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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전례
작성자 주일강론 모음2
작성일 2008년 5월 8일 (목) 18:14
분 류 부활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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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성령강림 대축일 ”
 

성령 강림 대축일




       

11. 강현홍 신부/20                 12. 박기주 신부/22

        13. 윤임규 신부/24                 14. 허성규 신부/26

        15. 김정원 신부/28                 16. 조순창 신부/29

        17. 김정진 신부/31                 18. 정덕진 신부/33

        19. 최기산 주교/34                 20. 유영봉 신부/36



 

11         성령강림 대축일 요한 20,19-23.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

강현홍 신부



ꡔ성령이여 강림하사 힘과 용기를 주소서ꡕ

그리스도 신자의 생활은 계속되는 전투상태요 그리스도교 정신은 용감무쌍한 정신입니다. 사도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성령의 강림을 받은 이래 그리스도교 군인의 장수로서 말에 있어서는 용기가 있었고 행동에 있어서는 대담부적(大膽不適), 박해를 당해도 부동함이 산과 같았습니다. 첫째로 말에 있어서 용기가 있었습니다. 사도들은 이제까지 담력은 적고 겁이 많아 주님을 버리고 도망도 치고 주님을 모른다고 배반하기도 했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도 공포심은 여전히 가시지 않아 유대 사람들을 무서워하여 실내 깊숙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번 성령으로 충만되자 용기는 전신에 넘쳐 실내에서 뛰쳐나와 공공연히 주의 가르치심을 설파했던 것입니다.

유대사람을 향하여 당당히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죄를 책망하고, 여기에 대하여 뉘우침을 권유했던 것입니다. 체포되어 매를 맞고, 이후는 결코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설교를 해서는 안된다고 금할지라도 우리는 보고 들은 바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계속해서 전도를 했던 것입니다.



사도들뿐이 아니요 순교자, 박사들도 관리나 민중이나 반대자 앞에 서서 무서워하지 않고 겁내지 않고 태연하게 같은 대답을 반복했던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도 이 용기, 이 말의 용기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자기의 신앙으르 공표하고 자기가 믿는 교를 변호하고 자기가 믿는 교의 뛰어나는 점을 세상에 널리 설파 선전하기 위해서는 이 용기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외교인들 가운데 사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신앙을 공표해야 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공장에서 학교에서 군대에서 일상 교제에 있어서 기회는 너무 많아서 걱정일 정도입니다.

신자 여러분!



성령의 은혜를 빕시다. 힘을 구합시다. 주저치 말고 얼굴을 붉히지 말고 용감하게, 대담하게 신앙을 공표하고 다른 사람에게까지 권고할 용기를 구합시다.



둘째로, 저들의 행동은 대담 부적이었습니다. 사도들은 재주도 없고 이름도 없고 돈도 없는 대부분이 무식한 어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저들이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선전하고 세계를 귀화시킨다는 것은 아무리 대담하고 앞뒤를 가리지 않는다 할지라도 도저히 저들의 힘이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느낄 정도가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사도들은 성령의 힘으로 굳세어지게 되자 조금도 주저치 않고 정복사업에 착수하여 대대적으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우리도 우선 우리 자신의 정복을 시작합시다. 성령의 힘을 구하여 용감하게 우리 자신과 전투를 합시다. 사욕과 전투하고, 악습과 전투하고, 악마의 유혹과 전투하여 이긴 후 주위 사람들도 정복하도록 힘씁시다.



셋째로, 박해를 당해도 부동함이 산과 같았습니다. 사도들은 박해를 당하여 매를 맞고 투옥되고 조롱당하고 능욕을 당했습니다마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이런 곤욕을 즐거운 것이라 기뻐했습니다. 박해자들도 손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자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하고 당황할 정도였습니다. 사도들은 주님을 위하여 진리를 위하여 순교하였습니다.

성 안드레아 사도는 십자가를 보자 “아, 착한 십자가여, 오랫동안 갈망하고 주의해서 사랑하고 찾아 헤매었던 십자가여”하고 기뻐 뛰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은 싸우는 장소입니다.

신앙을 완전하게 하고 꽃이나 열매있는 신자가 되려면 박해를 면키 어려운 것이니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경건하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박해를 받게 될 것입니다.”(2디모테오 3,12)하고 성 바울로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합시다.

면키 어려운 박해, 그 박해를 타개하기 위해서, 아니 주님을 위하여 당하는 것을 기쁘게 여기기 위하여는 성령의 힘이 크게 필요하지 않습니까?

기도합시다. 열심히 기도합시다. 사도들에게 저런 힘을 주신 성령이 역시 우리에게도 같은 힘을 주실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니 열심히 성령께 기도 드립시다.











12          성령강림 대축일 요한 20,19-23.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

박기주 신부



ꡔ성령과 함께 사는 생활인이 되자ꡕ

예수께서 세상을 떠나 성부께로 돌아가시기 전에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을 보면 당신께서 가시는 중대한 이유는 성령을 보내고저 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떠나는 것이 당신들에게 더 유익합니다. 내가 떠나가면 협조자를 당신들에게 보내겠습니다.”(요한 16,7) 예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다음과 같은 말씀도 들려주셨습니다. “나는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당신들에게 보내주겠습니다. 그러니 당신들은 위에서 오는 능력을 받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으시오”(루가 24,22)



오늘 독서인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말씀과 같이 오순절이 되었을 때 신도들이 모두 예루살렘 한곳에 모여 있었는데 바람 같은 세찬 소리가 집안을 가득 채우더니 불길 같은 혀들이 가가 사람 위에 내리자 그들은 성령으로 가득 찼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지상에 살아 계시는 동안에는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 그리스도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만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모신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성령을 통하여 살아 계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1고린토 12,3.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는 주님이시다’하고 고백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도들이 성령을 받기 전에 어떠했었나 한번 살펴보십시오.



그들은 본시 무식하고 우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악인의 손에 잡혀죽고 또 부활하실 것을 적어도 3차나 미리 말씀하셨지만 죽으신 다음에는 그만 실망 낙담하였고 부활하신 다음에도 “주님, 주님께서 이스라엘 왕국을 다시 세워주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사도 1,6)하고 여쭈어볼 만큼 예수를 현세적인 군주나 혁명가로 생각하여 이스라엘 독립과 제패만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을 가득히 받은 다음에만 그들은 모든 것을 확실히 깨닫고 자기들의 할 일이 무엇인지 알아들었으니 성령을 받은 베드로가 먼저 전도를 시작하여 “회개하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시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될 것입니다.”(사도 2,38)고 대중에게 열성적인 설교를 한 결과 삼천 명이나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이 날이야말로 천주교회의 창립이 완성된 날이고 본격적인 복음 전도의 활동을 개시한 날이 됩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처럼 또한 애덕이 깃든 공동생활을 하여 남들이 칭찬한 초대 교회의 신자들처럼 그들 사이에 성령이 실재하는 결과로서 일어났던 일들이 오늘날에도 또한 일어날 수는 없는 일이겠습니까?

우리는 성세성사와 견진성사로서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중의 많은 이들이 성세와 견진을 받지 않은 것처럼 즉 성령이 내 안에서 살지 않으시는 것처럼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고린토 전서 12장과 14장에 나오는 황홀한 은혜인 방언, 예언, 통역, 치유 같은 특별한 은혜는 초기 시대보다 오늘날 현저히 적습니다만 오늘날에 있어서 성령의 은사는 보다 일상적인 - 알기 쉽고, 교훈적이고, 유익하고, 봉사적인 - 것인 만큼 부엌이나 안방, 학교, 공장, 회사 출퇴근, 버스 안에서건 간에 우리는 갈라디아서 5장 22절 말씀대로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을 수 있을 때 그리스도는 내 안에 계신 성령을 통해서 모든 이에게 전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량, 신실, 온유, 절제입니다.”(갈라디아 5,22)



이것들은 아무리 높이 평가하더라도 오히려 부족한 고귀한 것들로서, 일생을 안방과 부엌에서만 자녀들을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의 숨은 사랑일 수 있으며, 불우하고 병든 이들을 위해서 병원이나 구호 기관에서 봉사하는 간호원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탄광 깊은 곳에서 종일 탄만 캐내는 성실한 광부일 수도 있고 권력 있는 정의로운 정치 지도자, 돈 많은 친절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고통과 시련 중에서도 아빠 하느님은 결코 나를 잊지 않으신다는 숨은 인내일 수도 있고 고요한 기도 중에 온 세상을 구원하고저 하는 갸륵한 뜻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사회는 혁명적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오늘날의 교회 역시 새로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혁명적으로 변화하는 사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도 교회는 쇄신되어야 하며 과거 어느 때보다 믿음에 기초를 둔 신자들의 실천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이 경험했던 것과 똑같은 성령의 충만함과 성령의 은사가 절실한 현대입니다.



주님의 지상명령인 복음을 현대인에게 전하며 주님 안에 한 몸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한 생활을 할 때만 가능합니다. 마치 태양광선이 죽은 나무도 비추고 산 나무도 비추지만 거기에 일으키는 영향은 아주 다르듯 성령으로 충만하여 사는 사람과 성령을 떠나 죄악 속에 사는 사람과의 차이도 아주 다릅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은 이 세상의 물과 같습니다. 물은 그다지 드러난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나 일단 없어지고 나면 모든 것이 변하고 죽음만이 감도는 황막한 사막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이 우리에게서 떠나신다면 자신은 물론 온 세상에 기쁨과 즐거움, 웃음과 미소, 사랑과 생명은 사라질 것이며 어둠과 죽음으로 변하고 말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인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량, 신실, 온유, 절제를 따라 우리의 일상생활을 거룩히 지내고 내 이웃에 봉사할 수 있을 때만이 성령은 참으로 우리 안에서 생활하실 것이고, 또한 오순절에 사도들이 불타는 혀처럼 맹렬히 전도에 나선 것같이 우리 사회도 성령의 불로 조용히 타오르게 될 것입니다.











13          성령강림 대축일 요한 20,19-23.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

윤임규 신부



ꡔ우리 마음 안에 계시는 성령ꡕ

오늘은 성령강림 대축일입니다.

우리는 조금 전에 제1독서인 사도행전에서 초대교회 신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는 장면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그냥 흘려들은 이 독서는 아주 중대한 순간을 얘기합니다. 극적인 순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비참한 최후를 마치는 것을 본 제자들은 실망과 공포로 제각기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죽으신 사건이 단순한 실패로 끝나지 않고 성부께서 그분을 부활시키셨고, 그분이 부활하시어 제자들에게 나타남을 본 제자들은 하나씩 예루살렘에 집결하여 예수께서 생시에 말씀하신 대로 모여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내려오셨습니다.



스승의 비참한 죽음으로 인해 용기를 잃은 그들은 성령께서 오시자 용기 있게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혁명적인 선포를 하게 됩니다.

즉 “당신들이 몰아 죽인 그 예수가 살아났다 말이요”라고 외칩니다. 정말 재판정의 판결을 허위라고 뒤엎는 말이었습니다. 그들이 그러한 용기 있는 발언을 하게된 이면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목격한 때문이요 성령께서 그들 마음에 그리스도를 증언할 용기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은 “성령”에 대해 대단히 낯선 느낌을 갖습니다. 뭔가 내가 직접 체험하지 않는 거리가 먼 분으로 여깁니다. 성삼위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아버지이신 성부께 대하여는 우리가 자주 기도 드리고 좀 알듯하지만 그 두 분께서 말하시는 성령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실정입니다. 오늘날 우리와는 달리 초대교회 신자들이나 히브리인들은 성령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으며 그분의 활동까지 말합니다.



성령이라는 말은 성서에서 “영”, “바람”, “숨결”, “불”, “비둘기”등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하느님의 영이신 성령을 자연현상을 통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옛날 히브리인들은 자기들이 일상생활에서 체험하는 자연현상들을 자기네들이 체험한 하느님의 활동에 직접, 간접으로 연결시켜 말했습니다. 자연 활동과 하느님의 체험, 양쪽 다 그들은 체험한 것입니다. 성령, 즉 거룩한 영은 하느님 야훼의 숨결을 말합니다. 하느님의 숨결은 진흙으로 빚은 인간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시며 예언자들에게는 자신을 잊고 예언직을 수행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가 성세성사 때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는 성령이 머무시는 궁전이라고 바오로 사도는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성세성사를 받음으로 인하여 하느님의 자녀로서 여기 모여 있지만 우리가 어떻게 성령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들은 그분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이 당신들과 함께 계시며 당신들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요한 14,17)



또한 사도 요한은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느님 안에 있고, 도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1요한 4,13)라고 한 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있으며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1요한 4,16)라고 자신의 체험에 비추어 우리에게 성령을 증언합니다. 즉 성령의 은혜는 사랑의 은혜이며 사랑 속에 사는 것은 은혜 자체이신 하느님의 영을 영접하는 얼이라고 증언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당신 자신을 활동 속에서 계시하시며 그 활동은 외부적인 표징으로 나타나실 때도 있으나 주로 내심의 변화, 내심의 움직임들을 통하여 나타납니다.

우리는 마음속에 사랑을 품고 행동으로 사랑을 드러낼 때 성령의 활동을 감지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2천년 전 유대아 땅에 태어나신 예수라는 분을 오늘 우리 사이에 계시는 주님이시라고 믿고 고백하는 것도 우리의 힘이나 우리의 이성으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번도 본적 없는 그분을 평안한 마음으로 뜨거운 사랑을 느끼면서 “주님”하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그리고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친밀하게 부르면서 기도할 수 있는 것은 성령의 도우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 성령강림 대축일을 맞아 초대교회 사도들에게 감동적인 위력으로 나타나신 성령을 우리의 마음속에 항상 느끼며 살아 갈 수 있도록 특별히 기도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일상생활 속에서 사랑을 실천하면서 성령이 우리 마음에 활동하심을 깊이 느끼도록 애써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도 사도들처럼 용기 있게 다른 비신자들에게 “예수는 부활하신 주님, 생명이시오 사랑 자체이신 주님”임을 기꺼이 전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느님 안에 있고 또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1요한 4,13)











14          성령강림 대축일 요한 20,19-23.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

허성규 신부



ꡔ성령을 받아라ꡕ

오늘은 성령강림 대축일입니다. 성령강림 날 성령은 마치 홍수처럼 은총을 교회에 쏟으셨습니다. 이것을 형용하기 위하여 오늘 제1독서에서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들려 오더니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사도들 위에 강림하여 바로 당신 자신이 사랑의 성화를 그들의 마음에 붙이셨습니다. 그래서 승천 후 제자들의 신앙은, 이전보다 더 교리를 탐구하고 그리스도를 한층 더 멀고 높은 곳 즉 성부의 우편에서, 성부와 동등한 곳에서 찾았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의 신앙이 순화되고 영화되며 보다 활발하고 보다 더 실천적이 되었으므로 그 ‘생활한 강물’은 산처럼 그들의 영혼에 흘러 넘쳤습니다. 성령강림 날 베드로는 수천명의 유대아인을 앞에 놓고 예수님을 선전하였습니다.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즉 하느님을 죽인 죄를 힐책하며, 주의 부활을 증명하였습니다. 회개하여 세례를 받으라고 한 껏 소리를 질렀지 않았습니까?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예수는 주님이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이는 자는, 그 받아들인다는 사실에 있어서, 그가 하느님의 영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힘으로는 ‘나는 예수님을 그리스도, 주님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성령의 힘으로 ‘예수는 그리스도시다’라는 선언을 다시 되풀이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라는 교회의 고백에 참가하는 자는 하느님의 영에 참여하는 자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지혜와 지식의 영을 받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신자는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라고 단정하는 사람들의 공동체 즉 하느님의 백성이 예배하는 단체 안에 있는 것입니다. 믿는다는 것 자체가 바로 하느님의 영의 은사입니다. 그것은 결코 단순한 ‘자유로운 사색, 과학적 연구, 혹은 일반적인 철학적인 분석’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힘으로 믿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성령을 거슬러 모독한 죄만은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마태 12,31-3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나는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언하는 메시아다. 내 안에 하느님의 영이 활동하고 계신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는 그의 천주성으로 인하여 성부와 함께 성령을 발하게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교회와 영혼에 선물로 주시는 성령은 비할 데 없는 은총입니다.



성령은 천주 성삼에 있어서는 사랑의 위격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선물, 이 성령의 파견은, 다른 모든 은총과 샅이 오직 그리스도의 공덕에 의해서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스러운 수난이 맺은 결실입니다.



성령은 하느님의 마음을 알고 하느님의 깊은 경륜을 헤아려 그것을 우리에게 계시하십니다. 성령은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성령은 우리를 의롭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확인의 표를 찍어 주시고 우리 안에 거처하십니다.



성령은 자신의 말씀을 전하지 않으시고 말씀이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키시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사람들이 지니게 하십니다. 성령은 신자들의 마음을 자기한테 잡아당기시는 게 아니고, 자신의 사랑의 불로 그들의 마음을 타오르게 하여 그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이끄시고 또 아버지께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성령을 모시지 못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까



예수께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성령을 받아라’하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 성령이 오신 것은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성령강림날로부터 교회는 전 세계에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왕국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함께 이 왕국을 다스릴 자는 성령입니다. 성령은 우리 영혼 안에서, 그리스도의 속죄로 인하여 시작된 성화사업을 완성하십니다.



우리는 이미 성세성사로서 성령을 받고, 견진성사로서 한층 더 풍부하게 성령을 받았지만, 다시금 언제 보다 윤택하게 성령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성령의 보다 밝은 빛, 보다 강한 능력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성령의 이 심오한 활동은 그칠 줄을 모릅니다. 성령강림은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



성령강림 축일이 다만 옛적의 성령강림을 기념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 신비가 지금에도 재현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뜻을 합하여, 열렬한 맘으로 성부께 성령을 보내 달라고 기도하고, 겸손하고 즐겁게 성령께 충성을 다합시다.











15         성령강림 대축일 요한 20,19-23.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

김정원 신부



ꡔ성령이여 임하소서ꡕ

부활, 우리 주님의 부활을 회상한다면 우리의 마음은 참으로 즐겁습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당신의 부활로 인해서 즐거운 날을 보내고 있었던 제자들에게 천만 뜻밖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이 경이의 말씀은 다름 아닌 제자들을 떠나가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모처럼 즐거움을 되찾았던 제자들에게는 두려움과 슬픔이 다시 쌓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사도들은 주께서 떠나신다는 것이 그들을 위한 것이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그대로 그들과 함께 그들 곁에만 남아 계시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아마 우리도 이와 같이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도 사도들처럼 주님을 눈으로 뵈옵고 그 목소리를 들으며 가까이 모실 수 있으면 그것이 가장 행복한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그런 생각이 옳지 못하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이런 말을 한 것이 도리어 여러분의 마음을 근심에 싸이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진실을 말하자면, 내가 떠나는 것이 여러분에게 유익합니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옹호자이신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오시지 않을 것이나 내가 가면 그분을 보내겠습니다.”(요한 16,6-7)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께서 떠나시는 것은 성령을 통해서 한층 더 신비스럽고 힘있게 우리와 함께, 우리 안에 사시기 위한 것입니다.



이제 주님은 우리 안에 계시면서 복음을 통해서, 그리고 성사를 통해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을 3년 동안이나 가까이 모시며 살았으면서 성령이 오시어 그들에게 통달함의 은혜를 주시기까지는 예수님을 참으로 알지 못했습니다. 사도들은 성령이 오신 다음에는 아주 딴 사람으로 변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그제서야 참으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되었고 예수님이 그들 안에 영원히 머물고 계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성령께서는 그 옛날 사도들에게 그리스도는 어떠한 분임을 알게 하셨고 그들이 듣던 바를 올바르게 깨닫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참된 신앙과 희망을 가르쳐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예수께서 약속하신 바와 같이 죄악이란 하느님을 등지는 것이요 하느님의 사랑을 배척하는 것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또한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의를 가르쳐 주십니다.

다시 말하면 주께서 성취하신 영광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이며, 권력과 재산과 쾌락이라는 세상의 그릇된 표준들은 주님을 따르는 우리가 추구할 것이 아님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또한 우리에게 희망을 가르쳐 주시는 분입니다. 승리는 이미 우리 주님의 것이고 인간들의 악함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확신시켜 주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처럼 겸손하게 인내하며 살도록 성령께서는 권유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우리 인생에 성령께서 꼭 필요한 분임을 깨닫고 있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세를 받았고 견진성사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의 일상생활이 아직도 슬픔으로 지배되고 있다면, 우리에게는 성령이 필요한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일상생활의 의무와 인생의 고통과 시련을 대하는 태도가 성숙되지 못하였다면, 더구나 우리가 괴로운 인생살이를 비관한 나머지 세상을 피하려고 한다면, 우리에게는 성령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성당에 나오는 것이나 덕을 닦는 것이 하느님께 대한 사랑 때문이 아니고 지옥과 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면 성령은 또 다시 우리에게 필요한 분임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바꾸어 말한다면 우리는 구원되었으나 그러나 구원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자 여러분!

지금은 바로 주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은총을 청해야 될 때입니다. 금년에도 성령께서는 주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완성하시고자 우리 인생에 내려오실 것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여러분에게 진리를 온전히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요한 16,13)라고 약속하신 주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틀림없이 대답해 주실 것입니다. “믿는 이들의 마음을 충만케 하시는 성령이며, 오소서. 신자들을 한 한마음 한 뜻이 되게 하시는 하느님이시여, 주의 백성으로 하여금, 주께서 명하신 바를 사랑하고, 약속하신 바를 바라게 하시어 덧없는 속세에서도 참된 기쁨이 있는 곳에 우리 마음을 두게 하소서.”











16            성령강림 대축일 요한 20,19-23.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

조순창 신부



ꡔ구원과 행복을 찾자ꡕ



오늘은 오순절에 신도들이 성령을 가득히 받음으로써 새 시대가 시작된 것을 경축하는 날이요, 교회 창립일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예수께서 위에서 오는 능력을 받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멈ㄹ러 있어라’는 분부에 따라, 늘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지냈습니다만, 한편으로 기다리는 희망이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앞날에 대한 불안도 가졌습니다.

우리는 사실 새로운 발전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가졌으나, 지난 한 주간은 광주 일원의 사태로, 많은 희생의 보도를 듣고 마음이 아프며, 또한 걱정도 많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내일에 희망을 두고 살아갑니다.

민주 정치의 발전과 사회 안정과 경제 성장을 바라며, 젊은이들에게 기대를 갖고 살아갑니다. 그러면, 과연 오늘의 현실 그 어디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으며, 국민 그 누구에게 기대를 할 수 있으며, 그 어느 사태가 바람직한 것입니까?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하느님 모습 따라 사람을 만드시고,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고 공경하며, 서로 사랑함으로써 참 행복을 누리게 마련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하느님을 못 믿고 교만하여, 이웃과 담을 쌓고 탐욕에 차서, 서로 미워함으로써 온갖 고통과 비참과 불행을 겪게 됐습니다.

태초(한처음)에 하느님께서 인류원조에게 갖가지 은혜를 주시며, 자유의 소중한 값을 체험하기 위하여, 금령으로 “선악과를 먹지 말라”시면서 “먹으면 죽으리라”하셨으나, 그 말씀을 못 믿고 오히려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마귀의 말을 믿고 죄를 지었습니다.

오늘을 불신시대라고 합니다. 서로 마음의 벽을 쌓고, 이웃과 담을높이 쌓고 살아갑니다. 스승과 제자 사이가 서로 못믿어하고, 근로자와 기업주가 서로 못믿어하고, 위정자와 국민이 서로 못 믿는 현실이 되어 불행은 더욱 커가고 있습니다.

또한 하느님의 명을 거역한 것은 하느님과 같이 되려는 교만 때문이었지만, 잘못을 저지르고도 아담은 하와에게, 하와는 뱀에게 서로 핑계를 댄 것 같이, 잘못의 죄의식은 없고, 책임감도 없으며, 참회보다는 남의 탓으로 돌리고, 참회할 줄 모르고, 책임을 전가함으로써 더 큰 불행을 가져오게 됩니다.

그리고, 분수에 맞지 않는 거을 탐하며, 얻은 것에 집착하여, 독선과 이기심 때문에 가진 것을 나눌 줄 모르고, 끝내는 너도 나도, 가진 자도 없는 자도 불행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고 맙니다.

이제 새날은 와야 합니다.

곧, 불신에서 믿어 주는 오늘, 분열에서 일치된 오늘, 미움에서 사랑으로 화합하여야 참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새날이 오기 때문입니다.

불신하던 제자들에게 진리의 성령이 가득히 내려오심으로써 진리를 위해서 몸바치는 자들이 되었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선포하는 사도들이 됨으로써 인류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교만으로 하느님을 떠나고, 바벨탑에서 말이 서로 통하지 않음으로써 민족과 파벌과 지역 분파가 생겨, 분열과 투쟁을 거듭하던 인류의 역사 안에 일치의 성령이 오심으로써 말의 장벽이 무너지고 놀랍고도 감탄할 은사로 인류가 하느님의 새 백성으로 하나가 되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자기만을 아는 이기심으로 질투와 미움이 생기고, 형이 아우를 죽이는 성경의 첫 살인 사건 이후, 처절한 전쟁의 역사 안에 사랑의 성령께서 강림하심으로써 교회에서 고백성사로써 죄를 사해 주고, 서로 이해와 용서로 화해하며, 가진 것을 서로 나눔으로써 사랑의 기적이 일어나는 새로운 이상적 새 시대의 막을 열어 주셨습니다.

복음이 선포되고 새 시대는 시작되었으나, 하느님의 뜻과는 너무나도 먼 현실입니다. 제자들에게 내려오신 성령께서 오늘 우리 마음과 우리 가정, 우리 교회, 우리 나라에 강림하시어, 불신과 이기심과 미움을 버리고, 믿음과 일치와 사랑으로 우리에게 참 구원과 참 평화와 참행복이 가득하게 되기를 간구합시다.

우리는 진정 믿음으로 구원된다는 복음ㅂ의 전파자가 되고, 나만 옳고 남은 그르다는 독선을 버리고, 단합하는 역군이 되어, 무엇이나 평화와 행복을 위해서 사랑으로 희생하여 내놓을 수 있는 신자가 됩시다.

“오소서 성령이여, 믿는 이들 마음을 충만케 하시며, 그들 안에 사랑의 불을 놓으소서!

더러운 것 씻으시고, 메마른 것에 물 주시고, 병든 것 낫게 하시고, 굳은 것 부드럽게 하시고, 찬 것 뜨겁게 하시고, 비뚠 것 바로잡으시고, 하느님 믿는 모든 이들에게 성령의 은사 선물 가득히 내려 주소서!”

(1980. 5. 25.)











17           성령강림 대축일 요한 20,19-23.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

김정진 신부



ꡔ성령의 은혜와 활동ꡕ

신자 여러분! 오늘은 성령 강림 대축일입니다.

첫째는 인류가 그리스도의 성령을 받아 새사람이 되어 하느님의 백성이 되는 날입니다. 둘째로 오늘은 가톨릭 교회가 탄생되고 또한 완전히 성숙되는 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세와 견진을 받음으로써 성령의 은혜와 초자연적 생명의 활동에 힘입어 용이하게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고 또한 성령을 받아 교회의 성실한 일원이 되어 평화와 기쁨 속에 백성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하고 또 하느님을 백성에게 전해 줌으로 온 인류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하늘나라에서 하나로 일치되는 것입니다.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사도행전은 성령강림에 관하여 그 놀라움과 흥분과 기쁨의 모습을 극적인 표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사도 2,1-13). 즉 예수님이 사도들에게 가르쳐 주신 모든 것을 깨닫고 확신시키기 위해 세차게 불어대는 바람같은 소리 중에 성령이 내려오셨습니다. 이 역사적인 순간에 사도들은 온통 딴 사람으로 변하였고, 성령의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여 사도들은 즐겨 용약하며, 군중을 가르치며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이에 앞서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에게 입으로 숨을 내부시며 말씀하시기를 <당신들은 성령을 받으시오>라고 하셨습니다. 천주 성령은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제일 먼저 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위에 내려오셔서 예수님과 같이 살고 계십니다. 성경에 의하면 예수님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모 마리아의 태중에 잉태되셨고 영세 때 성령께서 비둘기 모습으로 예수님 위에 내려오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가시는 등 예수님의 전생에는 성령의 인도로 점철되었습니다. 예수님의 행동에 있어 시종 일관하였던 사랑의 정신은 오로지 성령의 사랑에 의한 것입니다.

천주 성부께서는 당신 독생성자를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와 같이 계시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형제가 되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헌데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예수님과 결합시키고 하느님을 가까이 뵈옵게 하시는 것은 성령이십니다.



성자와 성령은 사람의 두 팔과 같은 것으로서 성부께서는 이로써 우리를 포옹하고 계십니다. 성자께서는 단 한 번 인류의 역사 속에 사람이 되시어 하느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성령께서는 각 사람의 마음에 나날 새로이 예수님이 가르치신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들일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마음속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 주시어 우리의 눈을 뜨게 하시어 십자가상의 예수님의 얼굴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볼 수 있게 하십니다. 또한 인간의 마음속에 숨어드시어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시켜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또한 우리와 하나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성부와 성자의 사랑 안에 머물게 하고 살게 하십니다.



성령이라 함은, 그 글자를 설명하자면 <성스러운 숨쉼> 또는 <성스러운 바람>이란 뜻입니다. 즉 <하느님의 바람> 또는 <하느님의 숨쉼>이란 의미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실 적에 숨을 불어 넣으셨고 성령께서 위에 강한 바람과 함께 내려오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성령은 하느님의 무한한 힘을 소유하신 숨쉼입니다.



태초에 하느님은 흙으로 아담을 빚어 숨을 불어넣으시어 생명을 주셨습니다. 영세 예절 때 사제는 영세자의 얼굴에 세 번 입김을 불어 주며 성령을 받으라고 합니다. 구약 시대부터 이스라엘인들은 하느님의 바람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신비적인 힘, 이 세상에 생명을 가져오게 하는 힘, 무엇보다 강력한 하느님의 힘을 생각하였습니다.



신자 여러분! 성령은 하느님의 강력한 힘이란 것이 사도들로 인하여 웅변이 증명되었습니다. 세차게 불어 온 바람같은 성령을 받자마자 사도들에게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바깥 세계를 두려워한 나머지 문을 닫아거는 등 그처럼 겁이 많은 자들이었으나 이제는 당당히 군중을 향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모든 신자들에게 약속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며 의젓이 설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 자신의 매력이나 뛰어난 웅변 때문이 아니라 성령의 은혜로 첫 번 설교 때 무려 3천명을 회개시켰고 두 번째 설교는 5천 명을 회개시켰던 것입니다. 당시에는 교리 서적이나 시청각 자료나 환등기나 영사기도 없었습니다. 오직 성령의 일곱 가지은혜로 힘과 용기를 얻은 사도들은 구원의 기쁜 소식을 사방에 두루 다니며 전파하였습니다.



교회는 여러 세기를 통하여 위험을 당하고 도전을 받았지만 언제나 균형을 잃지 않고 꿋꿋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왔습니다. 이는 성령께서 성교회를 안전하게 인도하시고 교회의 혼으로서 활동하시며 지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임하소서 성령이여, 우리 마음에 용기와 힘을 주소서. 마귀와 세속의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시어 마침내 영생의 해안에 무난히 다다르게 하소서. 아멘.











18           성령강림 대축일 요한 20,19-23.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

정덕진 신부

 ꡔ성령의 활동ꡕ



오늘은 성령강림 대축일입니다. 여러분과 더불어 이 거룩한 축일을 경하해 마지않습니다.

유대인들이 에집트 포로생활에서 풀려나 홍해를 건넌 것을 기념하는 축제가 바로 빠스카였습니다. 다음 성령강림은 그들의 또 하나의 축제인 펜테꼬스테 축일에 이루어졌습니다.



펜테꼬스테는 오순절이라고도 하며 빠스카 후 50일 후의축제를 말하는 것으로 이 축제는 옛적에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시어 온 유대인을 대표한 모세에게 십계석판을 내려주신 것을 기념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요,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는 선언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유대백성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모두 준수하겠습니다”하는 서약을 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하느님과의 계약을 기념하는 축제로 펜테꼬스테(오순절)라는 축제를 지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다음 베드로를 위시해서 모든 사람들과 그 외 많은 제자들이 다락방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승천하시자 한편 쓸쓸하기도 하고 서운한 생각도 있고 또 유대인들의 박해도 무서워하여 문을 굳게 잠그고 고개를 움츠리고 기도하며 맥없이 있었지만, 그러나 희망은 잃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때 광경을 살펴보면 “마침내 오순절이 되었을 때 그 신도들이 모두 한 곳에 모여 있었는데, 세차게 불어대는 바람 같은 소리가 별안간에 하늘에서 들려오더니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그러자 불길 같은 혀들이 그 자리에 나타나 퍼지며 각 사람 위에 내렸다. 그들의 마음은 성령으로 가득 차서 성령이 시켜 주시는 대로 그들은 여러 가지 외국어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사도 2,1-4)



이것은 처음 성령께서 사도들 위에 강림하시던 때의 모습입니다. 강림하신 성령의 능력으로 사도들은 딴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한 국가의 개국 기념일이 있다면 성령강림이야말로 우리 교회의 새 기원을 이루고 새 교회정신을 세계만방에 선포한 날입니다. 여기 성령의 특징으로 세 가지를 볼 수 있습니다. 강림하시는 순간 큰 바람과 같은 소리가 났다는 것, 불의 혀 모양으로 나타났다는 것, 즉 바람 불혀입니다.



1) 자연현상에서 바람은 얼마나 큰 힘을 가졌습니까? 부는 바람을 인위적으로 막을 수도 없거니와 그 힘은 무한한 것입니다. 저항할 수도 없을 정도의 힘이 있는 것입니다. 아름드리 나무가 뿌리째 모두 뽑힌다든가 모든 가벼운 물건은 다 날아가고 마는 위력이 있는 것입니다.

2) 불의 힘은 모든 것을 태웁니다. 정화시킵니다. 소독을 합니다. 처리가 곤란한 더러운 것들을 태워버릴 때 그 고마움은 말할 수 없이 큰 것입니다.



3) 혀는 언어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즉 사상과 이념을 뜻하는 것입니다. 모든 문명과 심적 세계를 혀로서만 타인에게 발표할 수 있습니다. 진리의 전달, 사상의 전달의 표상인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자연 현상에서의 역할에서 미루어 성령의 작용은 너무나 뚜렷하게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사도들에게 넘치는 힘을 주셨고 죽음 칼 창 기타 모든 박해에서 이기고 저항할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신앙과 그리스도의 진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칠 용기를 주셨습니다.



성령이 강림하시자 세상은 선과 악이 뚜렷해졌습니다.

모든 부정과 불의는 물러가야만 했습니다. 뜨거운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하도록 사랑의 불을 사도들에게 놓아주셨습니다. 또 자기들의 진리를 혼자만 간직한 채 머무르지 못하게 되었고 전교 활동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우리도 견진을 이미 받았습니다. 세례 때에도 성령을 받았습니다. 사도들에게 주셨던 같은 은혜로 무장되어 자기의 신앙을 지키고 사회에 봉사하며 역경에서도 진리를 증거하며 전교 활동에 힘을 써야 하겠습니다.











19            성령강림대축일 <요한 20, 19―23>  '성령의 상징들'

최기산 주교



: 내 방에 약 15cm되는 쥐 한 마리가 들어온 적이 있었다. 아침에 응접실에 나가 보니 온통 난장판을 만들어 놓았다. 참으로 큰일이었다. 끈끈이를 사다가 이 구석 저 구석에 놓았으나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한가지 단서를 남겨놓았다. 난초를 뒤집어 놓고는 뿌리를 파먹은 것이었다. 목이 마르다는 증거였다. 나는 그 놈을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왜냐하면 물로 유인하면 걸려들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날 밤 작은 물그릇을 방 한 구석에 놓고는 그 주변을 끈끈이로 온통 막아 놓았다. 아니나 다를까 아침에 나가보니 그 놈이 끈끈이에 걸려서 찍찍거리고 있었다. 쥐는 약은 동물이다. 끈끈이가 해로운 것임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목이 말라죽을 것 같으니까 하는 수 없이 달려들었다 걸린 것이다.



인간과 동물, 그리고 식물에게 있어 물은 생명과 같은 것이다. 성령을 물로 표현하는 이유는 영혼에게 성령은 물과 같은 분이시기 때문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ꡒ물은 성령 안에서 주어지는 생명의 탄생과 풍요를 의미한다ꡓ라고 가르친다. 성령께서 함께하시지 않으면 우리의 영혼은 메마르고 시들어간다.



바람(숨) : 성령은 숨(바람)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숨을 쉬지 않으면 인간은 죽은 것이다. 뚱뚱한 사람 하나가 장가를 가서 첫날밤을 지내는데 어찌나 코를 골아대는지 그만 신부는 겁에 질렸단다. 그도 그럴 것이 코만 고는 것이 아닌 가끔씩ꡐ무호흡증ꡑ증세까지 보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코를 세게 골다가 잠시 아무 소리도 없으니 남편이 죽었나 걱정했을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은 숨쉬는 사람이다. 인간의 영혼도 숨 같은 성령께서 함께 계셔야 살아있는 것이다. 성령강림 때 성령께서는 바람소리와 함께 임하셨다. 바람소리와 함께 임하신 성령을 받고 제자들은 완전히 달라졌다. 새 사람이 되었다.



이 세상에 바람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어떤 과학자는 ꡒ신부님, 바람이 없으면 많은 사람이 죽습니다…ꡓ라고 말한다. 바람은 무더위를 몰아낸다. 찜통 더위를 몰고 온 공기가 움직이지 않고 계속 머물고 있으면 많은 사람이 ꡒ헉! 헉!ꡓ 대다가 죽을 것이다. 그뿐인가! 살을 에는 듯한 추위를 몰고 온 공기가 움직이지 않고 몇달 계속 머물면 결과는 처참할 것이다. 현실적으로도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공기를 계속 맡을 때에는 답답하지만, 비 바람이 몰아쳐서 나무가 몇 개쯤 부러지는 상황이 지나고 나면 공기는 맑아진다. 바람이 더러운 공기를 몰아낸 것이다. 성령께서는 바람처럼 우리에게 생기를 주신다.



불 :ꡒ도둑이야!ꡓ하고 소리를 지르면 나오지 않는 사람도 ꡒ불이야!ꡓ하면 나온단다. 불이 무섭기는 무서운가 보다. 그러나 불이 없으면 인간이 어찌 살겠는가! 불이 없으면 어떻게 문명이 발전했겠는가? 불은 열을 낸다.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은 불이 있기 때문이다. 불꺼진 방, 입에서 하얀 입김이 나오는 방에서 산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불은 힘을 낸다. 불이 있기에 공장도 돌아가고 배도, 비행기도, 자동차도 움직인다. 전기가 없으면 어떻게 높은 빌딩을 올라가겠는가! 30층, 40층되는 빌딩을 걸어서 올라가면 등골이 빠질 것이다.



불은 빛을 낸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세상을 상상해 보라. 아니 등잔도 촛불도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자. 불이 없으면 암흑의 세상이고 두려움이 몰려든다. 이외에도 불은 정화시킨다. 더러운 것을 태워서 깨끗하게 한다.

이렇게 인간의 생존과 관계 있는 불을 성령의 상징으로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이런 성령을 모신 사람들이다.



복음의 메시지 : 예수님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탄생하셨다. 공생활을 시작하시려고 세례를 받으실 때에도 성령을 받으셨다. 성령으로 충만하신 예수님께서는 성령께서 시키시는 대로 아버지 하느님의 일을 하셨다. 3년간의 일을 마치시고 이 세상을 떠나실 때가 되자 당신께서 받으셨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바로 오늘은 제자들이 성령을 받은 날이다.



사도 바오로는 ꡒ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서는 아무도 ꡐ예수는 주님이시다ꡑ하고 고백할 수 없다ꡓ(I고린 12, 3)라고 말했다. 심지어 ꡒ그리스도의 성령을 모시지 못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ꡓ(로마 8, 9)라고 말했다. 세례와 견진성사는 성령을 받는 성사다. 우리는 성령을 모시고 있는가? 그것을 체험으로 느끼고 있는가?



우리는 신비의 교리를 많이 믿고 있다. 강생구속의 교리, 즉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셨고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교리를 인간의 이성으로 다 받아들이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느낀다. 더구나 삼위일체의 교리와 성체의 교리 즉 하얀 빵 안에 예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은 인간의 지성만으로는 깨닫기 힘들다.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굳센 믿음으로 나갈 수 있다. 신비의 교리는 신비한 방법으로 깨달을 수 있다. 즉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성령의 은사는 7가지 : (이사 11, 2―3)와 9가지(Ⅰ고린 12, 8―10)가 있다. 성령은 당신께서 원하시는 대로 은사와 열매를 주신다. 이 모든 은사는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것들이다. 성령의 열매는 9가지(갈라 5, 22)가 있다. 이는 개인을 위한 열매들이다. 요즘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면서 물의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성령은 공동체를 깨면서 활동하시지는 않는다. 사목자의 지도를 거부하는 사람, 자신의 영광을 도모하는 사람, 돈을 요구하는 사람, 공동체를 깨는 사람, 종말을 얘기하면서 겁을 주고 희망을 꺾어 버리는 사람들은 요주의 인물이다.











20     성령강림 대축일 (요한 20, 19-23)(공통)   성령으로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자

유영봉 신부



묵상 : 사도들은 성령을 받아 예수가 그리스도(구세주)임을 깨닫고는 다락방을 박차고 나가 자신들이 깨달은 바를 힘차게 전하였다, 사도들의 말을 듣고 3000명이 세례를 받음으로써 교회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성령을 받은 자는 복음을 전해야 한다.



신(神)과 통할 수 있는 능력



합천본당에서 첫 사목생활을 할 때의 일이다. 교리반에 잘 나오던 40대 부인이 2주째 결석을 하였다. 사정을 알아본즉, 죽은 시어머니 귀신이 들었다는 것이었다. 보통 때는 가만히 있다가 귀신 기운이 돌면 완전히 죽은 시어머니 행세를 한다는 것이다. 레지오 단원들과 함께 그 집을 방문했을 패에도 신기(神氣)가 돌아서인지, 목소리도 시어머니 목소리로 변할 뿐만 아니라, 촌수도 바꿔서 시아버지를 보고 “여보!"하며 삿대질을 하고, 남편을 보고는 "야, 이놈아"하면서 어머니 행세를 하였다.

  

우리는 주변에서 갑자기 '신이 내렸다'며 무당이 되는 사람을 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신 내림 굿'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신이 내려 무당이 되는 사람을 '강신(降神) 무당'이라고 하다. 어쨌든 인간은 신접(神接)할 수 있는 그런 존재임에 틀림없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기에 신과 통할 수 있는 신통력이 있는 존재인 것이다, 잡신(雜神)이 내리면 무당이 되고, 그리스도의 영(靈)인 성령이 내리면 그리스도의 영에 사로잡힌 참 신자가 되는 것이다.



오늘 제1독서는 사도들이 성령을 받는 광경을 전해주고, 복음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숨을 내쉬며 사도들에게 “성령을 받아라"하시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교회의 개교(開敎)기념일



다락방에서 무서워 떨고 있던 제자들은 오순절 축일에 성령을 가득히 받아,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되었고, 다락방을 박차고 나와 용감하게 사람들에게 예수가 그리스도(메시아)임을 증언하였다.

사도행전의 기록을 보면 성령을 받아 가르치는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3000명이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가, 지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도들 위에 성령이 쏟아부어져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변화되었으며, 깨달음을 얻어 새로워진 사도들은, 예수가 주님이시라고 세상을 향해 외쳤고, 그 사도들의 설교를 들음으로써 이 지상에 그리스도를 믿는 신도들의 무리가 생겨나, 교회가 시작된 것이다.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믿고 고백하며 세례를 받은 모든 이들도, 또한 성령을 받아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게 되었다. 사도 바오로는 오늘 독서를 통해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는 아무도 ‘예수는 주님이시다'라고 고백할 수 없습니다"( 1고린 12, 3)고 하셨다.

성령강림축일은 교회의 생일이다, 이렇게 예수를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백성, 공동체가 바로 교회인 것이다,



복음전파의 사도 되어야



우리가 참으로 성령을 받아, “예수는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또 하느님께서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게된다."(로마 10, 9)

이는 나자렛 사람 예수가 약속된 메시아이심을 깨닫고, 죄의 용서를 받고,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되면 구원을 체험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성령을 받아라"하시며, 제자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요한 20,21)고 말씀하시며,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셨다.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평화를 체험하게 되면, 그 기쁨과 평화를 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교회는 그 본질상 선교의 공동체인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도 “나그네의 길을 가고 있는 교회는, 그 본성상(本性上) 선교하는 것을 그 사명으로 하니, 이것은 성부의 계획을 따라 교회가 성자의 파견과 성령의 파견에서 그 기원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교회의 선교활동에 관한 교령 2항)고 선언한 바 있다. 하느님께서 성자와 성령을 파견하셨고, 또한 예수님은 온 세상에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도록 성령을 주시며 제자들을 파견하셨다. 성령을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은 구원의 복음을 전하도록 이 세상에 파견된 자들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구원의 기쁜 소식을 알아듣고도 전하지 않는 사람은 부활한 그리스도를 무덤에 가두어 놓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한지 여러 해가 되었는데도 아직 한사람도 교회로 인도하지 못하였다면, 그 사람은 새순(筍)이 돋아나지 않는 죽은 가지와 같다. '2000년 대희년'을 준비하는 요즘, 사도들로 하여금 생명을 바쳐 세상 곳곳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게 하신 성령의 활동이 더욱 아쉬운 때다. 나는 살아있는 가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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