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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전례
작성자 주일강론모음
작성일 2007년 11월 25일 (일) 09:58
분 류 대림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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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해 대림 제 4주일 주일강론 모음 ”
 

 대림 제4주일

20. 홍금표 신부 (다) / 36

21. 김영식 신부 (다) / 38       22. 김정진 신부 (다) / 40

23. 서경윤 신부 (다) / 42       24. 강영구 신부 (다) / 44

25. 비싼 것을 (다) / 47         26. 강길웅 신부 (다) / 49

27. 교구주보 (다) / 51           28. 장영희 교수 (다) / 53





20.        대림 제4주일   <루가 1,39-45> (다) 신앙에 대한 지지와 격려

                                                    홍금표 신부




학습 이론 가운데 조작적 조건 형성이란 이론이 있다. 이 이론은 지렛대를 밟으면 문이 열리고, 먹이를 먹을 수 있게 장치를 한 상자 안에 고양이를 넣으면 처음에는 고양이가 지렛대를 잘 누르지 않지만, 우연히 지렛대를 밟을 때, 문이 열리고 먹이고 제공되는 경험을 하게 되면, 점차 지렛대를 누르는 횟수가 짧아지게 되고, 필요에 따라 지렛대를 누르게 된다는 것으로, 학습자가 환경을 조작한다는 의미에서 조작적 조건 형성이라 한다.

이와 같이 인간의 행동도 그 행동에 따른 적절한 보상이 따를 때, 그 행동이 강화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에, 교육현장이나 치료 현장에서 이 이론을 원용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할 점은 보상에는 칭찬이나 격려 인정 등의 긍정적 강화물과 처벌이나 회피와 같은 부정적 강화물이 주어질 수 있는데, 교육적 측면에서는 긍정적 강화물이 더 효과적이고, 부정적 강화물은 거의 효과가 번다고 한다는 점이다.



오늘 복음은 성모님께서 엘리사벳을 방문하는 이야기다. 성모님이 왜 엘리사벳을 방문하게 되었을까? 단언할 수는 없지만, 성모님이 엘리사벳을 방문하게 된 동기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의심과 두려움, 흔들리는 신앙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추론할 수 있는 이유는, 천사가 나타나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하자, 마리아는 내가 처녀인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때 천사는 그것이 가능하다는 증거로써 보여준 것이, 바로 친척 엘리사벳의 수태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성모님은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랗니다」란 신앙의 가장 위대한 응답을 하게 된다. 그러나 성모님은 위대한 신앙인 이기에 앞서 연약한 한 인간이었기에, 의심과 불안 두려움을 완전히 떨쳐 버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과연 내가 잘한 일일까? 그리고 천사의 말, 처녀가 아이를 낳고, 내가 구세주의 어머니가 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약혼자 요셉이 믿어줄 것인가? 등등을 반문하면서 여러 가지 상념에 잠겼을 것이다. 아마도 이때 성모님의 머리를 떠나지 않은 천사의 말은, 바로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를 보면 하느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라는 천사의 말씀이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성모님이 나자렛에서 유다 산골의 한 동네, 에인카림이라고 알려진 곳, 오늘날 버스로도 세시간이나 걸리는 머나먼 거리를, 가련한 여인의 몸으로 혼자 힘겹게 여행하게 된 것도, 여행의 어려움보다는 천사의 말을 확인하고픈 강렬한 욕망과 흔들리는 신앙에 대한 증거를 찾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일 것이다,

 

성모님은 이 엘리사벳 방문 사건을 통해 한 단계 성숙한 신앙으로 나아가게 되는데, 그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란 성모님의 신앙에 대한 엘리사벳의 찬사의 말씀이었다. 이 말씀을 듣고 마리아는 자신의 순명이 옳았음을,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진정 복된 일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온전히 순명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오늘 복음에 이어 유명한 감사시, 마리아의 노래가 나오는데, 이 노래를 부르게 된 계기도 엘리사벳의 이 말씀 때문이라고 증언(루가 1,46)하고 있는 점만 보더라도, 엘리사벳의 이 말씀이 성모님께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랄 알 수 있다.

  우리는 오늘 복음을 보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성모님의 흔들리는 신앙, 증거를 찾고자 하는 신앙을 보면서, 부족하고 나약한 또 다른 우리의 모습에 대한 위로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이들은 하느님의 놀라운 섭리에 찬양을 드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같이 묵상해 보고 싶은 점은 「마리아의 신앙에 대해 아낌없는 지지와 격려」를 보내준 엘리사벳 성녀의 모습이다.

  

구세주의 탄생 과정의 중심점은 성모님임이 분명하지만, 그러나 그 첫 출발점에서 성모님과 함께 엘리사벳의 오늘의 모습도 분명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가정이란 별 의미가 없을지 모르진만,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했을 때, 아무런 격려와 위로를 받지 못했다면, 성모님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갈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인간은 단 한사람만이라도 자신의 행동을 이해해주고 격려해 줄 때만이 자신의 일에 대한 의미와 확신을 가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의 결론은 분명 해진다. 우리가 비록 성모님처럼 위대한 신앙의 응답을 할 수 없다면, 우리 주위에서 하느님의 뜻을 위해 또 다른 모습의 성모님의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진정한 칭찬이나 격려를 아끼지 말자는 것이다. 그러한 삶도 엘리사벳의 삶처럼 구원의 역사에서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의와 평화, 공동체와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이들, 우리 삶의 현장에 예수님의 탄생을 현실화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온 마음을 다해 격려와 박수를 보내면서 성탄 전야를 맞이하자 !

 21.           대림 제4주일(다) 루가 1,39-45 확신과 희망으로

                                             김영식 신부



경애하올 교우 형제 자매 여러분!

이제 대림절의 마지막 주일을 맞이하여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신앙생활에 매진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얼마 전에 저는 네메셰기 신부님이 쓰신 “눈꽃”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의 서문에서 눈 속에 하얗게 피어난 눈꽃을 본 감상을 적은 신부님의 소박한 글을 읽고 저는 대단히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네메셰기 신부님의 고향인 항가리는 3월이 되어도 눈이 수북하게 쌓이는 매우 추운 지방이랍니다. 온 대지가 하얗게 눈에 쌓이고 푸른 싹이라고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벌판에서 오직 이 눈꽃만이 살포시 고개를 내밀고 몇 개의 파란 잎과 함께 흰 꽃을 피운다는 것입니다. 죽은 듯한 대자연 속에 이 꽃만이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꽃은 4, 5월이 와서 눈이 녹아버리고 온갖 식물들이 싹을 틔우고 푸르러지기 시작할 때면 슬며시,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 버리고 땅 속에 뿌리만 남겨둔 채 다음 봄을 기다린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꽃은 죽은 듯한 대지에도 살아남은 온갖 생명들이 있음을 미리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는 슬며시 땅 속으로 숨어버리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성모 마리아는 결혼을 하지 않고도 천주 성령의 힘으로 구세주 예수를 낳으실 것이라는 천사의 말을 듣고서 즉시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옵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그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에 친척 언니인 엘리사벳을 찾아갔습니다. 엘리사벳은 성령의 비추심으로써 마리아가 아기 구세주를 잉태하신 것을 알고는 마리아에게 다음과 같은 말로 인사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에게 하신 말씀을 바로 이 자리에 모인 우리 모두, 바로 나도 할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고 확신하는 사람, 주님 말씀을 조금도 의심치 않고 믿는 사람은 복된 사람일 것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오실 날도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대림절도 막바지에 접어들었습니다. 지난 주에도 말씀드렸듯이 분주하고 왁자지껄하게 성탄 축일을 준비하지 말고 조용히, 차분한 마음가짐으로 주님을 내 마음에 모실 수 있도록 하여야겠습니다. 이를 계기로 다가오는 내년 한해 동안 뿐 아니라 우리들의 일생 전체가 주님의 뜻대로 착실한 신자생활을 할 수 있도록 결심합시다. 즉 주님을 마음에 모신 신자답게 살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는 착실한 신앙인으로 살기를 원하지만 세상이 너무 각박해서 도대체 안된다고들 합니다. 양심적으로 살기가 무척 괴로운 일이라고 합니다. 요즈음 같은 세상에는 신앙인으로 생활하긴 틀렸다고들 말하고 있습니다. 또 사람들이 너무 양심이 무디어지고 마비되어서 그렇다고들 합니다. 사실 세상은 너무 비양심적인 것 같습니다.



몇 해 전 어느 시장에 불이 났을 때의 일입니다. 점포 주인들이 타다 남은 물건들을 끄집어내느라고 수라장을 이루고 있을 때 여기 저기서 “도둑 잡아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합니다. 한푼이라도 더 건지려고 불 속에 뛰어드는 판국에 도와주기는커녕 도둑질까지 하려는 세상이니 정말 한심한 일입니다.



또 서울의 어떤 고층 캬바레에서 불이 났을 때 종업원들이 손님들을 안전하게 피신시키려는 생각은 않고 돈부터 먼저 받아내야겠다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그래서 다른 통로는 막고 한 통로만 지키고 서서 기다리다 결국은 돈도 못 받고 많은 인명피해만 내었다고 신문에 보도된 것을 보았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너무도 기막힌 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 신자분들도 “양심적으로 살아봐야 나만 고생이지 무슨 소용이 있겠나”하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실망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신자들까지 실망하여 다른 사람들과 같이 “남의 눈에 꼬추가루를 뿌리는 한이 있더라도 나만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이 세상은 더욱더 황폐하고 문란하여 우리의 다음 세대에는 우리가 상상도 못할 가공한 일들이 생길 것입니다. 나만 잘 살면 되지 내 아들의 세대하고는 별 볼일 없다고는 물론 생각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우리 신자들은 이 사악하고 죄 많은 세상, 그야말로 재물과 일신의 영달에만 눈이 어두운 이 세상에 희망을 알려주는 눈꽃이 됩시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영원한 삶이라는 것을 증거하는 눈꽃이 됩시다. 얼어붙은 눈까지 뚫고 나올 수 있는 확신과 용기를 가지고 이 어려운 세상살이를 주님의 사랑의 계명으로 살아나가는 눈꽃들인 우리 신자들의 최후에는 하느님이 약속하신 영원한 삶이 선물로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남은 며칠 동안의 대림기간을 이 어려운 시대를 더욱 굳세게, 신앙으로, 남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살아나가도록 다짐합시다.

매해, 매달, 매일 이와 같은 결심을 하면서 일생을 살아나가도록 합시다.

22.         대림 제4주일(다) 루가 1,39-45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과 성탄

                                                    김정진 신부



신자여러분! 오늘은 벌써 대림제4주일로서 성탄절을 한 주일 안에 맞이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오신 날이 문 앞에 당도하였으니 우리는 그 동안의 생활과 자신을 반성하여 내 마음에 구세주를 모실 채비가 다 되어 있는지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크리스마스 행사도 좋고 선물과 카드교환도 좋습니다만 무엇보다도 우리는 주님을 기꺼이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가 문제입니다.



참회와 속죄의 정신으로 죄사함을 받았습니까. 불우이웃돕기 운동에 참여하여 이웃사랑을 실천하였습니까. 이와 같은 생활의 변화가 따르지 않는 성탄절은 무의미한 것이요, 천만번 예수님이 내려오신다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하등 기쁨과 행복이 될 수 없습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에서 성모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의 흐뭇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예수님을 잉태하신 마리아께서 당신의 친척 엘리사벳을 방문하였을 적에 엘리사벳의 태중의 세례자 성 요한은 하도 기뻐서 뛰놀았다고 합니다. 예수탄생의 임박은 엘리사벳 한가족의 기쁨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만 백성이 즐거워할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합당한 마음으로 주님의 성탄을 준비한다면 태중의 성요한의 기쁨에 못지 않게 우리 마음은 축복과 희망, 평화와 행복감에 잔뜩 젖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성탄절을 며칠 앞둔 오늘, 우리는 성실과 열성을 다하여 주님을 맞이할 준비와 차림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성모 마리아의 방문이 이처럼 커다란 기쁨의 충격을 안겨주었다면 구세주이신 예수님이 세상을 찾아주시고 우리를 방문하시는 날이야 얼마나 경탄스럽고 축하해야 할 축제일이겠습니까. 그래서인지 뭇남녀들이 날뛰며 밤새는 것도 아랑곳없이 흥청대며 광란하고 있습니다. 성탄날 밤은 그저 축하연이나 외적으로 떠들썩하며 지내는 그런 축제일이 아닙니다. 그들은 성탄절의 의미를 잘못 해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조용한 밤에 고요히 내려오십니다. 그처럼 시끄럽고 야단법석하는 가운데는 오실 리가 만무입니다. 성모마리아와 같이 한적한 마을에서 조용히 기도에 전념하는 데 예수님은 잉태되고 고요한 한밤중에 적막한 말구유에 예수 아기는 탄생하십니다.

예수님은 왕궁도 아닌 외양간에서 외로이 가난하게 탄생하셨다가 외로이 쓸쓸하게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신 후에도 외롭게도 남의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 생애에는 가난이 철철 흘렀습니다.



예수님의 일생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데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마리아가 <걸음을 재촉하여> 엘리사벳을 찾아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마리아의 행동은 우리에게 좋은 교훈을 줍니다. 즉 하느님의 뜻을 받들고 하느님의 음성을 따르는 것을 게으르게 해서는 안될 것이고 억지로 마지못해 해서도 안될 것입니다. 언제나 기쁜 마음으로 오롯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이는 어려운 일도 가쁜 마음으로 또한 관대한 심정으로 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방문의 길은 보통 여행이 아니었으나 하느님의 뜻을 준행하는 일념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즈가리야의 집에 도착하여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자 이에 엘리사벳은 깊이 감동하여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 하고 응답하였습니다. 곧 탄생되실 분은 세상에서 가장 복되신 아기이십니다. 이러한 분을 잉태한 마리아는 모든 여인들 중에서 복되리라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즉 마리아의 모성은 곧 마리아의 위대한 점이며 우리 신자들이 마리아를 공경해 드리는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엘리사벳은 마리아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았지만 자기가 마리아께 비해 얼마나 미소한 존재인가를 알며 겸허하게도 <주님의 어머니께서 나를 찾아주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 하며 정중히 인사를 차렸던 것입니다. 엘리사벳은 이 어린 소녀를 내 주님의 어머니라고 부르며 소녀의 복중에 어떤 아기가 계신지를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외에도 우리가 성모 마리아께 공경을 드려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 말씀의 힘과 능력을 굳게 믿으셨다는 이유로 마리아는 개인적으로도 위대하다는 점입니다. 일반 사람들의 불신에 비해 마리아의 믿음은 뚜렷이 빛을 발합니다. 천사 가브리엘의 인사에 답하기를 <지금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신 것은 마리아의 위대한 신앙의 표시인 것입니다. 이는 명백하게 알려진 하느님의 뜻에 순수하고 솔직한 동의를 한 것입니다. 이는 또한 자신의 뜻이란 추호도 개입치 않은 오직 주님의 뜻만을 추구한 비상한 신앙의 고백인 것입니다.



신자 여러분, 성모 마리아께 대한 공경의 까닭을 명백히 깨달은 이상, 앞으로 마리아께 대한 신심을 더 두텁게 함으로써 그에게서 탄생하실 예수님을 더욱 기꺼이 반기며 우리 마음과 가정과 사회에 빨리 오시도록 간절히 기도드립시다. 아멘.



23.         대림 제4주일(다) 루가 1,39-45 정녕 복된 자는 과연 누구인가

                                                          서경윤 신부



청첩장을 든 채 착잡한 심정이 되어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친구의 자녀가 결혼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닌데 유난히 의식하게 되는 것은 역시 계절도 계절이려니와 나이에 대해 보다 민감해진 탓인가 합니다. 어차피 나는 사위 볼 팔자는 못되므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될텐데, 그 친구의 사윗감이 어떤 인물인지 또 그 친구가 어떤 장인이 될지도 궁금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가 어떤 장인이 될지도 궁금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가 그 사람을 사윗감으로 결정하고 결혼식을 치르게 된 과정을 내 기준에 준해서 짐작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그 사람의 됨됨이를 봐야겠지요. 어떻게 생겼으며 체격이나 건강상태는 어떤지, 경제적 능력은 어느 정도이며 성격은 어떠하고 무엇보다 자기 딸을 얼마나 사랑할지 가늠해가며 확신이 생기면 사윗감으로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사윗감으로 결정되고 나면 혼인날짜를 정하고 결혼식 준비에 착수하게 될 것입니다.



딸을 혼인시킴에는, 혼수를 비롯한 기본 돈 드는 일도 있고 본당신부를 만나 사무적인 처리도 해야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딸을 보내기 전 마지막 마무리 준비로 새가정의 한 아내로서 한 며느리로서 또 장래 어머니로서의 마음가짐과 삶에서 오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지혜 그리고 그 외 부모로서의 훈계 등으로 인격적 준비를 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런 준비과정에서도 자주 사윗감에 대한 뿌듯한 느낌도 갖게 될 것입니다. 물론 모든 면에 만족스럽진 못하겠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사윗감이란 생각도 들고 장차 만족스런 사위를 생각하며 흐뭇한 기쁨에 잠기기도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위를 위한 것이라면 아무 것도 아까운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이런 기쁨은 장래 사위에 대한 믿는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아울러 그를 믿는 마음이 없었다면 이 혼인이 성사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아마도 자기 사윗감이 자랑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청첩장을 친지들에게 보내는 마음은 그 날에 이 흐뭇하고 자랑스런 맘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대림절 첫주일에는 오시는 분이 어떤 분인지 생각하게 했습니다. 그분은 성탄절에 어린 아기로 탄생할 분이며 또한 먼 훗날 영광에 싸여오실 분으로 소개했습니다.

둘째주일에는 그분을 맞이하는 내 자신의 준비를 하게 했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을 바로잡고 회개하여 그분을 맞이할 채비를 하게 했습니다.



또 셋째 주일에는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그분과 그분이 가지고 올 구원을 생각할 때 오시는 분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삶의 위로와 맘 속에 간직한 기쁨을 기억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대림시기의 이 마지막 주일에는 그 기쁨이 믿음으로부터 오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문안의 말씀이 내 귀를 울렸을 때에 내 태중의 아기도 기뻐하며 뛰놀았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루가1,44-45)

마리아가 구원자를 품에 지닐 수 있었던 것은 마리아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천사 가브리엘의 전달말씀을 듣고 「주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정녕 복된 자」 되었습니다.



이제 이 땅에 그리고 성탄절을 준비해온 우리의 가슴마다에 구원자 그리스도가 오실 날이 임박했습니다. 이 땅에 오시는 구원자를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바탕은 나의 믿음입니다. 마리아와 같은 믿음만이 우리도 그리스도를 내 안에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또 나에게 구원을 가져다 줄 이 믿음 때문에 우리는 구세주의 탄생을 기뻐하고 기다립니다. 그러므로 성탄을 준비하는 우리의 마지막 점검은 바로 우리의 신앙입니다.



사람들이 내게 어떤 종교를 믿느냐고 물으면 천주교를 믿는다고 대답합니다. 그럼 과연 천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분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시라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 믿음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습니까?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세상 구원을 위하여 당신 외아들을 이 땅에 보내주셨으며, 탄생하신 아드님은 우리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3일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고 마지막 날에 선인과 악인을 심판하러 다시 오실 것이라」 잘 대답합니다만 그 믿음으로 내가 「정녕 복된 자」 되었다고 생각합니까? 내가 이 믿음을 가졌기에 하루의 삶이 기쁩니까? 나의 신앙이 참으로 자랑스럽습니까?



성탄을 기다리는 마음은 적어도 잔치를 준비하며 기다리는 마음이라야 하겠습니다. 오실 분이 어떤 분인지, 내 자신의 준비에 미비한 부분은 없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그분에 대한 믿음과 기대는 무엇인지 또 그분이 우리에게 오심이 자랑스럽고 모든 이에게 자랑하고 싶은지?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마음은 기쁘고 흐뭇하며 잔치가 임박했을 때처럼 흥분과 설레임이 있을 것입니다. 이미 그 분은 우리 마음에 와 계시고 또 환영과 축복 가운데 우리에게 오실 것입니다.



이런 사람만이 「성탄을 축하합니다」하는 인사를 할 자격이 있고 따라서 크리스마스 카드도 잔치에 초대하는 청첩장을 보내는 마음으로 띄우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크리스마스 카드는 모두 부도수표 같은 수표요 고지서 같은 청첩장일 뿐입니다.









    

24.       대림 제4주일 <루가 1,39-45> (다) 가장 복된 여인

                                                               강영구 신부



오늘은 대림 제4주일입니다. 성탄 대축일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지난 4주간 동안 대림절을 지내면서 성탄 대축일 맞을 준비를 충실히 해 왔습니다. 그 준비는 또한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연말이어서 그런지 사회의 모습이 어쩐지 어수선하기도 하고 사람들의 모습도 어딘가 들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름대로 성탄 대축일과 연말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계획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은혜로이 받은 한 해를 잘 마무리하기 위해서, 그리고 큰 기쁨과 희망으로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기 위해서 우리는 보다 현명하고 지혜로워야 하리라 믿습니다. 외적인 화려함과 떠들썩함보다는 신앙인으로서의 지난 한 해에 대한 반성과 새해를 맞기 위한 새로운 각오와 다짐이 필요한 때입니다.

  

오늘 복음의 주인공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입니다. 우리는 이미 마리아가 어떻게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었는지, 그 사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작은 마을에 살고 있던 이름 없는 처녀였습니다. 마리아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구세주 메시아의 내림을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던 신심 깊은 처녀였습니다. 마리아는 어느 날 갑자기 천사 가브리엘의 방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구세주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줍니다.

  루가복음 1장7절에 의하면 마리아는 천사의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간절하게 기다리던 구세주 메시아가 시골의 한낱 이름 없는 처녀를 통하여 태어난다는 신비를 쉽게 알아들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구세주 메시아의 탄생은 한 아기의 출생이라는 단순한 사건이 아닙니다. 구세주 메시아의 탄생은 인간의 역사와 인류의 운명을 바꾸어 놓게 될 엄청난 사건입니다. 이런 엄청난 사건이 나자렛의 이름 없는 처녀 마리아를 통해서 성취된다는 사실을 마리아 자신도 잘 알아들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마리아는 남다르게 뛰어난 가문의 출신도 아닙니다. 그리고 당시 여성들이 대부분 그러했겠지만 고등 교육을 받지도 못했습니다.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또는 돈 많은 부잣집 딸도 아니었습니다. 참으로 평범한 시골의 처녀였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응답하면서, 그 엄청난 일을 떠맡기로 작정했습니다. 마리아가 가브리엘 천사의 제의를 받아들이게 된 것은, 교만하거나 혹은 야심이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와는 정반대입니다. 참으로 겸손하였고 또 하느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명하고자 하였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을 온전히 비워서 하느님의 도구가 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운명 모두를 하느님의 손에 맡기고자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복음을 통해서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상봉하는 대목을 들었습니다. 엘리사벳은 자기를 찾아온 마리아에게 이렇게 인사합니다.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 엘리사벳의 이 인사말을 오늘 우리도 성모송을 외울 때마다 바치고 있습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여자들 중에서 가장 복된 여자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복됨은 세속적인 의미의 복됨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부잣집 딸로 태어나서 아쉬운 것 없이 호강하고 자라서 대학 졸업한 여자, 돈 잘 벌고 지위 높은 신랑을 만나서 똑똑한 아들을 두고 여유 있게 사는 여자들을 복된 여자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런 여자들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마리아의 일생은 고난과 시련의 연속이었고 십자가의 일생이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엘리사벳으로부터 그리고 오늘 우리로부터 복된 여인으로 칭송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리아의 복됨은 무엇입니까?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말대로 하느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리라 믿었기에 복된 여인이 된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주장하거나 내세우려 하지 않고 온전히 자신을 비워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였기에 복된 여인이 된 것입니다. 마리아가 구세주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된 것은 예쁜 얼굴과 단정한 용모, 남다른 재능과 재주 흑은 상당한 재력을 지녔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도 당신 구원 사업의 도구로 마리아를 선택하신 것은 마리아가 이런 것들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믿음과 겸손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마리아의 이 겸손과 믿음이, 닫혔던 하늘의 문을 열게 하여 이 땅에 구세주 그리스도의 내림을 가능하게 하였고 이 땅에 성령의 시대를 열게 하여 인류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게 하였습니다. 마리아의 복됨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이제 곧 성탄 대축일을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는 대림절을 지내면서 주님의 재림과 성탄 대축일을 준비해 왔습니다. 과연 우리의 삶의 모습이 어떠해야 주님의 재림과 성탄 대축일을 기쁘게 맞을 수 있겠습니까? 과연 어떤 사람들이 하느님의 사랑받는 사람이 되어 복되다고 칭송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어떤 사람들의 가슴속에 성령께서 역사하시어 새로운 시대가 열리겠습니까?

  

마리아와 같이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당신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고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자신을 비우는 겸손한 사람, 그리고 하느님의 손길에 자기 자신을 모두 내맡길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마리아의 믿음과 겸손을 통해서 구세주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원의 시대가 시작되었듯이, 이 땅에 광명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 위해서는 오늘 우리 신앙인들의 믿음과 겸손이 필요합니다.

  믿음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우리 인간은 참으로 별 볼일 없는 나약한 존재이지만, 믿음으로 하느님의 권능에 참여하게 됩니다. 성조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은 믿음으로 이집트의 재상이 될 수 있었고, 모세는 믿음으로 이집트 파라오를 굴복시키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킬 수 있었습니다. 소년 다윗은 믿음으로 골리앗을 쳐 이겼습니다. 마리아 역시 믿음으로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어 이 땅에 새 역.사의 문을 열었습니다.

  

우리 인간은 무력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믿음을 가질 때 무한히 강하게 됩니다. 믿음은 자기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하면서 하느님께 귀의함으로써 하느님의 권능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참된 믿음을 지닌 사람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인간이 무엇인지를 잘 아는 겸손한 사람이 하느님께 귀의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믿음과 겸손을 지닌 사람들을 통해서 당신의 권능을 드러내시어 역사하십니다. 우리도 마리아와 같이 믿응과 겸손으로 자신을 가꿀 때 하느님의 사랑받는 복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과 겸손은 하느님의 권능이 드러나는 자리입니다.

  

불행하게도 오늘 현대인들은 믿음도 없고 겸손함도 없습니다. 신(神)은 죽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하느님 대신에 돈과 권력을 섬기는 사람들도 많고, 자기들 스스로 하느님의 구원 역사를 아는 양 1992년 10월 종말설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고, 첨단 과학이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믿음도 없고 겸손함도 없는 인간들 가운데 하느님은 언제나 침묵하고 계십니다. 인간들이 자신을 주장하고 자신들의 능력을 과시하는 곳에 하느님께서 하실 일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기고만장한 인간들의 오만함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의 오만과 불신앙이 초래한 불행한 역사를 잘 알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스스로 하느님과 같은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 하다가 죄를 지어 낙원에서 쫓겨났고, 오만함으로 바벨탑을 쌓았던 인간들은 뿔뿔이 흩어졌으며, 소돔과 고모라는 불신앙으로 유황불을 뒤집어쓰고 멸망했습니다. 이러한 불행은 하느님께서 내리신 벌이라기보다 인간들이 스스로 선택한 결과입니다. 향락과 안일을 추구하면서 돈과 재물의 위력을 믿고 과학 문명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 믿는 오만한 현대인들 가운데서 이러한 불행이 되풀이되지 않을까 우리는 염려하고 있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곧 성탄 대축일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마리아를 구세주의 어머니로 선택하신 이유를 다시 곰곰이 생각해 봅시다. 오늘도 우리 가운데서 마리아가 복된 여인으로 칭송받는 이유를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작고 약한 어린 아기로 탄생하셨는지 그 신비를 묵상해 봅시다. 지금은 믿음과 겸손으로 우리 자신을 비우고 낮추어 아기 예수께서 태어나실 자리를 마련하는 시간입니다.

  "모든 여자들 가운데서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 "













 25.        대림 제4주일 <루가 1,39-4> (다) 비싼 것을 꽤나 좋아더니!





 요즈음 신문을 보기가 두렵다. TV뉴스도 두렵다. 신문을 쌓아 놓기만 하고 아예 안보다가 오늘 강론을 쓰려고 용기를 내어 며칠 동안의 신문을 뒤적거렸다. 외화가 바닥났다. 정부에서는 위기감을 느끼고 우선 급한대로 IMF에서 돈을 꾸었다. 그 결과 엄청난 빛을 지게 되였고 빛쟁이들이 이래라저래라 하고 우리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서글프게도 남의 손에 우리나라 살림을 맡긴 꼴이 되었다.



  그 결과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게 되었고, 백 수십만명의 실업자를 양산하게 되었으며, 환율도 1천6백원을 넘어섰다. 주가는 3백80선으로 폭락하고, 종금사와 부실 금융기관도 정리될 전망이다. 대기업들이 펑펑쓰러지고 쪄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모두 우리 탓이다. 정신차리지 못해 화를 자초한 것이다. 경제적으로 조금 윤택해졌다 해서 과소비, 무분별한 해외여행, 도피성 유학, 사치성 소비, 값비싼 외제 선호 등 흥청망청 쓰다보니 외화가 바닥나 버렸다. 비싼 거 꽤 좋아하더니 진짜로 모든 물건값이 엄청나게 비싸게 되었다. 우리 같은 서민만 죽어나게 되었다. 그런데도 아직도 정신 못차린 사람들이 많다. 외제 수입품 가게에서 여자 속옷이 2백만원인데 더 비싼 거 없냐고 묻는 사람이 많단다. 잠옷까지 치면 5백만원이라는데, 찢어질까 걱정되어 잠이 잘 올까?



 이렇게 외화를 날린 것이다. 돈 값을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꿔줘도 되는지 조사하러 왔던 LMF의 한 관계자가 「정부나 국민이나 똑 같이 나사가 풀렸다」고 따끔한 충고를 했다.



「지금 배불리 먹고 지내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가 굶주릴 날이 올 것이다. 지금웃고 지내는 사람들아, 너희는 북행하다. 너희가 슬퍼서 울 날이 올 것이다. (루가 6,29)」라는 말씀대로다.

정신적 재화의 성장보다는 물질적 재화의 성장이 우선하다 보니 만족감과 자만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나사가 풀리다 보니, 나라 경제를 망치고 말았다. 정작 필요한 것은 정의와 진리의 토대 위에 성실하고 근검 절약하는 것일진대, 이를 무시해 버렸다. 확고한 하느님의 정의 위에 정치 지도자들이 경제 정책을펴고 국민들이 실천했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교회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때문이다.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의 행실이 악하여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했다” (요한 3,19)는 말씀 그대로다.



  교회는 죄를 일곱 가지로 분류하여 애써 피하기를 강조하고 있다. 이를 칠죄종(七罪宗)이라 하는데 교오., 간린, 미색, 분노, 탐도, 질투, 해태 등이다. 칠죄종과 그가 낳은 자식들을 열거해 보자.



 오늘 복음의 내용은 「낳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교오는 교만인데 자만과 허영을 낳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간린은 세상 사물에의 무질서한 애착이다. 낭비, 빈궁자에 대한 무감각, 거짓말, 도량 형기의 기만 등을 낳는다.

 미색은 성적 쾌락의 무질서한 탐욕이다. 영혼의 소경됨, 현세에의 애착, 하느님과 내세를 싫

어함 등의 죄를 낳는다.

 분노는 복수하려는 무질서한 욕망이다. 불만, 모욕, 악담, 소리지름, 욕설, 다툼, 싸움, 구타, 치상 등의 죄를 낳는다.

탐도는 탐식과 과음을 말한다.

질투는 남이 잘 되는 것을 자기 탁월성의 손실로 여기고 싫어하고 근심하는 것이다.

해태는 일하기 싫어하는 것이다. 빈둥거림, 놀고 먹고 지냄, 부당한 태업, 시간낭비 등의 죄를 낳는다. 그밖에도 호천(呼天)하는 죄와 성령을 거스르는 죄가 있다. 호천의 죄는 살인, 남색(男色), 빈자와 과부의 업신여김, 품값 사기 등이다.

성령을 거스르는 죄는 회개를 권유하시는 성령을 거슬러 진리와 은총에 끝까지 일부러 저항하는 죄다. 이 죄는 사함을 받을 수 없다. 그 이유는 죄의 중대성에 있지 않고, 하느님 자비의부족에 있지 않으며,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마음 자세」때문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가장 무서운 죄는 무엇인가? 모든 면에서 명분을 앞세우고 뒤에서는 불법과 비리를 자행하는 것이다. 그럴듯한 명분 뒤에는 반드시 탐욕이 도사리고 있었음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또 한가지는 자기 희생 없이 온갖 거짓과 속임수를 이용하여 재물을 획득하려는 사악한 마음이다. 어떻게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을까? 해답은 간단하다.



  오늘 복음은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받아들이는 수태고지 내용이다. 그래서 세상에 구원이 왔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낳고 우리는「회심(回心)」을 낳고‥‥ 그리하여 우리나라에 구원을 가져와야 한다. 회심이란 마음을 바꾸는 것이다. 모두가 회심을 낳아야 한다. 그것도 「총체적 회심」을! 신자건 비신자건, 정치인이건 한낱 촌부이건 모두다 회심해야 한다. 그래서 칠죄종의 근원을 없애야 한다.



  회심만 하면 무엇하랴? 마리아의 용기가 필요하다. 당시 처녀가 임신하면 돌로 때려죽이는 사형법이 있었다. 마리아는 17세의 처녀로서 죽음을 각오하고 용감하게 아기 예수를 품안에 받아들인 것이다. 우리에게도 말로만의 회심이 아니라 희생을 각오하고 실천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것이 외국에서 외채 빌리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며 급선무이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한다」,「백의 종군하는 마음으로」,「뼈를 따는 아픔으로」다시 태어나야한다. 언젠가 많이 들어본 소리로 흘려 들어선 안된다.













26.             대림 제4주일 (다해)   믿어서 복되신 분     

                                       강길웅 신부





성서는 하나의 약속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들에게 들려 주시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 말씀을 믿는 것은 그분 의 약속이 믿음직스럽고 또한 그 약속이 우리의 생애에서 분명히 드러나고 실현된다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종교가 하느님의 약 속이라면 신앙은 그 약속을 믿겠다는 다른 하나의 약속입니다.



오늘 1독서에서는 하느님의 약속이 펼쳐집니다. “너는 비록 유다 부족들 가운데서 보잘것없으나 나 대신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 너에게서 난다.ꡓ보잘것없는 마을 베들레헴에서 수백 년 동안 기다려 온 메시아께서 나실 것이라는 내용이 오늘 야훼의 말씀이요 약속입니다. 그리고 이 약속은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이랬다 저랬다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따라서 참고 기다리면서 그분의 약속을 믿는 사람은 복된 자가 되지만 약속을 믿지 않고 기대하지 않는 자는 축복에서 제외가 됩니다. 그러나 그분의 약속은 항상 일방적이기 때문에 우리를 당혹하게 만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와 협의해서 맺어진 약속이 아니고 그분 스스로 정해서 그분 뜻대로 하시는 약속이기 때문에 인간편에서는 항상 주저와 의구심을 자아내게 합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느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첫번 약속을 하셨습니다.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따먹어라.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만은 따먹지 말아라. 그 것을 따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는다"(2,16.17).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지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열매를 따먹으면 하느님처럼 된다는 마귀의 거짓 약속을 믿었기 때문에 낙원에서 쫓겨났으며 인류 불행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하느님의 약속이 인간을 불행으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약속은 축복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러나 믿지 않으면 그 대가로 불행을 뒤집어쓰게 됩니다.



약속을 믿고 지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그 약속의 내용이 애매하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때는 믿을 수도 없고 지킬 수 도 없습니다. 인간 사회에서는 또 거짓이 판을 칩니다. 그리고 믿었기에 손해보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처지에서도 믿으면 믿음의 대가와 보상이 주어집니다. 이것이 믿음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믿기 위해서는 많은 시련을 겪어야 합니다.



삼국유사에 보면 환웅천왕이 곰과 호랑이에게 한 약속이 나옵니다. 옛날에 하느님의 아들인 환웅이 인간 세상에 살기를 원하여 천 부인 세 개와 무리 3천을 거느리고 태백산 봉우리에 내려와 나라를 세우고 다스렸습니다. 그때 한 마리의 곰과 또 한 마리의 호랑이가 같은 굴에 살면서 환웅천왕께 빌어 사람이 되기를 기원하였습니다.



이에 환웅이 신령스러운 쑥 한 줌과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너희가 이것을 먹으며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되리라." 고 했는데 곰은 그 약속을 믿고 지켰기에 사람이 되어 단군 임금의 어머니가 되었으나, 호랑이는 믿지 않고 지키지 않았기에, 사람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내용이 우리의 성서 내용과도 일치합니다.



마리아는 믿었기 때문에 하느님의 어머님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믿은 하느님의 약속이란 너무도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우선 처녀로서 아이를 임신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곧 대중 앞에서 돌로 쳐맞아 죽어야 하는 큰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의 관습으로는 약혼자도 모르는 아이를 임신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마리아는 믿었습니다. 자기 생애에 어떤 시련과 고난이 닥쳐 온다해도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일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복된 여인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약속은 무조건 믿어야 합니다. 그것을 믿는 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을지 모르나 그러나 믿는 이에게만 당신을 드러내시며 믿지 않는 이에게는 당신을 감추시는 것이 약속이 지니는 양면성입니다. 보잘것없는 고을 베들레헴에서 구세주께서 나셨듯이 보잘것없는 인생에게서 오늘도 구세주는 탄생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지금 주님을 기다리는 목적은 주님이 먼저 우리를 기다리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우리 안에서 탄생하시어 머물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에 상관치 않고 그냥 우리와 함께 동행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형편이 고달플수록 주님은 더 간절하게 우리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기다릴 수 있는 주님이 계시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에게는 큰 은총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기다리는 주님이 계시다는 사실이 우리의 생애를 참으로 빛나게 해 줍니다. 주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립시다. 그러면 우리도 마리아처럼 복된 사람이 될 것입니다.














27.              대림 제4주일  (루가 1,39-45)(다) 복되다 믿으신 분



             1. 복음 이야기



  오늘 복음은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한 이야기입니다. 마리아는 동정녀로서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 마을에서 예수를 잉태한 다음(루가 1,34-35) 서둘러 유다 산골 동네에 사는 엘리사벳을 찾아 인사를 했습니다. 엘리사벳이 살았던 마을은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8킬로미터 떨어진 엔 케렘으로 전해지는데 이곳에 세례자 요한 탄생 성당과 엘리사벳 방문 성당이 있습니다.



  엘리사벳은 임신한 지 여섯 달된 몸이었는데(루가 1,26) 마리아의 인사를 받고 성령으로 가득 차서 “여자들 가운데 복되시며 태중의 아기 또한 복되시도다! 주님의 어머니께서 오시다니 이게 웬일입니까! 보십시오, 인사하는 소리가 귀에 들리자 태중에서 아기가 신명이 나서 뛰놀았습니다. 복되도다 믿으신 분, 주님이 해 주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니!”라고 화답했습니다. 그러자 마리아는 감격에 차서 하느님의 구원을 기리는 노래, 곧 마리아의 노래(Magnificat)를 읊었던 것입니다(루가 1,46-55).



            2. 우리의 이해



  마리아가 동정으로서 예수님을 잉태했다는 이야기는 신약성서를 통틀어 오직 루가복음 1장 34-35절과 마태오복음 1장 18-25절에만 나옵니다. 동정녀 잉태 이야기는 예수님은 메시아이시고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로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이사악의 어머니 사래와, 야곱과 에사오의 어머니 엘리사벳은 석녀인데다 나이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섭리로 이스라엘의 위인들을 잉태 출산했던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하느님의 특별 섭리로 성령으로 말미암아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십니다. 따라서 예수님만이 메시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복음사가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을 통하여 마리아의 품성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루가에 의하면 마리아는 뜻밖의 일을 겪을 때마다 함부로 속단하지 않고 그 일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생각하는 사려깊은 분이었습니다(1,29;2,19.51). 아울러 마리아는 하느님의 말씀이라면 불가능해 보이는 것조차 그대로 믿고 순종하신 분이었습니다(1,38.45).



처녀인 그녀가 아기의 잉태를 고지(告知) 받았을 때 이는 마리아에게 실로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인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섭리라고 믿었기에 “보십시오,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 바랍니다”(1,38) 하면서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하여 자신에게 닥쳐올 수치스럽고 무서운 일을 감수하면서 자신의 운명을 오롯이 하느님의 뜻에 맡긴 실로 신앙인의 귀감이 된 성모님이었습니다.



  또한 마리아는 예루살렘 모교회가 탄생하는 현장에서 교회 탄생을 기도하며 기다리던 분이셨습니다(사도 1,14). 교회는 하느님의 은총이 내리는 곳이고 하느님의 구원 역사를 이루어가는 곳이라 하겠습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은총이 마리아에게 내리고 하느님의 구원 역사가 마리아의 태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마리아야말로 교회의 어머니로서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분임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신앙인의 귀감이요 교회의 어머니로서 인류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분이십니다. 대림 제4주일을 맞아 이 땅에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성모님께 나라와 교회를 위하여 천주님께 빌어주시기를 청하면서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쁜 마음으로 기다립시다.



서울대교구 사무처 홍보실

28.               대림 제4주일  (루가 1,39-45)(다)   크리스마스가 뭐야?



다섯 살짜리 우리 조카 건우는 “너 커서 무엇이 될래?” 하고 물으면 무조건 ‘훌륭한 사람’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는 건우가 갑자기 “이모, 근데 훌륭한 사람이 뭐야?” 하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뭐, 이제껏 뜻도 모르면서 계속 말했단 말야?” 말하면서 좋은 대답을 찾았으나 ‘훌륭한 사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건우를 데리고 장난감을 사 주겠다고 백화점에 가는데 사방에 요란한 크리스마스 장식을 보고 건우가 또 물어 왔습니다. “근데 이모, 크리스마스가 뭐야?” 아, 이건 좀 쉬운 질문이군, 생각하면서 저는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것도 몰라? 크리스마스는 예수님 생일이잖아.” 그랬더니 대뜸 “예수님 생일 전번에 했잖아? 근데 또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신부님’과 ‘예수님’을 혼동하는 건우는 지난번 저희 본당의 신부님 영명축일 축하해 드린 것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신부님이 아니라 예수님 생일이라니까.” 내가 대답하자 건우는 “예수님 생일이면 왜 예수님이 선물을 받지 않고 우리가 받아?” 하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다섯 살짜리의 질문에 저는 또다시 답이 궁해졌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단지 그냥 누군가의 생일인가요?  건우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이맘때면 항상 ‘성탄 축하합니다!’를 외쳐댔지만, 한 번도 진정 크리스마스의 의미가 무언지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다섯 살짜리 꼬마가 무조건 ‘훌륭한 사람’ 되겠다고 말하듯이 그냥 기계적으로 말해온 것 뿐입니다.



  백화점 입구는 선물 보따리를 잔뜩 든 사람들로 매우 복잡했습니다. 그 와중에 어떤 초라한 할아버지가 손을 내밀며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무심히 천원짜리 한 장을 꺼내 할아버지 손에 올려 놓았습니다. 할아버지가 이번에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어느 청년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청년은 “할아버지 죄송해요, 버스 값밖에 없어요” 하였습니다. 그러더니 돌아서는 할아버지의 등에 대고, “아, 할아버지, 담배 태우실래요?” 하며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피를 꺼내 할아버지께 드리고 불까지 붙여드렸습니다. 천원을 받고는 무표정하던 할아버지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지며 “고맙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문득 생각했습니다. 아, 건우에게 이걸 가르쳐 줘야겠다 - 없지만 나누는 마음, 어려운 이웃에게 위안을 주는 배려, 그리고 거기에 감사하는 마음, 바로 그것이 크리스마스라고. 바로 그것이 사람되어 오시는 주님께 드리는 진정한 생일 선물이라고. 그래서 처음으로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며 말씀드립니다.

  “교우 여러분, 성탄 축하합니다!”



장영희 마리아 / 서강대학교 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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