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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전례
작성자 말씀과 전례
작성일 2008년 7월 18일 (금) 11:36
분 류 대축일 강론
ㆍ추천: 0  ㆍ조회: 4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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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15일 : 성모 승천 대축일 ,성모 몽소승천 대축일 ”
 

8월 15일 : 성모 승천 대축일



한 여자가 태양을 입고 하늘에 나타났다



제 1 독서 : 묵시 11, 19a ; 12, 1. 3-6a. 10c



제 2 독서 : 1 고린 15, 20-27a



복 음 : 루가 1, 39-56



해 설



  성모님의 다른 어떤 축일보다도 특히 오늘은 마치 우리가 성모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통해 걸어가신 그 험난한 여정의 정상에 다다라있는 듯한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크나큰 ‘기쁨’의 축제



  오늘 미사의 입당송은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 “동정 마리아를 공경하며 축제를 지내며 다 함께 주를 모시고 즐거워하자. 천사들도 이 날이 기뻐 다 같이 천주성자를 기리도다.” 복음전 노래에서도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 : “마리아 하늘에 올림을 받으셨으니 천사들의 군대가 기뻐하는도다.”

  감사송까지도 기쁨과 놀람의 분위기 속에서 우리에게 그 크나큰 기쁨에 대한 신학적 설명을 해주고 있다 : “오늘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천주의 모친 동정 마리아는 완성될 당신 교회의 첫 모상으로서, 이 세상 나그네 길에 있는 당신 백성에게 확실한 희망과 위안을 보증해주셨나이다. 온갖 생명의 근원이신 당신의 아드님이 동정 마리아 몸에서 기묘히 인성을 취하여 이 세상에 태어나셨기에, 주는 마리아에게 무덤의 부패를 겪지 않게 섭리하셨나이다.”

  오늘 독서들의 내용 역시 어떤 사건들에 대한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절정은 주님께서 마리아를 통해 이루신 놀라운 일들에 대해 찬미드리는 마리아의 경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 일을 해주신 덕분입니다”(루가 1, 49).



마리아의 특권을 영광스럽게 완성시키는 승천



  사실, 성모승천은 마리아의 생애를 통해 일어난 모든 사건들 즉, 동정잉태, 신적인 모성, 구속사업에의 동참, 십자가 밑에 서 계심, 원시교회의 발전을 위한 능동적 참여 그리고 죽음 - 다른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정상적으로 일어났으리라고 우리가 믿고 있는 - 까지도 영광스럽게 완성시켜준다. 말하자면 이런 모든 사건들의 일치된 도달점은 하늘에 ‘영혼과 육신’의 들어올림을 받으심으로 아들 성자의 무한한 영광에 참여하시게 되는 성모님의 승천이다.

  어떤 의미에서, 성모승천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해당하는 의미를 지닌다. 즉 그리스도의 생애가 부활사건 없이는 이해될 수 없는 것처럼 마리아에게 일어난 모든 사건들은 ‘승천’이라는 결정적 사건을 제외한 어떤 증표로써도 이해될 수 없다고 생각된다. 마리아와 그녀의 아들 예수와의 관계는 불가분적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사람들에 의해 십자가 상에서 파괴된 당신 육체를 포함한 온 존재로써 취하신 그 영광중에 마리아를 들어 높이시지 않을 수 없었다.

  죽음에 대한 하느님의 승리는 부활을 통해 입증된다 : 똑같은 승리가 ‘육신과 영혼으로’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마리아의 승천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 모든 것은 종말에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일에 대한 상징적 예표로서 그때가 되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무덤이 결코 부패시키지 못할 육신과 더불어 당신 영광에 기꺼이 받아들이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죽었다가 부활한 첫 사람이 되셨습니다”



  이와 같은 내용들을 배경으로 하고 본다면, 오늘 우리가 거행하고 있는 마리아의 영광의 신비를 이해하는 데 근본적 바탕이 되고 있는 독서들의 내용은 더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독서들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제 2독서라고 생각된다. 이 제 2독서에서 바울로 사도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이야기하며 우리의 부활은 바로 그리스도의 부활의 필연적 결과라고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죽었다가 부활한 첫 사람이 되셨습니다. 죽음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온 것처럼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왔습니다. 아담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모두 죽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각각 차례가 있습니다. 먼저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셨고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마지막 날이 올 터인데 그 때에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권위와 세력과 능력의 천신들을 물리치시고 그 나라를 하느님 아버지께 바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께서 모든 원수를 그리스도의 발 아래 굴복시키실 때까지 군림하셔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물리치실 원수는 죽음입니다”(1 고린 15, 20-26).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제 2 아담으로서 인간성 자체를 당신 자신안에서 회복시키시고 첫 아담이 빼앗겼던 ‘생명’을 되찾아주신다 : “아담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모두 죽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살게 될 것입니다”(22절).

  여기서 말하는 ‘생명’은 총체적 의미에서의 생명이다. 즉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되찾아주신 ‘영신적’ 생명 - 하느님과의 친밀한 관계에 의해 표현되는 - 과 또한 역사적 체험 안에서 죄의 결과인 죽음의 위협을 끊임없이 받고 있는 ‘육체적’ 생명 모두를 말한다.

  여하튼,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이미 영신적 생명을 주셨고 장차 우리의 육신도 부활할 것을 보증하신다 ; 두 번씩이나 그리스도께 대해 “죽었다가 부활한 첫 사람이 되셨다”(20절, 23절)는 표현을 쓰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첫 사람”이라고 하는 표현은 농경사회의 문화적 배경에서 비롯한 것으로서 원래 의미는 일 년 중 처음으로 얻게 되는 결실을 뜻한다. 그러므로 특히 소중하고 값질 뿐만 아니라 앞으로 얻게 될 결실의 보증으로서 거두어 들일 수확의 활기찬 표지 역할을 한다.



“마지막으로 물리치실 원수는 죽음입니다”



  이 제 2독서 내용 중에는 방금 우리가 말한 내용과 관련되어 있는 아주 중요한 또 다른 사상이 들어 있다. 즉 여기서 사도 바울로가 “마지막 원수”(26절)라고 일컫는 ‘죽음’이 결정적으로 굴복되는 그때에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정복하신 그 나라를 성부께 바치시리라는 것이다(24절) :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께서 모든 원수를 그리스도의 발 아래 굴복시키실 때까지 군림하셔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물리치실 원수는 죽음입니다”(25-26절). 그런 뒤 우리에게는 앞서 말한 총체적 의미에서의 ‘생명’의 결정적 나라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바울로 사도는 여기서 마리아에 대해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교회를 이루고 있는 신앙의 조화와 일치된 인식의 차원에 입각해볼 때, 마리아의 수태 첫 순간부터 그녀 안에서 이미 죄의 세력이 굴복된 것처럼 죽음의 세력이 그녀 안에서 이미 정복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바울로가 ‘죄’와 ‘죽음’ 사이에 설정하는 밀접한 관계를 전제한다면 죄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곳에서는 죽음도 이미 극복되었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 역시 그리스도조차 예외가 되시지 못했던 ‘죽어야 한다’는 공통법을 지켜야 할 의미는 면제받지 못했다.

  또한, 어머니와 아들 사이의 친밀한 결합이 그들을 똑같은 영광의 운명에다 결합시킨다 ; 마리아는 그녀의 생명의 본질적인 성성(聖性) 때문에 이미 그리스도에 의해서 구원된 새 세상의 ‘첫 결실’이 되신다. 말하자면 마리아는 아들 예수의 모범된 행업에 따라 마련된 무덤의 부패에 대한 면제만으로도 새 세상의 ‘첫 결실’이 되실 수 있으셨을 것이다!



“주님의 어머니께서 나를 찾아주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



  마리아와 예수의 친밀한 관계는 마리아가 친척 엘리사벳을 방문한 오늘 복음의 내용에서도 아주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 엘리사벳은 “마니피캇”(루가 1, 39-56)을 통해 서정적으로 자신의 포기를 드러내는 마리아의 겸손한 태도에 놀란다.

  이야기할 내용이 많지만 다만 지금 우리가 묵상하고 있는 전례적 신비에 보다 더 관계가 있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 내용만을 살펴보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마리아가 자기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녀에게 하는 엘리사벳의 축하인사의 내용을 보자 :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 주님의 어머니께서 나를 찾아주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 문안의 말씀이 내 귀를 울렸을 때에 내 태중의 아기도 기뻐하며 뛰놀았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42-45절).

  마리아의 ‘신비’에 대한 최초이면서도 가장 훌륭한 엘리사벳의 이 신앙고백 속에는 두 가지 중요한 내용이 들어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로 중요한 내용은 마리아는 절대적으로 ‘아들’의 후광을 입고 있다는 점이다. 그녀가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된 여자로 선포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녀의 태중의 아들이 복되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의 모성도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다기보다는 하느님의 아들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모성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 “주님의 어머니께서 나를 찾아주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43절).

  예수가 없는 마리아는 상상할 수 없다 : 그녀의 모든 것은 아들 예수로부터 나온다. 만일 오늘날에도 마리아가 예수께서 살과 피를 취하신 성령의 궁전이었던 그녀의 ‘육신’을 지닌 채 아들 예수와 함께 천상영광중에 계시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면 그녀의 존재는 결코 이해될 수 없을 것이다. 혹시라도 그렇지 않다면, 뭔가가 이치에 안 맞고 어긋나는 점이 있게 될 것이다.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



  둘째로  중요한 내용은 마리아의 믿음에 대한 찬미이다 :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45절). 복음은 우선 예수의 어머니로서의 마리아의 행복을 말하고 나서 마리아는 자신의 사명에 필요한 어떤 결정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 그것은 곧 그녀도 다른 어느 누구도 그녀를 어디로 인도할지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하느님의 주도권에 온전히 자신을 내맡기는 그녀의 철저한 신앙적 자세이다 :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가 1, 38).

  그렇다면 마리아가 온전히 자신을 내맡기고 있는 그 ‘말씀’의 힘으로는 우리가 성모승천의 신비를 통해 일어났다고 믿고 있는 사실들이 실현될 수가 없었단 말인가? 과연 그 ‘말씀’이 보다 더 큰 일을 실현시켰다면 보다 더 작은 일도 실현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우리는 이미 말했다 : 마리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그녀를 아들과 불가분적으로 연결시켜주는 그녀의 ‘신적 모성’이라 했다. 그 모성을 중심으로 그녀의 앞뒤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오직 그녀의 ‘사명’에 의미를 부여하는 그 모성의 준비이거나 아니면 완성일 따름이다.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 일을 해주신 덕분입니다”



  그녀의 사명은 이스라엘의 모든 예언적 기다림을 그녀 안에서 종합하여 성취시키며 하느님이 역사 속에서 놀랍게 채워주실 그 모든 것을 준비한다. 그녀가 자신의 찬미와 감사와 흠숭의 “노래”를 통해 선포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 사명에 관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특별한 경우에서부터 시작해서, 하느님의 역사적(役史的) 행위의 항구성을 발견한다. 즉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에서부터 “비천한 여종”인 그녀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장차 일어날 모든 세대를 통해 당신의 자비 곧 무상적 사랑을 들어높이셨고 또한 들어높이실 것이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구세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 설레입니다. 주께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온 백성이 나를 복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 일을 해주신 덕분입니다. 주님은 거룩하신 분, 주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는 대대로 자비를 베푸십니다... 당신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 자비를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토록 베푸실 것입니다”(46-50절, 54-55절).

  바로 이런 까닭에, 하느님께서는 권력과 부(富)의 논리 그리고 역사를 이루고 지배하려는 인간적 욕구의 논리를 받아들이시지 않으신다 : “권세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보잘것없는 이들을 높이셨으며 배고픈 사람은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요한 사람은 빈 손으로 돌려보내셨습니다”(52-53절).

  하느님이 건설하시는 역사는 가장 어리석은 길을 통해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동정녀의 몸을 통해 하느님의 아들을 태어나게 한다든가, 십자가와 삽자가의 죽음을 통해 세상에 구원을 가져다준다든가, 무덤을 활짝 열어 죽음의 먹이가 되었던 사람들에게 생명을 되돌려준다든가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전능하신 분”께서 하신 “큰 일들” 중에 당신 아들의 모친의 “전 생애”에 대한 갚으심도 들어있다는 것이 놀랍고 이상한 일일까? 이것 역시 인간적 행위의 범주 밖의 일이다. 그러나 그분의 자비와 사랑의 초이성적 논리와의 완전한 조화 속에서 이루어지는 행위가 아닐까?



“용이 막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 지켜 서 있었습니다”



  이렇게 묵상해볼 때 ‘여인’이라는 표징과 그 여인이 막 낳으려고하는 ‘아들’을 삼켜버리려고 하는 ‘용’의 표징을 통해서 묘사되고 있는 지극히 아름다우면서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오늘 제 1독서의 장면도 보다 더 명확히 이해될 것이다. “하느님께서 피난처로 마련하신”(묵시 12, 6) 광야에로의 그 여인의 ‘도망’은 전례적 관점에서 볼 때 그리스도의 모친의 영광스러운 승천에 아주 잘 부합한다.

  “하늘에는 큰 표징이 나타났습니다. 한 여자가 태양을 입고 달을 밟고 별이 열두 개 달린 월계관을 머리에 쓰고 나타났습니다. 그 여자는 뱃속에 아이를 가졌으며 해산의 진통과 괴로움 때문에 울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표징이 나타났습니다. 이번에는 큰 붉은 용이 나타났는데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졌고 머리마다 왕관이 씌워져 있었습니다. 그 용은 자기 꼬리로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휩쓸어 땅으로 내던졌습니다. 그러고는 막 해산하려는 그 여자가 아기를 낳기만 하면 그 아기를 삼켜버리려고 그 여자 앞에 지켜 서 있었습니다. 마침내 그 여자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아기는 장차 쇠지팡이로 만국을 다스릴 뿐이었습니다. 별안간 그 아기는 하느님과 그분의 옥좌가 있는 곳으로 들려 올라갔고 그 여자는 광야로 도망을 쳤습니다. 그 곳은 하느님께서 그 여자를 먹여 살리시려고 마련해두신 곳이었습니다”(묵시 12, 1-6).

  확실히 모든 표현이 아주 상징적이고 극적이다. 묵시록 전체의 주제에 비추어볼 때 그 내용은 분명 마리아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저자가 살던 시대(Domiziano의 박해 시대?)의 교회뿐만 아니라 항상 고통중에 자녀들을 ‘낳는’ 모든 시대의 교회의 투쟁적 모습에 대한 것이라 하겠다. 구약성서에서는 이런 상징적 개념들로 흔히 예루살렘을 가리킨다(이사 54 ; 60 ; 66, 7 ; 미가 4, 9-10등 참조). 어쨋든, 오늘날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묵시록의 내용을 교회에 관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요한이 교회에 대한 체험을 기술함에 있어서, ‘용’으로 표현되고 있는(창세 3, 1 이하) 사탄의 치명적 공격을 출생때부터 받은 ‘구세주’를 우리에게 전해준 마리아에 관한 역사적 현실적 내용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는 가능성도 상당히 많다. 이런 해석은 성아우구스티노를 비롯한 상당수의 교부들이 하고 있는 해석이다 ;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창세기 3, 15(“나는 너를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리라. 네 후손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라. 너는 그 발꿈치를 물려고 하다가 도리어 그 여자의 후손에게 머리를 밟히리라”)에서 선포되었던 그 큰 싸움에 관한 내용을 문학적 변형을 통해 여기서 접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마리아는 승천을 통해 - 히브리서에서 “죽음의 세력을 가진 자”(2, 14)로 나타나는 - 사탄에 대한 결정적 승리를 획득하였다. 그러므로 오늘 묵시록의 내용이 환희의 찬가로 끝나는 것은 참으로 당연하다 : “이제 우리 하느님의 구원과 권능과 나라가 나타났고 하느님께서 세우신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다”(12, 10).

  “이런 식으로, 하느님의 위대한 모친은 예정된 자신의 운명에 따라 영원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와 신비스럽게 결합되셨으며, 원죄없이 잉태되셨고, 신적 모성을 지닌 정결한 동정녀요 죄와 죽음에 대한 승리자인 구세주의 자비로우신 배필로서 마침내 무덤의 부패를 극복하시고 위대한 영광을 차지하셨다. 그녀는 아들 ‘성자’와 마찬가지로 죽음을 이기시고 영혼과 육신으로 하늘의 영광에 높이 들어올려지시어 영원히 불사불멸하는 왕인 ‘아들’의 오른편에서 여왕으로 찬란히 빛나고 계시다”(Pio Ⅶ, Costituzione Apostolica Munificentissimus Deus,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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