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모음
강론을 위한 자료실
       
 
전체글 보기  
       
 logos
말씀과 전례
작성자 강론 모음
작성일 2008년 8월 9일 (토) 09:16
분 류 대축일 강론
ㆍ추천: 0  ㆍ조회: 7361      
IP: 218.xxx.54
http://missa.or.kr/cafe/?logos.1163.
“ Re..8월 15일 : 성모 승천 대축일 ,성모 몽소승천 대축일 ”
 

성모 승천 대축일





       1. 정 대주교 메시지(2000)/2    2. 이계중 신부/ 4

       3. 이계중 신부/ 6                 4. 강영구 신부/ 8

       5. 최기산 신부/ 11                6. 김수창 신부/ 13

       7. 최석우 신부/ 16                8. 최석우 신부/ 19

       9. 민병덕 신부/ 20                10. 함세웅 신부/ 23

       11. 박진량 신부/ 24               12. 김경식 신부/ 27

       13. 유재국 신부/ 29               14. 김영진 신부/ 31

       15. 성민호 신부/ 32               16. 서정현 신부/ 35

       17. 사제의 편지/ 36               18. 최인호 작가/ 37

       19. 성모 마리아의 승천은/ 38   20. 성모 마리아, 나의 어머니/ 40

   성모 승천 대축일  루가 1,39-56     민족의 참된 해방을 위하여

‘하느님께서는 자유를 주시려고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갈라 5,13)

정진석 대주교 메시지



1. 특별한 감회 속에 맞이한 8․15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은 성모 승천 대축일이자 우리 민족이 일제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난 지 쉰 다섯 돌이 되는 뜻깊은 광복절입니다.

해마다 8월15일이면 맞이하는 성모 승천이요, 광복절이지만 올해는 특별한 감회 속에 대축일과 경축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한 세기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한 천년기가 가고 새로운 천년기가 시작되는 2000년 대희년의 한 중턱에서 맞이한 축제날입니다. 또한 동시에, 동․서가 화합하는 세계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도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지역으로 남아 있는 우리 한반도에서 남과 북의 정상이 서로 만나 평화공존과 통일을 향한 새로운 이정표를 그려 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맞이한 축제날이기에 이번 8․15는 더욱 색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2. 성모님과 한국교회․한국민족

우리 한국 천주교회는 성모님의 특별한 보호 아래 성장, 발전해 왔습니다. 오늘 이 중요한 시기에도 성모님은 변함없이 천상에 계신 예수님의 어머니이시며 우리의 어머니이십니다. 그러기에 오늘 대축일 교중미사를 통해 전국의 모든 본당에서 한국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께 나라와 교회를 봉헌하는 예식을 거행하는 것은 참으로 뜻깊은 일이라 하겠습니다.

일찍이 조선교구 제2대 감목으로서 이 땅에서 순교까지 하신 앵베르 범세형 주교 성인은 1838년 한국교회를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께 봉헌하였습니다. 이후 1945년 8월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에 우리 나라와 민족은 해방을 맞이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1984년 5월6일 103위 순교 복자들을 시성하기에 앞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명동 성당에서 다시 한번 우리 겨레와 교회를 성모님께 봉헌한 것을 우리는 매우 뜻깊은 일로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3. 새로운 마니피캇

이제 새 천년 첫 8․15에 즈음해서 반세기가 넘도록 대치상태에 놓여있던 남과 북이 함께 ‘화해주간’을 지내고 있습니다. 그 동안 나뉘고 흩어져 살아온 남북 이산가족들이 비록 한정된 인원과 기간이기는 해도, 감격과 회한 속에 재회의 기쁨을 나누게 됐습니다. 그리고 끊어져 녹슬기만 했던 철길을 다시 놓아 남북을 이어주는 경의선 공사도 머지 않아 시작할 단계에 와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성모님의 전구를 통해 우리 민족에게 베풀어 주신 하느님의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에 광복절이자 성모님의 승천을 기리는 큰 축일인 오늘, 하느님은 모든 이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마음이 교만한 자들의 계획을 흩으시며, 권세 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보잘것없는 이들을 높이시며, 정의로 다스리시고, 부(富)를 나누어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게 해 주신 천상의 어머니를 기리며 ‘마니피캇’(성모찬송)을 노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4. 용서와 화해

우리는 분단과 전쟁으로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누고 싸웠던 지난날을 돌아보면 하느님과 인류 앞에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서로를 알려고 하기보다 편견과 아집으로 수십 년을 헛되게 보낸 데 대해 이제는 서로가 용서를 청하고 용서하는 겸허함을 보여야 할 때입니다. 잘못된 과거를 뼈저린 참회와 회심으로 씻어내면서 민족의 미래를 설계하고 새로운 역사를 기록해 나가야 할 오늘입니다.

교회도 그 동안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이루어야 할 본연의 사명을 다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반쪽만의 교회’가 전체인 양 말하고 행동한 것에 대해 반성하고 북녘의 동포들과 아픔을 함께 나누면서 민족의 화해를 이루려는 노력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할 것입니다.



5. 민족의 참다운 해방을 위하여

진정한 화해는 그리스도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전 인류의 일치와 정의와 평화의 하느님 나라를 성장케 하는 데에 목적이 있습니다. 55년 전 우리 민족은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해방은 아직도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이 사회는 죄와 죄의 구조에 얽매여 여전히 참다운 해방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남의 인권을 훼손하며 억압하기도 하고, 억압을 당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인간 이하로 대접하는 것에 대해서 깊이 반성해야 합니다. 또한 신자유주의의 그릇된 물결이 자라나는 세대에게까지 번지고 있는 현실에서 공동선이 무시되고 지역 이기주의와 집단 이기주의의 목소리가 메아리 되어 들려오고 있습니다.



6. 새로운 사명

지나간 20세기가 우리 민족에게 억압과 분단의 시대였다면, 아시아․태평양 시대라고 일컫는 21세기는 우리가 참다운 해방과 통일과 번영을 이룩하여 세계 모범국가로 우뚝 설 수 있는 시대로 일구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민족을 각별히 사랑하셔서 새 시대에 새로운 사명을 맡겨 주고 계십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기회 있을 때마다 북한과 중국을 포함한 동북 아시아의 복음화를 걱정하시면서 이 일은 한국 교회만이 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 주십니다. 이제는 우리가 응답해야 할 차례이며 우리가 나서야 할 시점입니다.

“서쪽 하늘에서 구름이 일면 비가 내릴 것을 알아야 하는”(루가 12,54) 것과 같이 ‘시대의 징표’를 깨달아야 하고, 오늘 우리에게 내리시는 하느님의 계획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동양 선교에 목숨까지도 바쳐서 투신해 오고 있는 선교사들에게 감사하며, 이들을 본받아 우리 모두 선교 결의를 굳게 다짐해야 하겠습니다.



7. “예”라고 응답하며 다시 시작합시다

예수님의 탄생 2000년을 되새기는 것은 선교의 기원을 경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희년은 곧 교회 전체가 새로운 선교의 열정으로 일할 수 있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이제 새로운 천년기를 맞이하여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 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도록”(루가 4,18-19) 파견되신 성자 그리스도의 사명을 성령의 도우심 안에서 이 땅과 아시아의 복음화를 위해서 헌신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나라와 교회의 수호자이신 성모님께 의탁해야 합니다. 성모님께 우리 모두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하느님의 계획 실행에 “예”라고 대답하도록 도와 주실 것을 청해야 합니다.

북녘과 남녘의 형제 자매 여러분이 진리와 사랑 안에 참다운 해방을 누리며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하느님의 축복이 있기를 간구합니다.



2000년 8월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에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 서리

정 진 석 대주교











2.  성모 승천 대축일   루가 1,39-56    엘리사벳을 방문하심과 성모찬가 

이계중 신부



성모님께 대하여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으로 거의 다 파괴되어 있던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의 대성당이 부흥되어, 지금은 고인이 된 민첸티 추기경이 성모 성탄 축일에, 헝거리의 모든 주교들과 50만 교우들에게 둘러싸여 이 성당을 축성하였습니다. 그 때 군중들 가운데서 촌티나는 옷을 입고, 햇빛에 그을린 얼굴에 이마에 주름살이 많은 한 노파가, 거치른 손에 묵주와 기도책을 들고 추기경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노파가 헝가리의 아버지라고 할 정도로 존경을 받는 민첸티 추기경의 어머니였습니다.



이런 어머니에 대하여 민첸티 추기경은, 어느 책에서 “고향에 있을 때나 외국에 있을 때에도 어머니 얼굴의 주름살은 귀한 것으로 알았습니다. 성 아오스딩과 같이 “주여, 내가 당신의 종이 된 것은 당신 여종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내 존재의 모든 것은 어머니의 덕과 기도에 의한 것입니다”라고 썼습니다.



민첸티 추기경의 어머니 뿐 아니라, 모든 어머니의 사랑은 위대합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천신만고의 희생을 치룬 값비싼 사랑으로, 피보다 진하고 죽음보다 강한 사랑입니다. 태중에 있을 때부터 나를 걱정하고, 어릴 때 내가 컷을 때도, 또 나이 많이 먹어 어른이 되었을 때도, 잠시도 나를 잊지 않으며 걱정하고 생각하는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과연 어머니의 사랑은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어머니는 성모 마리아이십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께서 그 밑에 서 계시는 요한 사도에게, 어머니인 마리아를 가리키며 ‘이는 너의 어머니이시니 받들어 모시라’고 분부하시어, 인류를 대표한 요한사도를 통하여 우리 모두의 어머니가 되게 하셨습니다.

세상 어머니가 그의 자녀에 대한 사랑이 크다면 천상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의 우리에 대한 사랑은 그 얼마나 크겠습니까? 성 벨라도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세상 모든 어머니의 사랑을 하나로 뭉쳐도 성모 마리아께서 한 사람을 사랑하는 그 사랑보다는 작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로부터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고 그를 어머니로 섬기는 이들은 결코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중세기에 많은 성인 성녀들이 배출되었는데, 그들은 모두 성모님을 독실히 모셨던 것입니다. 성 아오스딩, 성 도밍고, 성 모니카, 성 벨라도 등등 그 유명한 성인 성녀들이 모두 성모님께 특별한 존경을 바치셨던 것입니다. 또한 멀리 갈 것 없이 우리 순교 선조들의 유물에는 반드시 묵주가 있는데 이것은 순교한 우리 선조들이 성모님을 얼마나 공경하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성모께서는 때때로 당신의 사랑을 우리에게 들어내시고 또 우리를 타이르시기 위해 발현하시는 수가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18년 전에 성모께서는 루르드에 발현하시어 묵주신공을 하고 보속할 것을 부탁하셨습니다. 그 후 성모께서는 60여년 전에 ‘매괴의 모후’로 다시 파티마에 발현하시어 우리에게 타이르시는 골자는 크게 보아 ‘기도와 보속’입니다(성모께서는 언제나 묵주를 가지고 발현하셨고 또 묵주신공 바칠 것을 거듭거듭 강조하셨습니다.).



파티마에서 성모님의 발현을 받은 세 어린이 중에 단 하나의 생존자인 루시아 수녀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계의 타락은 기도의 정신이 시들어가고 있다는 결과 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성모께서 힘있게 묵주 신공을 바치라고 권고하신 것도 이러한 좋지 못한 것들을 예감하셨기 때문입니다. 묵주신공은 미사 다음으로 신앙을 보존하고 키우는 가장 적당한 수단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묵주신공을 공격의 초점으로 삼고 있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과연 오늘날, 일부 몰지각한 인사들이 예부터 내려오는 성모께 대한 존경을 깎아내리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들치고 자기 어머니가 존경받는 것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으며 또 자기 어머니의 청보다 다른이의 청을 더 중히 여길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물론 우리는 성모님을 하느님과 같이 존경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모께서 하느님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에 어머니로 공경하는 것이며, 그 어머니를 공경할 때 그의 아들인 예수께서 싫어하실 리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바쳐야 하겠습니다. 또 기도의 정신을 갖도록 서로 권면하고, 특히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하겠습니다. 사실 우리들이 하느님께로 가깝게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기도입니다. 그리고 이 기도의 회합에서 우리들에게 당신의 은혜를 주시어 여러 가지 유혹을 이기기 위한 빛과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성모님의 타이르심 중에 기도 외의 또 다른 하나의 보속입니다. 점점 향락주의로 기울어져 가는 현대에는 보속이 점점 식어가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속이 꼭 필요한 것임을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물론 시대의 변천에 따라 보속하는 그 양상도 변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옛날에는 단식과 고행 등을 큰 보속으로 또 좋은 보속으로 생각하며 많이 해오고 있었으나, 복잡한 현대에는 그와 같은 보속은 하기 힘듬으로 현대에 맞는 보속을 해야 하겠습니다. 보속에는 반드시 희생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현대에 있어서 좋은 보속이란 넉넉한 사람이 공익을 위해 희사하거나 애긍시사하는 것도 훌륭한 보속이 될 수 있겠고 미사 때 헌금하는 것도 한가지 보속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일상 생활에서 자기의 성질을 꺾고 온순하게 평화를 보존하는데 협력한다면, 이것도 훌륭한 보속이 되겠습니다. 아무튼 질서와 평화와 사랑을 위해 어떤 보탬이나 협력의 행동을 하였다면 이것은 일종의 보속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이와 같은 성모님의 타이르심인 ‘기도와 보속’이 없이는 인류는 큰 비극이고 이와 반대로 ‘기도와 보속’이 있는 한, 성모님이 약속하신 대로 승리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 마리아를 진정한 우리의 어미니로 인정하여 그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하며 살아야 할 것이며,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기쁠 때나 슬플 때, 언제나 항상 손에 들고 매달리는 이를 절대로 뿌리치시는 일이 없으십니다.

“평화의 모후시여 죄인의 의탁이신 성마리아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3   성모 승천 대축일   루가 1,39-56   엘리사벳을 방문하심과 성모찬가 

이계중 신부



성모 칠고(聖母七苦).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의 생활을 하신 분은 성모 마리아이십니다. 당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구속하기 위하여 수고, 수난하신 고통을 성모 마리아께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받으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성모 마리아의 일생은 예수님의 일생과 같이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생활에서 그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였던 일곱 장면을 성모칠고라고 부릅니다.



그 하나는, 갓난아기인 당신 아들이 후일에 사람들한테서 반대를 받겠다는 예언을 시메온으로부터 들으신 때이고, 두 번째는 헤로데 왕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피난가신던 때이고, 세 번째는 예루살렘에서 아들 예수를 잃고 삼일간이나 떨어져 계시던 때이고, 네 번쨰는 아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갈바리아로 올라가심을 만나셨을 때이고, 다섯 번째는 십자가 위에서 아들 예수가 돌아가실 때이고, 여섯 번째는 예수님의 싸늘한 성시를 십자가에서 내려 당신 품에 안으셨던 때이고, 일곱 번째는 당신 아들을 무덤에 묻고 그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슬픔에 잠겨 있던 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모께서는 하느님으로부터 은총을 충만히 받으신 분이시고 동정으로 예수님을 낳으신 천주의 어머니이심으로, 오로지 아름다운 여인으로만 생각하고 그에게는 고통의 그림자도 없었던 것 같이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모 마리아께서는 누구보다도 혹독한 고통을 맛보신 분이십니다. 그는 예수님의 어머니로서 아들의 구속 사업 때문에 고통을 당하셨고, 또한 모든 인류의 어머니로서 모든 사람들의  구원 때문에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불행한 일을 당하면 그 아들과 같이 혹은 그 아들 이상으로 마음 아파합니다. 아들이 옥에 갇혔을 때 이것을 본 어머니가 슬퍼하는 나머지 병들어 죽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많은 아들들 중에는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살인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강간하는 이가 있고, 배교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지옥으로 아주 떨어지는 이도 있습니다.



성모께서는 지옥에 떨어지는 아들에게도 이 세상의 어머니가 그 아들을 사랑하는 몇 배로, 아니 몇 백배로 그를 사랑하였던 것입니다. 성 벨라도께서는 성모께서 한 영혼을 사랑하시는 것은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그 자녀들에게 가지는 사랑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더 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성모께서 죄에 떨어지는 아들을 보실 때, 더욱이 지옥에 떨어지는 아들을 보실 때 어머니로서 얼마나 마음 아프시겠습니까?



우리는 육신의 어머니를 잠시라도 잊지 못한다면 영혼의 어머니도 더욱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어머니의 소원은 아들이 잘 되는 것뿐입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도 우리가 덕으로 나가는 것을 보실 때 이것으로 만족해하시고, 또한 어머니로써 받으시는 유일한 위안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의 고통의 생활을 가끔 묵상하면서 나의 위치에서의 생활에 만족을 갖고 불평과 원망보다는 향상을 도모하면서 고통 중에서도 미소짓는 생활을 하도록 힘씁시다.

4    성모 승천 대축일   루가 1, 39-56     여인 중에 복된 여인 

강영구 신부



오늘은 우리나라가 일제의 압제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광복절이자, 교회의 어머니이자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의 승천을 기념하는 대축일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주일이 아니지만, 주일처럼 지내는 축일이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성모 승천 대축일이고 또 다른 대축일은 12월 25일에 지내는 예수 성탄 대축일입니다.



일제의 압제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광복절과 성모님의 승천 대축일이 겹치고 있기에, 우리 한국 교회에는 이 날이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날을 경건하고 기쁜 마음으로 지내야 하겠습니다.

성모 승천(昇天)이란 도대체 어떤 사건을 두고 하는 말입니까? 성모 승천은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까? 성모 승천이란 성모 마리아가 하늘에 오르신 사건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마리아가 하늘에 오르셨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마리아가 승리자가 되어서 개선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도대체 마리아는 어떤 사람이었기에 하늘에 오르는 영광을 얻게되었습니까?

우리는 “성모 마리아”라고 하면, 으레 루르드에 나타나셔서 굉장한 기적을 일으키신 분, 혹은 파티마에 나타나셔서 그 화려한 모습을 보여 주신 분, 혹은 유고의 메주고리에 발현하셔서 큰 기적을 베푸신 분, 레지오 마리애 카테나를 바칠 때 기도하듯이 “해와 같이 빛나고 달과 같이 아름답고 군대같이 두려우신” 마리아의 모습을 생각합니다. 그것도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서가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는 마리아는 오늘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마리아와는 거리가 멉니다.

  

성서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아주 소박하게 꾸밈없이 전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성서는 마리아를 믿음의 여인으로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갈릴래아 지방의 나자렛이라는 작은 마을에 살고 있던 평범한 처녀였습니다. 마리아의 꿈은 여느 처녀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하고 소박한 것이었습니다. 이미 요셉이라는 목수 청년과 약혼하고 있던 사이였기에, 그녀의 꿈은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

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평범한 처녀였던 마리아를 당신 구원 사업의 도구로 쓰시고자 하셨습니다. 아마 하느님의 이런 계획이 아니었더라면, 마리아는 아주 평범한 여인으로서 오늘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일생을 마쳤을 것입니다.

마리아가 천사 가브리엘의 방문을 받았을 때, 그녀의 소박한 꿈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천사 가브리엘은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이 임신하게 된 사실을 들려주면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마리아는 믿음의 사람이었기에 자신의 그 소박한 꿈을 포기하고 하느님의 도구가 되기로 결단을 내립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마리아의 이 한마디 응답은 자신의 운명은 물론이지만, 온 인류의 운명마저도 바꾸어 놓았습니다. 마리아 자신은 십자가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지만, 온 인류에게는 새로운 광명이 비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꿈을 포기해야 했고, 또 자신의 운명에 들이닥칠지도 모르는 온갖 고난을 감당할 각오를 해야만 했습니다. 실제로 마태오 복음 1장을 보면 목수 요셉은 약혼녀 마리아의 임신 사실을 알고 고민하면서 파혼할 결심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것 자체가 마리아의 삶에 커다란 위기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러나 마리아와 요셉은 믿음의 사람이었기에 그들 운명에 닥쳐온 위기를 믿음으로 극복하게 됩니다. 어쩌면 믿음으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다는 것은 끝없는 위기의 연속이고 자기 자신에 대한 도전인지도 모릅니다.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아들 예수를 낳았을 때(루가 2,1-7), 아기 예수를 살해하려는 헤로데의 흉계를 피하여 먼 이집트로 피난살이를 떠나야 했을 때(마태 2,13-23),

아들 예수가 열두 살이 되어 예루살렘 성전을 참배하러 갔다가 아들을 잃어버렸을 때(루가 2,41-52), 예수가30살 장년의 나이에 갑자기 출가했을 때(마르 1, 9-11),

집 떠난 아들 예수가 미쳤다는 소문이 돌아서 그 아들을 찾기 위해서 온 갈릴래아를 뒤지고 다닐 때(마르 3,22),

아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서 단말마(斷末魔)의 비명을 지르면서 죽어 가는 모습을 십자가 아래서 지켜보고 있었을 때(요한 19,25-27), 마리아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면서 하느님을 원망했을지도 모릅니다.

  

마리아는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라고 대답한 이후 끊임없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고, 그 때마다 쓰러지려 하는 자기 자신을 하늘을 바라보면서 곧추세워야 했을 것입니다. 마리아에게 믿음이 없었더라면 구세주 예수의 어머니가 될 수도 없었겠지만, 평생을 통해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유혹과 시련의 시간을 극복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응답한 마리아의 그 믿음이 평범한 한 여인을 무한히 강한 여인으로 만들었습니다.


성서는 믿음의 여인 마리아를 아주 담담한 필체로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을 뒤집어 보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기막힌 사연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쓰러지지 않았고, 기막힌 운명을 딛고 아들 예수의 십자가 아래에서 아들이 당하는 고통 이상의 아픔을 겪으면서, 아들의 구원 사업에 동참하고 있었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성서가 우리에게 담담한 모습으로 마리아를 전해 준다고 해서 구원 역사에 있어서 마리아의 역할을 과소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철저한 믿음으로 하느님의 부르심에 “예”하고 응답한 마리아라는, 여인이 있었기에 구원의 역사는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구세주로서의 당신 사업을 완수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마리아의 피눈물이 있었음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마리아는 우리 인류 앞에 구원의 새로운 역사를 열어 놓기 위해서, 아들 예수의 십자가의 승리를 위하여 철저한 믿음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희생하셨던 분입니다. 우리가 오늘 기념하는 성모 승천은 마리아의 믿음과 희생이 거둔 승리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엘리사벳은 자신을 찾아온 마리아에게 이렇게 인사합니다.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 우리 또한 성모송을 외을 때마다 “여인 중에 복되시며‥‥‥”하고 마리아를 칭송합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복됨은 믿음 안에서의 복됨이지, 세속적인 차원에서의 복됨이 아닙니다. 세속적인 차원에서 이야기하자면 마리아는 참으로 비운의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아들 예수로 해서 복된 여인이 되었고, 오늘 하늘에 올림을 받는 영광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월요일 새벽에 참으로 감격스러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다름 아닌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황영조라는 마라톤 선수가 일본 선수를 제치고 우승을 차지한 사건이 바로 그것입니다. 실로 대한민국 건국 이후 온 겨레가 처음으로 다 함께 기쁨을 맛보는 순간이었습니다. 황영조 선수는 우승 소감을 밝히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골인 지점 100미터를 남겨 두고 우승을 확신했으며 제일 먼저 어머니가 생각났습니다. 오늘의 이 영광은 어머니의 정성 덕분입니다. 어머니는 오늘도 나를 위해 절에서 불공을 드리고 계실 것입니다.”(조선일보, 8월 11일자, 3면).

  

삼척 바닷가에서 조개나 미역을 따는 해녀인 황 선수의 어머니 이만자(李萬子 54세) 씨. 황 선수가 마라톤으로 세계를 제패하게 된 그 뒤에는 황 선수의 어머니의 기도와 눈물이 있었고, 바로 그 정성과 기도가 황 선수를 우승하게 한 것입니다. 어촌에서 가난하게 그리고 소박하게 살면서 오직 아들이 세계를 제패하기를 온갖 정성을 들여 기도했을 어머니의 뒷바라지가 없었더라면, 황 선수의 오늘은 없었을 것입니다. 황 선수의 고향 마을에서 모든 사람들은 황 선수의 어머니를 복되다고 칭송할 것입니다. 황 선수로 해서 이만자 씨는 영광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시지만, 동시에 마리아라는 한 여인의 아들입니다. 예수께서 한 인간으로서 이 세상에 오시어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구원 성업을 완수하시기까지 어머니 마리아의 기도와 정성, 그리고 그 피눈물나는 희생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성모 승천 대축일은 우리에게도 커다란 위안과 희망을 안겨 주는 축일입니다. 하느님은 아무리 작고 미소한 자라 할지라도, 믿음 위에 굳게 서는 사람을 통하여 당신의 큰 능력을 드러내시고, 당신의 도구로 쓰시어 영광을 주신다는 사실이 성모승천 사건을 통하여 입증되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인사를 받고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구세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 설렙니다. 주께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온 백성이 나를 복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해주신 덕분입니다. 주님은 거룩하신 분, 주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는 대대로 자비를 베푸십니다.”  마리아의 노래처럼 이 세상에서 정말 복된 사람은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그래서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 그가 정말 복된 사람입니다.

  

마리아의 복됨, 그것은 하느님 위에 자신을 세우는 사람의 복됨입니다. 이 세상사람들은 누구나 곧게 서기를 원합니다. 쓰러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정말 자신을 바르게 세우기 위해서는 하느님 위에 자신을 세워야 합니다. 그에게는 하느님의 나라가 선물로 주어집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힘으로 서려고 하는 사람은 쓰러지게 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능력과 재주, 그리고 이 세상 재물에 의지하는 사람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 안에서 하느님을 바탕으로 서는 자는 결코 쓰러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하느님의 능력에 참여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게 됩니다.

  

하늘의 문을 열고 승리자가 되시어 개선하신 마리아의 위대한 믿음을 본받도록 합시다.











5    성모승천대축일  루가 1,39-56     "성모마리아, 나의 모친"   

최기산 신부



사랑의 어머니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인기도 측정에는 여러 가지 기준이 있겠지만, 정이 많은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그 기준은 아마도 눈물일 것이다. 눈물을 많이 흘리게 했으면 그 프로그램은 성공한 것이다. 한때 ꡐ여로ꡑ라는 작품이 국민들의 마음을 뜨겁게 달구어서 많은 눈물을 흘리게 했다. 그 시간만 되면 길거리가 숨죽인 듯이 조용했다. 눈물을 흘리게 한 프로그램 중에 ꡐ이산가족 찾기ꡑ도 압권이었다. 나는 눈물이 메마른 사람인데 그때는 정말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 프로그램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장병들과 함께 했던 한 방송사의 프로그램은 한국인의 어머니 사랑에 대한 의미를 깊이 조명한 좋은 프로였다. 어머니와 아들과의 뜻밖의 만남을 보던 장병들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많은 이들이 함께 울었다. 어머니가 고맙기 때문이었다. 어머니! 불러보고 또 불러봐도 따뜻한 이름이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저승으로 어머니를 보낸 이들은 ꡐ어머니ꡑ라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살아 생전에 못 다한 효도가 못내 아쉽고 이젠 하고 싶어도 계시지 않는 어머니기에 어머니라는 노래만 나와도 그냥 눈물이 배어나는 것이다.



시골 장터엘 가보면 길옆에 나물을 조금 쌓아놓고 팔거나 총각무를 몇 단 놓고 파는 여인들이 있다. 다 팔아봐야 6000~7000원 정도 하는 값어치다. 머리에 수건을 쓰고 부르튼 손으로 물건을 파는 그 여인들은 누구를 위해서 그렇게 팔고 있나! 햇볕에 그을린 얼굴, 주름진 그 얼굴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읽는다. 그들은 자식들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혹은 학용품을 마련하기 위해서 그렇게 뙤약볕 아래에서 팔고 있는 것이다. 자식을 사랑하기에 흙과의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자식을 사랑하는 그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어린 자식이 아파서 헛소리를 하면, 어머니는 밤을 지새우면서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고 묵주의 기도를 드린다. 밥 먹을 생각도 않고 잠을 잘 생각도 없이 애타는 마음으로 자식만을 바라보는 그 마음을 어머니가 아니면 누가 알겠는가!



비정한 어머니

사랑의 어머니라는 인상과 달리, 오늘날 우리들 주변에서 너무도 많은 비정한 어머니들이 생겨나고 있다. 낙태,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한국인은 예로부터 서양인들과 달리 수태하는 순간부터 인간으로 생각하여 나이를 한 살로 따졌다. 서양인들은 세상에 태어나야 나이를 먹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이 맞는 이치다. 인간은 수태의 순간부터 인간으로 존경받아야 한다. 이것이 교회의 가르침이다. 교회는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나라의 일부 어머니들과 전 세계의 많은 어머니들은 자식을 살해하는 낙태를 죄의식 없이 자행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혼율의 급증으로 가정이 파괴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IMF 이후 많은 가정이 파탄했다고 한다. 가정의 파탄은 자식을 버리는 결과로 나타난다. 어떤 어머니는 자식을 유흥가에 팔아먹는, 어처구니없는 세상이 되었다.



성모마리아 

성모님은 하느님께 특별히 뽑힌 여자였다. 그녀는 원죄 없이 잉태되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아들을 낳으실 어머니였기에 하느님께서 그렇게 뽑으셨다. 성모님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어머니 시다. 우리도 교회의 일원이기에 그분은 우리의 모친이 되신다. 또 사도 요한에게 ꡒ이분이 그대의 어머니다ꡓ라고 하신 말씀은 곧 우리의 어머니도 되신다는 말씀이다.



성모님은 사랑의 어머니 시다. 그분은 원죄가 없으시기에 죽어서 썩는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으셨다. 왜냐하면 인간이 죽고 썩는 것은 원죄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모님은 무덤에서 썩을 이유가 없으시기에 승천하셨다. 교회는 이렇게 말한다. ꡒ마침내 티없이 깨끗하며 조금도 원죄에 물들지 않았던 동정녀는 지상 생활을 마친 후에 영혼과 육신이 천상 영광에로 부르심 받아 주님께로부터 천지의 모후로 추대 받았다. 이로써 마리아는 다스리는 자들의 주님이시며 죄와 죽음에 대한 승리자이신 당신 하느님을 더욱 완전히 닮게 되었다ꡓ(교회헌장 제59항, 교황 비오 12세의 성모승천교리 선포 DS 3903 참조).



성모마리아는 과거의 어머니로서만 존재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분은 2000년 전에만 계셨던 것이 아니다. 지금도 우리의 삶 속에서 만날 수 있는 분이시다. 때로는 말씀으로, 때로는 느낌으로 우리에게 당신의 뜻을 전하신다. 교회의 역사 안에는 성모님의 발현을 생생하게 전하는 산 증언들이 많이 있다. 루르드, 파티마, 과달루페 등등의 지역에서 당신의 모습을 보여 주시며 당신은 지금도 우리와 말씀하실 수 있고, 사랑을 나눌 수 있음을 몸소 드러내셨다.



오늘도 우리가 힘들고 지쳤을 때 그분은 우리의 힘이 되어 주신다. 고난 속에서, 절망 속에서 성모님께 다가가면 그분은 손을 내밀어 잡아주신다. 그분은 비정한 어머니가 아니시다. 그분은 지극한 사랑의 어머니 시다. 우리가 언젠가 이 세상을 하직하고 나면 그분은 우리의 손을 잡고 하늘나라로 우리를 데려 가실 것이다.











6   성모 승천 대축일  루가 1,39-56     신앙의 어머니 마리아  

김수창 신부



 15년 전 어느 날, 한 군종 신부님이 찾아와 성모상이 꼭 필요하다면서, 도와달라고 하여 모금해 드린 적이 잇다. 사연인즉, 어느 일선 부대 사병이 답답한 심정을 알아주는 이도 없고, 하소연할 데도 없어서, 그만 자살을 했는데, 부대의 성당 마당에 성모상이 있었다면, 그 앞에서 기도하고 넋두리라도 해서 살았을 것이라는 일기장의 글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라도 성모상을 모시고 싶어서 도움을 청한다는 것이다.



용기와 위로를 주시는 어머니

성모님은 우리 고달픈 마음에 위로와 용기를 주신다. 길을 가다가 멀리서 성모상이 보이면 반갑고, 그때부터 마음이 편안해진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매달려 그 고통 속에서도 어머니와 제자들을 내려다보셨다. 제자들은 스승의 운명을 지켜보며 중심을 잃고 실의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를 제자들에게 내어주셨다.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하시고, 그 제자에게는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이 때부터 그 제자는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다"(요한 18,25-27).



그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성모님을 어머니로 모셔왔다. 성모님을 모시는 것은, 남편도 아들도 죽고, 의지할 데 없는 외로운 성모님을 경로(敬老) 정신으로 모시고 효도했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스승을 잃은 제자들이 성모님을 모심으로써 안정을 되찾고, 주님의 소명의 길을 갈 수 있었다는 그런 의미이다.

  

그래서 초대교회 때부터 신자들은 성모님을 극진히 모셨다. 예수께서 승천하시고 제자들이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면서, 주님의 약속하신 성령을 받을 때, 거기 성모님이 계셨다. 그 후 성모님을 찾아뵈올 수 없는 사람을 위해 성모님의 초상화가 제작되었다. 성모님의 초상화는 초세기부터 유명하였다. 그때는 성화(聖畵)가 아주 귀한 때이기 때문에, 다함께 성모화를 모시기 위하여 성당을 짓기도 하였다.

  

로마의 3백 년 박해가 끝나고 나서, 우리 교회는 여러 가지 신학적인 문제가 야기되었다. 예수께서 하느님의 아들인가? 마리아께서는 천주의 모친인가? 하는 문제의 시비와 성화상(聖畵像) 논쟁은, 당시의 교회와 정치 사회에 큰 혼란을 가져왔다.

그런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의 천주성과 마리아 ‘천주의 모친' 교리가 정통교리로 선언되었다. 성화상 논쟁이 대립과 투쟁과 박해로 얼룩지면서도 “성화상을 공경하는 사람은 그것이 표현하는 인물을 공경하는 것이다"라는 교시로써 대충 해결을 보았다.



오늘도 이집트의 동남부에 가면, 안토니오와 바울로의 4세기 수도원이 있다. 거기에는 벽화의 여러 곳에 성모자상이 있다. 당시의 일반 신자들은 문맹자였고, 또 교리서도 구입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교리 논쟁을 알아듣고 판단할 능력이 없었다. 그들에게 마리아께서 천주의 모친이라는 것을 가르치는 데는, 그림보다 좋은 것이 없었을 것이다. 성모 마리아께서 예수 아기를 안고 계시는 그림은 보는 이에게 많은 가르침과 교훈을 주었을 것이다.



그 성화들이 전문가의 작품이 아니라서 그림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성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요사이 우리나라 성물 판매소에서 판매되고 있는 성모상들은 성스러움이 느껴지지 않고, 장사꾼의 상업적인 냄새만 풍긴다.



무속, 기적, 자기 중심적 성모신심

우리 한국 천주교 신자들은 성모신심에 관심이 많다. 무속(巫俗) 신앙의 성모 사상에서 받은 영향인지, 또는 불교의 보살 앞에서 절하던 습성에서 생긴 것인지 모르겠다. 흑은, 엄격하고 절대적인 남성위주의 가부장적 사회 풍토에서 정당한 요구도 통하지 않고 대화도 어려웠던 때, 융통성이 있고 부드러운 어머님이 숨통을 터 주던 습성에서 성모님에 대한 신심은 정신적 돌파구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한국인의 무속과 불교의 영향, 그리고 사회풍토와 함께 로마와 프랑스 천주교회의 성모신심이 흘러들어 부합되면서, 한국에는 성모신심이 자연스럽게 널리 수용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성모신심의 양상들을 보면 너무 자기중심적인 요소가 많다. 천주교는 마리아를 믿는다는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는 그런 처신을 하는 교우들도 있다.

성모님의 기적, 성모님의 메시지 등에 광신적으로 몰입하는 사람, 성모님의 눈물, 피눈물에 정신이 나가는 사람 등, 도대체 기적에는 맥을 못추는 사람이 많다. 정말 기적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기적이 났다면 무조건 덤벼드는 것이 한국인이다.



성모상도 보면 장사꾼의 상업적인 것이 거의 대부분이다. 작가들이 만들어 놓은 것도 도대체 볼만한 것이 별로 없다. 교우들 중에는 어딘가 슬프게 보이고, 못생기고 소외된 듯한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 민족이 한 많은 고난을 겪어와서 그런지, 기쁨보다는 슬픔에 더 잘 공감한다. 그래서 이웃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지 않으면서도, 이웃의 슬픔에는 곧잘 동참한다. 그래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고, 초상집에 가서는 밤새도록 울고 나서 누가 죽었느냐고 물어본다는 말도 있다.

슬픈 곳에 가서는 무조건 울고 보는 것이 우리민족이다. 그래서 희극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비극을 보면서 실컷 울어야 후련해 한다. 그런 심성을 가진 우리 한국인이 자기의 한 맺힌 슬픔과 불행을 성모상에 투사하여 서로의 팔자가 같다는 마음으로 울면서 기도하고 후련해 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것으로 토착화 할 성모신심

이제는 우리나라 성모신심의 여러 가지 형태를 정리하여 올바른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 가장 흔하게 있는 것이 루르드나 파티마의 성모상이다. 외국의 지명(地名)을 붙인 성모님보다는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생각하면 좋겠다.

지명을 붙이려면 ‘한국의 성모님'이나 또는 ’서울의 성모님', ‘남북 통일의 성모님' 등 성모신심을 우리의 것으로 토착화해야 할 것이다.



성모님께서는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당신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 바랍니다"(루가 1,28) 하시며,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려고, 주님의 뜻을 받아들임으로써 구세사에 등장하신다. 그리고 한평생의 모든 고난을 하느님께 바치며, 주 예수님의 생명과 소명을 함께 하셨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참으로 복되신 분이시다. 그것은 요행히 주님의 모친이 되는 특은을 받았다는 그런 의미에서가 아니다.



성서에서는 그분이 복되신 이유를 네 가지로 말씀하신다. “주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고"(루가 1,28), “주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시고"(루가 1,45),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지키는 사람"(루가 11,28)이시기에 복되신 분이시다.



우리도 미신적인 사고방식으로 무턱대고 빌며 억지스럽게 매달리기만하는 답답한 신자가 되지 말고, 성모님의 가신 길,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믿고 실행한 그 생애를 본받으면서 성모님을 공경해야 할 것이다.



오늘이 성모 승천 대축일, 즉 성모님이 귀천(歸天)하신 날이다. 성모님의 지상생활은 이미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하느님 나라의 생활이었다. 성모님의 별세는 지상생활의 소명이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도 이 세상에서부터 하느님의 나라 안에 살아야 성모님과 함께 사는 사람이 되며, 성모님과 함께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나이다"(루가 1,68). 











7   성모 승천 대축일   루가 1,39-56   엘리사벳을 방문하심과 성모찬가

최석우 신부



성모님과 한국교회

5월은 성모성월, 즉 특별히 성모님께 바쳐진 달이다. 성모성월이 되면 요새는 “성모의 밤”이란 행사가 유행하고 있지만 옛날에 아직 그런 행사가 없을 때 우리 교우들은 “성모성월”이란 기도서를 가지고 빠지지 않고 날마다 성월기도를 바쳤다. 이런 좋은 관습도 어느 사이엔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요즈음 이 성모성월 책에 대해 두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불문학을 전공한 한 수녀의 말에 의하면 “성모성월”은 훌륭한 문학작품에 속한다는 것이다. 19세기의 프랑스 선교사들이 우리말로 번역하고 저술한 교회서적 중에는 프랑스 문학 작품도 포함되어 있는데 “성모성월”이 그 하나라는 수녀의 말이었다. 또 최근에 나는 한 여 교우의 방문을 받았는데, 사연인즉 인쇄비를 다 책임질 것이니 성모성월을 맡아 출판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 여 교우의 말인즉, 성모성월의 기도문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10여년간 이 책을 갖고 성모성월을 바쳐왔으며, 이제 이 아름다운 책을 널리 보급시키기 위해 그것을 자비로 출판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성모에 대한 신심이 점점 식어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왔었다. 그러나 이상 두가지 놀라운 사실에 접하게 되자, 한국교회의 오랜 전통이라 할 수 있는 성모께 대한 각별한 신심이 아직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초기 한국교회의 신자들은 매일 묵주기도5단을 바쳤고, 주일이면 15단을 바쳤다. 1801년에 순교한 홍 낙민이란 사람은 배교했다가 다시 배교를 취소하고 순교의 영광을 차지하게 되었는데, 이것을 그가 매일 묵주기도를 궐하지 않고 바쳤기 때문에 성모님으로부터 받은 특별한 도움이었을 것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103위 성인 중의 한분인 성 남 영혁 다미아노에게 한 교우가 “당신이 치명을 하면 어떻게 당신을 부를까요”하고 물었더니, 다미아노는 “성의회 회원인 치명자 다미아노로 불러주게”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다미아노에게 있어서는 생전에 성의회 회원이었던 것이, 순교에 못지않은 영광이었다.



한국교회에는 해성, 즉 바다의 별이라는 이름을 가진 학교나 단체가 많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19세기의 선교사들은 거의 모두가 배를 타고 한국에 몰래 들어와야 했다. 그런데 조각배를 타고 넓은 황해를 건넌다는 것은 여간한 위험이 아니었고, 그래서 선교사들은 한결같이 바다의 별이신 성모님께 특별한 보호를 청했고, 그 결과 선교사들이 모두 무사히 우리나라에 들어올 수 있었다.



성 김대건 신부가 황해를 횡단하던중 폭풍을 만나 난파되었을 때 성모님의 특별한 도움으로 구조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사실이다.



성모님이 한국교회에 특별히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해 한국교회는 결코 감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한국교회가 1841년에 무염시태의 성모를 한국교회의 새 주보로 모시게 된 것도 실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때까지 한국교회의 주보는 성요셉이였는데, 성모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에 보답하고자 주보를 성모로 바꾸어 주도록 한국교회에서 청원한 때문이다. 이어 한국교회가 파리에 본부를 둔 성모성심회(원명은 무염시태성모회)에 가입하고, 공부지방의 한 두메 공소에서 성모신심께 처음으로 봉헌미사를 올린 것도, 사실은 한국교회에 대한 성모님의 특별한 보호에 감사하고 계속 그러한 보호를 보증받기 위해서였다.



그 후에도 한국교회는 특별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성모님께 대한 감사와 봉헌을 새롭게 했다. 1866년에 있었던 병인박해 이후 10년만에 한국에 다시 들어오는데 성공한 리델 주교는 다시 한국교회를 성모님께 봉헌하는 동시에 성모님께 한 서약을 지키기 위해 루르드의 대 성전안에 한글과 한문과 라틴어로 된 대리석 기념비를 세웠다.



대구 교구 주교관 옆 광장에 높이 세워진 성모동굴에는 매일 순례자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 동굴 역시 성모님께 대한 대구교구 주교의 서약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대구교구의 안주교는 1911년 대구에 부임하면서 만일 주교관과 신학교 등, 교구의 기본시설을 마련해 주시면 성모님께 기념동굴을 마련해 드릴 것을 서약했었다. 성모님은 그 주교의 청을 들어주셨고, 주교 또한 성모님과의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였다.



한국교회는 1954년 성모성년에 즈음하여 또 다시 성모님께 봉헌되었고, 마지막으로 200주년을 맞아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다시금 봉헌되었다. 봉헌에 앞서 교황께서는 5월6일 아침 명동성당에서 한국교회와 성모님과의 특별한 관계에 언급하시면서 봉헌의 필요성을 이렇게 강조하셨다. “한국 겨레의 운명에 있어서 성모축일과 날을 같이한 일들이 여러번 있었습니다. 근래에 와서는 1945년 8.15해방이 그런 일입니다.” 조선교구의 주교좌 성당이었기 때문에 한국교회의 주보인 무염시태의 성모를 동시에 성당 주보로 모시게 된 영광을 가진 명동 대성당은 처음으로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교황성화를 모시고 한국교회의 주보인 성모님께 한국교회를 다시금 봉헌하는 영광에 참여하게 되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한국 순교성인에 대한 공경과 신심이 점점 식어가고 있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성모님께 대한 신심도 혹시 함께 식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모성월을 맞으면서 한번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성모님과 성인을 공경하는 이유는 한편으로는 그들의 신앙과 성덕을 본받고, 또 한편으로는 우리와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을 그들의 전구를 통해서 얻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우리 성인이 주어진 것은 특히 우리가 성인을 본받고 또 우리 성인에게 전구를 청하기 위해서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여의도에서 거행된 시성식에서 이제는 여러분이 순교성인들을 본받아 증언을 할 차례라고 하시면서 한국성인들이 우리 한국인의 신앙의 모델로 주어진 것을 강조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교자들의 신앙을 본받아 우리의 무기력한 신앙을 닦고, 연마하고, 쇄신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우리 순교성인을 공경함으로써 우리에게 전해진 한국교회의 순교 전통을 지키고 발전시켜야 한다면 우리의 순교선열들이 이룩해 놓은 성모께 대한 각별한 신심의 전통도 마땅히 지키고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무엇보다도 성모님이나 우리 성인들을 공경하는 것이 그리스도께 대한 공경과 신심을 손상하거나 방해하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그것을 더해 준다는 사실, 또 그것이 바로 지난 공의회의 정신임을 잊지말아야 할 줄로 생각된다.









8   성모 승천 대축일   루가 1,39-56     엘리사벳을 방문하심과 성모찬가 

최석우 신부



성모성년과 여성

현대여성 성모 모성 본받아야



성모 성년은 역사상 1954년과 1987년 두 번 발표됐다. 이번 강론 주제인 ‘성모 성년과 여성’을 이야기한 1백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실시한 것이다.



이번 두 번째 성모 성년은 다가온 2천년대 교회를 신자들이 잘 준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실시되고 있다. 서기 2000년전은 예수그리스도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성모 마리아를 통해 이땅에 내려 오신지 2천년되는 기념비적인 엄청난 해이다. 이날을 우리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맞이할 수 는  없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인류 구원사업에 동참하는 ‘하느님의 백성’인 모든 성직 수도자 평신도들이 자신을 반성하고 신앙을 새로이 단장, 몸과 마음을 준비하는 성격을 띠는 것이다. 이 ‘준비’한다는 특성 때문에 1차성년의 단순한 ‘기념’과 구별된다.



그런데 13년전인 1987년에 준비한 이유 중 중요한 것은 성모님의 탄생연도와 관련된다. 신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당시의 조혼풍습에 따라 성모 마리아는 13세부터 18세사이에 결혼, 예수님을 낳았다고 하며, 이를 역산하면 기원전 13~18년경이 성모 마리아가 태어난 해라는 것이다. 즉 성모마리아의 탄신해를 기점으로 그리스도 강생(降生) 2천년전을 준비하는데 이번 2차 성년의 의의가 있다.



성모 성년반포로 일반 신자들은 영성적인 새로운 깨달음을 가지고 또 믿음을 견고케해야하며 이러한 믿음의 모델을 성모님에게서 구하는 자세가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그렇다면 성모님에게서 오늘날 여성들은 어떤 믿음의 모델을 배워야 할까?

제일 중요하고 핵심적인 것은 ‘어머니상’ 과 ‘믿음의 여성상’ 두가지다.



이 어머니상은 반드시 자식에 대한 육친의 지위로서의 어머니만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이웃의 어머니, 가정의 어머니등 어머니의 역할과 사명의 차원에서 넓게 해석해야 한다.

또 이것은 예수께서 마지막 십자가상에 매달려 유언으로 ‘어머니 여기 당신 아들들이 있습니다’ ‘이분이 바로 네 어머니시다’라고 하실 때의 바로 그 어머니이기도 하다.

성모 마리아는 예수를 잉태하는 순간부터 하느님의 말씀을 참으로 충실히 따르는 ‘믿음의 여성’이었다.



성모님도 처음에는 아들에게 적지 않은 실망을 했음에 틀림없다. 12살된 예수가 어느날 갑자기 가출 사흘동안이나 아들을 찾으러 온갖 곳을다 뒤질 때의 어머니의 마음은 오죽했으랴. 겨우 사흘만에 성전에서 찾은 예수가 ‘어머니, 왜 자꾸날 찾습니까’ ‘아버지 일 때문에 여기와 있습니다.’라고 상식을 넘어선 대꾸를 할 땐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을 것이다.

십자가에 달릴 때도 ‘어머니, 저는 먼저 갑니다.’ ‘죄송합니다’ 와 같은 인간적인 말은 한마디도 없이 ‘당신의 아들들이 저기 있습니다’며 성모님이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예수가 했을 때 그 답답한 심정은 말할 나위도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모 마리아는 인내와 믿음으로써 이를 극복하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인류 구원사업이 성공할 수 있도록 헌신했다. 여기서 우리는 아들의 정신적인 발전을 저지하지 않고 그것을 따라가는 ‘정신적인 어머니’ ‘제2의 어머니’를 엿보게 된다.

오늘날은 흔히 어머니가 없는 시대라고들 한다. 가정을 잘 지키지 않는 어머니도 적지 않고 자식한테는 결코 양보하지 않으려 하며 자식에게 원하는 것도 자식이 잘되기보다는 어머니의 만족을 위한 경향이 점차 늘고 있다. 이는 육체적 어머니역할은 하나 정신적인 어머니 역할이 빈곤한 때문이다. 자녀장래를 위해 자신의 고집을 버릴 때 정신적 어머니로서의 성장이 가능할 것이다.



성모마리아에게서 발견되는 인정(人情) 봉사 헌신의 미덕이 현대여성에게서는 찾기 힘드는 주된 원인은 바로 ‘에와’가 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즉 순종이 없다는 말이다.

아우구스띠노 성인은 ‘여성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이는 오늘날 소위 여성해방운동가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 만약 여성해방운동이 여성자체(육체적, 정신적 어머니의 역할 및 모성애등 전통적이고 여성고유의 가치)를 벗어나는 것이라면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에와’가 자신의 지위를 벗어남으로써 세상에 죄악을 가져온 사실을 상기할 때 잘 드러나는 이치이다.



이 세상에서 받아들일 줄 모르고 축복받지못하는 여성만큼 불행한 여성은 없다.

제2차 성모성년의 폐막을 얼마 앞둔 이 시점에 오늘날 어머니들은 아들의 고통까지 기꺼이 받아들이는 성모님의 어머니상과 인류 구원사업에 스스럼없이 내놓은 당신 모성애를 본받아야할 것이다.











9   성모 승천 대축일   루가 1,39-56     엘리사벳을 방문하심과 성모찬가 

민병덕 신부



성모의 승천은 인간의 완성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2000년의 축제는 동시에 그분의 어머니를 바라보게 한다(구세주의 어머니 회칙3).



대한독립 만세

오늘은 우리나라가 일본식민지로서의 36년사를 마감했으며, 그 감옥에서 해방된, 독립기념일이다. 아직도 긴가민가 하지만, 얻은 이 해방의 기쁨이 분명하게 점점 큰 기쁨으로 기념되기를 기도한다. 또한 성모님의 축일중에 큰 축일인 오늘의 기쁨과 합하여, 네배, 백배, 만배의 기쁨으로 후손대대에 이어지기를 기도한다.



성모승천대축일

오늘 성모 승천 대축일은 많은 성모님의 축일중에서 성인들의 사망일을 기념하는 풍습에서 기인되었다. 이 축일의 시작은 명확하지 않으나, 초대교회부터 믿어온 사실로 6세기경 “성모의 귀향축일”로 8월 15일에 지켜오다가 1950년 교종 비오12세에 의해 공식 교의로 선포되었다. 성모 승천 대축일은 “성모님의 육신과 영혼이 함께 하늘에 올림을 받아 영광스럽게 되셨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임을 확인한 것이다. 비오12세는 이 진리의 근거를 성서에서 찾으셨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곧 그리스도인의 부활”이라는 성서적 근거(1고린15,14-57)이므로 성모님도 부활하셨고, “주께서 함께 계심”(루가1,25), “여인 중에 축복받으심”(루가1,42)으로 얻으신 그 은총과 축복의 가득함에서 성모님의 승천이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오늘 성모님의 대축일에 구하는 것이 하나 더 있다면, 우리나라의 모든 여자들이 성모님과 꼭같은 축복을 받도록 기도한다. 요즈음 우리나라의 미래가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적 차원에서 희망적이지 못하기에, 우리의 미래인 어린아이들을 양육하는 모든 어머니들에게도 성모님과 꼭같은 축복이 있어 우리 모두의 축복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오늘의 복음

오늘 복음은 루가 복음에서만 발견되는 머리말에 이어,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탄생․사랑을 그린 1,5-2,52의 중간부분(1,19-56)이다. 우리는 이 말씀을 ①1,39-45 : 엘리사벳의 노래 ②1,46-56 : 마리아의 노래로 나눈다. 오늘은 주로 마리아의 노래를 묵상한다.



마리아의 노래(마니피캇)

기도하는 이에게는 낯설지 않은 이 노래는 6세기부터 성무일도의 저녁기도 중에 매일 노래되어왔다. 기쁨의 찬미가이다. 또 엘리사벳의 노래는 그 어휘의 원문연구․사용 횟수를 떠나, 그냥 성서를 읽어 봐도 “뛰놀았다”“축복받았다”등의 기쁨을 뜻하는 단어들이 유별나게 많이보인다. 기쁨을 노래한 ‘엘리사벳’의 노래와 함께 그 응답처럼 보이는 마리아의 노래는, 그 기쁨의 이유를 드러내는 ‘기쁨찬미가’이다.



세상 정상(頂上)들의 만남

‘엘리사벳의 노래’는 정상들의 만남을 기뻐함이다. “태어난 사람 중에서 가장 위대한(루가7,28)세례자 요한과 하느님의 아들(루가 3,22), 그리고 그 어머니들의 정상회담의 기쁨을 노래한다. 인간을 지배하는 정상들의 모임이 아니라 그 백성을 섬기는(루가 22,24-27)정상들의 만남이기에 그 구원의 기쁜소식을 마리아가 노래한다. 세상 신문에 날 기쁜소식이다.

세상 모두가 신명날 텔레비전뉴스 특종감이다. 이 소식을 아시는 인류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께서 손수 지어 자녀들에게 들려주시는 자장가이며, 교육시키는 노래가 ‘마리아의 노래’이다. 어깨춤이 절로 나온다. 성모님과 함께 손을 뻗고 발을 차올리며 몸 흔들어 노래 불러보자! 얼씨구 절씨구~, 닐니리야! 알렐루야! 만세!



인간해방 만세!

성모님이 지으셔서 이쁘시게도 부르셨을 그 노래를 우리 모두의 노래로 함께 따라 불러본다. -기뻐날뛰는 곡조로.

46; 내 영혼이 주를 찬송하며, 47;나를 구하신 하느님께 내 마음 기뻐 뛰노나니, 48;당신 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로다.(왜냐하면)이제로부터 만세가 나를 복되다 일컬으리니, 성모님의 마음속 그 깊은 곳에서부터 하느님 찬양노래가 터져 나온다. 이 찬양은 글자 그대로 예언적 지칭인데, 여기서 하느님은 한 여인의 기쁨에 찬 신앙고백 속에서 ‘이미 그러나 아직’의 세상종말론적 구원자로 당신을 밝히 드러내신다.



성모님은 여기서, 구약의 예언자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약속된 ‘하느님 구원’이 자신에게 이루어졌음을 고백하는데, 이유는 예수님도 ‘행복선언’(마태 5,3)에서 드러내신 그 이유: 비천하고 가난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종으로 자처하며 가난한 사람으로 자처하는 여인을 하느님은 하느님나라의 왕이신 하느님 자신의 어머니로 택하시어 그 행복을 증명하신다. -스스로 자신을 겸손하게 가난한 여인으로 청하는 모든 어머니에게 하시는 약속의 여인이시며 이루어졌고 이루어진다. 약속을 지키소서! 주여.



49; 능하신 분이 큰일을 내게 하셨음이요 그 이름은 ‘거룩하신 분’이시로다. 50; 그 인자하심은 세세대대로 당신을 두리는 이들에게 바치시리라.

전능하심, 거룩하심, 자비하심은 전적으로 하느님만의 특징이다. 하느님께 아주 걸맞는 칭호이다. 하느님은 생명이시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끌어 가신다. 그 하느님은 전능하시어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셨고 그 전능하심으로 세상을 완성하셨으며(이미 그러나 아직), 완성하실 그 큰일을 비천한 여인과 함께 하신다.



그 거룩하신 하느님의 특징인 자비 때문에, 아담의 원죄(하느님의 제의를 거절한 여인=하와)로 인간이 잃어버린 그 낙원을 겸손한 한 여인의 순종 때문에 새롭게 창조하신다. 그래서 잉태되어 태어나는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인간 창조의 끝없는 새로운 시작이며, 그러기에 이 하느님의 자비에서 시작된 하느님께서 희망하시는 겸손한 이들의 신앙고백으로 모든 세상은 매일 새롭게 재창조되고 완성되어 간다. 그 첫 인간이 예수이시고, 이 예수를 닮아, 따라 사는 모든 이가 그들이다. 51; 당신 팔의 큰 힘을 떨쳐보이시어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도다. 52; 권세있는 자를 자리에서 내치시고 미천한 이를 끌어올리셨도다. 53; 주리는 이를 은혜로 채워주시고 부요한 자를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성모님의 이 노래는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당신 민족을 연상케 한다. 부르짖는 이의 외침을 들어주시는 주님, 구하는 이에게 선물이신 주님이시다. 세상을 살아가며 하느님의 의와 그 뜻을 구하는 모든 이 부르짖는 소리를,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청을 들어주신다. 하느님께 의지하는 모든 이의 희망이 되신다. 그러나 하느님 반대편에 선 사람들에게는 정의의 심판자이시며, 그들을 벌하신다. 자신을 위해 세상을 사는 모든 이기주의자가 그들이다. 개인적 이기주의와 가족적․집단적․국가적․민족적․인종적 이기주의자들의 부요함의 이기주의를 주여 벌하소서(루가 6,24-26).



54; 자비하심을 아니 잊으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으니 55; 이미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위하여 영원히 우리 조상들에게 언약하신 바로다.

성모님께 베풀어주신 하느님의 자비하심은 당신의 민족, 그리고 당신같은 겸손한 여인들, 그 여인들의 후손들 모두에게 확장된다. 성모의 아들이신 예수를 주님으로, 본보기로 따르는 이들에게, 모든 익명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약속이 확장된다.



예수가 빵이 되어 성체성사 속에 부서지고 먹힘으로 예수와 일치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느님의 백성; 교회에게 계속된다. 그 끝까지.

-평화의 모후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10   성모 승천 대축일   루가 1,39-56     엘리사벳을 방문하심과 성모찬가 

함세웅 신부



오늘을 8월15일, 민족의 해방일인 광복절이자 성모승천 대축일이다. 자유와 빛을 되찾은 감격을 우리는 오늘 새롭게 기리고 있다. 일제 치하의 35년. 긴 어둠과 억압의 쇠사슬이 끊겨진 이날, 참으로 우리 민족은 새로운 창조의 시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해방과 함께 민족은 미․소 양국에 의해 남북으로 분단되었고, 이어 일어난 6․25전쟁으로 큰 골병을 앓게 되었다.



해방 전 독립군을 감옥에 잡아넣었던 일제의 앞잡이들이 미군정 아래서, 이승만 정권 아래서 또 그 이후에도 버젓이 활개치며 관리 노릇을 계속했다는 사실 자체가 바로 나라와 민족을 더 크게 병들게 한 원인이었다. 이것을 우리는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백범 김 구의 말과 같이 자유와 해방은 결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피땀의 노력과 죽음의 결단을 통해서만 실현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 시간에 또한 깨달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광복절을 참으로 파스카의 해방과 신앙 안에서 이해하고 그 의미를 찾아야 한다. 파스카는 하나의 탈출이며 새로운 시작이다. 묵은 것을 떨쳐버리는 결단의 행위다. 노예의 삶을 박차고 억압의 체제를 거부하고, 꿈과 이상을 지니며, 새땅을 이룩하는 개인과 공동체의 창조적 연대 작업이다.



때문에 파스카에는 회개와 뉘우침이 선행되어야 한다. 올바른 가치를 정립하고, 하느님을 우선으로 선택하는 결단이 참으로 요청되는 것이다. 그것은 아픔이자 결별이며 묵은 것과의 영원한 단절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만 자유와 해방, 기쁨과 축복, 일치와 평화의 선물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광복절을 그렇지 못했다. 일제의 잔재를 깨끗이 청산하지 못했기에 가치관이 전도되었고, 그래서 계속 허위와 기만과 은폐로 정치 도덕의 기초가 흔들려 병든 사회 현실을 가져왔다. 적어도 한번, 우리에게 과거 역사의 잘못을 청산하고 기워 갚는 아픔의 속죄와 보상이 꼭 필요했던 것이다. 모든 것을 묻어 둔 채 우리는 결코 새로운 것을 창출해 낼 수 없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흔적이 뚜렷이 새겨져 있다. 그러나 또한 이들을 박해하고 고문했던 갖은 형틀과 형구들이 청산되지 못한 유제(遺制)와 함께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다. 몸서리 쳐지는 것은 일제가 애국 선열들을 고문했던 그 형구, 그 형틀, 그 악법 그리고 그 방법이 그대로 이 현실에서 학생, 노동자, 민주 인사들에게 적용, 재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광복절의 현재적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짓밟는 그 어떤 어둠의 세력과 집단도 결코 빛과 자유를 이길 수 없다. 진정 광복절은 자유와 해방의 실현에서 그 참뜻이 나타난다.

아직도 고문이 자행되고 있는 슬픈 현실에서 우리가 과연 빛을 노래하고 찬미할 수 있는지 새삼 부끄러워진다. 나라와 겨레를 위하여 자신들을 불사른 선열들의 뜨거운 숨결을 우리 모두 확인하며 빛과 자유, 평화의 삶을 실현하자.











11   성모 승천 대축일   루가 1,39-56      엘리사벳을 방문하심과 성모찬가 

박진량 신부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비에 특별한 모양으로 관련된 한 인간이 승천한 축일을 기리기 위하여 모였습니다. 이 인간에게 교회는 ‘하느님의 어머니’ 라는 칭호를 드렸고 ‘원죄 없이 잉태’되셨으며, 지상 생애가 끝난 다음에는 ‘영혼과 육체가 영광스럽게 하늘에 올림을 받았다’고 선포했습니다. 그 분은 우리 주 예수님을 이 세상에 낳으신 동정 성모 마리아 이십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 분을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의 본보기’라고 특히 강조했습니다.



나는 여러분과 함께 성모님을 묵상하기 위하여 두 가지 관점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는 ‘올바른 성모신심’에 관한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헌장은 ‘마리아 공경’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신학자들과 하느님 말씀의 설교자들은 성모의 고유한 품위를 존중하는 데에 있어서 지나친 마음의 협소함(minis mentis angustia)과 마찬가지로 또한 온갖 거짓된 과장(omnis falsa superlatio)도 힘써 피하기를 간곡히 부탁하는 바이다. 그들은 교도권의 가르침에 따라 성서와 교부들과 교회학자들과 교회의 전례를 연구함으로써, 복되신 동정녀의 역할과 특전이 모든 진리와 성덕과 신심의 원천이신 그리스도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올바로 밝혀주어야 한다.



또 그들은 갈라진 형제들이나 다른 어떤 사람들이든지, 교회의 참된 가르침에 대하여 오해를 품게 할 수 있는 말이다. 행동은(sive in dictis sive in factis)무엇이든지 다 힘써 막아야 한다(sedulo arceant). 참된 신심은 효과 없는 일시적 감정(affectus)이나 또 어떤 허황된 신뢰감(oredulitas)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참된 신앙에서부터 나온다는 것을 신자들에게 상기시켜야 한다(meninerint). 그 참된 신앙에서부터 우리는 하느님의 어머니의 탁월성을 인정하게 되며 성모님께 자녀다운 사랑을 드리고, 그분의 덕성을 본받도록 자극 받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 주위에서 성모신심이 일반적으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살펴 봅시다.



- 본당이나 신자가정에 가보면 예수님 상은 없어도 성모상은 있습니다.

- 많은 신자들은 하느님 성삼의 아들보다 성모 마리아의 이름을 더 즐겨 부르는 것 같습니다.

- 어떤 사람은 하느님 삼위의 이름보다는 성모 마리아의 이름으로 더 많은 기적이 이루어지는 듯이 선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 우리는 다른 어느 성월보다도 성모성월을 한층 더 성대하게 외부행사로까지 지내고 있습니다.

- 요즈음 우리나라에서 전국 스케일의 천주교 행사는 거의가 성모님을 주로 찬미하는 행사 였습니다.



과연 이러한 성모신심이 공의회의 뜻대로 올바르게 그리스도 신비와 관련되어지고 있습니까? 혹시나 이런 성모신심 행사를 보고 갈라진 형제들이 천주교는 역시 ‘성모교회’라고 비평하지 않겠습니까? 이러한 신심들로써 우리는 성모님의 신앙과 사랑을 본받기보다는 오히려 그분의 덕택으로 횡재나 요행을 바라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는 마땅히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서 성모 마리아가 차지하는 그 비중에 알맞게 우리의 성모신심을 조절하고 무엇보다도 그분의 덕성을 본받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면 이제 초대교회가 가졌던 신앙의 객관화인 성서에서 성모님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좀 생각해 봅시다.



  복음에 보면 성모 마리아는 언제나 예수님과 관련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① 예수 성탄의 예고를 받을 때 성모님은 놀라서 “이 몸은 처녀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질문하셨고 천사의 설명을 듣고 나서는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큰 기쁨을 함께 나누고자 하여 친척 엘리사벳을 찾아가 거기서 3개월을 같이 지내셨습니다.



② 예수님의 소년시절에는 성모님은 잃어버린 예수님을 사흘만에 성전에서 다시 만나자 깜짝 놀라며, 반가워서 “애야, 왜 이렇게 우리를 애태우느냐?”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 나는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라고 대답하셨지만 성모님은 그 대답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한 채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셨습니다”



③ 가나 혼인 잔치에 초대받았을 때 그 잔치 도중에 술이 떨어졌기 때문에 성모님은 그 집의 난처한 입장을 도와주고 싶으셨던지 예수님께 술이 떨어졌다고 알렸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어머니 그것이 저에게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러십니까? 아직 제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하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예수님의 속마음을 알아차리시고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하여라”하고 하인들에게 일렀고, 예수님은 준비된 항아리의 물을 술로 변화시킴으로써 당신의 첫 번째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④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도 성모님은 거기에 와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운명하시기 직전에 사도 요한을 가리키며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하시고 또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때 성모님은 모든 것을 이해하신 듯이 아무 말씀도 없이 예수님의 배려에 따랐습니다.

이와 같이 여러 차례에 걸쳐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와 관련하여 나타나시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그려볼 때 성모 마리아는 우리의 보통 어머니들과 똑같이 평범한 분이며 서로 하느님과 예수님의 신비를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대단히 폭넓은 수용력을 지닌 분이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잉태소식과 소년 예수님의 신비를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대단히 폭넓은 수용력을 지닌 분이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잉태소식과 소년 예수님이 성전에서 대답하신 말씀, 또 가나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의 말씀, 십자가 위에서 말씀하신 예수님의 배려를 성모님은 말마디 상으로 뿐 아니라 또한 그 말씀 속에 담겨있는 깊은 현실을 마음의 이해로써 언제나 속속들이 수용하셨습니다. 성모마리아께서 이와 같이 인간과 그리스도께 대한 깊은 이해심을 가지고 기도하고 행동하신 것을 생각해볼 때 그분이야말로 참으로 원만하고 성숙한 그리스도 신자였으며, 모든 믿는 이들의 본보기였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려분, 오늘 우리는 성모님의 승천 축일을 지내면서 성모 마리아의 이러한 인간과 그리스도께 대한 태도를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신학공부를 할 때나 혹은 타인과의 대화를 나눌 때 너무나도 종종, 그 말들의 겉에 나타나는 것에만 치우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말마디 속에 감추어 있는 현실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마땅히 성모 마리아를 본받아 그 말씀의 속에 있는 현실까지 마음으로 이해하고 수용하도록 노력합시다.



그래서 친척들을 방문하고 잔치 집에도 가고 십자가에 못박히는 현장까지도 따라가셨던 성모 마리아를 본받아서 우리도 마음으로 깨달은 바를 기도와 행동으로 실천하도록 노력합시다. 성모 마리아께 은총과 사랑을 베풀어주신 하느님께서는 사실상 오늘날도 우리에게 그대로 베풀어주신다고 하느님께서는 사살상 오늘날도 우리에게 그대로 베풀어주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렇게 노력함으로써 우리도 이 지상 생애가 끝난 다음에 성모님과 함께 영광스럽게 부활 승천하게 될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를 본받고 싶은 충동이 우리의 마음 속에 용솟음치도록 모두 함께 열심히 기도합시다.











12   성모 승천 대축일   루가 1,39-56     엘리사벳을 방문하심과 성모찬가  

김경식 신부



우리의 어머니

“만인의 자모요 전구자시니/ 애절한 우리청 전달하소서/ 구세주 당신을 모친삼으사/ 세상을 구하러 오셨나이다. 죄악이 거칠게 우리를 맬제/성모여 우리와 함께 계시고/죄악에 묶이운 마음의 사슬/신속히 다가와 풀어주소서“ (성모축일 찬미가에서)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교회는 사도시대부터 마리아를 우리의 어머니로 모셔왔습니다. 우리 머리이신 예수님이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으며 그분을 어머니로 모셨으니, 그 지체인 우리가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더구나 예수님이 죽음의 시간에 사도 요한에게 “이분이 네 어머시다”(요한19,27)하며 모자의 관계를 맺어주셨습니다.

사실상 마리아의 역할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끝났습니다만 사도들의 어머니 역할을 하시기 위해서 하늘로 불림 받을 시간이 연기되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마리아의 어머니 역할은 사도시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교회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교회의 수호자로 나타나십니다. 몇 가지 예를 봅시다.



1206년부터 도미니꼬 성인을 통하여 알비 이단(육체적인 모든 욕구를 나쁜 것으로 생각하여 성사와 결혼, 교회와 국가의 제도까지 거부하는 이단)을 없애주셨는데 이때부터 묵주의 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1571년, 온 교회가 묵주의 기도로 성모님의 보호를 청하여 회교도들의 침공을 기적적으로 물리친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1858년, 과학의 발달로 하느님을 거부하는 인간의 교만을 누르기 위하여 프랑스 루르드에서 열 여덟 번이나 나타나셨고 5천여 건의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1917년, 6개월 동안 매 13일에 세 아이에게 나타나시고 10월 13일에는 7만명의 군중에게 태양의 기적을 보임으로써 러시아와 세상의 죄악을 경고하시고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1933년, 벨기에의 바뇌에서 “나는 가난한 이의 동정녀이다”하시며 여러 차례 나타나시어 기적을 행하심으로써 극도의 가난 속에서 허덕이던 노동자들이 공산주의에 넘어가는 것을 방지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성모 마리아는 교회의 어머니로서 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어머니로서도 우리를 자애롭게 보살펴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비록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있습니다만 우리의 행실이 깨끗하지 못하여 하느님 앞에 떳떳하게 나서기에는 너무나 염치없고 예수님에게는 더더욱 송구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하신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되풀이되는 악행을 숨기고 주님의 자비만 구한다면 주님의 사랑을 모욕으로써 갚는 것이라 스스로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죄인일수록 주님의 은총은 더욱 필요하니 어머니의 전구를 바랄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 어머니께 청하여 거절당했다는 말을 우리는 듣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된 우리가 자애 깊으시고 아름다우신 어머니에게 봉헌하는 것을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를 아름답게 꾸미며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립시다.







13   성모 승천 대축일   루가 1,39-56     엘리사벳을 방문하심과 성모찬가 

유재국 신부



평화의 모후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로다. 강한 자여, 그대 이름은 어머니로다” 유명한 대문호 세익스피어의 말이다. 오늘 우리는 성모님께 존경을 드리고 우리의 신심을 드높이기 위하여 이 거룩한 축일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자는 육체적으로나 생리적으로 약하다고들 하지만, 어머니만큼 이 세상에서 강한 자도 없다. 어머니는 의지적으로 강하고, 정신적으로 강하며 특히 어머니의 사랑을 강철보다 강하고 하늘보다 높은 것이다.



우리 모두는 어머니로부터 생명을 받았고 사랑을 배웠다. 만일 우리에게 어머니가 없었다면 우리의 마음은 메마르고, 인생의 행로에서 방황하며, 사랑을 베풀지도 못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어머니로부터 마음의 평화를 배웠고, 이웃에 대한 사랑과 봉사를 배웠다. 이 모든 것은 바로 어머니의 희생적인 사랑은 너무나도 강하고, 너무나도 고귀하며, 무한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머니께 모든 존경을 드리면서 효도하고 우리의 사랑을 드리는 것이다.



지상의 어머니가 이렇게 강하고 훌륭하지만, 우리 신자들에게는 또 한분의 어머니가 계신다. 그분이 바로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이다. 성모마리아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어머니들 가운데서 가장 강한 어머니이시며, 가장 사랑스런 어머니이시다.

하느님께서는 인류 구세주 그리스도의 어머니로, 그리고 우리의 어머니로 동정 마리아를 간택하셨다. 마리아는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 가운데서 가장 풍부한 은총을 받으셨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기뻐하소서. 주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 또한 복되시도다.”



성모님은 의지적으로 강했고, 정신적으로 강하셨으며, 특히 신앙적으로는 그 누구도 성모마리아를 따를 사람이 없다. 또한 성모님만큼 사랑을 베푸신 분은 없다.

하느님이 파견한 천사 가브리엘의 인사를 받고, 동정 마리아는 장차 이루어질 구속사업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신앙을 고백했던 것이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당신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 순간 마리아는 예수님을 잉태하였고, 새로운 역사가 이루어진 것이다.



베들레헴으로부터 이집트로 피난을 가기까지, 나자렛의 생활에서부터 골고타의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성모마라아의 일생은 고통과 십자가의 일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모마리아는 강한 어머니로서 확고한 신앙심을 가지고 전적으로 하느님께 의탁했으며, 묵묵히 당신 아들의 구속사업에 협조하셨던 것이다. 특히 당신 아드님께 대한 어머니의 사랑으로 모든 고통을 기쁜 마음으로 참아 받으셨다.

그러기에 성모마리아의 일생에 대한 보상은 하늘로 들어올림을 받은 승천의 영광을 받으셨고, 당신 아드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이같이 훌륭한 어머니를 모시고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인가.



그렇다고 우리는 성모님을 바라다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동정 마리아에게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며, 그분에게 무엇을 드려야 하겠는가?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성모마리아에게서 그의 굳은 신앙생활을 배워야 하고 본받아야겠다. 확고부동한 신앙과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심을 가지고 어떠한 역경과 고통 속에서도 기쁨과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그런 생활을 본받아야 한다.



성모님은 하느님이 주시는 고통과 십자가를 원망하지도 않았고, 불평도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고통과 십자가를 신앙을 가지고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또한 당신이 맡은바 사명에 언제나 충실하셨다. 그러기에 동정마리아는 우리 모든 신자들의 모델이시다. 우리는 감성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성모님의 외적 모습을 닮으려고 하지말고 그분의 깊은 신앙과 사랑을 본받아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이고,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님으로 모시고 사랑을 드린다면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시고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존경과 사랑을 드려야겠다.

어머니는 이 시간에도 우리를 돌보시고 계시며,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신다. 특히 평화의 모후이신 어머님께 우리나라에 평화를 주시고 이 세계에 평화를 주시도록 기도 드려야겠다.

하루속히 우리나라가 통일되어 서로 사랑하면서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어머님께 기도해야겠다.



 “평화의 모후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투명한 가을 하늘 마리아를 부르면 해뜨는 마음.

가난해서 뜨거운 우리네 소망의 촛대위에 불을 켜는 어머니

쉬임없이 타오르는 주홍빛 불길 두 손에 가득받아 언 마음을 녹인다.



깊은 산골짜기 산나리 향기먹고 담담히 흘러가는 물같은 여인의 사랑

맑은 물 가슴에 차서 쓰디쓴 목마름을 씻어 없앤다.

가을빛 피어나는 가만한 숨소리로 마리아

너의 이름 부르면 길이 열린다.

거미줄로 얽힌 죄많음을 후련히 쏟아버린 따스한 눈물

가난한 우리네가 펄럭이는 촛불 되어 돌아오는 길

해를 안은 마리아와 영원을 산다”                        (이해인 수녀의 시)



14   성모승천 대축일   루가 1,39-56     저희도 불러주소서  

김영진 신부



어린 시절 공소에서 신앙생활을 했던 나는 8월15일 성모승천 대축일이 되면 30리가 넘는 본당으로 미사를 드리러 갔다. 개울을 여러 개 건너고, 논둑 길과 산길 그리고 신작로 길을 따라, 공소의 열심한 교우들과 더불어 같이 갔다. 나는 친척집이 있어 그냥 갔지만, 친척집이 없어 남의 집에서 밥을 얻어먹어야 되는 이들은, 작은 보자기에 쌀이나 보리쌀을 한되쫌 싸가지고 가기도 했다. 마치 소풍이라도 가듯 발걸음도 가볍게 미사참례에 가는 공소교우들의 행렬은 어린 내가 보기에도 퍽 아름다웠다.

  

나는 공소에서 회장일을 보시는 아버지와 함께 가며 묵주의 기도를 바치기도 했고, 때로는 집안 이야기며 신앙 이야기를 주로 듣기만 하면서 갔다. 한번은 아버지께 물었다.

“아버지, 성모님이 어떻게 하늘나라로 승천하셨어요?"라고 했더니, 아버지께서는 “성모님은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선생님 말씀 잘 듣고 ,하느님을 열심히 믿었기 때문에 죽지 않고 승천하셨어"라고 대답해 주였다. 아버지의 말씀 속에는, 나도 부모와 스승의 말씀 잘 듣고, 하느님 열심히 믿고 살아야 된다는 의미가 풍기었다. 그리고 나도 하느님 열심히 믿어서 성모님처럼 꼭 승천해야지 하는 생각을 가졌다.

  

그런데 초등학교를 마치고 신학교에 들어가 나이를 먹으면서, 어린 시절 철석같이 믿어왔던 성모님 승천에 대한 교리와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예수님이 승천하셨다고 하는 것도 믿을까 말까 하는데, 성모님까지 승천하셨다는 것을 어떻게 믿으라고 교회는 요구하는가 하는 불만과 더불어, 성모승천에 대해서는 말할 기회가 있으면 슬그머니 피해갔다. 나 자신 안에 지식은 커가고 있었으되, 성모님 승천에 대한 믿음은 오히려 약해지고 있었다.            



승천은 믿음의 열매이며 선물

돌팔이 신부라고 손가락질할지 모르나, 신부가 되고 나서도 그런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성모님 승천에 대한 믿음을 가장 크게 막고 있는 것은, 나의 알량한 지식이 교만이 되어 성모승천에 대한 나의 믿음을 망가뜨리고 있었음을 발견하였다. 동시에 어린 시절 성모승천 대축일이면  30리 길을 걸으면서 들려주시곤 하였던 아버지의 성모승천에 대한 말씀이 떠오르며, 성모님의 승천은 바로 믿음의 열매요 완성이요, 선물임을 깨닫게 되었다.


성모님의 승천은 엘리사벳의 노래에서 나오듯,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신 성모님의 믿음의 열매요, 완성이며 선물이다. 믿음이란 인간의 지식으로는 가늠할 수조차 없는 엄청난 것을 선물로 받게 한다.

교황 비오 12세는1750년 11윌1일 하느님의 어머니요 평생동정이신 마리아께서는 지상생활을 마치신 후 영혼과 육신을 간직한 채 하늘로 올림을 받으셨다고 선포하심으로써, 성모님의 승천을 모든 교우들이 믿고 축하하기를 바라셨다.

  

성모님의 노래를 보면, 성모님은 시인이며, 동시에 지극히 겸손한 여인이요, 강인한 믿음의 소유자였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시인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하느님을 뜨겁게 찬미하는 노래를 할 수 있었겠으며, 지극히 겸손한 여인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자신을 비천하고 보잘 것 없다고 고백하실 수 있었겠는가. 또한 강인한 믿음의 소유자가 아니었다면 어찌 어린 처녀의 몸으로 예수를 잉태하라는 하느님의 명령에 순명할 수 있었겠는가.          



몸과 마음을 하늘 향해 활짝 열자

승천은 단지 예수님과 성모님의 전유물이 아니다. 승천은 시인이며 겸손한 사람,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이들도 마지막 날에는 모두 부활하여 승천하게 될 것이다. 다만 성모님을 일찍이 승천케 하신 것은, 하느님께서 한 인간의 완성인 승천의 은혜를 성모님께 일찍이 베푸신 것일 뿐이다.

  

성모님처럼 하느님을 뜨겁게 찬미하는 시인으로 살자. 그리고 성모님처럼 지극히 겸손한 사람으로서 살며, 또한 성모님처럼 하느님의 주도권에 온전히 자신을 내 맡기는 도구로서 살자. 날이 새면 하늘로 비상하는 새들처럼. 뿌리를 땅에 감춘 채 온몸을 하늘로 향해 서 있는 나무들처럼, 우리의 몸과 마음을 언젠가 승천하게 될 하늘을 향하여 활짝 열어보자.

           









15   성모승천 대축일   루가 1,39-56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기뻐하소서  

성민호 신부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기뻐하소서!" 하루에도 몇 번씩 바치는 성모송이지만 오늘따라 더욱 감명 깊고 기쁜 느낌을 주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신 성모 마리아가 하느님께로부터 그 육신과 함께 하늘에 불러올림을 받으신 오늘은 성모님 자신에게는 더 없는 영광의 날이고, 우리에게는 구원을 보증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바로 성모님께 대한 여러 축일 가운데 그 절정을 이루는 성모 승천 대축일입니다.

4대 축일 중의 하나인 오늘은 주님의 모친이시며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가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것을 경축하는 기쁜 날인 동시에, 우리나라로서는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뜻깊은 8․15 광복절이기도 합니다.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모친으로 선택된 성모 마리아는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말씀하실 때부터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셨고, 하느님의 인류 구원사업에 깊숙이 동참하셨습니다. 물론 성모 마리아가 인간 구원사건의 직접적인 요인은 아니지만, 하느님께서 이루신 인류 구원사업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셨으며, 크나큰 역할을 담당하셨습니다.

  

성모님은 하느님의 뜻을 따라 구세주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낳아 길러주셨고, 그분과 함께 일생을 같이하면서 전도여행을 도우셨으며, 마침내 십자가 밑에서 주님의 고통에 동참하여 십자가상 제사의 한 몫을 성부께 바치셨지만, 언제나 하느님께 순종하는 여종의 정신을 간직하고 기쁜 마음으로 맡겨진 일을 완수하셨습니다.

  

성가정의 주부로서, 아내로서, 그리고 어머니로서 집안 일을 알뜰히 보살폈으며, 장부 요셉에게 존경과 사랑과 순명으로 내조하셨고, 아들 예수님을 정성껏 보살펴드렸습니다. 또한 성모님은 제자들과 함께 성령을 받으신 후 초대교회를 도우셨으며, 지금은 천국에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간구하고 계신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모친일 뿐 아니라, 그 지체인 우리의 어머니도 되시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성자의 모친으로 선택되기에 충분한 덕을 쌓으셨고, 탁월한 인품을 가지셨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 중에 가장 위대한 분으로서 당연히 우리의 찬양과 존경을 받으셔야 합니다. 그분이 천주성자의 어머니가 되셨다는 놀라운 사실 한 가지만 생각해도, 그분께 아무리 크나큰 공경을 드린다 해도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가브리엘 천사도 하느님의 명을 받고 성모 마리아에게 “은총을 가득히 반은 이여"라고 인사하였고, 엘리사벳도 성령을 받아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라고 외쳤습니다. 교회에서도 옛부터 그분께 더욱 어울리는 찬미가, 기도문, 축일, 예술품을 만들어 그분을 공경하도록 권장하였습니다.

성모님도 장차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찬양할 것을 예견하시고,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라는 저 유명한 마니피캇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온 백성이 당신을 복되다고 하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비천한 여종의 신세를 돌보신 전능하신 하느님의 덕분임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성서에는, 성령 강림 이후의 성모님께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떻게 성모 승천 대축일을 지낼 수 있을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성서에 기록되지 않은 것을 가르쳐주는 거룩한 전승, 즉 성전이 있습니다. 교회의 전통에 의하면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성모님은 십자가상 유언대로 요한 사도와 함께 소아시아에서 여생을 보내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모님이 이 세상을 떠날 날이 가까워지자 사방에 흩어져 전교하던 사도들이 모여들었고, 그후 돌아가신 성모님을 정성껏 동굴에 안장하였습니다. 멀리 인도 가까이에서 전교하던 토마 사도만 늦게 도착하였기 때문에, 성모님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뵙기 위하여 동굴 문을 열었습니다. 이때 성모님의 시신은 온데간데없고 향기가 진동하였으며, 서광이 비쳤다고 합니다. 이러한 광경을 목격한 사도들은 “주께서 당신 모친을 부활시켜 그 정결한 육신과 함께 천국으로 데리고 가셨다."고 하면서, 기쁨의 찬미가를 불렀다고 합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사람이 죽는 것은 죄에 대한 벌입니다. 하지만 성모님은 아무런 죄에도 물들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상 죽으실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죽음을 통한 부활의 영광을 보여주신 주님을 본받아 잠시 영혼이 육신을 떠난 것에 불과합니다. 또한 당신 아들 예수님을 뵙고자 하는 열망 때문에, 이 세상을 떠난 성모님은 은총을 가득히 받은 분으로서, 인간의 궁극적 소망인 부활과 승천의 은총도 받으셨음이 분명합니다.

  

더욱이 주님께서 당신을 잉태하고 낳아주신 어머니의 육신이 사후에도 죄의 결과인 부패를 면하도록 하셨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일찍부터 성모님의 승천을 믿고 기념해 오던 중, 1950년 교황 비오 12세가 신앙교리로 공포하였습니다. 그리고 8월 15일을 성모 승천 대축일로 제정하여 마음껏 경축하도록 배려하였습니다.

  

이제 성모님은 하늘나라에 올림을 받아 모든 피조물 위에 영광을 받고 계십니다. 그리고 언제나 지상에 있는 우리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십니다. 자애로운 어머니로서 불안에 떠는 우리를 항상 걱정해 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처럼 좋은 어머니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며 우리에게도 부활과 승천의 은혜를 얻어주십사고 믿음직한 성모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너무나 불안하고 삭막합니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소위 동서 양대진영에서 전쟁을 억제한다는 미명 아래 무서운 핵무기를 계속해서 발전시키던 냉전상태가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고는 하지만, 현재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만 가지고도 이 지구를 네 번 이상 멸망시킬 수 있다니 정말 놀랄 일입니다. 또한 이 세상은 이기주의와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하여 날이 갈수록 더욱 험악해지고 있으며,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되고 이웃사랑이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어느 때보다도 성모님의 부드러운 손길이 필요합니다.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평화의 모후께서 강력하게 전구해 주시지 않으면 이 세상은 구제불능이며, 그분의 만류가 아니고서는 하느님의 의노를 막을 길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도 위험한 현대사회를 구제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천상 어머니께 의탁하는 길밖에 없음을 강조하고 교회를 성모성심께 봉헌하면서, 당신과 뜻을 같이할 것을 우리에게 명하였습니다.

  

특별히 우리나라는 성모 승천 대축일에 해방되어 자유를 찾았습니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사건이며, 성모님께서 우리에게 해방을 얻어주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물론 우리 교회가 여러 가지로 성모님의 축복을 받아 성장하고 발전하여 왔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모님을 한국교회의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있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모 승천 대축일을 맞이하여 하늘나라에 오르신 성모님을 마음껏 경축하고 찬미하면서, 그분의 귀여운 자녀가 되도록 노력합시다.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내게 이루어지소서!" 하신 성모님의 정신이 바로 우리 신앙생활의 귀감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소원인 참된 민주화와 조국통일과 세계 평화를 얻어주십사고 간청합시다.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모후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16   성모 승천 대축일  루가 1,39-56     사는 게 사는 게 아녀  

서정현 신부



어느 시골 공소 미사 중에 한 할머니께서 요즘 어떤 어려움이 있으시냐는 질문을 받고 이르시는 말씀, ꡒ사는 게 사는 게 아녀ꡓ. 이 말은 지금의 그 분의 삶이 사는 것이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천하게 산다는 뜻일 것입니다.



할머니는 일찍이 가난한 지금의 시골 공소에 시집와서 어렵게 자녀들을 교육시켜 분가시키고 지금은 홀로 살면서 온종일 밭에 나가 뙤약볕 아래서 일하고 밤이면 삭신이 쑤시는 몸을 가누며 저녁기도를 바치는 분이십니다.

비록 외롭고 고통스런 나날이지만 일생을 주님만 믿고 그 분께 온 희망을 두면서 매일 ꡒ주께서 여종의 미천한 신세를 돌보셨습니다ꡓ라는 마리아의 노래를 읊으십니다.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요즘의 농촌의 모습은 비닐 하우스의 비닐이 온통 찢겨져 앙상한 갈비뼈 처럼 철골이 드러나 있고, 바람에 떨어진 고추 수확에 농부들은 여념이 없습니다.

태풍이 거세게 불어 비닐이 전부 찢기던 날 한 형제는 그저 허허 웃으며 한 잔 술로 쓰린 마음을 달래기도 했습니다. 농작물의 과잉 생산으로 값이 폭락하여 인건비도 건지지 못하지만 하느님께서 주신 애써 지은 농사이기에 그래도 최선을 다해 수확을 합니다.



농촌의 삶이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지만 그래도 희망을 두고 있는 분은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분은 성모님께 해 주신 것처럼 우리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아 주시며 그 분 몸소 우리보다 더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며 우리 삶에 동참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죽음까지도 굴복시키신 하느님께서 우리가 처한 비참한 상황을 극복시키지 못하시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참다운 의미에서 우리가 사는 것 같이 살 수 있도록 마련하셨습니다.











17   성모 승천 대축일   루가 1,39-56     엘리사벳을 방문하심과 성모찬가

                            신문기사(보통 사람들이 체험한 성모님의 이야기)

                            구사일생(九死一生)한 사제의 편지



친애하는 친구에게

나는 중앙 아프리카의 한 수도원의 부제로 일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비행해 왔다네. 내가 온 [부카부]의 수도원은 1966년 하데비히 수녀에 의해 세워져 1982년 2월 16일에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공인 받은 예수 부활을 증거하고 전교하는 수도원으로서, 하데이비 수녀는 동년 8월22일 만장일치로 초대 수녀원장으로 뽑힌 분이라네.



이 역사 짧은 수도원은 불과 16년사이에 1백여명의 수녀지망생들과 50명의 수녀수련생들을 수용하고, 2채의 수도원 건물을 갖출만큼 성장했다네. 하느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아프리카 오지의 수도원에서 일할 좋은 기회를 주신 셈이지. 그런데 한편으로는 하느님은 우리에게 먼저 치명적인 불운을 격게 하셨다네. 그것은 우리가 탄 조그만 두 개의 프로펠라가 달린 포교전용비행기가 마지막 1천4백km의 여정을 남겨둔 때 일어난 일이었다네.



우리 비행기는 6시간 30분 이상을 원시림이 빽빽한 아프리카 밀림지역 상공을 날아가야 했는데 [키부]에 갈 때까지는 모든 상태가 좋았다네. 우리가 내릴 [부카부]의 키부호수도 안개와 구름사이를 통해 멀리 보였다네. 그때 우리 비행기가 갑자기 어딘지 모를 고장을 일으킨걸세. 공항관제탑에서는 아무런 지시도 들리지 않았는데 아마도 연료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기내의 전력이 약해진 탓이었던 모양이야. 약3분간 우리는 목표인 호수를 찾기 위해, 구름사이를 뚫고 급강하면서 산과 분화구 사이를 날았지. 그러나 열 번 아니 스무번이상 시도했지만 우리는 계속 헛돌기만 했어. 우리는 몇 번이나 이리저리 비행 했지만 언제나 가파른 경가지와 빽빽한 원시림밖에 발견할 수가 없었다네.



그때 나는 묵주기도를 올리기 시작했었지. 그때 우리는 구름사이로 조그만 땅이 보이는 것을 발견했다네. 우리는 산비탈에서 불과 20m떨어져 아슬아슬하게 날아 통나무집 곁을 지나 낮게 하강 할 수 있었지. 통나무집에는 흑인 가족들이 놀라 뛰어나와 대피하는 모습도 보였어.

그러나 우리 비행기는 바나나 나무 꼭대기를 미끄러지듯 부딪치며 이리저리 공중에서 지그자그로 날았어. 아무런 비행상황도 모른 채 장님처럼 산과 산 사이를 장님비행처럼 얼마동안 했을까? 근 한시간 반 동안이나 장님비행을 한 뒤에 우리는 이제 최후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지.



기름은 얼마나 남아있을까? 나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히데비히 수녀원장과 유럽에 남아있는 동료친구들을 생각했지. 그 순간에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비록 죽음을 걱정하지만 어떤 환난속에 빠지더라도 나의 피난처는 성모님이라는 생각을 했다네. 하나의 서약과도 같이…

그때 문득 구름사이로 조그만 틈이 보이면서 햇볕속에 우리가 그렇게도 목마르게 찾아 해매던 [부카부]에 있는 호수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아! 드디어 우리는 급강하 호수를 찾아내고 뭇가를 따라 간신히 공항으로 날아갈 수 가 있었던 것일세.



우리가 공항에 착륙했을 때, 우리는 겨우 10분간 더 날을 수 있는 연료만 남기고 있었다는군. 나는 과연 마리아에게서 무엇을 서약해야 할 것인가!

나는 성모님에게 우리가 아프리카에서 일을 할동안 최선의 봉사를 다할 수 있도록 해주시고, 우리를 격려해주시며 날마다 묵주기도를 올리며 해달라는 기도의 말씀을 드렸다네.











18  성모 승천 대축일   루가 1,39-56     무지개

최인호 베드로/ 작가



워즈워스(Wordsworth, 1770 -1850)는 영국의 잉글랜드 지방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8세 때 어머니를, 13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외삼촌의 보호 아래 성장했습니다. 그는 프랑스혁명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고, 다섯 살 연상의 여인을 만나 딸을 낳기도 하며 방황하는 청년시절을 보냈습니다. 28세 무렵 시인 콜리지와 「서정민요집」을 출간한 그는 ‘낭만주의의 문학선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유명한 서문에서 ‘시골사람들의 감정만이 진실한 것이며 그들이 사용하는 소박하고 친근한 언어만이 가장 알맞은 시어’라고 발표함으로써 18세기식 기교적인 언어를 배척했습니다.

시인으로서의 명성이 높아져 마침내 계관시인이 되었으며 특히 자연에 대한 미적 관심은 유럽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쳐 19세기가 낳은 대표적 낭만파 시인으로 손꼽힙니다. 주옥 같은 워즈워스의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한 시는 ‘무지개’입니다.

“하늘에 걸린 무지개를 바라볼 때면 내 가슴은 설렌다/ 내 어렸을 때도 그러하였고 나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러하거니/ 나 늙어진 다음에도 제발 그러하여라/ 그렇지 않다면 나는 죽어버리리/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비옵나니 내 목숨의 하루하루여/ 천성(天性)의 자비로 맺어지거라”

무지개를 바라볼 때 가슴이 설레던 어린 시절의 감동이 나이 들어 사라져서 감동할 줄 모르는 인생을 살게 된다면 차라리 죽는 편이 좋으며, 하루하루를 순수한 동심으로 살 수 있음이야말로 ‘천성의 자비’라고 노래한 것입니다.



주님을 찬양한 마리아의 노래는 흔히 ‘마니피캇’이라고 합니다. 맨 앞부분이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로 시작되는데 ‘찬양하다’는 라틴어로 ‘마니피캇’(Magnificat)이므로 그렇게 불리는 것입니다. 이 노래는 마리아가 처음 읊은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유행하던 노래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구약에 나오는, 오랜 기도 끝에 ‘사무엘’을 얻은 한나의 노래 “내 마음은 야훼님 생각으로 울렁거립니다”(1사무 2,1)를 본뜬 이 노래를 누가 언제 지었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찬양하는 기쁨과 자신을 선택해주신 하느님께 대한 고마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 대한 하느님의 보살핌을 찬양한 마리아의 이 노래야말로 하느님을 믿는 우리들의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워즈워스가 “하늘에 걸린 무지개를 바라볼 때마다 내 가슴은 설렌다”고 노래하였듯이 마리아는 “내 구세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 설렌다”고 노래했습니다. 워즈워스가 노래한 ‘하늘에 걸린 무지개’야말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느님’이신 것입니다. 하느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설레며, 그것은 내가 어렸을 때도 그러하였고 지금도 그러합니다. 나 늙어진 다음에도 그러할 것입니다. ‘바라옵나니 내 목숨의 하루하루여, 천상의 자비로 우리를 채워주소서.’

그렇습니다. 어린이야말로 모든 어른의 아버지, 하늘나라는 이 어린이들 같은 사람들의 것입니다(마태 19.14 참조).     











19   성모 승천 대축일   루가 1,39-56    성모 마리아의 승천은 인간 구원의 희망



성모 승천 대축일은, 성모 마리아가 지상에서 생활을 마친 후 죽음의 부패를 겪지 않고, 하늘로 오르셨음을 기념하는 날이다.

성모님의 승천은 초기 교부들의 가르침이, 일찍부터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이를 거룩한 교회의 전승으로 받아들였다. 성모 승천은 1950년 11월 1일 교황 비오 12세가 믿을교리로 반포했다. 「원죄가없으시고 평생 동정이신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현세생활을 마친 후 육신과 영혼이 함께 하늘로 올라가 영광을 입으셨다는 것을 믿을 교리로 밝히고 이를 선언했다」(비오 12세의 사도헌장)



성모승천은 비록 성서에 기록된 내용은 아니지만 초대교회때부터 교회 전승을 통해 내려오는 내용이다. 전례상으로도 성모 승천을 기념하는 날은 마리아 축일 중 가장 코고 성대하게 지내고 있다



교회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

가톨릭 교회는 성모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 신앙의 어머니로 공경하고 있다. 성모님이 교회의 가장 으뜸 성인으로 존경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분의 신앙 때문이다.

성모님의 신심은 모든 신앙인들이 본받아야할 모범이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었던」(루가 1,42-45) 마리아의 믿음이 그녀를 교회의 어머니로 존경받게 하는 것이다.

  

신앙이란, 인간의 생각과 판단으로 잘 받아들일 수 없지만, 하느님의 역사(役事)를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오늘 복음은 마리아를 통해 이루시는 하느님의 구원사업을 강조하고 있다. 즉 마리아를 통해 이미 이스라엘에 구원의 손길을 보내셨고, 결국 완성하실 것이라는 것을 시사하고있다.

특히 구원이 현실로 이루어질 때, 교만한 자, 권세있는 자, 부유한 자, 즉 잘난 사람을 내치시고 비천하고 배고픈 자 등, 못난 사람들이 하느님의 구원의 은혜를 입는다고 가르치고있다.

  

이것은 단순히 세속적인 의미로 해석할 것은 못된다. 오히려 신앙적인 측면에서 하느님을 믿고 충실히 따른 사람들의 삶을 하느님은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메시지로 이해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마리아는 충실한 신앙의 표본이며 신앙인의 모범이 된다.

      

성모 승천은 우리의 희망

성모 승천의 중요한 의미는 우리 신앙인에게 큰 희망을 주셨다는 것이다. 즉 인간이신 성모님이 하느님께로부터 천상으로 불림을 받아 승천하셨다는 것은 인간구원의 표징이 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하느님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들도, 성모님처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라는 희망을 안겨주셨다. 우리들에게 성모님은 신앙의 길을 가르쳐 주셨고, 친히 그 길을 충실히 가셨다. 또한 그 믿음의 열매를 우리에게 희망의 보증으로 남겨주신 것이다.

  

성모 마리아의 일생은 온전히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이었다. 그러나 그 응답은 보이지 않는 것, 즉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크나큰 도전의 삶이었다. 그러한 도전과 응답은 바로 성모님 자신을 남김없이 하느님께 봉헌하였기에 참된 승리로 이루어졌다.

우리도 하느님을 향한 여정에서 성모 마리아가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신 것처럼 살도록 노력해야하겠다.

성모 마리아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었다. 그러나 성모 마리아는 자신의 삶, 특히 고통과 수난의 삶 속에서도 끊임없이 자신을 포기하고 하느님의 삶 속으로 자신을 봉헌하고 투신했다.



처녀로서의 임신과 출산에서부터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을 지켜보았던 한 어머니로서의,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고통스런 삶을 사셨던 성모님은 자신의 믿음을 통해 모든 것을 극복하셨다.

  

어쩌면 하느님께 오로지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 성모님은 하느님을 굳게 믿고,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아들은 어머니를 닳고 모방하는 것처럼 우리도 교회의 아들로서 교회의 어머니를 닮고 따르려고 노력해야할 것이다.

  「성모 마리아여,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20     성모승천 대축일  루가 1,39-56      성모 마리아, 나의 어머니!



사랑의 어머니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인기도 측정에는 여러가지 기준이 있겠지만, 정이 많은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그 기준은 아마도 눈물일 것이다. 눈물을 많이 흘리게 했으면 그 프로그램은 성공한 것이다. 한때 '여로'라는 작품이 국민들의 마음을 뜨겁게 달구어서, 많은 눈물을 흘리게 했다. 그 시간만 되면 길거리가 숨죽인 듯이 조용했다. 눈물을 흘리게 한 프로그램 중에 '이산가족찾기'도 압권이었다. 나는 눈물이 메마른 사람인데 그때는 정말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 프로그램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장병들과 함께 했던 한 방송사의 프로그램은 한국인의 어머니 사랑에 대한 의미를 깊이 조명한 좋은 프로였다. 어머니와 아들과의 뜻밖의 만남을 보던 장병들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많은 이들이 함께 울었다. 어머니가 고맙기 때문이었다. 어머니! 불러보고 또 불러봐도 따뜻한 이름이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저승으로 어머니를 보낸 이들은 '어머니'라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살아 생전에 못다한 효도가 못내 아쉽고, 이젠 하고 싶어도 계시지 않는 어머니기에 어머니라는 노래만 나와도 그냥 눈물이 배어나는 것이다.

  

시골 장터엘 가보면, 길 외에 나물을 조금 쌓아놓고 팔거나, 총각무를 몇 단 놓고 파는 여인들이 있다. 다 팔아봐야 6000~7000원 정도하는 값어치다. 머리에 수건을 쓰고 부르튼 손으로 물건을 파는 그 여인들은 누구를 위해서 그렇게 팔고 있나! 햇볕에 그을린 얼굴, 주름진 그 얼굴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읽는다. 그들은 자식들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혹은 학용품을 마련하기 위해서 그렇게 뙤약볕 아래에서 팔고 있는 것이다.

자식을 사랑하기에 흙과의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자식을 사랑하는 그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어린 자식이 아파서 헛소리를 하면, 어머니는 밤을 지새우면서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고 묵주의 기도를 드린다. 밥 먹을 생각도 않고, 잠을 잘 생각도 없이 애타는 마음으로 자식만을 바라보는 그 마음을 어머니가 아니면 누가 알겠는가!



비정한 어머니

사랑의 어머니라는 인상과 달리, 오늘날 우리들 주변에서 너무도 많은 비정한 어머니들이 생겨나고 있다. 낙태,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한국인은 예부터 서양인들과 달리 수태하는 순간부터 인간으로 생각하여, 나이를 한살로 따졌다. 서양인들은 세상에 태어나야 나이를 먹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이 맞는 이치다. 인간은 수태의 순간부터 인간으로 존경받아야 한다. 이것이 교회의 가르침이다.



교회는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나라의 일부 어머니들과 전세계의 많은 어머니들은 자식을 살해하는 낙태를 죄의식 없이 자행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혼율의 급증으로 가정이 파괴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IMF 이후 많은 가정이 파탄했다고 한다. 가정의 파탄은 자식을 버리는 결과로 나타난다. 어떤 어머니는 자식을 유흥가에 팔아먹는, 어처구니없는 세상이 되었다.



聖母 마리아

성모님은 하느님께 특별히 뽑힌 여자였다. 그녀는 원죄없이 잉태되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아들을 낳으실 어머니였기에 하느님께서 그렇게 뽑으셨다. 성모님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어머니시다, 우리도 교회의 일원이기에 그분은 우리의 모친이 되신다. 또 사도 요한에게 "이분이 그대의 어머니다"라고 하신 말씀은 곧 우리의 어머니도 되신다는 말씀이다.


성모님은 사랑의 어머니시다. 그분은 원죄가 없으시기에 죽어서 썩는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으셨다. 왜냐하면 인간이 죽고 썩는 것은 원죄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모님은 무덤에서 썩을 이유가 없으시기에 승천하셨다. 교회는 이렇게 말한다. “마침내 티없이 깨끗하며 조금도 원죄에 물들지 않았던 동정녀는, 지상 생활을 마친 후에 영혼과 육신이 천상 영광에로 부르심받아 주님께로부터 천지의 모후로 추대받았다. 이로써 마리아는 다스리는 자들의 주님이시며 죄와 죽음에 대한 승리자이신 당신 하느님을 더욱 완전히 닮게 되었다"(교회헌장 제59항, 교황 비오 12세의 성모승천교리 선포Ds 3903참조). 


성모마리아는 과거의 어머니로서만 존재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분은 2000년 전에만 계셨던 것이 아니다, 지금도 우리의 삶 속에서 만날수 있는 분이시다. 때로는 말씀으로, 때로는 느낌으로 우리에게 당신의 뜻을 전하신다. 교회의 역사 안에는 성모님의 발현을 생생하게 전하는 산 증언들이 많이 있다.

루르드 파티마, 과달루페 등등의 지역에서 당신의 모습을 보여 주시며 당신은 지금도 우리와 말씀하실수 있고, 사랑을 나눌 수 있음을 몸소 드러내셨다.

  

오늘도 우리가 힘들고 지쳤을 때, 그분은 우리의 힘이 되어 주신다. 고난 속에서, 절망 속에서 성모님께 다가가면 그분은 손을 내밀어 잡아주신다. 그분은 비정한 어머니가 아니시다. 그분은 지극한 사랑의 어머니시다. 우리가 언젠가 이 세상을 하직하고 나면, 그분은 우리의 손을 잡고 하늘나라로 우리를 데려 가실 것이다.

  0
3500
   
 N  분류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1257    
연중25-30주일
   Re..가해 연중 제 27주일 주일 강론 모음 주일강론 모음 2008-09-06 4458
  1256    
연중25-30주일
   Re..가해 연중 제 27주일 주일 강론 모음 주일강론 2008-08-09 3141
  1255    
연중25-30주일
가해 연중 제 26주일 주일 강론 모음 말씀과 전례 2008-08-09 3716
  1254    
연중25-30주일
   Re..가해 연중 제 26주일 주일 강론 모음 말씀연구 2008-09-27 3457
  1253    
연중25-30주일
   Re..가해 연중 제 26주일 주일 강론 모음 주일강론 모음2 2008-09-27 4616
  1252    
연중25-30주일
   Re..가해 연중 제 26주일 주일 강론 모음 주일강론 모음 2008-09-06 4755
  1251    
연중25-30주일
   Re..가해 연중 제 26주일 주일 강론 모음 주일강론 2008-08-09 2480
  1250    
연중25-30주일
가해 연중 제 25주일 주일 강론 모음 말씀과 전례 2008-08-09 3334
  1249    
연중25-30주일
   Re..가해 연중 제 25주일 주일 강론 모음 주일강론 모음 2008-09-06 4257
  1248    
연중25-30주일
   Re..가해 연중 제 25주일 주일 강론 모음 주일강론 2008-08-09 3533
  1247    
연중19-24주일
가해 연중 제 24주일 주일 강론 모음 말씀과 전례 2008-08-09 3499
  1246    
연중19-24주일
   Re..가해 연중 제 24주일 주일 강론 모음 주일강론 모음 2008-09-06 5019
  1245    
연중19-24주일
   Re..가해 연중 제 24주일 주일 강론 모음 안광훈 세자요한 신부님 2008-09-06 3114
  1244    
연중19-24주일
   Re..가해 연중 제 24주일 주일 강론 모음 주일강론 2008-08-09 3499
  1243    
연중19-24주일
가해 연중 제 23주일 주일 강론 모음 말씀과 전례 2008-08-09 3785
  1242    
연중19-24주일
   Re..가해 연중 제 23주일 주일 강론 모음 주일강론 모음 2008-09-06 4211
  1241    
연중19-24주일
   Re..가해 연중 제 23주일 주일 강론 모음 안광훈 세자요한 신부님 2008-09-06 2243
  1240    
연중19-24주일
   Re..가해 연중 제 23주일 주일 강론 모음 말씀연구 2008-09-06 2311
  1239    
연중19-24주일
   Re..가해 연중 제 23주일 주일 강론 모음 주일강론 2008-08-09 2739
  1238    
연중19-24주일
다해 연중 제 21주일 주일 강론 모음 주일 강론 모음 2008-08-09 4586
  1237    
연중19-24주일
다해 연중 제 20주일 주일 강론 모음 주일 강론 모음 2008-08-09 4114
  1236    
연중19-24주일
나해 연중 제 21주일 주일 강론 모음 주일강론 모음 2008-08-09 5323
  1235    
연중19-24주일
나해 연중 제 20주일 주일 강론 모음 주일강론 모음 2008-08-09 6927
  1234    
연중19-24주일
다해 연중 제 19주일 주일 강론 모음 주일강론 모음 2008-08-09 4434
  1233    
연중19-24주일
나해 연중 제 19주일 주일 강론 모음 주일강론 모음 2008-08-09 4377
  1232    
대축일 강론
8월 15일 : 성모 승천 대축일 ,성모 몽소승천 대축일 말씀과 전례 2008-07-18 4040
  1231    
대축일 강론
   Re..8월 15일 : 성모 승천 대축일 ,성모 몽소승천 대축일 주일강론 2008-08-09 3833
  1230    
대축일 강론
   Re..8월 15일 : 성모 승천 대축일 ,성모 몽소승천 대축일 말씀과 전례1 2008-08-09 3116
  1229    
대축일 강론
   Re..8월 15일 : 성모 승천 대축일 ,성모 몽소승천 대축일 강론 모음 2008-08-09 7361
  1228    
대축일 강론
   Re..8월 15일 : 성모 승천 대축일 ,성모 몽소승천 대축일 김동진 사무엘 신부 2008-08-09 3221
1234567891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