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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전례
작성자 12월 31일
작성일 2007년 12월 29일 (토) 00:04
분 류 성탄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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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년미사 강론 ”
 

송년미사



        1. 성민호 신부/ 2                 2. 조순창 신부/ 4

        3. 이계중 신부/ 5                 4. 최휘인 신부/ 7

        5. 강영구 신부/ 9

1            송년 미사   요한 5,19-29       하느님 감사합니다! 

                                                       성민호 신부



오늘은 12월 31일, 한 해의 마지막날입니다. 다사다난했던 금년 한 해도 이제 거의 저물어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나려고 합니다. 무심코 한 장, 두 장 찢어내던 달력도 오늘은 아예 그 마지막 남은 한 장도 떼어버리지 않을 수 없음을 생각할 때, 우리는 다시 한번 인생의 무상함을 느낌니다.

  

큰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벅찬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한 것이 바로 엊그제 같건만, 이제는 여러 가지 추억과 미련을 남긴 채,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옛날이 되려고 합니다. 덧없이 빠른 세월이라더니 잠깐 사이에 우리들 가슴에 갖가지 흔적을 남겨두고 금년 한 해가 영원히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기쁨과 슬픔이 엇갈리고 희망과 좌절이 교차하며, 사랑과 미움이 연속되는 가운데 지나버린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순간, 우리는 옷깃을 여미고 지난 한 해의 발자취를 돌이켜보면서,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일나무는 한 해 동안 풍성한 열매를 결실시켰고, 꽃나무도 아름다운 꽃을 피워 주어진 목적을 달성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느님께로부터 거저 받은 한 해 동안 과연 무엇을 남겼는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신앙생활은 얼마나 충실하였으며 이웃에겐 무엇을 남겼고, 자신의 성숙과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서는 얼마나 기여하였는지 반성해야 하겠습니다. 더욱이 우리 인간은 자유를 누리면서 자기 생활에 책임을 져야 하는 만물의 영장이기 때문에 지난날의 자신을 돌이켜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잘못하고 부족한 점에 대해서는 하느님의 용서를 청하고 잘한 일에 대해서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게 정리해야 하겠습니다.

  

물론 우리 중에는 후회 없는 한 해를 보낸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별로 보람있는 일을 하지 못하고, 허송세월로 한 해를 보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금년에도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해 주셨고 도와주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여러 사람들과 사건들을 통하여 우리를 가르쳐주셨고 권면해 주셨으며, 자극을 주셨건만, 우리는 너무도 무딘 마음 때문에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그분의 뜻을 따라 열심히 살겠다던 연초의 계획도 사실상 계획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그렇고 가정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있어서도 복음의 정신을 충실히 반영하지 못했습니다. 이웃에게 빛과 소금의 역할도 다하지 못했고 주님께서 그처럼 당부하신 사랑도 별로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주일미사를 예사로이 궐하고 기도는 가뭄에 콩 나듯 어쩌다가 바침으로써 하느님의 마음을 상해드린 적도 있었고, 어리석은 생각과 순간적인 실수로 이웃에게 마음의 상처를 남긴 적도 있었습니다. 공동체의 이익을 도모하기는커녕 오히려 저해요인이 된 적도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결국 금년 한 해를 되돌아보건대, 우리 자신이 빈털터리가 되고 상처받은 신세가 되고 말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우리의 잘못을 솔직하게 시인하고 아버지이신 하느님께 용서를 청해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부족함 때문에 후회는 할망정 결코 실망한다거나 좌절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지난날을 거울삼아 밝은 내일을 바라보면서 용감하게 전진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는 지난 한 해를 깨끗이 청산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일어나 새해를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새해에는 정말 새로운 삶의 계기가 되고 발전하는 해가 되도록 합시다.

왜냐하면 한 해가 지났다는 것은 결국 그만큼 우리가 죽음과 가까워졌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해마다 후회스런 삶의 연속이 되어서는 안되고 진정으로 우리의 마지막날을 대비하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몇 백 년 살 것처럼 이웃과 아옹다옹할 필요도 없고, 남을 냉혹하게 대할 이유도 없습니다. 오히려 서로 화목하게 지내면서 언제나 기쁘고 평화스럽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처럼 부끄럽고 죄스럽던 지난해를 돌이켜보면서 새로운 한 해를 보람있게 설계한다면 해가 바찔 때마다 우리는 하느님께 더욱 충실한 자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오늘 특별히 하느님께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금년 한 해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으며 불의의 사고로 시련을 겪었는지 모릅니다. 아마 우리가 잘 알고 평소에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금년에 이 세상을 하직하였을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전연 예기치 못했던 각종 사고로 말미암아 팔다리가 부러지고 뇌수술을 받고 오랫동안 병원에서 고생한 이웃도 있었을 것이고, 남에게 사기를 당했다거나 억울하게 누명을 썼다거나 사회적인 비리 때문에 공연히 어려움을 당한 이웃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가 이처럼 무사히 한 해를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하느님의 특별하신 은혜와 배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하느님께 성은이 망극하다고 외치면서 진정으로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울러 금년에도 변함없이 우리에게 도움과 교훈을 준 많은 사람들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금년 한 해도 별 걱정없이 지낼 수 있었음을 생각할 때 오늘 우리는 마땅히 그들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며, 그들의 은혜에 보답할 것을 다짐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면 분명히 새해에는 새로운 축복을 넘치게 받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감사하는 마음은 언제나 행복을 약속받는 활력소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오늘 우리는 금년 마지막날을 보내면서 먼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그리고 잠시나마 그분의 사랑을 저버리고 충분히 보답해 드리지 못한 것을 진심으로 마음 아프게 생각하면서 용서를 청합시다. 그리하여 새해에는 금년에 하기로 결심하고 다하지 못한 것을 기필코 실천하고 완수할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하면서 더욱 보람되고 알찬 새해를 맞이합시다.

  

끝으로, 금년에도 변함없이 본당 발전을 위하여 협조를 아끼지 않고 기도와 희생으로 수고하여 준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리면서, 새해에는 하느님의 더욱 크신 은총을 받아 복된 한 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2           송년 미사   요한 5,19-29      양은 목자를 잘 따라야 한다

   조순창 신부



오늘 저녁, 서산에 기울어진 붉은 놀을 바라보면서, 지난 한 해의 엄청난 변화 속에서 갖가지 놀라움과 기쁨과 슬픔이 엇갈린 가운데 한 해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당면한 모든 사건에 부딪쳤을 때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해결했을 때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하고 무성의하게 넘겨 버린 때는 얼마나 많았는지요? 때로는 내 마음과 내 성의가 부족해서 남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을 빼앗은 적은 없었는지요? 하느님과 함께 하는 우리 믿음의 자녀는 더더욱 한 해를 반성하게 됩니다.

  

금년은 교구 차원에서는 ‘복음적 교회상 정립의 해’였습니다. 복음을 바탕으로 하는 교회야말로 바로 모든 이를 유일하게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교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억울하게 묶인 이의 편이 되어 주고, 억압받는 이가 해방되도록 애쓰며,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주고, 헐벗은 사람을 입혀주는(이사 58,6-7) 교회가 바로 복음적 교회가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은 언제나 가난한 사람의 편이 되어 주시고, 병자를 찾아 나서시며, 올바르지 못한 사람을 꾸짖으시는 분이셨습니다. 교회가 복음적 가르침에서 벗어나면, 마치 기차가 레일을 벗어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작은 교회입니다. 교회 안에서 생활하시는 여러분의 생활도 바로 복음을 바탕으로 하여 생활하실 때에, 주님의 뜻에 따르는 생활이 될 것입니다.

  

금년 한 해의 마지막 날인 오늘, 여러분이 연초에 설계하셨던 여러 가지 일 중에 성취한 것도 있을 것이고, 성취 못한 것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실망하지 않고, 계속해서 전진하는 것입니다.



금년 한 해 동안 여러분의 신앙도 많이 자랐을 것입니다. 기쁠 때보다는 어려울 때에 실망하지 않고, 더욱 주님께 의지하였다면, 우리의 신앙은 더욱 크게 자랐을 것입니다. 어려운 곤경에 부딪쳤을 때에 온전히 주님께 의탁하고 신뢰하는 믿음은, 주님께 희망을 걸고 매달림으로써 넘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전진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쉬거나 중단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한 해를 반성해 보면서, 잘못된 모든 것을 하느님께 용서 청하고, 형제와 화해하며, 새해에는 더욱 보람된 신앙 생활이 되도록 힘쓰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금년 한 해 동안 여러 교우께서 협조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새해는 양의 해라고 합니다. 양은 목자를 잘 따라야 행복하듯이, 주님 말씀에 항상 의지하여 실천하는 새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3            송년 미사   요한 5,19-29 

                   이계중 신부



‘시계’ 이야기

시계는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있어 꼭 필요한 필수품으로써 아침에 일어나는 것, 직장에 나가는 것, 휴일의 프로를 정해 주는 것 등 생활의 흐름에 합쳐집니다. 만일 시계가 틀리면 생활의 시작과 끝도 틀리게 됩니다.

  

우리 마음에도 시계가 있습니다. 이 시계는 먼저 자신의 “신분”이 어떠한 생활을 할 것인가를 가르쳐 줍니다. 학생의 신분을 가진 청년이 공부를 하지 않는다 거나 학생의 신분을 가지면서 그룹활동에만 몰두하여 공부를 할 시간이 없다면 마음의 시계는 제구실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마음의 시계는 자꾸만 늦어지고 있습니다. 뒤만을 돌아다보는 사람은 과거에 있었던 실패만을 생각하면서 “지금” 해야할 일을 게을리 합니다. 과거의 일에 너무 신경을 쓰기 때문에 현재하는 일에 정신을 집중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시간적으로도 늦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디에 가든지 시간에 맞게 가질 못합니다. 학교에 지각하고 직장에 지각하고, 회합에 지각하고, 미사시간에 지각합니다. 늦게 낳은 것 같이 보입니다. 그리하여 항상 부끄러움을 느끼고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며 위축되어 있습니다.



또 어떤 이의 마음의 시계는 자꾸만 빨라지고 있습니다. 앞일만을 생각하여 무엇을 하여도 지금하고 있는 일에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빨리 끝내야 하겠다. 빨리 끝냈으면!’ 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는 일에 맛을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과 대화를 해도 마음은 다른 데 있습니다. 철저한 데가 없고, 모든 것을 쉽게 잊어버립니다. 성서에 나오는 습지에 떨어진 씨와 같이 빨리 싹이 나서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결실이 없습니다.

  

늦지도 빠르지도 말고, “지금” 이 시간에 꼭 맞는 마음의 시계를 가진 사람의 생활은 즐겁고, 결실이 풍부하고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사게 됩니다. 모든 사람이 그를 신뢰하게 됩니다.

  

성 요한 베륵망스는 24세로 세상을 떠났지만 또 그의 생애에는 그렇다할 신기한 일이나 위대한 일도 없었지만 그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전력을 다하라”는 그 표어대로 살았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도 많은 결실을 보았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오래 살았습니다. 그의 마음의 시계는 잘 맞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꼭 맞아 있는 사람은 타인과 대화할 때 타인을 존중하여 그에 귀를 귀울이고 마음을 씁니다. 일할 때 현재하고 있는 일에 전력을 다합니다. 모든 것이 현재에 뜻이 있습니다. 무의미한 지금(현재)은 없는 것입니다.

  

어떤 날 성 알로이시오는 56명의 신학생들과 대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신학생이 “만일 우리들이 한 시간 후에 죽는다는 것을 안다면 무얼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한 신학생은 “성당에 가서 기도하겠다.”고 하였고, 또 다른 신학생은 “고별의 편지를 쓰겠다.”고 하였습니다. 알로이시오 차례가 와 그는 말하길 “나는 아무 데도 안 가겠다. 너희들과 함께 이야기 하다가 죽겠다”하였습니다. 성 알로이시오는 현재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윗 성왕의 표어는 “지금부터 시작한다.”였으며 전 생애를 현재에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시”와 “계”의 두 문자로 이루어지고 있는 시계는 그 문자 자체가 뜻하듯이 시간을 달고 있습니다. 좀더 나아가 시간의 가치를 달고 있습니다. 속담에 시간은 금이라고 합니다. 성서어로는 시간은 사랑이고, 영원한 생명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지금 일시적으로 겪고 있는 고난은 극히 가벼운 것이며 한없이 크고 영원한 영광을 우리에게 가져다 줄 것입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바라보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봅니다. 보이는 것은 일시적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하셨습니다.

  

성 알로이시오는 무엇을 결정하거나 선택할 때, 자기 마음 안에서 “이것이 영원한 생명이 되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 하였던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성 알로이시오의 규범이었습니다.

  

또한 시간은 자원에 비할 수가 있습니다. 인간이 자원을 개발하여 이것을 살리는 것과 같이 인간은 시간을 살리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에페소 서에서 “지금의 시간을 잘 이용합시다.” 하십니다.

시간을 잘 이용하십시다.











4           송년 미사   요한 5,19-29        신자들의 송년회

                               최휘인 신부



꿀밤나무 한 그루가 호숫가에 외롭게 서 있었습니다. 이른 봄 죽은 듯한 앙상한 가지에서 겨우 파릇파릇 눈을 틔우더니 한 여름이 되자 어느 새 푸른 잎들로 가득 차서 가지는 보기조차 힘들게 되었습니다. 깊은 가을이 와서 딱딱한 껍질에 싸인 꿀밤이 소롱소롱 매달렸습니다. 늦가을이 되자 꿀밤은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호수 위에 톡하고 떨어졌습니다.

호숫가 잔디 위에도 떨어졌습니다. 겨울이 왔습니다. 수많은 잎들과 꿀밤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앙상한 가지들만 또다시 두 팔 벌리듯 허전하게 서 있었습니다. 꿀밤은 또다시 톡하고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톡톡톡 계속 떨어졌습니다. 톡톡톡……

  

제가 왜 이렇게 지루하고 단조롭게 꿀밤 떨어지는 소리만 내는지 아시리라 믿습니다. 꿀밤나무는 오랜 세월동안 지루하게 싹을 틔우고 무성한 잎을 만들고 또 꿀밤을 조롱조롱 매달고 떨어뜨리고 하는 짓을 되풀이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하루 생활도 어지간히 지루하게 반복됩니다. 일어나서 먹고 일하고 자고 또 다음 날 잠이 깨서 식사하고 직장에 나가고, 부엌일을 하고 빨래를 하고 등등으로 꼭 같은 일이 연속됩니다. 이렇게 아무 뜻 없이 보이는 하루하루가 꿀밤 떨어지듯 자꾸만 떨어져 나가고 지나가 버립니다.

  

집집마다 새해 달력을 붙여 놓으셨을 것입니다. 일년 열 두달 365일 날자들로써 가득 채워진 산뜻하고 하얀 달력, 그것도 날이 갈수록 찢겨나가고 잊혀집니다. 지금 붙여놓은 새 달력도 누렇게 색깔이 바래고 마침내는 또 다시 아이들 책표지 입히는 데나 쓰일 것입니다.

  

이제 저는 오늘 저녁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 세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신앙생활의 반성입니다. 몇 시간 후면 금년 한 해도 가버립니다. 작년 이 날 우리는 역시 지금 느끼는 기분을 똑같이 느꼈을 것입니다. 송년회다, 양력 설이다 등등으로 어느 정도 마음이 들뜬 오늘, 여기 모인 우리들만은 조용히 주님 앞에 모여왔습니다. 우리의 송년회는 바로 이 미사입니다.

  

이웃 사랑, 하느님 사랑을 가장 큰 목표로 삼고 있는 우리는 이제 조용히 생각해 보야야 겠습니다. 내가 미워했던 사람이 없나 생각해 봅시다. 있으면 지금 이 자리에서 ‘주님, 저는 그 사람을 미워했으나 이제 마음을 풀고 용서해 주고 앞으로는 미워하지 않겠습니다.’하고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지은 죄에 대하여 눈을 감고 조용히 생각하고 새해에는 특별히 그 죄 하나만이라도 결코 짓지 않겠다고 결심합시다.

  

잘못 쓴 시간에 대해 반성합시다. 이웃사랑을 이해 주어진 내 일생의 시간을 오히려 남에게 해를 끼치는 데 사용하지 않았는지 조용히 생각합시다.

작년에 이 자리에 있던 이가 금년에는 이 자리에 없습니다. 내년 연말에 나는 이 자리에 있을 수 있겠다고 자신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봅시다. 자신이 없다면 내년 1년은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생각해 봅시다.

  

둘째, 꿀밤나무가 매해 같은 짓을 계속 되풀이하듯이 우리도 매해 겉으로 보이는 생활의 양식은 비슷합니다. 집에서는 아기보고, 빨래하고, 밥짓고, 청소하고 등등으로 자질구레한 일들이 계속됩니다. 아빠는 작년과 같은 물건으로 장사를 하고, 또 어떤 아빠는 작년과 같은 직장에 출근합니다. 학생들은 도시락 두 개 싸 가지고 학교로, 학원으로 가는 것을 새해가 와도 계속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자질구레한 일상생활 속에서 신앙생활을 해야하고 또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집안의 작은 일에서 직장의 작은 일에서 사랑의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작은 일, 내가 하는 모든 일을 하느님이 원하시는 일로 생각해야 할 것이며,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얼마나 사랑을 가지고 하는지에 그 가치의 크고 작음이 달려 있는 것입니다.



셋째, 오늘 저녁 특별히 주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을 가집시다. 지난 일년 동안 우리가 살아온 모든 것은 한 마디로 은총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우선 한해의 마지막 날 이 자리에 모여 하느님을 찬미하고 감사드릴 수 있도록 해주신 것이 큰 은총이요, 우리의 부모 형제들을 돌봐주신 것이 은혜이며 또 다시 새해를 주어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할 기회를 주신 것이 은혜입니다. 여기 모인 우리 중에는 가정적으로 특별한 은혜를 받은 분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반면에 슬프고 괴로운 일을 잘 겪도록 해 주시고 이겨나갈 힘을 주신 은혜가 생각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감사드립시다. 항상 감사드리며 살아나갑시다. 주께서 우리를 돌봐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하루도 살 수 없습니다.

  

다시 한 번 간추려 말씀드립니다.

  첫째, 온갖 잘못된 것을 통회하고 반성하여 새해에는 고치기로 결심합시다.

  둘째, 우리의 자질구레한 일상생활을 항상 하느님과 이웃사랑을 위하여 합시다.

  셋째, 지난 일년 동안 받은 모든 은혜를 조용히 생각하고 깊이 감사드립시다.

5          송년 미사   요한 5,19-29      새로운 한 해를 맞기 위하여

 강영구 신부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역사의 분기점에서 주님의 제단 앞에 모여 왔습니다. 이제 몇 시간만 지나면 1991년이라는 해는 영원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과거로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는 1991년이라는 해를 맞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해가 바뀌려는 이 엄숙한 순간에, 하느님 앞에 나와 지난날을 반성하고, 그 과오를 용서 빌며, 또한 하느님께서 지난 한 해 동안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던 모든 은혜에 감사를 드리려 합니다.



그리고 지난날 우리와 서로 미워하면서 상처를 주고받았던 형제들을 용서하며, 우리에게 알게 모르게 은혜를 베풀었던 이웃과 형제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들에게 감사를 드리려고 합니다.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모여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면서 과거를 반성하는 것은, 과거를 들추어냄으로써 회한과 후회에 사로잡히자는 말이 아닙니다. 루가 복음 9장 62절에서 예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쟁기를 잡고 뒤를 자꾸 돌아보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 그렇습니다. 이미 영원으로 사라져 버린 과거의 시간에 매달려서 사는 사람은 주님의 제자답지 못한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는 쟁기를 잡고 뒤를 자꾸 돌아보면서, 과거에 매달려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앞을 바라보면서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과거의 회한이나 추억에 매달려서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을 믿으면서 희망으로 가득 차서 앞으로 나가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려는 것도 과거를 발판 삼아 더 힘찬 전진을 하기 위함이지 과거에 발목을 잡히기 위함이 아닙니다.


어느 유치원에서 입원을 지원하는 아동들에게 다음과 같은 문제를 놓고 지능을 검사하고 있었습니다. 칠판에다가 오른쪽 눈썹이 없는 사람의 얼굴을 하나 크게 그려 놓고, 유치원 원장이 아이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 그림에서 무엇이 빠졌지요?” “눈썹이 없어요.” 하고 대답하는 아이는 지능 지수가 보통밖에 안되는 아이였습니다. 그 대신에 “오른쪽 눈썹이 없어요.”하고 대답하는 아이는 보통이 넘는 지능을 가졌을 뿐 아니라, 그 대답이 바른 대답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아이 하나가 들어왔습니다. 원장이 “이 그림에서 무엇이 빠졌지요?” 하고 묻자, 그 꼬마가 대뜸 하는 대답이 “몸이 없어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원장은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얼굴만 그렸으니 몸과 손발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원장은 웃고 말았지만, 이에 대해 어떤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웃어 넘길 수 없는 일이다. 인간에게는 맹점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 그림에서 무엇이 빠졌지요?' 하고 물으면, 모두 그 그림 안만을 살핀다. 주변이나 전체를 보지 아니한다. 이 꼬마는 신통하게도 전체를 보았다. 몸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명답이다. 사람은 높은 곳에서, 전체를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바쁜 세모에 우리는 잠시 일손을 멈추고, 하느님의 제단 앞에 나와 지난날에 대한 반성과 아울러 감사를 드리려고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역사의 분기점에 서서 보통 아이와 같이 눈에 보이는 것만 보려 하지 않고, 전체를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새해를 향해 도약하려는 것입니다.

  

비행기는 하늘을 향해서 날기 전에 철저한 정비를 해야만합니다. 정비를 하지 않거나 소홀히 하면 비행 도중에 고장을 일으키거나, 큰 사고를 낼 위험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아 비약하려는 시점에서 우리의 생활을 살피고, 조정 정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행기를 조정 정비하는 데는 체크 리스트, 즉 검사카드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삶을 반성하고 재조정하는 데는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나 현상만 보아서는 안 되고, 높은 곳에서 전체를 살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기준이란 무엇입니까?

  

그 기준이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지키라고 주신 사랑의 계명일 것입니다. 루가 복음 10장 26-28절에는 이런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어떤 율법 교사가 일어서서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 ‘선생님 제가 무슨 일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율법서에 무엇이라고 적혀 있으며,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읽었느냐?' 하고 반문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생각을 다하여, 주님이신 네 하느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대답에 예수께서는 ‘옳은 대답이다. 그대로 실천하여라. 그러면 살 수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 사랑의 이중계명이야말로 우리 삶을 조정 정비하는 기준이며, 체크 리스트, 즉 검사 카드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고 하느님의 사랑으로 생명을 얻었으며,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용서를 받아 새롭게 태어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하느님과 바른 관계를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사랑하는 생활, 좀더 구체적으로는 기도하는 생활, 신앙인으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생활을 할 때, 비로소 우리는 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난 한 해의 우리의 삶이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생명을 누리는 삶이었는지, 아니면 하느님을 떠나서 어둠 속에서 헤매던 삶이었는지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가 되게 하는 힘입니다. 사랑은 생명을 꽃피게 하고, 사랑은 서로를 닮게 합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만큼 우리는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갔을 것이며, 동시에 하느님의 모습을 더욱 많이 닮게 되었을 것입니다. 밝아오는 새해에는 더욱더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 안에서 생명을 누리며 하느님을 닮는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다음으로 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서 살아가야만 합니다. 가깝게는 부부가 함께, 그리고 부모 자식이 함께, 나아가서는 이웃과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인간은 결코 혼자서 살아갈 수 없고 혼자서 살아서도 안 됩니다. 더불어서 살아가면서 인간은 성숙해지고 완성되어 갑니다.

  

그렇다면 더불어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또 인같이 자신을 성숙시키고 완성시킬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얻을 수 있습니까?

더불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사랑은 서로를 하나로 묶어 줍니다. 부부를 하나가 되게 하고, 온 가족을 하나가 되게 하며, 이웃과 우리를 하나가 되게 해줍니다. 그러나 미움과 증오는 서로를 갈라지게 하고 서로 사이에 담을 쌓게 합니다.

  

더불어 살아야 하는 인간은 사랑을 통해서 자신을 성숙하게 하고 완성시켜 갈 수 있습니다. 부부는 사랑을 통해서 완성되어 갑니다. 자식들도 사랑 안에서 성숙한 인간이 됩니다. 그리고 사랑 안에서 생명이 싹트게 됩니다. 그러나 미움과 증오는 서로에게 상처를 줄 뿐 아니라 생명의 불꽃을 꺼지게 합니다. 사랑은 창조적인 힘이자 능력입니다. 그러나 미움과 증오는 파괴적인 악의 세력이자 힘입니다.

  

우리의 나날의 삶은 보다 나은 내일과 성숙을 위한 삶이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 그 비결입니다. 그러나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기 희생이 요구됩니다. 틀림없이 많이 희생한 사람은 많이 사랑한 사람입니다. 많이 사랑한 사람은 많은 기쁨과 행복을 준 사람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고린토 전서 13장에서 사랑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욕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성을 내지 않습니다.

  사랑은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보고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사랑은 가실 줄을 모릅니다.

  이제 지난 한 해 동안, 우리가 얼마나 사랑하는 생활을 했는지 사도 바오로의 가르침을 따         라서 이렇게 반성해 봅시다.

  나는 오래 참습니다.

  나는 친절합니다.

  나는 시기하지 않습니다.

  나는 자랑하지 않습니다.

  나는 교만하지 않습니다.

  나는 무례하지 않습니다.

  나는 사욕을 품지 않습니다.

  나는 성을 내지 않습니다.

  나는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나는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보고 기뻐합니다.

  나는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나는 가실 줄을 모릅니다.

  어떻습니까? 사랑한다는 것은 구름 잡는 소리가 아닙니다. 구체적인 삶이자 실천입니다. 여기에는 희생과 십자가가 따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사랑하는 생활이 부족했다면, 밝아 오는 새해에는 더 큰 사랑을 나누면서 모두가 하나 되고 더욱 성숙하고 축복받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지금까지 우리는 주님께서 주신 검사 카드를 통해서 우리의 삶을 반성해 보았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한 해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을 믿기에, 이 보잘것없었던 한 해, 사랑보다는 미움과 과오로 얼룩졌던 한 해를 모두 하느님께 바치려 합니다. 하느님과 이웃 앞에서 보잘것없었던 한 해였지만, 하느님께서 큰 축복과 은혜로 이끌어 주셨던 한 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시에 하느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려고 합니다.

  

또한 사랑보다는 미움으로 서로 상처를 주고받은 바가 많은 한 해였지만, 내일 새로운 한 해를 맞게 된 것은 우리 주위에 알게 모르게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주었던 가족들과 형제들과 이웃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해를 보내면서 서로의 잘못을 용서하고 용서받으면서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또 서로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이제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과거를 발판 삼아 밝고 희망 찬 새해를 맞이하도록 합시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하느님의 크신 은총과 축복이 가득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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