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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전례
작성자 말씀과 전례
작성일 2008년 8월 9일 (토) 20:43
분 류 연중25-30주일
ㆍ추천: 0  ㆍ조회: 4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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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해 연중 제 27주일 주일 강론 모음 ”
 

연중 제 27 주일

                  

어떤 지주가 포도원을 하나 만들어

그것을 소작인들에게 도지로 주었다



제 1 독서: 아서 5,1-7



제 2 독서: 필립 4,6-9



복 음: 마태 21,33-43



  오늘 전례는 전원시의 정취가 물씬 풍기면서도 극적 사건이 펼쳐지고 있는 ‘포도밭’의 전경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사실, 성서전승에 있어서 ‘포도밭’은 하느님께서 맛스러운 결실을 풍성히 맺을 수 있도록 온갖 세심한 배려로 보살펴주시는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한다(호세 10,1; 예레 2,21; 5,10; 6,9; 12,10; 에제 15,1-8; 17,3-10 등 참조). 그리고 ‘포도주’는 이스라엘 백성과 같은 농경민족에게 있어서 기쁨과 환희의 상징이었으며 또한 열정적인 사랑의 상징물이기도 했다. 그래서 포도주는 혼인잔치에서 빠질 수 없는 필수불가결의 요소였다. 가나의 혼인잔치의 기적사화(요한 2장)나 또한 환희에 찬 ‘아가’의 첫머리를 상기해 보라:“그리워라, 뜨거운 임의 입술, 포도주보다 달콤한 임의 사랑”(아가 1,2).



“만군의 주 하느님 돌아오소서, 비오니 포도밭을 찾아오소서”



  자연히 ‘포도밭’이라는 상징적 개념은 하느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에 맺어지는 ‘혼인’의 상징적 개념과도 혼용되어 사용되었다.

  우리는 위에서 포도밭이라는 상징적 개념이 시적인 정취를 물씬 풍길 뿐 아니라 극적인 내용도 담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포도밭은 황폐해질 수도 있다: 그러면 포도밭 주인은 그것을 그대로 내버려둘 수 있다. 순전히 물질적인 비교에서 벗어나 그 유추적 해석을 상징적 역사학적 차원으로 전이시켜 본다면 보다 더 깊은 의미를 띠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하느님과의 사랑과 신뢰의 ‘계약’을 어겼을 때 그들에게 일어난 무수한 사건들의 의미가 그것이다.

  비록 매우 막연하긴 하지만 이런 불충실한 역사의 어떤 순간들이 시편 79편에 의한 오늘의 응송에서 아주 시적인 표현으로 되새겨 지고 있다;그것은 버림을 받아 이미 맹수들의 침입이 잦은 황량한 ‘포도밭’으로 변해버린 이스라엘의 재생을 야훼 하느님께 간곡히 기도하고 있다:“당신은 어찌하여, 그 울타리를 부수시어, 길 가는 사람마다 따먹게 하셨나이까? 숲속의 도야지가 휩쓸게 하시고, 들짐승이 먹어내게 하시나이까? 만군의 주 하느님 돌아오소서. 하늘로서 굽어보사 살펴주소서. 비오니 포도밭을 찾아오소서. 지켜주소서, 당신의 오른손이 심어주신 줄기를, 당신 위해 실히 해주신 그 가지를”(시편 79,13-16).

  어쩌면 기원전 721년, 아시리아인들에 의한 북부왕조의 패망시기이거나 기원전 586년, 예루살렘이 침공당했을 시기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히 드러나고 있는 사실은 하느님께 불충실한 당신 백성을 적들의 성난 손아귀에 버려두셨다고 하는 사실이다. 하느님께서 당신 포도밭의 값진 ‘포도나무’를 이집트 땅에서 가나안 땅으로 친히 옮겨 심어주신 그 모든 사랑이 헛되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시편 79,9-12 참조).

  

 “만군의 주 야훼님의 포도밭은 이스라엘 가문이로다”



  오늘 제 1 독서에서 소개되고 있는 이사야 예언자의 ‘포도밭의 노래’―아마도 포도 수확기에 백성들이 부르는 노래에서 영감을 받아 그의 예언직 초기에 지어졌다고 여겨지는―에서는 이와 같은 상처받은 하느님의 사랑이 더욱 실질적으로 또한 감동적으로 읊어지고 있다.

  이사야 예언자는 첫 대목에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각별한 배려를 묘사하는 말로 시작한다:“임의 포도밭을 노래한 사랑의 노래를 내가 임에게 불러드리리라. 나의 임은 기름진 산등성에 포도밭을 가지고 있었네. 임은 밭을 일구어 돌을 골라내고 좋은 포도나무를 심었지. 한가운데 망대를 쌓고 즙을 짜는 술틀까지도 마련해놓았네. 포도가 송이송이 맺을까 했는데 들포도가 웬말인가?”(이사 5,1-2).

  여기서 서술되고 있는 내용들은 유능한 경작자가 자기 포도밭에서 최고의 수확을 거두기 위해 배려하고 있는 모든 일상적인 조치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당신 포도밭에 아주 질이 좋은 포도나무들만을 골라 심으셨다. 그러므로 이런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마지막 구절에서 “들포도가 웬말인가?”(2절) 하는 실망이 표현되고 있는 점은 능히 이해가 가는 일이다.

  여기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분노를 ‘심판’의 형태로 나타내시면서 그 증인으로서 나중에 당신의 ‘포도밭’이 될 이스라엘 백성, 바로 그들을 부르신다. 그리하여 그들 스스로 잠시 후에 우리가 고찰하게 될 복음의 비유에서도 드러나게 되듯이 하느님의 ‘심판’이 옳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예루살렘 시민들아! 유다 백성들아! 이제 나와 포도밭 사이를 판가름하여라. 내가 포도밭을 위하여 무슨 일을 더 해야 한단 말인가? 내가 해주지 않은 것이 있는가? 포도가 송이송이 맺을까 했는데 어찌하여 들포도가 열렸는가? 이제 내가 포도밭에 무슨 일을 할 것인가를 너희에게 알리리라. 울타리를 걷어 짐승들에게 뜯기게 하고 담을 허물어 마구짓밟히게 하리라. 망그러진 채 그대로 내버려두리라. 순을 치지도 아니하고 김을 매지도 않아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덮이게 하리라. 구름에게 비를 내리지 말라고 명하리라”(3-6절).

  비유의 의미가 명백히 드러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언자 이사야는 한 구절 더 덧붙여 하느님 야훼께서 당신 백성에게 기대하셨던 ‘결실’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던가를 뚜렷이 밝혀주고자 한다:“만군의 야훼의 포도밭은 이스라엘 가문이요, 주께서 사랑하시는 나무는 유다 백성이다. 공평을 기대하셨는데 유혈이 웬말이며 정의를 기대하셨는데 아우성이 웬말인가?”(7절).

  예언자 이사야가 비난하고 있는 ‘사회적’ 불의는 무엇보다도 특히 탄압과 폭력이다. 이것이 바로 ‘포도밭’이 그의 사랑하는 주인 즉 그의 ‘신랑’인 야훼를 위해 맺어놓은 ‘들포도’다. 그러므로 그분의 지극하고도 사심없는 사랑은 배반을 당하고 말았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 형제들에 대한 사랑을 통하여 하느님께 대한 자신들의 충실성이 표현된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



  예수 께서는 일반적으로 퍼져 있는 포도밭의 비유와 특히 이사야 예언자의 ‘포도밭의 노래’의 내용을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에서 거듭 강조하신다. 이 비유는 다른 공관 복음서(마르 12,1-11; 루가 20,9-18 참조)에도 소개되고 있다. 그런데 특히 마태오 복음사가는 여기에 자신의 교회론을 중심으로 한 관심 주제를 다양한 편집활동을 통해서 제시하고 있다.

  이 비유는 이미 두 아들의 비유(마태 21,28-32)로 시작된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을 거슬러서 하는 논쟁의 계속이긴 하지만 그 강도에 있어서 더욱 신랄하고 우의적인 면이 더 명백히 드러난다. 그 결과, 예수의 말씀을 듣고 있던 그들은 곧 의미를 깨닫고 예수께 폭력을 행사하려 한다: “대사제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이 비유가 자기들을 두고 하신 말씀인 것을 알고 예수를 잡으려 아였으나 군중이 두려워서 손을 대지 못하였다. 군중이 예수를 예언자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마태 21,45).

  자, 비유의 내용을 보자: “어떤 지주가 포도원을 하나 만들고 울타리를 둘러치고는 그 안에 포도즙을 짜는 큰 확을 파고 망대를 세웠다. 그리고는 그것을 소작인들에게 도지로 주고 멀리 떠나갔다. 포도철이 되자 그는 그 도조를 받아오라고 종들을 보냈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 종들을 붙잡아 하나는 때려주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쳐죽였다. 지주는 더 많은 종들을 다시 보냈다. 소작인들은 이번에도 그들에게 똑같은 짓을 했다. 주인은 마지막으로 ‘내 아들이야 알아보겠지’ 하며 자기 아들을 보냈다. 그러나 소작인들은 그 아들을 보자 ‘저자는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이고 그가 차지할 이 포도원을 우리가 가로채자’ 하면서 서로 짜고 그를 잡아 포도원 밖으로 끌어내어 죽였다”(마태 21,33-39).

  소작인들이 주인의 아들을 죽이려 한 계획과 또한 그 실질적인 살해행위가 전혀 이유없는 또는 완전히 어리석은 짓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당시의 실질적인 상속법에 따르면 상속자가 없는 지주가 죽었을 경우에 그 소유지는 먼저 점유하고 있는 사람의 수중에 들어갈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여기서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이스라엘을 주님의 ‘포도밭’으로서 표현하는 상징주의적 문학형식을 빌어 특별히 극적인 구원의 역사의 어떤 단계를 서술하고자 한다: 소작인들이 계속해서 죽이는 ‘종들’은 이스라엘 안에서 쉽게 들어보지 못한 예언자들을 가리킨다. 그래서 실제로 예수께서는 얼마 뒤에 성도 예루살렘을 향해 다음과 같이 탄식하시며 말씀하신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너는 예언자들을 죽이고 너에게 보낸 이들을 돌로 치는 구나.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모으듯이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를 모으려 했던가. 그러나 너는 응하지 않았다:(마태 23,37).

  마르코복음에서나 루가복음에서는 세 번 계속해서 종이 파견되고 있는데 매번 한 명의 종이 파견되고 있으며, 마지막 종이 살해된다. 반면에 마태오복음에서는 여러 명의 종이 두 번에 걸쳐 보내지고 있다. 아마도 마태오 복음사가는 이로써 오늘날까지도 유다인들에게 통용되고 있는 성서 분류에 따른 ‘제 1 예언자들과’과 ‘제 2 예언자들’을 암시하고자 했던 것 같다.

  가장 사랑이 충만한 극적인 구원역사의 마지막 여정은 상속의 권한을 갖고 있는 독생 ‘성자’의 파견으로 이루어진다. 성부께서는 지극한 사랑으로 마지막까지 선민의 구원을 위해 애tM신다: 그러나 모든 것이 헛되이 되고 만다! 그들은 “그(‘아들’)를 잡아 포도원 밖으로 끌어내어 죽여버렸던 것이다”(39절).

  이 비유에서 명백히 드러나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 자신의 죽음에 대한 예고이다. 이 사실 즉 예수의 죽음이 도시의 성 밖에서 이루어지리라는 특별한 내용은 히브리서의 작가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사실이 되고 있다: “이와 같이 예수께서도 당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만드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히브 13,12).



“집짓는 사람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에서 그칠 수가 없었다. 포도원의 주인은 그토록 굳어져버린 그의 소작인들의 마음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예수께서는 비유의 끝부분에서 이러한 질문을 던지심으로써 그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응답과 더불어 이 극적 사건에 연루되도록 하신다. 그러나 그들은 그 극적 사건이 자신들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다음과 같이 솔직히 대답한다: “그악한 자들을 모조리 죽여버리고 제때에 도조를 바칠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원을 맡길 것입니다”(41절).

  이사야 예언자의 ‘포도밭의 노래’와 비교해 볼 때 이 비유에는 새로운 사실이 한 가지 있다:앞에서는 야훼께서 자신의 포도밭을 폐허로 만들어버리시겠다고 하셨다:반면에 여기서는 예수께서 다만 그 소작인들을 벌하시고 포도밭은 제때에 도조를 바칠 다른 소작인들에게 맡기실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시다.

  사실, 구원의 역사가 하느님의 패배로 끝날 수는 없다: 반드시 되갚음이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은 두 가지 방법 즉 하나는 그리스도 자신을 통해서 그리고 다른 하나는 불충실한 살인자인 옛 이스라엘을 대신 이을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질 되갚음은 즉시 이어 나오는 예수의 말씀에서 표현되고 있다:“너희는 성서에서, ‘집짓는 사람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주께서 하시는 일이라 우리에게는 놀랍게만 보인다’고 한 말을 읽어본 일이 없느냐?”(42절). 여기서 예수께서는 시편 118,22-23을 인용하시어 당신이 하느님의 구원계획의 중심역할을 하시게 될 것을 공언하신다:즉 하느님께서는 인간들의 계획을 헛된 것으로 무시해버리시며, 집짓는 데 있어서 쓸모없는 돌과 같다고 해서 ‘버려진’ 그리스도를 당신의 새로운 구원의 건축에 쓰일 ‘모퉁이의 머릿돌’로 삼으신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다른 문맥에 관련되어 있는 이 말들을 여기에 가져다놓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죽음이라는 극적 사건 외에도 그의 부활의 승리 또한 예고하고 있다. 인간들이 폭력으로 막으려 했던 그 구원의 역사가 바로 십자가로부터 힘을 얻어 이 세상에서의 여정을 계속하고 있다!



“도조를 잘 내는 백성들이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할 것이다”



  또 그 구원의 역사는 하느님의 되갚음의 또 하나의 수단이 되고 있는 교회라는 새로운 구원의 공동체를 통하여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사실, 다른 공관 복음서들에서는 비유가 여기서 끝나고 있는 반면에 마태오복음에서는 매우 깊은 의미가 담긴 다음의 한 구절이 더 첨가되고 있다: “잘 들어라. 너희는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길 것이며 도조를 잘 내는 백성들이 그 나라를 차지할 것이다”(43절).

  41절(“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원을 맡길 것이다”)에 내포된 의미가 여기서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 이미 “회개했다는 증거를 보일”(마태 3,8 참조) 능력을 상실한 불충실한 옛 계약의 ‘백성’ 대신에 풍성한 결실을 맺을 하느님의 새 ‘백성’이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사용되고 있는 희랍어 éthnos(=백성)는 베드로의 첫째 편지에서 새로운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교회를 묘사할 때의 의미와 똑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그러나 여러분은 선택된 민족이고 왕의 사제들이며 거룩한 겨레(éthnos)이고 하느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1 베드 2,9).

  그러므로 하느님의 구원계획은 결코 중단되지 않는다:그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또한 교회를 통하여 계속 앞으로 전진한다. 악한 소작인들은 포도밭을 차지할 욕심으로 ‘아들’을 죽였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셨으며 당신의 포도밭을 되찾으시고 당신의 나라에서 그 악한 이들을 쫓아내셨다. 이스라엘 백성의 불충실한 비극적 사건이 하느님의 위대한 승리로 바뀌어지고 있다!

  그러나 마태오 복음사가는 새 백성이 풍성한 결실을 내야 한다는 사실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이 점을 두 번씩이나 반복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41절. 43절). 이것이야말로 마태오 복음사가의 중심 주제다(1,18; 13,23 등 참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본질적 특성은 행동하는 데 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정통교리는 불충실한 이스라엘과 다를 바가 없다. 하느님의 나라는 올바른 실천적 행위 속에 현존한다. 그러므로 은총을 통하여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의 일원이 되었다는 자만심, 성사에 대한 마술적인 모든 신뢰심, 복음의 메시지를 처음 받아들이면서 가졌던 모든 주술적 원의를 버려야 한다. 주님의 교회의 본체에 대한 믿음은 행동적 증거를 떠나 존재할 수 없다…교회 공동체 안에 계시된 구원의 은총은 새로운 생명에 대한 책임을 지고 풍성한 믿음의 결실을 내는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이 되기를 요구한다”(G. Barbaglio, in I Vangeli, Cittadella Ed., Assisi 1975, p. 472).



"여러분은 무엇이든지 참된 것과 고상한 것과

옳은 것…들을 마음속에 품으십시오“



  우리의 신앙의 진실성이 입증될 수 있는 이러한 믿음의 ‘행동적’차원은 오늘의 짤막한 제 2 독서에서도 강하게 표현되고 있다. 이 제 2 독서에서 사도 바울로는 필립비의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그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주님께 항구히 간구하라고 권고한 후(필립 4,6-7) 다음과 같이 말을 계속한다:“형제 여러분, 끝으로 여러분에게 당부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이든지 참된 것과 고상한 것과 옳은 것과 순결한 것과 사랑스러운 것과 영예로운 것과 덕스럽고 칭찬할 만한 것들을 마음속에 품으십시오. 그리고 나에게서 배운 것과 받은 것과 들은 것과 본 것을 실행하십시오. 그러면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8-9절).

  이 대목에서 가장 의미 깊은 내용은 사도 바울로가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본성적으로’ 진실된 것, 올바른 것, 고상한 것들을 실행하라고 권고하고 있는 점이다.

  사실, 그리스도교 사상은 우리가 다른 수많은 형제들과 더불어 인간 공동생활과 삶의 공통적인 가치와 요구를 실현시켜야 할 의무에서 멀어지게 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된다:그리스도 신자는 “참된 것과 고상한 것과 옳은 것과 순결한 것과 사랑스러운 것”(8절)등 모든 것을 평가할 수 있는 본질적인 사고능력을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로 자신의(9절) 가르침과 특히 그들의 모범적 행위에서 얻게 된다.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이 모든 것을 행할 힘을 ‘기도’로부터 얻는다(6-7절).

  그러므로 그리스도 신자의 ‘행동적’ 사상은 금욕주의적 사상이나 순전히 인간주의적 사상이나 또는 순수 실천주의적 사상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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