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모음
강론을 위한 자료실
       
 
전체글 보기  
       
 logos
말씀과 전례
작성자 강론
작성일 2007년 11월 25일 (일) 14:48
분 류 성탄시기
ㆍ추천: 0  ㆍ조회: 2493      
IP: 211.xxx.10
http://missa.or.kr/cafe/?logos.922.
“ 성탄 대축일 새벽미사 ”
 

20.              예수  성탄 대축일 (다해)  예수 성탄, 우리의 성탄    

                                                              강길웅 신부




“어둠 속을 헤매는 백성이 큰 빛을 볼 것입니다ꡓ(이사 9,1).

오늘 이사야가 외친 놀라운 말씀이 우리 가운데 크게 빛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으로 해서 세상은 참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탄생은 바로 우리 자신의 탄생(?)입니다. 어폐있는 말 같지만 그것은 사실입니다.



어떤 부부가 결혼한 지 10년이 넘었건만 아기가 없었습니다. 아기가 없으니까 부부뿐만 아니라 시부모님에게도 낙이 없었습니다. 집안이 그렇게 쓸쓸하고 허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결혼 13 년째 되던 해에 부인이 임신을 하더니 드디어 옥동자를 낳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아주 대단한 경사였습니다.



우선 부부가 기뻤습니다. 이제 남편은 아버지가 되었고 아내는 비로소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아기가 태어남으로 인해서 그 부부가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되었고 시어머니는 할머니가 될 수 있었습니다. 아기 하나로 인해서 온 가족이 모두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그보다 더 위대한 의미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의 탄생은 바로 우리 자신의 탄생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태어나시기 때문에 우리 인생이 새로워지며 또한 우 리 인생이 그분 안에 새로워지기 때문에 그분의 탄생이 빛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탄은 하느님의 것이요 또한 인간의 것입니다. 인간 은 실로 예수님 때문에 인간다워지는데 그것이 바로 성탄이 주는 의미입니다.



오늘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구원의 은총이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다고 외쳤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믿는 이에게나 믿지 않는 이에게나 모두에게 골고루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믿는 이에게만이 그 은총이 살아서 빛나게 됩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은총의 빛이 환하게 빛나도 눈을 감아 버리면 빛은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옛날 유대인들이 그랬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간절하게 기다렸습니다. 세상에 수없이 많은 민족이 있었지만 유독 그들만이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막상 메시아가 오자 그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그토록 기다렸던 메시아를 죽였습니다. 이게 바로 신앙의 모순입니다. 얼마나 많은 모순이 오늘의 우리 사회에도 존재하는지 모릅니다.



오늘의 시대에도 주님을 찾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러나 정작으로 주님을 만나는 사람은 실로 얼마되지 않습니다. 믿음 안에 서 눈을 다른 곳으로 뜨고 있기 때문에 “주님, 주님" 하고 부르면 서도 주님을 바라보지는 못합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그 안에 탄생하실 자리가 없습니다. 설혹 주님이 그 인생 안에 태어나셔도 그 사실 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변화가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 보면 예수님이 태어나실 자리가 없습니다. 베들레헴의 모든 방들은 만원이었습니다. 아무리 사정해도 예수님이 태어나 실 자리를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하신 곳이 마구간이었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사실이 오늘의 시대에도 재현되고 있습니다. 세상에 방이 많지만 정작 예수님이 탄생하실 자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진정 가난한 사람은 그분의 구유가 될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어떤 부인이 찾아와서 자신의 사업이 실패한 얘기를 하면서 울었습니다. 듣고 보니 딱했습니다. 처음에 화장품 장사를 했지만 손해만 봤고 나중엔 음식 장사를 했으나 빚만 몽땅 짊어지게 되었습니다. 남편도 없이 혼자 자식들과 함께 살자는 일이 다 그르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절망의 시기에서 구원의 빛이 왔습니다. 예수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한번은 거리를 헤매다가 우연히 성당에 들어갔는데 마당 한쪽에 모셔진 성모상이 그렇게 편안했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오랫동안 위로를 받고 수녀님을 찾았더니 수녀님이 그랬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이 당신을 부르셨다고. 그리고 수녀님의 말씀 한마디가 그녀를 살려 주었습니다.



그 날부터 그 자매는 가슴 안에 예수님을 모셨으며 예수님을 모 신 날부터 그녀는 새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녀 안에 태어나시자 자매가 새롭게 태어난 것입니다. 그녀는 다시 일어섰으며 한동안 파출부로 나가다가 지금은 동네에서 작은 가게를 하는데 그냥 먹고 살 만은 하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우리 안에 탄생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특히 힘들고 어려웠던 분들, 가난하고 외로웠던 분들, 그리고 병들어 고생했던 분들에게서 그분은 태어나시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밤 천사가 그랬습니다. “오늘 밤 너희의 구세주께서 다윗의 고을에 나셨다"(루가 2,11). 여러분이 바로 다윗의 고을입니다.

성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21.            예수 성탄 대축일 <루가 2,15-20>  그리스도께 탄생할 자리를 드린다는 것

                                                           함세웅 신부



한 아기가 세상에 탄생하였습니다. 복음사가 루가는 서론에서 이 탄생 시기를 로마제국의 아구스또 황제 때라고 기록했습니다. 팔레스틴이 아니고 세상이라고 기록한 것, 유다 총독 헤로데가 아니고 로마 제국의 아구스또라고 기록한 것은, 바로 이 아기의 보편적 사명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즉 이 아기의 무대는 팔레스틴의 제한된 지역이 아니라, 우리나라까지를 포함한 이 세상이라는 구세주 구원의 보편성을 일깨워 주기 위한 의식적인 기록입니다.

  

그러나 이 아기의 탄생을 기뻐하는 무리는 제한되어 있습니다. 로마의 제국이나 온 세상이 이 기쁨을 맛본 것은 아닙니다. 목자들만이 이 기쁨을 알았고,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 목자는 당시 유다 지방에서 가장 비천한 지위의, 신분이 낮은 사람들입니다. 보잘것없는 사람들이었으나 마음이 착하고 순진한 사람들이었기에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뻐했던 것입니다. 이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탄생하신 예수 아기, 그러나 그 아기는 왕궁에서가 아니라 마음 착한 목자들의 모임인 마구간에서 인간의 첫 발을 딛으셨던 것입니다.

  

“그들이 베들레헴에 가 머물러 있는 동안, 마리아는 아기를 낳을 때가 되어 드디어 첫아들을 낳아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눕혔습니다. 여관에는 그들이 머무를 방이 없었던 것입니다"(루가 2,6-7) 이 몇 줄 안되는 기록이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하느님 +인간)의 탄생 기록 전부입니다.

  

이 아기 예수의 탄생에 대한 구약의 예언은 다음과 같습니다. “만상은 고요 속에 잠기고 밤은 달려서 그 한 허리에 다다랐을 때, 주여, 전능하신 말씀이 하늘의 어좌에서 내리셨나이다"(지혜 18, 14-15) 밤입니다.

고요한 밤 그리고 침묵의 밤입니다. 침묵은 그리스도의탄생, 그분이 하늘에서 세상에 내려오시기 위한 첫 조건입니다. 조용함 가운데 인간은 자신을 되찾으며, 반성해서 자아를 의식하니, 이것은 곧 하느님과 만날 수 있는 방법이며 길입니다. 모든 사람의 잔꾀, 표정, 행동, 또는 변명, 이 모든 것은 조용함과 침묵 속에서 다 눌려지며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침묵 ! 이것은 하느님과 대화하고 통할 수 있는 인간이 지닌 유일한 언어이며 동작입니다. 침묵, 그것은 생각하는 것입니다. 생각한다는 것, 그것이 곧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로 우리가 느끼는 것은 인간적으로 보아 참으로 섭섭하고 슬픈 일, 즉 그리스도께서 탄생할 자리가 여관에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도시 밖의 마구간에서 탄생하신 그 아기 예수는 또다시 도시 밖에서 십자가상에 달리실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른 상징적 의미를 하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찾고 원하신, 탄생할 자리나 숙소는 바로 인간의 마음인 것입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습니다"(마태오 8,20)라고 말씀하신 그리스도 그분은 아마 지금도 우리 마음 안에 거처할 자리가 없어서 항상 찾고 계실지 모릅니다.

  

그리스도께 탄생할 자리를 드린다는 것, 그것은 바로 우리 옆에 앉아 있는 형제, 자매, 나의 가족, 나와 늘 만나는 사람, 아니 나와 뜻이 맞지 않는 그분께 자리를 내어 주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 불쌍한 사람, 외로운 사람에게 따뜻한 사랑의 선물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일년에 한 번 지내는 이 아기 예수의 성탄 축일이, 전례적인 이 기억이 바로 매일매일 내 안에서 반복될 것이며 새로워 질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만민의 빛이라 했습니다. 어두움을 없애는 빛, 그림자가 자취를 감추게 되는 것, 그러나 그림자는 어떤 존재가 아닙니다. 빛이 이르지 못하는 장애물 때문에 생겨나는 결과입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것을 만천하에 환하게 드러나게 하십니다. 다만 우리가 눈을 감고 우리 두 손으로 또 눈을 가려 그리스도의 빛을 막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눈을 뜬다는 것, 그것은 하나의 결정이며 실천입니다. 신앙인의 내적 투쟁, 장애물은 곧 자기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기쁨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는 하느님으로서 우리 인간과 동행하기 위해서, 반려자, 벗으로 오신 것입니다. 동고동락한다는 의미, 그리스도가 인간이었기에 그의 언행이 우리에게 힘과 보증을 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가지고 온 기쁨, 그것을 우리는 선물이

라고 합니다. 이 선물은 하느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집어 주는 제 3의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선물은 그렇다고 그리스도 자신이나 또는 하느님도 아닙니다. 그것보다 더 진하고 짙은 것, 즉 ‘하느님이 인간인 나'로 변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주고받는 그런 선물보다 훨씬 고귀한 하느님 +사람, 곧 일치이며 변화입니다.



여기서 자연 하느님께 대한 우리 인간의 보답이 주어집니다. 우리 자신을 하느님께 바친다는 봉헌의식보다 더 강한, 자신이 하느님으로 변해야 한다는 사명의식을 자각해야 합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습니다. 이제 나머지 과정은 사람이 하느님으로 되는 일입니다. 이 보증을 바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찾고 얻으며 또 확신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전 신앙인의 중심 과제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 신학자들의 설명 방법이 달랐지만, 도표로 표시할 때 하느님께로부터 나온 사람이 다시'하느님께로 가기 위한 과정'에 다 포함되며, 성 아우구스띠노의 고백록 첫 장에 나오는 '주여, 님 안에 쉬기까지는 우리 마음이 착잡하지 않습나이다'라는 표현은, 바로 이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웃에 대한 사랑은 생각, 행위, 말 뿐만으로써가 아니라, 자신이 바로 이웃으로 변해서 동화해야 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신비적인 일치, 변화에서 우리는 하느님, 나, 이웃이라는 삼각관계의 또 다른 성삼의 체험을 맛보는 것입니다. 



새 사람으로의 탄생



지금 이렇게 완성된 성전에서 맞이하는 성탄은 우리에게 깊은 감회를 줍니다. 이 날이 있기까지 우리는 어려운 시간을 지내면서도 은총의 기적이 아니면 이룩될 수 없는 성전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이 우리는 이 은총과 이 은총이 주는 빛과 위로가 아쉽습니다. 더구나 이 시대가 요구하는 현실은 어두움이 짙어 참된 길을 찾기가 어려우며, 인류에게 참된 자유와 구원을 주시는 구세주의 참 빛은 더욱 아쉽기만 합니다.

  

구세주께서는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묶이고 억압받는 이들에게는 해방을 주시고자 오늘 이 자리에 오셨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리던 구세주의 탄생을 기뻐하면서, 가난한 마구간에서 태어나시고 죄인들의 친구이시며 그들의 불행을 함께 나누셨던 생활을 배워야겠습니다.



그 길은 묵은 나의 생활 전체를 예수 아기에게 맡김이며, 새로운 '나'로 시작하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낡은 나의 생활 방식을 따르면서 그릇된 안전을 느끼거나 또는 새로운 탄생, 새 생활이 가져다주는 변화가 두려워 현상 유지를 바라거나 임시 방편으로 새로운 생활로의 탄생을 막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이웃과의 만남 속에서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사랑하심과 같이 생활하고 나 자신의 생황을 돌이켜 보면서 새로운 나로 시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탄생의 의미는, 자칫 인간들이 만들어 놓는 규범에 의해 짓밟힐 수 있으나, 인간 내면의 양심의 소리는, 눈먼 사람에게 시력을 주고, 억눌린 사람들을 놓아주며, 우리는 다시 새로운 탄생의 신비를 따릅니다.

  

예수 아기 탄생의 기쁨을 전합니다. 여러분 가정에 강생하신 구세주의 은총이 가득하시길 빕니다. 동시에 다시 태어남의 의미가 우리 자신에게 가득하여 사랑으로 불타야겠습니다. 불은 모든 것을 태웁니다.

  

구세주께서 사랑 자체이시며 모든 인류를 뜨겁게 사랑하셨듯이 사랑은 불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 불이 되어야 합니다. 그 불은 모든 주위를 밝게 비추며 태울 것입니다. 그 불은 우리에게 참 탄생을 안겨 줄 것입니다. 





  0
3500
   
 N  분류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1017    
성탄시기
   Re..성탄대축일 강론모음 말씀연구 2008-11-27 3368
  1016    
성탄시기
천주의 성모마리아 대축일 강론모음 1월 1일 2007-12-29 4105
  1015    
성탄시기
   Re..천주의 성모마리아 대축일 강론모음 대축일 강론 2008-08-09 3642
  1014    
성탄시기
송년미사 강론 12월 31일 2007-12-29 5946
  1013    
성탄시기
가해 성가정 대축일 강론 모음 주일강론 모음 2007-12-28 3994
  1012    
성탄시기
   Re..가해 성가정 대축일 강론 모음 말씀연구 2007-12-28 2654
  1011    
성탄시기
   Re..가해 성가정 대축일 강론 모음 주일강론 2007-12-28 2557
  1010    
성탄시기
   Re..가해 성가정 대축일 강론 모음 주일강론 2007-12-28 2836
  1009    
성탄시기
   “가족의 웃음소리는 천상의 음악입니다.” 성가정 축일 2007-12-28 2003
  1008    
성탄시기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땅에서는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 구유의 인물들 2007-12-24 2679
  1007    
사순 및대림특강
대림절 신앙강좌 서울신학교 부제반 2007-11-25 3248
  1006    
성탄시기
성탄 대축일 낮미사 강론모음 2007-11-25 3891
  1005    
성탄시기
성탄 대축일 새벽미사 강론 2007-11-25 2493
  1004    
성탄시기
   Re..성탄 대축일 새벽미사 강론 2007-11-25 2372
  1003    
성탄시기
성탄 대축일 밤미사 강론모음 2007-11-25 5296
  1002    
대림시기
가해 대림 제 4주일 주일강론 모음 주일강론모음 2007-11-25 5672
  1001    
   Re..가해 대림 제 4주일 주일강론 모음 주일강론 2007-11-25 1754
  1000    
대림시기
   Re..가해 대림 제 4주일 주일강론 모음 주일강론 2007-11-25 6547
  999    
대림시기
   Re..가해 대림 제 4주일 주일강론 모음 주일강론 2007-11-25 3533
  998    
대림시기
나해 대림 제 4주일 주일강론 모음 주일강론모음 2007-11-25 5908
  997    
대림시기
   Re..나해 대림 제 4주일 주일강론 모음 말씀연구 2008-11-27 3849
  996    
대림시기
   Re..나해 대림 제 4주일 주일강론 모음 말씀과 전례 2008-11-17 3476
  995    
대림시기
다해 대림 제 4주일 주일강론 모음 주일강론모음 2007-11-25 6389
  994    
대림시기
   Re..다해 대림 제 4주일 주일강론 모음 주일강론 2007-11-25 3853
  993    
대림시기
가해 대림 제 3주일 주일강론 모음 주일강론모음 2007-11-25 6492
  992    
대림시기
   Re..가해 대림 제 3주일 주일강론 모음 말씀연구 2007-12-13 3832
  991    
대림시기
   세례자 요한이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낸 이유-필독**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 2007-12-13 2803
  990    
대림시기
   Re..가해 대림 제 3주일 주일강론 모음 주일강론 2007-11-25 2962
  989    
대림시기
   Re..가해 대림 제 3주일 주일강론 모음 주일강론 2007-11-25 3222
  988    
대림시기
나해 대림 제 3주일 주일강론 모음 주일강론모음 2007-11-25 7600
1,,,1112131415161718192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