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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전례
작성자 주일강론
작성일 2008년 8월 9일 (토) 21:12
분 류 연중25-30주일
ㆍ추천: 0  ㆍ조회: 3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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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가해 연중 제 30주일 주일 강론 모음 ”
 

연중 제30주일

제 1 독서 : 출애 22, 20-26

제 2 독서 : 1데살 1, 5ㄷ-10

복     음 : 마태 22, 34-40



제 1 독서 : 모세오경은 이스라엘 땅 안에 있는 외국인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누고 있다. 즉 잠시 머물다 가는 외국인과 이스라엘 사람들 틈에 끼어 장기적으로 체류하는 외국인을 구별한다. 모세오경은 특별히 후자에게 관심을 보이고 그들의 권익을 보장해 주고 있다. 외국인들을 착취하거나 억압하지 말라는 규정(출애 22, 20; 23, 9)뿐만 아니라 아예 외국인을 사랑하라는 규정(신명 10, 19)까지도 있다. 이런 규정의 근거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종살이했던 경험에 있다. 남의 나라에서 중노동에 시달렸던 체험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자기 나라에 몸붙여 사는 외국인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들의 권익을 보존하게 이끌어주었던 것이다.

오늘 제1독서는 외국인뿐만 아니라 과부와 고아의 권익을 옹호하는 내용이다. 과부와 고아도 보호자가 없다는 점에서 외국인과 처지가 비슷하다. 보호자가 없는 약자들을 위해서 주님께서 몸소 보호자로 나선다.



제 2 독서 : 데살로니카 전서만큼 교회 공동체의 시작에 관한 내용을 직접 접할 수 있는 편지가 드물다 사도 바오로 일행이 데살로니카에 가서 복음을 전했을 때 데살로니카 사람들이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들여 우상을 버리고 하느님께 마음을 돌려 살아 계신 참 하느님을 섬기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6절의 “말씀”은 특별히 복음서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이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이 단어 없이는 불가능할 정도이다. 말씀은 복음과 동의어라고 볼 수 있다. 이 말씀은 그냥 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이다. 하느님의 말씀은 단순히 하느님께 대한 말씀이 아니라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기쁨을 가지고 맞아들이는 사람에게서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의 말씀이 데살로니카 신자들에게서 풍성한 열매를 맺은 사실에 대해 감사드리는 내용이다.



복     음 : “선생님, 율법서에서 어느 계명이 가장 큰 계명입니까?”라고 넌지시 물어오는 율법 교사에게 주님께서는 신명기 6장 5절의 말씀으로 간단 명료한 대답을 주셨다. 그 당시 율법 교사들은 모세 율법의 본정신을 망각하고 세심한 법규준수에 몰두하였으니, 어느 계명이 가장 크고 첫째 가는 계명인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율법과 예언서 전체를 꿰뚫어 보셨던 주님께서는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애주애인)이 가장 큰 계명이라고 못박으셨다.

이웃 사랑의 계명은 우리 삶이 참으로 하느님께 방향지었을 때, 우리 삶의 중심에 하느님께서 계실 때 나오는 결과이다. 이웃 사랑의 계명은 가끔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이웃을 위해 무엇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위한 헌신을 삶의 본질로 삼으라는 초대이다.

여기서 이웃은 나와 함께 매일 같이 사는 사람, 일 때문에 매일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하는 사람을 뜻한다. 내 마음에 드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이웃, 내 뜻과 맞지 않는 이웃을 사랑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바로 여기에 이웃 사랑이 계명으로 주어진 이유가 있다. 내 마음에 드는 이웃만 선택해서 사랑한다면 이웃 사랑은 계명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내 뜻과는 상관없이 이웃은 이미 주어져 있다. 이웃을 내 마음으로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이웃 사랑은 우리에게 계명이 되는 것이다.

시베리아의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취제크 신부님은 이렇게 썼다. “병자와 고통받는 자들을 동정하거나 그들을 도울 마음을 먹는다든가. 전쟁 또는 자연 재해로 희생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찌릿한 아픔과 연민을 느끼기는 쉽다. 그러나 날마다 나와 어깨를 맞대고 살면서 내가 인간적인 허물을 낱낱이 목격할 수 있는 이웃에게 깊은 동정심을 느끼거나 형제적 사랑을 갖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와 같이 살고 있는 저 사람이 도대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내 이웃에 살거나 혹은 직장에서 나와 함께 일하는 저 원숭이 같은 친구를 내가 형제로 대우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보기만 해도 밥맛이 떨어지는 저 원숭이 같은 녀석을 내가 왜 사랑해야 하는가?”(발터 췌제크, 「나를 이끄시는 분」 중에서)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의 성서 말씀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 이웃 사랑, 특히 약자들에 대한 보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제1독서는 출애굽기의 제3부 계약편으로 십계명의 정신을 따른 법 규정집 중 약자 보호에 관한 내용입니다. 성서는 특히 나그네, 과부, 고아, 가난한 자들을 돌보고 보호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날 때부터 절대적으로 부귀 영화를 보장받은 것은 아니기에 서로 돕고 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사실 히브리인들은 오랫동안 이집트 노예살이의 압제, 억압, 수탈, 가난 속에서 시달렸던 뼈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이러한 과거를 생각해서라도 어려운 이웃을 잘 돌보아주어야 한다는 호소와 바람을 하느님께서는 강조하고 계십니다.

야훼 하느님은 울부짖는 백성들의 소리를 들어주시는 분, 아니 울부짖는 백성들과 함께 하시는 분입니다. 그 때문에 이 시대의 신학의 기본 입장을 ‘자유와 해방’이라는 관점에서 종합한 1986년 3월 22일 바티칸 신앙교리성의 훈령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과 사랑”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고 교회가 부자들을 결코 배척한다는 것이 아니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약자들을 우선적으로 돌보아준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실상 어느 사회에서든지 가진 자나 권력자들은 많은 기득권을 누리면서 대접을 받고 있지만 가지지 못한 자나 평범한 사람들, 특히 힘없고 행색이 초라하고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자들은 어디 가서나 큰 대접을 받지 못하고 버려지게 마련입니다. 즉 서러움을 당하고 무시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사로운 햇살이 뜰안 가득 쏟아지던 날, 로라는 정원 문에 매달려 오락가락 그네를 타고 있었습니다. 그 때 누더기 차림의 한 부랑자가 나타나 거친 목소리로 로라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안녕, 꼬마야. 엄마 계시니?” 그러더니 그는 로라의 대답은 듣지 않은 채, 더러운 발을 질질 끌면서 현관까지 걸어 들어갔습니다. 마침 엄마가 화단에 물을 주기 위하여 고무 호스를 들고 정원으로 나오고 있었습니다. “부인, 먹을 것 좀 주실 수 있겠습니까?” 엄마는 호스를 내려놓고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베란다 앞 좁은 계단으로 안내했습니다. 잠시 후, 엄마는 두꺼운 빵에 두툼한 고기를 넣은 샌드위치와 우유를 들고 와 그에게 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부인!” 그 부랑자는 덥썩 음식을 받아들고는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습니다. 로라는 계속 그네를 타면서 그가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음식을 다 먹은 후, 그는 일어서서 대문 밖으로 유유히 걸어 나갔습니다.

로라는 지저분하고 게으른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며 후한 대접을 하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엄마, 저 사람들은 너무 게을러서 일을 하지 않는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왜 엄마는 그런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나요?” 로라의 질문에 엄마는 가만히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로라야, 저 사람들도 어린아이였을 때는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처럼 엄마의 사랑을 받았을 거야, 난 저 사람들의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그들에게 음식을 주는 거란다. 네가 만약 굶주리고 있을 때 저 사람들의 어머니들이 너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주기를 바라면서 말이야.” 로라의 작은 어깨에 손을 얹은 엄마의 앞치마에서 방금 구운 빵 냄새가 향긋하게 풍겨 나오고 있었습니다.

위의 이야기처럼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인간 대접을 해주고 삶의 용기와 힘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 바로 교회의 역할이요,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사람들이 더럽다고 손가락질하고 무식하다고 상대해 주지 않는 사람들의 벗이 되어주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제공해 주며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자 우리 모두가 실천해야 할 그리스도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인권이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서 정의편에 서서 그들의 억울함을 대변함은 물론, 풀어주고 함께 고통을 나누는 것입니다. 아울러 신체적으로 불구이거나 오갈 데 없는 갖가지 불우한 처지에 놓인 아이들이나 노인들, 그 밖의 사람들을 위해서 시설을 제공하고 그들을 보살펴 주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 세상의 빛으로서 정의와 복지, 양면에서 베푸는 사랑이란 무한한신 하느님의 사랑을 본받고자 하는 것일 뿐 아니라 하느님의 지엄하신 명령에 순응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제1독서(출애 22, 20-26)는 구체적으로 저당잡힌 자들에게 너그러울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누가 만일 이불과 담요를 저당잡았다면 해지기 전에 반드시 돌려주라는 것입니다. 이자도 중요하지만 그 이자 때문에 가난한 사람이 이불을 덮지 못하고 밤을 지새우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원래 이자를 받는 것은 성서상 합당치 못한 것입니다. 사랑과 도움의 정신으로 그냥 빌려주는 것이 성서의 근본 사상입니다.

나의 보장받은 위치가 결코 타인의 기본권을 침해해서는 안되며, 또한 나의 재물이 타인의 생존권보다 우선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너희가 그들을 괴롭혀 그들이 나에게 울부짖어 호소하면 나는 반드시 그 호소를 들어주리라. 나는 분노를 터뜨려 너희를 칼에 맞아 죽게 하리라.”

제2독서는 데살로니카 전서의 말씀으로 사도 바오로는 데살로니카 공동체의 교우들이 신망애 삼덕 안에 성실한 삶을 살고 있음에 대하여 기뻐하며 이들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기쁜 소식을 소식으로만 받지 않고 말씀을 실천함으로써 마케도니아와 아카이아 지방 즉 주변 지방으로까지 선포하게 되었고 이것이 하느님과 이웃 사랑을 증거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복음선포란 기쁜 소식의 단순한 전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업적을 되새기고 그것을 본받는 행위이며 실천입니다. 그 구체적 내용은 하느님 중심의 유일신 사상, 그리스도 중심론 그리고 종말론에 기초한 희망의 삶을 뜻합니다. 즉 하느님은 우리 삶의 전부라는 마음의 자세를 지닐 때 그 하느님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날 것입니다.

오늘 복음(마태 22, 34-40)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가장 큰 계명인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두 번째 계명인 인간을 사랑하는 것은 차원은 비록 다르지만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유다인들은 십계명에 기초한 여러 세부적 법규정들을 갖고 있었는데 이는 248조의 명령법과 365조의 금령법으로 모두 613조나 되었다고 합니다. 이 많은 법을 사랑 즉 하느님께 대한 사랑, 인간의 사랑으로 묶으신 예수께서는 모든 계명의 핵심이 사랑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사랑은 말만의 사랑이 아닌 십자가의 희생제물로 보여주신 실천적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아낌없이 이웃을 위해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그리스도의 사랑에 참여하고 이를 통해 주님을 사랑하는 모범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아낌없이 내어주는 참사랑의 삶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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