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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전례
작성자 김민규 안드레아 신부
작성일 2008년 7월 4일 (금) 15:06
분 류 대축일 강론
ㆍ추천: 0  ㆍ조회: 3065      
IP: 211.xxx.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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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
 

1. 김민규 안드레아

1.1. 한국 교회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제 1독서: 2역대 24,18-22>

신학적 핵심과 초점:  요아스 임금과 그의 신하들이 우상을 섬기기 시작하자 야훼께서는 그들을 당신께 돌아오라고 예언자들을 보내셨지만 그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 때 그러한 불의에 대해 여호야다 사제의 아들 즈카르야가 하느님의 영에 사로잡혀 우상숭배에 대해 질책을 가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거슬러 음모를 꾸미고 마침내 그에게 돌을 던져 죽여버리는 내용이다. 하느님의 진리를 선포하면 반드시 그에 반대하는 적대 세력이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진리를 위해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는 신앙의 열정과 사랑을 묵상하는 데 초점을 둔다.



<제 2독서: 로마 5,1-5>

신학적 핵심과 초점:  믿음으로 의롭게 된 신앙인들의 희망과 기쁨과 평화에 대해 말하고 있다. 믿음 덕분에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어지는 은총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되리라는 희망 때문에 어떠한 환난과 역경도 인내로이 이겨낼 수 있다고 바오로는 말한다. 특히 환난마저도 기쁨과 자랑으로 여기게 되는데 그것은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유익한 것임을 역설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바로 성령을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이라고 언급한다. 신앙인에게 있는 믿음과 희망과 사랑 때문에 그 어떠한 고통과 환난도, 심지어 죽음까지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태도를 통해서 성 김대건 안드레아의 순교신앙을 본받도록 하며 우리도 성령의 힘으로 순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시켜 주는 데 초점을 둔다.



<복음: 마태 10,17-22>

신학적 핵심과 초점: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라는 말씀에서 우리도 순교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끌어낸다. 즉, 지금 현재의 처지로 봐서는 우리가 결코 순교까지 할 수 있는 용기가 없을 것 같지만, 그렇다고 해서 순교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정지어서는 안 된다. 반대로 순교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 해서도 안 된다. 다만 성령께서 함께 하시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은 대답이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성령의 힘으로 무엇이든지, 심지어 순교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같은 순교 성인들은 죽을 때에만 순교했다고 해서 성인이 되신 것이 아니다. 평상시에 성령 안에서 사는 삶, 즉 성령께 순응하는 삶을 사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우리 역시 늘 성령 안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불타오르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점과 그러한 성덕과 순교의 공로가 개인 차원의 것이 아니라 인류 공동체 전체의 연대성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묵상하는 데 초점을 둔다.



<강론>


  찬미 예수님!

  오늘은 한국의 첫 사제이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스물 다섯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주님께 대한 그분의 신앙과 열정, 그리고 사랑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여러분들에게 순교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온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물론 거의 대부분이 순교할 자신이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현재로 봐서는 절대로 순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절대 이렇게 대답해서는 안 되지요. 그렇다고 순교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그 때의 일은 그 누구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누군가가 우리에게 순교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 온다면, 그 때 가봐야 알 수 있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정말 그 때 가봐야 아는 것 아닙니까?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도 처음부터 자신이 순교하게 되리라고 생각이나 하셨겠습니까? 주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의 열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니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때가 되자 자연스럽게 성령의 인도와 능력으로 순교까지 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성령의 힘이 아니고서는 인간의 본성상 죽음 앞에서 그토록 당당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자신을 죽이려는 위협 앞에서는 본능적으로 몸이 저항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 지 그 때 너희에게 일러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우리의 삶은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움직여지고 있지요.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위는 하느님의 뜻대로 움직여질 때가 있고, 또 우리의 뜻이나 악마의 뜻대로 움직여질 때가 있지만 우리 안에는 언제나 하느님의 생각이 숨어 있습니다. 필요한 순간이나 다급한 순간에 우리는 종종 자신도 모르게 떠오르는 지혜로운 생각이나 행동에 놀랄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평상시에 성실하게 기도생활을 하다보면 이러한 체험이 점차 늘어나게 되어 주님께 대한 신뢰의탁이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즉, ‘내가 굳이 걱정하지 않아도 필요한 때가 되면 결국에는 하느님께서 다 잘 알아서 해 주시더라’하는 신뢰가 쌓여가게 되는 것이지요. 바로 이러한 신뢰심을 가지고 단순하게 주님께 맡기며 살아가는 것이 참된 신앙인의 삶인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바로 이러한 자세로 살아가시다가 마침내 순교의 영광까지 얻게 된 것이지요.

  “순교자의 피는 그리스도인의 씨앗”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순교는 개인적인 차원의 신앙행위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공동체적인 차원의 행위입니다. 즉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상처 입은 인류에게 치유와 회개의 은총을 내려 주시고자 하느님께서는 의인들을 선택하시고 그 댓가를 치르게 하십니다. 인류 전체는 하나의 공동체로서 연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구 저편에서 저질러지는 죄라고 할지라도 인류 공동체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반대로 선하고 거룩한 일이 일어나면 그 역시 인류 공동체 전체에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것은 비단 인류 공동체뿐만 아니라 국가 공동체든, 사회 공동체든, 교회 공동체든 다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순교자들을 통하여 많은 이들을 구원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인류 전체를 생각하시는 분이시지 당신 마음에 드는 몇몇 사람만을 생각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어떤 사람이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과 은사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 사람 개인만을 위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또 어떤 사람이 신앙이 깊고, 성덕이 뛰어난 성인(聖人)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 사람만의 영광과 행복이 아닙니다. 그 사람을 통해서 다른 이들도 유익한 것을 배우고 얻음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나누어 받게 하시려는 하느님의 사랑일 뿐입니다. 실제로 우리 신앙 선조들의 순교와 희생으로 오늘날 한국에는 많은 성소의 열매가 맺히게 된 것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로 신부님을 비롯한 우리 공동체 선교사님들의 수많은 희생과 봉헌의 삶을 통해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열매이고, 청년들을 비롯해서 우리 외국인 신학생들과 다른 모든 형제자매님들도 바로 우리 공동체에서 의인의 역할을 해 주셨던 많은 분들 덕분에 맺어진 열매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우리 모든 인간은 바로 이러한 공동체적인 연관성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모든 행위가 아무리 개인적인 것이라도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내가 죄를 지으면 누군가는 피해를 입게 되고, 또 누군가는 그것을 기워 갚기 위해 희생을 치러야 합니다. 또 내가 열심히 성덕의 삶을 살아가면 누군가가 그 영향을 받아 회개하거나 어려울 때 힘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고 희생을 바치며 보속을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 이미 우리에게 구원의 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인류 전체가 다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죄로 인해 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으로 이미 우리 모두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충분한 댓가를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왜이렇게 인류의 죄에 대한 댓가를 많은 선량한 이들이 치러야 할까요? 그것은 인류 전체가 하나라는 사실과 인류 전체가 모두 함께 구원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우쳐 주시기 위해서일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육화하심으로써 이미 우리 인류와 하나가 되신 분이십니다. 언제나 모든 사람들 안에 함께 계시며 인류의 모든 고통과 상처, 아픔과 슬픔을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온갖 불행과 환난과 고통을 받고 있는 우리 이웃들의 아픔이 곧 예수님의 아픔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온 세상에 만연한 죄와 어둠으로 인해 온갖 불행과 고통에 시달리는 이들의 아픔은 곧 우리 모두의 아픔이 되어야 하고, 죄의 종살이에 살고 있는 이들을 위한 댓가도 우리가 치러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아무리 잘 산다고 해도, 하느님께서는 잘 사는 사람 몇 명에 만족하시는 것이 아니라 늘 인류 전체를 보신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끊임없이 인류를 위해 나아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분은 결코 그 누구에게도 무관심하지 않으시지요. 오히려 아주 보잘것없는 이들 안에 계신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모든 이들 안에 함께 계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우리의 할 일은 끝이 없게 됩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오는 온갖 어려움들을 희생과 사랑으로 봉헌할 때 수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잘 살든 못 살든, 거룩하게 살든 죄를 짓든, 이 모든 것들은 개인적인 차원의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인류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입니다. 잘 살면 그것으로 인해 누군가가 도움을 받는 것이고, 잘 못 살면 그만큼 누군가가 피해를 입거나 대신 기워 갚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삶은 우리 개인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지지요. 따라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움직이시는 통로가 될 수도 있고, 악마가 움직이는 통로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왕이면 하느님께서 움직이시는 통로가 되어야 하겠지요.



  의인이 열 명만 있어도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하느님이십니다. 의인이 수 십 명, 아니 수 백, 수 천만 명이 된다면 멸망은커녕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구원의 길에 들어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러한 의인의 역할을 함으로써 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많은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열정과 보람을 가지고 성덕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한국의 모든 성인 성녀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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