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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전례
작성자 강론
작성일 2007년 11월 25일 (일) 14:49
분 류 성탄시기
ㆍ추천: 0  ㆍ조회: 2373      
IP: 211.xxx.10
http://missa.or.kr/cafe/?logos.924.
“ Re..성탄 대축일 새벽미사 ”
 

예수 성탄 대축일(새벽 미사)



어서 베들레헴으로 가자...



제 1 독서: 이사 62,11-12

제 2 독서: 디도 3,4-7

복     음: 루가 2,15-20



해설



  그리스도에 관한 것은 위대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이해와 찬미가 도저히 미칠 수 없을 만큼 ‘지극히’ 위대하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그분이 사람이 되시어(요한 1,14 참조) 온전히 ‘우리와 마찬가지로’(히브 4,15) 되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변함없는 사실이다. 바로 ‘사람이 되셨다“는 그 사실 자체가 신비와 놀라움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어째서 우리 모두를 초월해 계신 그분이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셨는가? 우리는 그분이 우리 가까이로 다가오시는 그 순간에 그분이 우리를 무한히 초월해 계시고 우리의 영역을 벗어나 우리에게서 당신 자신을 감추신다는 사실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자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성탄이 그분에 관해서 베일로 가려져 있지 않는 그 이상의 것을 여러 보여주고 있는지! 언제 그것이 명백히 열리게 될지는 하느님의 영원한 ’신비‘에 속하는 일이다.

  성탄의 전례 자체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오신다’고 하는 이 ‘형언할 수 없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으며, 오늘 축일의 특색인 세 번의 성체성사 거행의 가능성을 통하여 신자들로 하여금 육화의 무한한 신비를 이루고 있는 여러 관점 중에 무엇인가를 느끼고 맛보게끔 하고자 한다.

  이제, 우리는 새벽 미사라고 하는 둘째 미사의 전례독서 내용을 따라 생각해 보자. 이 둘째 미사의 내용은 다른 두 미사보다 훨씬 간결하지만 마찬가지로 풍부한 신학적 영신적 내용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도 특히 전례의 기도 내용들이 기쁨으로 들떠 있어 마치 성탄이라고 하는 커다란 ‘빛’의 축일에 취해 있는 듯하다. “전능하신 천주여, 우리는 혈육을 취하신 말씀의 새로운 빛을 가득히 받았사오니, 우리 마음에 충만해진 믿음의 빛이 행실에도 나타나게 하소서”라고 우리는 본기도를 통해 기도한다. 믿음을 통해 우리의 정신과 마음속에 침투된 빛이 모든 행실에 퍼져 나가기를 주님께 간청하고 있다. 성탄은 그렇게 믿음의 빛으로 살므로써 거행된다!

  영성체후 기도에서도 똑같은 사상이 흐르고 있다:“주여, 천주 성자의 탄생을 기념하는 우리에게 이 성탄의 신비를 굳은 신앙으로 깨닫게 하시고 뜨거운 마음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산다는 것’(생활한다는 것)은 항상 ‘깨닫은 것’을 전제로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 ‘태어나심’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아듣는 것이다. 이 ‘신비’에 관한 것을 얼마간 알아듣게 되면 그 즉시 우리의 생활 전체가 뒤바뀔 것이다. 즉 우리도 그분과 함께 새롭게 ‘태어나지’ 않으면 주님의 성탄을 거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오늘의 독서들도 비록 간결하지만 우리가 언급해온 이러한 사고들을 매우 효과적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랑을 나타내셔서...”



  성바울로께서 디도에게 보낸 편지에 의한 둘째 독서로부터 시작 해 보자. 그는 신자들의 일반적 의무에 대해 말하면서 그리스도가 우리 가운데 ‘나타나셨을’ 때 우리의 생활을 ‘쇄신’시켜주신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다.

  바울로의 말대로 우리 구원의 주도권은 그리스도의 육화를 통해 구체화된 하느님의 사랑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바울로는 여기서 성부와 그리스도를 다 같이 ‘우리 구세주’(4.6절)라고 부르고 있다. 이것은 대단히 혁신적인 일이다. 사실 보통 바울로의 서간에서는 하느님만을 ‘구세주’라고 하는데(에페 5,23; 필립 3,20 참조) 여기서는 그리스도께 대해서도 같은 명칭을 쓰고 있다(디도 1,4; 2,13; 3,6 그리고 2디모 1,10도 참조). 이것은 성부와 똑같은 품위를 그리스도께서도 지니고 계심을 분명히 말하기 위해서일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지는 구원의 위대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구원은 성부와 성자의 업적이다.

  더 나아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풍성하게 부어진’(6절) 성령의 활동이기도 하다. 성령의 ‘선물’은 육화의 선물을 계속시키고 확장시킨다. 이렇게 해서 육화의 선물은 신자 개개인과 아무런 관계없이 역사 속에 고립되어 있는 한 커다란 사건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우리 각자는 성령을 통해-특히 이 성탄 축일에- 사랑의 원천에 이를 수 있으며 또한 하느님께서 끊임없이 온 인류를 놀라게 할 ‘최초의’ 성탄을 계획하시고 구현하시는 데 있어서 원동력이 되었던 그분의 ‘인자’(4절)하심을 다시 체험할 수 있고 우리 안에 흠뻑 받아들일 수 있다.

  우리는 성바울로의 다음과 같은 훌륭한 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우리가 받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주셨읍니다.”(로마 5,5). 성령은 바로 사랑의 ‘선물’이기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전례의 의미를 내적으로 음미하고 깊이 통찰함으로써 사랑의 길을 발견하고 그길을 달려갈 수 있게 해준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짤막한 오늘의 둘째 독서가 우리가 무슨 올바른 일을 할 수 있다거나 하기 때문이 아니라(5절) 성부께서 완전히 무상으로 베푸시는 ‘자비로우신 사랑’을 세 개의 명사로써 강조하고 있는 데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들어 있다.:성탄은 인간이 자기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그 세 개의 명사는 하느님의 ‘인자’, 인간들에 대한 그분의 ‘사랑’(4절), 그리고 그분의 ‘자비’(5절)이다. 특히 두 번째 것의 의미가 깊다. 희랍어로는 filanthropia인데 많은 사람들이 그 의미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아마도 그대로 쓰는 것이 더 나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하느님은 무미건조하고 냉정한 형태의 filantropo(박애주의자)가 아니라, 사람들을 그들과 같은 사람이 되기까지 사랑하신 분이시다. 그분은 참으로 우리 입장에 설 줄 아셨다! 바로 이런 까닭에 그분은 우리를 이해하시고 우리를 용서하신다.

  또 한편으로 정확히 말해 그분은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이 되셨기 때문에 결코 우리를 거절할 수 없으실 것이다. 말하자면, 하느님은 육화의 신비를 통해 우리 각자에 결합되어 계시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사람들을 사랑하실 수밖에 없다.



“오, 크리스찬이여, 당신의 품위를 깨달으시오”



  이 둘째 독서에서 살펴보아야 할 또 한가지는 세례와 관계가 있는 내용 즉 ‘성령으로 깨끗이 씻어서 다시 나게 하시고 새롭게 주심’(5절)으로 표현되고 있는 대목이다.

  여기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세례에 관한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성탄의 신비에 관련되어 있는 것만을 말하고자 한다. 사실 성탄의 신비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 개념들은 ‘새로운’ 탄생(‘다시 나게 하시고’: 희랍어로 palinghenesia)과 생명의 ‘새로움’(‘새롭게 해주심’)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신자들에게 있어서 그들의 ‘태어남’은 세례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즉 세례를 받는 그 순간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난다’. 예수께서 육화를 통해 우리의 인간 본성을 취하셨듯이 우리는 세례를 통해 육화의 신비를 취한다.

  우리의 모든 위대성은 바로 이 점에 있으며,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성탄을 통하여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이 새 생명의 모습에 따라 살아야 할 의무도 있다. 이 점에 관해 성대레오는 당시의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오 크리스찬이여, 당신의 품위를 깨달으십시오. 신적 본성에 참여하고 있는 당신은, 무가치한 행동으로써 과거의 비천한 상태로 되돌아가지 않도록 하십시오. 당신의 머리가 누구신지 당신이 어떤 몸의 지체인지를 생각하십시오... 당신은 세례성사로써 성신이 거처하시는 궁전이 되었읍니다.!”(Sermo in nativ. Domini, 3: PL 54,193).



“사람들이 그들을 거룩한 백성이라 부르리라”



  이사야서에 의한 짤막한 제 1독서도 이사야 예언자가 마침내 바빌론 종살이에서 유배자들이 돌아올 결정적 순간의 예루살렘을 위해 예언하고 있는 ‘성성’을 통하여 ‘새로와짐’을 중심으로 이해할 수 있고 또한 그렇게 해야 한다:“수도 시온에게 일러라. 너는 구원하실 이가 오신다... 사람들을 그들을 ‘거룩한 백성’이라 ‘야훼께서 구해내신 자들’이라 부르겠고 너를 ‘그리워 찾는 도시’ ‘버릴 수 없는 도시’라 부르리라”(이사 62,11.12).

  이런 상징적 개념 이면에는 분명히 하느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의 ‘혼인관계’에 대한 주제가 언급되고 있다(이사 54,6-7 등 참조). 육화는 인간들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의 최대 표현이다: 참으로 성탄을 통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각자와 혼인하심으로써 우리를 당신의 생명과 깊은 곳으로 이끌어 들이신다!



“나는 너희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러 왔다”



  오늘 복음도 마치 전례 자체를 부수적이거나 우리의 관심만을 지나치게 끄는 자질구레한 문제들에 의해 흐트러지지 않게 하려는 듯이, 목자들이 천사로부터 놀라운 소식을 듣고(“나는 너희에게 시쁜 소식을 전하러 왔다. 모든 백성들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이다. 오늘밤 너희의 구세주께서 다윗의 고을에 나셨다. 그분은 바로 주님이신 그리스도이시다”:루가 2,10-11) 급히 베들레힘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아주 간결하게 기술하고 있다.

  본문의 내용은 주석상 그리 어려운 점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관심을 그 장면에 나오고 있는 등장인물들의 어떤 영신적 태도들-루가 복음사가가 자기의 독자들에게도 거듭 제시하고자 원한 것이 분명한-에 기울여 보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목자들이 천사의 소식을 듣고 취하는 태도를 보자:“어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그 사실을 보자”(루가 2,15). 그들이 서둘러 한 그 행위는 충분히 보상된다:“곧 달려가 보았더니 마리아와 요셉이 있었고 과연 그 아기는 구유에 누워 있었다”(16절).

  그들은 이 세상의 ‘구세주’를 그처럼 보잘것없고 불행한 처지에서 발견했다는 사실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천사가 이미 그들에게 알려준 바였다:“너희는 한 갓난아이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것을 보게 될터인데...”(12절). 바로 이것이 그들의 믿음이 강했다는 하나의 표지이다. 이처럼 믿음이 강하면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사람이건 버림받은 사람이건 처지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을 진정으로 사랑하신다! 육화의 신비는 모든 사회적 지위를 근본적으로 또한 철저히 무시해버린다: 즉 인간을 보잘 것 없거나 위대하거나, 가난하거나 부유하거나, 유식하거나 무식하거나 우리 각자가 삶에서 얻을 수 있는 크고 작은 행운이나 명성과는 상관없이 있는 그대로 재평가한다.

  그 다음 이러한 목자들의 태도의 결과로서 그들에게는 커다란 발견에 대한 ‘기쁨’과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야겠다는 욕구가 일어나게 된다:“아기를 본 목자들이 사람들에게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이야기하였더니 목자들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그 일을 신기하게 생각하였다”(17-18절). 루가 복음사가는 그들이 “자기들이 보고 듣고 한 것이 천사들에게 들은 바와 같았기 때문에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며 돌아갔다”(20절)라고 하면서 그 장면을 끝맺고 있다.

  성탄은 이 세상을 위한 주님의 위대한 여정의 시작이다: 그리고 역사상 가장 놀라운 그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사람들은 가난하고 순박한 목자들이다.

  복음의 실체는 폭발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 다만 필요한 것은 그것이 전염되듯이 또 타오르는 불길처럼 번져 나가도록 말과 생활로써 증언하고 선포할 사람이다. 동방박사이든 목자이든 베드로와 같은 어부이든 또는 바울로와 같은 예지가 넘치는 학자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그분으로 가득 차 있는 마음과, 오로지 우리만을 위해 간직하기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나고 경이로운 어떤 사실을 ‘보고 들었을’ 때 ‘놀라움’으로 가득 찰 수 있는 눈과 귀를 지니는 일이다.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였다”



  목자들 외에도 일어나고 있는 이 모든 일들을 신중하고도 주의깊게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또 하나 있다:루가의 말에 의하면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 깊이 새겨 오래 간직하였다”(19절). 또 루가는 이보다 좀 나중에 예수를 성전에서 찾으신 사실을 기술한 뒤에 “그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2,51)라고 기록하고 있다. 마리아가 여기서 취하는 태도는 당면한 현실이 너무나 엄청나서 보다 깊은 통찰을 요하는 그런 일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이다.

  신비로 가득 차 있는 것은 마리아에 관한 것뿐만이 아니라 그녀의 아들에게 일어난 사실도 마찬가지이다:참으로 그가 천사가 일러준 대로(루가 1,33 참조) 야훼께서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이어받아 그의 왕위를 계승할 사람이라면 어째서 그토록 비참한 처지에서 태어났는가? 또 한편으로, 아무도 그의 탄생 소식을 알려주지 않았는데 어째서 그 천하고 소박한 사람들이 그를 찾으로 갔는가? 어떤 사회적 특권이나 명성 또는 단순히 인간적인 유명세도 타고나지 못한 어린아기의 출생이 누구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단 말인가?

  이러한 의문점들은 자신의 몸에서 태어난 그 아들에 관한 ‘신비’를 그 어느 누구보다도 엄청난 것으로 받아들였을 어머니 마리아의 마음속에 생겨나지 않을 수 없었던 점들이다. 이밖에도 장래에 대한 생각도 있을 수 있다: 과연 무슨 일이 그 아들에게 일어난 것인지, 하느님은 그를 어떤 길로 인도하실 것인지, 그리고 어머니로서 그 길을 막을 아무런 권한이 없다면 단지 그 길을 도와 잘 닦아야만 하는 것인지?

  아들의 신비 앞에서 깊이 생각하는 마리아의 이러한 태도는 우리에게 있어서도 성탄을 올바르게 지내기 위한 값진 지침이 된다. 성탄은 우리를 초월하는 하나의 실체이다: 오직 무한한 사랑에 의해서 그리고 사물들 가운데서 신적 표지를 파악하고자 깨어 주시하는 예지에 의해서만이 그 의미를 깨닫고 되살릴 수 있다. 그러므로 이미 2천년의 미지의 영역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혼란케 하는 모든 문제들의 해결책을 우리의 형제가 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고자 하는 강렬한 원의를 가져야 한다.

  “당신께 의탁합니다. 당신을 찾습니다- 당신안에서 인간들의 역사는 그 ‘몸’을 찾을 수 있읍니다... 온 인류 역사를 위해 당신의 ‘몸’을 찾습니다-당신의 오묘하심을 찾습니다”(K. Wojtyla,dal,poema Vigilia di Pasqua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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