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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전례
작성자 농민주일 강론 모음
작성일 2008년 7월 17일 (목) 16:16
분 류 행사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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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농민주일 강론 모음 ”
 

도시와 농촌이 만나야 우리가 산다

한상화(본지 기자)



대형 할인매장이나 시장에서 장을 보고자 물건들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국내산을 찾는 일이 어렵게 느껴진다. 수입 농산물이 우리 시장에서 안방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마음 놓고 먹을거리를 구입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큰 행운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행운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교회에 있다. 바로 도시 본당과 농촌 본당이 자매결연을 맺어, 농촌 본당에서 수확한 농산물을 도시 본당에서 이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를 통해 농촌 본당에서는 일정한 수요자를 확보할 수 있으며, 도시 본당에서는 안심하고 먹을거리를 살 수 있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도시 본당과 농촌 본당이 먹을거리를 통해 사랑을 나눌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가 발전될수록, 몸은 떨어져 있지만 하느님의 자녀로서 함께 형제애를 나누며 더욱 돈독한 친교를 이루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자매결연을 맺은 농가에서는 대부분 유기농법을 통하여 농산물을 생산해 내므로 하느님의 창조작품인 이 땅을 살리는 데에도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한편, 이러한 자매결연은 서울을 비롯한 도시 본당과 지방 교구 농촌본당에서도 가능하지만, 같은 교구 안에서도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다. 교구 차원에서 도시 본당과 시골 본당을 엮어주는 중매자 역할을 해준다면, 이러한 관계는 더더욱 발전될 수 있으며, 교구의 발전도 가져올 것이다.



여기에서는 먼저 우리 교회에서 안전한 먹을거리를 얻을 수 있는 방법으로 본당 안에 우리농 매장을 만드는 법과 도농 교류 프로그램을 알아본다. 그리고 이미 자매결연을 맺고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 서울대교구 목동본당과 안동교구 쌍호 분회(우리농 생산지)의 활동, 아울러 마산교구 안에서 자매결연을 맺고 활동하는 진주시 신안동본당과 가조공소의 예를 소개한다.



1. 본당에서 농촌 만나기

본당마다 상설 우리농 매장을 만들면 좋겠지만, 본당 상황에 따라 주일에만 운영하는 임시 매장으로 시작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먼저 각 교구마다 이미 설치되어 있는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이하 ‘우리농본부’로 표기)에 연락하여 안내를 받는 것이 좋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1994년 춘계 정기총회에서 우리농촌살리기운동 추진을 결의하였고, 또한 1995년 추계 정기총회에서는 7월 셋째 주일을 농민주일로 설정하여 이 운동을 책임있게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1994년 6월 29일에 우리농 전국본부가 창립되었으며, 곧이어 서울, 부산, 수원, 대전 등 4개 지역에서도 우리농본부를 설립하였다. 원주교구, 의정부교구, 춘천교구에는 우리농본부가 설립되지 못했는데, 이 가운데 원주교구, 춘천교구에서는 가톨릭 농민회에서 우리농본부의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가톨릭 농민회에 도움을 청할 수 있다. 의정부교구는 당분간 서울대교구 우리농본부에 문의하면 되겠다.



우리농 매장을 기초부터 탄탄하게 시작하려면, 신자들의 의식을 일깨우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또한 본당 기구의 하나로 자리 잡는 것이 활동을 꾸준히 지속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여기에서는 서울대교구 우리농본부에서 제시하는 우리농 매장 만들기 6단계를 소개한다.






1) 우리농 매장 만들기 6단계

1단계: 사목회 안에 도농협력분과(또는 생명분과) 구성하기

본당 사제의 추천을 받아 우리농 운동에 관심있는 사람을 교구에서 주최하는 활성가 양성교육에 참여시키고, 수료생을 중심으로 본당 사목회 안에 도농협력분과위원회 또는 우리농 단체를 구성하고 회의를 정례화한다.






2단계: 모든 신자를 대상으로 의식을 전환할 수 있는 교육 마련하기

도농협력분과위원회 또는 우리농 단체는 본당 사제와 협의하여 우리농 운동의 올바른 이해와 실천을 위한 기초교육으로 본당의 모든 신자를 대상으로 교육을 준비한다. 주일미사 강론, 사순·대림 특강, 본당 단위 녹색학교, 구역반장단교육 등을 단계적으로 마련한다. 우리농본부에 요청하면 직접 본당을 방문하여 교육을 해주기도 한다.






3단계: 물품 나누기

도농협력분과위원회 또는 우리농 단체는 본당 사제와 협의하여 주말장터부터 시도한다. 본당에서 해당 교구 우리농본부에 물건을 주문하면, 본부에서는 생산지 본부에 연락하여 똑같이 물건을 주문한다. 생산지에서는 필요한 만큼 포장하여 유통하는데, 주로 차량을 이용하여 직접 물건을 배달한다. 농산물의 신선도를 지킬 수 있으며, 비용이 가장 적게 드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본당에서는 농산물 취급 요령을 습득하고, 모든 신자를 운동에 동참시키며, 나아가 가능한 공간에 상설 직매장을 마련한다. 그렇게 되면 지역사회에 선교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서울에는 약 30개 본당에 우리농 매장이 설치되어 있으며, 마산, 부산, 광주, 수원에도 20여 개 본당에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본당에서는 주로 주말에 집중해서 매매가 되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배달이 되지만, 상설매장에는 일주일에 2-3번 정도 물건이 배달된다.






4단계: 자매결연 맺기와 인적 교류 하기

물적 교류와 아울러 산지 방문이나 일손 돕기, 녹색체험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농민 공동체와 자매결연을 맺고 인간적 만남과 나눔의 기회를 늘려 상호이해와 신뢰가 쌓일 수 있도록 한다. 농촌 생산자와 도시 소비자가 서로 정다운 얼굴을 떠올리며 정성을 다해 생산하고, 감사히 먹으며 생태적 삶에 다가가는 것이 중요하다. 자매결연을 맺게 되면, 생산지에서 나는 주산물에 한하여 우리농본부를 거치지 않고 직거래할 수도 있다.



5단계: 반모임이나 소공동체를 통해 구체적 실천 나누기

소비자 공동체의 뿌리인 반모임이나 소공동체를 통해 우리농 운동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모임 부교재로 『우리농 길잡이』(가톨릭 농민회 발행 자료)를 활용한다. 그리하여 복음화 7단계 가운데 6단계인 실천과제를 좀 더 구체적이고 풍부하게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한다. 그렇게 할 때 일용할 양식을 매개로 하여 구체적인 생활 속에서 살아 숨쉬는 복음화된 소공동체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6단계: 활동조직 튼튼히 다지기

끊임없이 적합하고 정확한 과제를 설정하여 작고 쉬운 일부터 추진해 나간다. 그러나 일을 추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로 보고 싶은 관계를 만드는 것이 우선되어야 즐겁고 기쁘게 꾸준히 일할 수 있다.




2) 우리농 생산지와 생산품

현재 우리농 전국본부에서 확보하고 있는 생산지는 마산교구 18개, 안동교구와 청주교구 각 15개, 수원교구 10개를 비롯하여 약 100개 분회이며, 공소를 중심으로 가톨릭 농민회에서 기본 조직을 구성하고 있다. 우리농 생산품으로는 약 400여 개를 취급하는데, 가톨릭 농민회 공동체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우선적으로 선정하고 있으며, 무농약 농산물은 되도록 화학비료 사용을 줄이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리고 발아제, 발아억제제, 성장촉진제 등 호르몬제를 사용하는 농산물은 취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농약을 전혀 쓰지 않고 농사를 하게 되면, 노동력은 더 많고 농약을 썼을 때보다 30%의 생산량이 줄기 때문에 농민 입장에서는 선뜻 무농약 생산만 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유기농 또는 무농약 생산물을 고집한다면, 농민들도 유기농법을 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창조질서에 순응하는 유기농법을 이루어내는 일은 소비자에게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농에서 유통하는 생산물에 대한 검사는 토질검사에서부터 친환경 법규에 따를 뿐만 아니라 회원 인증절차에서 의무나 기준을 정하고 있으며, 물건에 대한 보증은 소비자 교구 본부와 생산지 교구 본부, 가톨릭 농민회에서 공동으로 한다.






3) 도농 교류 프로그램

가톨릭 농민회에서는 본당에서 함께할 수 있는 도농 교류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는데, 다음에 열 가지를 소개한다. 각 교구 우리농본부에 문의하면 이러한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





① 풍년 기원제와 오리 넣기: 오리를 논에 풀어놓으면 오리가 잡초의 성장을 억제하고 벌레를 잡아먹고 오리의 분뇨가 거름이 되는 등의 효과가 있다.

② 폐비닐, 빈 농약병 수거 행사

③ 나물 뜯기

④ 메뚜기 잡기와 지고추 따기: 도시 청소년과 어린이들이 함께하여 생명과 농업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농촌과 농민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다.

⑤ 사과 수확 돕기: 생명농업을 실천하는 과수농가의 일손을 돕는다.

⑥ 여름 가족 농촌학교: 가족 단위로 참여하여 직접 농사일을 체험하며 땅과 먹을거리의 소중함을 재인식할 수 있다.

⑦ 도농 교류 연수(견학): 생명농업을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생산지 현장을 방문하여 물질과 소비 중심의 생활양식을 반성하고, 도시의 소비자와 농촌의 생산자가 함께하는 시간을 갖는다.

⑧ 청소년 농촌체험 캠프: 도시지역 초·중·고생들이 인근의 생태계와 자연, 사적 등을 돌아봄으로써 농촌을 이해하고 농업의 소중함을 느낀다.

⑨ 청년 생태농촌 봉사활동: 생명농업을 실천하고 있거나 준비 중인 우리농 마을에 도시의 청년과 학생들이 방문하여 봉사활동을 한다.

⑩ 추수감사제: 농민의 수고에 감사하고, 생산물을 국민들에게 알린다.









2. 도농 본당 자매결연 맺기

1) 서울대교구 목동본당과 안동교구 쌍호 분회(안계본당 소속)

쌍호 분회는 공소의 역사가 120여 년이 된, 초대교회의 공동체성이 살아있는 신앙 공동체이다. 1997년에 쌍호 가톨릭 농민회가 목동본당에 고춧가루를 직거래한 것이 인연이 되었으며, 1998년에는 김장 채소와 메주, 된장, 참기름 등의 생산품을 교류하였고, 1999년 5월에 목동 신자들이 쌍호 생산지를 방문하면서 본격적으로 자매결연을 맺게 되었다.





쌀, 참기름과 들기름, 배추, 총각무, 고춧가루, 마늘, 양파, 파, 사과 등을 주로 교류하는데, 물적 교류뿐만 아니라 인적 교류가 무척 활발한 편이다. 농민주일이면 쌍호 분회 회장이 서울 목동까지 올라가 강의를 해주고, 10월에 첫 수확한 것 가운데 쌀 2가마를 목동본당에 보내면 본당에서는 떡을 해서 나누어 먹기도 한다. 또한 중고등학생들도 함께 쌍호에 내려가 우렁이 넣기 행사(우렁이가 논을 다니면서 잡풀들을 뜯어먹는다.)에 참여하고, 먹을거리를 나누는 잔치도 한다. 2002년에는 쌍호에 비 피해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목동 신자들이 안부 전화를 해줄 뿐만 아니라 수해 복구 기금을 마련하고, 쌍호에 내려가 복구 작업을 도와주기도 하였다. 또한 쌍호에서는 목동 신자들이 내려가면 언제든지 잠자리를 제공해 줄 뿐만 아니라 주일학교 캠프 장소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한편, 목동본당의 지원과 회원들의 공동 출자금을 이용하여 자급 퇴비를 장만하고자 공동 퇴비장을 설치했으며, 800평의 농지도 마련하였다. 우렁이를 자체에서 키울 수 있도록 사육장도 마련하였다.





목동본당에서 물건을 주문하면 차로 직접 배달해 주므로 유통 과정이 없고, 매장의 운영도 자원봉사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비용이 저렴하다. 싱싱한 농산물을 값싸게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목동본당 신자인 아녜스 자매는 이렇게 말한다. “쌍호에서 오는 물건이 보기에 좋거나 크지는 않지만 어릴 때 먹었던 맛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아요. 생산지에 직접 다녀오고 나니 음식을 먹으면서도 믿음이 생기고, 같은 신앙을 가진 신자가 재배한 물건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고요. 제가 우리 농촌을 살리는 길에 함께한다는 생각에 뿌듯하더군요.”





이 밖에 의정부교구 일산본당과 안동교구 봉강 분회, 그리고 서울대교구 양천본당과 안동교구 월소 분회도 자매결연을 맺었는데, 이들은 손모내기, 풍년기원제나 농민주일 행사를 함께하고 있다.






2) 마산교구 진주시 신안동본당과 가조공소(거창본당 소속)

4년 전 공소 건립 비용을 마련하고자 가조공소 신자들이 몇몇 도시 본당에 가서 농산물을 팔기도 했지만, 신안동본당과 가조공소가 본격적으로 자매결연을 맺게 된 것은 2003년도였다. 마산교구에서는 2003년도를 “농어촌 선교의 해”로 정하고 도시 본당과 농촌 본당을 서로 짝지어주었는데, 그때 신안동본당과 가조공소가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가조공소에서는 쌀, 고추, 감자, 고구마, 과일 등을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부엽토만을 사용하여 유기농법으로 재배하고 있으며, 가을에는 들기름과 참기름도 판매할 예정이다.





처음 자매결연을 맺고 나서 신안동본당 성가대원은 매주 가조공소에 찾아가 미사 때 성가를 불러주기도 하고, 성서 담당 교사들도 찾아가서 성서공부를 지도해 주기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가조공소에는 노인이 많아 신안동본당 신자들이 몰려가서 노인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앞으로는 신안동본당 신자들이 한 달에 두 번씩 25명 정도의 규모로 공소를 방문하여 농장일도 도울 예정이다.



최근에는 밭 500평을 마련하여 신안동본당과 가조공소가 함께하는 체험농장을 만들어 고추씨를 뿌리고 배나무 240수를 심었다. 이 농장에서 신안동본당 신자들은 농사일을 체험하면서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고 농민의 어려운 점도 알게 될 것이다. 가조공소에서는 신안동본당 신자 모두를 초대해 미사를 함께하고 농산물을 소개하며 직접 구입할 수 있는 행사도 계획하고 있다.





가조공소의 회장을 맡고 있는 이 마르티노 씨는 말한다. “저희가 신안동본당 신자 분들께 좋은 대접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희도 농사 잘 지어서 보답해야지요. 함께하는 이웃이 있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져서 든든합니다. 앞으로 신안동본당과 가조공소가 자매처럼 잘 지낼 수 있으리라 봅니다.”







3. 제안과 결론

현재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은 25%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세 끼 식사 중 한 끼도 우리가 생산한 식량으로 충당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따라서 좋은 먹을거리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농업을 육성하고 유기농업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이러한 취지에서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최기산 주교는 각 본당에서 도농 자매결연을 맺어 건강한 먹을거리 유통에 적극 나서줄 것을 권고하고 있다(2005년 6월 5일 환경의 날 담화 참조).





그러려면 우리농본부에서는 좀 더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더 많은 본당에서 유기농 매장을 활용하고, 자매결연을 맺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또한 마산교구의 예처럼 교구에서 중매역할을 하여 교구 안에 있는 본당끼리 자매결연을 맺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도농 본당 간에 자매결연을 맺어 관계를 이끌어갈 때에는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거나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닌 서로 돕는다는 의식으로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람은 음식을 먹지 않고 살 수 없듯이 하느님의 자녀들인 우리는 사랑을 나누고 실천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다. 그런데 먹을거리를 통해서도 우리는 이웃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가정에서 소공동체, 본당에서 교구, 교구에서 교구로 연결되는 네트워크가 가장 발달한 우리 교회가 이루어낼 수 있는 강점 가운데 하나가 서로간의 교류일 것이다. 더 많은 본당에서 자매결연을 맺고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할 때, 우리는 하느님 보시기에 맞갖은 자녀로서 좀 더 성숙할 수 있을 것이다.

[사목, 2005년 7월호, 주교회의 홈페이지]







연중 15 주일 ( 나해 )



        아모스 7,12-15      에페소 1,3-14      마르코 6,7-13

   2000. 7. 16.

주제 : 하느님 앞에서 사람이 보이는 어리석은 행동



무더운 여름입니다. 장마가 오락가락하는 만큼 우리의 마음도 쉽게 변할 수 있는 계절입니다. 이런 때 어떻게 살아야 삶에서 좋은 결과를 맺을 수 있겠는지 옳은 실천이 필요한 때입니다.



내 밥 먹고 살아가는 우리가 듣기 싫은 소리 가운데, '식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그 어느 것보다도 고귀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하찮은 벌레라고 했으니 좋지 않은 것이고, 그 벌레라는 대상이 바로 '자신'을 가리킬 때에는 더 많이 실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람을 가리켜 그렇게 부르는 말이 옳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땅위와 땅 아래에 있는 것을 무지막지(無知莫知)하게 이용하면서 막상 이 세상을 떠날 때에는 다른 생명체에 도움되는 이렇다할 만한 것을 남겨주는 것도 아니고 아주 가끔씩은 삶을 통해서 우리의 인상을 찡그리게 하는 모습을 남기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어떤 소리를 들으며 살아도 그것은 개인이 유지해온 삶의 결실이지만, 그렇게 자신만 만족하고 사는 모습을 보고 슬퍼하는 하느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허락 없이 그저 홀로 태어난 것도 아니고,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리는 행복이나 삶의 평안함도 저절로 굴러 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뒷면에는 우리가 어떤 방법으로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고 새롭게 가꾸는지 걱정하시는 분, 하느님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반은 사랑으로 반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시는 하느님의 모습이 복음에 나옵니다. 제자들을 선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수님은 제자들이 과연 홀로 설 수 있는지 시험하는 무대를 마련합니다. 세상을 삭막하게 하는 '악령'을 제압할 수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주고, 제자들이 가져야 할 물질의 최소한의 조건을 채운다음 파견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조건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본적인 조건을 채워주는 것은 좋은데, 예수님이 허락하신 것은 '지팡이 한가지 뿐'이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것은 '일하는 사람'이라면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에는 광야가 많습니다.  그곳을 통과할 때 뱀이나 전갈에 대한 위험에서 보호할 수 있는 기능은 바로 이 지팡이가 맡은 것입니다. 그런 보장을 받고 떠난 제자들의 마음은 몰라도, 예수님 앞을 떠났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의 삶은 그렇게 이루어집니다. 처음에는 무시할 수 있는 작은 것들이 모여서 엄청난 것을 이루고 결국에는 우리가 함부로 대하지 못할 커다란 힘이 되어 우리에게 결과로 되돌아옵니다. 비가 오기 시작할 때 산에서 출발한 빗물과 비교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00년 7월을 지내는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도 초창기 제자들을 처음 보내실 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먼저 자신의 발 아래를 살펴보고, 걸음을 내디뎌야 아무런 문제도 만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에 논두렁 사이를 뛰어다니다가 묵은 물이 고여있는 것을 보고 돌인 줄 디뎠다가 신발을 잃어버린 일도 있습니다.  사람이 눈으로 쉽게 보고 빨리 판단했기에 생기는 오류이지만, 그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훨씬 더 많은 세월이 지난 후의 일입니다.






그런 일이 우리 삶에 반복되지 않게 하려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어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돌이켜볼 것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도 사람의 욕심이 앞서면 제대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첫 번째 독서에 나오는 예언자 '아마지야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을 자신의 위상을 세우고 밥 벌어먹는 수단으로 생각했던 아마지야에게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던 예언자 아모스의 등장은 부담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도 안되게 큰소리칩니다. '네가 활동하는 곳 베델은 네가 전하는 하느님보다 더 높은 왕의 성소요, 왕실 성전'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언제부터 인간제도인 왕(王)이 하느님보다 더 놓은 위치에 올라갔는지 의아하게 생각할 일입니다. 그때부터 3천년 가까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 말을 여전히 힘을 발휘합니다.






큰소리치는 사람은 뭔가 확실하지 않은 것에 자신의 모든 것을 붙잡아매고 버티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파견을 받은 사도의 말에서, 농부요 목동이었던 아모스가 북쪽 왕국 이스라엘에서 선포하는 말에는 큰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사람 사회를 분열시키고 갈라놓아서 이득을 볼 수 있는 힘은 누구이겠습니까?  그런 어부지리를 취하는 사람은 아마도 정상적인 삶의 자세를 갖지는 않은 사람일 것입니다.






오늘은 농민주일입니다.

오늘 하루만 농민들을 생각하는 날은 아닙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물이 없어 쩔쩔매던 사람이 간밤에 내린 비 때문에 이제는 양수기로 물을 퍼내야 하는 걱정과 고민을 겹쳐서 하는 사람들이 농민입니다. 요즘에는 하늘이 노력하는 사람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말을 할만한 세상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 탓은 없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만들어놓은 일들의 결과에 따라 발생하는 일들입니다.






내가 만들어내지 않은 일에도 영향을 받는 것이 세상살이이지만, 아무런 보상없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알려주신 예수님의 선물을 받는 사람으로서 행동할 일은 정해두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하는 좋은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기억을 남겨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기억을 남겨줄 수 있는 자세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이수철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7.7.15 연중 제15주일(농민주일)                           

신명30,10-14 콜로1,15-20 루카10,25-27

"좋은 이웃이 되는 길"



주님 향한 열렬한 사랑은 찬미로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주님을 찬미하라.”



우렁찬 주님 찬미 기도로

오늘 주님의 날을 시작한 여기 수도자들입니다.



어제 미사 강론 중 함께 웃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죽음에 대한 묵상으로 강론을 시작하다가,

“아마 50년 후에 이중에 남아 있을 사람은

  엘리야 수사님 한 분 뿐이 없을 것입니다.”

라는 대목에 모두들 웃었습니다.



긴 인생 같은 데 50년도 금방이요,

여기 계신 대부분의 형제자매들도

50년 후에는 거의 뵙기 힘들 것입니다.


제가 이야기 해놓고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살아 온 날들보다 살날이 훨씬 짧습니다.

20-30년 남았다고 봐야 하는 데

지금까지 흘러온 20-30년 생각하면 남은 20-30년은 금방입니다.



죽음 있어 비로소 삶이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짧기에  더욱 소중하고 아름다운 선물 인생입니다.



율법 교사가 아니더라도

우리 또한 스승 예수님께 저절로 묻게 됩니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사부들을 찾은 사막 수도자들의 절박한 물음이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아름답게,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 수 있겠느냐는 삶의 근본을 묻는 질문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우리 존재의 뿌리인 주 우리 하느님께 돌아오는 겁니다.

그리고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 계명은 우리에게 힘든 것도 아니고 멀리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사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아주 가까이 있습니다.


우리의 입과 마음에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그 말씀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머리 좋은 것보다는 마음 좋은 게 낫고,

마음 좋은 것보다는 손, 발 좋은 게 낫다합니다.


그러나 머리와 마음 사이, 마음과 손, 발 사이 거리는 얼마나 먼지요!


실천의 중요성과 어려움을 말하는 겁니다.



과연 이 가까이 있는,

우리의 영원한 생명과 행복이 달린 이 계명은 무엇일까요?



오늘 복음이 그 답을 줍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주 우리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 역시 율법학자의 이 대답에 흡족해 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살 것이다.”



살아있다 하여 다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농도에 따른 삶의 질, 존재의 질입니다.


사랑할수록 충만한 존재의 삶이요,

사랑 식을수록 희미한 존재입니다.


살아있다 해도 다 똑 같은 삶이,

똑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과연 나는 몇 %의 존재를, 삶을 살고 있는지요?



사랑은 표현을 찾습니다.

실제 그 표현을 보고 사랑을 실감합니다.


누구나 지닌 사랑이요 표현의 본능입니다.


하느님 사랑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는 기도로,

노동으로,

성독으로,

묵상으로,

이웃 사랑으로,

환대로,

자선 행위로 표현됩니다.


이런 열매들로 하느님 사랑의 진위를 확인하면 틀림없습니다.


하여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분리된 것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하느님 사랑은 저절로 이웃사랑으로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사제와 레위의 하느님 사랑,

반쪽이었음이 들어납니다.



반면 일개 평범한 사마리아인 온전한 하느님 사랑에,

참 인간이었음이 드러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측은지심, 연민의 사랑입니다.


여행 중인 사마리아인,

강도 만나 초주검이 된 이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어 즉시 구제활동을 시작합니다.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새삼 분별의 잣대는 율법이 아니라 지금 여기 살아있는 현실이요,

연민의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 모두를,

특히 종교인들을 비춰주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핑계, 변명하기로 하면 끝이 없습니다.


법대로 하는 것만큼 편한 것도 없지만

그만큼 무책임한 것도 없습니다.


법이, 율법이 잣대가 아니라

살아있는 현실을 직시하는 예수님의 측은지심이

그 잣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연 사마리아인 같은 이들,

전체 신자들 중 몇 퍼센트나 될 런지요?



율법학자의 질문에 가득 담긴 자기중심적 이기심입니다.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이런 눈으론 이웃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진정 하느님을 사랑하여 마음의 눈 열린 자라면 이런 질문 안합니다.


마음의 눈, 멀기로 하면 오늘 사제나 레위와 똑같습니다.


사제나 레위, 초주검이 된 사람은 봤지만

죽어가는 이웃은 보지 못했습니다.


연민의 눈을 지닌 사마리아인만이 이웃을 봤습니다.



이 질문에 주님은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신 뒤,

누가 나의 이웃이냐 묻지 말고,

네가 어려움 중에 있는 이들에게 이웃이 되어주라 하십니다.


내 중심이 아닌 이웃 중심으로 180도 발상의 전환입니다.


진정 하느님을 사랑하여 마음의 눈 활짝 열리면

지금 여기 도처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이웃들을 발견합니다.



이웃 개념의 확장이 필요합니다.


사람 이웃에서 자연 만물 이웃에로의 확대입니다.


무분별한 개발과 외적 성장 추구에 따른

공해와 오염으로 죽어가는 자연들,

이런 추세라면 인간종족도 머지 안아 함께 공멸입니다.


자연을 나와 너의 이웃이 아닌 그것으로

마구 함부로 대했기에 자초한 화입니다.



바로 이런 생각을

저는 바오로의 콜로새서 2독서 말씀에서 착안했습니다.



세상 모든 만물들 무의미한 존재들이 아닙니다.

만물들이 그분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또 그리스도를 향하여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그리스도 그분 안에

온갖 충만함이 머무르게 하셨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


매일 미사 거행을 통해 실현되는 진리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세상 만물들이 그리스도 안에 수렴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주 만물 역사의 의미입니다.


이 그리스도 없으면 모두가 허무의 블랙홀에 빠집니다.


만물은 그리스도 안에서 존속하며

진정한 평화도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공존 공생하는

이웃 형제들이라는 자각이 참으로 절실한 시대요,

아씨시의 프란치스꼬 영성이 절박하게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영예롭게도 그리스도의 역할을 수행하는 우리 교회입니다.



그리스도 그분은 당신 몸인 교회의 머리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통해서

사람은 물론 모든 만물이 우리 모두의 이웃 형제들이 됩니다.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말씀과 성체의 사랑으로

우리를 충만케 하시어

어려움 중에 있는 모두에게 좋은 이웃으로 파견하시며 말씀하십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아멘.











           농사는 천하의 근본! (농민주일)

  십자가를 안테나로!



  이제 얼마 후면 금년 장마가 끝나리라는 일기예보입니다. 최근 우리나라는 장마후에도 태풍이나 게릴라성 국지적인 폭우로 많은 재해를 입기도 합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농자지 천하대본’(농사는 천하의 근본)이란 깃발과 표어를 자주 보았고, 또 이야기 화제도 ‘농사짓기 좋은 날씨다, 아니다’ 등이었는데 요즘은 ‘땅투기가 천하의 근본’, ‘골프치기에 좋은 날씨다, 아니다’ 가 화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비오는 날 골프를 치다가 날벼락을 맞아 죽는 부자들이 있는가 하면, 극심한 돈가뭄으로 농사를 지어봤자 빚만 늘어난다고 모내기한 논을 뒤집어 업고, 차라리 ‘농약을 먹고 죽고 싶다’는 농부들도 이 작은 한국땅에 동시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오늘 저녁 뉴스에는 우리나라의 1%도 안되는 땅부자들이 남한 땅의 절반을 소유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통계를 보도했습니다. 이런 빈부차는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있어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노동자 즉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자란 나자렛의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마태 13, 24- 43)에서 놀랍게도 자신의 비전공(?)인 농사, 제빵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즉 ‘좋은 씨와 가라지의 비유’,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등을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요즘 폭발적인 관심과 인기를 누리는 텔레비젼 드라마의 삼순이라면 모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니, 목수의 아들이 베테랑 어부들에게 ‘깊은 데 그물을 던져라’고 하더니, 이젠 농사를 대대로 짓고 있는 우리들에게 감히 농사에 대해 운운하네...건방지게 말일세...”하고 투덜거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농사에 대해 말씀하신 것은 ‘농사는 천하의 근본이라는 것’과 ‘지상의 농사뿐만 아니라 영혼의 농사도 잘 지으라는 뜻으로 말씀하셨다는 것’을 들을 귀가 있는 사람들과 지혜로운 사람들은 잘 알아들었다고 생각됩니다. 다음의 성서 구절처럼 말입니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리듯이 지혜를 가꾸어라. 그리고 끈기를 가지고 지혜의 좋은 열매를 기다려라. 지혜를 가꾸노라면 얼마 동안은 고생하겠지만 멀지 않아 그 열매를 맛보게 되리라.”(집회 6, 19)



  “이제 내가 평화를 심어주리니, 포도나무는 열매를 맺고 하늘은 비를 내리며 땅은 소출을 내리라. 그리하여 살아남은 내 백성으로 하여금 이 모든 것을 받아 누리게 하리라.”(즈가 8, 12)









  참고로 오상선신부님의 농민주일 강론과 영화 ‘분노의 포도’를 소개합니다. 가브리엘통신







                                   <영혼의 농사>





  농민주일인데 엄청 비가 많이 쏟아졌다. 비 피해가 적어야 할 텐데...



  벌써 오래 전 일이지만 신학생 때 여름에 농촌체험을 나간 적이 있다. 전남 함평군 어느 시골 공소회장님 댁에 머물면서 논과 밭, 특히 양파 작업 등을 도운 적이 있었다. 나도 농촌 출신이지만 허약한(?) 몸 때문에 집에서도 거의 일을 안 해본지라 호기심과 즐거운 마음으로 체험에 임했었다. 무엇보다도 처음으로 가보는 전라도 땅에 대한 미지의 신선함을 기대하였었다. 그러나 나의 그런 기대와는 달리 그 체험은 나에게 여러 가지로 힘들게 다가왔다.



  전라도 음식이 유명하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 알았기에 덕분에 맛있는 음식도 맛보겠구나 생각했었는데 실제로 식사다운 식사는 한 번도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바쁜 농사철에 시장나갈 시간도 없었기 때문에 반찬을 자매님이 장만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농촌에 시집오려는 아가씨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낭만적인 농촌을 왜 싫어할까?하는 그 이유도 알만했다. 청소할 시간이 없어서 방이고 집이고 늘 버적버적 거리고 모기, 파리, 날파리 등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도 그 집을 치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논과 밭의 곡식과 작물들 때문에 아무리 귀한 손님도 손님 대접을 받을 수 없었고 집구석도 깨끗할 날이 없었다. 밥을 잘 차려 먹는 것도 사치일 뿐이었다.



  이곳에서 크게 깨달은 점이 있다면 농사는 토양과 환경만 좋으면 저절로 되는 줄 알았었는데 그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공소회장님 이하 모든 식구들은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세수도 하지 않고 가장 먼저 하시는 일이 논, 밭에 나가보는 일이다. 이놈들이 밤새 안녕한지? 그게 가장 궁금하고 유일한 관심사일 뿐이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우리가 일어났을 때는 늘 아무도 없었다. 누구하나 아침밥을 차려 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들은 새벽부터 나가서 일을 하고 늦은 아침이 되어야 자매님이 들어오셔서 밥상을 챙기시는 것이었다.



  그래 바로 이거야!



  농사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관심과 애정이 그 비결이야!



  이것이 내가 농촌체험을 통해 깨달은 소중한 결실이었다.



  오늘 농민 주일을 맞이하면서 그때 일을 다시 회상해 본다. 그러면서 우리 영혼의 농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그래서 농사에 빗대어 영혼의 농사를 잘 짓기 위한 비결을 한번 정리해본다.









 1) 좋은 토양과 환경



    농사를 잘 짓기 위해서는 땅이 기름져야 한다. 그리고 자연환경이 도와주어야만 한다. 그런데 기름진 땅이 되기 위해서는 토양관리를 잘 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땅이라도 농사를 짓지 않고 2-3년만 내버려두면 황무지가 되어버리고, 아무리 척박한 땅도 거름과 퇴비를 충실히 해 나가면 몇 년새에 좋은 땅이 된다. 따라서 우리 영혼의 땅도 늘 거름과 퇴비로 잘 가꾸어나가야 한다. 우리가 하는 미사와 기도, 말씀 묵상을 꾸준히 해야하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좋은 토양을 가꾸기 위한 것이 아닐까?









2) 농사에 장애되는 요인 제거



   농사를 잘 짓기 위해 다음의 작업들은 필수이다.



   - 전지 작업(가지치기 - 과일 등)



   - 병충해 방제(병든 부분을 잘라내든지 방제를 하든지 때에 맞추어 해주어야)



   - 가뭄, 홍수, 우박 등 자연재해에 대비(물대기, 물고랑 등)



   - 솎아주기(많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좋은 결실을 위해서는 솎아주기가  필수이다)



   - 김매기(이 작물이 잘 크기 위해서는 주변의 풀들을 잘 제거해주고 북돋우워야)









  자, 그렇다면 영혼의 농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영혼의 농사에 장애되는 요인들을 때를 놓치지 말고 제거해주어야만 한다.그러기 위해 화해의 성사가 필요하고, 애덕실천이 필요하고, 아프지만 잘라내어야 할 부분이 많다. 내가 끊어버려야 할 세속적인 욕심이나 시기, 질투 등이 영혼의 성장을 방해한다.






3) 영혼의 농사에 대한 관심과 애정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농사꾼들처럼 눈만 뜨면 하느님과 영적인 사정을 생각하는 일이다. 나의 최고의 관심사가 영적인 성장이 아니라면 나는 결코 좋은 영혼의 농사를 기대할 수 없다. 나의 최고의 관심사가 돈을 버는 일이나,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일이나 화려하게 사는 것이라면 나는 절대로 영혼의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눈만 뜨면 그분을 생각하고 영혼사정을 생각하는 것이 영혼의 농사의 최대 변수이다.









올해도 농민들에게 풍년을 기원하자.



그리고 우리 영혼의 농사도 대풍이 되길 빌어보자.



                                                                    (오상선신부님의 강론 중에서)















                                      <분노의 포도>



  미국 오클라호마에 사는 조드 일가. 대공황이 농촌을 덮치자 아무리 농사를 지어도 빚조차 갚을 수 없는 처지가 된다. 사람을 죽이고 얼마 전에 출옥한 차남 톰은 일자리가 있다는 캘리포니아로 가족들을 이끌고 이주하고자 한다. 어차피 자신들의 땅을 지킬 수 없게 된 그들은 캘리포니아로 이주하기 위해 가재도구를 모두 내다팔아 트럭 한대를 구입한다. 고향을 떠날 수 없다며 버티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이끌고 이들 가족의 여행은 시작된다.









  지루하고 고단한 여행 도중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고, 다른 식구들 가운데도 가족들을 버리고 떠나는 사람이 나온다. 그래도 조드의 동생인 로자산은 임신한 몸으로 미래와 아이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마침내 캘리포니아에 도착한 그들 앞에는 미국 각지에서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과 부족한 일자리, 그 사이를 채우는 고용주들의 농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조드 일가와 동행한 젊은 케이시 목사는 인간의 존엄성을 역설하는데, 자신들의 비참한 처지에 분노한 노동자들은 고용주들에 맞서 투쟁을 벌인다. 주동자로 오인받은 케이시 목사는 결국 고용주측 깡패들에게 살해당하고 이를 목격한 톰은 분노한 나머지 상대방을 죽이고 쫓기는 몸이 된다. 그리고 초가을의 퍼붓는 빗속에서 로자산은 아이를 사산하고 만다...



주: 이 영화는 1930년대 대공황기의 미국 농촌을 배경으로 비참한 삶에 신음하는 농민들의 이야기를 놀라울 만큼 사실적으로 그린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를 영화화한 것이다. 존 포드 감독은 우리에게 [역마차](1939), [리오 그란데](1950) 등의 서부극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는 이 영화 [분노의 포도]를 몹시 자랑스럽게 여겼다고 한다.



                                                                 (이현철 / 마르코니 문화영성 연구소)









농민의 자존심과 삶의 참 가치를 위하여



*이 글 역시 지난 7월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를 비롯한 여러 유명 사이트들에 발표한 글입니다. 요즘 또다시 농민들의 절규가 격화된 시위 형태로 나타나는 아픈 현실을 보자니 문득 이 글 생각이 나서 뒤늦게나마 교회 홈에도 올려봅니다.






 



*이 글은 한국천주교회에서 제정한 제6회 <농민주일>인 오늘 제가 대전 선화동성당에서 행한 ’평신도 특별강론’의 원고입니다.



 아침 6시 미사와 8시 30분 미사 때는 원고를 읽는 식으로 강론을 했지만, 10시 30분 주미사 때는 원고를 거의 무시하고 자유롭게, ’언론 개혁’ 문제에 대해서도 더 많이 설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열정적이었고 재미도 있었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그 강론의 원고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 







 오늘은 여섯 번째 맞는 ’농민주일’입니다.



 우선, 우리 한국교회로 하여금 농업과 농민 문제에 대한 깊은 관심과 배려로 매년 7월 셋째 주일을 ’농민주일’로 설정하여 농업의 고귀한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고 농촌 현실을 돌아보며 ’우리농촌살리기운동’ 등을 전개하도록 이끌어주고 계시는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아울러 저를 오늘 이 거룩한 자리에 서게 해 주신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하며, 이 뜻깊은 기회를 베풀어주신 선화동성당 신상욱 주임 신부님과 모든 형제 자매 여러분께 충심으로 고마운 말씀을 올립니다.






 저는 글짓는 일을 거지반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입니다만, 오랫동안 <가톨릭농민회> 회원으로 활동을 해 왔습니다. 그 덕으로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된 것 같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가톨릭농민회>라는 이름이 생소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습니다만, 저에게는 대단히 사랑스런 이름입니다. 어느 정도 인생 연륜이 있으신 분들은 잘 아시겠습니다만, <가톨릭농민회>는 군사독재정권이 기승을 부리던 저 암울했던 시절―우리 나라 ’민주화 운동’의 한 축이었습니다. 견인차 역할을 했다고도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 별다른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피흘려 쟁취한 민주화의 결실을 오히려 군사독재정권에 붙어 기생했던 사람들이 더 많이 차지하고 누리면서 별의별 요사를 더 떨고 있는 이상한 형국이기 때문입니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차지한 것과 비슷한 양상인 것도 같고, 하여간 뭔가가 뒤죽박죽 지리멸렬해진 상황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지금 저희들은 곤혹스럽고 비애스럽기도 한량없는 심정입니다.    






 저는 오늘 아침에도 밥상 앞에서 ’식사 전 기도’와 ’식사 후 기도’를 했습니다. 일년 열두 달 삼백 육십 오일을 살면서 하루도 거르지 않는 기도가 바로 이 밥상 앞에서의 기도일 것입니다.



 저는 비교적 가족과 함께 ’아침기도’와 ’저녁기도’, 그리고 ’삼종기도’를 성실히 바치며 사는 사람입니다만, 사정에 따라서는 더러 거르는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밥상 앞에서의 기도만큼은, 아침을 금식하는 매년 사순절 동안을 제외하고는 거의 어김없이 하루에 세 번씩 바치며 삽니다.



 그러고 보면 ’성호경’ 다음으로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가장 많이 바치는 기도가 밥상 앞에서의 기도이지 싶습니다.



 우리가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 같은 처지가 아닐진대, 그리고 푸지게 방귀를 뀌어본 때가 언제일지 모를 정도로 마른 입에 근근히 풀칠하며 살았던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들의 시대를 똑같이 이어서 사는 게 아닐진대, 천주교 신자라면 그 누구도 하루 세 번씩 밥상 앞에서의 기도를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긴 뭐, 다이어트를 한다고 억지로 배고픈 경험을 하며 사시는 분들도 전혀 없지는 않겠지요.






 말머리가 길어졌습니만, 저는 오늘 아침에도 밥상 앞에서 두 번 기도했습니다. 밥을 먹기 전에 "주님, 은혜로이 내려 주신 이 음식과 저희에게 강복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라고 기도했고, 밥을 다 먹고 나서는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에게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하나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저는 저 수많은 외교인들처럼 대뜸 숟가락을 들지 않고 내가 먹을 음식이 하느님께서 내려 주신 은총의 선물임을 헤아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되새기며 숟가락을 드는 저 자신에게서 가끔은 신선한 경이감과 함께 다행스러움을 느끼곤 합니다. 그리고 이제 초등학생과 중학생인 내 어린아이들이 밥상 앞에서도 하느님께 감사할 줄 아는 법을 배워 가는 것에서도 행복감을 느끼곤 합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밥’은 우리 인간 생활의 기본이며 기초입니다. 인간의 모든 에너지가 밥에서 나오고, 예술과 사상과 철학이 다 밥에서 연유하며, 심지어는 전쟁까지도 밥으로부터 가능합니다. 그래서 먹기 위해서 산다는 말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요.



 이처럼 밥은 우리의 생명과 삶을 이어주는 중요한 사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같이 밥상 앞에서 하느님께 기도를 합니다. 나에게 밥을 주신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우리의 기도 속에는 당연히 하느님의 항구적인 은혜를 기원하는 마음도 포함되게 마련이지요.






 그런데 우리에게 밥을 주시는 하느님의 은혜가 어떤 방식으로 제시되는가를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밥을 얻습니다. 누구나 자기 나름의 조건 속에서, 나름의 방식과 능력과 노력으로 밥을 얻습니다. 확고한 부요의 성채 안에서 불로소득으로 골프나 치고 인생을 즐기며 사는 일부 복터진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이의 밥이 다 땀의 소산이고 땀의 대가입니다.



 그렇지만 그 밥은 일단 ’땅’을 통해서 옵니다. 땅에서 생겨나고, 햇볕과 비에 의해서 만들어집니다. 밥이 이렇게 일단 농업의 형태로 만들어진다는 것은, 농업이 그만큼 신성한 일임을 의미합니다. 농업은 두 말할 것도 없이 모든 인류의 기초 산업이며, 하늘과 땅의 산업입니다. 하느님의 뜻과 은혜가 가장 먼저, 가장 많이 깃들어 있는 산업이라는 얘기지요.






 저는 20여 년 전 각지 각처를 유랑하며 공사판을 떠돌 때 경기도 남양만의 한 간척공사장에서 함께 일했던 한 노인의 모습을 지금도 가끔 떠올리곤 합니다.



 아무런 종교도 갖고 있지 않았던 그분은 식사 때마다 조용히 눈을 감고 ’묵념’을 하곤 했습니다. 제가 까닭을 여쭈었더니, 햇볕과 비를 주신 하늘에 감사하고, 땀 흘려 곡식을 가꾸고 거둔 농부들의 노고에 감사하기 위해서 묵념을 하신다는 거였습니다.



 저는 그 노인을 통해서 과거 이 땅에서 살았던 우리 조상 님들의 경건한 삶의 태도를 유추해 볼 수 있었습니다. 하늘에 감사하고 자연을 경외하는 마음, 땅을 경작하는 농민들의 노고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우리 민족의 기본적인 심성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15년 전에 작고하신 저의 선친께서는 ’밥상머리교육’이 매우 엄격하셨습니다. 한 손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한꺼번에 쥐고 사용했다가는 야단을 맞았습니다. 밥상에 밥풀을 흘린다거나 밥그릇에 밥풀을 붙여놓은 채 숟가락을 놓았다가는 당장 큰 꾸지람이 떨어졌습니다.



 작가인 제가 이미 여러 번 콩트와 잡문으로 써먹은 얘기이기도 합니다만, 저는 어렸을 적에 수시로 겪었던 아버님의 그 밥상머리교육을 지금도 환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버님에 대한 고마움과 존경심도 거기에서 많이 연유합니다. 아버님의 그것은 밥 먹는 일이 지니는 장엄함, 하느님의 은혜와 농부들의 노고가 어려 있는 곡식 한 알의 귀중함을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지요.






 저는 팔순을 바라보시는 어머님을 모시고 삽니다. 아내가 직장에 다니는 관계로 살림을 거의 맡아 주시는 어머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참으로 큽니다. 육순 시절에 두 차례나 대수술을 받으시기도 했던 팔순을 바라보시는 노인네가 지금도 손수 여러 가지 김치를 맛있게 담가서 어려운 이들에게 손도 쓰시고 예나 지금이나 수녀원의 김치를 전담하시는 것을 보면서 속으로 경탄하며 하느님께 감사한 적도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머님께 가장 감사하는 것은 내 아이들을 ’한국인’으로 키워 주신 사실입니다. 아이들이 밥을 먹기 시작할 때부터 김치 맛과 된장 맛을 알게 해 주신 일입니다. 사람의 평생의 건강에는 그저 김치와 된장이 최고라고 하시며 된장국에 밥을 말아 김치를 작게 찢어 얹어서 손수 먹여 주시곤 한 모습은, 제가 장래 내 아이들에게 값지게 말해 줄 수 있는 일입니다. 저는 김치와 된장찌개를 잘 먹는 제 아이들을 볼 때마다 순종 한국인으로서, 세계에서 가장 지혜로운 음식으로 평가받는 김치와 된장을 만드신 우리의 조상 님들 앞에서 절로 떳떳해지는 저 자신을 느끼곤 하지요.






 저의 어머님은 손수 저자를 보아오시는데, 저자를 보실 때마다 절대 농산물 값은 깎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다른 물품들에 비해 농산물 값이 너무 싸다는 것이 어머님의 생각입니다. 젊은 여자들이 외식비 등에 들이는 거금은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농산물 값을 깎으려고 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는 거지요. 땅을 가꾸고 거두는 일의 어려움을 몰라서 그런다는 말씀도 하시는 걸 들었습니다.






 그런 어머님은 제가 집에서 하루종일 글 쓰는 작업을 할 때는, 요즘에는 간식으로 토마토와 참외를 주십니다. 제가 여름 과일을 좋아하는 탓이기도 하지만 거의 매일같이 우리 동네를 찾는 과일장수를 겸하고 사는 경작 농민의 애끓는 확성기 소리 때문이지요.



 처음에는 그 확성기 소리가 내 작업을 방해해서 싫었지만 차차 그 농민이 가엾어지는 마음과 그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 농민의 소득에 대한 궁금증도 생겼습니다. 저렇게 고생해서 오늘은 얼마나 벌까? 제발 많이 벌어서 대한민국 농민의 자존심을 지켜 나가야 할 텐데….



 그 농민의 자존심을 생각하는 내 마음이 바로 나의 소중한 자존심임을 불현듯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내 자존심은 개인의 자존심으로 머물지 않고 국민의 자존심으로 이어진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한국인으로서 외국 농산물에 현혹되지 않고, 경우에 따라선 돈이 좀더 들더라도 우리 땅의 농산물을 사서 먹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크고 중요한 민족 자존심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자각했던 것이지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매일 먹는 밥은 가장 기초적이고 보편적인 하느님 은혜의 실체입니다.



 그리고 밥을 만들어 내는 기본적이고 절대적인 방식은 농업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농업은 나라와 인류의 대본입니다.



 이 대본이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이 대본이 존재 가치를 잃어서는 안됩니다.



 농민들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일은 바로 내 자신의 자존심을 세우는 일입니다.






 그동안 우리 농민들은 참으로 천대받고 소외 받는 상황에서 살았습니다. 만만한 꼴뚜기 신세에다가 찬밥 신세로 툭탁하면 공권력과 언론권력으로부터 구박이나 당하며 살았습니다. 요즘 한창 ’언론 개혁’ 문제로 도마 위에 올라 있는 <조선일보> 등 족벌 신문들의 수십 페이지에 이르는 지면을 한번 살펴보십시오. 농업 관련 기사가 한 번이라도 제대로 나온 적이 있습니까? 그저 정치 권력을 능가하려고 신문 권력을 키우려는 일에나 혈안이 되어서, 민족의 자존심도, 농민의 자존심도 마구 깔아뭉개며, 어쩌다 농민들이 생존권 수호를 위해 집단적인 의사 표시라도 한번 할라치면 대뜸 ’불법 난동’으로 매도해 온 그들이었습니다.



 농민들이 왜 시위를 하고 처절한 몸부림을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충분히 심층 보도를 해야 일반 국민들이 제대로 이해를 하고 올바른 판단을 하며 해결점에 대해서 고민도 할 터인데, 그들은 그저 지극히 표피적인 현상이나 농민시위 현장만을 다루어 우리 농민들에게도 큰 상처를 주어왔던 거지요.






 방금 <조선일보>니, <족벌언론>이니, <언론개혁>이니 하는 말이 나왔으니, 잠깐 몇마디 더 드리고 넘어가겠습니다.



 앞에서 저는 우리가 피흘려 쟁취한 민주화의 결실을 오히려 수구 세력이 더 많이 거머쥐고 갖은 요사를 다 떨며 민족 정기와 삶의 가치관을 뒤죽박죽 지리멸렬하게 만들고 있다는 뜻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 현상이 극에 달해서 그것을 바로잡으려는 운동이 지금 국민들 사이에서 크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언론 개혁’ 운동입니다. 처음 ’안티조선’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그 운동은 최근 정부의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에 의해 급 물살을 타게 되면서 참으로 깊고 넓게 확산이 되어서 지금 맹렬하게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새로운 민중적 에너지를 실감하고 확인합니다. 저도 이 운동에 기꺼이 사명감을 가지고 참여하여 인터넷 상에서 제법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언론 개혁’에 관한 제 글들이 지금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를 비롯한 유명 대형 사이트들에 올려져서 제법 네티즌들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더 자세한 말씀을 드릴 수는 없으니, 인터넷을 사용하시는 형제 자매님들께서는 <오마이뉴스> <우리모두> <창비> <한국일보 정보동호회> <한국소설가협회> <작가 네트> <태안군> 등을 접속하시면 쉽게 제 글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제 개인 홈페이지를 방문하셔도 되고요.



 



 형제 자매 여러분.



 농업이 경시되는 상황에서도 땀흘려 농사짓는 농민들이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함께 하고 있음을 스스로 깨달으며 보람과 긍지를 가지고 일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날이 갈수록 땅심이 죽어가고, 무분별한 외국 농축산물 수입으로 인해 농촌 경제가 더욱 어려워지고, 정차 어떤 재앙을 가져올지 알 수 없는 유전자 조작 식품으로 인해 하느님의 창조 질서마저 훼손되고 있는 이때 우리는 진정으로 우리 모두의 ’마음의 고향’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의 고향인 농촌을 생각하는 것은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회복시키려는 일이기도 합니다.



     



 내 자신이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세우는 일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 농민이 우리 땅에서 땀 흘려 가꾼 농산물을 즐겨 사주며 귀하게 여겨 주는 일입니다. 그 작은 행위가 우리 땅과 우리 농업을 살리고 우리 농민들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겨레의 얼을 지키며 하느님의 창조 질서에 순응하는 일입니다.



 다행히도 우리 교구에는 농민들이 농약과 화학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유기농법으로 생산한 농산물을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가톨릭농민회>에서 운영하는 직판장이 대덕구 오정동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가톨릭 우리농생협>이라는 이름의 이 직판장을 많이 이용해 주십시오.






 우리 다같이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파괴하는 유전자 조작에 의한 농산물을 먹지 맙시다.    우리 스스로 우리 민족의 먹을거리를 해결함으로써 ’민족자주농업’을 실현해 나갑시다.



 도시민과 농어민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우리 밥상, 우리 먹거리 우리 농촌, 우리 생명을 살려 나갑시다. 



 감사합니다. *









 (2001년 7월 15일·제6회 농민주일·대전 선화동천주교회에서 3번 강론)



 충남 태안의 반딧불 작가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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