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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전례
작성자 주일강론 모음
작성일 2008년 9월 6일 (토) 20:50
분 류 연중25-30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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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가해 연중 제 25주일 주일 강론 모음 ”
 

연중 제 25 주일



        1. 최익철 신부(가)/ 2          2. 조순창 신부(가)/ 3

        3. 최기산 신부(가)/ 5          4. 서경윤 신부(가)/ 7

        5. 강길웅 신부(가)/ 8          6. 김몽은 신부(가)/ 10

       

1.            연중 제25주일   마태 20,1-16 (가) 포도원 품삯 

                                                      최익철 신부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겨자씨는 십자화과에 속하는 채류 식물로서 자라면 3미터나 크고 줄기는 뻣뻣하며 가지는 휘청거려서 새들이 집을 짓고 겨자씨를 쪼아먹기도 할 정도가 됩니다.

그 작은 씨가 크게 자라서 나무 같은 초목을 볼 때 그 엄청난 차이 때문에 이것을 비유삼아 보잘 것 없는 겨자씨 같은 첫 교회가 그 나무같이 번창할 것임을 예언하신 게 아니겠습니까?



예수님도 말구유에 태어나 보잘 것 없는 인간으로 살아 겨자씨 같았지만 오늘에 와서 그 이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고 그분이 세우신 교회는 끊임없이 뻗어 나가고 있음을 누구나 다 목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엇이나 시작에는 보잘 것 없습니다.

우리의 육체도 한 세포에서 이 만큼 자란 것 같이 식물이나 동물의 성장을 보면, 또 사고의 원인과 결과의 차이를 보면 겨자씨와 겨자나무의 예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겨자씨를 보며 교회를 생각해 봅시다. 오늘 복음에서의 포도원은 교회이며 그 주인은 하느님이십니다. 그 하느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시기는 각각 다르며 또한 그 부르심에 응하는 우리의 자세도 가지각색일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어느 시기에 부르시건 동등하게 대우해 주십니다. 다만 받아 드리는 우리의 자세가 문제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품삯 즉 하늘나라는 고용 당초에 밝혀졌던 것이고 그 약속이 이행되면 그것으로서 만족한 것입니다.



젖을 먹는 아기에게 맛있는 김치를 먹일 수는 없고 간장 그릇에 죽을 담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대접에다가 컵에 가득 든 물을 채운다면 채워지지도 않을 것이고 대접도 불만이 클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대접에 가득 찼던 물을 컵에다가 다 담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불린 시기, 맡은 일, 양의 대소 등은 주인에게 맡기고 맡은 바 자기 일에 충실하면서 열성을 보이면 그것으로 족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느님께 다가서는 생활이 아니고 나태와 안이함으로 땀 흘리지 않는다면 정당한 품삯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건강과 재산, 시간과 재주, 그리고 지위만 믿고 멋대로 생활한다면, 또 영세를 받았다는 사실만 가지고 하느님 이르신 계명과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애초에 언약된 품삯은 받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책임 추궁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갓 영세한 자들의 신앙이 겨자씨만 하다면 이 신앙의 씨를 가꾸어 선행의 많은 가지를 뻗게 하는 것이 정상적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겨자씨 만한 신앙을 들어 우리의 믿음을 말씀하신 것을 보면 우리에겐 그 작은 씨 만한 믿음도 갖지 못한 게 아닙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의 믿음만을 생각했지 교회의 사명은 잊고 있습니다. 죄를 짓지 않는다는 그것 하나 가지고 천당에 갈 수 없습니다. 사랑을 나누는 자라야 합니다.

사랑이 없는 공동체 역시 교회를 발전시키지 못하며 사명감이 없을 때 인간은 타락하기 쉽습니다.



사명을 가진 사람은 성숙되고 보람있는 사람이 되며 그것은 또한 교회의 발전이고 성장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아래 우리가 한 형제라는 사실을 인식함으로써 나 혼자만이 만족하는 생활이 아니라 미신자가 신앙을 갖게 되고 신자는 이미 가진 신앙을 잘 키워 겨자씨가 자라 큰 나무된 기쁨을 함께 나누십시오.

  

교회가 누룩이라 한다면 우리 각자는 그 누룩의 발효작용의 직분을 충분히 발휘하여야만 합니다. 나하나 안에 그냥 만족하는 태도이어서는 부풀어 일으키지도, 본질을 유지하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명하신 사명을 잊지 말고 세상 구원을 위하여 나를 내어놓읍시다.









2.     연중 제25주일   마태 20,1-16 (가) 포도원 품삯 

                                                                조순창 신부



드높은 가을 하늘, 따가운 태양 아래서 오곡이 익어갑니다. 하늘과 땅 사이는 멀면서도 맞닿은 셈인데, 땅을 딛고 하늘을 향해 선 우리도 하루의 일과와 한 생애 안에서 삶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먼 인생 여정에서는 먼 일과 걱정과 고난이 갈수록 태산같아 끊일 날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하느님은 우리에게 희망과 격려의 말씀을 주십니다.

제 1독서에는 하늘이 땅에서 아득하듯이, 하느님의 길은 인간의 길보다 높고, 하느님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보다 높은 만큼, 사람들이 자기 나름대로, 하느님을, 어느 때는 ‘무자비’하고, ‘무능’하고, ‘편파적’이고, ‘없으면 좋겠다’ 하여도 끝내 놓은 하늘이듯 자비로우십니다. 불의한 자 그 가던 길을 돌이키고, 허영에 들뜬 자 그 생각을 고쳐서 야훼 하느님을 찾고, ‘야훼께 돌아와 자비와 용서로 구원을 얻으라’고 희망을 주십니다.

  

제 2독서에는 구원의 신비를 깊이 깨달은 사도 바울로께서는 ‘생애의 전부가 그리스도’라고 말씀하시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은 사람답게 살라’고 격려하십니다.

아직도 우리는 드높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깨닫지 못하고 있으며, 우리 생의 중심은 가족, 건강, 재물, 명예, 사업, 일이며, 신앙과 하느님은 우리 생의 일부에 지나지 않음을 생각하게 됩니다만, 오늘 복음에서 다시 우리를 하느님의 포도밭의 일꾼으로 불러 주시며, 우리가 땀흘려 일한 대가 만큼만이 아니라, 더 큰 자비로 ‘후한 축복이 있으리라’는 희망과 격려의 말씀을 주십니다.

  

포도밭 주인이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을 얻으려고 이른 아침에 나갔습니다. 그것은 일찍 하느님 백성이 된 이스라엘 민족을 말합니다만, 어릴 때부터 교회에 나온 이나 아침 미사 참여자라고 할 수 도 있습니다. 9시쯤은 젊을 때 로마 중심의 교회를 의미하고, 12시, 오후 3시는 장년 시절이나 전교 지방 교회 또는 낮 미사를 뜻하며, 오후 5시는 노년기나 미래의 종말 가까이에 불릴 이들 또는 저녁 미사를 뜻합니다.

  

날이 저물면 인생의 끝날에 포도밭 주인(하느님)은 약속대로 하루 일의 대가와 축복을 주셨는데, 품삯으로는 하루 생활에 넉넉한 1 데나리온을 주었습니다. 내 일생의 두 번일 수 없는 생, 한 번으로 족한 생에, 충분한 대가로 영생을 주시어, 하느님의 기쁨에 참여케 되는 것입니다.

  먼저 불린 이도 약속된 상당한 값을 받고, 하루 종일 빈둥거리며 서 있다가 막판에 와서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이들도 주인의 자비로 후한 품값을 받고 기뻐할 것입니다. 먼저라고 자만치 말고, 나중이라고 위축됨이 없이 주어진 시간에 주어진 일을 충실히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먼저 온 이들이 투덜거렸는데, 이것은 바리사이인 율법학자들입니다. 오늘도 하느님의 뜻에 이해 관계 없이 불평 불만하는 이들이 있는데, 높은 어버이 은공을 모르는 불효자와 같은 마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968년에 지금의 이 성당이 완공되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으나, 많은 결함이 있어서 수리 공사 의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비용과 기술적 어려움 등으로 해서, ‘새로 짓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어서, 성전을 새로 짓기로 확정하였습니다. 그래서 지난 해 6월 가정 통신문을 발송하고, 7월 1일 성전 건립기도를 시작했고, 금년 부활에 성전 건립금의 신청서를 봉헌하여, 700세대가 하느님께 약속하신 헌금은 2억 4천만원이 되었습니다.



믿을 만한 공간사에 설계를 의뢰하였고, 여러 가지 자료 조사도 하여, 기본 계획과 기본 설계가 8월초에 다 되었습니다. 사목 위원들과 여러 차례 검토하고 의논한 다음에, 교구청의 의견도 듣고, 교구청의 지시대로 단순 실용성 재구상을 하였고, 그에 따라서 설계가 늦어지고, 기금 봉헌금이 부족하여, 공사가 미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모두 하느님의 뜻으로 믿고, 믿음과 사랑과 소망으로 새 성전을 이룩합시다. 하느님의 높은 자비를 믿고, 그리스도 중심으로 한국 교회의 선열들의 순교 정신을 본받아서, 포도밭의 일꾼으로서 완공합시다.











3.     연중 제25주일   마태 20,1-16 (가) 동등한 품삯    

최기산 신부



어떤 구교우가 ꡒ천국에 가면 우린 조금 나은 상급을 받겠지요?ꡓ라고 물었다. ꡒ천만에요ꡓ라고 대답하자 실망한 눈초리로 ꡒ우린 한평생 주일이면 꼼짝없이 성당에 가야했고, 나쁜짓은 물론 욕도 안하며 살았는데, 제멋대로 한평생을 살다가 늘그막에 영세한 사람과 같은 급을 받다니 너무 하잖아요!ꡓ라고 응답했다. 그럴싸한 이야기다. 그러나 하느님은 자비하신 분이시기에 늦게 영세한 사람이나 일찍 영세한 사람이나 똑같이 대하실 것이다.



여기서 집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신앙생활이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게 해야 한다. 내가 1년 먼저 영세했으면 1년간 나는 더 행복한 사람이었어야 한다. 신앙생활이 짐이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우리들 주변엔 영세한 것을 후회하는 사람도 있고, 마지못해서 억지로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또 성직자와 수도자는 어떠한가? ꡒ우리는 오로지 주님만을 위해서 생을 바쳤는데 색다른 상급을 주시겠지!ꡓ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모두가 1데나리온을 받는 것이다. 과거엔 성직자나 수도자가 구원에 있어서 유리한 조건을 갖추었다고 생각하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평신도의 위치를 고양시켰다. 그래서 그런지 공의회 이후에 많은 이들이 성직을 떠났다. 구원에 소위 이점이 없다면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냐고 반문하면서 떠났을 것이다.



포도원에 뽑힌자 우리나라도 인력시장이 있다. 새벽이면 날품팔이 하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자기를 불러주기를 기다린다. 그 중에서 정말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절박하기 그지 없다. 그러므로 어서 빨리 자신이 뽑히기를 숨죽이며 기다리고, 막상 뽑히고 나면 긴 숨을 내쉬는 것이다. 옛날 이스라엘에도 인력시장이 있었다. 포도 수확철이 되면 일손이 바빠진다. 익은 포도를 빨리 수확해야지 그대로 놔두면 터지기도 하고 짐승들의 습격을 받기도 한다. 포도원 주인은 이른 새벽 인력시장으로 나갔다. 거기서 일거리를 찾아 서성이는 사람들을 자기 포도원에 보냈다.



1데나리온을 하루 품삯으로 정했다. 적어도 1데나리온은 받아야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침 일찍 일꾼으로 뽑혔다는 것이 너무 고마웠다. 공치는 날도 있기 때문이다. 인력시장에서 기다린다는 것은 피를 말리는 것이었다. 포도원 주인은 9시에 나가서 아직도 일거리를 찾지 못하고 서성이는 사람을 뽑아서 일터로 보냈다. 그에게도 1데나리온을 주기로 했다. 이렇게 낮 12시, 오후 3시에도 인력시장에 가서 같은 품삯에 사람을 데리고 왔다.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그들에게는 너무도 기쁜 일이었다.



똑같은 품삯 해가 서산으로 기울기 시작하자 하루 일을 끝내고 주인은 임금계산을 하기 시작하였다. 오후 3시에 온 사람부터 1데나리온을 받았다. 새벽부터 와서 일한 사람들도 1데나리온을 받았다. 처음 책정한 금액이라서 법적으로 하자는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해도 너무한다고 불평을 터뜨렸다. 하루종일 뙤약볕에서 일한 사람과 오후에 와서 몇시간 일한 사람의 품삯이 같다니 해도 너무 한다는 것이었다.



주인은 말했다. ꡒ내돈 내가 주겠다는데 무슨 말이 많으냐? 오후 3시에 온 사람도 1데나리온은 받아야 밀가루도 사고 우유도 사서 끼니를 때울 것이 아닌가! 내가 자비를 베풀겠다는데 왜 그리 시기심이 많으냐?ꡓ



복음의 메시지 새벽부터 일한 사람들은 입에 거품을 물고 투덜거렸을 것이다. 법이고 계약이고 안중에 없었다. 사실 자신들만 하루종일 일하고 1데나리온을 받았다면 불평할 일이 없었다. 오히려 고마워했을 것이다. 불평의 원인은 시기심에서 온 것이었다. 인간의 심부에 뿌리내려 있는 시기심 때문에 우리네 인생사는 항상 시끄럽다. 그들은 자신들이 일찍 뽑혔을 때의 기쁨을 다 잊고 있었다. 남들은 일거리가 없어서 이골목 저골목을 어슬렁거리면서 피를 말리고 있을 때 그들은 당당히 일거리를 얻어서 일을 했는데도 그 기쁨을 다 잊어버렸던 것이다. 오히려 시기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이는 마치 태어나면서 세례받은 구교우와 같은 경우일 수도 있다. 신앙생활을 하느라고 뼈골이 빠졌는데 죽기 전에 세례받은 사람과 똑같은 상을 받다니 말도 안된다며 남의 구원에 시기심을 일으키는 경우라면 비참한 신자일 것이다. 예수님은 세리, 죄인, 창녀들을 사랑하셨다. 이를 본 자칭 의롭다는 자들이 불평하였다. 어째서 그들을 우리와 똑같이 취급하시려는가! 주님의 자비는 인간의 지혜로는 이해하기조차 힘들다. 주님은 참으로 후하신 분이다. 우리는 그분의 후하심을 불평하거나 시기할 자격이 없다.



하느님 나라는 주님께서 당신 마음대로 후하게 주시는 선물이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가 무엇을 잘했기 때문에 상으로 받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 나라는 선물이다. 하느님께서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에게 똑같이 비와 햇볕을 주시는 것처럼 그렇게 1데나리온의 선물을 모두에게 주실 것이다. 곧 모두에게 같은 하느님 나라의 선물을 주실 것이다. 하느님께 감사드릴 뿐이다. 문제는 새벽이든 오후 3시든 포도원 일꾼으로 뽑히는 것이 중요하다. 태중교우든 늘그막에 영세했든 회개하여 주님의 교회에 뽑히는 것이 중요하다. 주인께서 데려가시기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 기다림은 믿음이고 회개고 희망이다.











4.           연중 제25주일   마태 20,1-16 (가) 하느님의 품삯

                                                       서경윤 신부



「맨 나중에 온 사람들로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사람들에게 그들의 품삯(한 데나리온 씩)을 치러주시오」 (마태 20,8)

  

내가 만일 지금 죽는다면 하느님 앞에서 어떤 품삯을 받게 될 것인가 궁금합니다. 나의 내면적인 개인 생활은 부실하니까 어쩔 수 없고, 그래도 일생 동안 수도회에 소속하여 살았고, 또 잘하든 못하든 성직에 봉직했으니, 어느 정도 그 공로는 참작이 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수도회에 입회한지 35년에다가, 사제 생활 25년이 어디 여간한 것입니까? 아무리 엄하신 하느님이셔도 이 부분만은 그 공로를 인정하셔야 할 것입니다. 

  

회사에서 사원들에게 지급하는 봉급액을 책정하는 일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 기준은 애매합니다. 물론 고용자는 한 푼이라도 많이 받으려하고, 사용자는 회사의 이익을 한푼이라도 더 남기자면, 인건비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큰 회사에서는 해마다 임금 투쟁을 위한 노동쟁의도 발생하지만, 소규모의 작은 회사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벌어지곤 합니다. 이래서 급여를 책정하는 기준이 잘 마련되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물론 어떤 이상(理想)은 제시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회사를 위하여 일을 했으면, 그 대가를 받아야 하는데, 그 돈으로 생활이 가능한 만큼이라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국가는 최저 임금액을 제시해 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회사는 고용자 개인의 능력과 회사에 공헌한 실적에 따라 대가를 지불하면 됩니다. 이때 그 능력이나 공헌도를 돈으로 책정한다는 것이 대단히 애매합니다.

  

그래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체로 입사한 순서대로 승진의 기회가 주어지며, 근무한 햇수에 따라 호봉을 정하고 급여를 책정하게 됩니다. 이 방법은 다른 면으로 대단히 불합리한 방법입니다. 오랫동안 근무한 사람이 반드시 회사에 대한 공헌도가 크다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면에서 야구 선수들에게 적용하는 연봉제가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고용자 봉급은 개인의 능력과 사용자에게 끼친 공헌도에 따라야 한다』는 원칙에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포도밭 주인은 고용인들에게 지급한 임금은 아주 합당한 결정입니다. 우선 한 「데나리온」라는 금액이 최저 임금인 듯 합니다. 그래서 누구나한 「데나리온」씩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포도밭 주인이 보통 주인이 아니라, 하느님이라면 아침부터 일했다고 해서 별로 하느님께 보탬이 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포도밭에서 일한 것이 고용인에게는 영광이요 은총일 것입니다.

  하느님은 완전하신 분이라 말합니다. 「완전하다」는 것은 거기에 더 보탤 수도 뺄 수도 없음을 뜻합니다. 누구가 아무리 열심히 큰 일을 했다고 하더라도 하느님께는 보탬이 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찬미가 주께 필요하지 않은 줄 아오나, 주께서 은혜를 베푸셨기에 감사드리오니, 우리의 찬미가 주께 보탬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한 우리 구원에 유익이 되나이다」 (평일미사 감사송 4).

  

하느님의 포도밭에서 일한 것이 하느님께 무슨 큰 공헌이라도 한 것처럼 생각하고, 그분께 새경을 쳐서 받으려 하는 것은, 하느님과 흥정하자는 사람들로서, 바로「바리사이파」사람들의 소치였습니다.

  

35년동안 수도원에 적을 두고 25년동안 하느님의 포도밭에서 일했다고 무슨 응분의 보상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거기에 대한 어떤 보상을 기대한다면 이것은 바로「바리사이파」의 정신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물론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를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실제로 하느님께서 나에게만 특별히 더 많이 계산해 줄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다만 지금까지 하느님께서는 아쉬움 없이 일용할 양식을 주셨고, 또 주님의 포도밭에서 봉직할 수 있게 해 주심이 내게는 영광이며 은총일 따름입니다. 그러기에 나는 오로지 이 은총에 대하여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릴뿐, 무슨 보상 타령이나 하면서 앉아 있지 말고 부실한 나의 내면적 삶이나 부지런히 추슬러야 하겠습니다.











5.         연중 제25주일   마태 20,1-16 (가) 하느님의 넉넉한 품삯  

강길웅 신부



제1독서 이사 55,6~9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다). 

제2독서 필립 1,20c~24.27a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 

복 음 마태 20,1~16a (내 후한 처사가 비위에 거슬린단 말이오?) 



어른들의 생각은 어린이들의 생각과는 다르며 부모의 뜻은 자녀들의 사고로써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훨씬 더 높고 더 넓으며 더 깊습니다. 더구나 하느님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따라서 하느님을 우리 식으로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오늘 복음서의 내용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묵상을 제시해 줍니다. 어떤 신학자는 말하기를 아침에 일찍 온 일꾼은 유대인을 말하고 저녁에 온 일꾼은 이방인이라는 해석을 합니다. 어떤 이는 또 말하기를 바리사이파나 율법학자들이 아침에 온 일꾼이요 세리, 창녀, 죄인들이 저녁에 온 일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일찍 세례받은 자들이 아침에 온 일꾼이요 늦게 세례받은 이들이 저녁에 온 일꾼이라고 합니다.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9월이 되면 포도를 수확하게 되는데 이 때가 되면 장마가 시작되기 때문에 포도를 제 때에 거둬들이지 못하면 그 해의 수확은 망치게 된다고 합니다. 포도가 물에 녹아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포도를 시간에 늦지 않게 거둬들이기 위해 급하게 서둘러야 하는데 비록 한 시간밖에 일하지 못할 사람이라도 서로 다투어 불러들여 일을 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를 당혹하게 만드는 한 가지 이상한 사건은 아침에 일찍 와서 하루종일 수고한 자나 저녁에 늦게 와서 한 시간 일한 자나 주인으로부터 받는 품삯이 똑같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눈으로는 확실히 불공평합니다. 일꾼들의 불평도 당연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생각은 우리와는 다릅니다. 세상의 눈으로는 주인의 처사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러나 그것이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사실 주인은 분명 선하게 일을 처리했습니다. 품삯을 깎지도 않았으며 다만 늦게 온 자들도 하루의 품삯을 넉넉하게 주었을 뿐입니다. 어찌 보면 한 시간이나 두 시간 일한 자는 자기들이 고집 부려서 늦게 온 것도 아니었습니다. 몰라서 못 왔으며 일을 시켜 주지 않으니까 하고 싶어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한 시간의 품삯만 주었다면 그들 식구는 굶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한 시간의 품삯으로는 집에 돌아가서 식구들을 만날 체면이 서질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은 후한 처사를 베푼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너무도 크시기 때문에 인간의 머리로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인간은 자주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이지만 하느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부족하고 잘못되어 있어도 이타적이시고 당신보다는 인간을 먼저 생각하십니다. 그리고 바로 그 사랑을 아는 사람이 천당에 들어갈 자격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천당에 가 봤더니 꼭 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없고 지옥에나 빠졌으리라고 기대했던 사람이 의젓하게 동산을 거닐고 있더랍니다. 너무도 어이가 없어서 아니, 이게 어찌된 일이냐고 했더니 자기도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평생 죽을죄만 짓고 살다가 죽기 전에 우연히 신부님을 만나 통회 한 번 한 것밖에 없는데 하느님의 처사가 너무도 감격스러워 자기가 천당에서 하는 일이란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다음엔 연옥엘 가 봤더니, 저 사람은 벌써 천당에 갔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사람이 공연한 불평을 하면서 고통을 겪고 있더랍니다. 아니, 당신이 왜 여기서 이 고생을 하느냐고 했더니 그 사람 대답이 글쎄, 천당에 갔더니 창녀, 강도, 사기꾼 등이 판을 치고 있기에 하느님의 처사가 너무도 못마땅하고 속이 뒤틀려 그리로 왔다고 하더랍니다.



물론 꾸며진 얘기지만,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우리의 좁은 소견으로만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그분의 사랑이 크시다고 우리가 언제까지나 게으름을 피워서도 안됩니다. 해는 언제고 서산에 떨어지듯이 마지막은 불시에 다가오며 그때까지 일자리를 찾지 않고 얻지 못한 자들은 받을 품삯이 없어서 불행하게 됩니다.



사실 우리는 아무리 수고해도 하느님의 품삯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모두에게 주시는 은총은 거저 무상으로 주어지는 것이지 인간의 공로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성서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중요한 메시지 중의 하나는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포도밭에서 일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축복입니다. 따라서 많이 일한 사람은 이미 축복을 풍성하게 받고 있는 것입니다.



소견머리 없이 자신의 공로를 따지지 말고 기쁨과 은혜로써 하느님의 일에 참여하도록 합시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넉넉하게 채워 주십니다.











6.          연중 제25주일   마태 20,1-16 (가) 포도원 품삯 

김몽은 신부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원하며 모두가 행복해지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습니다. 플라톤도 “행복하게 살지 않는다면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행복하게 살려는 의지는 인간 삶의 근본적인 욕망인 것 같습니다. 인생은 외부적인 것에 의해서 좌우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행복해지려는 노력을 물질적인 것, 눈에 보이는 것에만 두지 말고 내면적인 것, 보이지 않는 것에 가치를 둘 때 인생의 모든 면이 달라질 것입니다.

  

성서에도 “욕심이 잉태하면 죄악을 낳고, 죄악이 자라면 죽음을 가져온다”(야고버 1,15)고 했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도 플라톤의 말을 받아서 “인간이 아무리 행복하게 산다해도 영원히 살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고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행복은 남을 행복하게 해줄 때 얻어지는 행복입니다. 물질적, 현세적, 일시적인 것(돈, 명예, 권력, 탐욕) 등에 의해 얻어진 행복은 진정한 행복이 아닙니다. 참다운 행복이란 서로 위해 주는 삶을 뜻합니다. 「목숨을 바치고도 아깝지 않은 사랑」안에만 있는 것입니다.



성서에도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사도 20,35)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서로 위해 주고, 서로 섬기며, 서로 아껴 주고, 서로 감사하며 산다면, 이 세상은 하루아침에 행복한 낙원으로 변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봉사하기는커녕 봉사 받기만 하고 살아 왔으며 다시 말씀드려 이기주의자로만 지내왔습니다. 자기 혼자서만 잘 살겠다고 남을 밀치고 살아갈 때, 우리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바로 그 엄연한 실례로서 몰지각한 부유층의 사치와 부패는 오직 남이야 어떻게 되든 자신만 안일하고 방탕한 쾌락을 누리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좀더 이웃을 생각하고 남에게 봉사할 줄 알았더라면 오늘과 같은 사치와 부정부패, 불신사회는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현대인의 고민, 초조, 불안, 소외감 등은 이 봉사의 가치와 기쁨을 모르기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세상에 ‘사랑의 불을 놓는’ 봉사자로서 일해야 합니다. 그것은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영광된 일이며 참된 삶이며, 참된 기쁨인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오직 우리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 행복이란 곧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봉사하는 생활을 해 나가는데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 참다운 행복을 찾아 얻어 누렸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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