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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전례
작성자 주일강론 모음1
작성일 2008년 5월 8일 (목)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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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성령강림 대축일 ”
 

성령 강림 대축일




         1. 강길웅 신부(가)/2                      2. 서석희 신부(나)/4

         3. 김영진 신부(나)/5                      4. 강길웅 신부(나)/7

         5. 교구 주보(나)/8                  6. 김명순 박사(나)/9

         7. 강길웅 신부(다)/11             8. 김형수 신부(다)/12

         9. 김대군 신부/16                 10. 박지환 신부/19





1               성령 강림 대축일 (가해)  “성령을 받아라"

강길웅 신부



제1독서 사도 2,1~11 (모든 신도들은 성령으로 가득 차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제2독서 Ⅰ고린 12,3b~7.12~13 (우리는 모두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복 음 요한 20,19~23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 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성령 강림 대축일을 오순절이라고도 합니다.



오순절은 구약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이 말은 '펜테코스테 (Pentecoste)'라는 말에서 나왔는데 '50'이라는 숫자를 말합니다. 구약에서의 오순절은 과월절부터 시작하여 50일째 날에 거행되었는데 성령 강림도 구약의 오순절 날에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이때가 부활부터 시작하여 50일째가 되는 날입니다. 그러나 성령 강림이 구약의 오순절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구약의 오순절은 본래 농경 축제로서 그 해의 첫 곡식을 하느님께 감사의 뜻으로 봉헌했던 것을 기념하는데 과월절, 초막절과 더불어 유대인의 3대 축제의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뀜에 따라 농경 축제는 계약 사상과 연결되면서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즉 이스라엘이 에집트를 탈출하여 시나이산에서 하느님의 계명을 받고 계약을 맺은 것이 꼭 50일째 되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계명을 받은 뒤에 율법에 따라 생활했다면, 신약의 백성들은 성령 강림 사건 뒤에 성령에 따라 살게 됩니다. 실제로 주님의 제자들이 이 사건을 통해서 얼마나 크게 변화되었는지 모릅니다. 겁쟁이요, 바보요, 무식했던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는 데 얼마나 능력 있고 지혜로우며 담대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성령 강림 사건 이후에 제자들이 본격적인 전도 사업에 들어갔다 해서 이 날을 교회 창립일로 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선 일찍이 제자들에게 성령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이제 당신이 입으셨던 육신을 감추시고 새로운 모습으로 제자들 곁에 계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육신이 보이진 않아도 주님이 계실 때와 같은 하느님의 능력으로 살기 위해선 성령이 오셔야 했습니다. 마치 육을 가지고 오신 사건이 성탄이라면 영으로 새롭게 찾아오신 사건이 성령 강림입니다.



성령은 누구십니까?

언젠가 모 성당의 임원들에게 성령에 대해서 물어 본 적이 있었습니다. 성부가 아버지요 성자가 아들 예수님이라면 성령은 그럼 누구시냐고 물었더니 서로 눈치만 보며 대답을 못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까지는 아는데 성령이라는 개념은 머리에 잘 잡히지 않는가 봅니다. 아마 대부분이 그럴 것입니다.



성령은 사실 이해하기가 애매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똑같은 위격을 가지신 독립된 존재이면서 동시에 아버지와 아들과 더불어 하나로 어우러지는 단일체입니다. 그런데 그 성령이 다름 아니고 바로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함께 뿜어 나오는 기운이요 영입니다. 또는 사랑이나 능력이라 말할 수도 있으며 힘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을 하느님답게 하는 힘, 아들을 아들답게 하는 능력이 성령입니다. 따라서 성부와 성자에게서 성령을 빼면 하느님은 빈 껍데기가 됩니다. 마치 기름 없는 자동차와도 같습니다.



믿는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믿는 우리에게서 성령을 빼 버리면 우리는 마치 허수아비 신자에 불과합니다. 겉은 번지르르하니 그럴 듯하지만 속은 알맹이가 없는 빈 깡통과도 같습니다. 아무리 기도를 하고 봉사를 한다고 하지만 마치 깨진 독에 물 붓는 격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그런 분들이 가끔 있습니다.



어떤 분은 성령 세미나를 통해서 은사를 많이 받았습니다. 이상한 언어도 하고 치유의 은사도 받았습니다. 그래서 환자 방문과 철 야기도, 또는 교회 봉사에 앞장을 서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얼마나 독선이 심하고 아집에 묶여 있으며 남을 험하게 판단하는지 모릅니다. 한번 자기 맘에 들지 않으면 용서가 없습니다. 어느 땐 신부님들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소위 은혜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자기 지혜에 걸려 쓰러졌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자주 은사에 집착합니다. 그것은 마치 꽃처럼 아름답고 근사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은근하게 드러나는 열매가 더 중요합니다. 사랑이니 절제니 친절이니 온유니 하는 것들이 우리 삶에서 얼마나 소중하게 요청되는지 모릅니다.



오늘 제자들에게 강림하신 성령께서는 여러분에게도 머무시기를 진정 원하십니다. 그것은 또 예수님의 약속이면서 동시에 그분의 명령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깊은 믿음과 진실한 회개로써 그분의 사랑을 충만하게 받도록 합시다.



"오소서 성령이여."













2                 성령 강림 대축일 (나)  "때를 기다리며"

서석희 신부



사람을 구원하는 일이 아무리 귀하고 급한 일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은 제자들을 그렇게 빨리 세상에 내 보내지 않았습니다. 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대부분 보통 수준을 조금 밑돌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반면에 똑똑하고 배운 사람들은 사사건건 사실을 보고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계략을 세우며 예수님을 책잡으려고 머리를 잘도 굴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거기에 대해 그 어떤 것도 파악하지 못하고 늘 동문서답하기가 일쑤이며 깨닫는 것도 너무 느려빠진 것 같은 모습입니다. 오히려 더 많이 받은 모습입니다. 니고데모도 처음에는 답답한 소리를 하지만 나중에는 담대한 제자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또한 병든 친구를 예수님 앞에 내렸던 친구들도 목적을 위해 머리쓰는 방법이나 믿음이 특출했던 쓸만한 사람들이었고 백부장도 이런 믿음을 이스라엘 가운데서는 보지 못했노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놀라운 대상이었습니다. 심지어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과의 단 한번 만남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아보고 자기 마을 사람들을 모두 예수님께로 인도하였을 뿐 만 아니라 예수님이 그 마을에 머무시도록 하였지만, 반면에 열두 제자들은 그만큼 시원한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그들 모두는 조연이고 12제자가 주인공들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예수님 부활, 승천 후 성령을 충만히 받은 제자들의 모습은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답답하고 느리고 굼뜨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확신에 찬 영적 지도자의 모습이 되어집니다. 바로 그러한 역동적인 변화의 힘은 성령강림 사건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도행전 2장의 모든 사람들이 다 12제자처럼 쓰임 받았지는 못했다는데 있습니다. 그러면 차이는 어디에서 생겼습니까? 그것은 바로 3년이 넘도록 예수님과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따라다니며 모든 것을 보았고 들었던 훈련 때문입니다.

그들은 성서의 다른 사람들보다 둔하고 답답해 보여도 결국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보고 듣고 느꼈던 것이  성령강림 후에는 드디어 하나씩 깨달아지고 확신이 되고 생명과 진리의 말씀이 되어 그들 스스로 체질개선이 되어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신앙생활이 어딘가 모르게 더디고 굼뜨게 느껴지고 기도해도 답답한 분이 계십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을 바라보며 힘을 얻으십시요. 예수님을 3년동안 따라다녀도 잘못 깨달았지만 결국 성령강림 후 모든 진리가 깨달아지며 담대한 사도로 변화된 모습처럼 복음을 듣고 묵상하며 꾸준히 기도하십시오. 때가 되면 안되던 것 마저 더 크게 쓰임 받는 도구요, 통로가 될 것입니다. 때를 기다리며…











3            성령강림 대축일 <요한 20,19-23> (나)   신바람 신앙생활

김영진 신부



무엇이든지 선입견을 갖고 대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지만, 나의 경우 우리 천주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성령운동에 대하여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졌었다. 조용하고 엄숙하며 차분해야 되는 전통적인 천주교회의 기도 모습이나, 전례관습과는 다르게 손벽을 치고, 손을 흔들며, 무용을 해대고 ‘아멘'을 외쳐대는가 하면, 방언을 한다고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내는 것 등, 모두가 어렸을 때부터 내가 젖어온 천주교회의 기도와 전례 모습과는 너무나 이질적인 것이었다.

거기에다 좀 알만한 신부나 수녀들도 상당수가 성령운동하면, 일단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곤 하여 나도 성령운동에 대한 나름대로의 견해를 말하며 비판적이고 부정적이었다,


신부가 되어서 몇 년이 지나 광산촌에서 본당 일을 할 때, 밀려오는 신자들에게 교육을 시켜야 하겠기에 이것저것을 지켜보았으나, 지식 유무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대중적인 교육을 시킬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이때 서울에 있는 한 교우가, 성령세미나를 신자들에게 하게 하면 좋겠다고 여러번 말했으나, 나는 대꾸도 안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원 말씀의 집에서 성직자, 수도자 성령세미나가 있다는 엽서를 받고 마음이 흔들렸다. 성령세미나에 대하여 교육을 한번도 안 받고서, 부정적인 생각만 계속 고집하는 것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나는 나의 부정적인 생각을 없애보려고, 그 교육에 거듭 두 번 참석하였다. 그러나 마음이 여전히 내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성령세미나를 좋아하는 교우들도 있으니, 그들을 위하여서라도 본당에서 배려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나 자신도 성령세미나는 다른 것이 아니고, 나 자신에게 고착된 내 마음의 창문을 열어, 하느님과 타인을 향하게 하는 훈련을 시키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닫힌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사람은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할 때, 자기 껍질만 두껍게 만들어 인간사회 속에서도 폐쇄적이 되고, 고집쟁이가 되기 쉬우며, 이기적이고 교만의 죄에 떨어지기 쉽다. 그러나 타인을 향하여 마음의 문을 열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아가면, 이해심과 너그러움, 그리고 기쁨과 평화, 인내와 겸손의 자세를 갖게 된다.

  

이 마음의 문은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창문을 열 듯, 또 한낮에도 방안의 공기를 우주의 기운과 일치시키려 창문을 열어젖히듯 자주 열어야 된다. 너무 오랫동안 문을 열지 않으면, 문이 녹슬어 망가지게 되고, 또 안에 있는 탁한 공기가 사람을 못쓰게 만든다.

  

성서에서 보면 성령을 하느님의 입김, 혼, 숨결이라고도 하였으나, 또한 바람이라고도 표현하였다. 막힌 곳에서는 바람이 일지 않는 법, 자기 껍질이 두껍게 쌓여져 막혀버린 사람에게서 어떻게 성령의 바람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저 푸른 대지를 향하여 창문을 열 듯 이웃과 하느님을 향하여 마음의 창문을 열어보자. 방안 가득히 신선한 바람을 집어넣듯 마음 가득히 성령바람을 모셔보자. 탁한 방안의 공기를 새롭게 바꾸듯이 ,탁한 마음의 상처를 씻어내고 새롭게 새 살이 돋도록 하자.

  

얼마 전 서울방송(SBS) 명사특강에서 연세대학교의 황수관 교수가 ‘신바람 건강학’에 대하여 강의를 했다. 강의 핵심은 웃으면서 기쁘게 살자는 것이다. 그럴 때 몸도 건강해진다는 것이다. 나는 항 교수의 신바람 건강학 강의를 들으면서, 신앙인들에게도 신바람 신앙생황을 할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성령바람이 바로 신바람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사실 성령바람은, 신바람 신앙인이 되도록 사랑, 기쁨, 평화, 너그러움, 인내, 관용, 성실, 양순, 절제를 가져다 준다.



사랑․기쁨․평화 주는 성령바람



또 성령바람은, 무서움에 떨던 제자들을 용감하게 하였듯이, 용기를 주고, 무능한자를 유능하게 하며, 분열된 이들을 하나로 엮어준다. 가난과 병고와 고독, 슬픔, 괴로움 속에서도 실망과 좌절을 하지 않도록 용기를 주며, 생활고로 찌든 얼굴에 활짝 웃는 웃음을 선사한다, 영혼이 없는 사람이 죽은 사람인 것처럼, 성령이 없는 신자와 교회는 죽은 신자, 죽은 단체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성령은 바로 신자와 교회를 혁신시키는 혁명가라는 것을, 나는 그간의 성령세미나 강론을 다니며 체험하고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을 오르실 적에, 구경 나왔던 시몬은 군인들에 이끌려 억지로 십자가를 지게 되었지만, 예수님의 옆에 설 수 있는 영광과 은혜를 입었듯이, 나도 마지못해 참석하게 된 성직자, 수도자 성령세미나를 통하여, 그리고 수없이 불려 다니고 쫓아다닌 성령세미나를 통하여, 형식적이고 고착된 신앙생활에서 용기와 인내, 사랑과 기쁨을 주는 성령바람을 만나는 은혜를 입었다, 누구든지 신바람나게 신앙생활을 하려면 싱령바람을 향하여 마음의 창문을 열자.











4             성령 강림 대축일 (나해)   성령은 하느님의 기운

강길웅 신부


제1독서 사도 2,1~11 (모든 신도들은 성령으로 가득 차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제2독서 Ⅰ고린 12,3b~7.12~13 (우리는 모두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몸이 되었습니다)

복 음 요한 20,19~23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 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구약에서는 성령을 히브리말로 '루아흐'라고 합니다. 이것은 바람이라는 뜻입니다. 신약에서는 '프네움마'라고 하는데 입김, 숨결, 호흡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1독서에서 제자들이 다락방에 모여 있을 때에 '세찬 바람이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세찬 바람은 바로 힘찬 성령의 충만 상태를 말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숨을 내쉬시며'말씀하시기를 "성령을 받아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께서 '숨을 내쉬셨다.'는 말씀의 뜻은 주님으로부터 성령이 직접 발산되셨다는 표현이 됩니다. 즉 다른 복음을 보면 예수께서 승천하셔서 열흘만에 성령을 보 내 주셨는데 오늘 요한복음을 보면 부활 발현과 함께 예수께서는 바로 성령을 내주시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성령강림이 동시에 있습니다.



성령은 천주 제3위로서 하느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에게 발산되어 나오는 기운(능력)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답게 하는 것이 성령이며 아들을 아들답게 하는 것이 성령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을 하나로 신비롭게 일치시키는 것이 성령이며 하느님을 하느님답게 드러내는 것이 성령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에게서 성령을 빼면 하느님은 껍데기만 남게 됩니다. 마치 휘발유 없는 자동차와도 같습니다.



제자들은 믿음이 약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3년 동안 정성들여 가르쳐 주셨고 깨우쳐 주셨건만 그들은 여전히 진리를 몰랐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이 안 계신 세상은 오아시스 없는 사막이요 사공 없는 나룻배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당신이 떠나신다는 뜻을 계속 암시하시자 그들은 불안했습니다. 이때 주님께서 약속하신 협조자가 바로 성령입니다.



주님이 안 계신 캄캄한 세상은 이제 성령이 밝혀 줄 것이며 부족한 지혜와 지식은 성령이 채워 줄 것입니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복음을 전파할 담대함도 성령이 줄 것이며 마귀를 쫓아내고 병자를 낫게 할 치유의 능력도 성령이 줄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성령으로 하느님의 일을 예수님처럼 하게 될 것입니다. 언변도 기적도 그분이 다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다 받았습니다.



오늘 독서에 보면 배우지도 못한 제자들이 동시에 여러 나라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베드로는 감동적인 대중 설교를 통해 한꺼번에 3천 명에게 세례를 주었으며 다른 곳에서는 장정만도 오천 명이 예수님을 믿게 만들었습니다. 오죽잖은 인생이 지식인과 부자와 세도가들을 압도합니다. 성령 때문입니다.



우리도 성령의 은혜를 생활에 실현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윤기있게 번쩍번쩍 빛나는 삶, 재미있게 신이 나는 기쁨의 삶을 신앙 안에서 구현시켜야 합니다. 만일에 그렇게 살지 못한다면 우리는 바보요 멍청입니다. 좋은 선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쓰레기통을 뒤지는 서글픈 존재들입니다.



한 자매가 있는데 얼굴엔 늘 근심이 가득했습니다. 얼굴은 예쁜데 표정이 어두웠습니다. 이유를 알아보니 아들 중에 하나가 정신 지체자였습니다. 자매는 그것이 항상 고통이요 슬픔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성령 안수를 받고 나서는 근심과 불안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녀가 그랬습니다. 전에는 아들 땜에 못 살 것 같더니만 성령의 은혜를 받으니 아들 땜에 살맛이 나게 됐다고 했습니다. 성령은 사실 그렇습니다.



성령은 어둠을 빛으로, 슬픔을 기쁨으로 변화시킵니다. 무엇이든 사람으로 하여금 살맛나게 해 줍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기 위해서는 그릇이 깨끗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철저한 회개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자기의 죄를 쥐어짜서 진정으로 뉘우쳐서 회개할 때 성령은 찾아 주십니다. 아니 그것마저도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참된 회개가 가능합니다. 따라서 성령의 선물을 간절히 소망합시다.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회개합시다. 이것이 능력을 얻는 길입니다.











5      성령강림 대축일 (요한 20,19-23)(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서울대교구 홍보실



1. 복음 이야기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맨 처음으로 무덤에서 울고 있던 막달라 여자 마리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날 저녁에 예수께서는 공포와 불안에 싸여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사명을 주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그대들을 보냅니다”(요한 20,21). 이 파견사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첫 당부이자 마지막 당부이기도 합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목적은 “세상구원”이라 하겠습니다. 이제 예수께서는 이 사명을 마치시고 세상을 떠나가시면서 “나도 그대들을 보냅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예수님의 선교와 제자들(교회)의 선교의 동일성과 연속성을 일깨워주는 매우 뜻깊은 말씀으로 오늘 교회는 세상으로 나가서 예수께서 하셨던 일을 계속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께서는 한 가지 사명을 명시하여 “누구의 죄든지 그대들이 용서해주면 용서받을 것이요,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굳이 사죄권에 국한시켜 해석할 필요가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 권한이 개인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이 말씀은 세상 모든 곳곳이 썩었다 할지라도 교회만큼은 도덕과 양심의 보루로서 세상과는 질적으로 달라야 한다는 뜻입니다.



2. 우리의 이해

오늘은 성령 강림 대축일입니다. 올바른 성령관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성령을 어떤 초인간적, 초자연적인 신적 능력 또는 그런 현상으로 생각하여 성령을 비인격화하고 사물화하는 오류에 빠지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령 강림시 예수님을 통하여 오신 성령은 삼위일체의 한 분으로서 우리의 위로자 변호자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둘째, 성령과 성령이 주시는 은사를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성령과 은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이들은 성령을 축복의 항목이나 재산의 항목 정도로 전락시키는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성령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능력이요, 베푸시고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이라 하겠습니다.



셋째, 성령은 우리에게 세상에 나가 복음의 증인이 되라고 하십니다. 따라서 교회는 세상을 위한 선교 공동체로 존재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복종하는 믿음과 사랑과 희망의 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오늘은 교회의 생일인 성령 강림 대축일입니다. 교회는 삼위일체의 한 분이신 성령께서 베푸시는 은총의 선물을 듬뿍 받아 그 재능을 교회 공동체의 이익과 복음전파를 위해서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6               성령강림 대축일 (요한 20,19-23)(나)   주님의 손

김명순 루피나/영문학 박사



어느 주일, 신부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2차대전 후 모든 것이 파괴된 독일에서 병사들이 허물어진 성당을 복구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상이 산산조각이 난 것을 보고는 천신만고 끝에 수많은 조각을 붙여서 제 모습을 갖추었지만, 아무리 찾아도 주님의 양손만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모두가 실망해서 앉아 있었는데, 한 병사가 일어나 제단 위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써놓았습니다.

없어진 주님의 손/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주님의 손을 대신합시다.

이 글귀로 말미암아 이 성당은 유명해졌고 많은 교우들이 이 성당을 찾아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손은 과연 어떤 손일까요?



첫째, 주님의 손은 기도하는 손입니다.

조용한 곳을 찾아가 하느님께 두 손 모아 감사와 찬양의 마음을 표현하거나 두 손을 하늘을 향해 활짝 펴고 세상의 것보다 하늘의 하느님께 모든 것을 바치려는 듯 기도하십니다.



둘째, 주님의 손은 치유의 손입니다.

십팔 년 동안이나 병마에 사로잡혀 허리가 굽어져서 몸을 제대로 펴지 못하는 여자에게 “여인아, 네 병이 이미 너에게서 멀어졌다” 하시고 그 여자에게 손을 얹자 그 여자는 즉시 허리를 펴고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루가 13,10-13).

어렸을 때 배가 자주 아프던 저를 어머니께서는 당신의 손으로 제 배를 살살 문지르면서 “엄마 손은 약손이다”를 반복하셨습니다. 그러면 배가 따뜻해지면서 아픔이 사르르 사라지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한데, 어머니의 사랑이 치유의 효과라는 것을 언제나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사랑의 손을 펴서 치유하신 예를 우리는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나병환자, 백부장 하인의 중풍병, 베드로 장모의 열병 등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셋째, 주님의 손은 강복하시는 손입니다.

영원한 사제이신 주님께서는 하느님을 대신하여 “하느님의 나라는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라고 말씀하시고는 어린이를 앉히시고 머리 위에 손을 얹어 축복해 주셨습니다.



넷째, 주님의 손은 기적의 손입니다.

오천 명을 먹이신 오병이어의 기적, 바다 위를 걸으신 기적, 바람을 잠재운 기적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전능은 피흘리면 싸매 주시고, 눈물 흘릴 때 닦아주시는 사랑이 가득한 주님의 손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과연 얼마만큼 주님의 손을 닮아 가족에게 지역 공동체의 어려운 동료에게 도움과 희망을 주었는지 반성해 봅니다. 주님의 손을 대신 할 수 있는 조그마한 힘이라도 주십사고 오늘도 저는 두손 모아 기도 드립니다.













7               성령 강림 대축일 (다해)  성령의 은혜로 살자

강길웅 신부



제1독서 사도 2,1~11 (모든 신도들은 성령으로 가득 차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제2독서 Ⅰ고린 12,3b~7.12~13 (우리는 모두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복 음 요한 20,19~23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 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오순절은 과월절, 초막절과 더불어 유대인들의 3대 명절 중의 하나입니다. 오순절을 희랍어로는 '펜테코스트(Pentecost)'라고 하는데 이 말은 '50일째의 날'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구약의 오순절은 그렇습니다. 가장 큰 명절인 과월절(빠스카 축제)을 지내고 꼭 50일째 되는 날에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께로부터 율법을 받은 것을 기념하며 또한 그 해의 첫 농사인 밀 수확을 통하여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축제입니다. 그런데 이 오순절이 바로 신약의 성령 강림과 연결이 됩니다.



신약의 빠스카 축제인 부활이 지나고 꼭 50일째 되는 날에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강림하셨는데 이 날은 또 바로 구약의 오순절 축제 시기였습니다. 따라서 성령 강림이라는 신약의 오순절은 구약의 오 순절의 의미를 더 풍성하게 채워 주고 완성시켜 주는 의미가 있습니다. 마치 예수님이 자신의 빠스카를 통해서 구약의 빠스카를 참되고 완전하게 성취시켜 준 것과도 일치합니다.



예수님이 밤새워 기도하신 후에 제자들을 선발하셨지만(루가 6,12~16참조) 그러나 제자들은 거의가 무식한 겁쟁이였으며 예수님이 떠나신 뒤의 교회를 이끌면서 신도들을 지도하고 복음을 전파 할 만한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사실 어려서부터 교육받은 지성인들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주님의 날'이 오면 재수좋게 '한 자리'가 주어지지 않나 하는 야심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봤을 때 예수님의 3년 동안의 전도생활의 업적은 이제 다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가장 가까웠던 제자들마저도 끝까지 주제 파악을 못했으며 가뜩이나 오합지졸이었던 그들은 뿔뿔이 다 흩어질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구원업적은 다 수포로 돌아갈 것이었습니다. 누가 봐도 그때의 상황은 분명히 그랬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묘한 일이었습니다.



그 날도 제자들은 두려워서 다락방에 모여 숨어 있었습니다. 주님이 승천하신 뒤의 세상은 실로 황량한 벌판에 내던져진 어린 고아와 같았습니다. 로마의 힘과 유대인들의 세력이 무서웠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들려 오더니 그들이 있는 집안을 가득 채우며 혀같은 것이 나타나 불길처럼 갈라지며 각 사람 위에 내렸습니다. 성령을 받은 것입니다.



성령! 성령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예수님께서 전에 약속하신 '협조자'라는 이름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그러면 이 협조자가 누굽니까? 그는 놀랍게도 하느님 자신의 영이요 기운이었습니다. 다시말해 하느님의 그 놀라우신 능력이 제자들을 통하여 인류 역사 안에 들어오신 것입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뒤집어지고 세상이 뒤집어집니다. 완전히 뒤바뀌게 됩니다.



바보 같은 제자들이 여러 가지 외국어로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기 시작했으며 로마의 권력과 유대인들의 세력이 살벌한데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아주 담대하게 복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그뿐만도 아닙니다. 말 한마디로 앉은뱅이를 고쳐 주며 여러 가지 기적을 행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놀랐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성령의 은혜가 절실하게 요 청됩니다. 많은 이들이 신앙의 기쁨을 잃고 있으며 신앙을 통해서 오는 은혜의 맛을 모르고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으며 기도를 한다 해도 형식적으로 하는 이가 태반이고 성서도 읽는 이가 드물며 말씀의 생활을 못하니 사랑의 에너지가 채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기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계에 기름이 없으면 잘 돌아가지 않습니다. 자동차에 기름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차라도 굴러가지 않습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 도 음식을 섭취하지 않으면 아니, 하루만 굶어도 힘을 못쓰게 됩니다. 성령은 바로 그런 음식이요 기름이며 에너지입니다. 영의 에너지입니다.



에너지라는 표현을 해서 죄송스럽지만 실제로 성령은 하느님의 에너지입니다. 하느님을 하느님답게 하는 능력과 힘이 바로 성령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성령을 받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인간이 하느님의 힘을 내게 됩니다. 인간에게서 하느님의 에너지가 나온 다면 안되는 것도 없고 못할 일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래서 성령의 은혜를 간구해야 합니다.



성령의 은혜는 진정한 회개에서 오며 감사에서 오고 또 용서에서 옵니다. 눈물 흘리는 깊은 회개와 그리고 뜨거운 감사, 뿐만 아니라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참된 용서가 아니면 성령의 은혜는 기대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성령의 어떤 은혜를 간구하십니까? 그러면 다시 회개합시다. 그리고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또 용서합시다. 그러면 그분이 당신 뜻대로 채워 주실 것입니다.











8                 성령강림 대축일 (다) 오소서, 성령이여!

김형수 신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을 떠나실 때가 이르렀을 때, 그분은 사도들에게 “다른 빠라끌리도”를 보내주시겠다고 선언하셨다(요한 14,16). 그분은 곧 진리의 성령이시다. 이 진리의 성령을 예수께서는 빠라끌리또라고 부르신다. 빠라끌리또란 ‘위로자', ‘협조자' 흑은 ‘변호인'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여기서 ‘다른' 흑은 두번째 빠라끌리또를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그분 자신이 우선 첫번째 빠라끌리또이시기 때문이다(1요한 2,1). 그분은 과연 기쁜 소식을 가져다주신 첫번째 빠라끌리또이시다. 성령께서는 그분 다음에 또 그분을 통해 오시어, 교회를 매개로 구원의 기쁜 소식이라고 하는 사업을 세상에서 계속 추진하시는 것이다.



그 불꽃을 내리소서 - 성력과 교회의 시대



오순절 사건은, 빠스카 주일에 이미 같은 다락방에서 일어났던 일이 결정적인 방식으로 나타난 것이라 하겠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오셔서 사도들에게 “성령을 받아라"하는 말씀으로 그분을 건네주셨다. 그때 다락방 안에서 ‘문을 잠근 채' 일어났던 일이 오순절 날 사람들 앞에서 외적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때 사도들은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다락방문을 박차고 나가, 예루살렘 주민들과 축일을 기해 거기 모인 순례자들을 향해 나아가, 그리스도를 중거하였다. 이렇게 해서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분이 나를 중언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나의 중인이 될 것이다"(요한 15, 26-27)하신 예수의 말씀이 실현되었다.

  

“성자께서 성부께로부터 지상 사명으로 위탁받으신 일을 마치신 다음, 오순절의 날 성령이 파견되어 오셨다. 그리하여 성령이 항구히 교회를 거룩하게 하심으로써, 그리스도 신자들이 한 성령 안에서 성부께로 가까이 가게 되는 것이다. 이 성령은 생명의 영이시며, 영원한 생명을 위해 솟아오르는 샘이시다(요한 4, 14).

이 성령을 통하여 성부는 죄로 죽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며, 마침내는 그들의 죽은 육신을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시키실 것이다(로마 8,10-11)"(교회헌장 4항).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오순절을 교회의 탄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바야흐로 교회의 시대는 그 막이 열린 것이다. 교회의 시대는 예루살렘의 다락방에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기도하며, 하나로 모여 있던 사도들 위에 성령께서 내려오심으로써 시작되었다.



더러운 것 씻으소서 - “성령을 받아라"



오늘 듣는 요한 복음과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빠스카 사건들의 서두에 같은 다락방에서 들려주셨던 말씀들과 대조시켜 생각해야 한다. 최후의 만찬석상에서 예수께서는 당신의 사업을 성령을 통해 이어 나가시겠다고 누차 밝히셨다.  사람의 아들로서, 하느님의 어린양으로서 십자가위에서 '숨(영)을 거두신'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신 다음에 사도들에게 나타나시어 이제는 영광된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권능을 가지고 “그들 위에 숨을 불어넣으셨다".



주님께서 오셨을 때 거기 있던 사람들은 기쁨에 싸여 있었다. 이것은 “그들의 슬픔은 기쁨으로 바뀌리라"(요한 16, 20)고 하시며, 수난 전에 그분 자신이 약속하신 그대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최후의 만찬 때 고별사에서 선언한 중요한 내용이 실현된 것이다.

다름 아니라 새로운 창조를 시작하시는 분으로서의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에게 성령을 ‘모셔다'준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에게 그분을 모셔온 것은, 그분 자신의 ‘떠남'을 통해서만 이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 성령을 주실 수 있었던 것은, 말하자면 당신 십자가 수난의 상처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래서 “그분은 그들에게 당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다."

그분께서 “성령을 받아라"하고 말씀하실 수 있었던 것은, 당신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때 예수께서는 사도들에게 당신의 부활을 확증하는, 그렇지만 그들에게는 지을 수 없는 죄책으로 남아 있던 십자가의 상처를 굳이 보여주시며, 성령을 건네주신다. 이것은



바로 ‘죄의 용서를 위해' 성령을 주셨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성령을 받아라.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다."

이 말씀은 사도들의 (예수를 부인하고 도망한) 죄에 대한 용서였고, 게다가 예수께서 직접 사도들에게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주신 것은, 그들로서도 교회 안에서 다음 후계자들에게 그 같은 권한을 넘겨주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인간에게 주어진 이 권한은, 성령의 구원적인 활동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마음의 빛'이 되심으로써, 즉 양심을 밝혀주는 빛이 되심으로써, “죄를 드러내 밝히신다."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의 악을 깨닫게 하고, 동시에그 를 선으로 인도하는 분이 바로 성령이시다. 따라서 죄의 용서를 위해서, 필요 불가결의 조건인 인간의 마음의 회개는 성령의 도움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내적 통회를 전제하는 참다운 회개 없이, 또 자기 삶의 태도를 바꾸겠다는 성실하고 확고한 결심이 없이는, 죄가 “사해지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성령은 인간의 죄, 이 세상의 죄를 밝히 드러내고, 동시에 용서하는 분이시다. 그리하여 결국 우리 죄로 인한 하느님의 아픔, 하느님의 고통을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 수난, 죽음, 부활 안에서 구원하는 사랑으로 바꿔주는 분이시다.



 누리의 모습을 새롭게 하소서

창조와 구원의 역사 전체에서,  성령이 이룩하신 가장 위대한 업적은 바로 ‘강생의 신비'이다. 강생은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던" 분, “당신을 맞아들이고 믿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던"(요한 1,14) 그 말씀이 사람이 되신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성령을 통해서' 이루어졌고, 아직도 우리 안에, 교회 안에 ‘생명을 주시는 영'으로서 현존하시는 성령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바울로 사도의 말씀대로 “하느님의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사는 사람들"(로마 8,14)은 ‘하느님의 자녀들'이다. 인간 안에 ‘하느님의 자녀로 되는 변화'는 강생의 신비를 통해, 즉 영원한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은총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 새로남 혹은 거듭나는 삶은,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에 당신 아들의 성령을 보내주실 때"(갈라 4,6) 이루어진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를 아들로 삼아주시는 영을 받게 되고, 우리는 그 성령에 힘입어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는 것이다"(로마 8,15). 이처럼 성화의 은총으로 인간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일은 성령의 업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생명을 주시는' 주님께, 시편 작가의 입을 통해 "당신께서 얼(영)을 보내시면 그들은 창조되고, 누리(세상)의 모습은 새롭게 되나이다" 하며 노래한다.



이렇게 성령의 인도를 받아 ‘예수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하는(1고린 12,3)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자신을 성령이 거하시는 성령의 궁전으로 생각해야 할 뿐만 아니라, 성령을 힘입어 자신을 정화하고 성화시키는 가운데, 세상 안에서 “세상의 모습을 새롭게 하는 일"에 기여함으로써 명실공히 하느님의 성령의 자녀로 성장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9                 성령강림 대축일 <성령은 누구이신가?>

김대군 신부





“성령은 누구이신가?" 이 질문은, 아주 간단하면서도 우리를 매우 당황하게 만든다.

천주교를 믿는 우리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믿을 뿐더러,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믿는다는 표시로, 모든 공식적 기도 전후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이라는 성호경을 외운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 입교하는 예비자나 관심 있는 분들에게는 으례히 성부는 누구이시고, 성자는 누구이시며, 성령은 누구이신지를 설명해야 할 입장에 놓이곤 한다.

성부와 성자께 대하여는 우리 인간의 부자(父子)관계가 있고, 또 “천지창조사업"과 “인류구속사업으로 그 하시는 일을 설명하여 어느 정도 이해시킬 수 있으나, 성령께 대하여는 그 명칭 자체가 비물질적일뿐더러 어떠한 형체로써 비유하거나 상상을 하게 함이 매우 어려움으로, 그 개념을 갖도록 해주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단순히 초대교회로부터 전해져 오는 전통교리의 문답을 외우면서, 예수께서 계시하신대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믿는다는 고백을 하는 정도로 얼버무리거나 만족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것이 10여년 전부터, 개신교에서나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오던 “심령 부흥회"나 “성령운동"이 우리 교회 안에서도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했고, 4-5년 전서부터는 대대적으로 시도되어, 현재 그 참가자 수가 십만을 넘는 경지에 이르렀다.



소위 “방언"이나 “치유", “예언"이나 “구마" 등,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마디들이나, 일부 분별없는 사람들의 지나친 언행으로 인하여, 성령운동에 대하여 나쁜 선입견이 많은 교우들에게 생긴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반면에 성령운동을 통하여 새로운 열성으로 하느님을 섬기고, 그 생활이 아름답게 변하며, 놀라운 치유를 경험한 체험담을 듣고 보면서, 성령으로 인한 새로운 삶에 대하여 막연한 기대를 갖는 교우들도 많이 있음도 사실이다.

  

구약에서는 하느님의 영은, 특별히 하느님께 뽑혀 귀하게 쓰일 사람들에게만 내리시는 것으로 되어 있다. 백성을 구원할 모세나, 다스릴 장로들, 주님의 말씀을 받아 전할 예언자들, 주의 백성을 이끌고 다스릴 왕들에게 내리시고, 특히 전 인류를 구원할 구세주께 내리시는 것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어느 사람에게 주의 영이 내리셨다는 말은, 그 사람이 하느님으로부터 특별한 소명을 띄고 불리움을 받았다는 것을 뜻하였고, 그 사람에게는 인간의 자연적 능력 이상의 초자연적 능력이 주어졌다는 것을 뜻하였다.



그 능력이 어떤 때는 솔로몬 왕에게서처럼 놀라온 지혜와 지식으로, 어떤 때는 삼손에게서 처럼 무지무지한 힘으로, 어떤 때는 각종 예언과 분별로서 나타나,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 그와 함께 있음을 드러내 주었다. 한편 요엘과 에제키엘, 예레미야와 같은 예언자들은 하느님께 불리운 사람, 특별한 사명을 띈 사람들에게만 주어진다고 생각되어 온, 주의 영이 장차 올 시대에는 많은 사람,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질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그런 다음에, 나는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너희의 아들과 딸은 예언을 하리라. 늙은  이들은 꿈을 구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리라. 그 날 나는 남녀 종들에게도 나의 영을 부어 주리라"(요엘 3,1-2).

  

한편 인류의 구세주 되시는 예수님의 일생은 성령으로 이루어진, 성령으로 가득 차고, 성령으로 일관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분이 성모님께 잉태되는 것이 바로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었고,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시자 “홀연히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당신 위에 내려오시었으며," 공생활을 시작하기 전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아가" 단식하시면서 기도하시었다.



그리고 공생활 도중 당신의 구세주로서의 모든 놀라운 행적들, 즉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묶인 이들에게 해방을 알려주며, 눈 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는” 모든 것이, 바로 주님의 성령이 당신에게 내리셨기 때문임을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여 말씀하셨다. 또한 당신이 마귀를 제압하고 쫓아내심도, 바로 성령의 힘으로 인한 것임을 말씀하셨다(마태 12,28).



동시에 당신을 믿고 따르고자 하는 제자들에게는 성령을 보내 주실 것을 약속하신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면 다른 협조자를 보내주셔서, 너희와 영원히 함께 계시도록 하실 것이다. 그분은 곧 진리의 성령이시다" (요한 15,15~17). “그러나 사실은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는 더 유익하다. 내가 떠나가지 않으면, 그 협조자가 너희에게 오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보내겠다"(요한 16,7). 그리고 그 성령께서 오시면, 그들을 깨우쳐 주시고, 굳세게 해 주실 것이기 때문에, 성령을 바라고 기다리며 기도하기를 명하셨다. “내가 아버지께 청하여 너희에게 보낼 협조자,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분이 나를 증언할 것이다"(요한 15,26).


“아직도 나는 할 말이 많지만, 지금은 너희가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이끌어 진리를 온전히 깨닫게 하여 주실 것이다"(요한 6, 12).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친히 숨을 내부시며,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고, 실제로 주셨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숨을 내쉬시며 말씀을 계속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 22-23). 구약에서는 특별한 사명을 떤 사람에게만 주어졌던 주의 영은, 이처럼 예수님에 의하여 당신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약속되었고 주어지게 되었다.

  

이는 성령강림 때의 현상과 사도들이 세례를 받은 사람들 위에 손을 얹음으로 성령이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시는 현상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내리신 주의 영은 예수께서 미리 말씀하셨던 대로, 예수의 말씀을 확실히 알아들을 수 있도록 그 마음을 깨우쳐 주시어, 그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서는 죽음도 불사할 수 있는 신념을 갖게 해주었다. 또한 믿는 사람들에게 오신 성령께서는, 놀라운 지혜와 언변을 주시어 위기를 벗어날 수 있게 보호해 주셨고, 놀라운 기적과 능력으로써 그들을 협조해 주셨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은 자신의 주님으로 모시고 예수님의 가르치심대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고, 그분의 인도하심대로 살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 갈 수 없다"(요한 3,5)고 하셨고,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의 성령을 모시지 못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로마 8,9)고 하셨다.

  

성령의 선물을 바오로 사도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하신다. 첫째는 봉사의 은사이고, 둘째는 성령의 열매이다. 봉사의 은사(카리스마)는 성령의 놀라운 힘, 또는 능력을 말함인데, 이것은 개인의 성덕과는 관계없이 공동체의 이익과 교회의 건설,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주시는 것으로서, 바오로 사도는 1고린 12장과 14장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계신다. 실제 성령께서 주시는 능력의 은사는 여러 가지로 볼 수 있으나, 바오로 사도가 특별히 꼽고 계시는 은사는 대충 9가지이다. 즉 지혜, 지식, 믿음, 치유, 기적, 예언, 영의 분별, 이상한 언어, 이상한 언어의 해석이다.

  

그리고 성령의 선물 중에서 우리 각자의 생활에 가장 중대한 변화를 주는 선물인 성령의 열매에 대하여, 바오로 사도는 갈라디아서에서 말씀하신다. “내 말을 잘 들으십시오. 육체의 욕정을 채우려 하지말고,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살아가십시오.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께서 원하시는 것은 육정을 거스릅니다. 성령께서 맺어 주시는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온유 그리고 절제입니다" (갈라 5,16-17.22). 이들 9까지 열매야말로 우리 인간의 모습을 하느님의 모상답게, 아름답고 거룩하게 해 주는 것으로서,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불릴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그 이외에, 성령의 선물로서 언급되는 것이 성령의 칠은으로서 이사야 예언서에 나오고 있다. “야훼의 영이 그 위에 내린다. 지혜와 슬기를 주는 영, 경륜과 용기를 주는 영, 야훼를 알게 하고 그를 두려워하게 하는 영이 내린다”(이사 11,2). 이를 교회는 전통적으로 일곱가지로 분류했다. 즉 슬기, 통달, 의견, 굳셈, 지식, 효경, 두려워함이다. 이는 우리의 영혼을 밝히 비추고 믿음을 굳게 하여, 그리스도를 용감히 따르고 증거할 수 있게 해주는 도움의 은총이다.



사도 요한은 그 서간에서 “하느님은 사랑"이시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주 예수에서는 “누구든지 내 계명을 지키면 그 안에 머물겠다"고 하셨고, 당신의 새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임을 분명히 하셨다.

사랑은 우선 용서해 주는 것이다. 미워하지 않고, 원한을 품지 아니한다. 용서하는 마음으로 모든 증오심을 몰아내자. 주님이 내 안에 주인으로 오시어, 나의 모든 것을 당신의 뜻대로 변화시켜 주시고, 나를 선하고 아름다운 삶에로 나갈 수 있게 이끌어 주시기를 바라자.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주님께만 집중하여 주님 중심의 삶을 사는 것이 우리 믿는 이 모두의 목표가 되었으면 한다.











10         성령강림 대축일 요한 20,19-23.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

박지환 신부



ꡔ오소서 성령이여ꡕ

봄이 되니 겨우내 죽은 듯하던 나무 가지 끝에서 새 잎과 꽃봉오리가 싹터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추위에 얼어죽어 말랐던 나무 가지에서는 봄이 되었는데도 또 봄이 다 가고 여름이 되는데도 아무 소식이 없습니다. 겨울 동안에는 죽어 마른 나무 가지와 얼어 잠든 가지를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봄이 되어 생명의 기운이 통하는 가지는 생명의 표지이니 잎과 꽃이 나옵니다. 생명력이 통하여 흐르는 나무 가지는 봄의 햇살이 오기를 기다려 성장을 시작합니다.



이제 성령 강림 대축일이 되었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서 우리와 함께 우리를 통하여 흐름으로써 우리를 성령의 사람으로, 성령의 궁전으로, 성령의 도구로 만들어 남들에게까지 가시고자 하십니다. 친애하는 신자 여러분! 나무 속과 껍질과 뿌리와 줄기에 물기가 통하여 흐르며 움직이는 생명력처럼 우리의 몸과 맘과 말과 행위 속에는 성령께서 계시며 성령께서 흐르듯 지나시며 적시듯 가득 차시며 깨끗이 하시며 힘차게 하시며 자라게 하시며 거룩하게 하시며 굳세고 의롭게 하십니다.



우리의 말마디 속에 그 말소리 속에 그 말 뜻 속에 그 말을 적은 글 속에 성령께서 오실 수 있으며 계실 수 있고 오시고 있어야 하며 살으시고 움직이시고 일하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말과 행동, 마음과 생각이 성령께서 좋아하시고 즐기시고 기뻐하시도록 꾸미고 마련하며 삼가고 다듬도록 합시다. 우리는 음식을 준비하고 방을 치우고 방석을 깔고 집안을 치우고서 손님을 오시라고 초청합니다.



신자 여러분! 「오소서 성령이여!」라고 기도하기 전에 성령께서 오실 수 있도록 사실 수 있도록 우리는 우리 자신을 준비하였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예를 들어 성령께서 도저히 우리에게 오실 수 없도록 무준비 상태 또는 잘못된 준비 상태에서 성령을 오시라고 목청 높여 아무리 노래하고 기도하여도 성령께서 오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실 수가 없습니다.



친애하는 신자 여러분! 생명력이 흐르지 않는 나무는 봄이 와도 소용이 없고 나무 노릇을 못하듯이 성령이 통하지 않는 신자, 성령이 흐르지 않는 말과 행동과 생각의 주인인 신자들에게는 하루 속히 성령께서 오실 수 있고 와 머무르실 수 있도록 먼저 힘써야만 합니다.

그래서 오늘 성령 강림 대축일에 성령께서 우리 본당에 우리 공소와 우리 가정에 우리 각자 자신 안에 충만히 내려오시도록 여건을 조성하고 나서 기도를 바칩시다.

성령께서 오시는 길은 일곱가지가 있으니 곧 칠 성사입니다.

명백하고 정확한 이 일곱 대문을 잠가 놓고서 막아 놓고서 울타리와 담을 넘어서 오시라고 소리지르며 손짓을 하고 있다면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이며 성령을 조롱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친애하는 신자 여러분! 「오소서 성령이여!」라고 우리는 성령께 떳떳이 간곡히 청하며 기도할 수 있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이 성령강림 대축일을 계기로 우리의 영혼 상태와 신앙생활을 재점검 재정비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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