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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전례
작성자 말씀연구
작성일 2007년 12월 13일 (목) 21:49
분 류 대림시기
ㆍ추천: 9  ㆍ조회: 3994      
IP: 218.xxx.174
http://missa.or.kr/cafe/?logos.928.
“ Re..가해 대림 제 3주일 주일강론 모음 ”
 

너희가 듣고 본 대로 요한에게 가서 알려라.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1. 말씀읽기: 마태11,2-11

세례자 요한의 질문에 답변하시다 (루카 7,18-23)

세례자 요한에 관하여 말씀하시다 (루카 7,24-35)

2. 말씀연구

나바태아인의 침략 위협을 받은 헤로데 안티파스는 동쪽 국경을 굳게 지키려고 그들의 왕 아레타 4세의 딸과 정략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이복 동생 헤로데 필립보를 찾아 갔을 때 계수요, 조카벌인 헤로디아를 만나 자기와 결혼하자고 유혹을 했습니다. 허영심에 가득 찬 헤로디아는 인륜을 저버리고 곧 승낙을 했습니다. 이것을 알게 된 아레타의 딸은 쫓겨날 비참한 운명을 비하려고 스스로 친정으로 돌아갔고, 헤로디아는 필립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 살로메를 안티파스의 양녀로 삼아 데리고 갔습니다.

패륜의 이 한 쌍은 추문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들의 행위는 간통이요, 가정파괴요, 용서할 수 없는 악행이었습니다. 요한은 이것을 솔직하게 꼬집어 주었습니다. 세례자의 이 비난은 안티파스에게 아물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혔고, 또 허영심 때문에 패륜의 길을 걷는 헤로디아에게는 복수심을 뿌리박게 했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위협이나 협박도 세례자 요한의 입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을 감옥에 가두었던 것입니다. 감옥에서 그는 예수님께 제자들을 보냈습니다.



2 그런데 요한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요한은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런 질문을 하도록 하였다.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요한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뵙고 예수님께서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하기 위해서 제자들을 보낸 것입니다.



① 요한이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그 당시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고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스승이신 요한 보다 더 유명해 지는 것을 원치도 않았고, 문제를 삼고 있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더욱 작아져야 한다.”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바로 “하느님의 어린양”이심을 알고 고백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는 제자들. 자신의 삶이 다 해 갈 때 요한은 제자들을 예수님께로 보냅니다. 그리고 묻게 합니다.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이 당신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라고. 그 질문을 통해 요한은 제자들과 군중들에게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알릴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제자들을 보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도 하늘을 향하여 고민의 외침을 하셨는데 하물며 세례자 요한은 오죽했겠는가 하고 말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께 “선생님이 이스라엘이 기대하고 있는 메시아입니까?”를 물었습니다. 이것은 요한이 의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메시아로서 지니신 그 사명이 나타내시는 방법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단순한 초조함에서 나온 질문이라면 “선생님, 언제 메시아로서 나타나실 작정이시옵니까?” 하고 물어 보게 하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당신은 그리스도이시니 그것을 명백히 보여 주십시오” 해야 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므로 요한이 믿지 못해서 제자들을 보낸 것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요한은 자신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제자들을 보낸 것입니다.



② 제자들을 위해서

이것은 힐라리오가 처음으로 제창한 주장이다. 요한 금구, 아우구스띠노, 예로니모, 토마스 아퀴나스,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등이 이것을 지지했다.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했다.
“스승을 몹시 존경하고 있었던 요한의 제자들은, 요한의 입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말을 듣고 놀랐으며, 예수님께 대해서 요한은 증명을 하였지만, 예수님 자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자기들끼리 말다툼을 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그들을 예수님께 보냈다. 내가 의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너희가 깨닫도록 가 묻고 오너라. 내가 언제나 말하고 있던 사실을, 예수님 자신에게 직접 들어 보기 위해. 너희들은 선구자의 말을 들었지만 그것을 심판자의 말씀으로 확인하고 오라.”라고. 그러니까 제자들은 요한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의심을 풀기 위해서 간 것입니다. 즉 세례자 요한이 의심해서가 아니라 제자들을 위해서 보낸 것이라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이렇게 말했다. “세례자 요한은 자기의 제자들이, 예수님보다도 자신을 더 숭상할까 두려워한 나머지, 자기로부터 떠나게 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예수님께 가르침을 받으면 좋으리라 생각하여 제자들을 보냈다.”



요한복음 3,25-26에 보면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투심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25 그런데 요한의 제자들과 어떤 유다인 사이에 정결례를 두고 말다툼이 벌어졌다. 26 그래서 그 제자들이 요한에게 가서 말하였다. “스승님, 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



이때 세례자 요한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30절).”이것을 제자들이 깨닫기 못했기에 죽음을 앞둔 세례자 요한이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내가 바로 메시아다.”라고 직접적으로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본 대로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귀머거리가 듣고, 절름발이가 뛰놀며, 소경이 보고,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것.” 이 모든 것들은 메시아 시대에 일어날 일들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처음에는 믿지 못하겠지만 서서히 예수님께로 돌아설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을 보낸 이유는 제자들을 예수님께로 이끌어 주기 위해서입니다.



③ 예수님을 위해서

그리고 요한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통해서, 요한의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행위를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이심이 드러납니다. 요한은 감옥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사명을 다 한 것입니다.



인간 행동의 동기와 목적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제자들을 보낸 것은 그들이 직접 예수님께 가르침을 받도록 하려 한 것 만이었다고 간단히 말할 수는 없습니다. 즉 요한은 제자들의 믿음을 굳게 하는 동시에 예수님의 메시아성을 명확히 선언하는 것이 그의 목적입니다. 요한이 무엇보다도 갈망하고, 무엇보다도 명예로 여기고 있었던 것은, 예수님을 메시아로서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일, 메시아의 사자로서의 사명을 충실하게 수행하고자 하는 것 뿐입니다.

 요한은 자신의 제자들 뿐 아니라 일반 대중을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이끌기 위해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이 드러나게 합니다. 예수님의 답변을 통해서 드러나게 합니다. 만일 요한의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든가, 또 그가 불안에 빠져 있었다고 하는 해석은 복음서에서는 추리될 수가 없습니다.



만일 요한이 불신에 의해서 제자들을 보냈다면 제자들을 보낸 다음 하신 요한에 대한 칭찬은 결국 조롱이 되고 맙니다. 하지만 그것은 조롱이 아니라 칭찬이었습니다. 그 무엇으로 보답하기 어려운 칭찬이었습니다.



요한이 당신을 믿지 못해서 제자들을 당신께 보냈다고 생각하셨다면, 예수님께서는 요한을 칭찬하실 리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실을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을 잘 아셨습니다. 그리고 요한도 예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사자였기에 사자의 사명을 다 한 것입니다. 엘리야의 정신을 가지고 온 것이기에 엘리야의 사명을 충실히 수행한 것입니다.



나 또한 세례자 요한처럼

① 참된 겸손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가 모든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고, 내가 모든 것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가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가 잘하고 있으면 그를 칭찬해 주고, 격려해 주고, 다른 이들에게 그를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그렇게 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그를 우러러봤을 때, 그는 자신이 메시아가 아님을 고백하고, 예수님의 신발 끈을 풀어드리기에도 부족하다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겸손한 모습은 공동체를 변화시킵니다. “형제자매들에게 웃으면서 인사하게 하고”, “형제자매들의 장점을 칭찬하게 하고”, “누군가가 나에게 무엇인가를 부탁하면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합니다.” 비록 상대방은 나를 기꺼이 도와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는 예수님 때문에 상대방을 도와주게 됩니다. 그리고 손해 봤다고 생각하지도 않게 됩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아! 예수님 때문에 저렇게 살아가는 것이 옳구나!”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② 예수님 알리기

참된 겸손은 나를 통해서 예수님을 알리는 계기가 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전교의 사명을 부여받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감옥에 있으면서 까지도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를 드러내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매일 미사에 참례하고, 주일 미사에 반드시 참례하고, 열심히 기도생활 하고 있는 나는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주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어야 합니다. 환자들을 방문하고, 친한 사람들과 차 한 잔 하면서 신앙의 맛에 대해 이야기 하고, 반갑게 어울릴 때, 사람들은 나를 통해서 예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신앙인은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세상적인 욕심을 바래서는 안 됩니다. 그를 통해서 어떤 것을 하려하고, 그를 통해서 자신의 목적을 채우려 한다면 결국 예수님께로는 가지 못하고, 예수님도 보여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례자 요한의 삶을 묵상하면서, 세례자 요한처럼 나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드러나실 수 있도록 노력해 봅시다. 세례자 요한처럼 예수님을 향하여 한 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3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께로 가서 스승이 시킨 질문을 합니다.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이들은 아직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없습니다. 스승 요한의 뜻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보기에 예수님께서는 뭔가 특이하신 분이시지만 자신들의 스승에게 세례를 받았으니 스승 요한보다는 못하신 분으로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 안에는 큰 벽이 있습니다. 선입견이 있습니다. 그것이 깨져야 만이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못 보게 만드는 것들을 벗겨내야 만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듣는 것을 전하여라.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설명하지 않으시고 그저 “너희가 듣고 본 대로 요한에게 알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듣고 본 대로 바로 예수님은 메시아이심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문득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과연 나는 듣고 본 것을 알리는가? 보지도 않고, 듣지도 못했으면서 그저 부풀려서 말하기만을 좋아하는가? 상대방을 좋은 말로 칭찬하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을 비방하거나 안 좋게 말하는 것은 너무도 쉽습니다. 나는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5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신 일들을 말씀하십니다. 소경이 보고 절름발이가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이것은 메시아의 시대가 기적의 시대라고 예언한 예언자의 말을 성취시키고 있는 것이며(이사야 26,19 “죽은 자”, 29,18-19 “귀머거리, 가난한 자”, 35,5 “소경과 귀머거리”, 61,1 “억눌린 자”), 메시아 시대에 일어날 일들을 눈으로 보면서 예수님께서 바로 메시아이심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이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게 했던 것입니다. 분명히 예수님의 행적은 메시아가 확실한데 자신은 지금 감옥에 갇혀 있으니 제자들을 위해서 말씀해 달라는, 제자들에게 확신을 달라는 그런 요청입니다.



기적은 메시아의 특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못하시는 것이 없습니다. 나는 소경을 보게 하고 절름발이를 제대로 걷게 하며 나병환자를 고치지 못하지만 예수님께는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엄청난 것을 예수님께서는 하고자만 하시면 아주 쉽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바로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6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의심을 품는다는 것은 발에 돌에 걸려 쓰러지거나 넘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걸림돌은 남이 쓰러질 기회가 되는 것이나 혹은 사람을 말합니다. 즉 예수님께 결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원수까지도 사랑해라”--“어렵지만 해보겠습니다”)은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행복하다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을 향한 이 말씀은 제자들을 흔들어 놓았을 것입니다. 예수님보다는 세례자 요한을 더 따랐던 그 사람들. 그들의 마음에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은 요한보다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걸림돌입니다. 이제 요한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좁은 마음을 버리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아니 믿게 될 것입니다. 천천히 바뀌어 갈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많은 걸림돌들이 생겨납니다. 예수님께로 가는데 있어서 방해가 되는 것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 또한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수많은 걸림돌들을 물리치고 예수님께로 당당히 걸어가는 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7 그들이 떠나가자 예수님께서 요한을 두고 군중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물러간 뒤에 예수님께서는 요한을 칭찬하십니다. 없는 데서 칭찬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 또한 없는데서 상대방을 칭찬할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질문을 던지시어 사람들에게 무엇을 찾으러 떼를 지어 요르단 강으로 갔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하십니다. 세례자 요한은 바람 따라 이리저리 나부끼는 갈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바람이 어느 쪽으로 부는가를 기다려 보고 있다가 오늘은 저쪽에, 내일은 이쪽에 달라붙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메시지를 조작함 없이 똑바로 전했으며, 사람들의 지위 여하를 막론하고 심지어는 왕에게까지 그의 잘못에 대해서 직언을 하였습니다.



8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고운 옷을 걸친 자들은 왕궁에 있다.

세례자 요한은 부드러운 천으로 된 화려한 옷을 입고 이목을 끌지도 않았습니다. 낙타털옷과 들꿀을 먹으면서 광야에서 자신의 사명을 완수해 나갔습니다.



9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

 그들은 예언자를 찾고 있었으며 예언자를 발견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을 통하여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사랑하여 메시아를 보낸다는 것을 ...” 그래서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야 함을.”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을 잊지 않았을 것입니다. 비록 지금 감옥에 갇혀 있지만 그 어느 예언자 보다 훌륭한 예언자임을 그들은 알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다시 한번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이 누구인지, 그의 사명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십니다.

오직 요한만이 자기보다 더 뛰어나시고 자기 뒤에 오시게 되어 있는 예수님을 위해(3,11) 백성들을 준비시키고 그분께로 인도할 소명을 받았기에 더욱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은 예언자 입니다. 그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달하는 자(예언자)이며 하느님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해 주는 중개자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 구원의 전달자이며 구원의 인물이기 때문에 더더욱 훌륭한 예언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의 인품이나 수덕적인 생활에 의해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그의 활동은 다른 예언자들의 활동보다 더 위대한 것이기에 남다른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10 그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사람이다.‘보라, 내가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이사야 예언자는 이미 그 길의 준비에 대해 말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포로 생활에서 이끌어 내시어 기쁨으로 인도하시며, 이 백성은 곧고 평탄한 길을 따라 행진해 갈 것이라는 것을. 그 행군은 노예살이로부터 자유를 향한 행군임을(이사야40,3-4; 마태3,3). 말라기 예언자는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종말에 그들을 구원하기 위한 것임을 예언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몸소 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한 선구자가 그분보다 앞서 옵니다. “보아라. 나 이제 특사를 보내어 나의 행차 길을 닦으리라”(말라기3,1). 이러한 예언적인 말들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안에서 세례자 요한을 바라보게 하고, 더 나아가 바로 예수님께서 메시아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요한은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는 그의 임무에 있어서 위대한 인물일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 정말 멋지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당대의 어느 누구보다도, 과거의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으로 세례자 요한을 높여 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은 예수님도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그럼 예수님 다음이어야지 왜 첫째입니까?”왜냐하면 예수님의 탄생은 인간적인 영역을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이라도 그 사람보다는 크다." 세례자 요한이 위대하기는 하지만 하늘 나라에 있는 자와는 비교할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언자로서는 구약시대에 속하고 선구자로서는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교량입니다. 그런데 복음위에 서 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본다면 크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명과 신분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시작하시는 은총의 시대는 요한이 머물고 있는 율법의 시대보다 뛰어난 것이기 때문이고, 세례자 요한은 단지 그 길을 준비하는 사람이기에 자신도 그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1.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듣고 본 대로 요한에게 가서 알려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예수님에 대해서 어떻게 알리고 있습니까? 내가 예수님한테 본 것은 무엇이고, 예수님께 들은 것은 무엇입니까? 또 말을 함에 있어서 어디에 기준을 두고 말을 하고 있습니까? 있는 그대로입니까? 아니면 시기와 질투에 기준을 두고 비방을 하고 있습니까?



2. 예수님의 길을 준비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의 사자였습니다. 대림시기를 보내면서 나는 예수님의 길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내가 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세례자 요한의 삶에 비추어 내가 해야 될 것을 결심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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