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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전례
작성자 말씀연구
작성일 2008년 6월 23일 (월) 19:25
분 류 연중8-13주일
ㆍ추천: 0  ㆍ조회: 4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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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교황주일 ”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1.말씀읽기:마태16,13-19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다 (마르 8,27-30 ; 루카 9,18-21)

2. 말씀연구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두 가지를 물어보십니다. 하나는 사람들이 당신을 누구라고 하냐는 것과 다른 하나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를 물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이렇게 물으실 수 있습니다. ①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와 ②사람들이 너를 통해서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입으로는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이십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 삶은 어떻게 고백하고 있는지 자신이 없습니다. 내 입이 아니라 내 삶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1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필립보의 가이사리아”이 동네 사람들은 빵신(神)을 숭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빠네아스>라고 불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헤로데 안티파스의 이복 동생인 헤로데 필립보가 기원전 2세기경에 세운 도시입니다. 그 후 카이사르 아우구스토를 숭앙하기 위해 카이사리아라고 개명하였습니다. 헤로데 대왕이 세운 또 하나의 카이사리아와 구별하기 위하여 보통 필립보의 카이사리아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당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를 묻고 계십니다.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그러자 제자들은 그동안에 자신들이 들었던 이야기들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이라는 신앙고백을 통하여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제거하기 위하여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믿는 이들에게나 믿지 않는 이들에게나 공통된 생각은 ‘특별하신 분“임에는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헤로데 안티파스는 예수님을 자신이 죽인 세례자 요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더러는 엘리야라고 생각했는데 엘리야는 사람들의 지대한 존경을 받았으며 하느님에 의하여 기적적으로 들어 높여졌기 때문에 메시아의 선구자로서 다시 오리라고 기대되고 있었습니다(말라4,5-6). 그리고 예레미야 예언자 역시 대단한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예언자들 가운데 하나라는 추측은 예수님께서 얼마나 높이 평가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언자보다 더 높은 명예를 거의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한 가지 더 높은 명예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메시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분명 대단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데 그분이 바로 메시아인줄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메시아가 오기 전에 먼저 엘리야가 오기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인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마귀 두목의 힘을 빌어서 마귀를 쫓아내는 사람이라고 비하하기도 했습니다.



내 주변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저 역사의 인물 중에서 위대한 성현으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듣고 있습니까?



15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이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 말고,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이 질문을 예수님께서 나에게 하셨다고 생각해 봅시다. 내 삶이 멋지다면 “그리스도인들은 뭔가 다르구나!”하는 소리를 들을 것이고, 그것을 통해서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그리스도로 고백할 것입니다. 하지만 내 삶이 그저 그렇다면 “예수쟁이들이 또 떠드네!”하면서 외면할 것입니다. 입만 살아서 움직이고, 일치보다는 분열을 일으키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모욕을 당하시게 될 것입니다.

내가 생각한 것이 내 행동으로 드러납니다. 나는 주님을 누구라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베드로 사도는 제자들을 대표해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고백합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통해서 제자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믿고 따르고 있었는지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나의 구세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요한 금구 성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만일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을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다면 계시는 없었으리라. 베드로가 예수님도 다른 사람의 아들들 중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면 칭찬받을 가치는 없었던 것이다.”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나는 성경을 읽는 사람이어야 하고,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나는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가 행복하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 이유는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알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살과 피는 자연인간이라는 뜻입니다. 자연인간은 평범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초자연적인 것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평범한 사람에게 하느님께서 계시를 해 주셨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계시를 받았기에,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기에 행복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참된 존엄성과 그분의 위격의 신비에 대한 지식은 아래에서부터 나오는 것(인간의 지식)이 아니라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것(계시)이기에 이 “앎”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가 복이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심오한 신비를 아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복된 사람이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내가 복된 사람인지, 아닌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행복 선언을 살펴보면 “안다는 사람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감추시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신비를 보여 주셨다는 예수님의 감사기도”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자신들의 머리로 파악하려는 이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그저 받아들이려고만 하는 이들은 깨달았던 것입니다.

바르요나는 요나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요한 1,42;21,15에선 베드로를 요나의 아들이라고 하지 않고 요한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18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시몬을 베드로라고 부르십니다. 베드로라는 말은 아람어의 게파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으로 “반석, 바위”라는 뜻입니다. “너는 베드로이다”라는 말씀의 주요한 의미는 시몬이 이제 반석이 되어 자신의 사명과 역할을 수행하리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바위는 하느님 자신을 가리켜 자주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바위시며, 성채이시고, 확실한 지주시며 영원한 기반이시며, 영원불변하고 굳건한 보증이십니다. 폭풍이 일거나 홍수가 골짜기로 밀어닥칠 때 사람들은 바위로 피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반석위에 집을 짓는 슬기로운 사람과 모레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사람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마태7,24-27).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즉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과 함께 머무르실 거처로 바위 하나와 집 한 채를 특별히 뽑으셨습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집이 될 것입니다. 이 교회는 하느님을 경배하기 위해 모인 공동체를 뜻합니다.

지옥문은 죽음이 정복한 자들에게 활짝 열려 있으며 이미 이 죽음의 나라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에게는 도망칠 수 없도록 굳게 닫혀져 있습니다. 예수님께 대해 죽임이 더 이상 맥을 못 추는 것과 같이 예수님의 공동체에 대해서도 죽음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죽음은 죄의 결과이지만(로마5,12) 예수님께서는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몸값으로 당신 피를 흘리심으로써 죄를 정복하실 것입니다(속량). 그리고 이 반석은 죽음에 의해 억눌리지 않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생명력은 더 이상 죽음에 의해 정복될 수 없습니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십니다. 하느님 나라는 성문에 의해 보호되는 도시나 현관문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집에 비유되고 있는데 문을 열고 닫기 위해서는 열쇠가 필요합니다. 열쇠는 권한을 부여받은 수위나 청지기가 갖고 있는데 베드로는 바로 이런 청지기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엄청 큰 권한을 갖게 되는 청지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풀다와 매다”는 것은 ①“옳다, 그르다”를 판정할 수 있는 권한입니다. 그리고 ②누군가를 공동체에서 제외시키거나(파문) 공동체 안으로 받아들이는 권한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는 무엇이 올바른 교리인가 하는 결정과 누가 그리스도의 교회에 받아들여짐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구원에 참여하게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권한을 받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풀고 매는 권한은 구원의 중개에 대해서나 그러한 중개가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양식에 있어서 포괄적인 위임인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이 선언은 하느님 앞에서 유효합니다. 마치 하느님께서 몸소 선언하신 것처럼 선언되는 그 순간에 유효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는 엄밀히 말한다면 신적인 사명을 수여 받은 것입니다. 이제 베드로의 판정은 이러한 힘과 신적인 유효성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명이 교회에 부여되어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느님 나라의 열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늘에 계신 하느님 앞에서 유효한 사도들의 성스러운 사법권을 가리키는 은유적 표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누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인지를 최종적으로 심판하는 일은 마지막 날의 심판관에게 유보되어 있습니다. 그분은 양과 염소를 갈라놓으실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이 있기 전까지는 교회에서 행사되는 사법권에 의한 예비적인 판결들이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완성하기 위해 뽑힌 선택된 자들의 이름은 하느님의 섭리 안에 감추어져 있지만, 최종적인 하느님 나라를 위해 준비하고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구원의 공동체에 누가 속하는지를 결정하는 일은 베드로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권한이 인간들이 만들어 낸 제도가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하늘에서 내려온 신적인 질서라는 것, 축복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의심하지 말고 말입니다.



3.나눔 및 묵상

1. 나의 주변 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나는 주님을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2. 베드로 바오로 축일을 맞이하여 축일을 맞이한 형제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해 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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