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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전례
작성자 주일강론 모음
작성일 2008년 6월 23일 (월) 19:26
분 류 연중8-13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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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교황주일 ”
 

교황주일



1. 정 대주교 메시지 / 2                 2. 변기영 신부 / 3 

3. 성민호 신부 / 4                       4. 심영택 신부 / 6

5. 박효종 신부 / 8                 6. 조순창 신부 / 12

7. 주보 (작자 미상) / 13 



1.               교황주일 <마태 10,37-42> 사랑과 생명의 공동체 만들기

                                                                        정진석 대주교



  교형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서울대교구장에 착좌한 지 일년이 되었습니다. 먼저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를 드리며 아울러 언제나 곁에서 저의 사목에 협조해주신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1. 지구장 제도를 통한 교회 운영



  우리 교구는 매우 큰 교구로서 전부터 지구장 제도를 운영해왔지만 이제 교회법에 규정된 대로 더 강화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며칠 전에 저는 교령을 통하여 현재 15개 지구에 3개 지구(경기 북부지구, 경기 서부지구, 경기 동부지구)를 추가로 설정하였습니다.



     2. 주님께서 맡기신 선교사명



저는 금년도 사목교서에서 복음화율 18%를 내세웠습니다. 교회의 일차적인 사명은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우리 모두가 복음전파에 열의를 가질 때 이 목표는 도달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교구의 모든 교우들이 전교에 박차를 가하고 그에 따라 본당을 신설하도록 힘써주시기 바랍니다.



     3. 소공동체를 통한 교회 공동체의 활성화



교회는 하느님과 인간 상호간의 친교의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황을 비롯한 모든 교우들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한 형제자매인 것입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교계 제도적인 친교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들이 교계제도 안에서 맺는 친교를 말합니다 이 같은 친교가 제대로 되려면 소공동체로 운영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소공동체를 통한 교회 공동체의 활성화에 주력해야 할 것입니다.



      4. 교회의 미래인 유아 및 청소년 교육의 중요성



이제 우리는 교회의 미래인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신앙교육에 큰 관심과 정성을 기울여야 합니다. 서울교구의 신자 비율이 10%를 넘었다고 하지만 주일학교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특히 유치원 교육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신앙교육은 인생의 어느 시기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5. 가정의 복음화는 사회복음화의 밑거름

가정은 우리 인생의 가장 핵심적이며 중요한 터전입니다. 가정이 행복하지 않으면 우리들이 행복할 수 없습니다. 신자들의 가정은 모범적이고 거룩한 가정이 되도록 불림받았습니다. 가족간의 대화, 예를 들어 부부간, 부모와 자녀간의 대화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가정 안에서 병자들과 노인들, 장애인들이 더 큰 관심과 사랑을 받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6. 이 시대가 바라는 사제상



몇십 년 전만 해도 가톨릭 성직자는 최고의 지성인 그룹에 속하였습니다. 물론 오늘날에도 사제는 최고의 지성인 그룹에 속합니다만 평신도들도 사제 못지않게 배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제 지적(知的)인 측면에서는 사제의 우월성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제는 영적(靈的)인 분야의 전문가로서 그 위치를 확고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어 성직자와 수도자의 부모님께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습니다.

또한 저는 평양교구의 교구장 서리로서 북한 형제자매들을 잊지 않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그곳에도 복음을 전하고 교구장으로서 임무를 수행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정진석 대주교/서울대교구 교구장



- 위 말씀은 지난 6월21일 교구장 착좌 1주년 기념 회견(가톨릭․평화신문) 내용을 홍보실에서 요약 게재한 것임 -











2.             교황주일    그리스도의 대리자

                                                                         -변기영 신부



교형자매 여러분, 오늘은 사도 성베드로 대축일 동시에 교황주일입니다.

오늘과 내일의 교회예절이 의미하는 바를 묵상하면서 우리 가톨릭의 성직제도에 대해서도 좀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선 교황성하에 대해서 사람들은 흔히 전 세계 가톨릭을 통치하는 행정적인 최고 상관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종종 있습니다. 그리고 성직자들의 대표자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교황성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구세주이신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로서 천상교회의 신전이 지상 교회로 전달되는 중추적이며 중심적인 최상의 성직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지상의 모든 신자들에게 천상 신비를 전달해 주며 하느님의 은총을 관리하고 분배하는 목자들의 목자로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통해서 전 세계 도처에 당신의 대리자이며 협력자를 임명하여 세우고 다스리며 하느님의 교회를 유지 발전시켜 나아가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도 성베드로에게 맡기신 모든 의무와 권리를 후계자로서 다 물려받아 행사하시는 분이 바로 교황성하이십니다.


일부 신교파에서는 교황의 수위권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에게까지만 그리스도의 대리자 직무와 그 권리가 주어지고 그 후부터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서를 올바로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끝까지 만인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시면서 의무만을 후계자들에게 물려주시고 그 의무 수행에 필요한 권리를 다 빼앗아버리는 무리한 일을 하실 수는 없으십니다.



늙으신 가장이 집을 떠나거나 세상을 떠나면 그 후계자인 큰아들이나 혹은 합법적인 상속자가 가산과 모든 식구와 기물을 관리하는 것이 당연한 사리입니다. 만일 상속자인 큰아들에게 집안식구와 가산을 관리하라는 의무만 남기고 모든 등기권이나 일체의 권리는 물려주지 않는다면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없지만 있다면 이것은 정말 경우에 맞지 않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10억 이상의 신도들과 전 세계 인류를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다스리는 교황성하께서는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사도 성베드로의 후계자로서 만인에게 존경과 순종을 받으셔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지상에다가 당신의 직무 대리수행자를 세워 주심은 얼마나 감사하고 위로가 되는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고 은총을 받고 그리스도를 만나뵙기 위하여 천상에 가볼 수 없으므로 (육체를 가진 지상인으로), 이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대리자를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대리자와 일치되어 있는 협력자이며 동시에 지역에서 교황을 대리하는 교황대사나 또는 소속 교구장인 주교님들 나아가서는 주교님들의 협력자이며 본당 내에서 주교님을 대리하여 우리에게 성사를 거행하며 우리를 돌보아주는 사제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교황께 존경과 순종과 감사의 정을 바치면서 모든 성직자들을 위하여 다 같이 열심히 기도드립시다.











3.                   교황주일       비바빠빠! 교황 만세!  

                                                                           성민호 신부





6월 29일은 우리 교회의 두 기둥이신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이며, 이 대축일에 가까운 주일을 교황주일로 지냅니다. 온 성교회의 발전은 물론 세계평화를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계시는 교황님의 노고에 대해 감사를 드릴 뿐 아니라, 그분의 영육간 건강을 위해 기도드리며, 그분께 존경과 순명을 다짐하는 주일입니다

  

성서를 보면, 그리스도께서 산에 올라가 밤을 세우시며 하느님께 기도하신 다음날 제자들을 불러 그 중에 열둘을 뽑아 사도로 삼으셨습니다(루가 6,12참조). 사도들을 선택하는 일이 너무나 중요했기 때문에 신중을 기하기 위하여 밤세워 기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특별한 사명과 권한을 부여하시고 세상에 파견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성령을 받아라.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다"(요한 22.23).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

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마태28,17-20).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내어주는 내 몸이다. 나를 기념하여 이 예식을 행하여라"(마르 22.19).

  

사도들에게 주어진 권한은 사람들을 가르치는 교도권과 지도하는 사목권 그리고 하느님의 은총을 분배하는 성사권으로서, 이 권한은 바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께서 인류 구원사업을 위하여 행사하신 권한입니다.

  

그런데 만일 이 열두 사도들의 대표자를 임명하지 않고 동등한 권한과 직책을 주셨더라면 그리스도 교회는 머지않아 열두 파로 나누어져버렸을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가 되게 해달라고 간곡하게 기도하신 주님께서는 분명히 열두 사도 중 으뜸 사도를 선정하지 않을 수 없으셨습니다. 그가 바로 베드로 사도입니다. 그는 사도들 명단에서 언제나 첫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제자들 중에서 대표자의 역할을 다하였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신 예수님께, 역시 베드로 사도가 대표로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베드로 사도의 신앙고백을 들은 예수님은 여러 제자들 앞에서 그가 당신을 대리하여 교회의 총 책임자임을 공적으로 선언하셨습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교회의 기초가 어디에 있는가를 명시하셨고, 베드로사도의 수위권을 분명히 밝혀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교회는 시초부터 하나의 제도적인 조직체로 출발하였습니다. 조직체에는 언제나 최고 책임자가 있는 법입니다. 한 나라에는 최고 통치자인 대통령이나 왕이 있고, 어느 단체나 공동체도 그것을 이끄는 장이 필요합니다. 하물며 교회에도 최고 지도자가 없을 수 없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베드로 사도를 택하여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고 하시면서, 교회 전체를 이끌어갈 사명과 권한을 주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을 대리하여 사람들에게 천상신비를 전달하고, 하느님의 은총을 관리, 분배하는 목자들의 목자로서의 막중한 책임을 베드로 사도에게 맡기시려고 반석이라는 뜻을 지닌 새 이름까지 지어주셨고 중요한 일에는 꼭 참석시키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구원받아야할 인간이 존재하는 한, 어떠한 난관도 극복하고 동일하게 존속해야 합니다. 따라서 베드로 사도에게 주어진 직책과 권한은 당연히 그 후계자에게 계승되어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의 대를 이어 모든 것을 물려받아 행사하는 후계자가 바로 교황입니다.

  

주님은 당신 교회를 다스릴 지상 대리자인 교회를 정점으로 하나의 교회를 원하셨기에 “한 떼가 되어 한 목자 아래 있게 될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에 교황은 일치의 상징이고 믿음의 길잡이이며 신앙의 지표일 뿐 아니라, 사랑과 평화의 사도입니다.

우리 교회의 자랑은 역시 지상에서부터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교황을 중심으로 하나로 뭉쳐있다는 것과, 또한 거룩하고 공번되고 사도로부터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를 두 번이나 한국에 모시는 영광을 가졌습니다. 그때의 감격스러운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게 머리에 떠오릅니다. 마치 그리스도께서 오시듯 사랑과 평화의 사도로 우리나라를 방문하신 그분을 뵙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행사장에 모인 수많은 군중들은 “비바 빠빠! 교황 만세!"를 외치며 열렬하게 환영하였습니다. 비신자나 타종교인들까지도 그분의 자상한 행동과 평화스런 용모에 넋을 잃었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교황주일을 맞이하여 다시 한번 성하의 만수무강을 빌면서, 그리스도께처럼 존경과 순명과 사랑을 바칩시다. 그리고 주님의 간곡한 소망대로 전체교회는 교황님을, 각 지역교회는 주교님과 신부님을 중심으로 일치 단결된 교회의 모습을 세상에 보여줍시다. 교회와 함께 동고동락하며 교회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신자가 되어 우리 교회를 더욱 빛내고 발전시킵시다.











 4.                교황주일 교회와 인류구원 위해 받은 사명 다하자

                                                                         -심영택  신부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1347-1381)는 쟌다크 성녀가 자기 조국 불란서를 멸망에서 구출한 것처럼, 우리 가톨릭 교회를 구해내고 교황의 위치를 확보케 한 장한 교회박사입니다.

 지난 번 카타리나 성녀 축일(4월 30일)과 그 전날 저는 생활반성과 묵상기도 중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거룩한 젊은 처녀는 수세기가 흐르면서도 각 세대의 신앙인들 양심 안에 생생하게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특히 신앙의 현실화 내지 근대화 문제에 있어 현대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흔연한 교회정신이 풍기고 초자연적인 매력이 생동하지 않는가!

 확실히 성녀 카타리나는 그 시대 교회의 얼(정신)이었음이 그의 생애에 역력히 담겨져 있습니다.


성녀야말로 교회는 죽음의 힘이 쳐들어오거나 피치 못할 투쟁이 밀려와도 결코 눌리지 않을 것이요, 어둠이 결코 있을 수 없음을 입증했다고 하겠습니다. 우리 모든 신앙인들이 바로 교회임을 성녀는 여러 번 우리에게 확신해 줍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날 한 교회 안에서 상처에 찢기고 아파하는 그리스도교를 알아듣고 사랑하며 다시 조립, 정리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카타리나는 우리와 똑같은 피조물로서, 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구세주의 심장을 닮아 교회에 대한 사랑으로 활활 타올랐으며, 교회를 위한 열애로 자기 일생을 온통 불살랐습니다.

 성녀의 신앙생활 신조는 두 마디, 곧 “불과 피”라고 하겠으나 성녀의 본 임무는 아비뇽에 계신 교황을 로마로 다시 모시는 굳건한 사업이었습니다.


사실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 - 성직자건 수도자건 평신도건 간에 그리스도께서 가지셨던 교회에 대한 사랑이 없거나 희미하다면 또한 교회의 차원이 바로 전 인류의 구원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잊고 산다면, 우리 안에는 이미 우리 웃어른들 안에 계신 하느님과의 핏줄이 벌써 끊겼거나 맥이 빠져 직업화되고 말았거나, 아니면 세속적이고 습관적인 신앙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부터 교회 안에 모든 문제들이 싹이 트고 자라서, 불만이 나오고 분열과 상처가 생기는 것입니다.


교회와 그리고 인류구원을 향한 사랑에 찬 신앙생활이라면, 우리는 누구든 간에 교회의 필요 - 뜻에 따라 개인에서 공인으로 살아갈 줄 알아야겠고, 경우에 따라서는 교회공직이나 정치에도 스스로 임할 줄 알아야겠습니다.

 이 나라 대통령의 정치를 따라 살 줄 아는 신앙인이 되어야겠다는 말도, 결국 대통령 자신을 사랑해서보다는, 그 안에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 안에서 조국과 인류를 사랑하는 우리의 신앙생활이 되어야 겠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교회 안에 우리 장상이나 주교님들과 교황성하와는 바로 교회를 사랑하는 신앙에서 하느님을 공경하며 살아가야 마땅할 것입니다 .급기야는 하나의 같은 교회 안에서 살고 있는 형제들의 분쟁과 불안을 서로 나누어지고 함께 살아가는 신앙인이 돼야만 하겠습니다.



이러한 참된 신앙인에게는 온 교회가 교황성하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기까지는 결코 안일한 생각이 있을 수 없을 것이며 자기 교구나 수도원이 웃어른들을 돕고 협력하여 하나가 되기까지는 언제나 마음이 아플 것이고 지방교회에서도 주임사제와 일치 단합하여 서로 협력하지 않는 한 양심 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참다운 신앙 혁신가는 예외없이 자기에게 내려진 영감이나 특은 까지도 언제나 교회의 장상에게 예속시킬 줄도 알고, 그 가르침에 성실히 따를 줄도 아는 법입니다. 그러나 거짓 개혁자는 차디찬 비판 끝에 자기 오류를 교회에 뒤집어 씌우고는 갈라져 떠나버립니다.

 성녀 카타리나는 짧은 그의 생애를 통해 주님의 뜻을 거룩히 따르고 R회를 위하여, 인류의 안녕과 평화를 위하여 공헌한 오롯한 교회박사 성녀입니다.


우리도 성녀와 같이 하느님께 받은 사명을 충실히 이행키로 결심하고 생활실천에 진력합시다. 이것이 곧 교회와 인류구원을 위해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로서 사랑으로 항상 걱정하시고 아파하시는 교황성화와 함께 사는 참된 신앙입니다.



 “하느님, 내 생명을 희생하여 당신이 사랑하시는 교회에 바치나이다.”(성녀 카타리나)










5.              교황 주일 마태 16,13-19 교회와 하느님 백성

                                                                         (박효종 신부)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당신이 메시아이심을 베드로 사도의 입을 통해 고백받는 장엄한 순간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이시며 동시에 인간이 되시어 우리와 함께 거처하신 예수께서는 구원의 기쁜 소식을 알려주시고 그 진리를 수많은 당신의 기적으로 뒷받침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바리사이를 비롯한 많은 민중의 마음은 더욱 더 굳게 닫혀졌고 폐쇄되었습니다.



더욱이 예수님을 기꺼이 믿고 따르던 제자들까지도 예수님을 알아듣지 못하고 엉뚱한 생각을 하기가 일수였습니다. 참으로 예수님께서는 착찹하셨습니다. 그런데 필립비의 가이사리아 지방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제자들을 대표한 베드로로부터 공적인 고백을 듣게 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대답하시며 당신의 교회를 명명백백히 그 위에 세우십니다. 이 교회는 죽음의 힘도 감히 범접할 수 없도록 견고한 반석 위에 세워졌고 또한 맺고 추는 최고의 권한이 그에게 주어집니다.



우리 역시 하느님의 무한한 은총에 의해서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한 지체가 되었음을 생각할 때 이 교회의 창립은 우리에게 참으로 중대하고 오묘한 진리가 되는 것이니 이에 대하여 겸손되이 묵상함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당신의 무한한 인자와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의 기관인 교회에 거저 불러주신 우리 주 예수께 지극한 감사를 먼저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교회가 무엇인지 숙연히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 주 예수께서는 성서에 오래 전부터 기록되어 있는 약속된 왕국이 임했다는 기쁜 소식을 선포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때가 찼으니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도다.”(마르 1,15) 이 하느님 왕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 그리고 현존 안에서 우리 인간에게 나타나게된 것입니다. 즉 예수의 말씀을 믿음으로 듣는 사람은 주의 양떼(루가 12,32)이고 하느님 왕국을 받아들입니다. 이 말씀은 씨앗과 같아서 스스로 추수 때까지 자라납니다.



또 예수님의 기적은 이 세상에서 이미 하느님의 왕국이 임하였음을 밝혀 주었으니 말씀하시되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악마들을 내쫓으면 이미 하느님 나라가 너희들에게 온 것이다” 하셨습니다. 또한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왕국은 봉사하고 많은 이들을 수속하기 위하여 당신 목숨을 바치기 위하여 오신(마르 10,45) 하느님의 아들이며 사람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 안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상에 정사하시고 부활하신 후 주이시며 그리스도요 사제로서 영원히 왕하시고 성령을 제자들에게 부어 주셨습니다. 이로써 우리 교회는 창립자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지고 그의 사랑과 겸손과 극기의 계명을 충실히 따르면서 그리스도와 하느님의 왕국을 지상의 극변까지 전파할 사명을 받고 이 땅에서는 그의 왕국의 씨앗과 시작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 교회는 차차 자라나 하느님의 왕국이 완성되기를 열망하며 그 왕과 영광 중에 결합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구약성서에서부터 이 왕국이 비유로 묘사되고 있음을 알고 있으며 더욱 신약에도 교회의 내적인 본질이 여러 가지 상징으로 나타나 있음을 봅니다. 이 상징을 묵상하며 교회의 신비를 궁구해 봅시다.



먼저 이 교회는 양 우리입니다. 이 우리로 통하는 유일하고 필요한 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따라서 양 우리는 비록 인간인 목자들에 의해 다스려진다 하더라도 양들을 위하여 당신 목숨을 바치신 착한 목자이시며 목자들 중에 으뜸이신 그리스도에 의하여 양육되는 것입니다. 우리늬 구원에로의 유일한 인도자는 예수 그리스도이고 이로써 우리는 구원으로 불림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 이외에 그 누구도 오직 이리이며 몰래 양 우리에 들어와서 마음대로 양들을 약탈하는 도둑입니다.



그분만이 우리가 오직 한가지 믿음으로 전존재를 바쳐 따라갈 대상입니다.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하고, 우리의 기호를 맞추며 우리의 취향에 쉽게 영합하는 가지각색의 거짓된 인도자는 유혹자일 뿐으로 우리를 종국적으로는 멸망으로 이끌고 맙니다. 이는 어느 구체적인 고집스러운 사상일 수도 있고, 허영과 쾌락으로 줄달음치고 있는 배금주의일 수도 있고, 하느님과 전적으로 등진 탕아가 절망적으로 느끼고 있는 허무주의나 부조리일 수가 있습니다.



과연 우리의 유일한 문이 그리스도인지, 또한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는지 조용히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권한을 위임받아 우리를 다스리고 지도하는 인간 목자들에 대하여 전적으로 승복하는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네들의 인간적 나약이나 약점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크게 동요된다면 이는 그들을 통하여 우리를 이끄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이 부족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두 번째로 교회는 하느님의 밭입니다. 이 밭에서는 오래된 올리브 나무가 자라났으니 이 나무의 뿌리는 우리가 알다시피 구약의 성조들입니다. 바로 이 밭에서 유대인들과 우리가 포함된 이방인들과의 결합이 이루어 졌습니다. 이 밭을 갈고 가꾸시는 분은 아버지 하느님이십니다. 그리스도는 포도나무요, 우리는 그 가지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분에게서 생명력과 풍요함을 받습니다. 그분 없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가지가 나무를 떠나 존재할 수 없듯이 우리의 삶 역시 그분에게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고서는 영위할 수 없습니다. 나무에서 떨어진 가지에게는 오직 죽음이 있을 뿐이고 아궁이의 뗄감으로 밖에 필요가 없습니다. 현대는 흔히 자율의 시대라 하고 죽음보다도 자유를 귀중히 여기는 사상이 널리 힘있게 전파되었습니다. 우리도 본능적으로 100% 자유로워지려고 합니다. 그것도 모든 것으로부터입니다.



그러나 주지하는 바와 같이 나무에서 자유로워진 가지의 운명은 비참이요 허무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져다주신 자유는 이런 오도된 자유가 아니고, 죄에서의 자유, 욕정에서의 자유이며 이는 그리스도께 대한 종노릇을 의미합니다. 이 종노릇이란, 나무와 가지가 한 생명력으로 상통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와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뜻하고 있습니다.



끝까지 나무이신 그리스도께 머무릅시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길이요, 생명이심을 다시 한번 고백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교회는 하느님의 건물입니다. 주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친히 집짓는 자들이 내버린 돌로 비유하셨습니다(마태 21,42). 이 머릿돌 위에서, 이 기초 위에서 교회는 사도들에 의해서 건설되었습니다. 이 건물은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웁니다. 하느님의 집이며(디모 3,15) 성령 안에 있는 하느님의 거처이고(에페 2,19-22) 사람들과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처소이며(묵시 21,3) 또한 거룩한 성전입니다.



전례에서는 거룩한 도읍이라고 부르고 있으니 적절한 표현입니다. 요한은 이 성읍을 묵상하면서 신랑을 위해서 치장한 신부처럼 꾸며져서 하느님에 의해 하늘로부터 내려온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우리는 건축하는 사람들이 쓸데없다고 포기해 버린 돌이었으나, 그러나 신비롭게도 머릿돌이 된 예수님의 기반 위에 든든히 서 있는 것입니다.



왜 집짓는 자들이 무용하다고 버렸겠습니까? 이는 바로 십자가의 어리석음 때문이었습니다. 지혜를 찾는 희랍 사람들에게 십자가는 오직 스캔들, 걸려 넘어지는 돌일 따름입니다. 그런데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기묘하게도 십자가의 신비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서부터 영광스러이 부활시키셨습니다.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이제 가장 듬직한 머릿돌이 되신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 머릿돌에 기반을 둔 우리에겐 십자가의 어리석음이 우리의 지표요, 앞길을 밝히는 지표가 됩니다. 모두가 합리성을 찾고 향락을 갈구하고 즐거움을 만끽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발버둥치는데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더욱 고통 당하고, 더욱 불행에 빠지며 타인이 보기에는 실패자이며 낙오자가 되고 맙니다. 권모술수를 배격하고 폭력을 배제하고 자기 이익을 물거품처럼 보는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항상 소외자가 되고 낙후자가 되며 제일 아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실로 세속의 자식은 땅의 모든 분야에서 탁월한 역할을 찬란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께서 설파하신 십자가의 신비는 어디까지나 어리석음이며 이는 20세기 후반에 사는 우리에게 하나의 예외 없이 해당되는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바로 지금 이 장소에서 경험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역시 내침을 받고 버림을 받는다고, 그래서 현실이 괴롭다고 해서 우리의 버팀목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이 흔들려서는 안되겠습니다. 부르심을 받은 우리에게 이 걸려 넘어지는 돌은 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께서 친히 말씀하신 “내가 높이 세워지면 많은 사람들을 내게로 끌리라” 하신 예언이 우리에게 실현될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교회의 풍부한 신비를 잠깐 일별해 보았습니다. 이로써 우리가 처해있는 이 특권적인 복된 위치를 재삼 확인했습니다. 우리는 쓰디쓴 지상의 삶을 이끌어 가면서도 영원한 생명을 미리 맛보고 있으니 이러한 순례자는 너무나 행복한 것입니다.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특은은 우리에게 사실 벅찬 것입니다. 또한 너와 나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지체로 한 형제라는 사실이 우리의 믿음을 깨우칩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하나의 성사이고 이는 일치의 성사이고 사랑의 성사입니다. 이 형언할 수 없는 당신의 신비에 불리움을 받은 우리는 이제 베드로 사도와 함께 감격에 차서 외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하느님께서 미리 세우신 계획에 따라 뽑혀서 성령으로 거룩하게 되어 예수 그리스도에게 보증 받게 되었으며 그분의 피로 죄가 씻겨진 사람들입니다. 아멘.”







6.              교황 주일 마태 16,13-19 교황 성하의 뜻이 바로 하느님의 뜻

                                                                                 (조순창 신부)



오늘은 ‘교황 주일’이며, ‘세례자 요한 탄생 대축일’입니다. 구세주 예수님을 맞이하도록 선구자로서 그 길을 닦으신 세례자 요한과 같이, 오늘의 온 이류가 구세주를 맞이하여 구원받도록, 선구자다운 사명을 밭은 분이 ‘교황 성하’라고 할 수 있다면, 오늘의 교황 주일은 또 다른 뜻이 있을 것입니다.



교황 요한 바울로 2세는 1920년에 폴란드 ‘바로비치’에서 출생하여, 1946년에 사제가 되셨고, 철학박사와 신학박사 학위를 받으셨으며, 1964년에 ‘크라코프’ 대주교로 임명되시고, 1967년에 추기경으로 선임되셨으며, 지난 해 10월 22일에 사도 베드로 정통 계승 264대 교황 자리에 오르셨습니다.



요한 바울로 교황 성하께서는 3월 15일에는 첫 회칙인 “인간의 구원자”를 반포하셨고, 지만 1월 25일에는 중남미를 8일간 순방하셨으며, 6월 2일에는 공산 치하의 모국 폴란드를 방문하셨습니다.



교황 제도는 예수님께서 세우신 제도입니다. 교황은 전세계 7억 가톨릭 신자들의 착한 목자이시며, 복음을 전파하고 신앙 진리를 수호하는 그리스도의 대리자이시며, 세계 평화의 수호자이시고, 고통받는 모든 이들의 대변자로서, 그리스도 사랑의 증거자이십니다.

오늘 ‘교황 주일’을 맞이하여, 교황 성하를 위해서 기도합시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집안을 이끌어 가기도 쉬운 일이 아니라면, 한 단체나 한 나라가 아니라, 전세계의 신앙인의 모임, 신도들의 착한 목자로서의 맡은 임무가 막중하시기에, 물론 훌륭하신 인품과 덕과 능력을 갖추신 분을 뽑기도 하였으나, 항상 건강케 하시고 필요한 은총을 내려 주시도록, 신자된 도리로서 열심히 함께 기도드립시다.



우리는 생전에 교황 성하를 직접 뵈올 날이 있을지 모를 일이지만, 보도를 통하여 그분의 인품과 덕망과 가르침을 읽을 수 있습니다. 지난 2월 14일 일반 알현에서 교황 성하는 “언제나 어디서나 진리를 증언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교황 성하의 가르침은 교회의 가르침이요, 바로 하느님의 교훈으로 알고 받들어 따르는 것이 신자된 우리의 의무입니다.



“교회의 첫 번째 사명이 복음 전파이고, 말과 모범과 생활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하느님을 믿는 신자가 되라.”는 말씀을 따라, 복음의 정신으로 살고, 복음을 전파하며, 한국 교회 선교 200 주년을 앞두고, 신자 배가 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우리의 도리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모두 하나인 교회를 이루어 갑시다. 에페소서에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며, 성령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이고, 세례도 하나이며, 하느님도 한 분이다.”(에페 4,4)고 하셨으니, 우리도 하나로 일치하여, 화목하고 친절하고 다정한 교회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교황 성하는 바로 이 일치를 위한 표지이십니다.



또 우리는 평화롭고 의로운 사회를 건설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신자가 되어야겠습니다. 교황성하께서는 지난 1월 1일 ‘평화의 날’ 메시지에서 “무기 경쟁으로 평화를 위협하는 오늘, 서로 대화로 무력 행사를 막아야 한다.”고 호소하셨습니다. 또 사순절 메세지에서는 “나눔의 실천으로 의와 사랑을 실천하라.”고 하셨고, 월남 난민을 공해로 추방하는 비정한 현실에 교황 성하께서는 몇 차례 국제 회의를 제의하셨습니다.



교황 성하의 뜻이 바로 하느님의 뜻임을 믿고, 복음을 전하고 증거하며, 일치를 이루고, 평화롭고 의롭고, 사랑이 넘치는 사회를 이룩하는 데 한 몫을 하는 신자가 됩시다. 그리고 교황 성하의 일에 물질로 돕고자 하는 2차 헌금이 오늘 있으니, 적극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믿는 이의 착한 목자이신 주여! 교황 요한 바울로 성하를 위하여 기도하오니, 늘 건강케 하시고, 그 덕화(德化)가 날로 만방에 처지게 하시며, 모든 일에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7.            교황 주일   마태 16,13-19





오늘은 우리 성교회의 볼 수 있는 으뜸이신 교황성하를 공경하는 날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오늘과 같이 굳건한 발전을 가져온 것은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계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만물의 창조자이시지만 당신의 권능을 직접 행사하시지 않고 인간을 통해서 행사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을 세계가 끝나는 날까지 계속토록 하기 위하여 세우신 당신의 권능을 행사(대행)하는 유형한 두령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강생후 67년 네로가 로마제도의 황제로 있을 때에 성 베드로는 네로의 신앙박해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못박혀 죽임을 당하여 순교를 하였고, 그후 몇세기 동안이나 견디어 온 무수한 온갖 박해와 장애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톨릭 교회는 베드로의 죽음으로 종결된 것이 아니고 2천년을 면면히 계속하여 왔고 앞으로도 세상이 끝날 때까지 더욱 더 발전을 계속한다는 이 엄연한 사실은 무엇을 말해 주고 있습니까?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언제나 피로 자랐습니다. 교회는 피로 관계되고 심어졌나봅니다.



교회는 피 흘림 없이는 존립할 수 없나봅니다. 이러한 박해 중에도 2천년동안 베드로에게 수여된 교회 통치의 수위권이 세세대대로 그 후계자들에게 계승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맡기신 신성한 사명을 완수하여 갖가지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교회의 최고지위와 통치권을 이어 받아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로서 베드로 때부터 하나의 교회, 하나의 신앙을 보존하기 위하여 파란곡절을 겪어야 했음에도 승리를 거두었다 함은 역사가 증명하는 바입니다.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 쇄신이라는 거대한 작업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온갖 정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회는 다른 어느 때 보다 과도기에 처해 있으므로 교황의 중책은 더 한층 가중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또한 교황 성하께서는 성직자들과 신자들의 내적성화를 위하여 항상 전념하시고 계실 뿐 아니라, 온 인류의 구원과 세계평화를 위하여 불면불휴의 고심을 하시는 교황이시니 오늘의 교황은 7억의 가톨릭의 수령만이 아니요 전세계 지도자로 클로즈업 되고 있어, 우리는 교황에 대한 존경과 충성을 다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오늘 세계는 얼마나 평화를 갈망하고 있으며 이를 위하여 얼마나 노력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세계는 지금 큰 혼란을 이루어 역사상 일찍이 보지 못했던 어려운 고비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말하기를 이데올로기의 갈등이라고 합니다. 즉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싸움이란 말입니다. 사상적 대립 「군비의 경쟁」 등 냉전과 질투 속에서 평화를 찾으려고 하고 있으니 이는 마치 산에 가서 물고기를 잡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인권의 존중을 내세우고 공산주의는 재산의 균배에 의한 가난의 소멸을 내세웁니다. 그러나 그 어느 곳에도 결함과 죄악이 가득히 차 있는 것은 두 가지가 모두 선의 근거를 미약한 현실에만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은 인간의 육안에만 비치는 저속한 하부세계입니다. 거기에는 자연히 오류로 충만해 있습니다. 이 세계는 이른 바 과학문명의 발달에 발을 맞추어 더욱 인간의 어리석은 신뢰의 도가 증가해 갑니다. 그러나 인간이 예상한 것과는 반대로 인류 사회에는 황혼 이후의 공간처럼 음울한 불안의 검은 장막이 더욱 짙어갑니다.



여기서 먼저 민주주의 사회를 살펴봅시다. 이 사회에는 확실히 인권의 존중과 그에 의한 자유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온갖 오류와 죄악도 그 속에 깃들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다시 말하면 온갖 죄악과 혼란은 자유라는 아름다운 베일에 싸여서 박테리아처럼 나날이 번성해 갑니다. 인심은 나날이 각박해 지고 사람들의 마음은 헛된 재물과 영화에만 굳세게 끌려갑니다.



다음은 공산주의 사회를 봅시다. 그들은 노골적으로 오직 한가지만을 주장합니다. 그것은 물질입니다. 그들은 재산의 분배만 엄격히 통제하면 인류사회에는 곧 행복이 초래될 줄로 생각합니다. 그 결과 그들은 인간까지 목숨 없는 한낱 물질로 간주합니다. 그들에게서 애정이나 의리를 찾는 것은 수전노에게서 정서를 찾기보다도 헛된 일입니다. 그들은 의혹에 쌓여 있습니다. 그들은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이 믿는 것은 폭력입니다. 그들은 아들이 아버지를 고발하고, 남편이 아내를 투옥시키며, 동지가 동지를 숙청합니다.



순결한 소년에겐 아버지를 고발시키고 국가의 최고훈장을 수여했다는 것은 인류 문화의 일대 수치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인간은 윤리를 잃고 짐승으로 떨어져 버립니다. 지구 위에 이러한 흐름이 있는 선(善)이 건재하기는 힙듭니다. 치밀한 계산으로 경제를 영위하고, 예리한 두뇌로 과학을 발전시키며, 냉철한 판단으로 사물을 비판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현대인이 치밀, 예리, 냉철해도 한 가지의 누락 때문에 우리는 치명적 타격을 모면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신덕입니다. 참다운 평화가 이뤼지기 위하여 신덕이 필요합니다. 신덕이 있으므로써 천주께 대한 사랑이 생기고, 형제애가 있는 곳에 성화, 즉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황 성화께서 뜻하시는 바 인류의 성화와 평화가 하루 속히 이루어지기 위하여 외교인들에게 그리스도적 신앙에 입각한 사랑을 전파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전교하며, 교황께서 염원하시는 바 열교인이 귀화하며, 이교인이 귀화하여 진리를 찾아 얻도록, 특히 교회 일치를 위하여 온갖 희생과 기도를 바치는 데 인색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보십시오! 불우한 전재민들의 구호를 위하여, 기아에 허덕이는 빈민구제를 위하여, 자부적인 구원의 손길을, 한편 성직자 양성을 위한 신학교 원조, 포교사업을 위한 전교 지방의 원조등 실로 다각적인 성업을 하고 계심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포교지방에 중심적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현 교황의 배려라고 생각해 볼 때 우리는 누구보다 교황 앞에 충성을 바쳐야할 것 같습니다.



무릇 교회의 발전은 교황에 의해 주도되는 것이므로 오늘날 무서운 세속사조의 소용돌이 속에서 교회가 맡은 의무가 중대한 그만큼 우리는 교황을 위한 기도와 희생을 게을리 할 수 있습니다. 성신의 교도를 받는 교황이지만 오늘 교황주일을 정한 교회정신을 따라 교황의 성업이 더욱 융성히 빛나도록 우리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쳐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교황성하께 절대적인 순명을 다시 새롭게 합시다. 예수께서 베드로 종도에게 주신 수위권과 치교권에 추호의 그릇됨이 없으시기를 항상 기구할 것이며 신령이 강태하시고 덕화가 날로 융성하기를 특별히 기구합시다.

그리고 그의 만수무강과 그 덕화가 날로 융성하여 그가 맡은 교회가 나날이 눈부신 발전이 있기를, 특히 그의 뜻하시는 바 세계평화와 교회 일치 사업이 하루 속히 이루어지기를 다함께 두손 모아 빕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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