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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전례
작성자 말씀과 전례
작성일 2007년 11월 12일 (월) 10:42
분 류 연중2-7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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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해 연중 제 3주일 ”
 

연중 제 3 주일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듣는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제 1 독서 : 느헤 8,2-4a. 5-6. 8-10

제 2 독서 : 1고린 12,12-30

복     음 : 루가 1,1-4 ; 4,14-21



해 설

이 주간의 제 1 독서와 복음 사이에는 이야기의 내용상으로는 근본적 차이점이 있지만 의미상으로는 서로 일치되는 점이 있다. 즉 말씀의 규범이 바로 그 점이다. 말씀은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나 하느님 백성의 궁극적이고도 명백한 가치의 기준이다. 그리스도까지도 이 말씀에 매여 있는 듯이 보인다. 그리스도는 바로 이 말씀의 가장 충만한 표현이시며 완전한 실현이시다. 그분만이 결정적인 ‘말씀’이시기에 앞서 행해진 모든 말씀이 그분을 통해 재반향된다.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사도 바울로의 편지의 한 대목이 이 점을 잘 말해 준다:“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시켜 여러 번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마지막 시대에 와서는 당신의 아들을 시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통해서 온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그 아들에게 만물을 물려주시기로 하셨습니다”(1,1-2).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루가에 의한 오늘 복음이 어째서 몇 개의 장을 건너뛰고 서론 부분과 나자렛 회당에서의 예수의 이야기-이사야서(62,1-2)를 읽으시면서 그날 성서의 말씀이 그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시는-를 결합시키는 좀 별난 구성을 하고 있는지르 알아들을 수 있다. 층계송도 시편 18을 통해 하느님의 법을 찬미하고 있으며, 그 법은 ‘말씀’이 표현되는 특별한 하나의 형태일 뿐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주님의 법은 완전하여 생기를 도와주고, 주님의 법은 건실하여 둔한 자를 가르치도다”(8절).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의 고양을 중심으로 생각하며 또한 그 말씀이 오늘날 우리를 위해 갖는 가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러한 것들이 오늘 전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바라고 생각한다.



“에즈라는 해뜰녁부터 해가 중천에 이르기까지 그 법전을 들려주었다”



우선 느헤미야에 의한 제 1 독서의 내용을 살펴보자. 그것은 기원전 444년경 사제이며 선비였던 에즈라가 바빌론 귀양살이에서 돌아와 이미 성도를 재건하기 시작한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해 ‘하느님의 법’을 선포하는 내용을 전해주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계약의 의무는 재인식하지 않고 예루살렘 성벽만 재건하다면 그것은 아무 쓸데도 없는 일일 것이다. 말하자면, 하느님께서 그들을 당신 백성으로서 끊임없이 사랑하시고 보호하실 그 계약의 의무에 충실할 때에만 의미가 있을 것이다.

에즈라가 ‘모세의 법전’(느헤 8,1)-그 당시에 이미 전체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모세오경을 실질적으로 담고 있었던-을 공적으로 장엄하게 낭독하는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그날 사제 에즈라는 그 법전을 가지고 회중 앞에 나타났다. 그 자리에는 남자와 여자, 아이들에게 이르기까지 말귀를 알아들을 만한 사람은 모두 모여 있었다…그는 수문앞 광장에 나타나 해뜰녘부터 해가 중천에 이르기까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셈든 사람들에게 그것을 들려주었고 온 백성은 그 법전을 귀담아들었다…에즈라가 모두 쳐다볼 수 있도록 높은 자리에서 책을 펴 들자 온 백성은 일어섰다. 에즈라가 높으신 하느님 야훼를 칭송하자 온 백성도 손을 쳐들고 ‘아멘’ ‘아멘’하고 응답하며 무릎을 끓고 땅에 엎드려 야훼를 예배하였다”(느헤 8,2-6).

이와 같이 하느님의 법에 대한 참되고 고유한 전레적 낭독을 에즈라가 한 바로 그것과 같이, 모든 백성 앞에서 이루어져야 할 뿐만 아니라 일어서고, 손을 쳐들고,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려 ‘아멘’ ‘아멘’-그리스도교 전례상 동의를 나타내는 고전적 형태의 응답-이라고 외치며 응답하는 백성들의 ‘참여’로써 이루어진다. 7절에서는 레위인들이 백성들에게 선포된 바를 들을 뿐만 아니라 이해할 수 있도록 그 의미를 풀이해주었다고 한다. 이것은 곧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주일강론’과 같은 것이 아닐까!

마지막 부분에서는 ‘하느님의 법’을 성대하게 읽은 결과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모든 백성이 눈물을 흘렸다(9절). 그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하느님의 말씀’에 의해 처벌을 받을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총독 느헤미야와 에즈라와 다른 레위인들은 백성들에게 그날이 결코 슬픔의 날이 아니라 기쁨의 날이 되리라는 것을 알려주어야 했다. :“가서 잔치를 차려 배불리 먹고 마셔라. 미처 마련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거든 그런 사람도 빼놓지 말고 몫몫이 보내주도록 하여라. 이날은 우리 주님의 날로 거룩하게 지킬 날이니 슬퍼하지 말라. 야훼 앞에서 기뻐하면, 너희를 지켜주시리라”(10절).

그러므로 ‘하느님의 법’을 낭독함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회개’의 정을 불러일으켜 후회와 괴로움에 싸이게 했고 또한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게 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내면에 새로운 정신을 갖게 되었다는 구체적 증거는 바로 이러한 사랑의 실천을 통해 나타나게 된다.

하느님의 말씀을 열렬히 선포하고 들음으로써 변모되는 전례 공동체, 바로 이것이 오늘 느헤미야서에 의한 제 1 독서가 전해주려고 하는 메시지이다. 말하자면 위에서 일어난 모든 것이 우리의 전례 공동체 안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그러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하느님의 말씀이 심판의 능력뿐만 아니라 우리 생활을 변화시킬 능력도 갖고 있다는 확실한 신앙심에 의해 전달되지 않았거나 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 역시 이 모든 일을 처음부터 자세히 조사해 둔바 있으므로…”



오늘 복음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첫부분은 루가복음사가가 자기의 복음을 저술하기에 앞서서 그것을 쓰기로 결심한 이유를 설명하는, 품위있게 꾸며진 서문(1,1-4)이고, 둘째 부분은 예수께서 공생활 초기에 광야에서 사탄으로부터 유혹을 받으신 후 나자렛에 돌아오신 후의 이야기를 전해 주고 있다(4,14-21).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를 죽이고자 했으나 실패하는 예수의 고향 사람들과 예수와의 극적인 살벌한 만남은 일단 접어두고 있다 :“회당에 모였던 사람득ㄹ은 이 말씀을 듣고는 모두 화가 나서 들고 일어나 예수를 동네 밖으로 끌어냈다. 그 동네는 산 위에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를 산 벼랑까지 끌고 가서 밀어 떨어뜨리려 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드르이 한가운데를 지나서 갈길을 가셨다”(루가 4,28-30). 이와 같은 이야기의 맺음 부분이 빠져 있는 이유는 오늘 전례의 목적이 하느님 말씀의 ‘규범’과 ‘변화의 능력’ 그리고 우리의 ‘결단’에 대한 촉구를 강조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늘 복음이 무엇을 가르쳐주고자 하는지를 알 수 있다.

루가복음의 ‘서문’부터 살펴보자. 여기서 루가복음사가는 세세대대로 신자 공동체를 이루어주기 위해 전달되는 생활한 실체로서의 하느님 말씀의 신비의 중심부로 우리를 안내한다(루가 4,3-4). 그러므로 이 복음이 봉헌되고 있는 데오필로-우리는 그에 대해 다른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오래 전에 일어난 사건이(1절) 오늘날까지 전해내려옴으로써 우리에게도 구원을 가져다주는 그 구원적 사건들에 직접 참석하지 못한 우리 모두를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바로 이런 까닭에 루가복음사가가 제일 염려하는 바는 그의 복음을 널리 폄에 있어서의 내용의 충실성에 관한 것이었다:“저 역시 이 모든 일들을 처음부터 자세히 조사해 둔바 있으므로 그것을 순서대로 정리하여 각하께 써 보내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음니다. 그러하오니  이 글을 보시고 이미 듣고 배우신 것들이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루가 1,3-4).

그러므로 성루가가 전하고자 하는 그 메시지는 멋지게 다듬어지거나 임의로 조작된 그런 것이 아니라 글로나 말로나 확실한 출전에 의존함으로써 충실하게 내용을 전달할 수 있는 그런 메시지다:“그들이 쓴 것은 처음부터 직접 눈으로 보고 말씀을 전파한 사람들이 우리에게 전해준 사실 그대로입니다”(루가 1,2).

이와 같이 목격증인으로부터 구전을 통해 마침내 기록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증거’의 고리 때문에 우리는 그 구원적 사건들의 핵심 자체에 다다를 수 있고 또한 그 사건들의 역사적 유효성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도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우리의 신앙이 테오필로의 신앙처럼 타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견고한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하지 않겠는가!

루가복음사가는 그의 복음이 충실한 해석과 연결되어 내용상의 견고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확실히 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모든 사실이 곧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신앙심을 생기게 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그 구체적인 예를 나자렛 고향사람들이 ‘예수께서 하시는 은총의 말씀’(22절)을 찬미하면서도 그분 앞에서 취하는 태도에서 볼 수 있다. 신앙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쉽게 알아챌 수 있는 어떤 사실들, 예를 들어 그분이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요셉의 아들’(22절)이라는 사실 같은 것 외에는 그분 안에 들어 있는 그 이상의 어떤 사실을 파악함에서 이루어진다. 복음사가들이 자신들의 이야기와 또 어떤 사실들에대한 해석을 통해서 독자들을 이끌어가고자 하는 목적지는 바로 이와 같은 신앙의 보다 깊은 차원이다.

예수께 관한 다음과 같은 이야기에서 이와 같은 점을 쉽게 추론해낼 수 있다:“예수께서는 성령의 능력을 가득히 받고 갈릴래아로 돌아가셨다…예수께서는 자기가 자라난 나자렛에 가셔서 안식일이 되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서를 읽으시려고 일어서서…”(루가 4,14.16) 예수께서는 이스라엘의 모든 남성에게 주어진 성서봉독의 권리를 행사하신다. 그리고 나서 그분은 순회 설교자로서의 명성에 힘입어 회당장의 권한에 좌우됨이 없이 성서의 내용을 설명해 주신다.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예수께서 그때 읽으신 성서대목은 이사야서 가운데 한 대목이다:“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이사 61,1-2).

여기까지는 다만 이사야 예언자가 그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귀양살이에서 돌아오게 되리라고 선포했던 해방과 구원의 옛 약속이 되풀이되는 것을 들은 이스라엘 각 사람들의 마음속에 다시금 기쁨과 희망의 정이 끓어올랐다는 사실 외에는 별다른 이상한 점은 없다. 이상한 일은 예수께서 성서봉독을 마치시고 두루마리를 다시 건네주신 뒤 자리에 앉으시어 모든 사람의 시선을 받으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면서 그 내용을 설명해주실 때 일어난다:“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루가 4,20-21).

듣는 이들을 당황케 하고 실제로 그들로 하여금 그를 죽이기로 작정케 한 것 은 에수의 설명 내용이다. 사실 예수의 말씀은 아주 터무니 없고 믿을 수 없는 두 가지 사실을 주장하고 있다: 그 첫째는 이사야 예언자의 그 말들-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할 ‘주님의 성령’의 옷을 입은 한 신비스러운 인물에 대한 이야기-이 바로 ‘마리아의 아들’ 또는 나중에 사람들이 경멸하는 뜻으로 말하는 ‘요셉의 아들’인 바로 그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하는 점이며, 둘째는 이사야 예언자가 예언한 메시아의 활동이 이미 바로 그 순간 즉 ‘오늘’이루어진다고 하는 점이다. 그러므로 나자렛 예수를 그 예언적 메시지의 실현자로서 받아들인다는 조건하에서 ‘즉시’그 무언가가 이루어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말씀과 행동으로써 가르치시며 구원활동을 이루신다. 은초으이 때가 가난한 이들, 감옥에 갇힌 이들 그리고 억압받는 이들을 위해 시작된다. 그러므로 루가복음 속의 예수는 바로 억압받는 이들의 구원자시다. 예수께서 가져오신 가장 큰 선물은 해방이다:즉 육체적, 영신적 시력상실로부터의 해방, 가난으로부터의 해방, 종살이로부터의 해방, 죄악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예수께서 지상에 머무시는 한 ‘주님의 은총의 해’는 계속된다. 예수 이전의 사람들은 그 은총의 해야말로 역사의 중심이며 하느님의 위대한 업적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업적이다. 그 은총의 해의 기쁨과 영광을 통해 이샤야 예언자가 예언한 내용-‘야훼께서 우리를 반겨주실 해, 우리 하느님께서 원수갚으실 날이 이르렀다고 선포하여라’(이사61,2)-이 참된 의미를 갖게 된다. 메시아는 무엇보다도 모든 사람을 비추어주는 구원을 베푸시는 자이며, 결코 처벌하시는 심판자가 아니시다”(A. Stöger, Vangelo secodo Luca, vol. Ⅰ, Città Nuova Ed., Roma 1966, pp.133-134).

나자렛 예수를 인간의 전체적 해방의 유일한 실현자로서 받아들이는 이러한 태도는 오직 신앙의 차원에서만 가능하다. 즉 그의 고향사람들은 ‘마리아의 아들’을 진실되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그가 그렇듯 위대한 일을 한다는 것이 너무나 터무니없는 일로 보엿다. 그들은 해방의 계획을 내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을 해방자와 분리시키려 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이와 같은 함정에 떨어지고 있다.

정말로 나자렛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사람에게는 그 예언적 말씀뿐만 아니라 특히 그리스도께서 그 옛날 안식일에 나자렛의 회당에서 하신 말씀이 ‘규범’이 된다:“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바로 그 ‘오늘’이 매일매일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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