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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전례
작성자 강론모음
작성일 2008년 9월 6일 (토) 11:17
분 류 설,추석
ㆍ추천: 0  ㆍ조회: 4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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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가위 ”
 

1. 박인용 베다

1.1. 한가위



1. 1독서 주해 : 요엘 2,22-24.26ㄱㄴㄷ      

 2장을 끝맺는 부분이다. 21-24절은 감사의 시를 위한 도입구의 문체로 되어있다. 보통 때에는 신현현 때 사용되던, “두려워 하지 말라.”는 말이 두 번 나오고, 환호하고 즐거워 하라는 권고가 거듭 나오기 때문에, 여기에서 이 재앙의 무서운 곤경과 현재의 행복 사이에 갑작스런 변화가 있었음이 표현된다. 모든 감사의 노래에서 주제가 되는 하느님의 도움의 위대함을 나타낸다. 들판의 짐승들도 즐거운 감사에 초대받은 사람의 합창에 동참한다. 창조주 앞에서 피조물들이 일치단결한다는 것은 이미 언급된 사실에 대한 확인이다. 또한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을 가득 채우는 세속적인 복에 대한 즐거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축복을 통해 다시 자기 백성에게 가까이 다가온 하느님 자신에 대한 즐거움에도 있다. 또한 주님께서 내려 주시는 비는 하느님의 정의를 제시해 준다. 하느님의 정의는 곤경은 밝게 빛나고 그 곤경속에 감추어져 있는 하느님의 목적달성을 통해 그 의미가 획득된다. 끝으로 기적을 베푸는 하느님의 위력이 크다는 것을 깨닫고 찬양한다. 땅의 소산을 향유한다는 것은 그의 수여자에 대한 찬양이다. 하느님의 백성의 실존과 명예는 하느님의 은혜의 기적에 달려 있다. 기적과 하느님의 도움이 예상치 못할 만큼 크다는 느낌은 온전히 하느님께 의존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이러한 살아 있는 신념의 특징인 것이다. 이곳에서도 최종 목적은 형식적이고 법률적인 정의감을 만족시키기 위해 세속적인 균형을 이루는 옛 질서의 회복에 있지 않다. 오히려 이 약속의 끄트머리에서 하느님이 도와주는 최종적인 목적으로 강조되는 것은 하느님의 독점적인 생생한 현실적 임재와 그의 위대함에 대한 인식과 계시이며 경종이다. 하느님께만 관심을 갖고 있는 이 신탁이 거룩한 신현현 전승에서 비롯된 문구(이 문구는 에제키엘서에서 자주 사용되었다.)로 끝난 것은 유효적절하다.



2. 2독서 해설 : 묵시 14,13-16

 주님 안에서 죽은 이들은 행복하다고 한다. 죽음이 주님 안에서 이루어진다면 악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행복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 안에서 죽은 이들은 주님을 믿다가 죽은 이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수확을 언급하며 심판을 말하고 있다. 포도 수확처럼(18-20절) 곡식 수확도 가끔 종말의 심판을 가리키는 표상으로 쓰인다.(예컨대 이사 63,3;요엘 4,13; 마태 13,39참조) 여기서 추수는 의인들을 거두는 것보다 불신자들에 대한 하느님의 마지막 심판을 가리킨다.

 예언자들이 선포하는 신탁과 방향을 같이하면서도 다른 길을 걷는 묵시 문학의 메시지는 무엇보다도 절박한 것으로 드러난다. 독자는 “주님의 날”과 심판날이 다가왔음을 예감하기에 이른다. 모든 예언자의 메시지와 마찬가지로, 묵시록은 하느님의 계획의 현시성과 그에 따라 우리의 전 존재를 투신해야 하는 절박성을 선포하며 현 시대와 그것의 완료를 초자연적으로 이해하게 해준다.



3. 3독서 해설 : 루카 12,15-21

 13-34절에는 현세의 재물을 어떠한 자세로 다루어야 하는지에 관한 예수님의 여러 가르침이 모아져 있다. 곧 예수님께서 특수한 문제를 계기로 내리시는 일반적 경고(13-15절),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16-21절), 양식과 의복 걱정에 대해 제자들에게 내리시는 권고(22-32절), 그리고 자선에 관한 권면이다.(33-34절)

 먼저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의 도입이라고 할 수 있는 13-15절을 살펴보자. 13절에서 유다인들은 랍비들에게 중재를 요구하던 모습이 드러난다. 그들도 예수님께 중재를 요청하였다. 현세적 직무를 맡아 주십사는 청을 예수님께서는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라고 말씀하시며, 거절하신다. 이로써 자신을 “지도자와 판관”으로 내세운 모세와(탈출 2,14 그리고 사도 7,27-35 참조) 당신을 구분 지으시는 것이다.

 이로써 예수님께서 왜 돈 문제에 개입하기를 거절하셨는지 설명된다. 돈은 구원과 직접 관련이 없는 것으로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통해 무엇이 참 부인지 부각시킨다. 곧 12,33절과 18,22절에서도 볼 수 있는 대로(16,9 참조), 결론적으로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는 권고를 하신다.

 루카 복음서의 비유에서는 주인공들이 가끔 독백으로 자기들의 생각을 드러낸다. 부자는 독백으로 자기 영혼에게 말한다. 그런데 “영혼”에 해당하는 그리스 말 ‘프쉬케’는 구약성경에서 자주 그러하듯, 생명체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래서 때로는 ‘생명, 목숨’으로(6,9; 9,24; 12,20.22.23; 14,26; 17,33; 21,19), 때로는 여기 첫째 문장에서처럼 인칭 대명사(자신)로, 때로는 둘째 문장처럼 자기 자신을 부르는 말(자)로 옮겨야 한다.

 생명 전체를 가리키는 이 말을 자신에게 사용하며, 하느님의 영역을 자신의 영역으로 착각하며, 하느님을 잊고 있다. 이런 부자에게 20절에서 목숨을 되찾아 가신다고 한다. ‘되찾아 가다’가 그리스 말에서는 복수 3인칭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비인칭 용법으로 하느님을 가리킨다. 주님께서는 이 부자를 죽음으로써 이 세상에서 불러 가시는 것이다. 21절에 “하느님 앞에서는” 대신에 “하느님을 향해서는”, “하느님과 관련된 것에서는”, “하느님을 위해서는” 등으로 옮기기도 한다. 하느님 앞에서 부유하다는 것은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을 가리킨다.



4. 강론 주제

①1독서의 내용을 토대로,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다.(하느님의 은총)

②1독서에서 하느님께서 주신 것에 감사와 찬양을 드리자.(감사)

③2독서의 내용을 토대로, 주님을 믿다 떠난 조상을 기억하며 기도하자.(합동위령)

④3독서의 내용을 토대로,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수확에 대한 우리의 자세(나눔)

5. 강론

찬미예수님

추석을 맞아 고향을 찾아오신 모든 분들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여기 모인 모든 분들께 주님의 은총, 가득하시길 빕니다.


오늘 강론은 어느 책에서 읽었던 한 가지 이야기로 시작할까 합니다.

 오아시스에 조그만 오두막집을 짓고 사는 한 노인이 있었습니다.

그 노인은 맑은 샘물과 우거진 야자수가 있는 그곳에서 나그네들에게 샘물을 퍼주는 일에 큰 기쁨과 보람을 느끼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나그네들이 물을 얻어먹고 노인에게 얼마의 동전을 건네주었습니다. 노인은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금고에 동전이 자꾸 쌓여가자 은근히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노인이 먼저 나그네들에게 본격적으로 돈을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어느 날이었습니다. 노인이 무심코 샘을 들여다보자 샘물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노인은 돈을 벌게 해주는 샘물이 더 이상 말라서는 안 된다고 생각되어 그 원인을 찾아 나섰습니다. 문득 잎이 무성한 야자수가 샘물을 흡수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노인은 과감하게 야자수를 몽땅 잘라버렸습니다.

 얼마 후, 그늘이 없는 샘물은 말라버렸고, 아무도 노인의 오두막집을 찾지 않았습니다. 노인은 뜨거운 햇볕을 견디지 못한 채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어리석은 노인이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늘 무엇인가로 끊임없이 채우려고만 하는 우리의 모습 말입니다. 버리는 것에 서툴고 채우려고만 하는 우리의 태도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어리석은 부자가 나옵니다. 이 부자는 그 어느 때 보다도 더 많은 소출을 거두었습니다. 더 이상 자신이 가지고 있는 창고에는 그 많은 곡식과 재물을 쌓아둘 곳이 없어 고민하였습니다. 고민 끝에 더 큰 창고를 짓겠다고 계획 합니다.

 이 부자는 너무나 어리석습니다. 자신에게 큰 부를 허락하신 분이 누구인지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풍성한 은총은 깨닫지 못하고, 온통 자신의 재산에 온 마음이 가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이 재물로 가득차 있으니, 하느님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이 부자의 마음에, 재물에 대한 욕심이, 차고 넘쳐서, 주님께서 머무실 공간이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도 이 어리석은 부자와 별반 차이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분은 주님이신데, 우리의 작은 것 하나라도 주님께서 허락해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는 것인데, 우리의 마음 안에 온통, 가득차 있는 것. 끝이 없는 욕심, 욕망들로 인해, 주님을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저는 가끔 이런 물음을 제 자신에게 던져 봅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일까?

 그 답은 추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추석은 한 해의 수확에 감사드리는 날입니다. 우리는 한 해 동안 베풀어 주신 주님의 은총에 감사드리며, 우리의 마음을 모아, 감사의 미사를 봉헌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바로 감사의 삶입니다. 나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이, 주님께서 주신 것임을 믿고,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는 삶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잘했기에, 주님께서는 주시는 것입니까? 성경에 나온 대로, 우리는 모든 것을 주님께 거저 받았습니다. 우리의 공과 덕의 대가로 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신 주님께서는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거저 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모든 것을 거저 주셨는데, 우리가 주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주인이 아니고, 관리인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선물을 내 소유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 우리는 거저 받은 것을 거저 주어야 합니다. 내가 받은 물질만을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무엇인가를 주셨을 때, 주님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기억해야 합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는 주님의 마음은 ‘나’를 기억하는 마음,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그 마음, 이웃을 향한 관심과 배려, 사랑의 마음을 주님께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께 참으로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매일의 필요한 양식을 받았고, 슬픔과 고통 중에는 위로와 격려를 받았고, 죄를 지었을 때는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가장 소중한 생명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많이 받은 자는 더 많이 베풀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가 이웃에게 주님의 사랑을 보여줄 때입니다.

 추석을 맞이하여,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모든 은총에 감사드리며, 감사의 보답으로 이웃과 나누는 삶 실천하도록 합시다.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6.10.6 금요일  한가위 대축일



요엘2,22-24. 26ㄱㄴㄷ 요한 묵14,13-15 루카12,15-21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오늘은 우리나라 최고의 명절인 한가위 추석입니다. 아마 일년 중 추석을 중심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동하는 때일 것입니다. 어제 동아일보 1면의 고향을 찾는 자녀를 맞이하는 어느 부모 사진과 그 부모의 짧은 한마디 말이 잊혀 지지 않습니다.

- “뭣 하러 왔니? 힘들게”

   할머니는 반가우면 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단 한 줄 머리기사이지만 얼마나 고마움과 반가움이 가득 담겨 있는 말인지요?

힘들어도 이렇게 와 주어서 정말 고맙고 기쁘다는 진심이 함축되어 있는 말입니다.

저 역시 예전 추석 때, 오랜 만에 밤늦게 고향 집을 찾아 대문을 두드릴 때 반겨주시던 어머니의 모습도 눈에 선합니다. “어, 누구여! 수철이 아녀?” 주무시다 말고 반가움에 잠깨어 신발도 신지 않으시고  허겁지겁 나오시던 어머니셨습니다. 한가위 대축일, 하느님께서 주신 최고의 명절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함께 만나 모두가 형제가 되어 감사와 기쁨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우리들 또한 좋은 한가위 추석을 마련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기 위해

이 거룩한 한가위 대축일 미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하느님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십시오.

추석에 가장 잘 어울리는 모습입니다. 요엘 예언자를 통한 주님의 간곡한 당부이기도 합니다.

“시온의 자손들아, 주 너희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여라.” 최고의 농부인 하느님께서 봄비와 가을비를 때 맞춰 쏟아 주셨기에 저희 배 밭 역시 배 열매들로 가득하고 곧 창고는 배들로 가득 찰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아침부터 우리에게 놀라운 일을 하신 우리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하며 아침 성무일도를 힘차게 바쳤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 안에서’ 살고 있다는 자각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하느님 밖에서’가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그 기쁨, 즐거움은 영혼 육신에 활력을 줍니다. 외부 환경의 영향을 최대한 줄일 수 있습니다. 하느님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느님을 찬양할 때 진정한 행복입니다. 마침내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주님 안에서 죽는 이들은 행복하다.” 요한 묵시록에서 보다시피 하늘에서 울려오는 목소리입니다. 바꿔 말해 주님을 믿다가 죽는 이들은 행복하다는 것이며, 이들은 고생 끝에 안식을 누릴 것이니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주님을 믿으며 한 모든 일들이 그의 상급이 되어 그를 따를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 안에서 기뻐하고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하십시오. 이래야 하느님은 우리의 것이 되고 우리는 하느님의 것이 됩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전부가 되어 버립니다.

최고의 보물인 하느님이 우리의 전부가 될 때 비로소 탐욕 없는 지혜로운 사람이 됩니다.

머리 좋아서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라 욕심 없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무욕의 지혜입니다.

아무리 학식 많고 머리 좋아도 탐욕이 그 마음의 눈을 가려버려, ‘있는 그대로’ 못 보는, 말 그대로 어리석은 사람들은 얼마나 많습니까? 돈 욕심 앞에 바보 되는, 똑똑한 바보들 말입니다.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있지 않다.”

오늘 복음 말씀처럼, 재산이 생명을 보장해 주지 못합니다. 전적으로 생명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 손에 달려있습니다. 허상인 재산을 주인인양 착각하여 쫓다가

몸과 마음 망가지는 사람들 얼마나 많은지요?  많은 재산을 쌓아두고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길 것을 꿈꾸는 어리석은 부자를 향한 하느님의 말씀,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 같습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쌓아 놓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참 어리석고 인색한 사람입니다.

이래서 옛 사막의 현자들, 이구동성으로 ‘날마다 죽음을 눈앞에 환히 두고 살라’는 충고를 줍니다.

지나친 탐욕 역시 영혼의 질병입니다. 탐욕에 대한 최고의 처방, 하느님뿐입니다.

평생 꾸준히 하느님 안에서 기뻐하며 하느님을 찬양할 때, 탐욕은 치유되어 하느님 향한 사랑의 에너지로 바뀝니다. 하느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맛 들여가면서 돈맛도 잃어 초연한 자유와 사랑을 누리게 됩니다. 이 은혜로운 한가위 대축일 미사시간, 말 그대로 하느님 안에서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시간입니다. 좋으신 주님은 우리의 탐욕의 질병을 치유해 주시고

당신 생명과 사랑으로 우리를 충만케 하십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하늘의 모든 천사와 조상과 함께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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