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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전례
작성자 가시미로
작성일 2002년 3월 17일 (일)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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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issa.or.kr/cafe/?logos.78.
“ 사순제5주일 ”
오늘의 독서와 복음은 부활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신앙인에게 있어서 부활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요? 인간의 생명이 다한 후에 기적처럼 다시 눈을 떠서 살아나는 영화와 같은 장면이 일어난다는 것일까요? 오늘의 독서와 복음에서는 부활의 의미를 새롭게 제시하여 주고 있습니다.

제1독서에서는 부활의 의미를 과거 고통의 순간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명의 삶을 시작하는 것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에제키엘 예언자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나 이제 무덤을 열고 내 백성이었던 너희를 그 무덤에서 끌어올려 이스라엘 고국 땅으로 데려가리라.  조국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이민족으로부터 유배와 억압이라는 암흑의 순간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죽음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죽음의 생활이란 외부적인 박해와 억압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현존으로 여겨졌던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었고 이방민족으로 유배를 당하면서 자신들의 하느님을 예배하지 못하였던 현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그릇된 행실로 말미암아 하느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그들에게는 죽음을 의미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은 그곳에 머물지 않고 이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나의 기운을 불어 넣어 살려 내어 너희로 하여금 고국에 가서 살게 하리라.  바로 하느님의 잃어버렸던 사랑을 되찾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부활이었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새로운 생명은 바로 하느님의 기운을 받아, 다시 말하면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게 됨으로서 하느님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1독서가 우리의 외적인 생명 면에서 부활의 의미를 설명해 주었다고 한다면 제2독서는 내적인 생명 안에서의 부활의 의미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두 종류의 인간상을 제시합니다. 육체를 따라 사는 인간과 성령을 따라 사는 인간이 바로 그것입니다. 육체를 따라 사는 인간이라고 한다면 그는 세상이 주는 편리함과 세상이 주는 지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아마도 이러한 사람은 세상을 아주 합리적이고 실리적으로 살아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이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삶의 중심에는 언제나 자기 자신이 그 중심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세상의 눈으로 보면 어리석어 보이고 고지식해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람이야 말로 참된 진리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람은 바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진정한 생명을 지니며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너무나 자주 죄에 넘어지고 쓰러집니다. 그때마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살아간다면 그 삶은 죽음의 삶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진리이신 성령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은 비록 자신이 죄에 쓰러진다 할지라도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은총을 힘입어 다시금 하느님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을 받아 진정한 삶의 기쁨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활이야말로 부활의 생활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나 무엇보다도 부활의 참된 의미를 보여주신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의 복음은 라자로의 부활사건을 바탕으로 하여 장차 당신이 겪으실 죽음의 고통과 더불어 부활의 영광까지도 그 예표로서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마리아와 마르타는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오빠인 자라로의 위급함을 전합니다.  주님,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가 앓고 있습니다.  이 말 안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걸으셔야 했던 죽음의 고통, 아들의 고통을 바라보시던 성모님의 마음을 잠시 바라봅니다. 당신이 그토록 사랑하시던 사람들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마셔야 했던 죽음의 잔 앞에 얼마나 많이 괴로워하셨을까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전갈을 받으시고 하신 대답 안에서 당신의 받으셔야할 고통의 의미를 올바로 찾으셨고 또 왜 당신이 그러한 고통을 받으셔야 하는지를 일깨워 주십니다.  그 병은 죽을 병이 아니다. 그것으로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느님의 아들도 영광을 받게 될 것이다.  당신이 왜 죽음의 잔을 받아마셔야 했는지,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었습니다. 당신 아들의 죽음을 통하여 그리고 그 부활로 말미암아 세상의 죽음 조차도 누를 수 없는 큰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 보이실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낮은 열두 시간이나 되지 않느냐? 낮에 걸어다니는 사람은 세상의 빛을 보기 때문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밤에 걸어다니면 빛이 없기 때문에 걸려 넘어질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며 당신의 죽음의 때, 세상 사람들의 손에 당신의 아들이 온갖 모욕과 수난을 받으셔야 할 때, 당신의 영광이 밝히 드러날 때가 이르러야함을 말씀하십니다. 아울러 부활의 영광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죽음의 고통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함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부활의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믿음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러하기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묻고 계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음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형제 자매, 여러분은 이것을 믿고 계십니까? 설령 지금 당장은  믿습니다  라고 쉽게 답을 할 수 있을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렇게 결코 만만하지만은 않은 현실이 놓여 있음을 봅니다. 복음은 라자로의 무덤이 동굴로 되어있고 입구는 돌로 막혀 있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무덤은 죽음의 장소이면서 아울러 부활의 영광이 드러날 장소입니다. 하지만 그 입구가 돌로 막혀 있다는 것은 죽음에서 부활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건너야만 될 무거운 장애물, 이겨내기 힘든 장애물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돌을 비켜내야만이 죽음의 무덤에서 부활의 무덤으로 바뀌어 질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도 많은 돌들, 무거운 돌들이 놓여 있습니다. 우리 자신 스스로가 그 돌을 치워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부활을 오늘의 삶 안에서 체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캄캄한 동굴 안에 갇혀 영원한 죽음의 삶만을 살아야만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지금 죽어 있기 때문에 부활을 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 스스로가 그 돌을 밀어 버리고 밖으로 나올때 우리는 부활의 영광 안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는 기쁨의 순간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예수님께서는  라자로야, 나오너라. 하고 부르시듯이 우리를 끊임없이 부르며 재촉하고 계십니다. 어서 빨리 그 돌을 치워버리고 나오라고 말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부활은 새로운 삶을 의미합니다. 새로운 삶이란 이전의 삶과는 다르다는 것을 뜻합니다. 과거의 삶, 이전의 삶에서 죽고 새로운 삶, 생명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부활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부활은 내세의 삶, 꿈같은 삶만이 아니라 오늘의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들 모두가 지금 이 자리에서 살아야되는 현실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본다면 이 사순시기동안에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가 분명해 졌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부활을 준비하듯이 나의 부활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는 일인 것입니다. 이제 잠시 묵상하시면서 오늘 나는 어떻게 부활을 준비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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