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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전례
작성자 주일강론 모음
작성일 2008년 6월 23일 (월) 19:32
분 류 연중8-13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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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해 연중 제 12주일 주일 강론 모음 ”
 







연중 제 12주일



        13. 왕수해 신부(다)/24                14. 김몽은 신부(다)/26

        15. 김정진 신부(다)/27                16. 서웅범 신부(다)/29

        17. 예수는 나에게 누구인가?(다)/30



13         연중 제12주일   루가 9,18-23 (다) 우리들의 신앙고백

                                                       왕수해 신부



어린 아이가 겨우 한두 마디 할 때가 되면 부모들은 어린 꼬마에게 내가 누구냐고 묻습니다. 꼬마가 엄마, 아빠라고 올바르게 대답하면 부모네들은 더 할 나위 없이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꼬마가 생명과 사랑을 주고 있는 부모를 알아보고 혀도 잘 돌지 않는 말을 하며 생글거릴 때 부모들은 인생의 보람을 느끼는가 봅니다.


오늘 예수님도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하신 모양입니다. 그동안 가르치고 기적을 보여주며 그들에게 깊은 사랑을 보여주었는데 이제 그들이 자기를 어떠한 자로 생각하고 있는지 당연히 알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합니까?” 하고 제자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전해주는 대답은 모두가 시원치 않고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보기에는 아직 까막득함을 보시고 “그러면 당신들은 나를 누구라 생각합니까?” 하고 제자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3년간 침식을 같이하시고 그들에게 특수한 교육을 시켜가며 가장 많은 사랑을 주셨던 제자들의 고백을 듣고 싶어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모른다 하더라도 자기와 같이 지낸 제자들한테서만은 올바른 답변을 듣고 싶어했습니다. 다행히 베드로는 예수님을 알아보고 당신은 하느님께로부터 오신 그리스도라고 정확하게 대답했습니다. 엄마,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지만 옳게 대답하는 아이처럼 그 당시 베드로는 자지가 한 말의 참 뜻은 몰랐지만 어설프게나마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아마 예수님도 그 순간 큰 보람을 느꼈을 것이고 순진한 어부인 베드로를 더 한층 사랑했을 것이라고 미루어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서에서는 갑자기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많은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했다가 사흘만에 부활하리라는 수난 예고를 들여주고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당신을 믿는 사람들도 자기처럼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모순된 일입니다. 전능하신 하느님의 아드님이 수난과 죽임을 당해야 된다는 것은 참으로 우수운 이야기입니다. 더구나 사랑하는 외아들을 그렇게 내러벼 둔다는 하느님 아버지도 참으로 이상한 분입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구세주라고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느님의 아드님이 미천하게 십자가에 죄인으로 죽어야 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도 믿지 않는자에게 십자가는 어리석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은 오늘 성서 말씀대로 우리 구원을 위해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한 구원의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우리들의 생각엔 하느님은 전능하시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없이도 구원하실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하느님은 우리가 상상하는 방법으로 우리를 구원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은 예수님이 죽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도록 미리 마련하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고백하고 우리가 지금 믿고 고백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고통과 죽음을 거쳐 부활하신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돌아가야 할 하느님 아버지도 바로 미천하게 살다 죽고 부활한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십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는 환상에 사로잡혀서는 안됩니다.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의 양자라 해서 세속에서 흔히 말하는 행복된 인생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크나큰 착각이며 잘못 그리스도를 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세주 예수는 십자가 없는 구세주가 아니며 십자가 없는 하느님 아들은 있지도 않습니다. 하느님 아들은 고통을 없애주신 것이 아니라 고통을 받고 고통을 통해서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분입니다. 마찬가지로 자기의 십자가를 외면하는 신자는 참다운 신자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도 자기를 따르려면 각자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구원되었고 우리 주님이 십자가를 통해서 부활하셨으니까 우리도 같은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길은 영원한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이기 때문에 고통스럽지만 희망과 축복의 길이며 우리 주님이 가신 길이니까 가장 올바른 길입니다.

이제 몇 마디 우리 생활에 관해 덧붙이면서 끝을 맺을까 합니다. 우리들은 현 생활을 이끌어가기 위해 당하는 고통이 많이 있습니다. 더구나 신자이기 때문에 당하는 고통도 많습니다. 부정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생활에서 그래도 하느님 때문에 양심을 지켜나가기 위해 손에 들어오는 돈도 거절해야 하는 때도 있고 신자이기 때문에 교회에서 명하는 가족계획만을 따라야 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 주기 위해 잘못한 자도 용서하고 미운 사람도 가까이 해야하는 고통이 있습니다. 또한 남을 위해 희생도 하고 바쁜 시간에도 신자로서의 의무를 채워야 하며 쾌락에도 빠지고 싶지만 참아야만 하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이런 고통 속에는 그리스도의 모습이 들어있고 하느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통스럽지만 고통 속에서 진정한 평화와 행복을 맛볼 수 있고 세상이 주지 못하는 기쁨이 들어있습니다. 더구나 우리가 고통의 길을 감수하고 나아간다는 것은 바로 우리가 구원의 길에 서 있다는 확실한 표시입니다.


우리는 각자 다시 한번 그리스도의 질문을 받아보아야 하겠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우리는 서슴없이 “당신은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며 우리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우리도 당신이 보여주신 것처럼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당신의 길을 걸어가겠습니다.”하며 고백하야 하겠습니다.

14           연중 제12주일  루가 9,18-23 (다) 베드로의 신앙

                                                          김몽은 신부



오늘은 연중 12주일로서, 루가가 전하는 베드로의 신앙 고백과 아울러 예수님의 수난에 대한 첫 번째 예고하심을 들여 준다.


이 어두운 세상에 하느님의 광채가 비쳐오자, 세상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예수님에 대한 인식이 나날이 높아져 가기 시작했을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합니까?” 그러나 사람들은 아직도 하늘로부터의 빛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옛날의 유명했던 예언자 중의 한 사람이 아닌가 하고들 생각했다. 그러자 주님은 당신의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그러면 당신들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그때 베드로가 나서서 대답했다. “선생님은 하느님께로부터 오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와 같이 베드로를 위시해서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그 확신도, 그 당시의 유다인들이 생각하고 있던 메시야적인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의 유다인들이 가졌던 메시야에 대한 개념은, 메시야를 현세적, 지상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메시야가 오면 정치적으로 유다나라를 해방시키고, 국가적 번영과 유다민족의 세계적인 군림을 가져오게 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러한 그릇된 메시야에 대한 생각들을 바꾸게 하기 위해, 당신이 당할 수난에 대해 예고를 하셨다. 오늘 복음에서, 수난에 대한 첫 번째 예고를 들려주고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 자신을 버리고 매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와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메시야이시다. 그러나 당시 유다인들이 생각하고 있던 그런 메시야는 아니다. 그분은 이사야가 예언한 바와 같이 고통의 인간,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 백성의 죄를 짊어지고 모든 고난을 혼자서 받는 위대한 순교자로서, 거룩한 야훼의 종이시다. 그러므로 그분에게는 이 세상에서의 영화나 인간적인 안일과 명예, 그리고 지상에서의 권력 따위는 하나도 없다.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하면서도 역시 그들과 같이 이 세상 것을 소중히 여기고, 그리스도를 이 세상의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한에 있어서는 그리스도를 가슴속에 모시지 못하고 만다.

 이 세상의 것들을 버려야 하고 재물이나 명예나 권력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결코 주님의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스도께서 수난을 당하시고 죽으셨기 때문에 부활의 영광이 주어진 것처럼, 그리스도인의 생활도,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어렵고 힘드는 일, 바보스러운 일, 세상 사람들이 조소하는 일을 해나갈 때에 비로소 주님 안에 참 기쁨을 얻게 된다.



사실 신자들의 생활이 다른 사람들의 생활과 무엇인가 다른 점이 없다면, 우리는 공연히 믿는 것이나 다름없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세속을 따르는 길과는 전혀 다른 길이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어리석게 보이고, 밑지는 것같이 보이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참 이득을 얻게 되고, 죽은 것처럼 보일 지라도 사실은 참으로 영원히 사는 길인 것이다.


이 세상의 것을 따르면서 이기적인 행위에 머물러 있는 한에 있어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옳게 이해하지를 못하고 또 그리스도를 따를 수도 없는 것이다. 그들이 지상적인 것에 심취하고 있을 때, 더욱 중요하고 값진 부분을 폐허가 돼 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15     연중 제12주일   루가 9,18-23 (다) 당신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김정진 신부



 오늘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 바탕이요, 기둥을 이루는 그리스도관에 관하여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이 문제는 우리의 신앙을 좌우하고 판가름하게 되는 중차대한 의제입니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저 십자가에 달려 죽음당하신 분을 우리는 우리의 구세주시란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았기에 이 자리에 함께 모이게 된 것입니다. 당신들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들 합니까 라는 예수님의 물으심에,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 사람들이 기다리던 구세주이시란 것을 명백하게 고백한 베드로 사도와 같이 우리도 이 같은 올바른 그리스도관을 지님으로써 우리의 신앙생활이 조금이라도 동요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가지가지이면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그 대답을 잘 알고 있습니다만 그 대답 여하로 우리의 운명이 좌우되고 우리의 인생관이나 철학관이 달라집니다. 저 무신론자들이나 물질주의자들이나 공산주의자들은 예수님을 한낱 평범한 이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고작일 것입니다. 좀 낫다는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을 소크라테스, 석가모니, 그리고 공자와 같이 세계 4대 성인 중에 한 분으로 생각하는 것이 일쑤입니다. 또 혹자는 회교의 교주 마호멧과 같이 한 종교의 창시자와 같이 생각하며 촌마을에서 태어났다가 33세에 십자가형을 받아 죽은 후 다행히 훌륭한 제자들의 공헌으로 위대한 인물이 되었다고 자기 나름대로 아주 편이하게 해석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유다인들은 자기 나라를 로마제국에서 해방시켜 세계적 패권 국가로 군림시켜 줄 정복자로서의 메시아로 받아들이는 이를테면 현세적 권세나 영달 속에서 구세주관을 지니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같은 당시의 사회환경과 배경 하에서 ‘당신들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합니까’하고 던지신 예수님의 질문은 적절하고 아주 인상적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으로 여태까지의 가벼운 담화의 분위기는 일변하여졌습니다. 제자들은 ‘지금 우리는 질문을 받고 있다. 지금 이야말로 신앙고백을 해야 되느냐, 안해야 되느냐라는 결정적인 때가 왔나보다.’하고 느끼면서도 모두가 잠시 침묵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때입니다. 베드로는 용감하게 대답을 합니다. “선생님은 하느님께로부터 오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대답이야말로 베드로의 일생을 좌우한 것입니다.


신자 여러분! 씩씩하고도 솔직담백한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인류 구원사의 한 페이지를 찬란하게 장식합니다. 이 신앙고백은 만민이 그처럼 기다리던 구세주이시란 점을 만천하에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성 베드로는 예수님이 온전히 특별한 자격으로 생활하신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지니고 계시는 분이심을 믿고 증언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베드로는 예수님이 참된 구세주이시란 것을 만백성에게 가르치며 극기야 마지막 목숨을 바칠 때까지 예수님을 증언하며 예수님의 수제자로서 예수님의 고통과 십자가의 정신을 따라 로마에서 십자가형으로 장렬한 순교의 월계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받으신 예수께서는 오늘 또 한 가지 특별한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고난받고 죽어야 할 구세주라고 깨우쳐 주시며 당신을 뒤따르는 제자들이 걸어야 할 길마저 가르쳐 주십니다. 즉 예수님은 하느님의 나라가 영광과 능력으로 이 세상에 임하기를 기다리는 당신의 백성들의 사고 방식과는 달리 여러 나라를 정복하고 세상을 통치할 군주가 아니고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죽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날 가엾고 힘없는 구세주로 자처하고 계십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받아들이기 매우 어려운 부분입니다. 이 말씀으로 우리 신자들은 세상의 화려하고도 굉장한 대사업보다도 입신출세나 명성을 떨치는 영웅적인 행동보다도 남의 눈에 띄지 않고 남이 모르는 행위, 매일 우리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고 자신을 지배하며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지 않고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마음가짐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공연하게 드러나는 영광스러운 순교의 길이 아니라 오히려 남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성인이 되는 숨은 길입니다.


끝으로 오늘의 말씀을 종합한다면, 이제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 시라는 것을 잘 알고 신앙고백을 마음으로부터 해야 할 것은 물론이지만 그렇다고 이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예수님과 같은 마음, 같은 정신으로 고통과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 결심을 단단히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참된 제자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갖는 인생관을 수립하여 건전하고도 자연스러운 신앙생활을 해 나가도록 다짐합시다. 아멘.





16       연중 제12주일  루가 9,18-24 (다)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서웅범 신부





일본의 가톨릭 지성인 가운데「나가이 다카시(1908-1951)」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분은 나가사키 의대의 교수 겸의사였으며, 백혈병 환자요 웜폭 피해자였습니다. 특히 신앙인으로서의맑은 삶과 그것을 담은 글들로, 패전의 여파로 항페해져 있던 전후 일본의 정신세계에 신선한 힘을 블러일으킨 분이십니다. 그분의 글들은「묵주알」「영원한 것들」이라는 제목으로 우리 말로도번역이 돼 있습니다. 소박하면서도 신앙과 참 삶의 진수를 가득 담고 있는글들입니다.



그중「묵주알」이라는 글을 보면, 백혈병을 앓고있던 자신과, 그런 그를 헌신적으로 사랑했던 아내와의 이 세상에서의 이별이야기가 아주 애잔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털어진 날, 그로 말미암아 부상을 당해 쓰러진 나가이 박사는 아내의 죽음을 예감함니다. 왜냐 하면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는 1Km밖에 되지 않았기에, 만약 아내가 죽지만 않았다면 설사 큰 상처를 입었다 하더라도 기어서라도 반드시 자신의 안부를 알고자 찾아을 것인데, 그러지를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구호의 일을 웬만름 마치고 사흘 뒤에 집에 가보니, 예상대로 아내는 부엌 뒤쪽에 「타다 남은 골반과 요추의 숯 덩어리」로 남아 있었고, 그 옆에는 십자가가 달린 묵주가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타다 남은 아내」를 양동이에 담아 묻으러 가는데, 흔들리는 양동이 속에서 뼈가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마치 「미안해요, 미안해요. 내가 당신 뼈를 안고 가야 했는데 ‥‥」라는 소리로 들렸다고 합니다.

   

  나가이 박사는 -적어도 인간적으로= 아내에게 빛진 것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연구에 한번 몰두해 빠지면 그외 세상일들은 다 잊어버리기에, 모든 뒤치다꺼리 일들은 언제나 아내의 몫이었고, 아내는 그 모든 것을 참으로 잘 해주었던 것입니다. 백혈병으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남편을 위해 항상 밝은 모습으로 헌신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아내의 아픈 속마음을 별로 의식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리고 아내와 혜어지는 날에야 비로소 그것을 알게 됩니다 : 「1745년 8월 8일 아침(이날은 나가이 박사의 학교 숙직날이고, 다음날 원자폭탄이 투하됐

기에 그들에게는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아내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나의 출근을 전송해 주었다. 조금 가다가 나는 도시락을 잊고 나온 것을 깨닫고 집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뜻하지 않게도 현관에 엎드려 울고 있는 아내를 보았다.

그는 한번도 아내가 자기 때문에 울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만약 그가 죽어가고 있는 남편을 보며,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몰래 울고 있던 아내의 마음을 잘 헤아렸더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내려진 백혈병이라는 사형선고에 대해 침착한 태도를 보이며, 자기의 연구를 도와주고, 업어서까지 출근을 시켜주던 아내에 대해 고마움을 느꼈을 뿐, 그 속마음은 잘 헤아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의 속마음을 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면 쓸데없는 오해를 할 일도 없을 것이고, 또 내가 모르던 「그의 나에 대한 좋은 생각」도 알게 되어, 그에게 감사하며 함께 생명의 삶을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물으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세상 많은 사람들은, 그분께서 자신들의 주인이시며 더욱이 자기를 위해 돌아가신 분이심을 알지 못합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마지막 날」에 와서야 「가슴을 찔러 아프게 한 일에 대해 슬퍼하며, 곡을 하게될 것(제1독서)」입니다.



신앙의 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예수님을 제대로 온전히 아는 일이 중요합니다. 「당신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이십니다(복음)」라는 고백을 온 마음으로 살아야만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하느님이시고, ‘나를 위해 고퉁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으며, 하늘에서 굽어보시며 사랑으로 나를 이끌고 계신다는 사실을 우리가 매순간 실감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크게 변화될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모셔드리며 살고 있

습니까?











17      연중 제12주일   루가 9,18-24 (다) 예수는 나에게 누구인가?





묵상 : 누구를 믿는다는 것은 ‘나는 당신의 인품을 믿기 띠문에, 당신이 한 말을 믿고, 당신외 약속을 믿고, 당신외 요구도 수락하겠다'는 뜻이다.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구세주)라고 믿는다면,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그분의 요구도 받아들여야 한다.



이스라엘, 메시아 대망(待望)으로 버티어 온 민족



일찍이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지구상의 모든 민족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연구한 결과 몇 가지 역사법칙을 발견하였다. 그중에 하나가 ‘소수민족이 열강의 세력다툼에 오래 시달리다 보면, 그 소수민족은 강대국에 흡수되어 소멸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외 역사를 보면, 바빌로니아, 앗시리아, 폐르시아, 회랍 이집트, 로마 등 지중해 연안을 주름잡던 대제국들의 틈바귀에서 수없이 시달려 온 민족이었다. 토인비가 말하는 역사법칙대로라면 이스라엘은 일찌감치 강대국에 흡수되어 멸망했어야 할 나라가 아닌가? 그런데도 끈질기게 모든 시련을 이기고, 참으로 용하게 역사 안에 살아남았던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주 중요한 이유는 ‘약속된 메시아가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메시아에 대한 희망이었다. 이 기다림은 시련이 가혹하면 할수록 더욱 팽배해져 갔다.



  예수님이 오신 당시에도 로마의 식민통치에 시달리면서 메시아에 대한 기다림은 절정에 달해 있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어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이 바로 선생님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마태 11,3) 하고 묻게 하였던 것이다. 가장 큰 관심사는 ‘누가 메시아인가?’ 하는 것이었다,



 너회는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어느 날, 예수님의 일행이 가이사리아 지방을 여행하고 있을 때 예수님은 갑자기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하며 제자들에게 질문을 하셨다. 제자들은 “대개는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만은 엘리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옛 예언자 중의 하나가 다시 살아났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이것이 당시 일반인들이 예수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단도직입적 으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하고 물으신다, 베드로는 “당신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예수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한다. 예수님은 자기정체를 알아본 베드로에게 “이 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함구령을 내리신다. 그와 동시에 예수님은, 당신은 메시아이지만 십자가의 죽음을 당할‘고통받는 야훼의 종'임을 상기시키신다.

  ‘너회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예수님의 이 질문이야말로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피할 수 없는 근원적인 질문이 아닐수 없다. 나는 예수를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나에게 있어 예수는 누구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예수는 이름난 성인이나 위대한 예언자, 아니면 초인(超人)일 뿐이다. 이것은 많은 신자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인성(人性)만을 보는 것이다. 참된 신앙인이라면, 나자렛 사람,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목수의 아들인 그  예수가 바로 ‘오시기로 되어있는 분'이며, ‘하느님의 아들', ‘약속된 메시아', ‘구세주'이심을 믿어야 하는 것이다.



예수가 그리스도 구세주임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처럼 하느님을 섬기고 이웃을 철저히 사랑하는 삶을 살 때, 우리도 예수님이 들어간 그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음을 믿는것이 아닌가? 신앙인이라면 “사람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이름은 ‘예수'라는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사도 4,12)하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나에게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며, 그분께만 구원이 있음을 믿는 참신앙이 있는가?

많은 현대인들은 예수를 별로 찾지 않는다. 과학기술과 부(富)와 쾌락이 현대인의 메시아이며 우상이 아닌가? 그러나 예수님의 생애는 십자가의 죽음 없이는 부활도 없음을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다는 것은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경제난국을 맞아 산업구조조정이 한창이다. 팔 다리를 자르듯이 문어발 기업을 과감히 잘라야 한다. 그 아픔을, 십자가를 외면하면 죽는 길밖에 없다.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은 사람은 살 것이다' 하신 오늘의 복움 말씀이 새롭게 들리는 요즘이다,



  우리는 금년에, 십자가의 뒷받침 없는 영광이 얼마나 물거품인가를 배우고 있다. ‘근검절,  ‘희생', ‘절제'의 가치를 새롭게 배워야 한다. ‘십자가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는, 어떤 가치도 창출되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질서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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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교황주일 주일강론 모음 2008-06-23 4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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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통일 기원미사,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6월 25일 2008-06-20 4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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