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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전례
작성자 주일강론 모음
작성일 2008년 1월 31일 (목) 23:18
분 류 연중2-7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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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해 연중 제 7주일 주일 강론 모음 ”
 

연중 제7주일



         1. 이용호 신부(가)/ 2                    2. 함세웅 신부(가)/ 4

         3. 김몽은 신부(가)/ 5                    4. 변기영 신부(가)/ 7

         5. 김현준 신부(가)/ 8                    6. 강길웅 신부(가)/ 10

         7. 김승주 신부(나)/ 13                   8. 김몽은 신부(나)/ 14

         9. 김정진 신부(나)/ 15                   10. 김성배 신부(나)/ 17

         11. 중풍걸린 한 남자(나)/ 19             12. 중풍병자를 고치신 예수님(나)/ 20

         13. 민병숙 작가(나)/ 22                  14. 교구 주보(나)/ 23

         15. 이계중 신부(다)/ 24                  16. 전주원 신부(다)/ 25

         17. 공곤라도 신부(다)/ 26                18. 나궁열 신부(다)/ 28

         19. 서경윤 신부(다)/ 31                  20. 김한석 신부(다)/ 33

         21. 강길웅 신부(다)/ 36                  22. 강영구 신부(다)/ 38

         23. 홍금표 신부(다)/ 42                  24. 신은근 신부(다)/ 44

         25.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사람(다)/ 45

1           연중 제7주일   마태 5,38-48 (가) 심술부리게 하는 전화

                                    이용호 신부



사랑의 실천은 사소한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저는 얼마 전에 친구로부터 잘못 걸려온 전화가 온 집안을 불쾌하게 만든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느 날 회사 일 때문에 늦게 퇴근한 아버지께서는 밤새 주무시지 않으시고 서류를 정리하셨습니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시지 않는 듯 일찍 출근하기 위해 아침밥을 재촉했습니다. 바로 그때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외상값을 독촉하는 잘못 걸려온 전화였습니다.



전화를 거는 쪽에서는 상대방을 확인도 하지 않고 다짜고짜 외상값 독촉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신경이 곤두서 있는 아버지는 굉장히 불쾌한 일이었습니다. 이 전화가 있은 후 아침 식사가 별로 늦어진 것도 아닌데도 큰 소리가 오고 갔습니다. 따라서 어머니도 기분이 상했습니다. 그래서 큰아들이 용돈을 달라는 것이 그날 따라 더 성가시게 느껴지셨는지 또 큰 소리가 났습니다. 큰아들은 둘째 녀석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산수 문제를 보아 달라는 것이 못마땅해서 야단쳤습니다.



둘째는 막내가 자기 노트를 흩어 놓았다고 또 야단입니다. 이제 막내는 투덜거리며 마당으로 내려갔습니다. 이때 막내는 강아지가 지나가는 것을 걷어찼습니다. 결국 잘못 걸려온 전화 때문에 강아지가 깨갱하고 짖는 것으로 일이 끝났지만 모두의 기분은 퍽이나 상해 있었습니다. 잘못 걸려온 전화 한 통 때문에 아버지에게서 어머니께로, 어머니에게서 큰아들, 다시 큰아들은 둘째에게, 둘째는 막내에게, 막내는 강아지에게 화풀이를 했습니다. 결국 분풀이를 할 수 없는 강아지에게 와서야 이 일이 종식되었습니다.



이 문제를 곰곰히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여기에서 몇 가지 결론을 얻게 됩니다. 먼저 잘못 걸려온 전화로 이런 엄청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아버지께서 꾹 참으셨으면 될 뻔했습니다. 그렇지 못했다면 어머니께서라도 참으셨드라면 아이들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 한가지는 이런 일이 있은 후에 회사나 학교 그리고 가정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도 잘목 걸려온 전화의 영향을 줄지 모르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말씀은 잘못 걸려온 전화 이야기에서 볼 수 있는 사랑의 분열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진정한 사랑으로, 보복하지 않고, 원수를 사랑하며 기도해 주는 사랑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말씀은 5장 38-42절과 5장 43-48절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첫째 부분의 말씀을 살펴 봅시다.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 보복을 했다고 합시다. 이 보복은 또 다른 보복을 불러 일으키는 원인이 됩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라는 보복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손길이 돌아올 때 왼 뺨을 치기 위해 오른 뺨을 치는 것은 보복의 뜻이 있다하더라도 왼뺨까지 내주어야 하고, 속옷을 위해 송사하는 자에게는 이불로 사용하는 겉옷까지 내어주며,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고 하는 자의 정을 들어주어 보복을 종식시키라 하십니다. 나 한 사람이 참고 견딤으로써 또 다른 보복의 상처를 내지 않는 것이 참된 사랑입니다.



43절부터 48절까지 둘째 내용은 보복하지 않는 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여러분은 박해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잘못 걸려온 전화 이야기에서 전화를 잘못 건 사람까지 이해하고 그를 나무라지 않는 작은 일 역시 사랑의 분열을 막는 큰 일이라 생각됩니다. 큰 저수지에 생긴 조그마한 틈이 튼튼한 제방을 무너뜨리는 법입니다. 아무리 사고하고 적은 일이라 할지라도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잘못 걸려온 전화 때문에 가정이나 회사나 학교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이 생겼다면 이것이 사랑의 분열을 조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가 의식하고 있을 때 우리를 박해하는 원수를 위해서 무슨 큰 일부터 하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일에서 시작하여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보복하지 않고 작은 일에도 사랑의 분열을 종식시키려고 노력하는 자에게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아들이 될 것입니다”라는 약속의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작은 일에서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영광을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그리스도 신자가 아니더라도 그렇게 할 줄 압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형제들까지도 같은 형제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작은 사랑의 실천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며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사랑의 원동력인 것입니다. 우리는 사소하고 작은 일에서 사랑이 깨어지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 영향은 순식간에 우리 모두에게 전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사소한 감정으로 인하여 마음이 상했던 바를 다 용서하고 이해함으로써 보복의 씨앗을 없애버려야 합니다. 이로써 사랑의 분열을 종식시키고 진정한 사랑으로 모든 이들과 화합해야 합니다. 잘못 걸려온 전화 이야기처럼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사소하고 작은 사랑의 분열을 종식시키자는 자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항상 이웃에게 기쁨을 줄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말씀인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여러분도 완전한 사람이 되시오”하신 말씀으로 우리가 마땅히 사랑의 실천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주위 형제와 이웃에게 사랑의 분열을 종식시키는 모범을 보여 주도록 노력합시다.

아멘.

2          연중 제7주일   마태 5,38-48 (가) 이 어려운 사랑을 어떻게

                                                   함세웅 신부



오늘의 복음은, 크리스천의 사랑이 무엇이고, 크리스천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를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우리 인간사회에서는 신분 증명서, 배지, 제복이라는 것이 있어 그의 신분, 학교, 직장, 계급 등을 구별해 줍니다. 더구나 자동차의 모양, 색깔, 번호만을 보고서도 그 주인공이 어느 분이라는 것을 알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신자들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예수께서는 다른 이들과 식별할 수 있는 하나의 표지를 주셨습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의 신자이고, 그리스도의 신자일 수 있는 표시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사랑 중에서, 그리스도 신자의 사랑은 유일하고 독특하니, 왜냐하면 그것은 : ① 아무도 제외하지 않는, 그 대상이 보편적이라는 점과

② 그 사랑의 동기가 순 인간적이 아니고, 바로 신앙에 근거를 둔 초자연적이라는 점입니다.



사실 나에게 좋은 일을 해 준 사람, 나의 뜻에 맞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이것도 대단히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응당 해야 할 자연적인 것이며 비교적 쉬운 일입니다. “여러분이 만일 여러분을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 죄인들도 그만큼은 합니다."(루가 6,32-33)  이러한 식의 자연적인 사랑은 벌써 그 대상이 한정되어 있고, 그 밖의 많은 이들에 관해서는 무관심해지게 됩니다.

  

그리스도교는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신앙인은 마땅히 이것을 해야 합니다.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아무도 제외하지 않으셨는데 그 누가 감히 이들을 사랑에서 제외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 신자의 표시는 바로 이것입니다. “서로 사랑하시오. 내가 당신들을 사랑한 것처럼 당신들도 서로 사랑하시오. 당신들이 서로 사랑하면, 이것을 보고 세상 사람들은 나의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요한 13,34-35)

  

사랑의 이 계명은 물론 매우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께서는 몸소 실천으로 우리 모두에게 그것은 할 수 있다, 그것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영웅적 사랑의 죽음을 택하셨던 것입니다. 사랑이 제일 중요하다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최후의 심판 장면(마태 25,31-46)을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즉 영원한 벌, 영원한 단죄를 받게 되는 이유는 기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일 미사에 빠졌거나, 교회를 모독했거나 하는 것이 아니고, 단 한 가지, “내가 굶주리고 배고프고 먹을 것이 없었을 때에, 너는 나를 위해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라는 사랑의 결핍이라는 사실입니다.



또 다른 말씀이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그리스도 신자,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신앙인, 그는 결국 살인자라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누구나 다 살인자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살인자는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없습니다"(요한 1서 3,15)

  

어떻든 우리는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착한 신앙인들 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이 사실은, 이웃을 사랑하고 있는 그 사실에서만 증명되는 것이고, 아니!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하느님 사랑이 곧 이웃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곧 거짓말쟁이 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 입니다. 제 눈으로 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눈으로 보지도 못하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요한 1서 4,20)

  

우리 교회에는 찬란한 순교자들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들은 오로지 신앙 때문에 끌려가서 갖은 고통과 박해를 당하고 결국 죽어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죽음 직전에서도 너무나도 평화스러운 모습을 하고, 그리고는 그들이 얼마나 ‘서로 서로 아끼고 사랑했던지', 간수들이 감탄과 경의를 표했습니다. “아! 저들은 얼마나 서로 사랑하고 있는가!" 하고.

  

사랑하지 않는 자, 이웃을 비방하는 사람, 더구나 남을 판단하고, 남의 잘못을 도저히 용서해 줄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행하는 그리스도의 신자가 만일 하나라도 우리 가운데 있다면, 정녕 그는 배교자입니다. 그는 신앙을 저버린 무의미한 영세자입니다.

   

수없이 바쳐 왔고 바칠 「주의 기도문」 후편을 한 번만이라도 진정으로 외워야겠습니다.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듯이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기에, 우리는 용서받고 사랑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3                    연중 제7주일   마태 5, 38-48 (가)

                                   김몽은 신부



오늘의 복음은 구약의 율법과 그리스도의 교훈과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드러낸다. 물론 구약의 율법에서도 복수를 악으로 간주했지만, 남으로부터 피해를 입었으면 입은 그만큼 보복을 하는 것을 허용했다. “목숨을 앗았으면 제 목숨으로 갚아야 한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화상은 화상으로, 상처는 상처로, 멍은 멍으로 갚아야 한다”(출애 21, 23-25)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한 모든 것들은 옳지 않은 것이라 가르치신다.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여라.” 그리스도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전혀 새로운 인간관계이다.

즉 사랑의 관계,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다. 그것은 완전히 마음을 새롭게 하고, 영혼 내부로부터 울어나오는 사랑이다.



그 사랑은 모든 이를 포용해 줄 수 있어야 하며, 아무리 악독한 원수라 할지라도 배척해서는 안된다. 참 사람은 원래 한계가 없는 법이다.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이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못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신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고 말씀하신대로 무한한 사랑을 가질 것을 요구하신다.



예수님께서 첫째로 요구하시는 것은 기도도 아니고 종교 활동도 아니다. 오직 사랑,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그것이다. 그러나 마음에 사랑으로 정비된 후에는 반드시 행동으로 옳길 것을 요구하신다. 사랑이 없는 행동은 남의 이목에는 좋게 보여질진 몰라도 하느님 앞에서는 아무런 가치도 없기 때문이다. “내가 비록 모든 재산을 남에게 나누어준다 하더라도, 또 내가 남을 위하여 불 속에 뛰어든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Ⅰ고린 13, 3)



참 사랑은 오직 하느님께로부터 나온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Ⅰ요한 4,8). 이 사랑으로서만이 미움을 이길 수 있다. 미움은 미움을 이기지 목하며, 미움으로써는 미움을 무디게도 할 수 없다. 미움은 미움을 더하게 할 뿐이다. 사랑은 미움보다 강하고, 선은 악보다 강하여 항상 승리를 거둘 수 있다. 그래서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인가? 예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믿는 사람이다”(Ⅰ요한 5, 5)



원수에게 사랑으로 대할 때, 원수의 마음까지도 녹일 수 있게 된다. 그때 이 세상에서는 그만큼 미움이 가시고 평화가 깃든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은 하느님을 믿는 마음에서만 가능하다.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을 위해서 행동할 때 이루어진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미 하느님 나라에 속해 있음을 뜻하는 것으로서, 그는 하느님의 백성, 하느님의 자녀라 일컬어진다. 따라서 하느님 나라에서의 새 인간이 된 사람들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곧 사랑이다.



그리고 하느님으로부터 새로 나음을 받은 사람은, 그 사람 안에 하느님의 생명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그는 하느님으로부터 무한한 사랑과 능력을 받아 얼마든지 풍요로울 수 있다. 그는 이미 하늘나라의 풍요로움과 부유함을 가지고 있으므로 동료 인간에게, 즉 이웃들에게 얼마든지 베풀 수 있게 된다. 사실 참다운 풍요로움이란, 내가 많이 가지고 있는 데 있지 않고, 내가 얼마나 남에게 나누어주면 줄수록 더 많아지고, 자신을 헌신하면 할수록 자아가 완성돼 나간다. 그는 무한히 풍요로우신 하느님으로부터 얼마든지 받아 하느님을 위해, 하느님 안에서 나누기 때문이다.











4             연중 제7주일   마태 5, 38-48 (가) 원수를 사랑하라

                                         변기영 신부



네 원수가 배고파할 때에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할 때에 마실 것을 주라!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주일 독서에 나오는 이 말씀은 세속에서 들어보기 매우 힘든 그리스도다운 사랑의 말씀입니다. 친구나 친척이 배고파하고 목말라할 때에도 마실 것을 나누어 줄 줄을 몰라서 세상은 인심이 야박하다고 하는데 원수가 배고파하고 목말라할 때에 먹고 마실 것을 주라는 말씀은 세상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렵고 바라기도 힘든 이야기입니다.



교형자매 여러분, 흔히들 자녀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하늘보다 더 높고 바다보다 더 깊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녀이기 때문에 또 자신이 어머니이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 모성애가 이렇듯이 위대하다면 자녀도 아니요 부모도 아니요 친구도 친척도 아닌 자신이 가장 미워할 수밖에 없는 자를 사랑하고 원수를 돌보아주는 이 “원수애”라는 것은 그 얼마나 위대한 것입니까? 친구간의 우정이 아름답고 유익한 것이고, 친척간의 형제애가 훌륭하고 당연한 것이고, 어머니의 모성애가 말할 수 없이 위대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원수지간에 사랑한다는 이 ‘원수애’라는 것은 그리스도다운 거룩하고도 거룩한 지극히 거룩한 사랑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일상생활을 잠시 살펴봅시다. 이 세상에 살고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 천사가 아니고 죄 지을 수 있는 인간이며 실제로 죄를 짓고 있고 잘못할 수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모든 이의 마음에 다 잘 맞게 하기는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거의 누구에게나 자기 마음에 안 맞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 때로는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해주고 우리 마음을 상해 주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큰 손해를 끼치는 원수도 있을 수 있고 우리를 몹시 미워하는 이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도와준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며 그렇다고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원수에 대한 사랑을 말하기 훨씬 이전에 원수가 아닌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검토해 보자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친구나 친척이나 이웃 사람들을 우리는 정말 사랑하고 있습니까? 이들이 배고파할 때 먹을 것을 줄 만큼 우리는 이들을 도와주려고 하고 있습니까?



만일에 친구나 친척이나 가족이나 이웃을 사랑치 목하고 도와주지 못하는 신자라면 원수에 대한 사랑이란 멀고 먼 다른 나라의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만약 친구나 가족이나 친척이나 이웃을 사랑치 않고 도와주지 않고 있다면 즉 원수에 대한 사랑은 고사하고 친구나 가족에 대한 사랑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면 그 원인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 원인은 자신을 너무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수에 대한 사랑이나 도움은 고사고 이웃이나 친구에 대한 사랑이나 도움을 베풀지 못하고 있는 원인은, 그 장애물은 바로 우리 자신에 대한 지나친 사랑 곧 자애심 다른 말로 말해서 자기애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애심에 깊이 물들어 있는 사람은 남에게서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며 그리스도의 제가가 되기에는 아직 멀었다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교형자매 여러분, 우리는 오늘부터라도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따른다는 증거를 보이기 위해서도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도와주려는 마음가짐을 지닙시다. 그리고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해주는 모든 사람을 너그럽게 용서해 줍시다. 또 그들이 아쉬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도와주고 보살펴 주도록 노력합시다. 그러면 비로소 그리스도다운 사랑이 무엇인지 우리는 깨닫기 시작할 것이고 맛들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5               연중 제7주일   마태 5,38-48 (가) 똑같이 똑같이

                                                    김현준 신부



어느 날 전화가 걸려왔다. 감기든 내 목소리를 듣더니 “신부님! 아직도예요? 이제 그만 감기 버리세요," “버리라고? 어디에다?" “이북으로요" “거기에는 왜?" “나쁘잖아요," “나쁘면 감기도 보내야 하나?"

  

이런 전화 뒤에 학생들과 한자리에 앉게 되었고, 오늘의 복음 말씀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며 의견을 들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지키기 어려운 계명의 실천을 명하신다. ‘보복하지 말라' ’원수를 사랑하라' 그리고 구체적으로 ‘누가 오른 뺨을 치거든 왼쪽마저 돌려 대라' ’좋아하는 사람들만 아니라 박해하는 사람들까지도 사랑하라'고 요구하신다,

  

사실 남에게 뺨을 맞는 것처럼 모욕적이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 있을까? 때리면, 똑같이 때리고, 미워하면 똑같이 미워하고, 무심하면 헐뜯고, 손해보면 그 만큼 되돌려 주고픈 것이 인지상정이 아닐까? 또 사람의 힘으로 원수 사랑하기가 가능한 일일까?

  

복음 말씀을 나눔한 사랑들의 의견은 이러했다, 하나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다만 이 요구를 다 채울 수 없다는 것을 통해, 하느님을 믿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려는 데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의견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만 그 경우는 사형선고 등으로 자신의 종말을 알고 죽을 때, 실천 가능한 것이며, 현재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유보된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삶 따른다면         



또 다른 의견은, 예수님도 이 요구를 사람이 다할 수 없다는 것을 아신다. 따라서 이렇게 해서라도 사람들을 자극하여 일부분이라도 실천하도록 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무엇보다 이 가르침의 요구를 제대로 알아들으려면, 우선 오늘 복음 말씀이 ‘산상수훈'과 ’진복팔단'의 계속이며, 그 한 부분이기에, 그 안의 말씀들과 연결시켜 보아야한다. 즉 ‘보복하지 말라'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듣는 나의 위치는 예수님의 ‘행복론'이 앞에 있고, 뒤에는 그것을 몸소 사신 예수님이 서있고, 그 가운데에 내가 있는 셈이다. 마치 어떤 수학공식에 있어서 괄호 밖의 숫자가 괄호 안의 각 숫자에 적용되는 모습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구약의 율법에는 복수하는 데 있어서 똑같은 방법으로 복수하게끔 하는 동태복수법(同態復讐法)이 허용되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출애 21,24-25)가 그 대표적인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예수의 제자 된 신분이기에, 예수의 ‘행복론'을 받아들여 사는 사람이기에, 따라오는 모욕도 받고 원수 사랑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의 제자 되는 결단을 기적처럼 현실화시켰을진대, 실제의 삶 또한. 기적을 이루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행 불가능하거나 죽을 때나 한번 실천해볼 수 있는 가르침이 아니고, 생활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나도 사람인데․․"라는 말을 잘 쓴다. 실수도 할 수 있고 잘못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또 “사람이 그럴 수~있나?"라는 말도 자주 쓴다. 실수도 잘못도 분수가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오늘 복음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고 결론내린다, 그 어려운 원수 사랑까지의 근거가 바로 하느님 아버지의 완전하심, 즉 하느님의 보편적인 사랑이심을 밝혀준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똑같이 비를 내려주신다."(마태 5,45)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사람은 하느님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라고 했다. 마치 “계명의 좁은 문을 통해 하느님 영의 더 넓은 세계로 들어가듯이"(칼 라너), 사람은 유한하지만 진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제시하신 새로운 계명을 따라, 무한한 하느님을 완전히 또 거룩하게 닳을 수 있다.



그래서 하느님은 인간의 모습을 똑같이 취하시어 인간 세상에 내려오셨고,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을 똑같이 닮아 하늘에 올라간다. “이북이 나쁘잖아요." 그렇다고 감기는 보내고, 쌀은 안보내야 한다는 생각은 오늘복음에 비추어보면 좀 그렇지요?











6            연중 제7주일   마태 5,38-48 (가) 사랑은 원수까지도

강길웅 신부



제1독서 레위 19,1~2.17~18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아껴라)

제2독서 Ⅰ고린 3,16~23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의 것이며,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

복 음 마태 5,38~48 (원수를 사랑하여라)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무엇보다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누가 뭐래도 삶이 거룩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의 빛이 될 수 있고 또한 소금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1독서에서는, 하느님께서 거룩하시니 우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만일에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 삶이 거룩하지 못하면 그는 하느님을 모독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사랑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그 사랑이야말로 바로 거룩한 삶의 지름길이 됩니다. 그러나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너무 쉽고 즐거우면서도, 다른 한편 또 너무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눈물나는 일입니다.



이를테면 나한테 잘해 주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쉽습니다. 내 시간과 내 정력이 아깝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는 삶의 에너지가 크게 생깁니다. 그러나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죽는 것만큼이나 어렵습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에게는 저주를 내리는 것 이 더 쉽고 더 유쾌한(?) 일입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원수를 사랑하는 일이 위대한 일이 됩니다. 굉장히 어렵고 힘들기 때문에 더 공로가 되고 더 은혜가 됩니다. 자신이 죽어야만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이라면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사랑이요 하느님의 사랑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따라서 우 리가 억지로라도 원수를 사랑할 수 있을 때 그는 큰 축복을 만나게 됩니다.



어떤 집에 며느리가 하나 들어왔는데 이것이 아주 요물이라 시아버지 알기를 아주 우습게 여깁니다. 밥도 제대로 드리지 않으며 걸핏하면 말대답이요, 한술 더 떠서 시아버지를 쫓아내겠다고 하니 참으로 가관이요 기가 찰 일이었습니다. 어쩌다 아들이 뭐라고 한마디하면 눈에 쌍심지를 켜들고 대드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 하면서 가슴앓이만 했습니다.



하루는 장에 갔다온 아들이 자기 마누라에게, “세상에 별 희한한 일이 다 있습디다. 아, 글쎄 통통하게 살찐 영감을 사겠다고 소리치 고 다니는 작자가 있던데 그걸 보니까 생각나는 것이 꼭 한 가지 있습디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마누라가 무릎을 치며 “맞아요. 아버지를 살찌워서 팝시다."하면서 제안을 했습니다.



그 날부터 며느리는 시아버지 공경을 아주 극진하게 했습니다. 비 싼 값에 팔려는 욕심 때문에 돈도 아끼지 않고 늘 고기와 쌀밥으로 봉양합니다. 뿐만 아니라 먹는 것만 가지고는 살이 안 찔 것이다 해 서 시아버지의 맘을 편하게 해 드리기 위하여 온갖 정성을 다 바칩니다. 마실갔다 오시면 안마도 해 드리고 방은 늘 따뜻하게 지펴 놓곤 했습니다.



이러니 시아버지가 참으로 살판이 났습니다. 하루는 며느리에게 그랬습니다. “얘야, 내가 요즘 마실다니면서 아주 기를 펴고 산다. 사람들이 온통 네 자랑이요 칭찬이 자자하여 동네에서 원님 앞으로 효부상을 올리겠다고 하는구나. 세상에 시아버지 안마까지 해 주는 며느리가 너 말고 누가 또 있겠느냐." 하면서 감격해 하셨습니다.



그러자 며느리가 답을 했습니다. “아이고, 아버님도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부모님 잘 모시는 것은 사람의 도리인데도 글쎄 요즘 우물가에 가면 동네 여자들이 저보고 속도 곱고 마음도 비단 같다고 칭찬들이 많아요. 사람들이 저희 집에 효도 구경 오겠대요." 하면서 진심으로 시아버지 공경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날밤이었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은근한 목소리로, “여 보, 이제 저 정도면 값을 비싸게 받을 것 같으니까 오는 장날에는 아버지를 그만 내다 팔도록 합시다." 하고 마음을 떠봤습니다. 이때 부인이 남편 따귀를 냅다 갈기면서, “세상에, 자기 아버지를 장에 팔자는 아들이 어디 있어요."하면서 자기는 시아버지 모시는 재미로 산다고 하더랍니다.



자기 편한 대로만 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사랑하기 위해선 자기가 죽어야 하며, 죽어야만이 사랑할 수 있는 그 사랑이야말로 예수님처럼 가장 큰 사랑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사랑을 하기 위해서 죽어야(?) 합니다. 정말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서가 말하는 거룩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죽지 못하면 우리는 바보 신자가 됩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원수가 되었던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배반하여 그분의 계명을 소홀히 한 잘못도 부지기수였습니다. 그래도 하느님은 우리를 늘 용서해 주셨으며 청하지 못 하는 은혜까지도 채워 주셨습니다. 우리도 서로 사랑합시다. 특히 원수를 사랑하도록 합시다.

이것이 하느님의 거룩함을 닮는 아름다운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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