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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전례
작성자 말씀과 전례
작성일 2007년 11월 13일 (화) 00:08
분 류 연중8-13주일
ㆍ추천: 0  ㆍ조회: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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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위일체 대축일 ”

삼위일체 대축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을... 여러분 모두가 누리시기를 빕니다.



제 1 독서 : 탈출기34,4b-6. 8-9

제 2 독서 : 2고린 13,11-13

복음 : 요한 3,16-18



엄ㅁ;ㄹ한 의미에서 본다면 삼위일체 대축일은 전례상 별도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삼위일체의 축제는 매주일뿐만아니라, 그리스도교의 무한한 신비 가운데 어떤 관점이나 어떤 사건을 특별히 들어높이고자 하는 다른 모든 축일에도 끊임엇이 거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만 예를 들어 보자. 우리가 앞서 지난주에 기념하여 거행하였던 성령강림 대축일도 삼위일체 ‘신비’의  특별한 표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실로 이 삼위일체의 신비를 제외한다면 성령의 내려오심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단 말인가?

 다른 어떤 이유들보다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삼위일체 대축일은 뒤늦게 나마 전세계 교회에 독자적인 축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14세기).

 이렇게 삼위일체 대축일은 그 나름대로 존재 이유를 갖고 있기 때문에 성교회는 여러 가지 장해를 극복하고, 역사의 흐름 속에서 실현되고 있는 무수한 구원의 사건들이 비롯되고 또 그 의미의 원천이 되고 있는 가장 탁월한 신앙의 신비를 특별히 기념하여 거행할 전례의 기회를 신자들에게 마련해주기에 이르렀다.



그리스도 신자의 ‘생명의 공간’으로서의 삼위일체



이렇게 해서 삼위일체는 신학자들의 사변으로만 치우치려는 고립강테를 벗어나 우리의 고뇌에 찬 생활 영역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즉 본체로서는 단 한분이시지만 실제상으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동등하면서도 서로 구분되는 세 위격으로 존재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믿음과 공경의 대상이실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 구원의 ‘주역’이시다. 그러므로 삼위일체는 우리에게서 멀리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안에 계시다. 더 정확히 말해 삼위일체는 우리의 몸 자체의 주인이 되심으로써 우리의 몸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살아있는 성전”(1고린 6,19 참조)이 된다.

 그결과 삼위일체는 그리스도 신자가 살고 움직이고 행동하는 생명의 공간이 되신다. 뿐만아니라 그리스도 신자가 자신의 전 존재를 삼위일체적 형태로 구축해 나가기 위해 자신을 비춰보아야 할 ‘모델’이 되신다.

 오늘 전례는 이 모든 점을 충분히 간파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오늘 영성체송에서 가볍게 다듬어진 다음과 같은 사도 바울로의 글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그러한 삼위일체 신비의 깊은 의미를 우리가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 “이제 여러분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의 마음속에 당신의 아들의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갈라4,6).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선물’ 은 본질적으로 삼위일체의 성격을 띤다 : 성부께서는 성자를 통하여 그선물을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며 성령께서는 밝히 비추어 변화시키는 능력을 통하여 그 선물을 우리에게 열어 보여주고 또한 입증해주신다.

 이와 같은 사실을 항상 새롭게 발견하고 그로써 기쁨을 만끽할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은 성체성사 안에서 예수님과 만나는 바로 그 순간이다.



 삼위일체께 대한 사도 바울로의 대표적인 신앙고백 형식



 오늘의 독서들은 삼위일체 신비의 ‘실체’ 외에 그 신비가 지니고 있는 ‘생명력’ 즉 모든 믿는 이들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과 우주적 실체를 그 신비의 영역 속에 감싸들이고자 하는, 역동적이며 구원적인 생명력을 우리게 이해시켜주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사도 바울로에 의한 제 2 독서가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의 결론 부분인 오늘 제2독서에서 바울로는 그곳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마지막 훈계와 더불어 성삼위의 이름으로 인사하고 있다 : “형제 여러분, 그러면 아녕히 계십시오. 온전하게 되기를 힘쓰며 내 권고를 귀담아 들으십시오. 그리고 뜻을 같이하여 평화롭게 사십시오. 그러면 사랑과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셔주실 것입니다.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 모든 성도가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께서 이루어주시는 친교를 여러분 모두가 누리시기를 빕니다” (2 고린 13,11-13).

 바울로의 이 인사는 참으로 감동적이다. 그것은 그리스도 신자들이 저례를 거행할 때 주고받았던, 포옹과 입맞춤으로 표현된 형제적 사랑의 행위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한 마지막에 나오는 삼위일체께 대한 신앙고백의 형식도 전례적 행위에 근거를 두고 있음은 물로느 그당시 그리스도 신자들이 서로 주고 받았던 형제적 사랑의 행위를 따르고 있는 것이 거의 틀림없다. 즉 그 당시 그리스도 신자들은 서로 포옹하면서 ‘삼위일체’의 축복을 주고 받았다. 그 축복으 본질적으로 “사랑과 평화의 하느님”(11절) 즉 일치를 이루어주시는 하느님이신 그분 안에서 통교를 이루어 서로 결합되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바울로가 사용하고 있는 삼위일체께 대한 신앙고백의 형식을 짤막하게나마 분석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바울로는 이미 그의 서간집 여러 곳에서 항상 ‘삼위일체’ 께 대해 다른 형태로 언급하며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세 ‘위격’의 역할을 강조한다. 2고린 에서만 보더라도 우리는 시작 부분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훌륭한 구절을 기억할 수 있다 : “그리스도를 통해서 여러분과 우리를 굳세게 해주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 사명을 맡겨주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사람으로 확인해주셨고 그것을 보증하는 표로 우리의 마음에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2고린 1,21-22 ; 그밖에 로마 1,4 ; 15,16.30 ; 1고린 2,10-16 ; 6, 11.14.15.19 ; 12,4-6 ; 갈라 4,6 ; 필립2,1 ; 에페 1,3-14 ; 2,18.22 ; 4,4-6등 참조).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 바울로가 나중에 모든 신앙고백 형식의 전형적 형태의 근간이 될 그 질서를 따르고 있지 않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사실, 그는 첫 자리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말하고 있다. 더 나아가 1고린 12,4-6에서는 ‘성령’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그는 분명히 신학적인 어떤 정의 같은 것들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의 이면에 있는 ‘실체’에 관심이 있었다.



성부의 완전한 ‘선물’이신 그리스도



그리스도 신자가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여정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실체는 그리스도의 위격이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그분을 생각하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그분의 적대자가 되었을 때라도 우리를 향해 오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많은 인간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확실히 보여주셨습니다”(로마 5,8). 그해서 우리는 그스도를 통해 우리 구원의 완전한 ‘무상성’을 깨닫게 되며, 우리의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이 ‘은총’임을 체험하게 된다. 가장 근본적인 ‘은총’은 바로 그분이다. 다른 모든 은총들은 그 다음에 그분으로 말미암아 주어지게 된다 :“하느님께서 우리편이 되셨으니 누가 감히 우리와 맞서겠습니까?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당신의 아들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신 하느님께서 그 아들과 함께 무엇이든지 다 주시지 않겠습니까?”(로마 8,31-32).

 또한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우리 인간들에게 하느님의 참모습 즉 사랑의 참 모슷ㅂ도 발견하게 해준다. 방금 인용한 로마 5,8에서 바울로는 이 사실을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은총의 선물이 크면 클수록 그만큼 더 크다!

 자 이제, 그분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실 수 있었던 모든 것이 언제나 그분 자신보다는 못하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 이 세상 다른 피조물들도 하느님의 무한한 은총의 선물이긴 하지만 인간이라고 하는 가장 고위한 피조물에 비추어 볼 때 그것들은 그의 지혜, 아름다움 그리고 그의 능력의 모방 내지는 소극적 형상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구약성서에서 서술되고 있는 모든 구원적 개입들-그중 놀라운 하나의 증거를 오늘 제1독서 (출애34,4-9)에서 볼 수 있다-도 하느님의 완전한 선물은 아니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에게서만 그분의 완전한 선물을 발견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또한 그 자신이 하느님이시며 하느님을 완전히 드러내주는 결정적 ‘말씀’이시기 때문이다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요한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못 믿겠든 내가 하는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요한 14,11).

 그러나 바로 그리스도께서 ‘아들’로서 우리에게 나타나시기 때문에 그분은 그와 동시에 ‘아버지’로서의 하느님의 가장 친밀하고도 고귀한 실체를 우리에게 열어 보여주신다 : 그러므로 하느님은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실 뿐만 아니라 윌 모두의 아버지 이시기도 하다.사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우리에게 ‘내어주심으로써’ 당신의 ‘부성’을 확장시켜, 당신의 모습을 다른 피조물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무수한 ‘자녀들’(성자를 통하여 맺어진 자녀들)의 형상을 통해 반영시키고자 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아들’로서 계시됨은 삼위일체신비의 문을 윌에게 넓게 열어줄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그 신비의 매력과 깊은 맛을 완전히 느끼게 해준다. 그결과 성요한의 훌륭한 표현대로 “하느님은 사랑이시다”(1요한 4,8)라는 사실을 거의 피부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바우로는 그를 따랐던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여러분 모두가 누리시기를 빕니다”(13절 참조)하고 축원한다.



“성령께서 이루어주시는 친교”



 그리고 “성령께서 이루어주시는 친교”라는, 마지막으로 성령께 드리는 청원도 마찬가지로 그 의미가 깊고 감동적이다.

 사실, 바울로에게 있어서 ‘친교’(koinonia)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그리스도 또는 다른 어떤 구원적 사건과의 친밀한 결합의 관계를 표현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로는 고린토인들에게 그들이 종말의 때까지 ‘아무 잘못이 없는 사람들’로 지낼 수 있으리라는 자신의 확신을 알리며 그 근거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느님은 진실하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부르셔서 당신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맺게 해주셨습니다”(1고린 1,9). 좀더 뒤에 가서는 성체성사에 대해 말하면서 그 성체성사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와의 ‘친교’라고 말한다.(1고린 10,16참조).

 ‘친교’라는 말을 성령께 적용시킬 때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성령과의 신비스럽고 친밀한 관계 즉, 성령과의 일종의 ‘공동’생활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일치를 이루게 하는 성령의 절대적 능력도 뜻하낟. 이런 의미에서 성령은 신자들을 결합시키시는 원리가 되며, 교회를 믿음과 사랑과 희망의 ‘공동체’로 만들어주는 분이시다. 이와 같은 성령은 삼위일체 신비의 본질을 통해 이루는 것을 우리 안에 이루어 주신다. 실로, 성령은 성부와 성자를 위격과 사명으로는 명백히 구분시키면서도 탁월하고도 신비스럽게 하나로 일치시켜 영우너히 결합시키는 ‘사랑’이시다.

 이렇게 볼 때, 오늘 미사 전례의 입당송에도 있는 제 2독서의 짤막한 결어가 얼마나 놀랍고도 ‘풍부한 의미’가 담겨 있는지 아주 쉽게 알아들으 수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초오가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께서 이루어주시는 친교를 여러분 모두가 누리시기를 빕니다”(2고린 13,13). 이것은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그 순간부터 우리에게 주어지며, 교회가 오늘 전례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상기 시켜주고자 하는 것도 바로 그 의미에 대해서이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셨다”



오늘 복음은 요한의 사상이 얼마간 내포되어 있는 예수와 니고데모와의 대화의 끝부분으로서, 그리스도의 체험자체를 통하여 삼위일체 신비를 훌륭하게 소개하고 있다. 요컨대, 오늘 복음에서는 성자를 ‘보내주시는’ 하느님(성부)에 대해서 그리고 성부와 성자의 구원적 사명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셧다. 하느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단죄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시켜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그를 믿는 사람은 죄인으로 판결받지 않으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죄인으로 판결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을 믿지 않앗기 때문이다”(요한 3,16-18).

 이렇듯 깊은 의미로 가득 찬 이 대목에 대해 길게 논할 수는 없고 다만 오늘 전례의 테두리안에서 몇가지 점만을 지적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무엇보다 먼저 드러나는 사실은 하느님께서 무한히 ‘사랑하시는 분’으로 계시되고 있는 점이다 :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셨다”(16절). 여기서 ‘보내주시다’(희랍어로 paredoken)라는 말은 ‘죽게 하다’(갈라 2,20 ; 로마 4,25 ; 8,32 등 참조)라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성부께서는 하나밖에 없는 성자(외아들)를 인간들에게 사랑의 선물로 주기 위해 포기하시는 것이나 다름없다. ‘세상’이라는 말은 여기서 분명히 인류를 뜻한다. 그러나 그 말이 인간과 관련되어 있는 다른 모든 우주 실체도 아울러 뜻하고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느님의 사랑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 우주를 감싸고 있다. 즉 삼위일체는 사랑을 통해 우주만물을 포용하신다.

바로 이러한 사랑의 강도에 비추어 볼 때, ‘하느님의 다들’이신 그리스도를 ‘믿기’ 거부하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바로 그 순간부터 무거운 ‘심판’이 내려지고 있다는 사실은 납득할 만하다 : “그를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죄인으로 판결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을 믿지 아낳았기 때문이다”(18절). 사실,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것은 사장 감동적인 사랑의 현현에 마음의 문을 닫는 것이며, 사랑할 줄을 모르는 파멸의 상태에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자비로우시고 인자하신 야훼”



보다시피, 이상의 모든 성서구절들은 다같이 하느님의 신비를 ‘사랑의 신비’로 강조하고 잇다. 오늘의 제1독서 역시 이와 같은 의미로 우리를 안내한다 : 시나이산에서 모세에게 하신 위대한 발현을 통해 야훼는 당신 자신을 “자비와 은초의 신, 좀처럼 화를 내지 아니하고 사랑과 진실이 넘치는 신”(탈출기34,6)으로 선포하ㅛ다. 그러나 더 나아가 그분이 삼위일체이신 하는미으로 나타나실 때 그 사랑의 차원은 그리스도의 체험이 감동적으로 입증해주듯이 무한히 펼쳐진다.

 우리 그리스도 신자들 앞에 놓여 있는 유일한 문제는 이미 앞에서 강조했듯이 우리의 생활 속에서 이놀라운 삼위일체의 ‘구조’를 실현시키는 것이다 :“실로, 교회 안에서는 삼위일체가 활동하고 교회의 내적 생명은 삼위일체로부터 생겨난다. 즉 교회는 곧 삼위일체의 교회이다. 말하자면, 쇼회는 삼위일체의 영원한 사랑의 계획이 성취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삼위일체는 오직 한 분 하느님이시나 성부와 성자와 성령 세 위격으로 구분되며 그들을 한데 묶어주는 것은 사랑이다. 그러므로 인류가 서로간에 개인적이 ㄴ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최선을 다해서 세위가 영우너히 서로 나누고 있는 그 사랑에 참여하는 사랑으로써 하느로 결합된다면 삼위일체의 모습을 닮아가게 될 것이다”(Y. De Montcheu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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