구실을 두드러지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때’(죽음과 부활의 승리)가 아직 이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간청이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은 바로 ‘여인’에 의해서 잃었던 그것을 또 여인에 의해서 찾게 되는 신비스러운 과정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그 ‘여인’은 새로운 차원에서 인류의 어머니, 신앙인의 어머니가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물이 포도주로 변했다는 기적 자체입니다. 오늘은 이 세 번째의 내용을 좀더 살펴보겠습니다. 복음의 상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물은 인간의 상징이고, 포도주는 하느님의 상징입니다. 사실 미사의 봉헌 부분에서 사제는 포도주에 물을 섞으면서 다음과 같이 기도드립니다. “이 물과 술의 신비로, 우리도 우리의 비천한 인성을 취하신 그리스도의 천주성에 참여케 하소서.”



이 신비스러운 일치, 포도주와 섞인 물은 가를래야 가를 수 없이 완전히 하나가 됩니다. 그것은 신비스러운 변화입니다. 성탄의 의의에서 우리는 ‘하느님이 사람으로 되신’ 사실을 체험하고 묵상하였습니다. 이제 나머지 과정은 사람이 ‘하느님으로 되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 바로 오늘 기적의 의의입니다. 창조 과정에 있어서 하느님은 아무러한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당신의 말씀으로 모든 것을 이룩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물론 물 없이도 당신의 전능하신 힘으로 포도주를 만드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물’을 필요로 하셨습니다. 그 ‘물’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내’가 거부하지 않는 한, ‘내’가 반항하지만 않는다면, ‘내’가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하기만 한다면, ‘물이 포도주로 변한’ 이 기적은 바로 이 순간에 재현됩니다. ‘물’이 필요했다는 이 사실은 바로 하느님의 ‘나’의 협력을 요구하시는 것을 일러줍니다.



전능하신 하느님이시지만, 구원사에 있어서 ‘나’의 협력이 없다면 하느님은 무능하십니다. 이것이 인간  자유의 고귀함이며 얼마만큼이나 하느님이 인간을 대우하고 계신지를 깨닫게 해 줍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사람의 갈 길은 결국 하느님의 품속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 물과 포도주가 주는 상징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포도주와 물이 혼합되는 미사의 봉헌을 통해, 일치와 협력, 그리고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되씹어 봅니다. 가나 잔치의 기적의 주인공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그래서 ‘나’는 한 방울의 물이 되어 포도주와 합쳐지고 예수님과 같이 제물이 되어 하느님께 바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34              연중 제 2주일   요한 2,1-12 (다) 물과 포도주

                                                  함세웅 신부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일어난 기적 이야기가 오늘의 복음 말씀(요한2, 1-12)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를 묵상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께서 첫번째로 행하신 기적이 바로 다름 아닌 혼인잔치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결혼의 신성성과 가정의 중요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기적은 바로 가정에 대한 하느님의 축복이기에 말입니다.

  

둘째로, 이 기적을 이루게 된 동기는 성모님의 간청과 배려에서 나왔다는 사실에서, 성모님의 협력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인류의 첫 어머니인 에와의 실수로 밀려났던 우리의 처지가 성모님의 한결같고 굳은 신뢰심으로 회복된다는, 구원사에서 ‘ 여인'의 구실을 두드러지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때' (죽음과 부활의 승리)가 아직 이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간청이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은 바로 ‘여인'에 의해서 잃었던 그것을 또 여인에 의해서 찾게 되는 신비스러운 과정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그 ‘여인'은 새로운 차원에서 인류의 어머니, 신앙인의 어머니가 되는 것입니다.



세째로, 물이 포도주로 변했다는 기적 자체입니다.

오늘은 이 세번째의 내용을 좀더 살펴보겠습니다. 복음의 상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물은 인간의 상징이고, 포도주는 하느님의 상징입니다. 사실 미사의 봉헌 부분에서 사제는 포도주에 물을 섞으면서 다음과 같이 기도드립니다.

 “이 물과 술의 신비로, 우리도 우리의 비천한 인성을 취하신 그리스도의 천주성에 참여케 하오서"

  

이 신비스러운 일치, 포도주와 섞인 물은 가를래야 가를 수 없이 완전히 하나가 됩니다. 그것은 신비스러운 변화입니다. 성탄의 의의에서 우리는「하느님이 사람으로 되신」 사실을 체험하고 묵상하였습니다. 이제 나머지 과정은 사람이「하느님으로 되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 바로 오늘 기적의 의의입니다.



창조 과정에 있어서 하느님은 아무러한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당신의 말씀으로 모든 것을 이룩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물론 물 없이도 당신의 전능하신 힘으로 포도주를 만드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물」을 필요로 하셨습니다. 그「물」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내」가 거부하지 않는 한, 「내」가 반항하지만 않는다면, 「내」가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하기만 한다면, 「물이 포도주로 변한」 이 기적은 바로 이 순간에 재현됩니다.

「물」이 필요했다는 이 사실은 바로 하느님이「나」의 협력을 요구하시는 것을 일러줍니다. 전능하신 하느님이시지만, 구원사에 있어서「나」의 협력이 없다면 하느님은 무능하십니다. 이것이 인간 자유의 고귀함이며 얼마만큼이나 하느님이 인간을 대우하고 계신지를 깨닫게 해 줍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사람의 갈 길은 결국 하느님의 품속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 물과 포도주가 주는 상징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포도주와 물이 혼합되는 미사의 봉헌을 통해, 일치와 협력, 그리고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되씹어 봅니다.

가나 잔치의 기적의 주인공은 바로「나」 자신입니다. 그래서「나」는 한 방울의 물이 되어 포도주와 합쳐지고 예수님과 같이 제물이 되어 하느님께 바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35            연중 제 2주일   요한 2,1-12 (다) 가나안 혼인잔치

           조원길 신부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께서 당신 모친 마리아와 제자들과 함께 갈릴래아 지방 가나촌 혼인잔치에 초대되시어 여러 손님과 더불어 연회를 하시던 중 잔치집에 술이 떨어져 난처하고 수치를 당할 뻔한 주인의 입장을 보살펴 창피를 면케 하고 손님들을 즐겁게 즉 물이 술로 변하는 기적을 행하신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의 내용에서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의 첫 번 기적이 다른 곳이 아닌 혼인잔치 집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어떤 큰 과업을 수행할 경우 그 첫 출발이 중요한 것처럼 예수께서 첫 번 기적을 혼인잔치에서 행하신 이유는 바로 인류 사회의 기본이 되는 혼인의 성사를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인간은 혼인의 성사를 통해서 하느님의 영원한 창조사업을 계승하고 하느님의 자녀들을 많아지게 합니다. 그래서 혼인의 성사는 위대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혼인을 한 모든 신도들은 혼인성사의 위대함을 깨닫고 혼인에서 오는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비록 어려움이 따른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위대한 창조사업을 계승한다는 심오한 긍지를 지니고 하느님의 뜻을 이행하고 자녀교육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둘째, 어째서 예수님은 첫 번 기적으로써 하필이면 물을 술로 변화시키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술이란 하느님께서 음식으로 주신 것입니다만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에게 유익하기도 하고 또 해롭기도 합니다. 술은 우리의 기쁨을 더해 주고 정신의 고통을 덜어주기도 합니다. 또 적당히 마시면 신체의 혈액 순환을 도와 몸을 더욱 건강하게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특히 오늘 예수님이 가나촌 혼인잔치에서 마신 포도주는 장차 예수님의 십자가상 제사를 새롭게 하기 위하여 봉헌하는 미사성제에서 예수님의 피로 변화될 것이기에 더욱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이 변하여 술이 된 것처럼 예수님이 우리 안에 오시면 우리의 삶에 변화가 옵니다. 우리의 삶은 구원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차고 즐거울 것입니다.



셋째, 이처럼 중대한 기적을 행하실 때 성모 마리아께서 중재 역할을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인류를 구원하실 예수님을 낳으셨다는 사실만으로도 인류의 중재자이심이 확실합니다만 그것으로 그치지 않으시고 인류를 당신 아들이신 구세주께로 인도하기 위한 역할을 계속하십니다. 한편 예수님은 당신 어머니의 부탁이시라면 물을 술로 변화시키는 기적이라도 행하시는 어른이십니다.



물론 마리아의 직접적인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마리아는 하느님의 영원한 계획에서 인류와 하느님 사이에 중재자의 역할을 맡으시도록 결정되셨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우리가 청하는 바를 하느님께 전달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를 가리켜 전능하신 전달자라고 성인들이 표현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모님은 언제나 하느님과 함께 계시고 하느님의 은총을 가득히 입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청하는 것이 합당한 것이라면 마리아의 전달로 인해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은 예수님께 대한 마리아의 굳은 신앙입니다. 우리도 마리아와 같은 굳은 신앙을 지니고 마리아께 열심히 기도하고 마리아의 전달을 청합시다.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친애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가정을 이루고 가정 안에서 생활하는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본 바와 같이 어떤 어려움이나 불편이 있다 할지라도 부모와 자녀간에 서로 신뢰하고 가정에 충실하도록 힘써야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대한 마리아의 굳은 신앙을 본받아 우리도 예수님께 대한 굳은 신앙을 지니고 우리 중재자이신 마리아의 도우심으로 언제나 명랑하고 주 안에 즐거워하는 복된 생활을 영유하며 성모님과 더불어 가정에 충실한 생활을 하기로 결심합니다.











36         연중 제 2주일   요한 2,1-12 (다) 가나안 혼인잔치

                  이계중 신부



가나의 혼인 잔치에 예수님과 마리아와 제자들이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잔치 도중에 술이 떨어졌습니다. 술은 동서양을 막론코 잔치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되는 음료인 것입니다. 술이 떨어졌을 때 어머니 마리아의 요청으로 예수님에 의해 기적의 술이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과 마리아는 가장 큰 부조를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가나의 혼인 잔치를 보고 성모 마리아의 위치가 얼마나 높으며 그 전달의 힘이 거의 무한하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혼인잔치의 이 술은 우리 영혼의 은총을 상징하는 것으로 성모님의 요청으로 예수께서 술의 기적을 이루신 것과 같이 우리 영혼의 약함과 궁핍함을 성모님께 바치고 호소할 때 멋있는 기적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인들이, 또 우리 치명 선조들이 그리고 열심한 교우들이 그침없이 성모님께 전달을 구했고 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또 다른 묵상 재료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지상 생활 30년 중 마지막 공(적)생활 3년은 잔치로 시작하여 잔치로 끝을 맺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에는 가지 가지의 잔치가 있습니다.

생일 축하 잔치, 결혼 잔치, 금의환향한 귀국 잔치, 경축일 잔치, 회갑 잔치, 입학․졸업 잔치, 환영․송별 잔치 등등, 넓게 생각하면 기쁜 일이건, 슬픈 일이건, 사람들은 잔치를 베풀고 기쁨과 슬픔을 한자리에 모여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세정을 그대로 따르시면서 가나혼인잔치를 공생활의 시작으로 하셨고, 사랑의 성사를 세우신 최후만찬으로 이별의 잔치로 하셨습니다.

가나 혼인 잔치에 참석하신 예수께서는 3년 후에 있을 당신이 주인공이 될 최후의 만찬을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당신이 베푸시는 최후의 만찬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주는 거룩하고 완전한 잔치가 되도록 구상하고 계획을 하셨을 것입니다.



잔치란 기쁨과 슬픔을 혼자서가 아니라 여럿이 한 자리에 모여 장만한 음식으로 함께 나누는 것일진대 되도록 많은 이가 참석하여야만 더욱 빛나고 훌륭한 잔치가 되겠습니다. 예수께서는 만민이 즐거워하고 만민이 참여해야 할, 만민을 위한 훌륭한 잔치를 공생활 맺음으로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최후 만찬이었고 또한 이것은 십자가상 제사와 직결되는 잔치였습니다.



우리가 지금 참례하고 있는 이 미사는 만민의 제사이며 잔치로, 최후의 만찬과 십자가의 제사를 새롭게 하는 제사이고 잔치입니다. 주님의 이 잔치는 우리를 기쁘게 해주고 우리를 천국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이 잔치인 미사에 참례하는 우리는 다 함께 주님 공경에 정성을 다 하여야 하겠습니다. 주일이니까 성당에 나온다는 막연하고 타성적인 발걸음을 옮기지 말고, 좀 뜻있게, 주님께서 베푸시는 흠숭과 사랑의 잔치에 기쁜 마음으로 임하여 함께 크게 기도하고, 크게 노래하며 주를 찬미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잔치가 먹을 것일진대 할 수 있는대로 잘 준비하여 영성체를 자주 하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가장 완전한 제사이며 잔치인 주일 미사에 맞갖은 손님으로 살면서 모두 참례하도록 힘씁시다.









37          연중 제 2주일   요한 2,1-12 (다) 가나안 혼인잔치

               안충석 신부





우리들은 누구나 혼인잔치에 대해서 흥미와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천국의 행복을 설명하실 때는 흔히 이 세상 혼인잔치와 즐거움으로 나타내셨던 것입니다.



역사상으로 가장 유명한 혼인잔치가 오늘 복음에 나온 대로 ‘가나’에서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공적으로 삼왕에게 나타나신 후 구속사업을 공적으로 처음 시작하시는 역사적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오늘 복음은 얼른 보기에는 성모 마리아의 전구의 힘과 인간의 행복이나 즐거움에 대한 예수님과 마리아의 거대한 관심을 보여 주는 아주 매력적인 사건으로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 즉 주의 공현과 관련해서 보다 깊은 뜻이 있음을 알아야겠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는 바로 그리스도의 잔치가 되었으며 매우 의미심장하고 예언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성 요한 복음의 마지막 구절에서 이 사건의 참된 뜻을 비쳐 줍니다. 예수께서 ‘갈릴래아 가나촌에서 이 첫 번 기적을 행하며, 이것으로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시며 그 제자들이 당신을 믿더라’ 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구세주의 오심은 호화롭고 즐거운 잔치로 표현되었습니다. 천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위해서 일단 잔치상을 차려 놓으시면 풍성한 주의 잔치인 미사 성제가 해 뜨는 데서부터 해 지는 이 지구상 어느 곳에서든지 끊임없이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주의 때가 안되었기 때문에 남의 잔치에 당신 모친과 제자들과 함께 초대되어 가셨습니다. 때마침 잔치집에는 술이 떨어졌던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가장 놀라운 것은 술 떨어진 것을 누구보다도 먼저 알아차린 사람이 접대하는 하인이 아니라 손님으로 오셨던 성모 마리아이시었다는 사실이올시다. 그러니까 성모님은 우리가 무슨 부족함을 느끼기 전에 미리 알아차리실 수 있으신 어머니다운 자상하시고 섬세한 점이 있으셨습니다. 그만큼 우리 모든 일에 주의 깊은 관심과 애정을 쏟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전능하신 천주님이신 자기 아드님에게 술이 없는데 무슨 방도가 없겠느냐고 아주 자연스럽게 청하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신혼 부부가 부끄럽게 되는 사실을 아셨으니 세상 모든 것을 베푸시는 천주께 인간의 궁핍을 드러내셨던 것 뿐 입니다.



이 말씀 안에 감추어진 뜻은 천주님이신 자기 아들의 전능에 대한 믿음 뿐 만이 아니라, 난처한 입장에 놓여 있는 인간을 구해 주자는 모성애다운 소망을 나타낸 것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장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어머니의 힘입니다. “아기의 그네를 흔드는 사람은 전세계를 뒤흔든다.”는 격언도 있습니다. 술이 없다는 어머니의 청을 들은 주께서는 “술이 떨어진 것이야 어머니나 저나 다같은 손님으로서는 상관할 바가 아니잖습니까? 아직도 저는 함부로 기적을 행하고 나설 때가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이상스럽게 들리는 이 말씀을 살펴보기로 합시다. 나의 때란 말씀을 쓰신 것은 주께서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실 때, 또는 주의 현성용으로 나타나실 때를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서 모든 관심은 오로지 성부셨으며, 언제나 성부께서 원하시는 때에 성부의 뜻만을 따라서 이 세상을 사신 것을 우리는 주의 지상 생활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얼른 듣기에는 어머니께 퉁명스러운 주님의 대답은 성모님을 탓하시는 것도 아니고, 모호한 말로써 성모님의 신앙을 충동하시는 것 뿐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설명하자면 “지금 어머니의 말씀 내용은 내가 천주로서 모든 인간과 동떨어진 절대자, 전능하신 하느님으로 나타나기를 벌써 요구하시는 것입니까? 그런 때는 어머님도 이 세상 모든 인류의 어머니가 되실 텐데 그런 각오와 준비는 되셨습니까?” 하시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가난한 잔치에서는 지금 당장은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셨지만, 장차 언젠가는 포도주가 당신 자신의 피로 변하리라는 것을 미리 밝히신 뜻깊은 말씀입니다. 



이에 성모님의 대답은 어떠하셨겠습니까? 아주 거절당한 것으로는 결코 생각지 않으시고 오직 신뢰만으로써 일방적으로 하인들에게 단순히 말했습니다. “저분이 무엇이든지 분부하시는 것을 행하라.” 그 때 거기는 빈 물동이가 있었습니다. 주께서는 물로 그 항아리를 채우라고 분부하시었습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가르침을 배울 수 있으니 그 한가지는 스스로 노력하는 자를(돕는 자를) 하늘도 돕는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만물도 없는 가운데로부터 창조하신 주님은 물론 아무 것도 없는 데서 포도주를 만드실 수도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 편에서 무엇인가 하는, 즉 일꾼들을 시켜서 물을 길어다 채우시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힘을 입어 자신의 어떤 변화를 바란다면 내 편에서도 거기에 합당한 무엇인가 협력을 바친다는 것이 올바른 도리일 것입니다.



그저 입으로만 기구하면서 아무리 청하기만 해도 아무 노력도 없고 내 편에서 받을 그릇도 준비되어 있지 않는다면 설사 주신다고 해도 소용이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비록 우리는 천주님께 바칠 것이라곤 그저 날이면 날마다 따분한 생활 속에서 흐려진 맹물밖에 없다손 치더라도 무엇인가 우리 자유 의사로 어떤 성의를 나타내는 것이 있어야만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냥 주시고 싶으시면 주시고 마시고 싶으시면 마시는 내 편으로서는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다는 식으로 나무나 돌이나 동물처럼 본성대로 수동적이기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가나 혼인잔치의 교훈은 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전에도 벌써 성모님께서는 당신 자녀들인 우리가 무엇이 절실히 필요한지를 알아차리시고 당신 아드님인 주께 청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어린 아기는 울 수는 있지만 무엇 때문에, 어째서 우는지를 나타내거나 왜 운다고 말을 할 수는 없습니다. 몸에 바늘이 박혔는지 배가 고파서 우는지 모릅니다. 그럴 때는 다만 어머니만은 자기 자신을 어린 아기 입장에 두고 생각해 봐서 필요한 것을 해 줍니다. 그 어머니만이 우는 아기에게 필요한 것을 아기 이상으로 잘 알고 계시듯이 성모님도 우리의 고민과 걱정을 우리보다 더 잘 아시고 당신 아드님, 주께 얻어 주십니다.



주께서 천주님과 우리 사이에 중개자로 계시듯이 성모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이신 주님과 우리들 사이에 자상한 중개자시며, 자비의 어머니이십니다. 이런 사실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한 가족이 등산을 가서 바위 벼랑에 핀 아름다운 꽃을 꺾겠다는 어린 아이 졸림에 견디다 못해 꺾으라고 하니 아이 손이 닿지 않았습니다. “누가 너를 잡아 줄까?”하고 물으니 그 어린 아이는 운동 선수인 형님도, 건장하신 아버지도 마다하고 몸 약한 어머니더러 손을 붙잡아 달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어머니께 대한 사랑과 신뢰에 보이지 않는 힘을 그 어린 아이는 제일 안전하고 가장 미더웠던가 봅니다. 어머니 손을 붙잡고 벼랑의 꽃을 따려니 어머니는 그만 약해 딸려가려고 하니, 그 뒤에서 건장하신 아버지가, 또 운동 선수인 형이 붙잡아 결국 일가족이 전부 붙잡아 주어서 그 어린 아이가 원하고 있는 꽃을 딸 수가 있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성모님 뒤에 전능하신 하느님인 주께서 계시다는 것,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을 따라 막지 않으면서 여성의 부드러운 손길을 통해서 보다 알아보기 쉬운 모습으로, 즉 여인의 몸에서 난 모든 인간들을 모성애로 우리를 뒤쫓고 붙잡아 안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생애를 쓰신 월람 박사는 이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리아께서는 그 확고한 신뢰로써 예수께 마치 폭력을 가하듯 강한 모성애의 소망으로 기적을 떼쓰시며 행하시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그야말로 그 어머니와 그 아들만이 서로 믿고 또 알고 나누는 대화와 행동과 애정을 엿볼 수 있는 모자 지간에 가장 흐뭇한 정경을 우리는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우리 자모이신 성교회는 성모님께 기구하기를 권고하고 천주 성총을 빈 항아리에 술을 채우듯이 얻어 내라고 제일 만만한 성모님께 떼를 쓰며 조르는 것이올시다. 가나 혼인잔치가 지난지 3년 후 가나 혼인 잔치에서 하신 말씀이 정말로 그대로 실현되었으니 때가 되어서 포도주가 당신 자신의 피로 변한 것입니다.



 이제서야 비로소 오늘 복음에 가나 혼인 잔치의 기적은 이 혼인 잔치보다 더욱 중대한 잔치의 한낱 그림자 전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즉 천상 잔치를 미리 맛 보고, 그것을 상징하는 성체성사는 미사 성제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쉽사리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가나 혼인 잔치가 단지 상징적인 뜻으로서 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성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미사 성제란 것이 되었습니다. 그 옛날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을 술로 변화시키고 그 후는 당신 제자들과 함께 최후 만찬에서 술을 당신의 피로 만드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기로 이 예를 행하라는 분부대로 지금은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들과 미사란 신약시대 새로운 잔치에서 당신 자신의 몸과 피로써 우리를 대접하십니다. 천국의 복락의 씨앗을 받는 잔치 중에 영원한 잔치의 시작이요, 온전하고 완전한 즐거움과 기쁨입니다.



이 세상 즐거움에는 흔히 대체적으로 두 가지 형태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죄악의 독소가 들어 있는 잔인하고 그릇된 즐거움이 있으나 그것은 너무나도 짧은 그 순간을 위한 대가가 그 순간마저 어떤 큰 불행을 안고 있는 것입니다. 나쁜 쾌락의 노예는 우리 인간의 본성의 풍요함을 드러낸다기보다는 번번이 어떤 빈곤을 입증하는 것 뿐 입니다.



또 한가지 형태는 천국을 회상케 하는 죄악 없는 즐거움입니다. 진리를 탐구하고, 남을 사랑하고 죄악 없이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간다는 즐거움은 천국의 즐거움을 회상케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보람 있는 순간의 행복이 지나간 무수한 고난과 고통의 시절까지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경험을 우리는 가까운 주위에서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고 그런 행복한 순간들을 연장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영생과 관련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이 세상 어느 순간에서 공적으로나 그런 행복한 순간을 다짐할 수 있겠습니까?



바로 지금 바치고 있는 이 미사 중입니다. 죄악의 독소가 들어 있는 고리 달린 그릇된 가짜 행복으로 희희낙락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 신앙의 기쁨을 안은 채 저 14처에 십자가의 길을 걸으시다가 우리보다 앞서 가신 주님을 만나, 세상에 어떤 일이 있어도 영원히 함께 살고 영원히 사랑을 다짐하러 미사에 이렇게 달려왔습니다. 과연 여러분들은 죄악이 없는 즐거움으로 이 미사 중에 천국 복락을 다짐하고 계실 수 있으십니까?

그러한 즐거움만 갖고 계신다면 비록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궁핍하여도 여러분들은 진실로 행복합니다. 장차 받을 행복에 비하면 지금 우리가 당하는 고통은 마치 없는 것과도 같다고 바울로 사도께서 일러 주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미사 중에 영성체를 하신 분들은 그런 즐거움을 자기 안에 모시고 사시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런 사랑의 기쁨을 노래하는 성가로 이 미사 중에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경건하고 감동하는 성가를 부르셔야만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미사 중에 성가를 대부분 부르시지 않고, 머리에는 어떤 딴 생각을 하시고, 그저 복음성경 읽은 후에 미사 참례가 되거나 말거나 늦게 오셔서 미사 중에 분심과 혼란을 일으킵니다.



주께서 피 흘리시던 저 갈바리아 산상 미사성제 때 수많은 사람들이 거기에서 미사 참례를 했습니다. 그러나 저 십자가상 아래서 참혹히 애통하시던 성모님과 요한 사도 몇몇 경건한 분들 외에는, 십자가에 못 박던 무심한 로마 군인들, 또는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아우성치던 사람들, 그리고 구경 나온 사람들 뿐 이었습니다.

지금 이 미사 중에 우리는 얼마나 주님께 대한 애정을 갖고 ‘성모님’이나 요한 사도, 경건한 부인들과 같은 몸과 마음으로 미사를 바치고 있는 것입니까? 착하시고 지혜롭고 충실하신 가장으로서 주께서는 우리에게 당신 자신의 피와 살을 음식으로 우리를 먹이시는 사랑을 아낌없이 주십니다.



누가 이와 같은 사랑을 거절하고 외면하는 것입니까? 자모이신 성교회는 성모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님이란 가장 확실한 영생의 생명선을 일깨워 줍니다. 여러분 한분 한분을 구원의 어머님께 바칩니다.



여러분의 어린 시절이 마냥 구원의 어머니께로부터 양육되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단 한가지 소원, 즉 가나의 혼인 잔치 때 성모 마리아의 마지막 지시인 “저분이 너희에게 분부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그대로 하라”시는 성모님의 간곡한 말씀을 실천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두손 모아 묵주의 기구를 간단없이 드리십시다.



어머님 손을 잡고 가는 길에 결코 넘어질 걱정이 도무지 없으니 묵주를 꼭 쥐고 구원의 모성애에 매달려 주께로 가십시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아멘.











38             연중 제 2주일   요한 2,1-12 (다) 가나안 혼인잔치

                         김몽은 신부



봄에 꽃이 활짝 피었을 때, 누구나 그 아름다움을 경탄한다. 벌과 나비가 날아오고, 그윽한 향기가 사방에 가득하다. 그 꽃의 아름다움은 열매를 맺기 위한 준비과정이다.

만일 그 꽃에 벌레가 낀다든가, 비바람이 불어온다면 어떻게 될까? 그 결과는 말할 것도 없이 비참하게 열매도 맺지 못하고 시들어 버리거나, 혹 열매를 맺는다 해도 쭉정이가 되든가 부실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도 이와 마찬가지다. 청춘이 아름다운 것은, 성(性)이 성숙하기 때문이다. 성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며, 또한 그러니만큼 고귀한 것이다. 특히 성이 고귀한 것은,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협력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잘못된 성에 대한 개념으로 해서 많은 사람들이 성을 천시(賤視) 내지는 터부시하여, 그것을 수치스러운 것, 더러운 것이라는 인상을 자아내고 있다.

문화의 발전과정에 있어서, 아직 미개한 사회에서는, 가장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일을 피하기 위해, 성에 대해 극도의 수치감을 주어, 그것의 방종된 사용을 금지케 했던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금기(禁忌)함으로써 최소한도의 성의 문란을 방지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과 같은 고도의 문명을 형성한 사회에서는, 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지게 하는 일이 바람직하다. 성은 결코 더러운 것이 아니고, 금기의 것도 아니다. 아름답고 성스런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성의 올바른 사용법을 배우고, 질서에 위배됨이 없이, 하느님의 뜻대로 사용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성이 본래 지니는 목적을 좀더 정확히 알아야 할 줄 안다. 성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인생의 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꽃은 열매를 맺기 위해 아름다운 것이다. 성도 그 열매인 자녀를 낳기 위해서 그 아름다움이 있다. 성은 남성을 보다 남성답게 만들고, 여성을 보다 여성답게 만들어 준다.

성숙된 남녀는 신체적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변호를 가져온다. 남자는 골격이 굵어지고, 목소리가 변하며 보다 적극적이며 활달해진다. 여자는 육체 전체가 유연해지고 섬세한 마음가짐과 모성애가 자라난다. 그리하여 남성이 지니지 못한 것들을 지니고, 남성 역시 여성이 지니지 못한 것들을 지님으로써, 남성과 여성이 서로 보완(補完)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남녀의 결합인 결혼(結婚)은 상호보완의 좋은 본보기이다. 그러기에 하느님은 1남 1녀를 창조하사 그들을 축복하시고 서로 협력하여 살아가면서 자식을 낳아 번성케 했던 것이다(창세기 1장-2장 참조).



그런데 성에는 말할 수 없는 유혹이 따른다. 남녀가 서로 결합되기 위한 성적인 매력은 자칫하면 성의 희롱(戱弄)으로까지 타락시킨다. 그 최대의 원인이 성적 쾌락에 있다.

여기에서 똑똑히 알아두어야 할 것은, 성은 결코 쾌락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날의 성적 문란은 모두가 성의 본래적 의미와 목적을 망각한 데서, 성을 단지 쾌락의 대상으로 보게 된 것에 원인이 있다. 성의 본래의 목적을 망각한다면 앞으로 인류는 멸망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성도덕의 문란은 일부 타락된 계층들의 것이지, 결코 그 보편적인 악폐는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진지하게 결혼생활을 하는 계층이 더 많기 때문이다. 젊음은 아름답다. 그들은 발랄한 성의 특성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 그 아름다운 것[性]을 함부로 다룰 수 있겠는가?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신 것들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특권인, 인간 창조의 협조의 길을 어찌 그렇게도 쉽게 악용할 수 있겠는가? 만일 우리에게 누가 가장 값진 보물을 선물로 주었다면 우리는 그것을 아주 소중하게 다루지 않겠는가?



마찬가지로 성은 가장 아름답고 또 가장 소중한 보물 중에서도 보물이다. 그것을 소중하게 다루는 사람은 그 보물의 진가를 알고 또 그 보물을 진지하게, 그 목적에 합당하도록 사용함으로써. 그 보물이 지니는 참 가치가 발휘될 것이다.



순결을 지킨 사람들끼리 사랑 안에서 결혼하면 그의 자녀들은 모든 면에서 뛰어나며, 부모에게 순종하고, 그들이 지닌 아름다운 성품들을 십이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본인을 위해서는 물론이요, 후세를 위해서도 순결을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 아름답고 고귀한 것을 아름답고 고귀하게 지킨 사람에게는 그만한 포상(褒賞)을 받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39             연중 제 2주일   요한 2,1-12 (다) 가나안 혼인잔치

         김몽은신부



오늘은 예수께서 최초의 기적을 행하신 사실, 즉 물을 술로 변하게 하신 사실을 전해주고 있다. 특히 이 첫 번째 기적을 “가나”라는 마을에서, 혼인 잔치를 위해 행하셨다는 사실은 중대한 뜻을 지닌다. 즉 가정의 성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세상을 성화시키는 하느님의 일꾼이라면, 먼저 우리 자신이 성화돼야 하며, 그 다음에 가정을 성화시켜, 모든 사람들이 우리 가정을 보고 주님을 찬미할 수 있게 해야만 사회 전체가 성화될 수 있다. 그래서 동양의 지혜도 역시 “자신이 먼저 수양된 연후에 가정을 잘 다스리고, 그 다음에 나라를 다스리며, 나아가서는 천하를 태평케 할 수 있다”(修身齊家治國平天下)고 말했다. 크리스천 가정이 성화되지 않는다면, 그는 아직도 덜 크리스천이다. 우선 우리는 우리 가정부터 주님께서 거하실 수 있는 가정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때 가정은 작은 성당이 된다.



주님은 때가 아직 이르지도 않았는데도 성모님의 간곡하신 부탁을 뿌리치시지 못하고 첫 번째 기적을 혼인 잔치에서 행하신 이유를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자.

예수께서 메시아로서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인간적인 정실이나, 간청에 못이겨 하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이 지상에 파견하신 아버지의 뜻에 의해서만이 행동화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있으시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고 그분의 일을 완성하는 것이 내 양식입니다”(요한 4,34).



그렇다면 왜 성모님의 간청에 의해 아직 “당신의 때”도 되지 않았는데 기적을 행하셨을까? 성모님의 간청은 너무나도 간절하셨고, 예수님의 효성은 너무나도 지극하셨으므로, 아버지께서는 이를 허락하셨다. 그런데 하늘 아버지께서는 단순히 그러한 인정 때문에 허락하심이 아니라, “혼인 잔치”라는 사실에 대해, 가정을 축복하시고 성화시킬 필요에 의해 첫 번째 기적을 허락하셨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러므로 오늘의 복음의 첫째 이유는 “혼인이 신성성”에 대한 중요성이며, 두 번째는 성모님의 전구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시는가 하는 일이다.



오늘날 성(性)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가정의 신성성이 파괴돼 가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 교회는 끝까지 이를 지키고 보호해 줄 사명이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다시 깨우쳐 주어야 할 중대한 사명을 가진다. 혼인의 불가해성, 즉 하느님이 맺어주신 것을 인간이 풀지 못한다는 이 신성한 혼인 서약을 끝까지 지켜 나가야 한다. 이것은 우리 가톨릭만의 자랑이며 사명이다.

그리고 오늘의 복음에서 중대한 셋째 이유는, “이것으로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 보이셨고 제자들은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이 기적은 아직도 반신반의로 따라온 제자들에게 당신이 메시아이심을 확신하게 한 것이다. 제자들은 이 기적으로써 신덕이 굳어졌고, 예수께서는 당신의 신성(神性)을 드러내시어 그 영광의 모습을 보이셨다.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보는 동시에, 성모님의 간청에 더욱 의지하고, 우리의 가정을 거룩하게 지켜 나아감으로써 오늘의 복음을 생활화해야 한다.











40             연중 제 2주일   요한 2,1-12 (다) 가나안 혼인잔치

                    이창호 신부



문화와 민도의 차이 없이, 어느 민족이나 국가에 있어서도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인 혼인 제도를 중요시하고, 신성시해 오고 있습니다. 이 혼인 제도에 의해 새로운 한가정이 이룩되고, 그가 미치는 국가 사회의 영향이 크고, 건실한 사회, 건전한 국가의 기본이 여기에 달려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원래 이 제도는 인류 시초에 하느님이 마련하시어 준수케 하셨고, 예수님도 이 제도의 신비를 더 깊게 하시기 위해 가나촌 어느 집 혼인잔치에 제자들과 같이 참석하셔서 아직 당신의 때가 되지 않았지만 그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물이 술이 되게 하신 기적을 행하셔서 축복해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시상 나라에 있어 새로운 한 가정은 국가 사회에서와 같이 기본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가정이 건실하게 발전됨으로 교회도 향상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가정은 작은 교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지상에서 교회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두 말할 나위도 없이 하느님의 백성을 구원에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구원은 교회 즉 우리 가정의 사명도 구원이 아니겠습니까. 신자 가운데서 구원사업(생활)을 빼버린다면, 비신자나 이교도의 가정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하느님의 구원사업이 우리 가정에 이룩되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와 예수님과의 관계를 사도 바울로께서는 부부의 관계로 설명해주십니다(에페 9,29). 전지 전능하신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이지만 시작되고서부터 오늘까지 무수한 고난, 박해를 받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 가정인 소교회도 마찬가진 줄 압니다.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 이룩된 가정이지만 살다보면 생각지도 않았던 어려움, 재화를 겪게 됩니다. 그렇지만 교회가 예수님을 떠나지 않고, 예수님도 그 교회를 버리지 않고 교회와 같이 계셔 동고동락하시는 것같이 우리 가정에 있어서도 이래야 하겠습니다.



가정에 있어 행복의 첫째 조건은 서로 합심해서 생활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이기심이나 개인주의도 금물입니다. 상대방을 위해 내가 희생을 하고, 서로 이해하며, 도와갈 때 일심일체가 안될 수 없을 것입니다. 일심일체가 안되는 그 가정에 있어, 재물이나 권력, 건강 등이 무슨 역할을 합니까? 그것들은 구원의 은총을 막고 방해하는 고통만을 갖다줌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 가정이 행복하기를 원할진대 하느님의 구원사업이 내 가정에 이룩되는데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제거해야 되겠습니다.











41             연중 제 2주일   요한 2,1-12 (다) 가나안 혼인잔치

             김경식 신부



현세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오늘 예수님의 기적은 참으로 반가운 일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생각할 때 십자가에 매어달려 신음하시는 예수님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가난한 이, 박해받는 이, 모든 것을 끊어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가는 이…를 축복하시는 예수님이 아니라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혼인잔치를 축복하시고 술까지 만들어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봅니다.



가정의 시작인 혼인을 축복하시는 일이라면 “때가 되지 않았지만” 신능을 발하시는 주님의 뜻을 살펴야 하겠습니다. 인간은 가정 안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가정 안에서 성격이 형성되고 행복을 얻게 됩니다. 국가, 사회, 교회를 위하여 일할 힘을 가정 안에서 매일매일 얻고 있습니다.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께서 이러한 가정을 축복하심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예수께서 가정을 축복하심은 무엇보다도 실제적인 것입니다. 사랑과 애정, 그리고 내적 은총 뿐 아니라 온갖 즐거움까지도 축복하십니다. 더구나 가정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이라면 술이라도 주시겠다고 보여주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주님은 결코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 생활 속에 항상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술의 기적은 예수님을 우리의 구세주로서 더욱 돋보이게 하고 예수님은 참으로 우리 편임을 확인케 합니다. 우리 가정에도 주님을 초대합시다. 매일매일 가족이 함께 기도함으로써 예수님을 우리 가정에 초대합시다. 주께서 우리 가정에도 기적을 행하실 것입니다.











42             연중 제 2주일   요한 2,1-12 (다) 가나안 혼인잔치

          조순창 신부



지난 주일로 성탄 시기를 마치고, 연중 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연중 2주일의 말씀은 구약에서 신약으로의 전환이며, 불신에서 믿음으로의 변화가 주제입니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은 하느님과 계약을 맺은 하느님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원죄로 상처받은 인간은 탐욕과 교만과 이기심을 버리지 못함으로써 죄에 사로잡혀 살아 왔습니다.

그래도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버림받은 여자나 소박데기로 더 불행하게 두지 않으시고, 회개와 믿음과 율법으로 단장시켜서(가꾸어서), 사랑받는 아내로 삼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예언자는 “신랑이 신부를 반기듯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반기실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이제 예수님은 메시아로 오셔서, 신약의 새로운 하느님 백성을 모으시는 과정에서, 첫 번째 기적을 결혼 잔치집에서 행하십니다. 가나촌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으신 예수님, 성모 마리아, 제자들, 이웃 사람들, 흥겹고 축하의 기쁨에 가득 찼는데, 술이 떨어졌습니다.



그것은 잔치의 끝을 말합니다. 말하자면 구약 시대의 끝을 고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내고 새로 시작되는 구약과 신약의 전환이 아니라, 오히려 물로 술을 만들어 주심으로써 더 좋은 술로 더 흥겹게 완성시켜 주시는 예수님의 자비와, 성모님의 역할이 돋보이는 자리입니다.



그 돌항아리 여섯은 불완전수로서 구약을 이르며, 물로 가득 채운 것은 세례의 물로 은혜 충만하여, 죄많고 상처 깊어 죽어지는 인생이 믿음과 세례와 성령으로 새생명을 얻고, 새사람으로 태어나서, 새롭게 변화된 생활로, “새로운 하느님 백성인 신약의 교회가 준비되고 있다”는 징표입니다.



가나의 첫 번째 기적 사화를 듣고서, 이 기적이 혼인 잔치에서 이루어진 뜻은 우리 혼인을 기적적 은혜로 축복하여 주신다는 뜻이기도 하므로, 가정 성화를 이룰 다짐을 합시다.

구약의 낙원에서는 한 여인 하와가 하느님 사랑과 명을 거슬러서 죄를 지어, 인류에게 불행과 고통과 죽음을 가져왔으나, 신약으로 넘어와서 축복의 현장에서 한 여인 마리아는 신혼 가정에 행복과 기쁨과 삶을 주는 결정적인 구실을 한 것처럼, 가정에서 부인의 구실이 매우 큰 만큼, 가정을 잘 이끌어 주시고, 성모님께 전달 기도를 합시다.



이 기적의 결과로 제자들이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믿게 됨으로써, 초기 신앙 공동체가 교회의 예비 상태로 형성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로, 교회의 제단 앞에 불러 주셨음을 감사드립시다.

각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총의 선물을 나누어주시는 분은 한 성령이시며, 공공 이익을 위해서 주신 능력이기에, 능력대로 봉사하며, 다양성 안에 일치를 완성합시다.



금년은 교구 공동체의 해이며, 1월 18일부터 1월 25일까지는 교회 일치를 위한 ‘세계 기도 주간’이므로, 일치의 도구인 교회가 일치를 실현하여 복음 교회를 이룩합시다.

가정의 중요성과 교회 일치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은 변화에서 비롯되는 사명입니다.



물이 술이 된 가나의 기적은, 오늘 제대 위에서 포도주가 성혈이 되고, 빵이 성체가 되는 기적으로 나타납니다. 이 변화는 성체를 모시는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진리를 증거하고, 사랑을 나누며, 발전을 위해서 봉사하는 구실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구약은 신약으로, 어제는 오늘로, 불신은 신앙으로, 죄의 노예에서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구습을 버리고 신앙인으로 마음도 새롭게, 가정도 평화롭게, 교회는 일치로, 사회 정화 발전에 기여할 다짐을 합시다.

믿음은 깊게, 사랑은 짙게, 이상은 높게, 삶은 알차게, 만남은 기쁘게 하도록 노력합시다.











43             연중 제 2주일   요한 2,1-12 (다) 가나안 혼인잔치

                    정춘석 신부



사람들은 경사스러운 일이 생겼을 때는 잔치상을 마련하여 손님들을 초대하여 기쁨을 함께 나눕니다.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도 기쁨을 잔치로 비유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 시대를 잔치의 기쁨으로 표현했습니다. 구세주가 오시면 풍부한 빵과 포도주가 차려진 잔치에 참여해서 다같이 기쁨을 누릴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가나 동네의 혼인잔치에 초대받아 제자들과 함께 가셨다고 말합니다. 유대의 혼인잔치는 1주일 동안 계속 됩니다. 예수님이 혼인잔치에 초대받아 가셨을 때는 술이 떨어진 것으로 보아 잔치가 거의 끝날 무렵이었던 모양입니다. 유대인들은 잔치에 술이 떨어지면 잔치의 기쁨이 끝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술이 떨어졌다는 것은 신랑 신부에게 큰 수치였습니다. 예수님은 유대 정결예식을 위하여 준비한 물을 포도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리하여 잔치의 기쁨을 계속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나 혼인잔치의 이야기는 매우 의미심장한 예언적인 사건입니다. 바로 구약이 말하는 메시아 시대가 바로 가나 혼인잔치에서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은 그리스도의 나타나심, 즉 주의 공현 축일과 세례 축일에 관련하여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예수님은 구원사업을 공적으로 처음 시작하시는 역사적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 귀절에서 이 사건의 참된 뜻이 밝혀집니다.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 보이셨고, 제자들은 믿게 되었다.” 예수님은 물을 술로 바꾸심으로써 낡은 것을 새것으로 바꾸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메시아 시대의 기쁨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로써 영광을 받았습니다.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것과 같이 예수님은 부활로 낡은 것은 새것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고통을 기쁨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고통과 죽음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으로 살 수 있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인생을 즐기면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성적 쾌락이나 재물에서 기쁨을 찾고, 또 그것에 탐닉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그릇된 즐거움으로 흐르기 쉽고 기쁨보다는 짜증스럽고 고통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바울로 사도는 “장차 받을 행복에 비한다면 우리가 당하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고통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부활의 기쁨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이 지고 가신 십자가를 기꺼이 따를 때 기쁨으로 충만될 것이니다. 우리는 마음 안에 있는 세속적인 쾌락을 쫓아버리고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받아들일 수 있도록 깨끗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자세가 되었을 때 예수님은 우리 안에 들어오시어 물을 포도주로 바꾸어 놓듯이 우리의 마음을 기쁨으로 충만하게 채워줄 것입니다.

우리의 기쁨의 원천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모든이에게 기쁨을 주러 이 세상에 왔습니다. 주님의 잔치는 생명을 주는 잔치입니다. 생명을 주는 주님의 잔치에 우리는 자주 참여하여 우리의 마음을 기쁨으로 채웁시다. 그리스도의 진정한 기쁨을 모르는 이들에게도 이 기쁨을 전해 주기로 합시다.











44             연중 제 2주일   요한 2,1-12 (다) 사람의 협력이 따른 기적

        홍금표 신부



한 인간의 성격형성에 선천적인 요인(유전)이 중요한가 아니면, 후천적인 요인이 중요한가? 하는 문제는 성격 심리학에서 다루어지는 주요한 주제중의 하나이다. 이 문제에 대해 학자들은 인간의 성격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후천적인 요인보다는 선천적인 요인이 더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에서는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가장 적절한 답은 무엇이 더 중요하다라고 하는 것은 그리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인간의 삶에 선천적인 요인이 더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고 중요하다라고 하더라도, 후천적이고 환경적인 요인이 결합되지 않을 때, 선천적인 요인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는 점이다. 다시 말한다면 한 인간의 삶에는 선천적인 요인과 후천적인 요인 모두 중요하고,  이 두 가지가 적절히 조화 될 때만이 성숙한 인격 완성을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어쩌면 신앙 안에서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 은총과 인간의 협력인 실천의 관계를 설명할 때도 사용할 수 있는 개념이고, 나아가 오늘 복음은 은총에 실천이 더해 질 때, 어떤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오늘 복음은, 우리가 흔히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으로 알려진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를 많게 하신 기적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우리가 이 기적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기본적인 개념을 이해 할 필요가 있다.

요한 복음에서는 오늘 복음을 포함하여 모두 일곱가지 기적이 나오는데, 하나의 공통점은 이것이 모두「주간의 여섯째 날」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 여섯째 날은, 창세기에 따르면 인간을 창조하시고 세상 창조사업을 마치신 날, 완성의 날이다. 때문에 여섯째 날의 의미는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실현하시는「새로운 창조의 완성」을 상징하고 있고, 더 나아가 「새로운 인류」,「새로운 공동체」의 출현을 보여주고자 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기적의 현장인 혼인잔치. 오늘 1독서인 이사야서에도 나오듯 성서에서 혼인은 야훼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맺어진 계약을 상징하고 있고, 신약에서도 예수님과 교회사이의 관계를 흔인에 비유해서 설명하기도 한다. 그리고 혼인잔치는 때때로 메시아시대의 이루어질 기쁨과 즐거움을 표현할 때도 사용되는 개념이다.

  그리고 「포도주」. 이 포도주는 성서에서 사랑을 의미하기도 하고(아가서 1,2), 하느님의 축복(창세기 27,28), 또는 예언서에 의하면 메시아시대의 기쁨과 풍요로움의 상징으로 쓰여지고 있는 개념이다.


때문에 이러한 몇 가지 개념을 이해하면, 오늘 복음은 단순히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있었던 사실보다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 더 나아가 예수님과 교회와의 관계에 대한 하나의 메시지임을 쉽게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맺어진 계약의 현실을 보여준다.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지면 잔치의 흥겨움이 반감되듯,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사이에 맺어진 계약도 사랑과 하느님의 축복이라는 포도주가 떨어진 상태로 마치 포도주 없는 결혼 잔치처럼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오늘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런 현실에서, 예수님이 포도주를 넘치게 하셨다는 것은 옛 구약을 완성하는 새 계약을 이루시고,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을 창조하시는 예수님, 그리고 메시아 시대의 풍요로움을 더해주시는 예수님을 보여주면서, 하느님과 백성사이의 계약을 유지하기 위해서는「포도주가 상징하는 바」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는 것이, 이 기적이 주는 의미인 것이다.

  

요한 복음사가가, 수많은 기적 중에 이 기적을 첫 번째 기적으로 우리에게 소개하는 것도, 시간적인 의미보다는 이러한 의미적인 중요성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 복음을 통해서 함께 묵상해 보고 싶은 점은, 이런 신학적인 의미가 아니라 기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여한 인간의 협력부분이다.

  

우리는 흔히 기적을 하느님의 일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사실 그 말은 맞을 수도 있지만 틀릴 수도 있는 말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성서에 나오는 기적 이야기들을 보면 한가지 공통점을 발견 할 수 있는데, 그 공통점은 기적의 이야기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시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미약하지만 인간의 작은 협력, 마치 오늘 복음의 마리아의 역할이나 하인들의 역할도 필요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기적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구원의 역사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출애굽 사건도, 예수님의 탄생도, 하느님께서 친히 모든 것을 하신 것이 아니라, 모세라는 평범한 한 인간, 마리아라는 시골 처녀의 협력을 통해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나간다는 것이다. 즉,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아주 미미하고 보잘것없을 수도 있지만, 인간의 협력이 하느님의 뜻과 만날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마치 오늘 기적도 예수님 능력 + 성모님의 간청 + 하인들의 협력의 합작품이듯 말이다.











45             연중 제 2주일   요한 2,1-12 (다) 그 어머니에 그 아들

                                                      강영구 신부



오늘은 연중 제2 주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 말씀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예수께서 가나에 있는 어느 집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으셨습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도 그 집에 함께 초대받은 것으로 보아, 그 집은 예수의 친척이 아니었겠는가 추측됩니다.

한창 잔치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에 성모님께서 예수께 다가와서 말씀하셨습니다. “큰일이 났구나. 이 집에 술이 떨어졌다.......” 잔칫집에 술이 떨어졌다는 것은 참으로 낭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그것이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아들 예수가 어떻게 해서든지 곤경에 처한 신랑 신부를 도와 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 하인들에게 말했습니다. “예수가 시키는 대로하여라......” 예수께서는 하인들에게 돌 항아리 여섯 개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일렀습니다. 그리고 퍼서 주방에 가져다 주라고 명했습니다. 이미 물은 맛 좋은 술로 변해 있었고 흥겨운 잔치는 계속되었습니다.



오늘 이 복음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누구인가, 예수는 또 누구인가, 그리고 그분들과 함께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오늘 복음을 주의 깊게 묵상하면, 마리아는 참으로 어머니다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잔칫집에 초대받은 남자들이야 먹고 마시고 춤추며 노는 데만 정신이 팔려서, 밥이 떨어졌는지 술이 떨어졌는지 관심도 없었겠지만, 마리아는 어머니답게 여러 가지 사정에 신경을 쓰고 계셨습니다.



마리아는 그 잔칫집의 주인이 아닙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대부분의 주부들이 그러하듯 잔칫집에서 어떤 음식을 준비했는지, 그 음식들은 맛이 있는지, 그리고 손님들을 접대하기에 충분한 음식을 준비했는지 이런 일들에 관심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어머니 마리아가 이렇게 자상하고 세심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술이 떨어져서 곤경에 빠진 신랑과 신부가 그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만일 마리아마저도 무관심한 채 있었더라면, 신랑과 신부는 신혼 첫날부터 커다란 망신을 당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술이

떨어져 버린 잔칫집은, 이미 잔칫집이라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술은 우리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고, 더구나 잔칫집에 술은 꼭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잔칫집에 술이 떨어졌더라면 초청받은 손님들은 이렇게 빈정거렸을 것입니다. “음식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고 무슨 놈의 잔치냐! 잔치는‥‥‥” 그러나 성모님의 자상한 관심과 배려로 그들은 그 낭패함을 모른 채 흥겨운 잔치를 벌일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마리아를 우리의 어머니로 공경하면서, 그분의 도우심과 전구(轉求)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를 주님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모 마리아는 우리의 어머니이시기도 합니다. 우리가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시고 있기에 우리는 그분의 각별한 관심과 보살핌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잔칫집에 술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듯, 마리아는 우리의 곤경과 낭패함, 그리고 고통과 근심 걱정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어려움들을 아들 예수께 말씀드려서, 우리로 하여금 그 곤경에서 벗어나도록 도움을 주십니다.

  

마리아는 우리 인간들에 대한 지극한 애정을 지니신 어머니입니다. 동시에 마리아는 아들 예수를 깊이 신뢰하는 어머니이십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아들 예수로 하여금 곤경에 처한 인간들을 돕도록 중재의 역할을 하실 수 있으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들으신 바와 같이 예수는 아직도 당신의 때가 이르지도 않았지만, 성모님의 간절한 청을 들어 주셔서 낭패를 당할 뻔한 신랑 신부를 도와 주셨습니다. 우리의 곤경과 고통을 잘 알고 계실 성모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위하여 아들 예수께 전구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성모 마리아를 어머니로 공경하는 일은 참으로 큰 축복입니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의 자상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것도 큰 축복입니다. 이렇게 마리아를 어머니로 공경하는 우리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바꾸어 놓으시는 성모 마리아의 믿음을 본받는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어머니 마리아의 청을 들어 주시는 착한 아들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위기와 곤경에 처한 신랑 신부를 도와 줌으로써, 새롭게 출발하는 그 가정에 큰 축복을 베풀어주시는 분으로 나타납니다.

잔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음식입니다. 잔치 음식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술입니다. “술” 하면 고개를 쩔쩔 흔들 분들이 많이 있을 줄 압니다. 특히 술 취한 남편에게 시달리는 주부들이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나 술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절제할 줄 모르고 마셔 대는 사람들이 잘못된 것이지, 술은 분명히 하느님께서 주신 축복입니다. 적당히 마시면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고 넓은 마음을 갖게 합니다. 적당히만 마시면 흥을 돋구어 주고 사람을 솔직하게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술은 사람들을 사귀는 데 가장 적절한 매개체가 되기도 합니다.

술은 우리의 삶에 활력을 주는 윤활유와도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술은 기쁨과 흥겨움의 대명사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그래서 기쁘고 즐거운 일이 있어서 한잔, 슬픔과 고통 때문에 한잔, 이렇게 술을 마시는 것입니다.

  

잔치는 기쁨을 나누는 자리, 서로 사랑과 친교를 나누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잔치에서 이렇게 중요한 음식인 술이 떨어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술이 떨어진 잔치는 더 이상 기쁨을 나누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니 술이 떨어진 잔칫집의 낭패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이 세상에 기쁨과 행복을 주러 오신 분입니다. 사람들이 서로 기쁨을 나누고 친교를 맺으며 사랑하도록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신랑 신부가 신혼 첫날부터 하객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창피를 당하는 것을 내버려두실 수 없었습니다. 예수는 기쁨과 행복은 더 크게, 슬픔과 고통은 더 작게 하시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비록 당신의 때가 아직 오지는 않았지만 곤경 당하는 신랑 신부를 그냥 내버려두실 수 없었기에 예수는 물을 술로 변화시키셔서 잔칫집의 흥겨움을 더해 주셨습니다. 더구나 예수께서는 잔칫집에서 처음 준비했던 것보다도 더 질 좋은 포도주를 만드심으로써 혼인 잔치의 흥겨움을 더 크게 해주셨습니다. 예수의 이 기적이 새롭게 출발하는 그 가정에 커다란 축복이 된 것이 사실입니다. 예수는 이렇게 시련과 고난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시고자 당신의 능력을 드러내시는 분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의 마지막 대목은 이렇게 끝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첫번째 기적을 갈릴래아 지방가나에서 행하시어, 당신 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를 믿게 되었다.”

우리는 이 대목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예수께서 기적을 행하심으로써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는 것은, 당신의 그 능력을 뽐내거나 혹은 자랑하시기 위해서 기적을 행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는 고통 중에 있는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기적을 행하시는 분이지, 당신의 능력을 뽐내기 위해서 기적을 행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의 영광은 기적 그 자체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기적을 통하여 고통과 고난에서 해방된 사람들을 통해서 드러납니다. 예수는 고난과 곤경 중에 있는 인간들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분이지, 당신의 명예와 영광을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주님으로 받들어 섬기는 이유는 그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제자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라는 복음의 대목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제자들은 기적 때문에 예수를 믿은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곤경에 처한 신랑 신부를 기적으로 도와 주시고, 잔치의 흥겨움과 기쁨을 더해 주시는 것을 보고 예수를 믿었습니다. 즉 제자들은 예수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려는 허세에 가득하신 분이 아니라, 진실로 고통 당하는 사람들 편에 서서 그 고통을 덜어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보고 그분을 믿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계시는 곳에 기쁨과 희망이 넘치고, 당신의 능력을 드러내시는 주님으로 인해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고난과 고통에서 구함을 받게 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오늘도 주님의 제단에 둘러앉아서 흥겨운 축제를 벌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우리의 인생을 즐겁게 살도록 불림받은 사람들입니다. 단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우리의 인생살이, 그것도 길지 않는 우리의 인생살이는 한마당 흥겨운 잔치여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삶의 흥겨움은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하듯 흥청대며 먹고 마시며, 찰나적인 향락을 누림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다운 애정으로 우리를 지켜 주시고 보살피시는 성모 마리아와 크신 능력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데, 우리 삶의 흥겨움과 축복이 있습니다. 이런 흥겨운 삶의 축복은 마리아를 어머니로 공경하는 사람들과 예수를 주님으로 섬기는 사람들이 누리는 특권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한마당 잔치처럼 우리의 인생을 즐겁게 살아가려고 노력하지만, 때로는 곤경에 처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마치 오늘 복음의 그 잔칫집처럼 뜻하지 않는 시련과 낭패함에 처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어머니이신 마리아가 우리를 애정어린 눈으로 지켜 주시고 크신 능력의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님께서 크신 능력을 드러내시도록 항아리마다 물을 가득 채우는 일입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하여라......”











46        연중 제 2주일   요한 2,1-12 (다) 기쁨의 잔치를 만드시는 예수님

                                                  이석우 신부(대전)



우리는 지금까지 이 세상에 기쁨과 행복을 주시기 위해 오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경축하는 성탄시기를 보냈습니다. 이제 연중시기를 맞이하여 복음 안에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하느님 나라를 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는 첫 번째 기적을 이루었던 가나의 혼인 잔치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이 기적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풍요로운 기쁨을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즉 '술'이라는 소재가 주는 친근함 때문인지 풍요로운 잔치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기적의 재료를 살펴보면 우리는 물이라는 소재를 발견하게 됩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물은 정결 예식에 쓰는 항아리에 담겨진 물입니다. 정결 예식이란 하느님 앞에 더러워진 우리 자신을 씻기 위한 예식을 말합니다. 그런데 정결 예식을 행할 때 하느님과 인간은 어떤 관계로 자리를 잡고 있는지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너무나도 엄격하고 두려운 하느님의 모습과 씻어도 씻어도 또다시 정결 예식을 행해야 하는 늘 더러운 죄인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이 자리잡고 있었겠지요.



이처럼 '두려운 하느님' 이라는 생각이 담겨 있는 이 항아리의 물을 이제 예수님께서는 '술'로 변화시키셨습니다. 모두가 함께 흥겹게 어울릴 수 있는 술을 여섯 개의 항아리에 가득가득 채웠습니다. 이제부터 이 자리에는 두려운 하느님의 모습이 아닌 흥겨운 잔치에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부르시는 하느님이 우리들과 함께 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이라 불리는 이 기적은 예수님의 전 생애에서 보여 주시는 메시지와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즉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마음, 즉 우리를 초대하시고 함께 어울리며 기뻐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물을 술로 변화시킨 기적을 통하여 우리를 다시 하느님과 함께 기뻐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 위해 늘 우리 가운데 계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생활 속에서 우리의 삶을 기쁨의 잔치로 만들어 주시는 예수님을 기억하며 그 잔치에 함께 참여하기 위해 준비하는 삶을 가꾸어 나가도록 합시다.










47             연중 제 2주일   요한 2,1-12 (다) 가나의 혼인잔치

                                                        신은근 신부



가나의 잔칫집은 예수님을 초대하였다. 성모님과 제자들도 초대받았다. 주인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마음먹고 벌린 잔치임에 틀림없다.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고 있을 예수님의 일행을 상상해본다. 잔칫집의 밝고 소란스런 분위기가 전해진다. 갑자기 하인들의 허둥대는 모습이 성모님의 눈에 비쳤을 것이다. 마리아께서는 여자의 섬세함으로 분위기를 파악하신다. 그리고 조용히 포도주가 떨어졌음을 알렸다. 어머니 아직 제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망설임 앞에서도 마리아께서는 하인들에게 지시를 한다. 그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예수님의 따뜻한 마음을 읽고 계셨던 것이다.



가나의 잔치에서 예수님은 물로써 포도주를 만드셨다. 그분의 첫 기적이었다. 술맛은 어떠했을까.



ꡒ이 좋은 포도주가 아직까지 있다니 웬 일이오.ꡓ 당연하겠지만 사람들은 놀라 감탄했었다. 예수님의 기적으로 잔칫집의 분위기는 계속되었던 것이다. 술이 없다고 잔치가 망가지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흥겨움이 사그라질 것은 분명하다. 어떻게 하든 술은 있어야 했는데 기적이 일어났던 것이다. 잔칫집의 낭패함은 이렇게 해서 본인도 모르는 새 해결되었다.



가나의 혼인잔치는 우리의 삶을 연상시킨다. 술이 떨어진 잔칫집은 기쁨을 잃어버린 신앙인을 떠올리게 한다. 기쁨없는 신앙생활은 믿는 이의 삶이 아니다. 믿음 자체가 기쁨을 향한 노력인데 그것이 없다면 어딘가 잘못된 신앙생활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모른 채 살고 있다. 모르면서 살기에 신앙생활은 더욱 무의미해진다. 그러니 누군가 생활 속에 기쁨을 넣어 주어야 한다. 누군가 예수님을 모셔와 물로써 포도주를 바꾸는 기적을 청해야 한다. 이것이 복음의 교훈이다. 실제로 예수님은 잔칫집에 직접 오셔서 기적의 술을 만들어 주셨다.



그러니 기적을 원한다면 예수님을 초대해야 한다. 예수님을 혼인잔치에 초대했기에 기적의 포도주는 가능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그분을 초대하는 것이 되는가. 첫째는 매일의 기도다. 아침기도와 저녁기도 그리고 묵주의 기도다. 기도의 기초라 할 수 있는 이 기도를 바쳐야 예수님을 일상사 속에 모셔오는 것이 된다. 다음은 선행이다. 하루 한 가지라도 착한 행동을 한다면 예수님의 은총을 모셔오는 것이 된다.



이렇게 산다면 내 인생의 술이 떨어졌을 때 그분은 물로써 술을 만들어 주실 것이다. 내 삶이 기쁨을 상실해 갈 때 그분은 분명 기쁨의 힘을 넣어주실 것이다. 가나의 혼인잔치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알고만 있어선 안된다. 실제로 그분을 모셔오는 행위를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삶은 바뀐다. 우리도 모르는 새 우리의 운명은 즐거움으로 포장되어 간다. 언제나 기적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혼인잔치의 가족들은 술이 떨어진 줄 몰랐었다. 더구나 물이 포도주로 변화된 것도 몰랐었다. 주님의 기적으로 무사히 잔치를 마칠 수 있었지만 그것을 몰랐던 것이다. 모르는 새 기적은 일어났고 사람들은 흥겨워했다. 이것 역시 하느님의 사랑이 아닐는지. 올 한 해 우리도 예수님을 모시고 산다면 그분은 밋밋한 물로써 포도주를 만드셨듯이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과 다를 바 없는 우리의 일상사를 바꾸어주실 것이다. 가나의 혼인잔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78             연중 제 2주일   요한 2,1-12 (다) 새 포도주이신 예수님

 강길웅 신부


제1독서 이사 62,1~5 (신랑이 신부를 반기듯 하시리라)

제2독서 Ⅰ고린 12,4~11 (각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총의 선물을 나누어주십니다)

복 음 요한 2,1~11 (이렇게 예수께서는 첫번째 기적을 갈릴래아 지 방 가나에서 행하셨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가나의 혼인 잔치는 그 의미가 대단히 큽니다. 여기서 주인공은 신랑도 아니고 신부도 아닙니다. 엉뚱하게도 예수님이 주인공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가나의 혼인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계약 관계만도 아닙니다. 하느님과 이스라엘, 하느님과 교회, 그리고 하느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말합니다.



하느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는 백성이 계약을 깨뜨림으로써, 그 혼인 관계는 파기되었습니다. 아주 끝장이 나 버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심으로 인해서 새 계약이 체결되며 새로운 혼인 관계가 성립이 됩니다. 이것이 오늘 성서의 주요 내용입니다.



잔치에서의 술은 생명입니다. 술이 있어야 흥겹고 좋은 술이 있어야 그 잔치가 성대하게 됩니다. 그런데 잔치에 술이 떨어졌다면 그 잔치는 파장입니다. 이제 끝장입니다.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 잔치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 때문에 더 흥겹게 됩니다. 마리아가 도와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잔치는 많은 손님 탓인지 너무도 일찍 술이 바닥이 났습니다. 그러니까 주인은 큰 낭패였고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이때 마리아가 눈치를 채시고 예수님께 도움을 청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개입하심으로써 다 끝장이 난 잔치를 더 흥겹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느님과 이스라엘, 그리고 하느님과 인류와의 관계입니다.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하느님의 계명을 저버림으로써 하느님과의 단절된 생활을 해 왔습니다. 성서에 보면 하느님은 신랑인 남편이요 이스라엘은 신부인 아내입니다. 여기서 신랑은 계약에 늘 충실하지 만 아내인 이스라엘은 항상 바람만 피우고 못된 짓만 골라서 합니다. 이제 혼인 관계는 깨졌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대가로서 실로 엄청난 고난을 체험하게 됩니다. 노예로 끌려가서 수십 년 동안 귀양살이를 했으며 나중에 고국에 돌아왔으나 다 파괴되고 무너진 도시와 성벽 앞에서 그들은 허탈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하느님을 거스렸던 자신들의 죄 앞에서 그들은 회한만이 가득했습니다.



이때 예언자가 나타나서 말합니다. 너희는 이제 더 이상 버림받은 여자가 아니다. 절대로 소박데기가 아니다. 하느님은 너희를 사랑받는 귀여운 각시로 다시 맞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내용이 오늘 1독서에 나왔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어떤 최악의 경우에라도 희망이 있습니다. 절대로 포기되지 않습니다. 바로 예수님 때문입니다. 하느님과 인류와 의 다 깨진 혼인 잔치에 예수님이 개입하심으로써 새로운 사랑의 관계가 성립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처지에서고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생의 의미를 다시 찾을 수 있습니다.



어떤 형제가 세례받은지 2년만에 냉담을 했습니다. 왠지 신앙 이 식어져서 성당에 나오는 것이 귀찮게 되었고 한두 번 안나온 것이 그럭저럭 3년을 주저앉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묘한 것은 그 동안에 돈은 제법 잘 벌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물질이 아무리 풍요로워도 마음은 항상 메마르고 허전했습니다. 마치 잔치에 안주는 풍성하지만 술이 없어서 흥이 나지 않는 그런 혼인 잔치와도 같았습니다. 잘먹고 잘살아도 주님이 거기 계시지 않으니 인생의 잔치는 파장이었습니다. 마음에는 항상 쓰레기만 날리는 황량한 거리 같았습니다.



이 형제가 어느 날 은행을 나서다가 발에 밟히는 것이 있어 주 워 보니 반지묵주였습니다. 그는 자기가 밟았던 묵주를 보면서 어떤 깊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묵주가 버려져 밟혀 있듯이 자기가 신앙 을 버리고 하느님을 밟아 온 나날을 반성하고 회개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그 길로 성당으로 찾아가서 기도를 했고 신부님을 뵙고 고해성사를 봄으로써 새 포도주를 만나게 됩니다. 바로 그날부터 그는 생의 참 의미를 찾게 되었으며 돈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었던 삶의 고귀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는 거기서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이 거기 계시지 않으면 세상은 황무지라는 것을.



우리는 신앙의 은혜를 소중하게 간직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거기 계시지 않으면 인생은 술 없는 잔칫상입니다. 아무리 잘살아도 주인 공 없는 혼인 잔치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마리아의 도움을 기억합시다. 오늘 주님은 원치 않으셨으나 그러나 마리아의 청을 거절치 못 하셨습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희망이 있습니다.



올해가 축복으로 열렸지만 그러나 그 축복의 한 해 속에는 고달프고 힘든 일이 숨겨져 있으며 외롭고 슬픈 일들이 우리를 괴롭힐지 모릅니다. 또는 해도해도 무너지고 실패하는 아픔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때 예수님을 찾읍시다. 그때 성모님께 달려갑시다. 그러면 주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새롭게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흥겹게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49             연중 제 2주일   요한 2,1-12 (다) 신명나는 공동체

교구 주보



1. 복음 이야기(요한 2,1-11)

요한 복음작가는 일곱가지 기적 이야기(2,1-11; 4,46-54; 5,2-9; 6,1-15; 6,16-21; 9,1-12; 11,1-44)를 썼는데, 그 중 첫 번째가 가나의 혼인잔치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어느 날 갈릴래아의 가나에서 벌어진 혼인잔치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잔치가 계속되고 있는 도중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이 딱한 사정을 알게된 성모님은 걱정하면서 예수께 해결해 줄 것을 청했습니다. 난처한 청을 들으신 예수께서는 ꡒ부인, 제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직 제 시간이 오지 않았습니다ꡓ라고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당시 이스라엘이나 지중해 문화권에서 어머니를 ꡐ부인ꡑ이라고 부르는 법은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여기서 ꡐ부인ꡑ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상징입니다. 그리고 ꡒ아직 제 시간이 오지 않았습니다ꡓ는 말씀은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성부께로 옮겨가시어 영광을 누리실 시간(요한 12,23 ; 13,1 ; 17,1), 곧 구원의 시간이 도래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4절의 말씀은 예수께서 죽음과 부활로써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할 시간이 되기 전에 예수께 구원을 강요하지 말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어머니는 시중꾼들에게 ꡒ무엇이든지 그가 여러분에게 이르시는 대로 하라ꡓ고 말씀하십니다. 거기에는 마침 돌로 만든 물독 여섯 개가 있었는데 예수께서는 시중꾼들에게 ꡒ물독에 물을 채우시오ꡓ 하고 이르고는 그 물을 모두 포도주로 변하게 하셨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 참석하신 다음 예수께서는 어머니와 제자들과 함께 가파르나움으로 내려 가셔서 며칠동안 머무르셨습니다.



2. 우리의 이해

요한 복음서는 복음서 작가의 명상록인데다 상징적인 의미를 많이 담고 있어서 그 뜻을 파악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 역시 그러합니다. 예수께서 공적으로 하느님 나라 운동을 시작하기 직전에 맨 처음으로 행한 사건이 잔치집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기적이었다는 요한 복음작가의 보도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유다인들의 혼인잔치는 일주일 동안 계속됩니다. 잔치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술ꡑ일 것입니다. 술은 잔치집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면서 신명나게 축제를 벌이는 데 도움을 주는 매개체입니다. 예수님은 아마도 잔치판의 흥이 깨지지 않도록 물을 술로 변화시키는 기적을 행하셨을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은 평소에 주로 죄인들과 어울리면서 먹고 마시는 것을 즐기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고 ꡒ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벗이로구나ꡓ 라고 말했던 것입니다(루가 7,34).



가톨릭 교회 생활의 중심은 미사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미사에는 잔치보다는 제사의 의미가 더 강하게 담겨 있기 때문에 즐겁고 기쁜 표정을 짓거나 축제라는 기분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느님 앞에 드리는 미사는 축제이고 잔치입니다. 물론 미사 드리는 자세는 항상 경건하고 진지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가나의 혼인잔치처럼 매일 드리는 미사가 흥겹고 신명나는 잔치가 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술에 취해 주정뱅이가 되거나 가끔씩 공동체의 유익을 해치는 면에서는 술의 역기능이 있다 하겠으나 인간미와 인정이 넘치는 공동체를 이루고 축제의 분위기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데에는 술의 순기능이 있다 하겠습니다. 예수님과 더불어 먹고 마시고 즐기면서 복음따라 신명나는 공동체를 만드는 데 함께 노력하도록 합시다.











50     연중 제 2주일   요한 2,1-12 (다) 인간의 곤경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예수



묵상길잡이 :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흔인잔치에 가셨다. 그리고 식사초대에도 잘 응하셨다. 그래서 먹보라는 비난도 받으셨다. 예수님은 고행주의자나 엄격주의자는 아니셨다. 잔칫집에 슬이 떨어져 곤경에 처한 이들을 위해 예수님은 마리아의 간청을 외면하지 않으신다.



1. 애수는 엄격주의자가 아니었다.

사순절에 단식재와 금육재를 지키고 사제들과 수도자들이 독신생활하는 것을 보고, 교회는 단식과 고행을 권장하고, 부자들을 무조건 배척하며, 세상을 등지고 사는 것을 최선의 덕으로 삼는 양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혼인 잔칫집에 제자들과 함께 하객으로 참석하시고. 술이 떨어지자 당신의 첫번쩨 기적을 행하심으로써 혼인을 축복하신 예수님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예수님은 돈 많은 세관장 자캐오의 집 식사초대를 자원하셨고(루가 12,2-l0) 당시의 명망있는 의회의원인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과 친분을 가지셨다. (요한 19, 38)

물론 예수님은 독신으로 오로지 하느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며 사셨고, “머리 둘곳조차 없는"(루가 9,58) 가난한 자로 사셨으며, 광야에 가서 40일 동안이나 단식을 하기도 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혼하는 것이나, 잔치에 가거나 먹고 마시는 일을 죄악시하고 매도하는 엄격주의자나 고행주의자가 아니셨음을 분명히 알아야 하겠다.



2. 하느님은 자동판매기인가?

어떤 신자가 아침 미사를 마치고는 “신부님, 제가 이번 대림절 동안 우리 집 아픈아이를 위해 1주일에 세번씩 단식하며 밤샘기도와 희생을 바쳤더니, 드디어 멀쩡하게 나았습니다. 어제 저녁에 성모님께서 우리 아이를 치유해 주셨습니다"하며 말하는 것이었다.

그 어머니는, 입시준비를 하던 아들이 갑자기 말이 없고, 때로는 신경질을 부리며 그룻이나 유리창을 깨는바람에 이곳저곳 정신병원을 다녔으나 별효과가 없어 걱정하고 있던 중이었다. 나는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조금은 이해할 수 없는 심정이었다. 어쩠든 멀정하게 나았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그러나 며칠 있다 들어보니 그 어머니도 정신이 좀 이상해졌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누구나 하느님을 생각할 때, “내가 이런저런 기도를 하며 희생을 바치고 공로를 세워 그것이 어느 정도 쌓이게 되면 반드시 어떤 은총과 축복을 내려주시고, 반대로 나의 죄나 잘못이 쌓여 어느 한계에 이르면 반드시 큰 재앙이나 벌을 내리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우리는 하느님을 생각할 때, 어떤 기계적인 원리나 법칙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동전을 집어넣으면 기계적인 원리에 의해 반드시 캔 커피나 렉타가 똑 떨어지는 자동판매기인 양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하느님은 절대로 어떤 기계적인 원리나 법칙이나 에너지가 아니라, 눈물을 흘리시고 진노하시고 그러다가도 마음을 돌리시는 인격적인 하느님이시다.



잔칫집에 술이 떨어진 이 곤경을 마리아는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다. 그리고 마리아는 예수께 "술이 떨어졌다"고 알린다. 이것을 보면 마리아는 이때 벌써 예수님이 특별한 능력을 갖고 계심을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이 기적을 행하며 사람들 앞에 드러날 그런 때가 아니라고 판단하여 “아직 제때가 오지 않았습니다"하며 마리아의 청을 거절하신다. 그러나 마리아는 막무가내로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하시며 간청하신다. 아들 예수님은 마리아의 간절한 청원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첫 기적을 베푸신다.

하느님은 이렇게 자유로운, 인격적인 결단을 하시는 분이심을 알아야 한다. 하느님은 우리들의 죄로 진노하시다가도 우리의 회개를 보시면 쉽게 마음을 돌리시는 분이시다.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과부의 눈물을 보시고 측은한 마음을 가지시는 분"(루가 7,)이시다.



3. 마리아는 우리의 전구자

우리 시대는 특별히 성모님의 활동이 눈에 띄게 많은 때다. 세계도처에서 성모님의 발현이 있었고 그때마다 회개와 보속을 명하는 메시지가 주어졌다. 그런데 우리 주변엔 미사중에도 묵주의 기도나 하고 있다든지, 미사 참례는 하지 않으면서도 레지오는 해야 한다고 샘각하는너무나 광신적인 성모신심에 빠진 사람도있다. 그런가 하면 반대로 소위 신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마치 성모님 공경은 배운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신심인 양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양 극단은 모두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복음은 성모님이 아들 예수께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 분인지, 성모님과 예수님이 어떤 관계인지를 너무나 잘 보여준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51             연중 제 2주일   요한 2,1-12 (다) 가나안 혼인잔치



Ⅰ. 예수님의 이름에 구원이 있다.

사도 베드로의 말씀을 다시 들어 봅시다. “백성의 지도자 여러분, 그리고 장로 여러분! 병자에게 베풀어준 은혜 즉 여기 있는 이 사람이 무슨 수로 낫게 되었는가에 대하여, 우리가 오늘 법정에서 심문 받아야 하는 이 마당에, 여러분 그리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알아 두십시오. 이 사람이 건강한 모습으로 여러분 앞에 나선 것은,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박았고,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시키신 바로 그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된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절름발이에 관해서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절름발이는 누구입니까? 이것은 어느 한 사람만이 아닙니다. 인류 전체입니다. 우리 모두입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는 구원되었습니다. 다른 이름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이름 중에 우리 구원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밑에 따로 없기 때문입니다”(독서).



Ⅱ. 예수라는 이름의 뜻

마리아와 요셉은 아기에게 성부께서 태초에 당신 성자께 지어 주신 이름인 「예수」라는 이름을 지어 주셨습니다. 예수는 구세주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구세주이십니다. “하느님 우리 주시여, 온 땅에 주의 이름 어이 이리 묘하신고!”(입당송). 주님의 이름은 주님이 어떤 분이시며 하실 일이 무엇인지를 묘사하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실 분이십니다.

주께서는 우리를 위해 하느님의 마음과 행복에로 이르는 길을 트실 분이십니다. “오롯한 마음으로 찬미하리이다. 하느님 내 주시여, 영원토록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이다. 주는 어지시고 인자하시니, 주를 부르는 모든 이에게 자비가 가멸으시니이다”(봉헌송).



Ⅲ. 크리스천이란 구원된 자라는 뜻이다

우리도 이름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라는 크리스천이 우리 이름입니다.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은 구원된 자들입니다. 성교회의 초대 역사를 보면, 크리스천들은 그들의 이름과 그 이름의 뜻에 대해서 항상 기쁨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구원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어떠한 것도 - 심지어는 순교의 위협을 당할지라도 - 그들의 신앙과 확신을 흔들리게 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위험 중에 살았으나 겁에 짓눌리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크리스천입니다. 우리는 구원된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머나 구원되었습니까? 우리 세상은 얼마나 구원되었습니까? 자세한 것까지 파고 들어갈 것도 없습니다. 다만 만일 우리가 예수께 대한 초대 크리스천들의 완전한 사랑과 기쁨과 열정을 우리 자신에다가 비교한다면, 우리는 부끄러워 얼굴을 쳐들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의 세상을 살펴 보십시다. 이 세상에 구원이 필요한 데가 얼마나 많은가는 구태어 오래 생각할 것도 없습니다. 빈곤, 질병, 빈민굴, 인종차별, 물질주의 - 이 모든 것들이, 아직도 구원이 요원하다는 진리를 요란스럽게 방송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종교는 오직 나 개인의 영혼에 관한 것일 뿐이라고 여기는 사람들 축에 계십니까? 그리스도께서는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주께서는 병자의 육신을 낫게 하시고 빵을 많게 하셨으며, 바다의 폭풍을 잔잔하게 하셨습니다. 주께서는 육체와 영혼을 함께 지닌 사람 전체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Ⅳ. 미사는 그리스도를 우리 생활 속으로 모시고 온다

물론 우리가 주로 마음을 써야 할 것은 우리 자신 즉 우리 자신의 구원 문제입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것은 불행이나 고민 문제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는 우리의 영신적 발전과 그리스도답게 되는 문제를 두고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이제 한 가지는 명백합니다. - 즉 만일 우리의 영신적 발전이 아주 뒤떨어졌다거나 혹은 느리다거나 혹은 전혀 발전이 없다면, 이것은 거의 확실히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밀접히 결합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살아 계신 예수님과 그 분의 이름과 그 분의 인격과 그 분의 존재 전체와 밀접히 결합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께서는 이 미사와 모든 미사 때 사시며 행하시고 병을 고쳐 주시니까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과 이야기하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주님의 이름에 의탁하고 우리 뜻을 그 분의 뜻과 결합시킬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께로부터 예전에 주님이 사시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셨을 때 시작하셨던 치료와 회개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구원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밑에 따로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주께 드리며 주님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미사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아버지, 영원으로부터 주의 이름은 우리 구세주이시다”(층계송).

“주여, 창조된 만백성이 나아 오리이다. 어전에 부복하여 주의 이름을 찬미하오리니, 주께서 위대하시고 많은 기적을 하시며, 주만이 홀로 하느님이시니이다”(영성체송).











52             연중 제 2주일   요한 2,1-12 (다) 포도주의 기적



한 프랑스 수녀가 포도주가 담긴 큰 통을 화물 자동차에 싣고 프랑스 국경을 넘어 스페인 국경 초소에 이르렀다. 포도주의 유입을 꺼리는 스페인 세관원이 그 통에 든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수녀는 물이라고 대답했다. 수상히 여긴 스페인 세관원이 통을 열어 보니까 그 속에 든 것은 아주 맛있는 포도주였다. 당황한 수녀는 “아까까지만 해도 물이었는데 포도주로 변하다니…… 기적이 일어났어요”라고 말했다. 이것은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한 ‘가나의 기적’에 빗댄 서양 사람들의 농담이다.



우리도 이러한 기적을 행할 수 있다. 우리의 매일의 생활과 언행은 물과 같이 색도 없고 맛도 없고 평범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범한 언행이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고귀한 공로로 변할 수도 있다.

같은 물이지만 뱀이 마시면 독이 되고 벌이 마시면 꿀이 된다. 그리고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된다. 같은 나무지만 목수의 마음에 따라 변소에도 사용되고 제단에도 사용될 수 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언행도 우리의 지향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는 것이다.



인간이 살아감에 있어서는 주관적인 요소가 큰 역할을 한다. 몇 해전 영상 8℃의 추위(?) 때문에 인도의 어느 지방에서 79명이 얼어 죽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 지방의 평상 온도는 영상 40℃라고 알려졌다. 반면에 호주 중부 지방의 원주민들은 영하 10℃의 추위에도 벌거벗고 잔다고 한다. 주관적인 요소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를 말해 주는 대조적인 예이다.



기도는 우리 생활에 기적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주관적 요소가 된다. 기도는 우리 생활에 하느님의 도장을 찍는 것과 같다. 그렇게 함으로써 평범한 우리의 언행이 무한한 가치를 지니는 공로가 되는 것이다.

무릎을 꿇어야만 기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도를 하면서 담배를 피우면 안 되지만, 담배를 피우면서 기도하는 것은 좋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입으로 하는 말의 기도 외에 행동의 기도가 있다는 뜻이다. 일상 생활에서 우리가 흔히 행하는 평범한 일들이 우리의 지향으로 행동의 기도가 될 수 있다.

행동의 기도보다 더 좋은 것은 희생의 기도이다. 일부러 고통을 만들어서 희생하고 극기하는 것도 좋지만, 기왕에 당하는 고통을 잘 참아 내는 것도 훌륭한 기도가 된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기도하는 지향을 가지면 그날 하루 생활 전체가 바로 기도가 되는 것이다. 하루를 지내면서 틈틈이 기도하는 지향을 가지면 더욱 좋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루의 생활을 정리해 보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인생은 돈, 권력, 지위, 명예 등 객관적인 요소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먹기, 주관적인 요소, 즉 기도로써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다.











53             연중 제 2주일   요한 2,1-12 (다) 술이 없다



“술이 없다.” 난처한 일이다. 이를 누구보다도 먼저 알아차리신 분이 성모님이시다. 한참 흥겨운 잔치집에 술이 떨어진 사실을 안 성모께서 아들 예수께 이 사실을 은근히 알렸던 것이다. 그처럼 성모님은 말씀이 적으셨다. 가까울수록 친할수록 적은 말과 단순한 행동으로 의사소통이 되는 것이다. 성모 마리아만큼 예수님과 상통한 사람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만큼 가깝기에 성모님만이 예수께 “술이 없다”라고 말씀드릴 수가 있었던 것이다.



자녀들이 아버지에게 청이 있을 때 어머니를 통하는 수가 많다. 또 어머니들은 중개역할을 곧잘 한다. 마찬가지로 예수께 청이 있을 때, 우리는 곧잘 성모님께 간청한다. 이것이 더 쉽고, 더 빠르고, 더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성모께 가는 것은 예수께 가기 위한 지름길이다. 그런데 간혹 외인들은 천주교를 ‘마리아교’라고 한다. 그러한 오해가 없어야겠다.



예수께서는 마리아를 통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 그러니까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께 가는 것은 이상할 것도 없다. 마리아는 예수께서 우리에게 오시고 또 우리가 예수께 가는 통로인 셈이다. 그래서 우리는 마리아를 거치는 것이다. 마리아는 이렇게 우리의 중재자시다.



마리아는 위에서 말한 모자관계요, 통로라는 자연적인 여건이 아니더라도 당신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우리의 중재노릇을 하신다. 아무런 청이 없었는데도 가나 혼인 잔치에서 술이 떨어진 곤경을 면해 주셨다면(요한 2,1-11), 더구나 간청을 하고 애원하는 일에 대하여 얼마나 더 잘 들어 주시겠는가? 자녀를 여럿 둔 엄마가 각자의 요구에 따라 수고하듯, 성모님도 세상 끝날 때까지 그렇게 분주하고 수고하실 것이다.



천주의 성모여, 우리의 모친이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87             연중 제 2주일   요한 2,1-12 (다) 가나 잔치의 뜻



Ⅰ. 가나 잔치의 뜻

오늘 복음 성경은 대림 시작 이후에 일어났던 기이한 사건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성경 귀절입니다. “온 땅은 하느님을 흠숭하고 노래 불러 드려라. 지존의 이름을 고에 맞춰 읊으라. 누리는 두루 기뻐 하느님을 부르고 그 이름 고에 맞춰 노래 불러라. 영광의 찬미를 그분께 드려라”(입당송). 우리는 이 말씀에 감동을 느낄 수 있고 또 느껴야만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 성경에 나오는 젊은 신랑과 신부는 이 노래의 기쁜 감사의 정을 더욱 크게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건에 있어서 예수께서 실제로 하신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물론 예수께서 물을 술로 변화시키셨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기적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여러 가지 뜻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그 젊은 내외는 천박하여 준비를 제대로 못했다는 창피를 분명히 면했습니다. 그리고 또 복음 성경에는 이 기적으로써 예수께서 당신 영광을 드러 내셨고, 이에 제자들은 그 분을 믿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지극히 중요한 뜻이 있는 말씀입니다. 이 사건이 예수님의 공생활의 시작에 있었던 일이고, 또 그 분이 장차 사도들을 바탕으로 성교회를 세우시는 일이 모두 이 사도들의 예수께 대한 믿음 여하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예수님은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셨습니다. 그러니까 혼인이나 음식이나 잔치는 나쁜 것이기는 커녕, 이와는 정반대로 그 당시나 지금이나 장래에나 대단히 좋은 것이고 깊고 고귀한 뜻이 있는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이 기적으로써 드러났듯이 예수님은 무한히 거룩하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그러할진대, 만일 혼인이나 음식이나 잔치가 나쁜 것이라면, 이러한 기적을 하셨을 리가 있겠습니까?



Ⅱ.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생각하셨다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주께서 여기서 가나 혼인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 뿐 아니라 우리도 생각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주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당시의 사도들이 주께 대해서 품었을상 싶은 의심을 우리도 품고 있지나 않은지요? 그 때의 신랑과 신부처럼 우리도 인품에 있어서나 재산에 있어서 부족한 것 때문에 부끄러워 하지나 않는지요?



또는 성 문제나 혼인이나 음식에 관해서 무턱대고 더러운 것으로 여기지나 않는지요? 혹은 술 마시는 데 있어 너무 마신다거나 절제를 할 수 없는 처지에 있지나 않는지요? 하여간 우리가 어떤 사람이거나 간에 문제의 해결은 예수께 있습니다. 예수께 대한 믿음과 예수님의 말씀과 아울러 그 분이 우리 가운데서 계속 기적을 행하시는 방법, 즉 성사 특히 미사에 그 해결이 있습니다.



Ⅲ. 그리스도께로의 모습 바꿈

주께서 우리를 생각하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각별히 주님은 우리의 모습을 바꿀 생각을 하고 계셨습니다. 즉 이 미사를 통해서 주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금년에 또 우리 일생 동안에 참여하는 모든 미사와 영성체를 통해서 우리 안에서 일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주께서는 우리를 당신으로 변화시키시어, 우리로 하여금 주님처럼 되고 주님처럼 생각하고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 세상을 구원하는 자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러한 변화가 가능하겠습니까? 물론 우리 힘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 그리고 주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시도록 우리가 응락하기만 하면 그리스도께서는 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로의 모습 바꿈. - 이것이 바로 우리 인생의 목표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마음 속으로부터 동경하는 표적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미사 때마다 봉헌의 기도를 드리는 목적입니다.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꺼이 우리 인성을 취하셨으니, 우리로 하여금 이 물과 술의 신비에 의하여, 그이의 신성에 참여케 하소서.”



Ⅳ. 미사의 힘

가나의 기적은 놀라운 것입니다. 그러나 미사는 한층 더 놀라운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이 미사 때 예수님과 함께 있습니다. 주님은 죽음의 무덤으로부터 우리를 구하시고 우리를 고쳐 주실 말씀을 보내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의 자비하심을 찬미합시다.

그리고 그 분이 사람의 자녀들인 우리를 위해서 행하셨고 행하고 계시며 앞으로도 행하실 기적에 대해서 주님을 찬미합시다. “주의 모든 천사들이여, 주를 찬미하라. 주의 모든 군대들이여, 주를 찬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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