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모음
강론을 위한 자료실
       
 
전체글 보기  
       
 logos
말씀과 전례
작성자 말씀과 전례
작성일 2007년 11월 12일 (월) 10:45
분 류 연중2-7주일
ㆍ추천: 0  ㆍ조회: 3470      
IP: 218.xxx.10
http://missa.or.kr/cafe/?logos.13.
“ 다해 연중 제 7주일 ”
 

연중 제 7 주일

이제 내 말을 듣는 사람들아 잘 들어라.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제 1 독서 : 1사무 26,2.7-9. 12-13. 22-23

제 2 독서 : 1고린 15,45-49

복     음 : 루가 6,27-38



해   설

이 주일에는 루가복음에 의한 “평지설교” 가운데서 보다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는 대목이 계속되고 있다(루가 6,27-38). 그 내용은 아무런 보상을 바라지 않고(6,35)이웃에게 베푸는 무상의 사랑을 근본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은 마태오복음의“산상설교”를 통해서도 실제로 접하고는 있지만 거기서는 여러 가지 사료에 널리 흩어져 있다. 반면에 루가복음에서는 오늘 복음 내용-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듯이 우리도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초대(36절 참조)-에서 종합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축복’에 대한 선언이 하느님과 그분의 나라를 유일한 재화로서 재발곀케 함으로써 인간들이 거듭거듭 창출해내고 있는 모든 잘못된 가치들을 위기에 몰아넣을 수 있다고 해서 혁명적이라고 한다면, 우리를 사랑하든 미워하든, 우리에게 선을 행하든 악을 행하든 상관없이 다만 타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다른 사람을 찾으라고 가르치는 사랑의 선언도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특히 오늘날 자신에게 이익이 되느 것 즉 경제적 이득이나 또는 쾌락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것만을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이 세상에서, 이와 같은 무상의 사랑의 증거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타인은 모두 우리를 만족시켜줄 가치를 충분히 지니고 있다. 즉 우리가 타인을 인격적으로 대한다면 그를 ‘사랑의 자녀’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그가 순전히 우리에게 손해만을 끼치는 상대자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치 않는다.



다윗의 용서의 모범

이와 같은 사랑의 능력을 명백히 보여주는 한 예를 제 1 독서를 통해 볼 수 있다 : 오늘의 제 1 독서는 관대한 자비심을 드러내보여주고 있는 다윗의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 다윗은 정병 3천 명을 거느리고 그를 죽이러 온 사울왕을(1사무 26,2) 자기 손으로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잡았지만 그의 목숨을 살려 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를 용서하면서 살기등등한 그의 증오심에 대한 심판은 온전히 하느님께 맡긴다 :“야훼께서는 누구든지 참되게 살기만 하면 그대로 갚아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야훼께서 임금님을 제 손에 붙이셨지만 저는 손을 댈 마음이 없었습니다. 임금님은 야훼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분이 아니십니까?”(1사무 26,23).

다윗은 사울이 적인 것을 알면서도 그를 ‘야훼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분’ 즉 야훼께서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신 그분의 합법적 대리자임을 믿는다(1사무 10,1 참조). 이와같은 사랑과 용서의 행위가 그 동기에 있어서 어째서 본질적으로 종교적인지를 알수 있다. 다윗은 사울이 원수라는 사실을 뛰어넘어 사울안에서 하느님의 현존과 계획을 통찰한다. 그리하여 다윗은 사울을 적이나 대항자로 느끼지 않고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즉 다윗의 내적 종교적 감정이 부정적인 태도를 긍정적인 태도롤 바꾸어 놓음으로써 그로 하여금 자신의 적대자의 어리석은 사악함을 극복하고 하느님을 만나게 한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같은 책 조금 앞부분 즉 24장에서도 볼 수 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같은 사실을 다루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우리에게 관심이 있는 사실은, 이야기가 오늘 복음에 대한 예시적 해석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오늘의 복음적 메시지가 지나치게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거나 또는 더 나아가 유토피아적인 것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한 것이라는 사실을 입증해주고 잇다. 다시 말해 오늘의 복음적 메시지가 세상에 선포되기 이전에 이미 어느 누군가가 그와 같은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누가 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대주라



자, 오늘 전례의 중심이 되고 있는 복음적 메시지의 내용에 들어가 보자. 앞서 예수께서는 가난하거나 부자이거나 모든 사람들을 위해 일반적으로 말씀하신 뒤(6,20-26) 이제 당신이 선포에 당신 제자들을 즉시 참여시키시기 위해 그들에게 직접 말씀하신다 :“이제 내 말을 듣는 사람들아 잘 들어라”(27절).

사랑에 대한 이 특별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세 대목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각 대목은 앞부분의 메시지를 종합하고 동시에 확장시키는 문장으로 그 결론이 맺어지고 있다.

첫째 대목(27-31절)은 가장 강하고 선동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라.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해주고…누가 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대주고, 누가 겉옷을 빼앗거든 속옷마저 내어주어라. 달라는 사람에게는 주고 빼앗는 사람에게는 되받으려 하지 말하.”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명하시는 것은 원수들 자신들에 대한 사랑이다. 물론 어렵게 생각되는 이 사랑은 일반적인 자비의 마음으로써만이 아니라,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 대한 적개심을 능동적인 사랑의 구체적 행위로 바꾸어 놓음으로써 우리를 저주하는 이들을 축복하고 우리에게 악을 행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해주기를 요구한다.(28절).

우리가 우리에게 악을 행하는 이들, 우리에게 필요한 것조차(겉옷외에 속옷마저도)빼앗아가려는 이들, 우리의 선의를 이용하여 우리것을 차지하려는 이들을 위해 기도를 통해 하느님 앞에서 변호해줄수 있다는 것은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고”(로마 12,21 참조)죄악과 증오의 폭력을 사랑으로써 분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할 때 그리스도교 신자는 인간들 사이에 새로운 사회생활을 창조해 나갈 수 있다.

“사람들은 불의와 폭력에 대항해서 근본적으로 동태복수법에 근거를 둔 지배체제를 이룩해왔다. 이렇게 해서 불의와 폭력은 여러 가지 법적 조건하에 인간사회에서 오히려 떳떳하게 시민권을 누리게 되었다. 오로지 새로운 인간관계를 창조할 수 있는 성실한 사랑만이 적대자들을 놀랍게  깨우칠 수 있고 비비꼬여 있는 폭력의 형태를 부숴버릴 수 있으며 인간관계에 깊이 박혀 있는 악의 뿌리를 뽑아버릴 수 있다. 이와 같은 정신과 논리는 양식에 따른 인간관계의 옛 ‘황금률’에 보다 깊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루가 6,31). 보편적이고 무상적이고 사심이 없는 사랑의 결정적 행위를통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의 기준이나 척도는 이기주의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필요성에참여케 하고 일치시켜주는 연대성이다”(R. Fabris, in IVangeli, Cittadella Ed., Assisi 1975, p. 1026).



너희가 만일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다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겠느냐?



두 번째 대목은(32-36절) 앞의 내용을 다시 취해 더 깊이 다루면서 그리스도교 신자는 어째서 자기에게 악을 행하는 자까지도 사랑해야 하는지 그 궁극적 이유를 말해주고 있다. 왜냐하면 그가 따라야 하는 하느님 사랑이 받지 않고서도 주는 순수한 무상적 사랑이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그 사랑은 본질적으로 ‘창조적’이다 :“너희가 만일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한다…그러나 너흰는 원수를 사랑하고 남에게 좋은 일을 해주어라. 그리고 되받을 생각을 말고 꾸어주어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며 너희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분은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다”(32.35-36절).

그러므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명하시고 그 절대적 근원성을 이루어주시는 그리스도적 사랑에는 무상적인 그 무엇 즉 은총의 선물이 근원을 이루고 있다. 사실 루가복음사가가 죄인들에의 행위와 비교하여 말하면서 세 번이나 사용하고 있는 그 개념은 비록 일반적으로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겠느냐?”로 번역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무슨 은총이 너희를 위해 있겠느냐?”로 번역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분명히 갚아주리라고 여겨지는 사람에게 빌려주는 것은 무상적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상호교환에 불과하며 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상업적 행위가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실제로 항상 벌어들일 것을 염두에 두고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항상 계산이 들어 있는 사랑의 유사품에 불과하다!

하느님은 인간들을 사랑하심에 있어서 어떤 계산도 하지 않으신다. 사실, 하느님은 착한 이들과 당신의 은혜를 아는 이들에게 하시듯이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다”(35절).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예수께서 사랑의 법을 통해 제시하시는 무상적인 그 무엇을 그들이 본받아 형제들에게 드러내보여주어야 할 하느님 안에서 이미 깨달을 수 있다. 그들은 그분께서 보여주신 본질적으로 무상적인 무한한 사랑과 자비와 용서의 능력을 재생시켜 나감으로써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들’(35절)이 될 것이다.

이 때문에 루가복음사가는 다른 곳에서도 이와 같은 원초적인 사상을 발전시키면서 예수의 입을 빌어 다음과 같은 비유-이것은 루가복음에만 있다-를 들고 있다 :“너는 점심이나 저녁을 차려놓고 사람들을 초대할 때에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잘사는 이웃사람들을 부르지 말라. 그러면 너도 그들의 초대를 받아서 네가 베풀어 준 것을 도로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잔치를 베풀 때에 오히려 가난한 사람, 불구자, 절름발이, 소경 같은 사람들을 불러라. 그러면 너는 행복하다. 그들은 갚지 못할 터이지만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하느님께서 대신 갚아주실 것이다”(루가 14,12-14).

루가는 모든 것을 하느님께로 집중시키지만, 그분을 단순히 모방해야 할 모델로서만이 아니라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온전히 거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의 절대적 원천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방금 언급한(35절) ‘친자관계’에 대한 상징적 표현은 이와 같은 사실을 더 명백히 해주고 있다. 바로 하느님과 신자 사이는 생명의 원천적 관계 즉 ‘출생’의 관계로 맺어져 있기 때문에 신자들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신 하느님처럼 사랑할 수 있고 또 그러한 사랑에 초대되고 있다.



남에게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성부의 모범을 따르는 그 사랑의 무상성에로 신자들을 초대하신다면, 신자들이 그에 따라 한 행위들은 결코 헛되이 끝나지 않을 것이다. 즉 그들이 베푼 사랑의 행위들은 더욱 충만하게 되어 되돌아올 것이다. 이에 관해 세 번째 대목(37-38절)이 명백히 말해주고 있다:“남을 비판하지 말라. 그러면 너희도 비판받지 않을 것이다. 말에다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후하게 담아서 너희에게 안겨주실 것이다. 너희가 남에게  되어주는 분량만큼 너희도 받을 것이다.‘ 이 셈족 언어방식에 따른 수동형 동사들의 주어는 분명 하느님이시다. 즉 그의 자녀들이 자기 형제들에게 무상으로 베푼 사랑을 풍성히 갚아주실 분은 곧 하느님이시다. 이와 같은 사실은 하는미께서 그 무상적 사랑의 원인도 되시고 모델도 되시며 또한 내용도 되신다는 사실을 제천명하는 것이다.

보다시피, 온전히 혼신을 다해 사랑할 때 그 사랑은 이미 보상을 받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사랑을 통해 하느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바오로 6세께서 잊지 말고 거듭거듭 당부하셨고 또한 오늘날 우리 세대가 점점 더 난무하는 파괴적인 폭력과 증오의 거센 물결에 휘말려 침몰하기 전에 서둘러 재차 제시되어야 할 ‘사랑의 문화’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사랑의 능력의 유일한 원천이신 하느님을 거부하는 곳에서는 우리가 목격하는 매일매일의 사건들이 보여주고 있듯이 사람들이 서로서로에게 탄압과 살육의 도구로 전락해 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경고해주고 있다.

  0
3500
   
 N  분류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27    
연중8-13주일
삼위일체 대축일 말씀과 전례 2007-11-13 2207
  26    
연중8-13주일
   Re..삼위일체 대축일 주일강론 2008-08-09 1339
  25    
연중8-13주일
   Re..삼위일체 대축일 요한신부 2008-05-16 1883
  24    
연중8-13주일
   Re..삼위일체 대축일 김민규 안드레아 신부 2008-05-16 1391
  23    
연중8-13주일
   Re..삼위일체 대축일 삼위일체 대축일 강론 모음 2008-05-16 2962
  22    
부활시기
성령강림 대축일 말씀과 전례 2007-11-13 3409
  21    
부활시기
   Re..성령강림 대축일 주일강론모음4, 성령의상징 2008-05-08 4184
  20    
부활시기
   Re..성령강림 대축일 주일강론 모음3 2008-05-08 5061
  19    
부활시기
   Re..성령강림 대축일 주일강론 모음2 2008-05-08 3109
  18    
부활시기
   Re..성령강림 대축일 주일강론 모음1 2008-05-08 3087
  17    
부활시기
   Re..성령강림 대축일 강론모음 2008-03-14 1531
  16    
연중2-7주일
다해 연중 제 7주일 말씀과 전례 2007-11-12 3470
  15    
연중2-7주일
   Re..다해 연중 제 7주일 주일강론 모음 2008-01-31 4080
  14    
연중2-7주일
다해 연중 제 6주일 말씀과 전례 2007-11-12 3322
  13    
연중2-7주일
   Re..다해 연중 제 6주일 주일강론 모음 2008-01-31 3993
  12    
연중2-7주일
다해 연중 제 5주일 말씀과 전례 2007-11-12 3017
  11    
연중2-7주일
   Re..다해 연중 제 5주일 주일강론 모음 2008-01-31 3167
  10    
연중2-7주일
다해 연중 제 4주일 말씀과 전례 2007-11-12 3146
  9    
연중2-7주일
   Re..다해 연중 제 4주일 주일강론 모음 2008-01-31 3906
  8    
연중2-7주일
다해 연중 제 3주일 말씀과 전례 2007-11-12 3165
  7    
연중2-7주일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말씀연구 2010-01-05 3704
  6    
연중2-7주일
   이방인의 갈릴래아, 갈릴래아 사람들이 멸시 받았던 이유 이민족들의 갈릴래아 2010-01-05 2729
  5    
연중2-7주일
   Re..다해 연중 제 3주일 주일강론 모음 2008-01-14 3887
  4    
연중2-7주일
다해 연중 제 2 주일 말씀과 전례 2007-11-12 2740
  3    
연중2-7주일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예수님 말씀연구 2010-01-05 3029
  2    
연중2-7주일
   카나의 혼인잔치의 의미 예수님의 첫 기적 2010-01-03 3011
  1    
연중2-7주일
   다해 연중 제 2주일 주일 강론 모음 주일강론 모음 2008-01-08 4961
1,,,414243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