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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전례
작성자 말씀과 전례
작성일 2007년 11월 12일 (월) 10:44
분 류 연중2-7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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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해 연중 제 6주일 ”
 

연중 제 6 주일

예수께서 열두 사도와 함께 산에서 내려와 평지에 이르러 보니…

제 1 독서 : 예레 17,5-8

제 2 독서 : 1고린 15,12. 16-20

복     음 : 루가 6,17. 20-26



해   설

오늘 전례는 마태오에 의한 그 유명한 “산상설교”(마태 5-7장)의 내용과 본질적으로 일치하고 있는 루가복음의 “평지설교”(루가 6,20-49)에 관한 대목을 전해주고 있다.

그 두 설교는 내용상으로 근본적으로 -특히 정신적 측면에서-일치하고 있지만, 복음사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사료들이 완전히 동일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서나 또는 그들이 각자 나름대로의 신학적 감각과 목적에 따라 그 내용을 구성했다는 사실에서 볼 때는 여러 가지 상위점도 갖고 있다. 본문에 대한 문학비판적 연구라 할 수 있는 이와 같은 어려운 문제는 제쳐놓고 우리는 이제부터 오늘 전례를 통해 제시되고 있는 대목의 의미를 보다 더 잘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그 두 설교 사이의 몇 가지 차이점에 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평지설교



우리는 위에서 루가에 의한 오늘 복음을 “평지설교”라고 했다. 자, 그러면 루가복음사가가 오늘 복음의 분위기를 어떻게 잡고 있는지를 실제로 보자:“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와 평지에 이르러 보니 거기에 많은 제자들과 함께 유다 각 지방과 예루살렘과 해안 지방인 띠로와 시돈에서 온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루가 6,17).

그에 앞서 예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에 들어가 밤을 새우시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루가 6,12). 날이 밝자 제자들 가운데서 하나 하나 이름을 불러 열두 제자를 뽑으셨다(13-16절). 그런 다음 곧바로 그 열두 제자들과 함께 군중들을 향해 산에서 내려가신다. 이 장면을 통해 루가복음사가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의 구원적 신비체제를 투사하고 있다 : 구원과 해방의 복음 메시지가 만물의 중심이 되시는 그리스도로부터 비롯하여 사도들을 거쳐 모든 사람에게 이르게 된다. 사도들과 함께 ‘내려오시는’ 예수의 모습은 교회가 모범으로 삼아 실천해 나가야 할 모든 인간들에 대한 하느님 사랑의 ‘겸손된 모습’을 나타낸다.

이와 반대로 마태오복음에서는(5,1)예수께서 ‘산 위’에서 말씀하셨다고 하는데 그 의미는 다음과 같이 알아들을 수 있다. 즉 예수께서는 시나이산에서 자기 백성들에게 해방자와 입법자 역할을 했던 모세처럼 당신 백성에게 법을 내려주시는 ‘새로운’ 모세가 되시며, 또한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는 구원의 메시지를 생활화하고 실현시키기 위해 반드시 ‘올라가고자’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루가복음에서의 ‘내려감’과 마태오복음에서의 ‘올라감’은 마치 동일한 리듬상의 두 개의 박자와 같다 : 그리스도께서는 ‘내려오신다’즉 우리를 구우너하시기 위해, 다시 말해 우리로 하여금 당신을 향해 올라갈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 당신 자신을 낮추어 내려오신다.



축복과 저주



자, 이제 마태오복음에서나 루가복음에서나 다같이 축복의 말로 시작되ㅇ는 예수의 그 놀라운 설교 내용을 음미해보자.

즉시 눈여겨 볼 수 있는 점은 마태오복음에서는 축복에 관한 구절이 8개(바로 앞의 내용을 약간 확대시켜 표현하는 마지막 구절도 하나로 간주하면 9개)인 반면에 루가복음에서는 4개가 나온 뒤 즉시 4개의 저주에 관한 구절들이 이어지고 잇다. 즉 부요한 자들, 배부른 자들, 웃고 지내는 자들, 생활에서 성공한 자들, 다시 말해 축복의 대상자들과 정반대가 되는 사람들을 대표하는 부류의 사람들에 대한 ‘저주’가 이어진다 “부요한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배불리 먹고 지내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등.

루가복음사가가 마태오복음사가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생각되는 축복에 관한 그 구절들을 자기식대로 재결합시키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항상 부드러운 표현을 쓰는 루가복음사가가 그렇듯 격렬하고 냉혹한 4개의 ‘저주’를 만들어냈으리라고는 거의 보기 어렵다. 오히려 루가복음사가가 그것들을 모아 그리스도의 본래의 가르침을 전하는 이 지점에서 ‘축복’의 의미와 효과를 보다 더 강조하고자 정반대의 표현을 빌어 재작성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마땅할 것 같다.

이미 구약성서 가운데서 축복과 저주가 서로 쌍을 이루고 있는 에를 여럿 볼 수 있다(토비 13,14 ; 잠언 28,14 ; 전도 10,16-17 ; 이사 3,10-11 등). 멀리 다른 곳에서 찾지 않더라도 바로 오늘 전례에서 이와 같은 의미에 비추어 볼 때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두 대목을 접할 수 있는데 바로 그 대목득ㄹ은 오늘 복음의 내용을 더욱 잘 조명해주고 있다. 그 첫 번째 것은 예레미야서에 의한(17,5-8) 지혜문학 형태의 대목이다 :“사람이 힘이 되어주려니 하고 믿는 자들은 천벌을 받으리라…그러나 나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복을 받으리라…” 두 번째 것은 층계송에 나오는 대목으로서 그것은 예레미야서에 표현되어 있는 사상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복된 사람이여 불신자들이 꾀하는 말을 그는 아니 따르고 죄인들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불신자는 이렇지 않나니, 이렇지 않나니, 바람에 흩날리는 겨와도 같도다”(시편 1,1. 4).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하느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그러면 ‘축복’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성서에서 흔히 사용되고 있는 문학형태로서 특히 예언서와 지혜서에서 그리고 유다 전승에서 미래에 얻게 될 기쁨을 선포하거나(이사 30,18 ; 32,20 ; 다니 12,12 등), 현재의 기쁨에 대해 감사를 드리거나(시편 32,1-2 ; 33,12 ; 85, 5. 6. 13등)또는 보상에 대한 약속을 표현하는 데(잠언 3,13 ; 8,32. 34 ; 시편 1,1 ; 2,12등)사용된다. 그러므로 ‘축복’은 항상 하느님께서 당신께 충실한 사람들에게 주실 ‘기쁨’을 알려준다. 산상설교의 축복 외에도 복음서의 여러 군데에서(대략 30여 군데)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느님의 구원을 얻게 되기 때문에 ‘복된 자’들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대목을 볼 수 있다(루가 4,23 ; 11,27-28등 참조).

그러므로 ‘축복’은 관념상의 희망 사항이나 간절한 원의의 표현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권위와 능력으로써 당신의 나라를 이루시는 데 방해가 되는 모든 상황을 뒤집어엎고 그 나를 실현시키실 것을 장엄하게 선포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까닭에 축복은 인간적으로 어렵고, 버림받고,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향하게 된다. 이 때문에 그리스도께 관한 복음은 특히 그분의 ‘전복’능력을 나타내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바로 루가복음사가가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듯이 말이다:“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하느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지금 굶주린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배부르게 될 것이다. 지금 우는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웃게 될 것이다. 사람의 아들 때문에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고 내어쫓기고 욕을 먹고 누명을 쓰면 너희는 행복하다. 그럴 때에 너희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루가 6,20-23).

가난한 이들이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게 될 것이고, 굶주린 이들이 배부르게 될 것이라고 하는 등등의 이야기는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시는 ‘축복’에 의해 상황이 뒤바뀌게 되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그렇게 된다는 것인가? 가난한 이들이 물질적으로 부요하게 되고, 배고픈 이들이 배불리 먹게 된다는 등등의 식으로 그렇게 된다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예수께서 하시는 축복은 다만 불행에 처하는 이들과 행운을 입게 되는 이들을 번갈아 바꾸어 놓을 뿐 여전히 세상에 불의를 존속케 할 따름이다. 또 다른 한편, 예수께서는 계속해서 부요한 이들과 배부른 이들 등을 저주하심으로써 결국 당신 자신 스스로 모순을 초래하시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예수의 축복을 통해 가난한 상태에서, 또는 박해를 받는 입장 등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부요하게 되고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등의(26절)입장에 놓이게 되면 그 때문에 뒤이어 저주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전복’은 다른 의미에서 일어난다. 즉 정신적 내면 상태의 변화와 또한 마음의 회개로 말미암은 외적 변화를 통해 일어나게 된다.

부요함과 배부름과 권력을 누리는 사람들에 으해 가난한 이들, 배고픈 이들, 고통받는이들, 박해받는 이들이 존재한다고 하는 사실은 하느님 나라가 아직 사람들 가운데 현존하거나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다. 하지만, 그 나라는 분명히 그리스도와 더불어 이미 역사 속에서 활동하고 있고, 불의를 행하는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을 이용해 부요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고발하고 있으며 비천한 사람들과 압박받는 사람들의 마음에 희망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가난한 이는 단순히 그의 빈곤 때문에 물질적으로 부요하지 못할 뿐이다. 즉 영신적 배부름과 즐거움과 상극을 주시는 하느님을 반영시키는 새롭고도 결정적인 밝은 생활을 할 때는 부요하다.

이와같은 예수의 선언은 인간들의 생활이 감추어진 차원 즉 세상이 간단히 알아챌 수 없는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제시해준다. 따라서, 지상의 부와 외적으로 드러나는 성공과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사람은 예수의 능력과 그분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없다:“하늘에서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루가 6,23). 여기서는 세상에서 고통받는 사람이 상급을 받게 될 미래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다만 가난한 이들, 배고픈 이들,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참된 부가 현존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것이 현존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항상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예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며 초대하시는 하느님 나라에 관한 진리다.

“이것이 루가복음의 중심사상이다. 가난은 더 이상 단순한 빈곤 자체가 아니라, 은총에 대한 인간들의 개방이다. 이 때문에 자신들의 행위와 법에 의존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부요한 자들로 여겨지듯이 물직적 재화의 퐁요를 자신들의 생활의 기반과 보증으로 삼는 사람들은 부요한 자들이다. 가난한 이는 구하는 자다. 즉 하느님께 자신을 열고 청하는 자다. 가난은 하느님 나라의 법을 받아들이는 것,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것, 가난한 이들과 삶을 그리고 물질을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첫대목에서 불어대고 있는 은총과 새로운 소식의 거센 바람을 잊을 수 없다.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그렇다. 모든 형태의 가난한 이들, 지상에서 안주할 곳을 찾지 못하고 길을 잃고 헤매는 이들, 모두가 여기서는 축복의 대상자들이 된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나라는 용서와 참된 재화와 풍요로움과 즐거움의 형태로 모든 이에게 주어졌고 또한 거기에 다다르고 있기 때문이다”(J. Pikaza, Leggere Luca, Marietti, Torino 1976, p.42).

보다시피,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은 사회적 현실에 대한 ‘축복’이나 ‘저주’에 관한 것이 아니다. 물론 사회적 현실을 통해서도 ‘하느님 나라’가 드러나거나 또는 감추어진다. 즉 사람들이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임으로써 사랑과 봉사를 통해 형제들의 품위를 깨닫고 들어높여주는 정도에 따라서 그렇게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던지시는 그 선동적 제안은 훨씬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 모두가 형제들의 도움을 필요로하는 진정 가난한 자들이 되어야 하며, 그리하여 다 함께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육체적 정신적 굶주림을 채울 수 있는 것들을 하는미과 사람들로부터 얻어야 할 입장에 잇는 사람들의 ‘배고픔’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사람들이 서로간에 야기시키는 엄청난 영신적, 물질적 악-어머니들이 자기 자녀들을 태중에서 살해하기조차 하는 현실을 생각해 보라-에 대해 뉘우칠 수 있는 용기를 가짐으로써 하느님으로부터 위로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결국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오늘날에도 많은 형제들이 세상에서 겪는 끊임없는 박해를 정면으로 대결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과 인간들의 권리를 입증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그와 같은 박해를 그들 자신이 야기시킬 만한 능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상하게도 복음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한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우리가 받을 상이 이미 이 순간부터 ‘크게’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23절).

이 모든 것이 비록 역설적이긴 하지만 참되다는 것은 예수께서 루가복음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 외에도 사도 바울로가 우리의 보증으로서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말해주고 있는 제  2 독서의 내용에 의해 뚜렷하게 나타난다(1고린 15,12. 16-20 참조). 역사를 통해 가장 심한 박해를 당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성부께로부터 부활의 상급을 받으셨다. 이와 같은 사실은 사도 바울로가 말하듯이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죽었다가 부활한 첫 사람이 되셨기”(1고린 15,20) 때문에 우리를 위해서도 확실한 보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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