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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전례
작성자 요한신부
작성일 2008년 5월 16일 (금) 23:23
분 류 연중8-13주일
ㆍ추천: 0  ㆍ조회: 1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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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삼위일체 대축일 ”

삼위일체



“하느님께서는 한분이시지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로 현존하신다.”는 삼위일체의 신비는 온전히 인간의 머리로는 알아들을 수 없는 계시 진리입니다. 신앙인들은 이해할 수는 없지만 믿을 수 있기에 늘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믿음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모든 시작과 끝을 성호경, 즉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시작합니다. 또한 신앙인들의 희망은 거룩하게 살다가 주님 앞으로 나가가 주님의 현존을 두 눈으로 보아, 삼위일체의 신비를 보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은 삼위일체에 근거합니다. 교회는 삼위일체 교리가 하나의 신비로서 계시로 알려지는 진리이고, 계시를 떠나서는 인식이 불가능하다고 가르칩니다. 또 계시가 되었다 하더라도 삼위일체의 신비가 남김없이 파악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성삼위 신비는 창조계를 까마득하게 초월하는 것이므로 창조된 사물에 비유하는 것은 어느 것도 이 신비를 적당하게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1. 삼위일체 신앙의 발단

그리스도교 신앙의 고유성을 드러내주는 삼위일체에 대한 교리는 하느님께 대한 역사적인 체험을 소화하려는 노력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신약의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측면에서 하느님의 계시를 만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체험하면서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심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성령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역사 안에서 삼중형태를 지닌 하느님과 마주하게 되면서 이 체험을 어떻게 유대교의 유일신 신앙과 융화시킬 수 있는가를 궁리하게 되었으며 많은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세 분이시라면 유일신교가 아니라 다신교가 되기 때문입니다.



2. 성경에 나타난 삼위일체

역사적으로 많은 교부들이 구약의 많은 본문을 삼위일체 진리를 암시하는 것으로 간주하였습니다. 그래서 창세기1,26절의 우리라는 말마디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는 세인물의 방문(창 18,1-16), 이사야의 삼중찬미를 삼위일체의 하느님을 드러내는 계시라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명확하게 이것을 통해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속성을 설명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신약성경에 명시적으로 나타나는 삼위일체 신앙은 예수님의 직제자들에게는 분명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상당히 일찍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이해하게 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신약성경은 삼위일체 신비가 성자 하느님과 성령 하느님의 체험을 통해서 계시되었음을 알려 줍니다. 하느님의 구원역사 안에서 명백하게 계시는 성부 하느님, 성자 하느님, 성령 하느님의 체험이 있었기에  하느님의 실재에 대한 신비가 이성적으로 남김없이 알아들을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삼위일체 신앙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삼위일체 신앙의 형성과정

초대 교회는 일찍이 입교자들과 신자들의 교리교육 때문에 요약된 신앙교리문을 작성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당시 많은 이단들이 그리스도교를 위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 신앙을 저해할 첫 위험은 성경 전통을 강하게 고수하며, 성서적 유일신론을 옹호하려는 종교 철학적 조류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신 그리스도는 단순한 인간이었지만 세례 대 특별히 하느님의 능력을 힘입어 하느님의 아들의 위치로 입양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성자와 성령은 한 분이신 하느님의 현현 양식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또한 하느님 안에 세 위격을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성자와 성령은 성부 하느님과 본질이 같음을 거부하고 성부 하느님께 종속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이단들이 있었습니다.



결국 니체아 공의회를 개회하여, 공의회 교부들은 “성자가 성부의 본질에서 출생하여 성부와 본질이 같다.” 라는 가르침으로 처음으로 성자의 참된 신성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였습니다.

니체아 공의회에서는 성령의 문제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성부와 성자의 관계만을 동일 본질성으로 규정짓고 있으며, 그 구별성도 분명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렇게 부족한 니체아의 삼위일체 교리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교부들은 바실리와 니싸의 그레고리오,나지안즈의 그레고리오였습니다. 이들은 삼위일체 신비를 해설하는데 성부, 성자, 성령 세위의 구별점에서 출발하여 하느님의 본질 단일성에 이르고자 시도하였습니다.



세 위격의 개체적인 표징들은 성부의 원천성과 비출생성. 그리고 성자의 성부로부터의 출생성, 성령의 성부와 성자로부터의 발출성으로부터 드러납니다.



아타나시오 신경은 종래의 어느 신경보다도 삼위일체 교리를 체계적으로 해설되어 있는데 삼위 안에 한 분 하느님이 계시고, 같은 영광을 받으시며, 창조되지 않으시고 무한하시며, 영원하시고 전능하시며, 그렇다고 세 하느님이 아니고 한 하느님이 계시며, 누구든지 구원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삼위에 대하여 생각하여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여기서 삼위의 구별성을 성부의 비출산성, 비발출성, 성자의 출산성,성령의 발출성에서 찾아내고 동일한 영광, 동일한 위엄, 동일한 신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4.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 교리

① 한 하느님이 세 위격으로 존재하는데 하나의 하느님이시며 이 위격들은 동일하게 영원하고 전능하십니다.

② 세 위격들이 구별됩니다. 성부 위격은 무근원적 위격이고, 성자의 위격은 성부로부터 출생되는 위격이며, 성령의 위격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발출되는 위격이라는 점에서 구별됩니다. 그리고 출생과 발출이 정확하게 구분되지 않고 다만 유래성만을 지시하고 있을 뿐입니다.

③ 이 하느님의 세 관계적 위격들은 하나의 하느님 본질에 있어서 구별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하느님의 유일성이 강조됩니다.

④ 하느님의 위격들은 존재 안에서 분리되지 않기 때문에 외부를 향하는 하나의 역사 원리입니다.



5. 삼위일체론의 중심 사상과 그 적극적 의미

그리스도교가 삼위일체 신앙을 받아들이게 된 결단의 기본적 관점은

①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는 직접적이라는 믿음에 기인합니다. 어떤 반신이나 반인 같은 중간적 존재로서는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제대로 중재 하지도 못하고, 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②“하느님은 오직 한 분 뿐이시다.”는 철저한 유일신론적 신앙고백에 그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③ 하느님과 인간의 역사를 진지하게 고려하자는 노력의 태도입니다.



6. 부정신학으로서의 삼위일체론

교회가 시도하고 있는 하느님의 삼위일체에 대한 신비는 어쩌면 부정적으로만 설명될 수 있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하느님은 이렇다.”가 아니라, “이것은 하느님이 아니다.”라고 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지식으로는 하느님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말하자면 암시이지 설명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하느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보다 하느님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부분이 더 크다는 것을 겸허하게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무작정 그분을 받아들이는 무비판적 입장은 거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참 신앙의 자세도 아닐 뿐더러 하느님께 대한 올바른 자세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앙이란 야곱처럼 부단하게 하느님과의 한판의 씨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하느님과 말하려는 사람은 적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아는 것보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삼위일체 대축일을 통해서 깨닫게 되었으면 합니다.



7. 예화

① 본당신부님과 나이드신 자매님과의 대화

어느 본당 신부님께서 성탄을 준비하면서 판공성사를 주고 계셨습니다.

공소나 구역의 신자들과 일일이 면담하면서 교리도 물어보셨습니다.



신부님께서 나이 많은 자매님께 여쭈었습니다.

“자매님! 하느님은 몇 분이십니까?”

그러자 그 자매는 당연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연히 한 분이시지요!”

그러자 신부님께서는 또 물으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은 몇 개의 위격이십니까?”



자매님은 고민하다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믿고 있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두개의 위격만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놀란 신부님은 그 자매님께 다시 물었습니다.

“왜요?”

“그거야 간단하지요. 제가 어릴 적에도 성부 하느님께서는 수염이 하얀 할아버지의 모습이셨거든요. 지금 제가 80세이니, 성부 하느님께서는 돌아가셨을 것입니다.”

“......,”



② 아우구스티노 성인 이야기



하루는 아우구스티노 성인께서 “삼위일체 교리를 어떻게 하면 잘 깨닫고 설명할 수 있을까?” 하여 고민하면서 바닷가를 산책하고 계셨습니다. 하루 종일 바닷가에서 생각에 잠겨 있는데, 한쪽 구석 백사장에서 아이들 세 명이 역시 하루 종일 모래성을 쌓아 놓고 작은 조개껍질로 바닷물을 퍼부으며 놀고 있었습니다. 성인께서 가까이 가서

“애들아, 너희들 무엇을 하고 있어"

라고 물으시자, 어린이들은

“저희들은 저 바닷물을 이 모래성에 모두 퍼 담으려고 합니다."

라고 답했습니다. 성인께서 웃으시며 다시

“애들아, 너희가 죽을 때까지 해도 그 일은 못 끝낼 것이야"

라고 하시자, 아이들은

“그래도 선생님께서 삼위일체교리를 깨닫는 일보다 더 쉬울 거예요"

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바닷가에서 돌아와 5시간 동안 삼위일체에 대하여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이렇게 내렸습니다.

“자, 저는 지금까지 인간의 말을 총동원하여 성부, 성자, 성령이 한분의 하느님이라는 삼위일체를 설명해 드렸습니다. 마지막 결론을 말씀드린다면 이것입니다. ‘삼위일체는 신비다. ’”







8. 삼위일체를 설명하는 비유들

어떤 비유로도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드는 비유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① 인간과 삼위일체

인간은 ①지능 ②의지 ③정서를 지닌 존재입니다. 세 가지 기능을 가졌지만 한 사람의 인간입니다. 지능은 생각하고 판단하는 기능이고, 의지는 생각한 것을 행동으로 옮깁니다. 정서는 자기가 지능으로 생각한 것을 의지에 의해 행동한 다음 그 결과를 보고 좋다든가 나쁘다든가 하고 느낍니다. 한 사람의 어떤 행동을 보고 “저 사람은 이렇게 했다”고 말하지 ‘저 사람의 지능이 그랬다’ 또는 ‘그의 의지가 그랬다’거나 ‘저 사람의 정서가 그랬다’고 평하지 않습니다. 성삼위께서도 따로 따로 작용하시기도 하고 동시에 작용하기도 하십니다.





② 삼각형과 삼위일체

하나의 삼각형은 세 개의 각과 세 개의 변이 있으나 삼각형은 하나라고 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세 위격을 지녔으나 한분의 하느님이십니다.



③ 성냥불과 삼위일체

성냥은 불이 켜짐과 동시에 불꽃과 빛과 열이 생깁니다. 삼위일체는 영원으로부터 삼위를 갖고 계신 천주 성부께로부터 성자가 나왔으나 동시에 낳았다고 볼 수 있으며, 영원한 이상이신 성부의 이념이 성자가 되었는데 그것을 ‘말씀’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머리로 생각한 것을 말로써 표현하듯이 성부의 이념이 말씀으로 표현된 성사입니다. 그리고 성부와 성자의 사랑이 너무 치열하여 또 하나의 위격이 피어나는데 이것이 곧 성령입니다. 그래서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왔다고 하나 이것은 이론적 설명일 뿐이고, 그 시간이나 지위에는 차이가 없이 서로 구별되면서도 다 같이 무한히 거룩하시고, 완전하시고, 모든 것을 아시고, 영원하심으로 삼위는 같은 흠숭과 찬양을 받으십니다. 위는 삼위나 하느님은 다만 한 분이십니다.



④ 촛불과 삼위일체

촛불은 초와 심지와 불꽃으로 구성되어 있고, 서로가 내어줌을 통해서 빛을 발합니다. 초는 심지에게 자신의 몸을 내어주고, 심지는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초와 함께 타오릅니다. 그리고 초와 심지를 바탕으로 촛불이 환하게 세상을 비춥니다. 촛불은 이렇게 사랑과 내어줌을 통해 하나가 되어 세상을 비춥니다.



⑤ 아버지와 삼위일체

베드로라는 아버지는 한 여인의 아내이기에 아내에게서는 “여보”라고 불립니다. 그리고 아이의 아버지이시기에 “아버지”라고 불립니다. 그리고 직장에서는 직책이 부장이기에 “부장님”이라고 불립니다. “여보”라고 부르는 그 사람과 아이가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과 그리고 직장에서 “부장님”이라고 불리는 사람은 같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도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어떤 비유도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온전히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이성으로는 오롯하게 삼위일체의 신비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성부, 성자, 성령께서 한 분이시라는 것과 성부 하느님께서는 창조 사업을 하셨고, 성자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으심을 통해 구원사업을 하셨고, 성령께서는 성실한 보호자로서 교회를 붙들어 하느님 나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것을 구원 역사 안에서 체험으로 받아 들에게 된 것입니다.



삼위일체 대축일을 맞이하여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하고, 은총 안에서 힘을 얻어, 교회 공동체와 친교를 이루며 구원에로 힘차게 나아가는 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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