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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전례
작성자 말씀과 전례
작성일 2007년 11월 12일 (월) 10:44
분 류 연중2-7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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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해 연중 제 5주일 ”
 

연중 제 5 주일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니 그물을 치겠읍니다

제 1 독서 : 이사 6,1-2a. 3-8

제 2 독서 : 1고린 15,1-11

복     음 : 루가 5,1-11



해   설

이 주일의 제 1 독서와 복음에 흐르고 있는 주제는 ‘부르심’과 ‘전교사명’에 관한 것이다. 사도 바울로가 다른 사도들과 그 자신이 모든 사람에게 전교할 사명을 위임받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대한 신비로운 체험으로부터 시작해서 죽은 이들의 부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제 2 독서에서도 부분적이긴 하지만 같은 주제가 다루어지고 있다:“내가 전하든지 다른 사도들이 전하든지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하고 있으며 여러분은 그것을 믿었읍니다”(1고린 15,11). 복음 전 노래도 같은 주제를 취하고 있다:“나를 따르라. 나는 너회를 사람 낚는 어부되게 하리라”(마태 4,19).

그러므로 오늘 독서들에 대한 우리의 해석은 ‘부르심’과 ‘전교사명’-모든 시대에 있어서 교회를 이루는 근본적 요소인-에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요소들이 어떤 것들이 있는가를 밝혀내는 데 목표를 두고자 한다.



“내가 누구를 보낼 것인가?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갈 것인가?”



제 1 독서는 우찌야왕이 죽던 해(대략 B.C. 740)의 이사야 예언자의 예언적 소명에 대한 장엄하고도 극적인 장면의 일부를 전해주고 있다.

‘극적’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여기에서는 빠져 있는 두 번째 부분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그의 메시지에 대한 몰이해와 그로 인해 그들에게 내리게 될 운명적인 벌의 심판에 대해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는 이 백성이 마음을 둔하게 하고 귀를 어둡게 하며 눈을 뜨지 못하게 하여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서 성해지면 어찌하겠느냐?”(이사 6,10) 하느님의 모든 구원적 행동이나 선물은 마치 그리스도를 통해 일어났던 일이 동싱에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넘어뜨리기도 하고 일으키기도 한”(루가 2,34)것처럼 그것을 걸절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거의 항상 멸망적 사건이 되고 만다.

제 1 독서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사실은 다음 세 가지인 것 같다.

첫째는 이사야와 같이 지적 수준이 지극히 높은 사람도 미치지 못할 만큼 무한히 멀리 계시는 하느님의 초월성과 거룩함의 의미다:“나는 야훼께서 드높은 보좌에 앉아 계시는 것을 보았다. 그의 옷자락은 성소를 덮고 있었다. 스랍(천상에서 하느님을 모시는 천사들 가운데 하나로서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고 있는 자-공동번역 주)들이 그를 모시고 있었는데…그들이 서로주고 받으며 외쳤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야훼 그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시다’”(이사 6,1-3).

‘거룩함’은 이사야의 설교 내용에 있어서 중심주제다. 그는 자주 야훼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사 1,4 ; 5,19 ; 10,17. 20 ; 41,14. 16. 20등 참조)이라고 부르며, 인간도 어떤 의미에서 거룩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5-7절에서 이와 같은 사상을 엿볼 수 있다. 성전을 가득채운 ‘연기’(4절)도 이와 같은 하느님의 초월적 현존을 상징한다(출애 19,16 ; 40,34-35 참조). 여기서 감동적인 사실은 하느님은 그렇듯 무한히 멀리 계시어 하늘과 땅을 초월해 계시는 분이시지만(이사 66,1 ; 1열왕 8,27 참조) 인간이 당신을 알아볼 수있도록(이사 6,1), 즉 체험할 수 있도록 인간에게 가까이 하신다는 점이다.

둘째는 이사야 예언자가 하는미의 이러하 ㄴ강렬한 접근을 맞아들이기에 부당함을 느낀다는 점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당황해서 외친다:“큰일났구나. 이제 나는 죽었다.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 입술이 더러운 사람들 틈에 끼어 살면서 만군의 야훼, 나의 왕을 눈으로 뵙다니…”(5절)그 다음 스랍 중 하나가 제단에서 뜨거운 돌을 집어가지고 그 예언자의 입술에 대어 정화시켜주면서 그의 죄가 사해졌다고 한다(6-7절). 이 장면은 어느 누구이든간에 당신의 사자를 통해 변모케 하고 거룩하게 하시는 하느님의 일반적인 구원활동의 모습을 묘사해 주고 있다. 인간은 하느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지 않으신다면 구원의 활동을 성취할 수 없다. 인간의 소질도 지혜도, 타고난 선성도 결코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완성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하느님은 구원의 심판자이시지만 인간을 당신의 구원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한 공동 협력자로 부르신다.

세 번째로 고찰해야 할 내용은 영광 중에 이사야에게 나타나신 야훼께서 던지는 도전적인 질문에 대한 그의 자신있고도 용기있는 대답을 서술하고 있는 그 다음 대목에서 찾아볼 수 있다:“‘내가 누구를 보낼 것인가?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갈 것인가?’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하고 내가 여쭈었더니…”(8절)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당황해서 거의 두려움에 싸여 있던 이사야가 놀랍게도 빨리 태도를 바꾸어 기쁨과 확신에 찬 대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변화가 있게 된 것은 바로 그 사이에 ‘만군의 야훼’ 즉 ‘하늘과 땅에서 당신이 원하시는 것을 실행에 옮기시는’(시편 134,6 ; 113,3 참조)능력이 하느님의 타오르는 ‘불’로 상징되었던 스랍에 의한 내면적 ‘강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똑같은 용기를 예수의 초대를 받고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간’(루가 5,11)사도들에게도 볼 수 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쳐 고기를 잡아라”



루가복음에서 예수의 첫 제자들이 부르심을 받는 내용은 다른 공관복음서(마태 4,18-22 ; 마르 1,16-20)와는 아주 다르다. 거기에는 두 가지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루가복음에서는 그 부르심이 마태오나 마르코 복음에는 전혀 없고 오히려 요한복음(21,1-11)에 있는 그 기적에 의한 고기잡이가 이루어지는 동안에, 그리고 그 결과로서 이루어지고 있다. 루가복음에서는 베드로가 모든 장면의 주인공 역할을 한다. 그래서 비록 실질적으로는 다른 사도들도 예수를 따르지만 예수님의 부르심은 오직 베드로에게만 주어진다:“두려워하지 말라. 너는 이제부터 사람들을 낚을 것이다”(10절). 이와 같은 식으로 루가복음사가는 자신의 어떤 신학적 특징을 드러내보이고자 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와같은 비판적 형식적 특징에 대한 고찰은 별 문제로 하고 신학적이면서도 동시에 영신적인 차원에서의 특징들을 파악해 보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들 수 있는 다른 공관복음서들과의 차이점은 첫 번째 제자들을 부르심이 그리스도의 복음선포 및 전교활동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그때에 많은 사람들이 건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시는 예수를 에워싸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때 예수께서는 호숫가에 대어둔 배 두척을 보셨다…예수께서는 시몬의 배에 올라 그에게 배를 땅에서 조금 떼어 놓게 하신 다음 배에 앉아 군중을 가르치셨다”(1-3절).

예수께서 군중을 잘 가르치시기 위해 베드로의 배르 ㄹ이용하시고 이어서 다른 어부들을 첫 제자들로 부르심은 예수께서 그들을 당신의 복음선포 사명에 참여하도록 초대하심을 의미한다. 복음화는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들의 첫 번째 과제이다. 그리고 그것은 각자가 개인적으로 주님을 발견하고 체험하도록 항상 처음부터 행해져야 한다. 그것은 전체 교회의 과제이다. 그러나 특히 실제적인 상황에 따라 모든 지방 교회가 복음선포의 사명을 띠고 있음을 재삼 깨달아야 한다.

바로 이런 까닭에 모든 대목 가운데 흐르고 있는 지배적인 주제는 ‘말씀’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이미 군중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예수를 에워싸고 있는 것을’(2절) 보았다. 예수께서 강둑에서 좀 떨어져서 ‘배에서 군중들을 가르치셨다’(3절). 그 다음에 계속되는 기적적인 고기잡이의 장면도 온통 ‘말씀’의 ‘능력’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잇다:“예수께서는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쳐 고기를 잡아라’하셨다. 시몬은 ‘선생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못잡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니 그물을 치겠읍니다’하고 대답한 뒤 그대로 하였더니 과연 엄청나게 많은 고기가 걸려들어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 되었다”(4-6절).

기적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말씀’의 창조적이고도 전복적인 ‘힘’에 의해서다. 그리고 그것은 말씀을 선포하시는 그리스도와 그 말씀을 믿는 베드로의 이중적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만일 베드로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반신반의하면서 믿지 않았다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점은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에 협력하기 위한 복음화 활동의 근원성을 깨닫는 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내용이다. 즉 복음이 선포되고 믿어짐으로써 구원이 가능케 된다. 무엇보다도 먼저 복음은 그것을 선포하는 사람에 의해 철저히 믿어지고 생활되어야 하며 그 다음에 그것을 듣는 사람에 의해서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 오직 그렇게 될 때에만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의 사람 낚는 고기잡이는 풍성한 결과를 가져오는 기적을 이룰 수 있다.

그러므로 철저히 믿어진 복음만이 마치 베드로와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여기서는 명백히 언급되고 있지 않지만 안드레아에게 있어서 일어났던 것처럼 생활을 변모케한다. 이에 대해 루가복음사가는 오늘 복음 끝에서 강조한다:“그들은 배를 끌어다 호숫가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11절). 새로운 생활의 시작은 예수와 역사가 매순간순간 보여줄 미래를 향해 자신을 투신하기 위해 과거와 단절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과거의 고기잡이 기술은 그것이 요구하는 신체적인 자질 외에 윤리도덕적 자질 즉 인내, 강인성, 주위의 위험에 대처할 능력, 희생정신 등으로 변모되어 남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충실히 따르는 모범적 예다.

“따른다는 것은 정해진 길을 다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르심을 받고 행한 첫 걸음은 예수를 따르는 사람을 그의 과거 생활과 갈라 놓는다. 이렇게 해서 따르라는 부르심은 즉시 새로운 상황을 만든다. 전의 위치에 머물러 있는 것과 따른다는 것은 서로 배타적인 두 개의 위치다…예수께서는 자기를 따르라고 부르시는 그 행위 자체로써 모든 것을 버리고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과 함께 가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믿음’의 가능성은 없다고 하셨다…신앙에로의 길은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대한 ‘복종’을 거쳐야 한다. 그것은 절대로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의 부르심은 헛되게 되고 말 것이며 따라서 그러한 복종의 길을 거치지 않고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주자은 모두 헛소리가 되고 만다”(D. Bonhoeffer, Sequela, Ed., Queriniana, Brescia 1971, pp.41-42).



베드로의 배



마지막으로 루가복음에서 다른 공관복음서들과 달리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또 한가지 점은 부르심과 전교사명의 예고에 대한 전장면을 통해 나타나고 있는 베드로의 ‘우위성’에 관한 것이다.

예수께서 군중들을 가르치시기 위해 택하신 것이 그의 배다(3절). 예수께서 더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치라고 명한 것도 그에게다(4절). 밤새도록 헛수고를 한 후에 예수의 ‘말씀’에 대한 신앙을 선언한 장본인도 베드로다(5절). 그리고 또한 기적이 있은 뒤 놀라움에 차서(9-10절 참조)예수를 ‘주님’이라고 고백하면서 예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것도 베드로다:“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에게서 떠나주십시오”(8절). 마지막으로 예수께서 다른 사람들에 앞서 당신을 따르라고 부르신 것도 베드로다. :“두려워하지 말라. 너는 이제부터 사람들을 낚을 것이다”(10절). 또한 여기서 주목할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은 루가복음사가가 실제로는 예수께서 좀더 나중에 붙여주시게 된(루가 6,14 참조) 베드로라는 이름을 앞서 사용하고 있는 점이다(8절).

이 모든 사실은 의심할 여지도 없이 그리스도의 구원계획 안에서 베드로가 차지하고 있는 특별한 역할이 어떤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다. 오늘날도 그리고 언제까지나 항상 예수께서 군중들을 가르치시고 그 기적의 고기잡이를 행하시는 것은 베드로의 배 안에서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베드로 없이는 전교사명이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어떤 사람들이-가톨릭 신자들 가운데서도-베드로를 교회일치를 이루는데 있어서 제일 큰 ‘장애물’이라고 단언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오히려 루가복음의 내용에 따르면 다른 또 하나의 배는 베드로를 통해 이루어진 기적적인 고기잡이의 도움으로 가득채워지게 된다. 그리하여 두 배가 다 ‘가라앉을 정도가’(7절)된다. 모든 사람이 기뻐하고 만족할 만큼 풍성한 고기잡이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베드로의 배를 향해 가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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