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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전례
작성자 말씀과 전례
작성일 2007년 11월 13일 (화) 00:14
분 류 연중8-13주일
ㆍ추천: 0  ㆍ조회: 3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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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11주일 ”
 



연중 제11주일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



제1독서: 탈출기19,2-6a

제2독서: 로마 5,6-11

복음: 마태 9,36-38 ; 10,1-8



오늘의 제 2독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어주신 구원의 절대적 ‘무상성’에 대한 바울로 사도의 논증이 담겨 있는,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의 깊은 내용을-지난 주에 이어-계속 전해주고 있다.

 반면에, 제1독서와 복음은 하느님께서 인간들에게 완전히 무상으로 베풀어주시는 그 자비로운 사랑에 대한 아주 구체적인 예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오늘 전례의 독서들 상호간에는 밀접한 관계가 성립될 수 있다고 여겨진다. 그 관계를 우리는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개념에 관련시켜 이해할 수도 있다.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개념은 하느님께서 “뭇민족 가운데서 당신 것”(탈출기19,5 참조)으로 택하신 옛 이스라엘을 의미하기도 하고, 교회라고 하는 ‘새’ 이스라엘을 의미하기도 한다. 예수께서는 그 교회를 한편으로는 새로운 믿음의 공동체의 시조들인 열두 사도들의 선택으로써 예시하고 계시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미 당신 제자들을 보내어 세계도처에 세우고 계시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 일을 팔레스티나 지방에서부터 시작하신다 :“이방인들이 사는 곳으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 삶들의 도시에도 들어가지 말라. 다만 이스라엘 백성중의 길 잃은 양들을 찾아가라”(마태 10,5-6).



“너희가 나의 말을 듣는다면 너희야말로 ant 민족 가운데서 내것이 되리라”



제 1독서는 출애굽기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 가운데 몇 구절을 소개하고 있다(19,2-6a) : 시나이산의 계약(19-24장)의 서문과도 같은 그 구절들 속에는 또한 계약 자체의 유효성에 관한 ‘조건들’도 내포되어 있다 :“너희가 나의말을 듣고 내가 세워준 계약을 지킨다면, 너희야말로 ant 민족 가운데서 내것이 되리라...”(5절).

 하느님과 그분의 백성간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이기 때문에 사랑과 성실성을 요구한다 : 따라서 사랑과 성실성에 의한 응답이 없는 곳에서는 하느님과 이스라엘과의계약도 무너지고 만다. 사도 바울로가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의 9-11장에 걸쳐 지극한 번민 속에서 염려하고 있는 선민의 패망은 이러한 차원에서 설명된다.

 하느님과 그분의 새 백성인 교회의 계약도 교회가 그 새로운 계약“의 요구에 불충실한다면 무너지고 말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 사도 바울로는 옛 이스라엘의 뒤를 이어 선택되었다는 느낌으로 얄팍한 정신적 안도감 속에 빠지기 쉬운 로마의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다시 상기시키고 있다 :"그러니 여러분은  두려워할지언정 자랑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원 가지들도 아낌없이 잘라내셨으니 여러분들도 아낌없이 잘라버리실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자비로우시기도 하고 준엄하시기도 하다는 것을 알아 두십시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거역하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시지만 여러분에게는 자비로우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러분이 하느님의 자비를 저버리지 않을 때에 한한일이고 그렇지 못할 때에는 여러분도 잘려 나갈 것입니다”(로마 11,20-22).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하느님께서는 당신 사랑에 협력하기만 한다면 이방인들에게조차 당신의 구원계획을 이루어 주시리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원 교회는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개개 그리스도 신자들은 물론 지상 교회들 역시 역사가 폭넓게 극적으로 증명해주고 있듯이 무너질 수도 있고 나약 해질수도 있다. 이스라엘의 비극적 체험은 대표적 본보기로서 교회는 그것을 보다 신중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 이후 구원이 더 쉬워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리스도께서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제시하고 있는 그 드높은 목표 때문에 더 험하고 어렵다고 할 수 있다!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베풀어주실 바에 대한 보증으로서는 그분이 이미 행하신 일을 들 수 있다 :“너희는 내가 이집트인들을 어떻게 다루었는지, 너희는 어떻게 독수리 날개에 태워 나에게로 데려왔는지 보지 않았느냐?”(4절). ‘독수리’라는 표상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 종살이로부터 구해내시기 위해 행사하신 강한 힘과 온유함의 의미를 상기시켜주고 있다. 모세의 찬미가에 나오는 다음의 아름다운 구절들을 읽어보라 :“야곱을 만신 것은 광야에서였다. 스산한 울음소리만이 들려오는 빈 들판에서 만나, 감싸주시고 키워주시며 당신의 눈동자처럼 아껴주셨다. 독수리가 보금자리를 흔들어놓고 파닥거리며 떨어지는 새끼를 향해 날아 내려와 날개를 펼쳐 받아 올리고 그죽지로 업어 나르듯 야훼 홀로 그를 인도해주실 때, 어느 다른 신이 그와 함께하였더냐?”(신명 32,10-12).

 계약으로인하여 이스라엘은 “뭇 민족 가운데서”(5절)하느님의 ‘특별한’ 소유물이 되었다 :그분의 선택은 온전히 무상이지, 이스라엘이 공로가 있어서거나 또는 힘이 세거나 수효가 많거나 번영하였다거나 하는 등의 인간적 가치 때문만이 아니다 :“야훼께서 너희를 택하신 것은 너희가 어느 민족들보다 수효가 많아서 거기에 마음이 끌리셨기 때문이 아니다. 사실 너희는 어느 민족보다도 작은 민족이다. 다만 너희를 사랑하시고 너희 선조들에게 맹세하신 그 맹세를 지키시려고 야훼께서는 당신의 강한 손으로 너희를 이끌어 내신 것이다”(신명 7,7-8).

 그러므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차별대우가 아니라 ‘대리자’로서의 선택이요 또한 기운을 북돋워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세상 모든 민족들에게 증거하고 알려야 할 하느님 사랑의 ‘표지’가 되어야 한다.



 “너희야말로 사제의 직책을 맡은 내 나라가 되리라”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거듭 맺고 지켜나가야 할 그모든 계약 때문에 부여받고 있는 부차적인 특성들도 더 잘 이해가 될 것이다 :“너희야말로 사제의 직책을 맡은 내 나라, 거룩한 내백성이 되리라”(6절).

 사제직은 예배와 전례거행의 개념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사제의 직책을 맡은 나라’로서 자기 백성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민족들의 창조적 역사를 통해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놀라운 신비들을 고양시켜야 할 ‘전례적’ 목적을 지니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 시편으로 충분히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노래를 주께 불러드리라, 온 누리여, 야훼께 노래 불러라. 당신의 영광을 백성에게, 그 기적을 만백성에게 두루 알리라”(시편 95,1.3).

 또 이스라엘은 다음 두가지 의미에서 ‘거룩한 백성’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특별한 모습으로 주님께 봉헌되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너희 하느님 야훼께 몸바친 거룩한 백성이 아니냐?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는 세상에 민족이 많지만 그 가운데서 너희를 뽑아 당신의 소중한 백성으로 삼으신 것이다”(신명 7,6). 두 번째 이유는, 그들은 그들을 사랑으로 택해주신 하느님께 합당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거룩한 삶을 진실되이 실현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 “나 야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라”(레위 19,2 ; 11,44-45 ; 17,1 참조).

 구원의 질서의 변천과정속에서 초기 그리스도 신자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새로운 계약’(루가 22,20 참조)의 구성원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며 또한 하느님의 구원계획이 복음을 거부한 이스라엘 백성의 행위로 말미암아 중단됨이 없이 그들안에 지속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들이 모든 나라와 언어와 종족으로 이루어진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다.

 묵시록에서 네 생물과 스물 네 원로들이 죽임을 당한 어린양을 향해 부르는 노래의 내용이 곧 이에 관한 것이다 :“당신은 두루마리를 받으실 자격이 있고 봉인을 떼실 자격이 있습니다. 당신은 죽임을 당하셨고 당신의 피로 값을 치러 모든 민족과 언어와 백성과 나라로부터 사람들을 구해내셔서 하느님께 바치셨습니다. 당신은 그들로 하여금 우리 하느님을 위하여 한 왕국을 이루게 하셨고 사제들이 되게 하셨으니 그들은 땅 위에서 왕노릇 할 것입니다”(묵시 5,9-10 ; 1,6 참조).

 또 사도 베드로는 이와같은 사실을 소아시아의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아주 위엄있게 그리고 강한 어조로 상기시키고 있다 :“그러나 여러분은 선택된 민족이고 왕의 사제들이며 거룩한 겨레이고 하느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두운 데서 여러분을 불러내어 그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해주신 하느님의 놀라운 능력을 널리 찬양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하느님의 백성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하느님의 백성이며 전에는 하느님의 자비를 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분의 자비를 받게 되었습니다”(1베드2,9-10).



 “그때에 예수께서는 목자없는 양과 같이 시달리며 허덕이는 군중을 보시고 불쌍한 마음이 드셨다”



아주 흥미로운 오늘 복음은 어째서 교회라는 이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이 단순한 무정형의 획일적 집단이 아니라, 존립하고 성장하고 그리고 확장을 가져다주는 봉사의 조직과 각기 구별된 ‘직무’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집단인지를 이해 시켜주고 있다. 사실,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직무를 가지고 있고 또 서로서로에게 개방되어 있으며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부여하신 역할을 인식하는 그런 곳이 아니라면 참된 하느님의 ‘백성’은 이루어 지지 않는다.

 물론, 그 이유는 오직 하느님만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불러 모으시는 교회안에서는 그분만이 봉사의 직무 특히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고 감독하는 직무를 맡기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때, 교회는 본래의 의미에서 ‘신정적’(神政的)인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다시 말해, 하느님만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교회의 주인이 되신다. 또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완전한 칭호는 ‘그분의 교회’라고 할 수 있다. 교회 안에서 중개자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주님의 ‘권한’을 그분을 대신하여 행사할 수 있고 또 “이스라엘 백성 중의 길 잃은 양들”(마태 10,6)을 고통중에서도 열렬히 찾아나서는 사랑의 봉사직을 계속 이어갈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결코 그분의 권리와 특권을 침해하고나 차지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교회의 이러한 봉사적 특성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총칭적 개념은 ‘사도적’이라는 개념이다 :베드로, 안드레아, 요한, 바울로 등은 오직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파견하시고’ 또 그들이 자신들에게 부여된 ‘전교사명’을 수향함으로써만이 의미를 갖게 되는 명칭들이다.

 마태오에 의한 오늘 복음(9,36-38 ; 10,1-8)은 이에 관해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좀더 자세히 말하자면, 오늘 복음은 소의 ‘파견사’-10장에서 전개되는데 그 일부(10,26-33)는 다음 주일에 접하게 된다-의 서문과 더불어 열두 제자의 ‘전교사명’에 관해 기술하고 있다.

 먼저, 머리말(9,35-38)에서 우리는 그때까지 펼쳐진 예수의 활동이 요약되고 있으며 동시에 열두 사도들의 부르심과 그들의 첫번째 파견의 근거가 제시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때에 목자없는 양과 같이 시달리며 허덕이는 군중을 보시고 불쌍한 마음이 들어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그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달라고 청하여라’”(9,35-38).

 이 대목에는 두 개의 상징적 개념이 겹쳐서 나오는 데 그 하나는 목자없는 ‘양’에 관한 것이고(36절), 다른 하나는 추수할 사람은 얼마 안되는 데 비해 거의 무한하다 할 만큼 많은 “추수 할 것”에 관한 것이다(37절). 그렇지만 두 사실의 결과는 극적으로 일치된다 : 만일 적절한 때에 양들을 목장으로 인도하여 맹수들로부터 지켜줄 목자들이 오지 않는다면 그 양들은 지쳐 쓰러지거나 이리떼의 먹이가 될 위기를 맞게 될 것이며, 만일 추수할 사람들이 늦게 오거나 또는 ‘하느님의 백성’이 되도록 불림을 받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요청에 훨씬 못미치는 수효가 오거나 하면 이미 거둬들일 때가 된 ‘농작물들’은 들판에서 썩어버리거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 되어 버릴 위험에 처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와 같은 극적인 방법으로 당신이 당신 구원 사명을 성취하는데 있어서 협력자들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피력하고 계시다. 적어도 그 구원사명이 모든 시대, 모든 장소, 모든 문화, 모든 종족의 사람들에게 펼쳐져야 한다는 점에서 볼 때 그리스도께서도 감당하기가 어려우신가 보다! 오직 ‘추수의 주인’이신 천상 성부만이 그분이 원하시는 ‘일꾼들’을 보내줄 권한을 갖고 계시다. 하지만 그분은 사람들이 그분께 요청해야만 그 일꾼들을 보내주신다(38절).



 “추수 주인에게 청하여라”



그러므로, 구원사명에 관한 모든 것은 하느님의 손에 달려 있고 그분께로부터 온다. 아무도 스스로 목자가 될 수 없으며 양들도 스스로 자신의 목자를 선발할 수 없다! 다만 목자를 청할 수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청해야 한다. 아니 보내달라고 간청해야 한다는 말이 더 옳다 :“그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달라고 청하여라”(38절).

 그러나, 어째서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달라고 하느님께 청해야 하는가? 그분이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또 그분이 추수의 주인이면 어째서 그분이 직접관여하지 않으시는가? 우리가 요청한다는 그 자체가 모순이 아닌가? 모든 것이 하느님께 달려 있는데 인간들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하라는 권고에는 매우 타당한 이유가 있다 :‘추수’가 하느님께 속하는 일이고 ‘일꾼들’도 그분께 속하는 것은 분명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러나 하느님께서 사람들을 필요로 하고 또 그들의 자유로운 협력을 요구하신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때 ‘청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이미 우리가 하느님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하늘로부터오는 모든 가르침을 받아들일 마음 자세를 갖게 한다. 따라서 ‘청하는’ 사람은 만일 하느님이 그를 부르신다면 파견될 마음자세를 이미 갖추고 있는 사람이다!

 교회는 바로 이런 길을 통해서만이 오늘날 매우 심각해지는 사제성소와 수도성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즉 신자 공동체 전체가 그분께 추수의 일꾼들을 보내주시기를 청하면서 만일 그분이 바로 우리 자신을 형제들의 구원을 위해 파견하고자 하신다면 사도들의 모범을 따라 이내 응할 마음의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그들을 파견하셨다”



 10,1-8에서는 “열두 제자들의 부르심”과(10절) 뒤이어 즉시 ‘사도들’의 이름이 불리고 있는데(2절), 사도들이라는 말은 희랍어로 ‘파견된 자들’이라는 뜻으로, 말할 것도 없이 예수께서 바로 그 순간에 그들에게 부여하시는 ‘전교사명’에 연결되어 있다. 다른 두 공관 복음서에서는 사도들의 부르심과 그들의 파견이 따로 떨어져 있다(마르 3,13-19 ; 6,7-13 ; 루가 6,12-16 ; 9,1-6).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악령들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모두 고쳐주게 하셨다.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다... 예수께서 이 열두 사람을 파견하시면서 이렇게 분부하셨다. ‘이방인들이 사는 곳으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 사람들의 도시에도 들어가지 말라. 다만 이스라엘 백성 중의 길 잃은 양들을 찾아가라. 가서 하늘 나라가 다가왔다고 선포하여라. 앓는 사람은 고쳐주고 죽은 사람은 살려주어라. 나병환자는 깨끗이 낫게 해주고 마귀는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10,1-8).

 5-6절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께서는 당신 사도들의 전교사명을 다만 “이스라엘 백성 중의 길 잃은 양들”에 제한하고 계시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께서 지상생활을 하시는 동안 처음으로 행하신 ‘파견’의 모습을 접하고 있다 : 그 복음선포가 명백히 보편적으로 펼쳐지는 것은 주님의 부활 후에야 실현된다(28,19 참조). 그러므로 이 이야기의 역사성은 분명하다. 즉 주님의 부활 이전의 사실이다.

 고찰해야 할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은 사도들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구원의 선포 그 자체를 반복하고 있고(“가서 하늘 나라가 다가왔다고 선포하여라”:7절 ; 4,17절 참조), 또 구원적 행위 그자체를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다(“앓는 사람은 고쳐주고 죽은 사람은 살려주어라. 나병환자는 깨끗이 낫게 해주고...” : 8절). 이것은 예수의 활동과, 여기서 열두 사도들-열둘이라는 숫자는 성조들이 이루고 살던 옛 이스라엘이 사도들과 그들의 활동을 통해 이어지고 있음을 뜻한다-에 의해 대표되고 있고 또 어떤 의미에서는 ‘예시되고’ 있는 교회의 활동이 서로 단절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예수께서는 복음선포를 구원의 구체적인 활동과 밀접히 결합시키고 계시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이와 같은 사실은 “오직 말과 행동의 일치에서만 하느님의 나라가 드러난다”(J. Jeremias)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하겠다. 사도로서의 역할이 매우 어렵고, 그래서 많은 삶들이 겁을 집어먹고 뒷걸음질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달라고 청해야 한다”(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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